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매슈 슬레이터(Matthew Slater)
- 원문 : “From Platform Cooperativism to Protocol Cooperativism?“
(2017.7.5)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옮긴이 : 정백수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에서 프로토콜 협동조합주의로?
협동조합주의가 효과있게 작동하고 있는가?
18세기에 ‘정치경제’가 주제가 된 이래 노동 대 자본이라는 지배적인 정치적 이분법이 구축되었다. 맑스는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가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로부터 뺏어내야 할 본질적 정치적 힘이라고 말했다. 많은 행동주의와 정치 이론이 이 노선에서 계속되고 있다. 알페로위츠(Gar Alperowitz)의 저작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then must we do?)의 핵심은 노동자 소유의 협동조합들 및 이와 유사한 단체들의 재구축이다. 150년의 역사가 이 단체들의 효율성을 입증한다.
운동은 흥성과 쇠퇴를 반복했지만, 그 대립물을 (아직은) 극복하지 못했다. 자본가들은 거의 무제한의 신용을 만들어 낼 힘이 있으며 사회운동은 아무리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항상 수세에 있는 것 같다. 나로서는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단체들이 과연 경제를 지배하게 될지 의문이다. 한편으로 경제 정의가 많은 곳에서 많은 형태로 스스로를 천명하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둡고 강력한 세력이 이를 억압하고 있다. 협동조합들의 경쟁력을 앗아가기 위해 법을 바꾸고 있으며, 때로 신자유주의 흐름을 거스르는 나라들이 CIA가 이끄는 체제 변화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재산을 통제하는 권력이 법·미디어·안보세력·군부·은행들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 시대는 기계와 공장을 필요로 했으며, 따라서 자본과 재산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투자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생각은 디지털 시대까지 이어졌는데, 이 시대에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이라면 다수의 숙련된 사람들을 모아서 과도한 양의 불필요한 도구들―이들 가운데 일부만 살아남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팔리게 될 것이다―을 (위한 시장들을) 창출하는 데 들일 엄청난 양의 돈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자본을 중심으로 부를 창출하는 방식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소가 없다.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디지털 ‘생산수단’인 플랫폼이 거기에 참여하는 가치 창출자들에 의해 소유되고 다스려지며 이들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핵심으로 한다. 접근법이자 전술인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19세기의 초보적 협동조합주의가 디지털 시대와 사이버공간으로 곧바로 확대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늘 그래왔듯이) 주변부에서 작동하지 광범한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주리라고 예측할 수가 없다.
왜 프로토콜인가?
내 생각에는 다른 전략이 유망할 듯하다. 재산이나 소유 혹은 통제에 초점을 두지 말고 관계들, 프로토콜들, 그리고 협동에 초점을 두자. 살펴볼 선례들이 많지만, 이런 생각이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공간에 적용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내가 ‘프로토콜’로 의미하는 것은 언어, 관례, 혹은 표준이다. 이런 것들의 사용은 제한되거나 금지되거나 화폐화될 수 없다. 이는 단어, 제스처, 사회적 코드가 제한되거나 금지되거나 화폐화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TCP/UDP, http, HTML과 같은 프로토콜들로 이루어지며, 이것들은 매우 평등한 참여를 허용하는 기반시설을 낳는다. 이것이 필연은 아니었다. 역사가 다른 경로를 거쳤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개발팀이 웹을 발명하고 그 결과 모든 페이지가 비주얼 베이직에 의해 향상되는 문서가 될 수 있었다. MS 오피스가 웹페이지를 작성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고 라이선스를 얻는 데 5천 달러를 들여도 파이어폭스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저 오픈 프로토콜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이 경로를 피해 갔다. 내 생각에 바로 이것이 초기의 웹이 사회경제적인 활동영역의 평등화에 관해서 그토록 많은 낙관주의를 불어넣은 이유이다. 발로우(John Perry Barlow)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혹은 태생에 따른 특권이나 편견 없이 모두가 들어올 수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라도 어디서나 자신의 믿음을 그것이 아무리 특이하더라도 침묵과 순종을 강제당할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과 관련된 당신의 법적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윤리, 계몽된 자기이익 그리고 공동의 행복으로부터 우리의 거버넌스가 출현하리라고 믿는다. (“A cyberspace Independence Declaration”)
인터넷의 기본은 고안된 대로 자유로운 상태로 남아있다. 우리는 가령 전자메일을 보내거나 웹페이지를 보는 데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 모든 테크놀로지들처럼 인터넷도 새로운 겹들이 구축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각 겹의 내적 논리는 전적으로 다른 겹들과는 무관하다. 마치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는 안정된 원자 모델이 그것이 기반을 둔 불확실한 양자(quantum) 차원의 실재와 무관하듯이 말이다. 자본가 세력은 자신들의 논리와 구조를 사이버공간에 어떻게 복제할지의 문제를 서서히 해결했다. 그들은 오픈 프로토콜 위에 지불 장벽들(pay walls), 화폐화된 서비스들, 종획된 공간들을 지었다. 규칙들은 수준마다 다르다. 2017년에 이르면 작든 크든 플랫폼들이 사적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데이터를 소유하고 경제적 영토를 통제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 된 듯하다. 가장 큰 플랫폼들이 가장 많은 사용자들과 가장 많은 돈과 가장 많은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내 생각에는) 마인드닷컴 같은 플랫폼은 페이스북과 일대일로 맞서서 이기기가 힘들다.
플랫폼을 넘어서 프로토콜로
나는 다음의 주장을 이어받아 더 발전시키고 싶다.
플랫폼 협동조합이나 플랫폼 회사 모델은 진정으로 분산된 네트워크로 향하는 잠재력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모델이 아니다. 이 모델에는 여전히 중심적 플랫폼 오퍼레이터가 중앙부에 존재하면서 조정, 질 보장,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는 신뢰를 제공한다. 그러나 플랫폼을 넘어서 프로토콜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 즉 공통적으로 동의되는 작동(오퍼레이팅) 방식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규칙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네트워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Mikko Dufva)
‘승차공유’(Ride-sharing)는 공유경제의 상징이며 플랫폼 협동조합들에 의해서 선택된 혈(穴)자리이고 현재 우버의 영지(領地)이다. 이는 자연적 독점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기반시설이 추가적으로 복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여러 신분들, 앱들, 사용자 인터페이스들, 가격구조들 등을 원하지 않는다. 사업가들은, 이런 독점들은 바람직하며 경쟁은 패배자들에게나 해당한다고 주장한 페이팰(PayPal)의 창조자 씰(Peter Thiel)을 칭찬하고 있다. 그는 독점사업들이 어떻게 소유되어야 하는가, 혹은 다스려져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투자전략으로 보아 그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직접 소유하려고 할 것이라고 추측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화폐에의 접근 능력의 직접적 결과로 얻어지는 우버의 준(準)독점은 심각한 경쟁 없이 마켓을 최대한 쥐어짤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상업적 이익을 가져온다. 우버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그랬을 경우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버가 망한다면 시장은 아마도 많은 양립할 수 없는 조각들로 쪼개질 것이며, 이는 차를 가진 사람들에게나 차를 타고 싶은 사람들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승차공유 서비스는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이윤을 재활용하고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보수를 줌으로써 우버와 경쟁하려는 시도처럼 들린다. 이는 비록 우버가 경쟁사들을 불법적으로 방해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설득력 있는 사업계획이 아니다. 우버는 경쟁사들이 질식할 때까지 더 싼 값에 서비스를 제공할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차공유를 위한 오픈 프로토콜은 게임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누구라도 네트워크에 가입하여 여행할 의도나 운전사 역할을 할 의지를 고지할 수 있다. 단순한 알고리즘이 이들을 연결할 것이며 여행이 끝나면 서로 현금, 비트코인, 집에서 만든 음료 등 무엇으로라도 서로 보답할 수 있다. 친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생계를 버는 것 사이의 구분선은 매우 흐릿할 것이다. 회사 측을 대표하여 사용료를 받거나 운전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지시할 중간상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픈 프로토콜은 자유 시장을 창출한다. 가상과도 같은 달러화로 원하는 어떤 나라든 그 경제를 쓸어버릴 수 있는 월가 식의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이 아니라 공급자들과 고객들이 중간상인들, 규제자들, 혹은 임대업자들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 시장이다. 이는 세금을 걷고 보호비를 뜯는 데 적합하기보다는 모두에게 경제에 접근할 기회를 부여하는 데 더 적합하며, 별로 사용되지 않는 수송 기반시설을 사용한다는 관점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 글의 제목은 협동적 기반시설의 토대로서 프로토콜이 플랫폼을 대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 정확하게는, 오픈 프로토콜이 플랫폼들의 역할을 감소시키고 작동 환경을 다음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사용자들에게 돌아가는 주된 혜택은 프로토콜 안에 내장되며 따라서 사용자들에게 시장이 독점사업에 의해 지배되는 데서 오는 혜택은 없다.
· 공급자들과 고객들이 중간 상인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인터넷의 초기 약속들 가운데 하나였다.)
· 사용자들은 ‘벽으로 두른 정원’(walled garden) 안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다는 데서 이익을 얻는다.
· 데이터 소유의 문제가 법에서도 아니고 제3자에 의해서도 아니라 바로 프로토콜 안에서 다루어지며, 이것이 비용을 낮춘다.
· 플랫폼 소유자는 공급자들과 고객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더 이상 책임지지 않으며, 이것이 감시와 수수료의 필요를 감소시킨다.
· 나라의 법은 오직 교환자들의 행위에만 적용되며 따라서 훨씬 더 단순하다.
변화된 경제
요컨대 플랫폼의 대부분의 기능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그 대신이 새로운 종류의 조직들이 들어서서 새로운 종류의 기능을 수행할 여지가 생긴다. 새로운 종류의 조직들은 그들이 프로토콜에 추가할 수 있는 모든 가치를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저 사용자들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데 협동할 수 있다. 멀리 가지 말고 승차공유의 구체적 사례를 보자.
· 회사들은 최선의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유료 앱들을 개발할 수 있다.
· 오래된 차들을 모는 운전자들은 항상적인 공급과 서로 가격 낮추기 경쟁을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조직을 구성할 수 있다.
· 운전자들은 상호 보험 그리고/혹은 상호 금융을 조직할 수 있다.
· 같은 차에 목적지가 다른 여러 승객을 태우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추가된 수익의 일부를 취하는 시스템을 프로토콜 위에 구축할 수 있다.
· 견인 서비스, 우편 서비스, 장거리 여행 및 정기통근자 승차공유와 함께 사설 앰뷸런스 서비스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운전자들 그리고/혹은 승객들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이들이 일정한 사회적 신망을 가졌음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만일 프로토콜이 이것을 다룰 수 없다면 제3자의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프로토콜은 널리 이용되면 우리의 수송 생태계를 알아볼 수 없게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정규 운전직들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며 ‘히치하이킹 2.0’ 접근법이 더 선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자유 시장이 정규 운전직들과 비고용 운전자들 사이의 차이를 지우고 비용과 수입을 평준화할 것이며, 이는 아마도 (적어도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장악하기 전까지는!) 더 평등한 사회로 이르게 할 것이다.
블록체인의 역할
기본적으로 개방된 참여를 허용하는 프로토콜인 블록체인이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 있다. 블록체인은 어떤 한 단체에 의해 소유되지 않고 플랫폼들의 중대한 기능들 가운데 일부를 수행한다. 그 기능들은 다음과 같다.
· 데이터 저장
· 계약 실행
· 지불 관리
아케이드 시티(Arcade City)에 관한 한 글이 이 점을 분명하게 한다.
결국 아케이드 시티는 우리의 기반시설 위에서 실행되는 앱들과 사업들의 전(全) 생테계로써 전지구적 물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이서리엄(Ethereum) 스마트 계약들로 구성된 프로토콜이 될 것이다. 전자메일과의 관계에서 SMTP가 하는 역할을 분산된 물류에서 아케이드 시티가 하게 될 것이다.
아케이드 시티가 장차 등장할 플랫폼 협동조합이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소유되고 팔리는 물건이라는 의미에서의 플랫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케이드 시티의 홍보 사이트가 구성원들에 의해 소유되고 작동된다고 주장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말이다.
인적 요인
어떤 법적 관할권 내에 있는 협동조합과 같은 법적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일이 가져오는 이익 및 과제는 보편적인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다스리고 파수하는 일이 가져오는 이익 및 과제와 판이하다. 아쉽게도 아케이드 시티는 현재 이사회의 내분 이후 분열되었으며 이는 그 구성원들이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을 심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테크놀로지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필요한 것은 협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 저자 슬레이터는 이 글의 주제를 더 탐구하여 벤델 교수(Professor Jem Bendell)와 함께 새 글 “Thwarting an Uber Future for Complementary Currencies: Open Protocols for a Credit Commons”를 썼다. 이 글은 여기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