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브라이언(Dick Bryan), 비르타넨(Akseli Virtanen)
- 원문 : “Whose stability?“ (2018.05.15)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웹진 <미디엄>에 2018년 5월 15일 자로 실린 글 Whose stability?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은 이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린 글 What is a crypto economy?의 후속편이다. 이 글에는 “Reframing stability in the crypto economy”(‘크립토경제에서 안정성의 틀을 다시 만들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저자는 브라이언(Dick Bryan)과 비르타넨(Akseli Virtanen)이다. 이 두 저자는 네그리와 하트가 Assembly에서 자본주의적 화폐에 대한 대안적 화폐인 ‘공통적인 것의 화폐’(a money of the common)라고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말한 것을 실제로 금융현실 속에서 탐구하는 경제학자들이다. 브라이언이 래퍼티(Michael Rafferty)와 같이 쓴 책 Capitalism with Derivatives (Palgrave Macmillan, 2006)와 논문 “Financial Derivatives and the Theory of Money,” Economy and Society, 36:1 (2007), “Fundamental value: a category in transformation”, Economy and Society, 42:1 (2013)도 자본주의의 고전적 전제의 변형을 탐구한다는 맥락에서 주목에 값한다. 블록체인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그것을 ‘통째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하는 반응들이 학자들에게서든 일반인들에게서든 종종 보인다.1)이런 반응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주류 언론이다. 양비론 혹은 양시론으로 나름대로 세련되게 무장한 듯하지만, 사실 이는 ‘통째로’ 반응, 들뢰즈·가따리의 말을 빌자면 그램분자적 반응의 무력한 변형태일 뿐이다. 음식의 경우 재료를 손질도 안 하고 통째로 먹는 법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말고는) 없고 먹은 음식이 통째로 우리의 몸에 (구성성분이나 에너지로) 흡수되는 법은 결코 없는데, 이는 음식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분자적 차원으로의 분해 혹은 들뢰즈·가따리의 말을 빌자면 ‘분자적으로 되기’의 지혜를 발명하는 것이 언제나 필요하며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체의 활력이 가진, 세상을 바꾸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온전한 ‘객체’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주기를 바란다.
암호통화들의 불안정한 가치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맞추어 코인 가치들을 안정화하는 메커니즘들이 매력을 더해간다.
안정성이라는 목표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신뢰와 평판이 생긴다. 미국의 달러가 안정성의 벤치마크로 간주되고 암호통화들은 군소 통화로 머물러 있는 한 암호통화의 휘발성이 주된 문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암호통화들이 벤치마크로 간주되고 미국 달러가 그에 비교해서 휘발성을 가진 것으로 서술되는 세계를 상상할 수도 있다. 아직은 저 멀리 놓여있는 세계이지만.
그런데 이런 형태의 안정성이 진정으로 우리의 목표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암호통화들이 단지 ‘화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호통화들은 부분적으로는 화폐이고 부분적으로는 자산이며 부분적으로는 정치적 조직화이다. 우리가 ‘안정성’을 고찰할 때에는 이런 차원들이 주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제안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안정성’을 화폐의 세 기본적 기능—① 교환수단 ② 가치의 저장 ③ 회계의 단위— 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교환수단
가치가 오래 유지되는 가치단위가 교환수단으로 바람직하다. 그런데 통화의 단위가 여럿일 경우 상이한 화폐들을 같은 척도로 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통일적 작동의 유지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짧은 시기인 1944-1977년 동안에만 일국 통화들의 가치의 상대적 안정이라는 목표가 추구되었던 것이다.(고정환율)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준비통화인 미국의 달러와 연방준비제도(the Federal Reserve)가 지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환율이 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화폐는 기술적(技術的) 메커니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다. 각 통화가 적용되는 영토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그 통화에 반영된다. 각 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다 다르며 같은 척도로 잴 수가 없다. 시장가격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틈(divisions)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통화들의 교환비율은 변동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경제학자들은 국제수지의 적자와 지불해야 할 잉여(과거)를 이 틈으로 보았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이자율(미래)이 그 틈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너무나도 복잡해서 이 틈과 균열을 고려하기 위해 급속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팔씨름이 일어나고 이는 투기적인 ‘노이즈’ 거래에 의해 추동되는 휘발성으로서 발현된다.
가치의 저장
스테이블코인의 옹호자들은 암호통화들이 그 휘발성으로 인해서 가치저장소로서 작동하지 못한다고 말하겠지만, 이는 좀 낡은 생각이다. 전통적으로 현금이 가장 안전한 가치저장소이다. 가장 유동적인 자산이며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미리 막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적 안정성을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그 시도에 대량의 재원을 지출할 수는 있다. 국가채권은 같은 이유로 장기적인 가치저장소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는데, 암호화폐의 관점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현금과 국가채권은 음의 수익률(negative returns)(디플레이션, 음의 이자율)로 인해서 그 안전성에 도전을 받고 있다.
금융시장은 안정성을 점점 더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1. 개별 자산의 독립적 가치의 안정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이 없으며 개별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자산들의 포트폴리오(총체)의 안정성을 본다. 후자의 경우 상이한 자산들의 휘발성은 각기 상이한 패턴을 따르며 서로 상쇄한다.
2. 자산 총체의 전반적 휘발성에 방비하게 위해서 파생상품 포지션을 취한다.
이 틀에서는 모두 합해서 특정 수준의 가치 안정성을 나타내는 여러 자산군들의 스펙트럼(a spectrum of asset classes)에서 암호통화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안정성을 이렇게 보는 관점에서는 암호자산들의 역할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진화 중이며 이 진화는 다음에 의존한다.
ㄱ) 암호자산이 증권시장, 부동산, 자산유동화증권(asset-backed securities)의 가치와는 상이하게 순환하는 휘발성을 가진다.
ㄴ) 암호자산이 투자은행, 헤지펀드, 펜션펀드(연금기금)의 포트폴리오들에 통합된다.
이렇게 되려면 암호자산 시장이 더 성숙되어야 한다. 아직은 이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도달하게 될 것이다.
회계 단위
이제 우리는 실질적 요점에 도달했다. 회계단위로서 암호통화는 미국 달러화와의 관계에서 안정적으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그 역할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화(그리고 법정불환지폐 일반)는 가치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생각들을 반영하고 시행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화폐는 기존의 소유체계를, 따라서 분배체계를 코드화한다. 이것이 화폐가 단지 기술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사회적 메커니즘인 가장 심층적인 이유이다. 회계단위로서의 법정불환지폐가 교환에서의 등가를 측정하고 그 과정에 (재화와 서비스를 실제로 창출하고 시장에 가져온) 사회적 관계의 미덕을 함입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윤과 손실, 소득과 지출을 참조하여 경제를 틀짓는 문화를 함입하며 이 벤치마크들을 정부들, 회사들, 가구들, 심지어는 개인들에게 적용한다. 우리가 이러한 관행들을 사회적으로 (손실을 낳는 활동을 지원하고, 인권이나 환경과 관련하여 이윤을 할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한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는 법정불환지폐에 내장된 개인주의, 사적 소유 그리고 이윤추구의 우선성을 어쩔 수는 없다.
이러한 사회적 생각들이 도전을 크게 받으면 법정불환지폐는 불안정해진다. 만일 우리가 부자와 빈자 사이의 대대적인 소득 재분배를 요구한다든가, 이윤과 임금 사이의 비율 전환을 요구한다든가, 비임금 활동에 대한 ‘합리적인’ 보수를 요구한다든가, 생산결정을 추동할 중요한 환경적· 사회적 기준을 요구한다든가 하면 국가는 ‘감당할 수 없다’, ‘재정적자를 낳을 것이다’, ‘투자와 노동의 인센티브를 망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정부가 기반을 둔 전제 위에서는 대충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핵심은 얼마나 재정을 지출하게 되느냐가 아니라 사회적 지각 변동이다. 2007-2008 전지구적 금융위기의 맥락에서 금융기관들을 위한 구제금융은 감당할 수 없다거나 인플레이션을 낳을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구질서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암호통화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이 통화들을 사용하여 전과는 다른 사회적·경제적 과제들을 표현할 수 있고 사물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 전과는 다른 인센티브들을 실행하고 그 효과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는 설계 문제가 된다. 이것이 전과는 다른 사회·경제적 과제들을 구축하기 위한, 그리고 ‘이윤’이나 ‘효율성’ 같은 개념들에 구현된, 사회적 기여를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측정하는 규칙들을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암호통화의 ‘안정성’은 미국 달러화와는 무관하다. 여기서 안정성은 암호통화가 ㄱ) 통화의 존재근거가 되는 활동과 결과가 제대로 수행되고 이루어지는 신뢰할만한 가치의 척도로서 그리고 ㄴ) 그 활동과 결과를 사회적으로 타당화하는 것(이는 사람들이 통화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의해 확증된다)으로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암호통화가 이런 식으로 틀이 지어지면 법정불환지폐와의 그 어떤 상관관계도 우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암호통화에 대한 가치평가가 단지 이 두 기준을 반영하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투기적’ 거래가 암호통화 가격이 움직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위의 논의가 함축하는 바
암호통화의 ‘안정성’은 3개의 상이한 목적과 연관된 3개의 상이한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화폐 기능 |
암호화폐 안정성의 기준 |
법정불환지폐와의 차이는? |
교환수단 |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 |
없음 |
가치의 저장 |
자산 포트폴리오 내에서의 리스크/수익(return) 계산. 안정성의 관건은 이 계산의 확증 가능성이다. |
유사하지만 다름. 포트폴리오 내에서 (상이한 리스크/수익 특성을 가진) 상이한 자산군. |
회계의 단위 |
포스트자본주의적 생산의 가치 |
다르면서 대립적임 |
이 차이에 비추어본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의 옹호자들은 암호화폐를 법정불환화폐와의 직접적 유사성으로 틀짓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교환수단 기능에 특권을 부여하고 가치 저장에서의 안정성을 교환에서의 안정성의 직접적 귀결로 본다.
따라서 그들의 목표가 중앙은행의 역할(화폐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 준비금을 사고파는 것)에 의존하는, 혹은 이윤에 대한 대가로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짊어지는 민간 인수회사들[증권회사들]에 의존하는 안정성 메커니즘들을 (재)발명하는 것이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틀짓기를 개념적으로 비판했는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은 바 있다. 1990년대의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헤지펀드들이 미국 달러화에 연동된 환율을 감독하는 일국 중앙은행들과 맞서는 일이 있었다. 중앙은행들은 그 엄청난 준비금에도 불구하고 방어할 수 없는 환율을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졌다. 중앙은행들은 특정의 환율을 방어함으로써 보장된 재정거래기회(arbitrage opportunities)를 헤지펀드들에게 제공했다.2)[정리자] 재정거래(arbitrage)란 어떤 시장에서 증권을 구매과 동시에 가격이 더 높은 다른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헤지펀드들은 중앙은행이 가진 주권적 힘이 없으면서도 신용 라인들과 파생시장에서의 단기 포지션들을 사용하여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변동시세제를 택하도록 강요할 수단을 획득했다.
이는 미래에도 적용될 교훈이다. 암호화폐가 미국 달러화와 동등한 지위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암호 스테이블코인 투매가 시작되면, 스테이블코인 회사의 준비금이 아시아의 일국 중앙은행들이 가진 준비금보다 더 뛰어난 수행능력을 가지리라고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시장에서 고정된 환율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매도의 표적이 되면 붕괴하게 되어있다.
문제를 더 단순하게 볼 수도 있다. 만일 목적이 법정불환통화와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암호화폐를 가지는 것이라면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블록체인의 능력을 통합하여 자신들의 고유한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게 어떤가.
만일 이와 달리 국가로부터 분리된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핵심은 ‘분리의 목적이 무엇인가?’이다. 만일 단지 교환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민간 암호화폐들은 항상 국가 암호화폐들보다 덜 안정적이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생각에는 있다.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경제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크립토경제를 구축하는 이유는 분명, 금융이 이른바 실물 경제의 독립적인 척도로서의 화폐라는 범주를 넘어선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있다. 금융혁신에서는 많은 자산들이 화폐의 유동성을 획득하며 화폐와 다른 자산 사이의 구분이 붕괴된다.(이에 대해서는 「크립토경제란 무엇인가?」 참조」) 그 결과 객관적인 측정단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가려졌던 화폐의 사회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3)[정리자] 네그리와 하트는 화폐의 ‘사회성’을 화폐가 “사회적 관계를 제도화하는” 능력에서 본다. 암호화폐의 핵심은 그 사회성을 탐구하고 재가동하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경제가 어떨지에 대한 안들을, 경제를 다르게 하는 방법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틀짓기가 ‘안정성’을 무시한다는 말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넘어서고자 하는 체제에 준거하여 안정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파악된 크립토경제의 수행에 준거하여 정의하는 데 있다. ♣
[부록]
아래는 네그리와 하트의 Assembly 11장 1절에 나온 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표의 제목은 “The Social Relations of Capitalist Money”(‘자본주의적 화폐의 사회적 관계’)이다.
|
1. 시초 축적 |
2. 매뉴팩처 및 대규모 산업 |
3. 사회적 생산 |
a. 생산의 시간성 |
과제에 따른 노동시간과 자연의 리듬 |
시계의 시간과 노동일의 분할 |
논스톱 전지구적 체계의 24/7 시간 |
b. 가치 형태 |
절대적 잉여가치 |
상대적 잉여가치 |
삶정치적 잉여가치 |
c. 추출 방식 |
정복과 강탈 |
산업적 착취와 식민지 추출 |
공통적인 것의 전유로서의 추출 |
d. 재산의 형태 |
부동 재산 |
유동 재산 |
재생산 가능한 재산 |
e. 노동력의 구성 |
장인노동과 일반 노동의 조련(dressage) |
매뉴팩처링과 산업노동의 조직화 |
사회적·인지적 노동 |
f. 실현의 시간성 |
동시간적 가치실현 |
포디즘적 신용체제의 시간성 |
미래로 투사된 금융적 실현 |
g. 계급투쟁의 형태 |
민중투쟁 혹은 자크리 |
노동계급의 투쟁과 파업 |
삶정치적 사회투쟁 및 사회 파업 |
h. 적대적 정치조직화의 형태 |
길드와 상호부조단체 |
노동조합과 당 |
사회적 연대 |
i. 화폐 창출의 원리 |
국립은행의 화폐 창출 |
국립은행과 기업의 화폐 창출 |
금융적 화폐 창출 |
j. 거버넌스 형태 |
식민주의 왕정과 주권 |
제국주의적 과두체제와 훈육 |
제국과 삶정치적 통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