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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의 비가시성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The Invisibility of the Commons”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피터 라인보의 저서 『섯거라, 도둑아!』(Stop, Thief!, 2014)의 15장 「커먼즈의 비가시성」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에서 라인보는 세 개의 사례를 소개한다. 하나는 1930년대의 것이고, 또 하나는 1790년대의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1940년대의 것이다.

첫째 사례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에쎄이 「마라케시」(“Marrakech”, 1939)이다. (마라케시는 모로코 중앙부의 도시이다.) 갈색 피부를 가진 사람, ‘천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 그리고 여성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 글의 주요한 논지이다. 가령 장작단을 지고 앞을 지나가는 나이든 여성들의 대열을 보면 오웰 자신의 눈에는 장작단만 지나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생산물만을 보는 제국주의자의 눈이라고 라인보가 정리해준다. (이렇게 정리해주기 이전에 라인보는 이 글에서 오웰이 인종주의와 비가시성을 주제로 다룬다고 말해놓은 바 있고, 여기에 여성혐오도 추가해야 한다고 덧붙인 바 있다.) 그렇다면 오웰은 제국주의 국가에 속하고 백인에 속하며 남성에 속한 자신의 ‘보지 못하는’ 눈을 스스로 고발한 셈이니 라인보는 오웰의 솔직함을 칭찬하고 말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는다. 그에게 빠져있는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이 장작은 어디서 오는가? 오웰은 묻지 않는다. 무슨 권리로, 어떤 관습에 의해서 장작을 해오는가? 어떤 투쟁들이 이 관행을 보존했는가?

이어서 라인보는 마그나 카르타의 7장에 나오는 ‘상부한 여성의 에스토버스’(왕이 상부한 여성들에게 부여한, 나무에 대한 권리)((‘에스토버스’에 대해서는 http://commonstrans.net/?p=478 참조.))를 언급하고 이는 수 세기에 걸친 투쟁으로 지켜낸 관습임을 지적한다. 오웰은 아마도 비가시성이 가장 높을, 갈색 피부에 육체노동을 하며 나이든 노파를 만난 에피소드를 말한다.

어느 날 키가 120센티가 넘지 않을 여성이 짐을 잔뜩 지고 내 앞을 기다시피해서 지나갔다. 나는 그녀를 세우고는 5수짜리 동전(1 파딩을 조금 넘는다)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녀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새된 울부짖음으로 대답했다. 고마움의 표현도 들어있었지만 주로 놀라움이었다. 내 생각에 그녀의 관점에서는 내가 그녀의 눈길을 끎으로써 거의 자연법칙을 위반하는 것 같았으리라. 그녀는 노파로서의, 다시 말해서 짐을 나르는 짐승으로서의 그녀의 지위를 받아들였다.

라인보는 오웰이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음을 지적한다. ‘고마움’도 들어있었다는 말이 얼마나 제국주의적인가도 지적한다. 라인보가 보기에 오웰은 인종주의, 여성혐오를 자신의 서술에 투사하지만, 커머너들과 대화할 기회를 갖지는 않는다. 나무는 어디서 해오냐고, 그 나무로 어떤 불을 피우냐고, 그 불이 어떤 어린아이나 나이든 부모를 따뜻하게 하냐고 묻지 않는다. 왜 오웰은 그녀와 대화하지 않은 것일까?라고 라인보는 묻는다.

라인보는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것이 “제국주의 체제에서 써발턴 역할을 하는 다수에게 특징적인 태도, 자신은 원래 기본적으로 짐승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민중과 대화하기를 거부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마지막으로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눈을 가지고 볼 때에는(when we see with, not through, the eye) 거짓을 믿게 마련이다.”

둘째 사례는 워즈워스의 자서전적 장시 『서곡』(Prelude) 9권의 한 대목이다. (이 시는 시인의 정신이 혁명과 반혁명의 와중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 대목은 1792년 워즈워스가 프랑스의 보쀠(Michel de Beaupuy)라는 공화주의자를 방문했을 때의 일을 제시한다. 보쀠는 당시 블롸(Blois) 지역의 정치논의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 논의의 핵심은 제한된 제헌군주제에서 급진적인 공화주의 및 왕정의 몰락으로의 이행과 관련된 것이었다. (보쀠는 공화주의를 지지했으며 나중에 혁명을 방어하는 전투에서 죽어 영웅이 된다.)

라인보는 이 대목을 직접 인용한다. 여기 원문 그대로 소개하지만 옮기지는 않고 내용만 설명하도록 하겠다.

And when we chanced
One day to meet a hunger-bitten girl,
Who crept along fitting her languid self
Unto a heifer’s motion—by a cord
Tied to her arm, and picking thus from the lane
Its sustenance, while the girl with her two hands
Was busy knitting in a heartless mood
Of solitude—and at the sight my friend
In agitation said, ‘Tis against that
Which we are fighting! I with him believed
Devoutly that a spirit was abroad
Which could not be withstood; that poverty,
At least like this, would in a little time
Be found no more; that we should see the earth
Unthwarted in her wish to recompense
The industrious and the lowly child of toil
(All institutes for ever blotted out
That legalized exclusion, empty pomp
Abolished, sensual state and cruel power,
Whether by edict of the one or few);
And finally, as sum and crown of all,
Should see the people having a strong hand
In making their own laws. whence better days
To all mankind.

[단어 및 어구 설명]

    • chance + to부정사 : 우연히 ~하다 (= happen + to부정사)
    • hunger-bitten : bitten by hunger
    • languid : (움직임이) 힘없고 느릿느릿한
    • fitting her languid self Unto a heifer’s motion : fit A (un)to B
    • heifer : 어린 암소
    • its sustenance : ‘자기(어린 암소)가 먹을 것’
    • heartless : 낙담한, 풀이 죽은
    • in a little time : ‘시간이 조금 지나면’
    • withstand A : A의 끌림, 영향력, 설득력 등을 뿌리치다 [이 의미로는 주로 부정문으로 쓰인다.]
    • sensual : 세속적인, 물질적인
    • edict : 칙령, 포고령
    • as sum and crown of all, : 여기서 ‘sum’은 ‘최종결과’라는 의미고 ‘crown’은 어떤 과정의 정점을 의미한다.
    • whence : 그 원인으로 → 그 결과(as a result)

 

워즈워스를 포함한 젊은이들은 너도밤나무 숲을 말을 타고 지나던 중 어떤 굶주린 소녀를 만난다. 이 소녀는, 소녀의 팔에 줄로 묶인 상태에서 길에서 먹을 것을 집어먹고 있는 어린 암소의 몸짓에 맞추어 느릿느릿 지나가면서,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바쁘게 뜨개질을 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격동한 보쀠는 ‘바로 저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싸우는 것이야’(‘Tis against that/ Which we are fighting!)라고 말하며, 이에 워즈워스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어떤 [혁명의] 기운이 퍼져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런 가난은 이제 곧 볼 수 없게 될 것이며 대지가 노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모든 억압적인 제도가 폐지될 것으로 믿으며 심지어 민중이 자신들의 법을 만드는 데 강한 힘을 발휘하여 인류에게 더 나은 날들이 오리라고 믿는다.

이렇듯 암소지기 소녀의 굶은 모습에서 시작한 워즈워스는 가난의 폐지와 민중의 자치정부의 달성에 대한 이상주의적 희망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오웰의 경우처럼 이 젊은 혁명가들도 그 소녀에게 말을 걸지 않음을 라인보는 지적한다. 동정심에 들떠서 거창한 결론들에 이를 뿐인 것이다. 라인보는 이렇게 쓴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 모두 땅에 대한 관습적인 권리를 공격했으며 이는 커머너들이라는 하나의 계급의 자원을 다른 계급, 즉 사유자들이 대대적으로 훔쳤음을 나타낸다. 워즈워스는 그 소녀를 가난하다고만 생각하지 커머너로 보지는 않는다. 그는 의존상태를 보는 것이다. 그 소녀와 대화를 했더라면 워즈워스는 그녀의 자립성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왜 그러지 않았을까?

라인보가 지적하는 것은 부르주아 혁명이 왕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긍정적 측면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토지와 커머닝 관습의 대대적인 강탈이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가진다는 점이다. 당시에 퍼진 ‘정신’에는 바로 이런 맹점이 들어있다. 그래서 라인보는 묻는다. 보쀠가 워즈워스한테 ‘바로 저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싸우는 것이야’라고 말했을 때 ‘저런 일’은 무엇인가? 굶주림? 기계와 경쟁하기 위해서 맹렬히 뜨개질하는 것? 토지와 오래된 관계를 맺고 있는 커머너? 할스베리(Halsbury)의 『영국의 법』(Laws of England)에 따르면 “커머너가 공유지에서 가지고 있는 몫은 법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가축의 입으로 풀을 먹는 것이다.” 워즈워스는 바로 이 점을 탐구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제임스(C.L.R. James)의 사례이다. 그의 『변증법에 관한 단상』(Notes on Dialectics)은 1948년 디트로이트의 동지들에게 큰 의미를 가졌었다. 『단상』은 레닌과 트로츠끼가 시작한 것, 즉 헤겔의 변증법(특히 대립물의 통일)의 노동운동에의 적용을 완성하고자 한 저작이다. 노동운동은 역사의 매 단계에서 자신이 극복할 대립물을 만난다는 것이 그 핵심 취지이다. 『단상』은 유럽, 미국 등지에서 2차 대전 후에 발전한 맑스주의 혁명가들의 소그룹들에게 큰 중요성을 가졌으며, 1955년-68년 시기에 제3세계 해방운동과 제1세계 노동운동의 반란을 환영하는 저서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맹점이 있다. 1981년에 『단상』을 공부한 라이보가 보기에 이 책에서 해방적인 것은 164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의 노동운동의 개념의 통일성이었다. 제임스는 이 통일성을 부르주아 실증주의의 단계론적 범주들(봉건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에 대립시켜 파악했다. 이러한 강력한 사고에도 불구하고 커먼즈는 제임스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네바다의 레노에 주거지를 확립하기 위해 가 있을 때(주거지 확립의 목적은 이혼을 위한 것이었다) 레노 근처의 목장에서 지냈다. 이 목장은 원주민 부족에게 속해 있었으며 상업화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잡역부로 일했는데, 그의 동료 노동자들은 선원들, 카우보이들, 필리핀인들, 멕시코인들, 중국인들, 중서부에서 온 유럽 출신의 백인들이었다. 그는 토착민들보다는 이들에게 끌렸다. 그가 본 중에 가장 잘 생긴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달리 이곳의 토착민들은 땅딸막했다. 그는 이 모든 사람들과 많이 사귀지는 않았다. 1948년 8월에서 11월까지 게링(Guerin)의 『프랑스 대혁명』을 번역했고 『단상』을 집필했다. 목장은 피라미드 호수(Pyramid Lake) 옆에 있었다.

그가 집필하고 있을 때 그의 주변에서는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전쟁, 파이우트족(the Paiutes)이 자신들의 공유지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게릴라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네바 다대학교의 사회역사가인 둬킨(Denis Dworkin)은 이렇게 썼다.

맑스주의자이자 대영제국의 백성으로서 제임스가 파이우트족을 그 자신이 속한 것과 같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라는 세계사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확실히 타당했다. 그러나 목장이 원주민보호구역에 있었다는 점을 그가 인정한다는 점은 제쳐놓고, 제임스가 토지분쟁은 말할 것도 없고 그곳의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가 한 조각도 없다.

이어서 라인보는 파이우트족의 삶을 그린 책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곳의 토지가 종획된 역사(보호구역은 그 결과이다)를 이런저런 책들을 들며 말해준다. 그러는 가운데 일자리를 찾는 백인노동자와 먹을 것을 찾는 원주민의 차이를 짚어주기도 한다.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사장에게서만 임금을 발견하지만, 파이우트족은 보존되는 한에서만 자원을 발견한다.”

제임스가 네바다를 떠난 후 1년 뒤에 뉴욕시민 작가인 리블링(A.J. Liebling)이 같은 목적으로 피라미드 호수 목장에 오는데, 음식 및 스포츠 담당 작가인 리블링은 제임스와 달리 파이우트족의 분쟁에 완전히 빠져들어서 여러 요구들의 합법성과 파이우트족과 관련된 제반 사항들에 관심을 갖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그는 파이우트족과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는 원주민 전쟁”에 대한 일련의 글들을 써서 1955년에 출판한다.

파이우트족의 주된 적(敵)인 맥캐런(Pat McCarran) 상원의원은 조 매카시(Joe McCarthy)의 측근이었으며 1952년의 맥캐런법―코뮤니스트들, 체제전복자들, 동반자들[코뮤니즘에 공감하는 비코뮤니스트들]]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 법―의 후원자였다.

1985년에 미국대법원은 자신들이 천년 동안 살아온 토지에 대한 파이우트족의 모든 권리주장을 부인하는 판결을 내린다.

제임스는 1950년의 국가안보법(Internal Security Act)으로 엘리스 아일랜드에 투옥되었다. 그의 항소는 그가 코뮤니스트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라인보는 제임스는 코뮤니스트가 아니라고 정중하게 바로잡는다. 그가 맑스주의 혁명가이기는 하지만, 코뮤니스트는 아니라는 말이다. 양자의 차이는 그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모르고 판사도 몰랐다고 하면서.

맥캐런 상원의원은 원주민 커먼즈를 파괴하고자 했으며 코뮤니스트들이 미국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다. 제임스는 자신이 공산당의 당원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코뮤니스트가 아니라고 불만을 표할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 자본주의의 반대자였으며 노동자혁명의 옹호자였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파이우트족의 삶의 방식에 내재한 커머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라인보는 이 세 사례를 한데 모아 정리한다. 그는 다른 면에서는 날카로운 이 세 사람의 눈을 방해한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라인보는,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진정한 변증법인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만 제시할 수 있다고 한다. [라인보 자신은 그런 말을 안 했지만, 정리자가 보기에는 여기서 헤겔의 변증법이 바흐친의 ‘대화적 상상력’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그러면 또한 물어야 할 것은 그들이 못 본 커먼즈를 우리는 어떻게 볼 수 있는가이다. 많은 연구가 숲의 나무를 땔감으로 취할 권리를 발굴해냈고 이것이 우리를 이른바 커머닝의 한 형태로서의 ‘나무 절도’에 민감하게 만든다. 토착민 커먼즈는 이제 국제법의 주제가 되었다.

[땔감 채취, 먹을 것 채취, 땅]을 커머닝으로 보는 것이 무슨 이득을 가져오는가? 강탈의 보편화(universality of expropriation)에서 그 답이 나오며, 이 범죄들을 바로잡는 방법은, 상실되고 박탈된 것에 대한 배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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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자 논평]

라인보는 여기서 글을 맺지만, 우리는 “강탈의 보편화에서 그 답이 나”온다는 말을 (그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숙고해야 할 듯하다. 우리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적 관계는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는 커먼즈의 강탈(사유화)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이른바 자본의 시초축적 단계나 노동의 자본에의 ‘형식적 포섭’의 시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포섭’의 시기에도, 즉 지금도 계속된다. 자본은 끊임없이 공통적인 것을 (예전에는 주로 이윤의 형태로, 얼만 전부터는 주로 자산소득의 형태로) 사유화하여 자신을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나 익숙한 현실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세상의 법칙인 양 당연히 여기며 더 나아가 선망하고 욕망한다.

자본주의적 관계가 그 자체에 공통적인 것의 사유화를 포함한다는 점을 정밀하게 분석한 사람은 역시 맑스이다. 맑스는 『자본론』 3권 15장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세 개의 주요한 사실”을 제시한다. 그 첫째와 둘째는 다음과 같다.

(1) 소수인의 수중에 생산수단이 집중된다. 이를 통하여 생산수단은 직접적 노동자의 소유로서 나타나지 않게 되며, 그 반대로 사회적 생산능력으로 전환된다. 비록 생산수단은 처음에는 자본가의 사유 재산이긴 하지만 말이다. 자본가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수탁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수탁의 모든 과실을 혼자 취득한다.
(2) 노동 자체가 사회적 노동으로 조직된다. 협력, 분업, 노동과 자연과학의 결합을 통하여.
 이 두 가지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사적 소유와 사적 노동 모두를―비록 대립적인 형태로이긴 하지만―지양한다.

(1)은 비록 자본가의 사유재산이 되었기는 하지만 생산수단이 사회적 생산능력으로 전환된 측면을 지칭하며, (2)는 노동이 비록 자본가의 처분에 맡겨진 것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노동으로 조직된 것을 지칭한다. “자본가는 부르주아 사회의 수탁자인데도 불구하고 이 수탁의 모든 과실을 혼자 취득한다”―이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산이 사회적이므로 그 과실은 잠재적으로는(virtually) 사회 전체의 것, 즉 공통적인 것인데 실제적으로는(actually) 자본가가 (이윤의 형태로) 사유화한다는 말이다. (‘과실’은 생산된 총 가치에서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과 투자된 자본의 재생산 비용은 뺀 것이다.) “사적 소유와 사적 노동 모두를”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과실은 잠재적으로는 자본가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의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것이다. 이 잠재적인 측면에 바로 커먼즈가 숨어 있다. 그런데 자본가는 언제나, 혹은 상황이 안 좋아지면 과실(이윤)을 증가시키기 위해 임금을 삭감하여 그 일부를 자신의 이윤으로 취하려고 하고, 노동자들은 당연히 노조를 만드는 등의 방식으로 방어하려고 한다. 고정된 양의 과실을 놓고 이윤과 임금이 자신이 몫을 더 크게 하려는 싸움이 벌어진다. 여기서 커먼즈는 보이지 않는다.  자본가의 사유재산 증식 욕심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침탈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약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방어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커먼즈가 숨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자본이 판을 그렇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공장을 떠나 생산과정 바깥에서 공통적인 것을 착취하는 금융자본(월가가 대표하는 유형의 자본)이 자본의 주된 세력이 되었을 때 그 변증법적 대립의 상대를 잃은 노동자는 더욱더 힘이 약화된다. 노동자의 힘의 약화는 그 자체로 공통적인 것의 약화이다. 인간의 생산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부의 핵심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공통적인 것을 침탈하고 훼손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는 지금 인류를 강타하고 있는 팬데믹이 (특히 자본주의의 발달 정도가 높은 만큼이나 공통적인 것의 침탈 정도가 높은 미국의 경우에)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될 기후위기는 이를 더욱더 높은 정도로 보여줄 것이다. 이제는 삶의 번성을 위해서는 물론이요 다가오는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도 커먼즈(공통적인 것)의 가시화와 번성이 몹시 필요하다. [정백수]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 저자  : Peter Linebaugh, Sasha Liley
  • 원문 :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 (https://kpfa.org/episode/against-the-grain-april-8-2020/)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Pacifica radio>의 프로그램 ‘Against the Grain’에서 2020년 4월 8일에 있었던 싸샤 릴리(Sasha Liley)와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의 인터뷰 내용을 (약속한 대로^^)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상황에서 라인보가 30년 전인 1989년에 쓴 팸플릿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인터뷰 당사자들에 의해 읽기 좋게 편집된 텍스트는 정리자가 알기에 현재로서 없으며, 정리자가 직접 팟캐스트를 듣고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했다. 내용 정리이지만, 잘 읽힐 수 있도록 인터뷰의 형식과 어투는 유지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내용을 이미 정리해서 옮겼으니 서로 교차해서 참조할 수 있다.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싸샤 릴리(Sasha Liley)
인간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바이러스들과 기생체들이 인간을 괴롭혀왔습니다. 계급사회의 출현 이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고통에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기생체들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역사가 피터 라인보(Perter Linebaugh)는 HIV 에이즈라는 유행병이 도는 와중에 이 역사를 추적한 바 있습니다. 라인보는 『마그나카르타 선언』(The Magna Carta Manifesto), 『메이데이의 완결되지 않은, 진실하고 진정하며 놀라운 역사』(The Incomplete, True, Authentic, and Wonderful History of May Day) 등의 저자입니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는 『뜨겁게 불타는 붉고 둥근 지구』(Red Round Globe Hot Burning)가 있습니다. 라인보, 당신은 1989년에 <ACT UP>(the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민중의 힘을 촉발하기 위한 에이즈연합)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는데요,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라고 이름을 정한 팸플릿을 쓰게 된 맥락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
저는 보스턴에서 <ACT UP>이 한창 투쟁을 하는 가운데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저는 역병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에 대한 우리의 기억 자체가 우리의 힘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세계사에 일어났던 10개의 역병들을 간단히 알아보는 일이, [COVID-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해온 싸움의 와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으며, 그로써 이 질병을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동성애혐오증적 방식으로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데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성되는 공포가 불안정과 공포의 조건에서 번성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연결고리입니다.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역병이 도는 때는 민중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때이지만 동시에 사회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대 그리스, 이집트로 가서 이 점에 대해 고찰합니다. 역사가의 눈으로 이러한 사회 질서의 전복 가능성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민중이 겪는 공포, 혼란 그리고 가난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요.

라인보
우선적으로 말해야 할 핵심은 전염병, 역병, 팬데믹이 치명적이라는 점, 즉 인간 개인들, 가족들, 공동체들을 파괴하며 때로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역병들은 사회적 삶의 재생산이라는 기획 일체와 필수적인 연관을 가집니다. 그래서 전염병들은 적어도 과거에는 역사적인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염병들에 대한 여러 대응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령 대략 2000년 전인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인간의 질병 유전자풀이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최초로 혼합된 것이지요. 아마도 이는 대륙간 통상의 한 측면일 겁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종교들이 (일신론적 종교들입니다) 형성되었습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기축시대’(axial age)를 말할 때 그는 이 종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Achsenzeit(Axial Age)’라는 말은 1949년 출간된 야스퍼스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에 처음 등장하며, 기원전 800년에서 300년 사이에 페르시아, 인도, 중국,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철학에서 병렬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등장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당시에는 도시국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도 형성되고 있었지요. 이때에는 사람들이 전염병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들이 이 질병들을 발생시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박테리아도 알지 못했고 바이러스도 알지 못했으며 세포생물학도 없었습니다. 수천 년을 지나 바로 우리 시대에 들어와서야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이지요.

도시 전체가 지워져버릴 수도 있는 그러한 위기에서 그에 대한 여러 계급적 반응이 있었습니다. 저를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로 이끈 허스턴(Zola Neale Hurston)은 파라오와 맞선, 지팡이를 든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허스턴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역병·기근·기아를 마음대로 부리는 파라오를 물리치는 모세의 힘, 그의 대항마법(counter-magic)입니다. 이 대항마법은, 흑인 민속지식에 대한 허스턴의 지식에 따르면, 모세가 파라오의 마구간지기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 마구간지기는 이 마법을 말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모세에게 공짜로 준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멘투(Mentu)가 해주는 ‘도마뱀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에게 전염병들을 아래로부터 보기를 권하기 위해, 파라오나 벼락을 던져대는 야훼를 제시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로서 보기를 권하기 위해 ‘lizard talk’라는 어구를 사용했습니다. [‘lizard talk’는 허스턴의 소설에서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①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크게는 세상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작게는 인간의 여러 행동들에 대한 논평). ② 멘투가 도마뱀이 해주듯이 해주는 이야기(이야기의 내용은 ①과 같다). ③ 멘투가 해준, 도마뱀(및 기타 동물들)도 이러저러한 말을 한다는 이야기. 나중에 (멘투는 이미 죽고 없는 때이다) 모세는 ‘기억들의 보관자’(keeper of memories)인 ‘수염난 도마뱀’을 찾아간다. (이때 모세는 예전의 멘투처럼 도마뱀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모세는 우연히 만난 늙은 도마뱀에게 ‘수염난 도마뱀’이 시나이 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시나이 산을 찾아가는데 아마도 거기서 그가 ‘수염난 도마맴’에게 들을 ‘liard-talk’는 기독교의 정사에 나오는 야훼에게서 받은 십계명과 대조될 터이다. 전자는 아래로부터의(from below) 지식을 나타내고 후자는 위로부터의(from above) 지식을 나타낸다.]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 마구간지기의 이름인 ‘멘투’를 다시 언급하게 되니 반갑군요. 제 의도는 지상의 힘, 우리 인간의 힘, 우리의 공통적인 힘이 지배자들의 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종종 우리도 잘 모르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말입니다. 이는 팬데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물론 팬데믹에 대한 지식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여러 모습의 멘투들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경험에서도 오지요. 어떻든 저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겪는 다중과 지배계급을 대조시키는 것, 힘의 두 형태를 대조시키는 것. 그것이 역사적인 역병들의 경우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파라오를 다룬 다음, 투키디데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의 역병들을 다루고, 로마 시대의 역병들을 다루며 물론 중세의 중앙 유럽을 강타한 큰 역병들을 다룹니다. 이런 식으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라인보=도마뱀=멘투]

제가 <ACT UP>에 그런 메시지를 전한 것은 <ACT UP>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델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ACT UP>의 현장 활동가들은 발견·조사를 하도록 촉구할 수 있었으며, 그 자신들이 깊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로서 치료를 낳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질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이 ‘공공보건의 커먼즈’(the commons of public health)의 주된 원리입니다.

릴리
우리가 사회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함께 모여야 하는데, 무심코 행한 사회적 상호작용조차도 바이러스를 퍼지게 할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팬데믹의 시기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순입니다.

라인보
네, 정말 큰 모순입니다. 에이즈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것, 그리고 이전의 전염병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도시봉쇄(lock-down)는 아니지만―집에 있으면서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공동체적 관계들이 정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간호,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기, 죽은 사람들을 묻기와 같은 일들은 아무리 끔찍한 인간의 위기상황에서도 남아있습니다. 자애를 베푸는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 죽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은 대중모임의 금지나 기타 형태의 공동체적 활동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애의 엄청난 재천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상업활동은 종종 가장 최소로, 혹은 가장 나중에 정지되지요.

릴리
정말 그렇습니다. 또한 팬데믹의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고대 역사를 되돌아보며 말했듯이 상이한 이념들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점입니다. 당신이 말했던 아래로부터의 지식과 같은 것도 있고 반대로 우리를 일종의 숙명론이나 현실수용적 태도로 몰고 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뜻하는 것은 가령 당신이 언급한, 옛날의 종교들이 팬데믹 시기에 한 복합적인 역할들 같은 것입니다.

라인보
네, 그러죠. 계급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문제를 두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억압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에도 적용되고 전염병들에도 적용됩니다. 제 생각에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위로부터 사고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뉴스에서 들은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지는 멘투를 다시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팸플릿은 종교의 사회학이 아니며 분명 포괄적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ACT UP>의 활동에 고취되고 역병의 역사를 다룬 맥닐(William McNeill)의 책[Plagues and Peoples, 1976]에 촉발되어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아시겠지만, 최근 『네이션』(The Nation)지에서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우리가 읽을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각자 집에 있는 동안 책을 읽으라는 거지요. 학자인 저도 책을 읽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도시를 도망칠 여유가 있던 부유한 층을 위해서 그리고 그 부유한 층에 대해서 쓴 작품입니다. 『데카메론』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든 각본작가들의 책꽂이의 사전 옆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100개의 플롯들을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위해 다시 다듬기 위해서죠. 이 이야기들은 선페트스(bubonic plague)가 돌고 있던 1340년대에 동포 인간들을 놔두고 피렌체를 도망친 사람들이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단으로서 한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오락으로 의도된 형태의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에요. 물론 이 이야기들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당연히 대단한 이야기들이죠.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유행병의 문학은 도피의 문학이라고 썼습니다. 문학창작가들이 지배계급으로부터 보수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배계급의 대응은 그것이 존재할 경우에는 언제나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바로 이런 동학을 거론했습니다. 바로 지금 사람들이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현상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라인보
물론이죠, 저도 넷플릭스(Netflix) 앞에 딱 붙어 있습니다만, 이는 저에게 특별히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공공보건 전문가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생산적입니다. 저는 가령 핫스팟이 되고 있는 여기 미시건주의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계속 알려줄 수 있는 공공보건 간호사에게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알싸이드 박사(Dr. Abdullah Al Said)가 COVID-19와 연관된 더 심층적인 하부구조 차원의 광범한 유행병에 대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물 공급의 거부, 삶에서의 안전의 거부, 주택의 거부가 바로 이 하부구조 차원의 유행병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담수저장소(fresh water reserve)가 있는 미시건 주인데 디트로이트에서는 물공급이 끊겼고 플린트에서는 물에 납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디트로이트 시 당국은 2014년부터 수도료를 내지 못하는 가구들에 수돗물의 공급을 끊었고 시민들은 이에 맞서 투쟁을 조직해왔다. 한 미시건 지역 뉴스잡지의 2020년 3월 26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9년에만 23,000 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차단되었다. 시당국은 COVID-19 국면에서도 처음에는 이 물공급차단(water shutoffs) 정책을 유지하려 했는데, 손을 씻는 것이 COVID-19의 확산을 막는데 필수적이라는 여러 전문가들의 확정된 견해로 인해서 정책을 바꾸어 3월 9일에 수돗물 서비스를 재개했다. 월 25달러를 내면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 수도료 지불은 팬데믹 국면 이후로 연기된다. 디트로이트 시장은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공급중지가 재개된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 플린트 시는 수원을 디트로이트의 물(휴런Huron호)에서 플린트강물로 바꾸었는데, 물에 부식방지제를 넣지 못하여 오래된 관의 납이 침출되어 공급되는 물로 섞여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중금속 신경독을 발생시켰고 10만 명 이상이 주민들이 납에 노출되었다. 이와 관련된 본 블로그의 글로 http://commonstrans.net/?p=859 참조.]

이는 그저 악행이거나 사고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물에 대한 요구를 짓밟은 의도적 범죄입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 신선한 식품을 먹지 못하는 것, 지붕으로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것―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COVID-19의 가속적인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알싸이드 박사는 (그는 디트로이트보건국의 국장을 지낸 바 있으며 존경받는 전염병학자입니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며, 저도 과거의 역병들을 훑어보면서 각 역병이 그 당시에 인간이 창출한 사회·경제적 구조들과 특수한 연관을 가진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도시의 거주지이든 상업자본주의든 심지어는 미국과 같은 거대한 부르주아 공화국이든 말이죠.

아시다시피 미국은 인종주의 및 강도질[무엇보다 백인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한 것을 가리킨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 곳입니다. 인종주의와 강도질은 흑인들이 당시 수도인 필라델피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1793년 황열병이 돌던 때에 생겨나서 매우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때 흑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고 아픈 사람들을 간호했으며 시체들을 매장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면역력을 얻거나 황열병에서 살아남아서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로 악마화되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은 1950년대에 오면 매카시즘의 ‘빨갱이’로 대체된다.] 이때 아이티에서는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들 가운데 하나가 한창이었죠.

릴리
막 언급하신 시기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8세기 말에 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황열병의 발발이 그 때의 정치를 아래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어떻게 형성했나요?

라인보
먼저 위로부터 일어난 일을 보면.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도시에서 도망쳤고요, 해밀턴(Alexander Hamilton)도 도망갔습니다. 대부분이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수도를 떠났어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군사 공화국을 보존하여 오하이오강 계곡(the Ohio river valley)을 포위하고 애팔래치아산맥을 넘고 포타와토미족(Potawatomi)[미시시피강 상부와 오대호 서부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쇼니족(Shawnee)[오하이오 계곡 지역에 살았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및 기타 그곳에 사는 많은 부족들로부터 땅을 훔치는 데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황열병은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흑인들을 악마화했던 것입니다.

이때는 세계사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두 일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 하나는 황열병이 강타하기 몇 달 전인 1793년 2월,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act)[특정 주에서 다른 주 또는 영토로 도망간 노예의 반환을 규정한 법]이 조지 워싱턴의 서명으로 통과된 일입니다. 이로써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 미국 전체의 노예들에 대한 백인의 지배가 확대되었습니다. 둘째는, 1793년 봄에 일어난 일인데요, 조면기(the cotton gin)의 발명입니다.[발명가 휘트니Eli Whitney가 발명했으며 1794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이 기술이 면화체제의 남부로의 확대, 인도의 면화생산의 파괴, 이집트와 오토만 제국의 면화생산의 파괴를 가능하게 하고 영국에서의 공장체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제 아래로부터 일어난 일을 봅시다. 우리 모두 1793년 황열병 발발 시 멘투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 한때 노예였던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와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입니다. 앨런은 아프리카감리교감독교회(AME Church,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만들었고 이 교회는 그 이후 일종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한 형태로서 존속했습니다. [존스와 앨런은 감리교에서 설교를 하도록 승인받은 흑인 목사 가운데 속했다. 존스와 앨런은 Free African Society (FAS)를 창립했으나, 1794년 이후 일의 방향이 달라서 각기 다른 길을 갔다. 둘은 평생 친구로서, 협력자로서 남아있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가 가진 인종주의의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교회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배격당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분명 황열병의 결과로 아래로부터 일어난 다른 움직임들도 있을 것입니다.

릴리
남·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은 유럽인들이 남·북아메리카에 가져온 전염병이 끼친 엄청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점에 대해 말해주시겠습니까? 이른바 신세계의 발견과 남·북아메리카를 재형성하는 데서 질병과 정복이 교차하는 모습에 대해서요?

라인보
14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유행병이 멕시코를 유린했고 17개가 페루를 강타했습니다. 대부분 천연두였습니다. 정복된 지 10년 만에 멕시코의 인구는 25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200만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천연두 및 다른 두 전염병이 저지른 집단학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배운 것은,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광산에 가두고 과도하게 노동을 시킨 것이 이러한 거대한 말살을 거들었다는 점, 그래서 천연두의 확산과 착취의 형태들은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매더(Cotton Mather)는 뉴잉글랜드에서 1616-1617년에 돈 전염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했습니다. 집단학살에 전염병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죠. 이런 일은 한 세기 후인 1760년대에 앰허스트(Amherst) 장군에 의해서도 벌어졌는데, 그는 지금은 펜실베이니아인 곳의 원주민들을 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로 잔뜩 감염시킨 자선 담요들을 원주민들 사이에 배포했습니다.

이렇듯 이제 전염병은 전쟁의 도구, 지배계급의 도구, 집단학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이런 부분을 보면 끔찍하고 극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계급파괴에 다시 한 번 굴복하지 않으려면 이것을 꼭 붙잡아 기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계급파괴’라고 할 때 이는, 온갖 형태의 지배계급이 그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피억압자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이 이른바 유럽과 아메리카의 최초의 조우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릴리
그것은 또한, 당신이 말한, 황열병에 의한 죽음과 노예상태와 광산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죽음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사회가 일종의 환경결정론[전염병은 자연적 환경에 의한 것이지 인재가 아니라는 생각]의 관점에서 전염병들을 받아들이도록 형성되어온 것으로 고대부터의 역사를 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적 결정들)의 역할을, 사태의 사회적 맥락을 잊을 수 있고, 이른바 자연적 재해의 결과를 이해하는 데서 사회·정치적 맥락이 결정적임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라인보
물론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점은 거시기생체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시기생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사회·경제적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릴리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당신이 상기시켜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유행병들이 지배층의 정치와 지배층의 대응들을 형성해온 역사를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즉 당신이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라고 부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라인보
그것은 우리의 공통적 삶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인간의 생존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보건커먼즈에의 접근, 공기·물·주택의 커먼즈(공통재)에의 접근을 유지하는 능력이지요. 이는 지배계급이 준 선물이 아닙니다. 지구에서의 우리의 삶을 위해 모두가 향유해온 커먼즈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지배체제 아래에서, 최근에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 세기 동안, 더 최근에는 우리의 생애 동안 강탈된 것입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전적으로 필수적입니다. 자본주의가 물, 주택, 신선한 공기를 뺏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긴 공급사슬로부터 생기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 공급사슬에서는 동력사슬톱에 굴복하고 자본주의적 농업에 굴복하는 숲으로부터 새로운 식품이 요구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태지대들이 파괴되면서 가장 복잡한 생명체들의 일부가 파괴됩니다. 이와 함께 예전의 숙주를 잃은 미시기생체들이 생기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저는 지금 최근에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에 글을 실은 네 명의 과학자들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by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이들은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은 또한 우리, 즉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질병 방어능력이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공립학교들, 공립병원들, 공공주택, 물에 대한 권리, 공기에 대한 권리가 갑자기, 혹은 단계적으로, 혹은 부채라는 교활한 형태로 강탈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미시기생체들에 취약해진 것입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난주만 해도 공기가 좀 신선해진 틈을 타서 트럼프가 자동차에 대한, 내연기관에 대한 오염통제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공기가, 우리의 폐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틈타서 몰래 해치운 것이죠. 이는 정말로 사악하고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파괴를 심화시킬 뿐입니다. 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이 네 명의 저자들, 이 전염병학자들 썼듯이 삼림과 그 생태의 파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폐만큼이나 삼림이라는 지구의 폐도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아마존의 파괴와 볼쏘나로(Bolsonaro)[브라질의 현 대통령]의 무지한 권력은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릴리
이 팬데믹이 전지구적 위기가 되면서 일시적으로든 어떻든 다른 전지구적 위기, 즉 기후위기를 우리의 관심에서 좀 멀어지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나 재택근무 등의 조치들이 자동차의 사용을 크게 막고 탄소방출 수준을 낮추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신은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불리는 것의 시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오신 것으로 압니다만.

라인보
현 국면은 아이러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정치가들이 많은 수의 홈리스들에 눈물을 흘리는 반면 많은 호텔들이 손님이 없어서 연방정부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공기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고 폐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으며 탄소방출과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현 국면은 기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집으로부터 쫓아내는 일의 중지를 원하며 부채의 탕감을 원합니다. 우리는 단일건강보험자체제(single payer health system)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주자들을 억류 상태에서 풀어주기를 원합니다. 이미 일부 수감자들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학자금 대출금의 탕감을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전반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맥락에서의 일입니다. 바삐 서두르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하늘에 비행기가 없고 거리에 차가 없다고 썼습니다. 물론 이는 비상조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태가 새로운 세계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선한 공기의 세계, 더 차분한 세계, 바삐 서두르는 조급함이 없는 세계, 모든 시간이 사업의 시간이 되는 일이 없는 세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수감이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합니다. 이런 가능성들을 우리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능성들은 바로 우리의 창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릴리
팬데믹을 겪으면서야 이런 상태에 도달한 것이 좀 놀랍습니다. 세상의 종말,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란 쉽다고 종종 (필시 너무 많이) 말해졌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자본주의는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상상력의 위기를 느끼면서) 우리는 공포와 불안의 와중에서 (이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 일상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고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떤 일이 사용가치들을 창출하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돌봄노동, 쓰레기처리, 식량을 재배하고 공급하기―이런 일들은 중요한 반면 다른 일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상위 10%로의 부의 대대적인 집중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력적인 가능성의 순간입니다. 몇 달 만에, 불안과 불평등의 상황에서 이런 순간이 온 것이죠.

라인보
물론입니다. 완전히 동의합니다. 아시다시피, 메이데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달 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는 1886년 시카고에서 전염병이 했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는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의 때였지요. 참, 이제는 옛날 일이네요. 요즘 누가 8시간 이상 노동을 하나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갑자기 0시간 노동을 강제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0시간 노동을 하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앞에서 저는 독서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우리는 정말로 속도를 늦추고 더 생각하기 시작할 수, 더 잘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나 연방정부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들을 돌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돌보는 일을 하려고 하며 저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이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노동을 중단하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총기판매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바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항상적인 공포 속에서 사는 자들의 삶의 한 편린일 뿐입니다. 다른 가능성들이 있음을 보는 것이 이토록 쉬운 때에 공포 속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릴리
물론 지금과 같은 순간에 우리가 맞서 투쟁해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는 전염병을 인종화하는 경향, 질병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트럼프가 이런 경향에 부채질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인보
18세기 말에 개발된 이데올로기적 억압의 체제인 백인우월주의의 중심 개념인 인종 개념의 큰 부분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상이한 기생체들, 질병들과 연결되면 이것이 더 나아가 인종 개념을 구성할 요소들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데, 저의 저작이나 다른 이들의 저작이 보여준 바지만, 이런 과정들 가운데 ‘타자의 악마화’를 포함한 다수가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집단에 대하여 일어났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항상 냄새와 연관되고 때(dirt)와 연관되고 불결함과 연관되었습니다. 이렇듯 지배계급의 차별적 순결 코드가 모든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바로 이로부터 인종과 백인우월주의라는 변종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제 이것이 그 추한 고개를 다시 쳐들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제가 알기로···[‘없는 듯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다 생략한 것으로 추정됨]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매우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지식을 얻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에서 멘투들과 민중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신선한 물을 요구하는 엄청난 투쟁을 보세요. 디트로이트는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올리언스도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시들은 흑인 문명의 수도들이며, 이로부터 모두가 혜택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간접적인 것 말고는 지배계급[백인들]의 반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흑인 친구들과 동지들은 매우 옳게도 다소 걱정하고 조심하며 지냅니다.

릴리
당신이 언급한, 그리고 책에서 많이 다룬 메이데이에 대한 물음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몇 주 후면 메이데이가 오는데요, 우리가 억압받지 않는 세상,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관련하여 메이데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라인보
메이데이는 위대한 재생산의 순간, 지구의 재생산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위의 생명체들에서, 식물들이나 동물들에서 봅니다. 메이데이는 5월이고 봄이요 삶의 부활입니다. 또한 근대 세계의 역사에서, 끝없는 노동과 고역에 맞서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의 역사에서 놀이와 투쟁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의 메이데이는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군사주의나 전체주의의 행사로서 퍼진 것이 아니라 집단성의 행사로서 퍼졌습니다. 올해의 메이데이는 우리에게 특별한 도전이 될 듯합니다. 확신컨대, 이 도전으로부터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메이데이를 축하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것입니다. 되풀이하건대, 메이데이는 지구상의 기쁨의 순간이요 재생산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는 출산이 고통을 동반하듯이 투쟁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거시기생체들에 맞서는 것입니다.((메이데이에 대한 라인보의 상세한 설명을 보려면 도서출판 갈무리의 신간 『메이데이』(2020)를 참조하기 바란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3/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7-8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성철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7-8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기
 5. The Columbian Exchange 보기
 6. “The Death Carts Did More…” 보기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황열병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인종주의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갓 성체가 된, 피를 빤 적 없는 모기들이 세심히 준비된 흡혈 케이지 속에서 10분 동안 지원자들의 팔뚝에 방사된” “이집트-숲모기 연구”((이집트-숲모기는 황열병의 매개체가 되는 모기로, 학명은 Aedes aegypti이다.)) 캘리포니아 교정국, 「조사와 연구」(1971)

1790년대가 “혁명”의 십년이었던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이 시기에 백인 자산가 계급(the White Men of Means)이 미국 헌법의 5, 6조를 제정하기 위해 자신의 점포의 셔터를 내리고 스스로를 가둔 “필라델피아의 기적”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기적”은 1787년 5월 25일에서 9월 17일까지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필라델피아 대회의’를 가리킨다. 애초 이 회의는 연합규약의 개정만을 예정했었지만, 제임스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의 의도는 처음부터 현존하는 정부를 ‘수정’하는 게 아닌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 결과 이 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 회의는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라고도 불린다.)) 또 프랑스 전역에 빨강, 하양, 파랑의 삼색으로 된 깃발들이 휘날렸으며 ,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퍼졌고,  바스티유 감옥 습격 등이 있었다.((삼색기는 프랑스 국기를 가리킨다. 현재와 같은 삼색의 프랑스 국기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은 1794년이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가로, 원래 1792년 스트라스부르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이라는 군인이자 아마추어 음악가가 출정을 앞두고 작사, 작곡하였고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러 쳐들어오는 외국군에 대항하여 자원병들이 파리에 집합할 때 마르세유에서 막 도착한 자원병들이 파리 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눈 밝은 이가 이 십년의 일로 기억할 것은 서인도제도의 거대한 전쟁, 세 유럽 제국들을 격퇴하고 플랜테이션을 폐지했으며 콜럼버스의 첫 기항지에 독립국 아이티를 세운 노예들일 것이다.

18세기 카리브해 지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럽인들의 뒤섞임은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의 대륙 간 유전자 혼합에 비견될만하다. 다만 지중해 지역에서는 수백 년이 걸려 일어난 일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단 몇 년 만에 일어나서 1790년대에 인구학적·혁명적 정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정치 뿐 아니라 전염병학의 관점에서 아이티는 고대 그리스 및 로마와 유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주된 것은 아프리카인들의 경험의 중심성이었다. 18세기 후반의 팬데믹들에서는 노예 경험이 최전선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고대의 유행병과 마찬가지로 이 팬데믹들 또한 유럽인들에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고대와 달리 이번의 유럽인들의 해석은 그 뿌리부터 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이와 대립하여 범아프리카주의가, 해방 전쟁의 경험이 그리고 흑인성(négritude)의 철학이 발전되었다.

차이는 더 있다. 1790년대는 자신의 투키디데스를 갖지 못했다. ((투키디데스와 고대 그리스의 전염병에 대한 설명은 이 글의 2절을 참조)) 대신에 성직자 토마스 맬서스 (Thomas Malthus)가 있었는데, 그는 그의 정원의 질서 정연한 관점에서 신앙심 깊은, 온통 수학적 집단학살로 가득한 글을 썼다. [『인구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맬서스는 주로 자신의 정원에서 집필을 했다고 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인구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인구의 재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이 그의 “추론”의 전제란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한다. 증명 끝. [저자가 앞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수학적 집단학살로 가득한 글”이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 역병, 기근은 “자연 법칙”이었고, 그는 이것들을 매질하는 농장주의 필요에 맞춰 그리고 1일 18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공장주에 맞춰 평가했다.

그의 관점은 ① 전세계적이었고 ② 야훼를 대자연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이다. 친절하게 죽이니 말이다. 이는 여전히 공식적인 언론을 지배하는 관점이다. 그리하여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에이즈 팬데믹을 다루면서 단 한 번의 신문 칼럼에서 “자연”이란 말을 13번이나 언급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처럼 사회적 지배층이 자연의 ‘법칙’을 사회 전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선언하는 것은 자연이 사회 아래에 포섭된 영역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소처럼 먹으세요.” 쟝 윌리엄 팝(Jean William Pape) 박사는 포르토프랭스[아이티 공화국의 수도]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팝 박사는 아이티의 공중보건 연구소인 GHESKIO의 창립자이자 소장이다. 특히 그는 HIV 바이러스와 관련된 활동으로 공중보건 전문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소모성 질환[체력을 소모시켜 몸을 전체적으로 쇠약하게 만드는 질병]을 앓는 환자들이 에이즈 치료실을 떠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했다. 이 처방을 이해하는 데 혹은 그러한 치료법에 함축된 정치적 암시를 이해하는 데 현대 과학의 그 눈부신 발전이 필요하진 않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새로운 수도였고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 헌법의 제정에서 1787년 ‘필라델피아 대회의’가 결정적인 계기였고 그 후 1790년부터 10년 간 필라델피아는 미 연방의 수도였다.] 그것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노예적 기반을 가면으로 가리려 해도 그것은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1793년 7월 서인도제도의 노예 반란에서 피난 한 백인, 흑인, 물라토 난민들을 실은 상퀼로트호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나라”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도망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상퀼로트(Sans-Culottes)는 프랑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중 계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명칭은 민중들이 귀족처럼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culotte)가 아니라 작업복인 긴 바지(pantalon)를 입은 것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겁을 먹었는데 그 배는 또한 새로운 모기 즉 황열병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를 날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황열병은 “볼람 열병(the fever of Bollam)”, “바베이도스 열병(the fever of Barbadoe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프리카의 혹은 카리브해의 혁명의 결과인 것처럼 보였다. 1793년 여름과 가을 내내 필라델피아 인구의 많은 수가 죽었다. 시계는 멈췄고 가난과 기아가 횡행했다. 아이들은 유기되었다. 연방정부의 신사들은 도망쳤다. ((1793년 필라델피아의 황열병 유행은 소설과 영화로 그려질 만큼 미국 역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해 8월에서 11월 사이의 공식적인 사망자 집계는 4044명이나 이는 무덤 숫자를 센 것에 기초하므로 실제 사망자수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필라델피아의 인구수가 약 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이다. 또 유행병이 시작되고 11월까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약 2만 명이 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이 유행병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은 병의 원인을 공기로 돌렸다. 공기 중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화약을 폭발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예방책으로 추천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필라델피아의 부르주아지들은 카리브해의 풀려난 노예들을 탓했고 이 유행병의 종식을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서 필라델피아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에 대한 인종 공격을 방치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의 노동계급은 복수의 기회를 잡았다. 절반의 하인들이 자신의 주인을 버렸다. 수감자들은 석방되었다. 간호사들은 강도로 고발당했다. 다른 이들은 일당 3달러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우리가 자주 보았듯이 이 유행병 속에서도 그것으로 가장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시기생체를 처리할 기회로 삼았다. 그것은 가능성의 시기였다.

지도자들은 바로 이 고통받는 기층의 흑인들에서 출현했다.  노예로 태어난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은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자유 아프리카 협회(the Free African Society)를 세웠고 후에 흑인들을 위한 첫 번째 감리교 교회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노예인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는 미 본토에 처음으로 흑인들을 위한 성공회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함께 이 유행병에 대처하여 치료와 위로를 위한 활동을 조직했다. 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 앉았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들은 열병을 앓는 사람들의 이마를 닦았다. 그들은 영구차를 구했다. 그들은 관을 제작했다. 그들은 땅을 팠다. 부유한 이들이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서 도망치는 가운데 그들은 아무 보상 없이 인류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그 유행병은 집단적인 자기인식(self-recognition)과 집단적인 역사적 정체성의 구축을 위한 사건이 되었다. ((저자가 다음을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인지 확실친 않지만, 생화학 용어로서 ‘자기 인식’은 개체의 면역 계통이 자기의 화학 물질·세포·조직과 외계로부터의 침입물을 식별하게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1. 산업화의 고딕식 가장가면들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콜레라나 장티푸스의 대해 우리는 대조군(백신을 맞지 않은 인구)의 25% 혹은 30%에서 질병을 낳을 생물체들을 사용할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 리처드 호닉(Richard Hornick) 박사. 메릴랜드 교정국, 「콜레라 및 장피푸스 연구」 (1971)

유행병 문학은 도피의 문학인데 왜냐하면 문필가들은 지배계급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 지배계급의 유행병에 대한 반응이란 언제라도 가능할 경우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그 예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애드가 앨런 포(1809~1849)는 미국의 작가·시인·편집자·문학평론가이다. 특히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들은 음산하고 괴이한 분위기로 인해 소위 고딕물(Gothic fiction)로 분류된다. 라인보가 이 장의 제목을 ‘산업화의 고딕식 가장가면들’이라고 하면서 포에 대해 다루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1842년에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썼다.((한국어본이 『붉은 죽음의 가면』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다.)) 이 해는 중요한 해로서 우리는 조금 후에 이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이렇다. 프로스페로(Prospero) 왕자는 고딕풍 수도원의 높다란 담벼락 안으로 천 명의 신하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치명적인 전염병(“붉은 죽음”)의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바깥 세계의 일은 자연히 처리될 것이었다. 그 사이에 비통해하거나 고심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야기는 고딕풍의 분위기를 내는 것들로 가득하다. 관능적인 쾌락의 도구들이 기이하고 퇴폐적인 미의 길고 밀폐된 삶을 위해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진 일곱 개의 방에 준비되어 있었다. 오로지 매 시간 울리는 흑단같이 까만 시계의 알림소리만이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을 멈추게 했다. 그것은 환영의 집합체와 같았다. 이 섬뜩한, 자극적인 장면은 ‘붉은 죽음’이라는 무언극 배우에 의해 중단되는데, 그는 프로스페로의 방에 들어와서 그를 죽인다. “그는 밤에 도둑같이 왔다”고 포는 「요한의 묵시록」을 인용하여 말한다. ((이 구절은 그의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 등장한다. 한편 비록 「요한의 묵시록」에 ‘도둑같이 온다’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하긴 하지만 (3장 3절, 16장 15절) 정확히 이와 상응하는 구절을 찾을 순 없다. 오히려 성경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구절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5장 2절에서 발견된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포는 전염병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맞다면, 그가 또한 당시의 노동계급 혁명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 전염병은 붉은 전염병일까? 그리고 그는 왜 그 전염병을 유럽의 천년왕국설의 고전적 진술과 결부 지을까?[위에서 봤듯이 라인보는 포가 문제의 소설 구절을 「요한의 묵시록」에서 인용했다고 생각하는데 천년왕국설이 자신의 성경적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다름 아닌 이 「요한의 묵시록」이다.]

여기서 실제 역사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 [미국의 의학사가]는 『콜레라의 해들』(The Cholera Years, 1962)에서 황열병과 천연두가 17-18세기의 고전적 유행병이었듯이 “콜레라는 19세기의 고전적 유행병이었다”고 말한다. 포의 세대에 충격을 주었던 팬데믹은 1831년과 1832년 사이에 동양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의 도시들로 퍼졌던 콜레라였다.

콜레라의 기원은 벵골(Bengal)지방으로 여기서 콜레라의 전파는 영국의 상업적·군사적 이동에 힘입었다. ((벵골지방은 원래 인도 북동부의 한 주였으나, 현재 일부는 방글라데시의 영토로 되었다.)) 실제로 인도 주민들의 도마뱀 이야기에 따르면 이 유행병이 암시하는 우주적 불균형은 영국 제국주의의 소란에 신들(시탈라, 마리암마, 올라 비비)이 진노한 결과였다.((이 신들은 인도 지역에서 숭배되는 여신들로, 시탈라(Sitala/Shitala)는 천연두의 여신, 마리암마(Mariyamma) 혹은 마리암만(Mariamman)은 비의 여신, 그리고 올라 비비(Ola Bibi) 혹은 올라데비(Oladevi)는 콜레라의 여신이다.)) 이 여신들의 변덕스런 화를 달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을간 의례적(ritual) 식량교환은 영국인의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소통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피억압자들은 ‘건강’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소통망은 제 1차 인도 독립 전쟁 즉 1857년 대반란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이 독립 전쟁 혹은 대반란은 세포이(인도인 용병)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까닭에 우리에게는 주로 세포이 항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인도의 ‘미신이 대개 콜레라라는 수인성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을지 몰라도 바로 그 ‘민중-구전이 영국 거시기생체에 맞선 투쟁의 기반시설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포는 1831년 웨스트 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나서 볼티모어에서 극빈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콜레라에 대한 소문과 공포에 민감했을 텐데 이 소문과 공포는 근대 역사에서 매 번 그랬듯이 당시에도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인종주의를 부추기며 계급관계의 병리학(노동자는 병적이고 지배자는 건강하다)을 설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언론은 콜레라가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의 결과라고 보았다. 신문들은 1,400명의 “파리의 외설적인 여성”들 가운데 1,300명이 콜레라로 죽었다고 보도했다. 그것은 일부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만족의 감정을 느끼는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의 역병”으로 여겨졌다. 콜레라의 용도는 “인간 사회를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쓰레기와 오물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볼티모어에서는 콜레라 희생자들의 대다수가 “가장 쓸모없는” 부류라고 보도되었다. 콜레라를 앓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일랜드인들과 흑인들은 운명으로 정해진 콜레라의 희생자처럼 보였”고 많은 도시에서 콜레라 발병률은 흑인들의 경우에는 두 배로 증가했다. 의사들은 남부의 노예와 북부의 슬럼 거주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인종 의학(racial medicine)이 이 세기의 전반부에 탄생했다. 콜레라를 앓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단지 수동적인 희생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밤에 도둑이 되는 등 정의와 사회적 치료책에 대한 자신들의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뉴욕은 무단침입(Breaking and Entering)이라는 유행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의사들과 공무원들은 공격당하고 난폭하게 구타당했다.”

1832년 7월 23일자 「뉴욕 이브닝 포스트」지는 맨해튼의 악명 높은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파이브 포인츠에는 온갖 피부색, 연령, 성별, 민족의 사람들이,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일한 처지에 있으며 거의 모두 폭력적인 야만성을 지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한 집단이 이 도시의 가장 밀집되고 중심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언제쯤에나 우리가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천국으로부터 순수한 공기가 내려온다 한들 그들의 숨은 그것을 오염시키고 병으로 감염시킬 수 있을 것이다.”((파이브 포인츠 지역은 뉴욕의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에 있던 지역으로, 그 이름은 네 개의 거리(앤써니가(오늘날 워쓰가), 크로스가(오늘날 모스코가), 오렌지가(오늘날 백스터가), 리틀 워터가 (오늘날엔 존재하지 않는다)가 합류하는 지점인 데서 유래한다. 특히 이 지역의 이름을 딴 갱 집단(파이브 포인츠 갱)이 유명할 정도로 소위 도시의 ‘우범지역’이었다.)) 노동계급의 숨마저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노동계급은 젠더, 인종 혹은 연령에 의해 분할된 정도가 가장 낮은 경우에 가장 위험했다. 게다가 특히 파이프 포인츠의 노동계급은 허드슨 강 부두와 선창의 노동력을 공급했기에 국제 무역에서 전략적으로 핵심적이었다. 가치의 국제적 순환이 가장 민감하고 응축된 농도에 도달한 것은 바로 이 곳에서였다. 이런 이유에서 선택적인 집단학살이 “자연법칙”의 가면 아래에서 고려되고 실행되었다.

이것의 목적을 노동계급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노만 롱메이트(Norman Longmate)가 썼듯이 1831년 콜레라 유행병의 시기에 “부자들이 맬서스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인구를 줄이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그 질병을 퍼트리고 있다는 믿음이 전 유럽에 퍼졌다.” (『콜레라 왕 : 한 질병의 전기』(King Cholera: The Biography of a Disease (1996), p.4))

183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은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의 기계화였다. 이는 남성, 여성 그리고 아동들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필요로 했다. 막대한 수의 인구가 그토록 더럽고 그토록 악취가 진동하는 밀집 지역에 욱여넣어졌는데 이것이 맨체스터, 리버풀, 뉴욕, 보스턴의 ‘도시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노동조합들과 대중 정당이 형성되는 것에 더해 또 다른 사회적 동학이 자리 잡았다. 즉 한편으로 도시 공동체들의 격리와 그들의 계획된 고립(‘슬럼’)이 일어났고 다른 한편으로 음주, 절도 그리고 자포자기의 위험한 문화가 생겨났다.

찰스 마크스(Charles Marks)[‘Karl Marx’를 영어식으로 쓴 것이며 이어지는 인용은『1844년 경제철학 수고』의 한 대목이다]라는 젊은 혁명가는 1844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협잡꾼, 도둑, 사기꾼, 거지, 그리고 무직자. 굶어죽고 비참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노동자. 이들은 정치경제학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른 눈들, 의사, 법관, 무덤 파는 사람 그리고 집달관 등의 눈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정치경제학의 영역 밖에서는 유령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에게 노동자들의 필요란 단지 하나 뿐이다. 노동자라는 종족이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한에서 노동자가 노동하는 동안 자신을 유지할 필요 말이다.” 새로운 종류의 노동자, 즉 “정신적·육체적으로 탈인간화된 존재로서”의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포가 영국에서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출판한 해에 구빈법 위원회 위원(the Poor Law Commissioner)인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은 ‘공중 보건’ 운동의 청사진인 「대영제국의 노동인구의 위생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했다. 그것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절하고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플랜테이션 노예와 마찬가지로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는 세심하게 재생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도시 수도 공급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도시의 계급 관계의 ‘수리학’(hydraulics)을 제시했고 벤섬(Bentham)에 의해 시작된, 아프고 병든 사람들의 강제수용운동을 추진했다. 미셸 푸코라면 “임상적 시선(the clinical gaze)”의 확립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임상적 시선은 근대 의학의 전개에 핵심적인 요소로 푸코가 그의 책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제시하는 개념이다. 질병의 치료의 시선이 ‘임상적 시선’으로 전환됨과 더불어 1) 질병 치료에서 더 이상 환자의 시선이 아니라 의사의 시선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며 2) 이 시선 하에서 환자는 더 이상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되고 3) 그에 따라 질병은 환자의 신체 전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특정 부분에 국한된 장애로 이해된다.))

산업도시들의 구조에 대해 보자면, 1830년대와 1840년대의 발전은, 가장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홈즈-왓슨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방식을 도입했다. 연역추리를 특기로 하는 뛰어난 탐정인 셜록 홈즈와 전통적인 신앙심을 가진 현실안주적인 의사인 닥터 왓슨은 19세기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선 쌍둥이 조직―치안과 위생―을 요약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십 년 동안 ‘공중보건 운동’을 통한 노동계급의 수리학적  통제뿐 아니라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배치된 새로운 경찰 부대의 무장순찰경찰(the armed-cop-on-the-beat) 제도의 확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힘을 합쳐 동종용법(homeopathic) 의학(이것의 기반은 가족농family farm이었다)을 파괴했고 질병을 통제하기 위한 도시 ‘개혁’을 채택했는데, 이에 따라 질병은 더 이상 엔데믹한 즉 한 지방 특유의(endemic) 것이 아니라 에반 스타크(Evan Stark)가 ‘엔도폴릭(endopolic)이라고 부른 것 즉 도시 특유의 것이 된다.((‘엔도폴릭’이라는 개념은 에반 스타크가 1977년 그의 논문 「사회적 사건으로서 유행병」(‘Epidemic as a Social Event’)에서 제시한 것으로 그는 이 개념을 통해 질병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정한 정치·경제적 결정과 과정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19세기가 끝날 때쯤 자본은 이민·사회·교육·도시 정책을 통해 도시 대중의 생애 주기를 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가운데 자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한 승리가 자신의 거시기생체적 권력을 제한함을 알아차렸다. 히틀러는 “나에게 거대한 도시는 인종적 신성모독의 체현물로 보였다”고 썼다.((히틀러의 이 말은 그의 책 『나의 투쟁』에 나온다. 자본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이제 도시의 리듬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구성되는바, 자본의 전제조건은 노동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이기에 자본은 전염병의 정복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미 보았듯이 대도시의 노동력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도시에서 다양한 인종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히틀러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대도시가 “인종적 신성모독의 체현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가장 유용하고 치명적인 질병의 대다수는 다양한 미생물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들[의사들]은 이 미생물의 수고를 무해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 황열병, 흑사병, 콜레라, 디프테리아를 비롯해 우리가 앓았던 거의 모든 귀중한 병들이 고작 한가한 시간의 오락거리가 되었고 정부에게 복통보다도 못한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