• ABOUT US

커먼즈 번역 네트워크

Menu
  • ABOUT US
Home  /  경제 • 과학·기술 • 도시·지역 • 액티비즘  /  전지구적 전쟁체제와 새로운 국제주의

전지구적 전쟁체제와 새로운 국제주의

경제, 과학·기술, 도시·지역, 액티비즘 가자 전쟁, 경제적 삶의 군사화, 국제주의, 다극체제, 물류 회로, 사회적 삶의 군사화, 우크라이나 전쟁, 자본의 회로, 전쟁체제, 지정학과 지경학의 교직 Leave a Comment

 


  • 저자  :  Michael Hardt•Sandro Mezzadra
  • 원문 : “A Global War Regim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NLR의 블로그인 Sidecar에 실린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산드로 메차드라(Sandro Mezzadra)의 2024년 5월 9일자 글 “A Global War Regime”의 내용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2000년대 초에는 ‘불량 국가’와 ‘파탄 국가’가 전쟁의 발발을 설명하는 주된 이데올로기적 개념들이었으며, 이는 정의상 주변부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때는 주도적인 국민국가들과 전지구적 기관들이 이끄는 안정되고 효율적인 국제적 통치 체제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 이후 전지구적 전쟁의 수사(修辭)와 실제가 모두 극적으로 변했다. 오늘날에는 그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가장 강력한 행위자들 일부를 국제적 무대에 끌어들이고 핵 위기 고조라는 유령을 소환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은 그런 파열을 패권의 전환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20세기의 세계대전들은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전지구적 패권의 이동을 표시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맥락에서는 그런 파열이 패권의 이동을 나타내지 않는다. 미국 패권의 쇠퇴는 위기가 규범이 된 시기를 개시할 뿐이다.

이 시기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전쟁체제’(war regime)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이 체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 삶이 군사화되고 ‘국가안보’ 요구에 점점 더 종속된다. 더 많은 공공지출이 군비에 배당될 뿐 아니라 경제 발전 전체가 점점 더 군사 및 안보 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 분야의 이례적인 진전은 대부분 군사적 이해관계와 전쟁에 적용될 테크놀로지에 의해 추동된다. 물류 회로와 인프라도 군사 분쟁과 군사 작전에 맞추어진다. 경제와 군사 사이의 경계가 계속 흐려지고 있으며, 어떤 경제 부문들에서는 양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둘째, 사회적 장이 군사화된다. 이는 때때로 국론통일을 주장하고 다른 견해를 억압하는 형태를 띠지만 일반적으로는 다양한 사회적 수준에서 권위에의 복종을 강요하는 시도로 발현된다. 볼소나로, 푸틴, 두테르테 같은 극우 인사들의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은 사회적 위계에 대한 그들의 지지와 명확히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외적으로 명시되지 않더라도, 군사주의와 여타 사회적 억압이 결합된 정치적 레퍼토리가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종적•성적 위계가 강화되고, 이주민들이 공격받고 배제되며, 낙태가 금지되거나 제한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가 붕괴되는데, 이 모든 것이 종종 임박한 내전의 위협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셋째, 이 전쟁체제에는 패권국이 수행한 최근의 전쟁들이 계속 실패했다는 역설이 있다. 미군은 적어도 반세기 동안 아낌없는 자금 지원을 받고 선진적 테크놀로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아프간 및 이라크에 이르는 전쟁들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강력한 전쟁기계가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더 이상 제국주의적 패권국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런 실패의 동학이 드러내는 또 한 가지 점은 그런 전쟁이 유지하는 전지구적 권력 구조이다.

푸코는 목표를 영원히 성취하지 못하는 감옥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감옥의 실패가 무엇에 복무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전쟁기계의 연속적인 실패가 무엇에 복무하는지를, 그 표면적 목적 뒤에 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물을 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군사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무리가 문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 아니라, 푸코라면 ‘통치 기획’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다. 이는 부단히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뒷받침하는 군사화된 통치 구조로서, 이 구조는 장소마다 다른 형태를 취하며, 때로 서로 연합하고 때로 서로 갈등하는 여러 수준의 세력들(강대국들, 초국적 기관들 및 경합하는 자본 부문들)에 의해 이끌어진다.

전쟁과 자본의 회로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대 물류학은 식민지 활동과 대서양 노예무역에 뿌리를 둔 군사적 계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전지구적 종합국면의 특징은, 가치화와 축적의 공간들이 늘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가운데 지정학적 측면과 지경학적 측면이 점점 더 중첩되고 이와 함께 정치권력이 경합을 통해서 지구 전체에 배분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물류 문제를 일으킨 이후로 군사적 이유로 인한 교란들이 이어졌다. 세계 무역이 경색되었으며, 기업들은 과거의 루트를 다시 확보하고 새 루트를 개시하는 등 위기에 대처하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류 차질이 뒤를 이었다.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석유 및 가스 교역이 전쟁의 주요 희생양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은 또한 밀, 옥수수, 유지油脂 작물의 흐름을 차단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주요 식량이 부족해졌으며,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 제한이 해제된 뒤 폴란드·체코·우크라이나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독일 경제는 현재 정체 상태에 있으며, 다른 여러 EU 회원국들은 북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정을 통해 에너지 공급 체계를 재편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주로 중국과 인도로 돌렸다. 물류 공간의 이러한 재편은 분명히 이번 전쟁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가자지구에서도 물류와 인프라의 문제가 결정적인데, 이 점이 참혹한 학살의 광경에 의해 종종 가려진다. 미국은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을 통해 지역 경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맞서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는 아랍-이스라엘 관계의 정상화라는 전제에 의존했는데, 이 전제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으로 인해 치명적으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홍해에서 벌어진 후티 반군의 공격은 주요 해운 기업들로 하여금 수에즈 운하를 피하고 더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항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미군은 현재 가자 해안에 항구를 건설 중인데, 미국은 이것이 원조 물자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그 궁극적인 목적이 민족 말살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이처럼 자본 공간의 전 세계적 재편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쟁체제하에서 주요 순환 거점들이 국민국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 이는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가 뒤섞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남중국해의 긴장 고조와 오커스(AUKUS)와 같은 군사동맹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같은 경제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과도기에는 각각의 전쟁이나 공급망 차질이 특정 국가나 자본주의적 행위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 전체는 증가하는 공간적 분열과 예측 불가능한 지정학적 변화의 등장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전지구적 전쟁체제에 대항하면서 휴전과 무기 금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현재의 상황은 일관된 국제주의 정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현상 유지로부터 근본적으로 탈피할 수 있는 연계된 이탈(desertion)의 실천들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러한 프로젝트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전지구적 운동에서 가장 명확하게 예고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국제주의는 종종 일국적 프로젝트들 간의 연대로 개념화되었다. 이는 2023년 12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제소한 사례처럼 오늘날에도 때때로 유효하다. 그러나 과거 반식민 투쟁의 기초가 되었던 민족해방 개념은 점점 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팔레스타인 자결권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두 국가가 관여된 해결책과 주권적 팔레스타인 국가의 전망은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고 있다. 국가 주권을 목표로 가정하지 않고 구성할 수 있는 해방 프로젝트는 현재의 자본의 전지구적 순환에 맞설 수 있는,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지 않는 형태의 국제주의이다.

국제주의는 세계시민주의가 아니다. 추상적인 보편주의가 아니라 특수하고 국지적인 물질적 토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민국가를 제외하자는 것도 아니다. 더 넓은 맥락에 놓고 보자는 것이다. 2020년대에 맞는 저항운동은 국지적인 시 단위의 조직들, 일국적 구조들 그리고 일정 지역의 국가들에 걸쳐 있는 행위자들을 포함한 광범한 세력을 포함할 것이다. 예를 들어, 쿠르드 해방투쟁은 일국의 경계를 넘어서 터키, 시리아, 이란 및 이라크의 사회적 경계들에 걸쳐 이루어진다. 안데스의 토착민 운동 또한 그런 구분을 가로질러 이루어지며, 라틴아메리카와 그 외 지역의 페미니즘 동맹은 국가 단위가 아닌 국제주의의 강력한 모델이다.

광범한 탈주 행동들을 지칭하는 ‘이탈’(desertion)은 줄곧 전쟁에 저항하는 데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전술이었다. 이는 다양한 도피 행위를 가리키는데, 단순히 군인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전쟁 프로젝트에서 자신을 빼내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 러시아군, 미군의 전투원에게 이탈은 실제로는 극도로 어려울 수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정치적 행위이다. 처지는 매우 다르지만,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현재의 전쟁체제에서의 이탈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사고되어야 한다.

이 체제는 이미 언급했듯이 국가 경계와 일국적 통치 구조를 넘어선다. EU에서는 자국 정부의 국수주의적 입장에 반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무역 블록 자체의 초국가적 구조와 맞서야 하며, 유럽 전체조차도 이 전쟁들에서 주권적 행위자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군사적 의사결정 구조와 전투력은 국경을 넘어 확장되며, 국가 행위자뿐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까지 포함하는 광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구조에서 어떻게 이탈할 수 있을까? 개별적·지역적 몸짓만으로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국제적 회로 속에서 조직된 집단적 거부가 필요하다. 2003년 2월 15일,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벌어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대규모 시위는 전쟁 기계의 초국가적 형성을 정확히 짚어내며 새로운 국제주의적 반전 행동 주체의 가능성을 알렸다. 비록 공격을 막지는 못했지만 미래의 실천을 위한 선례를 만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도시 거리와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자 학살 반대 시위는 ‘글로벌 팔레스타인’의 형성을 예고하고 있다.

국제주의적 해방 정치에 장애물이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진영주의’이다. 이는 정치적 지형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이며 ‘우리의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세력(이란이나 이란의 동맹국)이면 찬양하거나 적어도 비판하기를 꺼린다. 이는 가자의 대중이 아사 직전이고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현재의 종합국면에서는 이해할 만한 충동이기는 하지만, 진영주의의 이원론적 논리는 궁극적으로 해방을 잠식하는 억압적 세력과의 동일시를 낳는다. 이란이나 그 동맹국을 (실제로든 수사적으로든) 지지하기보다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을 이슬람 공화국에 도전하는 ‘여성, 생명, 자유’ 운동 같은 투쟁들과 연결시켜야 한다. 요컨대 전쟁체제에 맞서는 투쟁은 현재의 전쟁들을 저지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광범한 사회적 변형을 이루어 내려고 해야 한다.

국제주의는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해방 기획들이 서로 함께 나란히 투쟁할 수단을 찾으면서 아래로부터 출현해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과정도 포함된다. 다양한 맥락에서 인식되고 성찰되고 다듬어질 수 있는, 해방의 언어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맥락들과 주체성들을 한데 모을 연속적인 번역 기계를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국제주의는 전지구적 동질성을 추구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다른 국지적·지역적 경험 및 구조들을 결합하려고 해야 한다. 전지구적 체제의 분열, 자본 축적의 전략적 공간들의 파열,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교직을 감안할 때 (이것들 모두 통치의 특권적 형태인 전쟁체제 출현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탈의 기획은 세상을 다시 만드는 국제주의적 전략을 필요로 한다.

♣

※ 글의 맨 뒤에 저자들은 브렛 닐슨(Brett Neilson)이 이 글의 공저자인 메차드라와 공동으로 집필한 『나머지 세계와 서구 ─ 다극적 세계에서의 자본과 권력 』(The Rest and the West: Capital and Power in a Multipolar Worl), 2024)에 몇몇 통찰을 빚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image_pdfimage_print

Share On
Share on Facebook
Share on Twitter
Share on Google+
Share on Whatsapp
 Previous Article 커먼즈에 기반을 둔 개발에 관한 프랑스의 대담한 실험

Related Posts

  • 제국, 20년 후

    2020년 6월 27일
  • COVID-19와 자본의 회로

    2020년 5월 5일
0 0 votes
Article Rating
Login
guest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카테고리

  • 경제 (98)
  • 과학·기술 (27)
  • 도시·지역 (46)
  • 문화·역사 (20)
  • 미분류 (6)
  • 법·거버넌스 (27)
  • 삶정치 (78)
  • 생태 (40)
  • 액티비즘 (45)
  • 예술 (13)
  • 웹·디지털 (47)
  • 철학·이론 (37)
  • 커먼즈 패러다임 · 커머닝 (109)
  • Popular Posts
  • Recent Posts
  •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1/4) 2020년 4월 17일
  • 커먼즈로서의 버닝맨(Burning Man as a Commons) 2014년 3월 15일
  • 폴 크래플(Paul Krafel)의 ‘표행’(飄行)과 ‘더 커먼즈’(The Commons) 01 2019년 4월 27일
  • 커먼즈의 구성을 위한 9개의 정치적 명제 2022년 7월 8일
  • 전지구적 전쟁체제와 새로운 국제주의 2026년 7월 11일
  • 커먼즈에 기반을 둔 개발에 관한 프랑스의 대담한 실험 2026년 5월 28일
  • 크리스 스메이지와 탈자본주의적 생태지역주의 2025년 12월 16일
  • 쎄꼬쎄쏠라와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커머닝하기 2025년 9월 11일

태그

Assembly Black Lives Matter commons David Bollier Michel Bauwens P2P 공통적인 것 기본소득 네그리 네그리와 하트 다중 데이빗 볼리어 도시 마이클 허드슨 맑스 메트로폴리스 미셸 바우엔스 민주주의 부동산 블록체인 비트코인 삶권력 삶정치 스피노자 신자유주의 오스트롬 자본 자본론 자유주의 전염병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주권 추출주의 커머닝 커먼즈 코비드19 탈중심화 트럼프 파트너 국가 팬데믹 페미니즘 푸코 플랫폼 협동조합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협동조합

최근 댓글

  • 네이선 슈나이더와 협동조합 운동의 미래의 인터네상에서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축하기 - 커먼즈 번역 네트워크
  • 지역화폐, 사회적 자본 및 기본소득에 관한 토론의 자본에서 커먼즈로 - 커먼즈 번역 네트워크
  • 홀로체인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의 홀로 체인 | '2026' 대박 코인 리스트 #5편 / 홀로코인 Hot / 피어 투 피어 기초에 충실한 블록체인~! / 투자왕 솔라나,아발란체,알고랜드,아이오텍스,하모니,헬륨,홀로코인,신시틱스 상위 138
  •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공생관계의 김영종
  • 가이 스탠딩의 『자본주의의 부패』의 바다 약탈을 막을 ‘블루커먼즈’ 어젠다 - 커먼즈 번역 네트워크

  • 405
  • 645
  • 2,046,114

RSS 커먼즈 번역 네트워크

  • 전지구적 전쟁체제와 새로운 국제주의
  • 커먼즈에 기반을 둔 개발에 관한 프랑스의 대담한 실험
  • 크리스 스메이지와 탈자본주의적 생태지역주의
  • 쎄꼬쎄쏠라와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커머닝하기
  • 조직화된 공유의 새로운 영역들
  • 미래의 자연 — 대중적 장르를 통해 커먼즈 바라보기
  • 전 세계 도시 커먼즈를 위한 아틀라스
  • 캐스케이디아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재개된 생물지역 행동주의
  • 건축에 상상력이 미치는 영향력
  • 건축의 일곱 등불

CONTACT US

commonstrans@gmail.com

태그

Assembly Black Lives Matter commons David Bollier Michel Bauwens P2P 공통적인 것 기본소득 네그리 네그리와 하트 다중 데이빗 볼리어 도시 마이클 허드슨 맑스 메트로폴리스 미셸 바우엔스 민주주의 부동산 블록체인 비트코인 삶권력 삶정치 스피노자 신자유주의 오스트롬 자본 자본론 자유주의 전염병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주권 추출주의 커머닝 커먼즈 코비드19 탈중심화 트럼프 파트너 국가 팬데믹 페미니즘 푸코 플랫폼 협동조합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협동조합

보관함

  • 2026년 7월 (1)
  • 2026년 5월 (1)
  • 2025년 12월 (1)
  • 2025년 9월 (1)
  • 2025년 6월 (1)
  • 2025년 3월 (1)
  • 2025년 1월 (1)
  • 2024년 11월 (1)
  • 2024년 10월 (1)
  • 2024년 9월 (1)
  • 2024년 8월 (1)
  • 2024년 6월 (1)
  • 2023년 12월 (1)
  • 2023년 11월 (1)
  • 2023년 10월 (1)
  • 2023년 6월 (2)
  • 2023년 2월 (1)
  • 2023년 1월 (1)
  • 2022년 12월 (2)
  • 2022년 8월 (1)
  • 2022년 7월 (3)
  • 2022년 6월 (1)
  • 2022년 4월 (2)
  • 2022년 3월 (1)
  • 2021년 12월 (1)
  • 2021년 11월 (1)
  • 2021년 10월 (1)
  • 2021년 9월 (2)
  • 2021년 8월 (3)
  • 2021년 6월 (1)
  • 2021년 2월 (1)
  • 2021년 1월 (3)
  • 2020년 12월 (3)
  • 2020년 11월 (3)
  • 2020년 10월 (1)
  • 2020년 9월 (2)
  • 2020년 8월 (2)
  • 2020년 7월 (1)
  • 2020년 6월 (1)
  • 2020년 5월 (2)
  • 2020년 4월 (5)
  • 2020년 3월 (5)
  • 2020년 2월 (4)
  • 2020년 1월 (2)
  • 2019년 12월 (4)
  • 2019년 11월 (3)
  • 2019년 9월 (3)
  • 2019년 8월 (2)
  • 2019년 7월 (4)
  • 2019년 6월 (4)
  • 2019년 5월 (5)
  • 2019년 4월 (4)
  • 2019년 3월 (1)
  • 2019년 2월 (2)
  • 2019년 1월 (1)
  • 2018년 11월 (4)
  • 2018년 10월 (59)
  • 2018년 9월 (42)
  • 2018년 8월 (31)
  • 2018년 5월 (5)
  • 2018년 3월 (15)
  • 2018년 1월 (1)
  • 2014년 3월 (13)
  • 2014년 2월 (2)
  • 0년  (1)

Random Posts

  • 커먼즈 이행과 P2P (4) 2018년 9월 4일
  • 탈성장운동 2014년 3월 16일
wpDisc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