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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넘어선 미래와 크립토 커먼즈

 


  • 저자  : Sarah Manski
  • 원문 :  crypto-commoners only want the earth crypto commons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루케아
  • 설명 : 아래는 https://www.shareable.net/에 실린 글 “A post-capitalist guide to the future: crypto-commoners only want the earth”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의 저자인 맨스키(Sarah Manski)는 정치경제학자, 윤리학자, 세계적인 테크놀로지스트이자 조지메이슨 대학교 교수이다. 맨스키는 또한 <VERSES.io>와 씨바나 재단(Civana Foundation)의 고문이며, P2P재단과 조지메이슨 대학교의 사회과학연구 센터의 연구자이고,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SBIR 프로그램의 전문 검토위원이다. 그녀는 지난 25년 동안 활동가, 노동조직가, 저널리스트, 연구자 및 ‘비즈니스/글로벌 어페어즈’ 교수로서 노동자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크립토 커먼즈의 확대를 위해 일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스트들이 2021년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의 일정으로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작은 시골 호텔에서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Crypto Commons Gathering 2021, CCG21)을 개최하고 여기서 크립토 커먼즈의 확대를 위한 테크놀로지 설계 및 개발 방향을 논의했다. 이 글은 저자가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에 발표자로 참여하여 행사의 개최 취지와 크립토 커먼즈의 확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몇몇 참석자들의 아이디어 및 그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일종의 기행일기이다.

저자는 암호화가 본격적으로 미국인의 삶속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고 도처에 만연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진단한다.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를 주류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응용프로그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암호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까다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수백 개의 미국은행의 지점들이 곧 기존 계좌를 통해 암호화폐를 구입하고 보유하며 팔 수 있을 것이므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이란 다음의 것을 포함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전지구적인 움직임을 응용한 것들 가운데 가장 가시적인 것일 뿐이다.

  • 분산원장들
  • 열린 혁신 생태계들
  • 사회적 기업들
  • 플랫폼 협동조합들
  • 탈중심화된 데이터 관리 인프라들
  • 지역 혁신가들과 P2P 네트워크들
  • 마켓스페이스와 지방 연구소들
  • 바이오핵랩들(bio-hacklabs)
  • 커먼즈 기반의 글로벌 정치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토큰 경제와 새로운 가치 시스템들

생산•관계•소유권의 대안적인 형태를 창출하기 위하여 다채로운 창발적인 커뮤니티들이 테크놀로지의 사용을 실험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인 추출•착취•시장경쟁 및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근본적으로 새롭고 다른 논리―공통의 선, 글로벌 커먼즈에 기반을 둔 공유, 탈중심화 및 협력―를 실험하고 있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의 장소는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작은 시골 호텔이다. 이곳에 모인, 스스로를 크립토커머너들(CryptoCommoners)이라 부르는 테크놀로지스트들의 임무는 크립토 커먼즈(Crypto Commons)의 확대를 위해 일하는 실무자들과 교수들을 모아서 전지구적인 운동을 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은 탐구적인 활동과 학문적인 연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상호적으로 유익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글의 저자인 맨스키를 포함해서 대략 30여 명의 남녀 테크놀로지스트들이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에 참석했다. 맨스키는 이 글에서 5명의 테크놀로지스트들 소개하고 있으며 아울러 바우엔스의 기조발제(“Commoning as a mode of production”)의 내용을 전해준다.

맨스키 자신의 연구는 인류에게 미치는 테크놀로지의 영향력과 결부되어 새로이 등장하는 윤리적 문제들 그리고 가치•소유•생산•공평함•노동과정•사회적 역동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가진 커먼즈 기반 경제 모델이 구축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맨스키는 “시장에서 긍정적인 행동을 촉진하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경제 모델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새롭고 지속가능한 커먼즈 기반 경제를 창출하는데 블록체인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조쉬(Josh, ‘블록체인 사회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다)는 블랙체인 세계의 커먼즈 운동 부문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주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브레드체인 프로젝트>(BreadChain Project)에서 일한다. <브레드체인>은 탈중심화된 협력기획들을 위한 공동의 소유권 분야에서 자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이 열린 회의장소와 숙소를 제공한 펠릭스(Felix)는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의 주요 조직자이다.

스콧 모리스(Scott Morris, ‘토큰 제디’라고도 알려져 있다)는 <QOIN> 재단의 공동 설립자로 지역화폐 분야에서 협력적인 토큰 생태계를 설계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또한 뱅코르 백서(Bancor whitepaper)의 공인되지 않은 저자이다. 뱅코르는 스마트 토큰이라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자산을 확립하기 위한 첫 기획이었다. 스마트 계약은 디지털 자산을 운영하는 한 방법으로 하나 이상의 기존의 토큰이 준비금으로 유지되는 것을 요구한다. 스마트 계약에 교환 가능한 토큰을 준비금으로 보유함으로써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아무 때나 스마트 토큰을 매입하거나 현금화할 수 있다.

자감(Michael Zargham)은 <블록싸이언스>(BlockScience)―복잡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엔지니어링, R&D 및 분석회사이다―의 설립자이자 CEO이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테크놀로지의 힘을 활용하는 모델링 프레임워크와 강력한 시뮬레이션 도구인 소프트웨어 ‘복잡적응역동계 컴퓨터지원설계’(Complex Adaptive Dynamics Computer-Aided Design, cadCAD)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또한 그는 <메타거버넌스 프로젝트>(Metagovernance Project)에서 일하고 있다. ‘복잡적응역동계 컴퓨터지원설계’는 시스템의 복잡성을 인지하면서도 시스템 디자인을 단순하고 통찰력 있는 어떤 것으로 전환시킬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자감의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 자치는 자연권이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의 자치는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의 아키텍처에 의해 가능해지거나 제한되며, 같은 아키텍처는 사용자들이 생성하는 별개의 기관들의 상호작용을 제어한다. 메타거버넌스가 이 자치의 두 가지 관련 역할들—사용자들이 자신의 기관을 창출하는 그들의 능력을 가능하게 하기/제약하기, 개별 기관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치하기—을 의미한다.

에멧(Jeff Emmett)은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즈>(Augmented Bonding Curves)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블록싸이언스>에서 자감을 위해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하며 <더 커먼즈 스택>(The Commons Stack) 소속 핵심 조직자이다.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는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지속적인 조직체들을 위한 새로운 펀딩 모델을 창출할 경우, 내재 가치를 가진 암호화된 토큰을 보유한 초기 사용자들을 보상하도록 설계된다.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에는 자금 풀(funding pool), 토큰 잠금/수령권 메커니즘 및 시스템간 피드백 회로가 포함되어 있다.

<더 커먼즈 스택>의 임무는 오픈소스 도서관, 상호운영적인 웹3 부품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인센티브 일치, 지속적인 자금지원, 지역사회 거버넌스를 통해 공공재를 지속시키는 커먼즈 기반 미시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더 커먼즈 스택>은 효과적인 새로운 도구들을 지역사회에 맡기게 될 것인데 이 도구들 때문에 지역사회는 공유자금을 늘리고 분배할 수 있으며 투명한 결정을 하고 커먼즈 지원사업의 진행사항을 추적•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최소한의 자립 커먼즈’(Minimum Viable Commons)를 창출할 구성요소로서 다음 네 가지를 구축했다.

  •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가 지속가능한 자금을 지역사회에 제공한다.
  • ‘기베스 댑’(Giveth Dapp)은 제안과 에스크로 서버스를 제공한다.
  • 연속적인 의사결정 거버넌스 과정인 ‘확신 투표’(Conviction Voting)((확신투표는 특정 시점에서 구성원 전체의 다수결로 어떤 제안의 채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제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선호도를 일정 기간 축적하여 가장 선호도가 큰 제안을 확인하는 결정방식이다.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토큰을 자신이 선호하는 제안에 걸며, 이런 식으로 각 제안에 걸린 토큰의 양과 이 토큰들이 걸려있는 시간의 양을 토대로 제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선호도가 계산된다.)) 플랫폼
  • 커먼즈 분석 대시보드 (이것은 cadCAD로 움직인다)

바우엔스는 커먼즈의 내부 경제와 외부 세계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작동할 무언가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해왔는데 바로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가 이 역할을 한다. 바우엔스는 <커먼즈 트랜지션>(Commons Transition, 커먼즈 사회로 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 개발 플랫폼)의 연구 책임자이자 헬프리히(Silke Helfrich)와 볼리어(David Bollier)와 함께 <커먼즈 전략 그룹>(Commons Strategies Group)의 창립 멤버로, 동료 생산, 거버넌스, 재산권을 탐구하는 분야에서 전 세계 연구자 집단과 공동연구를 한다. 바우엔스는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 된 몇 권의 책과 보고서들을 공동 출간했는데 주요 작품들에 속하는 것으로 『협력 경제를 위한 네트워크 사회와 미래 시나리오』(Network Society and Future Scenarios for a Collaborative Economy)가 있으며, 보다 최근에 나온 『P2P: 커먼즈 선언』 (P2P: A Commons Manifesto)이 있다.

늘 그렇듯이 바우엔스는 커먼즈 경제가 인간 상호작용의 첫 형태였고 자본주의의 종획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공통의 부를 해체한다고 언급하며 발표를 시작한다. 바우엔스의 주장에 따르면 1993년, 인터넷이 커먼즈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의 도래를 알렸다. 인터넷을 사용하여 국가의 외부에서 조직화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세상에 등장한 2008년 이후로 전지구적인 규모의 커먼즈가 발전하고 엄청나게 성장했으며 그것은 모든 개인들이 다른 어떤 개인에게 연결될 수 있는 P2P방식의 관계 역학, 즉 새로운 유형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자유를 탄생시켰다.

허가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들(신뢰와 무관한 블록체인 또는 퍼블릭 블록체인으로도 알려져 있다)은 합의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이용 가능한 열린 네트워크이다. 블록체인은 이 과정을 거래와 데이터를 인증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 블록체인들은 알려지지 않은 거래당사자들 전체를 가로질러 완전히 탈중심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바우엔스는 이러한 블록체인들의 특징이 커먼즈 실천에 참여한 전통적인 인간 소그룹들의 특징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즉 글로벌 오프소스 시민네트워크들의 가능성 그리고 국가 위계구조 및 자본주의 시장의 동학 둘 다의 역량을 능가하는 생성적인 경제 연합체들의 가능성을 창출한다.

물론 이 상상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몇 가지 경고 사항들이 있다. 바우엔스는 모든 서버가 자율적이라는 P2P개념은 지속적인 커머닝(자원들을 공동 출자하고 상호화하며 공유하는 자유로운 연합) 능력과 갈등관계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존의 권력 불균형과 불평등을 강화할 수도 있다(사회를 개별 기업가들의 집합으로 보는 무정부주의적자본주의적, 자유방임적소유주의적 비전). 커먼즈 관점과 하이퍼마켓 관점 사이의 차이가 심대하다. 이것을 크립토커머너들과 비트코인브로들(BitcoinBros)이 서로 공존하며 경쟁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고 생각해보자. 누구든지 이기는 쪽이 미래를 차지할 것이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에 모인 참석자들은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시스템 설계는 다음의 공유된 원칙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 이해관계자 인센티브 일치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오픈소스여야 하며, 강력한 공학적인 실천들을 통합하는 반복적인 개발을 보장하는,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의미론적으로 호환이 되는 프로토콜을 가능케 해야 할 것이다.
  • 다중심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 시스템은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y) 개념에 기반을 둔 생태경제학을 포함해야 한다.
  • 그것은 설계상으로 생체 모방이어야 한다.

맨스키는 다음 단락으로 글을 맺는다.

우리의 목표는 크립토 커먼즈와 전 세계 협동조합 운동을 연결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관건은 자본주의에 투여되던 자금 가운데 수조 달러를 더 순환적인 경제로 돌리는 데 어떤 종류의 도구와 생태계가 가장 잘 활용될 것인가였다. 우리가 공유한 합의는 다음과 같다. 정확한 계획과 절차가 정해지는 데 수년이 걸릴지라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이 새롭고 재생성적인 시스템 하에서 모든 인류를 연합시키는 데에는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공들여 만드는데 전념하고 있다. 함께 말이다.

 




홀로체인―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넘어서


  • 저자  :  Hank Sohota
  • 원문 : Beyond Bitcoin and Ethereum — a fairer and more just post-monetary sociopolitical economy (2019. 1. 28)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화폐는 사회적 구축물로서 사람들의 신뢰에 의존한다. 그 기능은 ① 가치저장 ② 교환수단 ③ 회계단위, 이 셋이다. 그런데 화폐가 큰 규모로 작동하려면 표준화가 필요하고, 이는 불가피하게 중앙집중화를 낳는다. 불행하게도 중앙집중화는 ‘화폐의 경화적 성격’(hardness of money)[가치의 안정성(‘uninflatability’)]과 사람들의 신뢰를 침식한다. 의사결정이 소수의 손에 맡겨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소수는 그들의 책임을 오용해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화폐의 경화적 성격과 신뢰의 수준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문제의식은, ‘중개자들·대표자들·경영자들·조직소유자들 없이 어떻게 시공간을 가로질러 연계하고 협동하고 협력하는가?’이다.

이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나키’라는 성배(聖杯)를 나타낼 수도 있다. (여기서 ‘아나키’는 단순한 무법, 혼란, 무질서와 동의어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비트코인의 한계]

비트코인은 ‘경화( 硬貨)의 중앙집중화’ 문제를 풀기 위한 시도이다. 이는 더 큰 그림에 넣고 보면 좋은 출발점이다. 비트코인은 이 일을 위해 해시체인(hashchain) 블록들의 분산된 원장을 사용해서 변경 불가능성을 부여하고, ‘하드 코딩’을 통해 가치의 안정성을 확보하며 탈중심화된, 그러나 온전히 분산되지는 않은 작업증명(Proof of Work, PoW)을 사용하여 단 하나의 네트워크 전체에 걸친 타임라인을 구축하고, 합의 메커니즘을 통해 검열 불가능성을 확보한다. 이렇듯 개별 주체나 행위자보다는 네트워크를 신뢰함으로써 ‘신뢰 부재’(trustlessness)의 한 형태가 형성된다.

그런데 실용상의 한계 및 철학적 한계로 인해서 이 접근법은 부분적이고 비실용적인 해결책만을 제시한다. 충분히 분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충분히 빠르지 않다는 것, 비용 효율이 충분히 높지 않다는 것, 충분히 규모를 키우지 못하다는 것이 그 한계이다. 더군다나 비트코인은 앞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생성에 재정적으로 큰 혜택을 주지 못하는 한, 아니 더 나아가 녹색에너지 기반시설의 구축에 재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하는 한, 코인 채굴에 들어간 전력 소비 때문에 기후변화를 잘못된 방향으로 너무 많이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의 모든 중기 개선책들이 의도된 효과를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앞에서 말한 결점들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더라도 비트코인의 네 핵심 특성들―변경 불가능성, 가치 안정성, 검열 불가능성, 몰수 불가능성(unconfiscatability)―은 역사적 성취로 남아있다.

[이더리움의 한계]

이더리움은 반드시 비트코인이 해결하려는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비트코인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원장 기술을 바탕에 깔고 있으며 따라서 동일한 한계를 가진다. 여기에 더 추가할 것으로서, 권력의 중앙집중화 문제, 비트코인에 비한 암호화페로서의 단점들, 스마트계약의 문제점들, 지분증명(Proof of Stake, PoS)이라는 합의 메커니즘으로의 이동 시도 등이 있다.

이더리움이 한 일은 수 천 개의 대안코인들을 출시한 것인데, 그 가운데 어느 것도 말이 되는 것 같지 않다. 또한 이 코인들이 주장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주지 않는다. 이것이 새로운 자산계층과 규제되지 않는 시장에서 일어난 일임을 감안하다면, FOMO-FUD라는 ‘서부’가 출현하더라도 놀랄 것은 없다. [FOMO (Fear Of Missing Out) : 코인이 막 상승 중일 때 지금 사지 않으면 돈을 못 번다는 일종의 강박감에 추격매수하는 것을 이르는 말; FUD (fear, uncertainty and doubt) : 하락장에 막연한 두려움으로 팔아버리는 것을 이르는 말.― 정리자]

[상호적 자기주권(mutual self-sovereignty)―공정하고 정당한 사회정치적 경제의 토대가 되는 핵심 구축물]

경제는 인간의 사회 시스템의 번영 가능성(thrivability)에 강하게 집중해야 한다. 다소 단순화하자면, 번영 가능성의 핵심부에는 집단의 유대(solidarity)와 개인의 주권 사이의 변증법이 존재한다. 그런데 유대와 주권은 사실 동일한 동전의 양면이다. 이 둘은 서로를 구성하며 공생적으로 함께 진화한다. 이 둘은 ‘변증법적 특이성’을 구성하는데, 이는 상호적 자기주권을 통하여 조화에 도달한다. (음양의 상호작용과 같다.) 이 동학에서는 사회적 결속과 개인의 주권이 둘 다 강한 동시에 유동적이다. 이는 도교 철학에서 종종 물의 은유를 사용하여 나타내는 개념이다. 저자의 생각에 이 영속적인 동학을 통하여 인간의 사회 시스템의 ‘안티프래질 특성’(anti-fragility)이 높아진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인식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영속적으로 출현/창발한다. [‘anti-fragility’ 개념을 만들어낸 탈렙(Nassim Nicholas Taleb)에 따르면 ‘resiliency’(복원력)는 실패로부터 회복하는 능력이고, ‘robustness’(튼실함)는 실패에 저항하는 능력이며, ‘안티프래질 특성’(anti-fragility)은 스트레스, 휘발성, 소음, 실수, 외부로부터의 공격, 실패의 결과로 번영할 수 있는 능력이 증가하는 속성을 가리킨다.―정리자]

더 나아가, 그리고 더 중요한 점으로서, 그런 모든 게임에서 규칙들은 창발적이고 자기조직적인 방식으로 참여자들에 의해서 시행되고 운용된다.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거버넌스이다. 규칙들의 상대성이 존중되어야 하며, 전체적 합의는 필요하지 않다. 만일 이런 합의가 필요하다면 우리는 다시 중앙집중화의 문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특히 이들을 지탱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우리를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데려다주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비판적이고 중요한 촉매가 될 수는 있지만, 그 실제 작동에 있어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비트코인의 분산된 원장 테크놀로지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P2P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과제를 담당할 수단이 되리라는 생각에 고무된 사람들조차 지금은 그 한계를 인식하고 또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더리움 관련 개발자들 가운데 돈이 목적이 아닌 사람들은 환멸감을 느끼고 있다.

[홀로체인]

이와 달리 홀로체인(Holochain)은 우리를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데려다 줄 것이다. 홀로체인은 인류의 역사에서 상호적 자기주권의 문제와 진정으로 씨름한 최초의 테크놀로지이다. 홀로체인의 효율과 효능은 네트워크의 사이즈가 커질수록 향상된다. 사실 홀로체인은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이전에 이미 메타커런시(MetaCurrency)와 쎕터(Ceptr) 프로젝트의 필수적 구성부분으로서 등장했다.

홀로체인은 아나키를 출현시킬 수 있는 사회적 기술―생체모방(bio-mimicry)에서 영감을 얻고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 기술―을 제공한다. (여기서 아나키란 대규모의 중개/매개intermediation를 필요로 하지 않은 삶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홀로체인은 우리가 자산에 기반을 둔 수많은 상호신용 (암호)화폐―이들은 홀로체인에서 상호 운용 가능하다―를 통해 기존의 화폐가 지배하는 시기를 넘어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통화(通貨) 정의는 훨씬 더 광범한 것이다. 통화는 가치·약속·평판의 흐름들을 형성하고 가능하게 하며 측정하는 형식적인 상징체계로서 정의된다. 저자 생각에 이는 하이에크의 사유에 대한 해석으로서 신자유주의적 해석보다 훨씬 더 계몽된 것이다.

모든 종류의 가치 흐름이 더 나은 방향으로 관리되기 전에 먼저 인정되어야 한다. (GDP 관련 흐름만을 가시화한 것은 인류와 지구에 재앙이 되었다.) 그렇게 인정될 때에만 우리는 상호연관된 긍정적 흐름들은 강화시키거나 증폭시키고 상호연관된 부정적 흐름들은 완화시키거나 제거하는 작업을 창발적이고 자기조직적인 방식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다수를 위해, 심지어는 모두를 위해, 더 의미 있고 더 인간적인 부와 번영을 창출할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대규모 탈매개(Disintermediation)]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홀로체인이 가져올 경제적 및 사회정치적 혁명은 그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는 그것이 디지털화된 세계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통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홀로체인은 어떤 규모로든 빠른 속도로, 제로의 한계비용으로 이용될 수 있다. 그것은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에서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심지어는 서버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컴퓨팅 장치에도 설치될 수 있다.

제일 처음 만들어진 h앱(hApp, Holochain dApp)은 홀로(Holo)이다. 이는 h앱들을 호스팅하기 위한 h앱으로서 홀로퓨얼(Holo Fuel)이라고 불리는 최초의 상호신용 암호화폐를 포함하고 있다. 이 화폐는 h앱들에 여벌의 컴퓨터나 아니면 현재 쓰는 장치의 저장 공간을 제공해주는 홀로 호스트들에게 보상해주는 데 사용된다. 이로 인해 모질라(Mozilla)의 파이어폭스(Firefox) 같은 표준적인 브라우저를 사용하여 웹에서 h앱들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호스팅을 피할 수도 있다. 홀로체인을 돌리는 장치는 모두 사용자인 동시에 호스트이기 때문이다. 홀로의 목적은 현재의 서버 기반 웹과 미래의 (P2P이기에) 서버 없는 대안적 홀로체인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메시 네트워킹(mesh networking)[각각의 노드가 직접, 수평적으로 네트워크에 데이터를 중개하는 네트워크 토폴로지. 모든 노드가 다른 모든 노드에 연결되는, 뿌리줄기적 연결방식이다―정리자]이 가능할 것이며, 이는 진정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분산된 인터넷과 웹을 의미할 것이다.

더 나아가 홀로체인의 데이터 무결성 모델은 데이터 중심적(data-centric)이기보다는 행위자 중심적((agent-centric))이기를 지향함으로써 상호적 자기주권을 지원한다. 홀로체인은 소스체인(행위자가 소유하는 해시체인hashchains을 생각해보라)과 디지털 서명을 사용하고 분산된 해시 테이블을 확증한다(비트토렌트BitTorrent와 깃허브GitHub를 생각해보라). 이렇게 해서 프라이버시와 기밀성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가치실현과 가치소유가 가치를 추출하여 화폐화하려는 중개자들·대표자들·경영자들·조직소유자들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귀속된다.

[궁극적 물음]

상호적 자기주권은 일단 작동 가능하고 실용적이며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면 우리 삶의 모든 측면(사회적·정치적·경제적·예술적·문화적 측면)을 다시 규정하게 될 것이다. 가장 심층적 차원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향과 관련하여 스스로에게나 서로에게, 같은 세대 내에서나 서로 다른 세대 간에 하는 이야기들의 성격이 완전히 변할 것이다. 여기에 쎕터와 쎕터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은 말할 것도 없고 발전된 심층 및 강화 학습 인공지능이 가세하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21세기에 인간이 된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파악하고 다시 정의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 경제 : 초보자를 위한 제도적 크립토경제 안내


  • 저자  :  Chris Berg, Sinclair Davidson, Jason Potts(([정리자] 저자들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가 사회, 경제, 정치, 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세계 최초의 사회과학연구센터인 RMIT Blockchain Innovation Hub에 속해 있다.))
  • 원문 : “The Blockchain Economy: A beginner’s guide to institutional cryptoeconomics (2017.09.27)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블록체인의 중요성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이 비트코인과 화폐의 역사에서 시작하는데 화폐는 블록체인의 최초의 사용사례일 뿐이며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가능성은 낮다. 블록체인은 무엇보다 탈중심화된, 분산된, 디지털 형태의 원장이다. 회계와 연관된 원장이 혁명적 테크놀로지로 서술되는 것은 희한한 일일 수 있지만, 블록체인이 중요한 것은 원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늘 원장이 중심이다

규칙들에 의해 구조화된 데이터로 단순하게 구성되는 원장은 회계거래 기록 이상의 일을 한다. 우리는 사실에 관한 합의가 필요할 때마다 원장을 사용한다. 원장이 근대 경제를 뒷받침하는 사실들을 기록한다.

원장은 소유권을 확인해준다. 쏘토(Hernando de Soto)((Hernandde Sotto, The Mystery of Capital: Why Capitalism Triumphs in the West and Fails Everywhere Else, Basic Books, 2007.))는 가난한 사람들이 원장에서 확인되지 않은 재산을 소유할 때 어떻게 고생하는지를 서술했다. 회사(firm)는 단일한 목적을 가진, 소유권·고용·생산관계의 네트워크로서 하나의 원장이다.

원장은 신분을 확인해준다. 사업체들은 정부 원장에 등록된 신분이 있어서 그 존재와 조세법 아래에서의 지위가 추적될 수 있다. 탄생·사망·결혼의 등록이 개인들의 삶의 주요한 순간들을 기록하며 이 정보를 신분을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

원장은 지위를 확인해준다. 시민권은 누가 국민으로서 권리를 가지고 있고 의무를 지는지를 기록하는 원장이다. 선거인명부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혹은 의무화하는) 원장이다. 고용도 고용된 사람들에게이 노동의 보수에 대한 청구권을 부여하는 원장이다.

원장은 권위를 확인해준다. 원장은 누가 국회의원석에 앉을 수 있고 누가 은행계좌에 접근할 수 있으며 누가 아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고 누가 제한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확인해준다.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원장들은 경제적·사회적 관계들을 맵핑한다.

사실에 관한 합의, 즉 무엇이 원장에 있는지에 대한 합의와 원장이 정확하다는 믿음은 시장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토대들 가운데 하나이다.

소유, 점유, 원장

결정적이지만 놓치기 쉬운 것이 소유(ownership)와 점유(possession)의 구분이다. 점유는 소유를 함축하지만 소유 자체는 아니다. 여권의 예를 들면, 디지털 이전의 세계에서 여행자가 소지한(점유한) 여권은 그의 여행할 권리의 소유가 원장에 등록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요즘의 여권은 당국이 소유를 직접 확인하도록 해준다. 관련 당국이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서 어떤 여행객이 여행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보여주었듯이 화폐도 원장이다.

은행권이라는 토큰의 점유는 곧 소유를 의미한다. 19세기에 은행권의 소지자는 그 은행권이 나타내는 가치를 인출할 권리가 있었다. 은행권들은 그것을 발행한 은행에게 직접적 채무였으며 은행 원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점유가 곧 소유를 가리키는 체제는 은행권들이 절도되거나 위조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 시대의 법정 통화는 중앙은행에서 금으로 교환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관계는 남아있어서, 지폐의 가치는 통화의 안정성과 그것을 발행한 정부의 안정성에 대한 합의에 의존한다. 은행권들은 부가 아니다. 지폐는 원장에 있는 관계에 대한 요구이며 그 관계가 붕괴하면 지폐의 가치도 붕괴한다. 짐바브웨, 유고슬라비아,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를 보라.

원장의 진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장 테크놀로지는 지금까지 별로 변화를 겪지 않았다. 원장은 문자 소통의 여명기에 등장한다. 원장과 글쓰기는 고대 근동(近東)에서 생산·교역·부채를 기록하기 위해서 동시에 발전했다. 설형문자를 넣어 구운 진흙판이 식량, 세금, 노동자들 등의 단위를 세세히 기록했다. 분산된 원장처럼 기능하는 동맹들의 구조화된 네트워크를 통해 최초의 국제적 공동체가 마련되었다.

14세기에 복식부기(double entry bookkeeping)의 발명과 함께 원장에 최초의 주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복식부기는 차변과 대변을 모두 기록함으로써 다수의 (분산된) 원장들을 가로질러 데이터를 보존했고 원장들 사이의 정보의 조정을 허용했다.

원장 테크놀로지의 다음 단계는 19세기 대기업들과 거대 관료제의 발생과 함께 이루어졌다. 이 중앙집중화된 원장들이 조직의 규모와 범위의 극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으나 중앙집중화된 기관들에 대한 신뢰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20세기 후반에 원장은 아날로그 형태에서 디지털 형태로 이동했다. 호주의 여권은 1970년대에 디지털화되었으며 중앙집중화되었다. 전산 가능하며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가 더 복잡한 분산, 계산, 분석 및 추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데이터베이스 역시 여전히 신뢰에 의존한다. 디지털화된 원장은 그것을 유지하는 조직의 신뢰 가능성만큼만 신뢰 가능하다. 블록체인이 해결한 것을 바로 이 문제이다. 블록체인은 원장을 유지하고 확증하는 신뢰받는 권위 있는 중앙에 의존하지 않는 분산된 원장이다.

블록체인과 자본주의의 경제적 기관들

근대 자본주의의 경제적 구조는 원장들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발전했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은, 사람들이 시장, 회사 혹은 정부들에서 해당 조직의 상대적 거래비용에 의거하여 생산하고 교환한다고 주장했다. 윌리엄슨의 거래비용 접근법은 어떤 기관이 원장을 관리하고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는 데 열쇠를 제공한다.

정부들은 권위·특권·책임·접근의 원장들을 유지한다. 정부들은 시민권, 여행의 자유, 납세의무, 사회안전권, 재산소유의 데이터베이스를 유지하는 신뢰받는 주체이다. 원장이 시행되기 위해서 강압이 요구되는 경우 정부가 필요하다.

회사들 또한 원장들을 유지한다. 고용과 책임, 물리적 자본과 인간 자본의 소유와 배치, 공급자들과 고객들, 지적 재산과 기업 특권을 기록하는 사유화된 원장들이다. 회사는 종종 ‘계약들의 연계’라고 불린다. 그러나 회사의 가치는 그 연계가 질서와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회사는 사실상 계약과 자본의 원장이다.

회사 및 정부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더 효율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블록체인을 사용할 수 있다. 다국적 회사들 그리고 회사들의 네트워크들은 거래를 전지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으며 블록체인이 이를 거의 즉각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정부들은 블록체인의 변경 불가능성을 사용해서 재산권이나 신분기록의 정확성과 조작 불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잘 설계된 허가 규칙들은 시민들과 소비자들에게 자신들의 데이터에 대한 더 많은 통제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또한 회사들 및 정부들과 경쟁하는 위치에 있는 제도 차원의 테크놀로지이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회사들을 대체할 수도 있다. 계약과 자본의 원장은 이전에 없던 방식으로 탈중심화되고 분산될 수 있다. 신분, 허가, 특권, 권리의 원장들이 정부의 지원 없이 시행될 수 있는 것이다.

제도적 크립토경제학

제도적 크립토경제학(institutional cryptoeconomics)은 암호기술에 의해 안전해지고 신뢰와 무관해진 원장들이 제도의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 고전주의 및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의 목적이 희소한 자원의 생산과 분배를 연구하고 그 생산과 분배를 받쳐주는 요인들을 연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제도적 경제학은 경제를 규칙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규칙들(법, 언어, 재산권, 규제, 사회적 규범, 이데올로기)이 흩어져 있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활동을 서로 연계하도록 해준다. 규칙들이 교환을 (경제적 교환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교환/교류도) 촉진한다.

크립토경제학이라 불리게 된 것은 블록체인을 받쳐주는 경제적 원칙들과 이론 그리고 대안적인 블록체인 실행에 초점을 둔다. 블록체인 메커니즘 설계의 경우에는 게임이론과 인센티브 설계를 고려한다.

이와 달리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블록체인과 크립토경제가 결합하여 가져올 제도적 경제학에 초점을 둔다. 그 사촌격인 제도적 경제학에서처럼 경제는 교환을 연계하는 시스템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규칙을 보기보다는 규칙들에 의해 구조화된 데이터인 원장을 본다.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원장들을 지배하는 규칙들, 그 원장들을 서비스하기 위해서 발전한 사회·정치·경제적 제도들, 그리고 블록체인의 발명이 어떻게 전 사회에 걸쳐서 원장들의 패턴을 변화시킬지에 관심이 있다.

블록체인의 경제적 귀결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은 블록체인 혁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도구를 우리에게 갖춰준다.

블록체인은 실험적 테크놀로지이다. 블록체인이 어디에 사용될 수 있는가는 기업가의 관점에서의 질문이다. 일부 원장들이 블록체인 위로 이동할 것이다. 일부 기업가들은 원장들을 블록체인 위로 이동하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할 것이다. 모든 것이 블록체인의 사용 사례가 되지는 못한다. 블록체인의 킬러 앱은 아직 없다. 원장들, 암호기술, P2P네트워킹의 결합이 미래에 어떤 것을 낳을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과정은 극히 파열적이 될 것이다. 추측컨대 전지구적 경제는 블록체인을 받쳐주는 사실들의 재구조화·해체·재조직과 관련된 긴 불확실성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의 최선의 사용이 ‘발견’되어 이미 원장에 대한 서비스를 하는 기관들이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 세계의 정치적·경제적 체계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 둘째 부분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원장들은 파급력이 크고 블록체인의 가능한 응용프로그램들도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를 제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들의 일부가 손에 잡힐 듯이 드러날 것이다.

제도의 창조적 파괴

우리는 이전에 이런 혁명들을 겪어 보았다. 보통 비트코인의 발명과 블록체인을 인터넷과 비교한다. 블록체인을 인터넷 2.0이라고 부르거나 인터넷4.0이라고 부른다. 인터넷은 우리가 상호작용하고 사업을 행하는 방식을 혁신한 강력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 비교는 블록체인을 덜 쳐준 편이다. 인터넷은 우리로 하여금 더 잘,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교환하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블록체인은 전과 다르게 교환하도록 해준다. 블록체인에 합당한 더 좋은 은유는 기계적 시간의 발명이다.

기계적 시간 이전에 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시간―아침에 들리는 닭의 울음과 저녁에 천천히 땅거미가 지는 것―에 의해 규제되었다. 경제사가 앨런(Douglas W. Allen)이 주장하듯이 문제는 가변성이었다. “시간의 측정에 너무나도 많은 가변성이 존재해서 많은 일상적인 활동들이 유용한 의미를 가지기 힘들었다.” “시간 측정의 가변성의 감소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모든 곳에서 감지되었다”라고 앨런은 쓴다. 기계적 시간은 그 이전에는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상상조차 못했던 경제적 조직화의 전적으로 새로운 범주들을 열어젖혔다. 교역과 교환이 먼 거리를 가로질러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루를 구조화할 수 있게 되었고 노동한 시간의 양에 따라 보수가 주어질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공정하게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용주나 피고용인이나 어떤 계약이 수행되는 것을 확증하는 독립적 도구인 표준을 볼 수 있었다.

완결된 스마트 계약과 미완결된 스마트 계약

윌슨과 (그와 마찬가지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스(Ronald Coase)는 계약을 경제적 조직화의 핵심적 위치에 놓는다. 계약이 제도적 크립토경제학의 중심부에 놓여있다. 바로 여기서 블록체인은 가장 혁명적인 함축을 가진다. 블록체인 위에서 이루어지는 스마트 계약은 계약에 의한 합의가 자동적·자율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실행되도록 한다. 스마트 계약은 계약의 실행을 유지하고 시행하고 확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전체―회계사들, 감사들, 법률가들, 그리고 많은 법 제도들―를 제거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스마트 계약은 알고리즘의 세부에 의해서 제한된다. 경제학자들은 완결된(complete) 계약과 미완결(incomplete) 계약 사이의 구분에 초점을 두어왔다. 완결된 계약은 모든 가능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적시한다. 미완결 계약은 뜻밖의 일이 일어나는 경우 계약조건의 재협상을 허용한다. 완결된 계약들은 실행하기가 불가능하며 미완결 계약들은 돈이 많이 든다. 블록체인은 스마트 계약을 통해서 많은 미완결 계약과 연관된 정보비용과 거래비용을 낮춤으로써 경제활동의 규모와 범위를 확대시킨다.

이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의 정확한 세부는 기업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 현재 오라클들―정보를 스마트 계약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신뢰할만한 주체들―이 블록체인의 알고리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해준다. 블록체인 혁명에서 실질적으로 얻을 이득은, 미완결 계약들을 블록체인 위에서 실행되기에 충분히 완결된 계약으로 전환시킬 더 낫고 더 강력한 오라클들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고 본다. 중세의 상인혁명은 상인 법정들[국제상관습법Lex mercatoria, merchant law을 집행한다―정리자]의 발전에 의해 가능해졌다. 실질적으로 신뢰를 받는 오라클들에 해당하는 이 법정들이 교역자들로 하여금 사적으로 계약을 실행할 수 있게 했다. 블록체인의 경우에 이런 혁명은 아직 오지 않은 듯하다.

정부는 어디로?

블록체인 경제는 세금, 규제, 서비스 제공 등 많은 면에서 정부의 통치과정에 압박을 가한다. 대중과 상호작용하는 금융기관들의 경우 그 안전성과 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건전성 통제(prudential control)가 발전했다. 보통 이 통제(예를 들어 유동성과 자본 요건들)는 예금주들과 출자자들이 은행의 원장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예금주들과 출자자들은 회사의 관리에 기율을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쓰임새 가운데 하나는 예금주들과 출자자들이 은행의 지불준비금과 대출을 계속 모니터하여 자신들과 은행 경영진 사이의 정보비대칭을 실질적으로 제거하게 해주는 것이다.

블록체인의 변경 불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근거 없는 뱅크런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장한다. 규제자의 역할은 블록체인이 정확하고 안전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공인하는 데 국한된다.

블록체인의 더 나아간 쓰임새는 크립토뱅크―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단기로 빌리고 장기로 빌려주는 자율적인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이다. 스마트 계약 알고리즘으로 구축된 크립토뱅크는 공적 블록체인 원장을 가진 은행만큼이나 투명한 속성을 가지면서도 규제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크립토뱅크는 스스로 청산할 수 있다. 크립토뱅크가 지급불능이 되면 그 바탕에 있는 자산이 자동적으로 출자자들과 예금주들에게 지급된다.

카우언(Tyler Cowen)가 타바록(Alex Tabarrok)은 많은 정부 규제가 정보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보가 어디에나 두루 퍼져있는 세계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다.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들은 이 정보의 편재(遍在) 경향을 주목할 만하게 증가시키며 그 정보를 더 투명하고 영속적이며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블록체인은 ’렉텍‘(regtech)이라고 불리는 것에서 효용을 가지고 있다. 이는 감사, 준법감시, 시장 감시라는 전통적인 규제 기능들에 테크놀로지를 적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블록체인 세계에서 새로운 소비자 보호나 시장 통제를 요구하는 새로운 경제적 문제들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 같은 기본적인 경제적 형태들의 재구조화와 재창출은 규제의 시행 방식만이 아니라 규제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할 것이다.

대기업들은 어디로?

블록체인 경제가 대기업에 미칠 영향도 마찬가지로 크다. 기업의 사이즈는 종종 기업 위계의 비용을 감당할 필요에 의해 추동된다. 이 비용은 미완결 계약과 대규모 투자의 기술적 필요에 기인한다. 이런 모델은 출자자 자본주의가 기업 조직의 지배적인 형태임을 의미한다. 블록체인 위에서 더 복잡한 계약을 할 능력은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자신들의 인간 자본 및 이윤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성공적인 사업을 하는 것과 금융자본에의 접근 사이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는데, 이제는 단절될 수도 있다. 인간 자본주의의 시대가 동터오고 있다.

기업가들은 가치 있는 앱을 만들 수 있고 그것을 그 기능을 필요로 하는 누구라도 쓸 수 있게 개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가는 이에 대한 대가로 지갑에 마이크로페이먼트가 축적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설계자는 설계한 것을 개방하고 최종 소비자들이 3D 프린터에 그 설계를 다운받아서 거의 즉각적으로 생산물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사업모델을 채택하면 현재보다 더 (많은) 지역화된 제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생산자들이나 설계자들과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개인이 경제에서 하던 역할을 제한할 것이다. 물류회사들은 계속 번성할 것이지만, 운전자 없는 수송의 출현이 이 산업에도 파열을 가져올 것이다.

사업이 파열되면 회사의 조세 기반 또한 파열된다. 정부가 사업체에게 세금을 물리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판매(소비)세에 그리고 심지어는 인두세[한국의 경우에는 주민세가 이에 해당된다―정리자]에 큰 압박이 가해질 수도 있다.

결론

블록체인 및 그와 연관된 테크놀로지 변화는 현재의 경제적 조건을 대대적으로 파열시킬 것이다. 산업혁명은 사업모델이 위계와 금융 자본주의에 기반을 두는 세계를 도입했다. 블록체인 혁명은 인간 자본주의 및 개인의 더 큰 자율성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를 보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시행착오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이다. 우리가 기여하는 바는 파열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분명하게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모델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

[정리자의 덧글]

이 글의 저자들은 예를 들어 ’인간 자본주의‘라는 어휘를 사용하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블록체인의 혁명성을 제도 차원에서 보면서도 그 관점이 확연히 탈자본주의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어떤 글이든 중요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어휘나 관점을 문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이 글의 저자들이 블록체인을 ’국제상관습법‘의 새로운 버전으로 본 부분은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2004)과 『공통체』(2009)에서 ’국제상관습법‘(lex mercatoria)을 언급한 대목을 참조하면서 읽으면 유익할 듯하다. 『공통체』의 해당 대목은 이렇다.

아무도 가게를 돌보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전지구적 자본이 정치적·법적·제도적 규제와 지원 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적 권력구조는 실제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스템의 서로 다른 층위들을 가로질러 기워 연결된 잠정적이고 임시변통적인 성격의 것이다. 다른 곳에서 우리는 전지구적 경제의 관리와 규제의 지형에서 발전되고 있는 특수한 메커니즘들의 일부—예를 들어 일국적 법체계가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계약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옛 국제상관습법lex mercatoria을 재해석한 새로운 법적 관례—를 탐구한 바 있다. (382-383)

그리고 『다중』에서 네그리와 하트는 자신들이 포착해낸 이 “옛 국제상관습법을 재해석한 새로운 법적 관례”를 “자본의 자기지배”라고 부른 바 있다. 그런데 네그리와 하트는 블록체인의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이 시점에서 (최초의 블록체인이 구상된 것은 2008년도이다) 다른 요인들을 고려한 것만으로 이미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국제상관습법’ 안에서 발전된 이 ‘계약을 통한 법률’의 일반성과 기업화된 법률회사들의 관리 역량이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자본의 자기지배(self-rule)라는 꿈은 매우 제한적이다. (『다중』, 233)

이제 위 게시글의 저자들에 따르면 블록체인 혁명은 국가를 불필요하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자기지배(self-rule)라는 꿈”을 한편으로는 돕고 다른 한편으로는 회사들을 대체함으로써 이 꿈을 물거품으로 만들 잠재력을 가진 어떤 것이다. 이 상반되는 두 경향의 공존이 어떤 귀결을 낳을 것인가에 대해서 위 게시글의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며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시행착오를 통해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나라면 여기에 걸려있는 매우 중요한 싸움의 결과는 다중/커머너들의 투쟁에 달려있다고 말할 것이다. 블록체인의 등장은 자본과 국가의 홈그라운드였던 법, 관례, 규제, 계약의 영역이 계급투쟁의 지형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계급투쟁이란 이익의 분배(이윤 대 임금/복지의 비율의 결정)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상이한 두 삶형태― 사적인 것(자본)과 공적인 것(국가)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삶와 공통적인 것(커먼즈)과 특이성(자율적이고 자유로운 다중)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삶, 더 간단하게 말하자면 노동력으로서의 삶과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삶―사이의 싸움을 가리킨다. 이 싸움은 앞으로 인류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싸움이며 그 싸움의 의미에 걸맞은 자기인식이 긴요한 싸움이다. 따라서 돈을 더 많이 번다든가 생활수준이 더 높아진다든가 복지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데 국한될 수 없는 싸움이다. 위 게시글의 저자들이 말한 “기업가들과 혁신가들”을 다중 혹은 커머너에서 배제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들의 행동은 만일 그것이 자본과 국가를 대체하고 자율과 협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면 당연히 다중 혹은 커머너로서의 행동으로 간주될 것이다. 다중 혹은 커머너는 일단의 개인들(개별자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포괄하는 보편자가 아니라 개인들의 집단적 행동의 특정 성격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사실 네그리와 하트는 『집회』(Assembly, 2017)에서 생산의 지형에서 계급투쟁을 전개할 주체들로 ‘다중의 기업가’를 제시해놓고 있고(http://commonstrans.net/?p=982) 커먼즈 활동가 바우엔스 등도 이윤의 축적이 아니라 커먼즈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가치창출의 새로운 생태계를 제시하고 있다(http://commonstrans.net/?p=732).

 




크립토경제와 가치를 되찾기


  • 저자  :  Uriah Marc Todorof, Erin Manning, Brian Massumi
  • 원문 : “Interview with Erin Manning and Brian Massumi” (2018.3)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마쑤미(Brian Massumi)의 『가치의 재가치화에 대한 99개의 테제』(99 Theses on the Revaluation of Value: A Postcapitalist Manifesto)의 일부를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는데(과 이곳으로 가면 된다), 아직 중요한 부분의 소개가 안 된 상태이다. 그 사이에 토도로프(Uriah Marc Todorof)가 『가치의 재가치화에 대한 99개의 테제』의 내용을 놓고 마쑤미 및 그의 동료 매닝(Erin Manning)과 한 인터뷰를 접하게 되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을 보면 ‘99개 테제’ 기획의 대략적인 취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여기 그 인터뷰의 일부를 소개한다. 이 인터뷰의 일부는 https://thenewinquiry.com/a-cryptoeconomy-of-affect/ 에도 실려 있다. 마쑤미는 들뢰즈·가따리의 『천 개의 고원』의 영역본(A Thousand Plateaus, 1987)의 역자이며 매닝은 정치철학자로서 최근에는 The Minor Gesture(2016)라는 책을 냈다. 이들은 집단적 교육을 실험하는 연구실험실인 쎈스랩(SenseLab)(몬트리올)에서 같이 작업한다. <세 생태학 연구소>가 여기서 나온 기획 가운데 하나이다.

 

토도로프

— 암호통화의 바탕에 있는 가치 개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본주의적 가치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

 

마쑤미

— 암호화폐 설계자들은 전통적 정의(교환수단, 가치저장, 회계단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화폐에 대한 전통적 시장 정의는 실제로 화폐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상응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잉여가치의 생산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자본의 정의 자체가 ‘현재 투자한 일정한 액수의 화폐로부터 미래에 더 많은 액수를 생성할 잠재력’이다. 비트코인의 설계의 배후에 있는 자유주의(개인주의)적 시장근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인 자본 자체를 간과했다. 자본이 비트코인을 따라잡았고 투기적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사용함으로써 그 전통적인 화폐 기능이 거의 총체적으로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비트코인에 설계해 넣은 경제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 초기의 자유시장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특히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오늘날 자본이 작동하는 방식에 상응하지 않는다. 블록체인이 혹은 블록체인으로부터 발전되어 나온 기술이 진보적인 사회 혁신을 낳으려면 경제에 대한 훨씬 더 복잡한 비전이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금융자본과의 씨름이 필요하다.

 

매닝

— 우리의 크립토 경제 작업인 <3E 과정 씨앗은행>(the 3E Process Seed Bank)에서는 가치에 대한 낡은 정의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치의 문제에 대해 더 넓은 물음을 던진다. 가치란 무엇인가? 가치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가치는 어떻게 힘의 관계에 진입하는가? 가치는 힘의 관계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가? 금융적 가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이렇게 광범한 것은 교환수단으로서의 화폐 너머에 있는 화폐 형태들―파생상품, 옵션, 선물(先物) 같은 형태들―과 씨름하지 않는다면 잠재력 있는 대안경제 전략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혹은 이런 경제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활동가로서의 우리의 작업이 침식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리자] 쎈스랩의 한 웹페이지에 나와있는 ‘3E Process Seed Bank’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3E 과정 씨앗은행>은 <세 생태학 연구소>의 대안대학 기획을 위한 ‘창조적 과정 발동기’로서 기능할 것이다. <3E 과정 씨앗은행>은 오픈소스가 될 것이다. 다른 협동체들에 제공되어 그들의 욕구에 맞추어 쓰는 템플릿이 되도록 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경제공간연구소(Economic Space Agency , ECSA)(http://ecsa.io) 및 홀로체인(https://holochain.org) 같은 혁신적 단체들과의 협동을 열심히 모색하고 있다.”

 

마쑤미

— 우리는 화폐 가치의 경우처럼 가치를 양적으로만 전제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질적인 것으로 사고하고 싶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치의 질적 토대가 가시화되는 지점들이 있다. 그럴 경우 이 질적 토대는 ‘외부성’(externalities)이라 불린다. 즉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자체로는 수량화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고전적 사례는 (녹지 혹은 좋은 학교 혹은 지역의 문화 등의 이유로) 삶의 질의 인식이 동네마다 부동산 가격에 서로 다르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 삶의 질 요인은 가격에 반영되지만 그 자체로는 수량화될 수 없기 때문에 도심지의 미친 듯이 높은 가격과 젠트리피케이션 공세에서 볼 수 있듯이 시장의 왜곡을 낳게 마련이다. 가치의 화폐적 표현은 바로 이것이다. 즉 무언가 다른 것을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무언가 다른 것’은 질적인 것이기에 항상 포획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이것이 시장을 왜곡하거나 시장에 의해 왜곡된다. 그래서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가치에 대한 질적 관념을 다시 경제의 중심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있는가?’이다.

 

마쑤미

— 여기서 우리는 가장 큰 문제에 직면했고 이 문제는 우리를 상상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경제가 작동하려면 상호작용의 질들을 어떻든 기록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생각으로 우리가 ‘정동측정기’(affect-o-meter)라고 부르는 것을 발명하려고 시도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경제에 열쇠가 된다. 우리는 말 그대로 정동 경제를 발명하고 싶다. 관계의 내연성(intensities)을 바탕으로 돌아가며 개별 생산물보다는 그 내연성을, 그 과정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경제이다. ‘정동측정기’는 디지털 방식으로 협동적 상호작용의 질적 분석을 수행한다. 우리는 창조적 활동의 기록을 사용하여 우리의 플랫폼을 화폐화하는 데 사용하고 싶다.

[정리자] ‘intensities’에 대해서는 이곳의 2번 각주 참조.

 

매닝

— 더 세부사항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어떤 종류의 활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지 말해야 할 듯하다.

 

마쑤미

—쎈스랩(SenseLab)은 집단의 질적으로 상이한 경험들을 양성하는 창조적 협동의 형태들을 실험하는 실험실이다. 이 경험은 우리가 ‘삶의 잉여가치’(surplus values of life)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잉여가치의 생산은 집단적이어서 개별 부분들이나 투입물들로 분해되면 그 경험의 내연성의 의미를 잃는다. 우리는 이것을 창발적 집단성(emergent collectivity)이라고 부른다. 이 창발적 집단성이라는 과정이 우리의 생산물이며, 창조적 활동의 전파가 우리의 목적이다. 우리는 <3E 과정 씨앗은행>을 씨앗 집단의 창조적 실천을 돕도록 고안된 창조적 과정 발동기로 간주한다.

대부분의 집단적 행동은 단지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이라고 생각된다. 모든 것이 개별적 투입 그리고 궁극적으로 개별적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을 욕망한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 개별 이익을 넘어서 미지의 내연성으로 가는 것이 우리의 기획의 에토스이다.

이것은 다른 것을 알기가 아니라 다르게 알기, 지식의 새로운 양태를 발명하기이다. 이는 집단 에너지를 그 어떤 개인이나 개인들의 단순한 집합이 미리 그릴 수 없는 창발로 상승시킴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여기에는 항상적인 조율과 돌봄이 필요하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에, 그리고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데 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다.

 

토도로프

— 쎈스랩에서 개발하고 있는 모델이 다른 조직 형태로 옮겨놓아질 수 있는가?

 

매닝

— 우리는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즉 같이 일하는 방식들을 창조하고, 새로운 형태의 협동을 발명하며, 복잡한 생태학적 조우 모델에 관여하는 사람들, 새로운 형태의 가치를 발명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존재한다. 우리의 물음은 스타트업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어떻게 규모를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기록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는 기술을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이다.

<3E 과정 씨앗은행>은 <세 생태학 연구소>(the Three Ecologies Institute)의 자매 기획에서 나온 것으로서, 학습과 삶이 지금과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깊은 연관을 가진다. 우리는 이 연구소에서 펠릭스 가따리(Félix Guattari)의 세 생태학 정의―개념적인(심리적인, 정신적인) 것, 환경적인 것, 사회적인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세 생태학을 가로질러 가치를 횡단적으로 사유하는 데에는 금융적 차원의 가치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겨우 2년 전이다.

우리는 <세 생태학 연구소>를 나이, 배경, 학습스타일과 무관하게 우리가 계속 함께 학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명하는 데 바쳐진 사유와 삶의 양태들을 강화하는 곳으로 본다. 우리는 이 연구소가 대학에 반대되는 곳으로 보지 않는다. 대학에 기생하는 곳(“a parasite”)으로 본다. 여기서 ‘곳’(site)에 강조를 둘 수도 있다. 대학 제도와의 관계를 유지하지만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부차적 장소(para-site), 부차적 기관(para-institution)이다.

[정리자] ‘기생충/기생물’이라는 의미의 단어 ‘parasite’의 뒷부분 ‘site’를 영어 철자 그대로 단어로 보아서 ‘장소’라는 의미로 활용했지만, 사실 ‘parasite’의 ‘site’는 어원상 ‘음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σῖτος’(sitos)이다.

자본주의를 그냥 걸어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우리는 순진하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자연 환경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전략적 이중성(strategic duplicity)이라고 부르는 태도로 움직인다. 우리는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과 함께 움직이되, 매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질적인 논리를 양성하면서 그렇게 한다. 대학이 잘 하는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참으로 흥미있는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는 점이다. 대학은 삶을 바꾸는 모임들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체계로서는 실패하고 있다. 이 체계적 실패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세 생태학 연구소>가 <3E 과정 씨앗은행>의 도움을 받아서 대학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서도 (혹은 대학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으면서도) 대학이 잘 하는 것들의 일부와 중첩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마쑤미

— 가치의 문제로 되돌아가서, 우리는 통상적인 경제적인 원칙들을 하나도 따르지 않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를 창조하고 싶다. 개별적 소유나 몫도 없을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회계단위도 통화나 토큰도 없을 것이다. 거래가 활동모델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이익이 인센티브로서 사용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경험의 내연성을 함께 창조하여 단독으로 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하면서 창조했던 것을 창발적으로 초과하는 복잡한 관계공간만이 존재할 것이다. 자기조직적이 될 것이며 분리된 행정구조나 위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는 형식적인 의사결정 규칙들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아나키즘적이다. 그러나 조직의 결여보다는 조직 잠재력의 잉여를 가동함으로써 그렇게 된다. 또한 그 어떤 개인적 가치도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것을 코뮤니즘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커먼즈이다.

 

매닝

— 언더커먼즈이다.

 

마쑤미

— 그렇다. 언더커먼즈(undercommons)는 프레드 모튼(Fred Moten)과 스테파노 하니(Stefano Harney)가 창발적 집단성을 가리킨 단어로서 우리에게 온 영감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창발과 과정을 양성하고 싶지만, 동시에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들을 찾고 싶다. 이는 전략적 이중성(duplicity)이 현재 우리가 아는 바의 경제로 확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경제에 완전히 생소한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자본주의 경제에 기생해야 한다.

[정리자] “··· 언더커먼즈는 우리가 거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비판을 하는 영역이 아니다. 언더커먼즈는 우리가 ‘환난의 바다에 맞서서 무기 들고 대적해서 끝장내는’ 장소가 아니다. 언더커먼즈는 항상 여기 있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우리의 목표는―여기서는 항상 ‘우리’라고 말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방식이다― 환난을 끝장내는 것이 아니라 저 특수한 환난을 대적해야 할 것으로서 만들어내는 세계를 끝장내는 것이다···”(Jack Halberstam, from “The Wild Beyond: With and for the Undercommons” (Introduction to The Undercommons: Fugitive Planning & Black Study by Stefano Harney and Fred Moten).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협동적 과정이 근본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인 원리들에 따라 플랫폼 기능을 거치게 만들고 삶의 잉여가치의 집단적 생산에 중심을 두며 그러한 생산을 막(膜)으로써 지배적인 경제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막은 분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통과하는 운동을 허용한다. 막에는 구멍들이 나있다. 우리는 창조적 과정이 문턱을 넘어갈 때,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왔다 갔다 할 때 일어나는 질적인 이동을 기록하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한다. 기록되는 것은 삶의 잉여가치의 생산의, 그 썰물과 밀물의, 정동적 내연성이다. 막이 하는 일은 그 질적 흐름들을 숫자적 표현으로 옮겨놓는 것인데, 이것이 암호화폐에 새겨질 것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협동적 창조의 에너지로 크립토를 채굴할 것이다. 창발적 집단성을 화폐화할 것이다. 암호통화는 창조적 과정을 진행시키고 다른 기획들로 분기시키는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가 구축할 수 있는 믿음에 의해서 ‘뒷받침될’ 것이다. 대안교육의 실험인 <세 생태학 연구소>의 활동이 그 증거이다.

막이 두 면 가운데 화폐경제와 접하고 있는 면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고 수량화될 수 있는 가치 운동의 산출이 이루어질 것이다. 플랫폼 내부에서 진행되는 창조과정이 화폐 경제의 논리에 의해 식민화되는 것을 막이 막아줄 것이다. 우리는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취하려고 한다. 통화가 단지 투기수단이 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우리의 경제 공간은 다른 경제 공간들의 생태계에 거하면서 블록체인/포스트블록체인 자율적 조직을 협동적 노력들에 맞추는 실험을 할 것이다. 여기서도 열쇠가 되는 것은 어떻게 질적인 분석을 사용하여 창조적 내연성의 운동을 기록할 것인가의 문제―어떻게 숫자를 살살 달래서 경험의 질과 연대를 맺게 하는가의 문제―에 실행 가능한 해법을 찾는 것이다. 노라 베잇슨(Nora Bateson)이 개발한 ‘웜 데이터’(warm data)란 새로운 개념이 있다. 이는 우리의 목표와 유사한 목표를 가진 데이터이다.

 

토도로프

— 당신들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하는 막을 가진 체계를 창출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외부로 걸어 나갈 만큼 순진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당신들의 웹사이트 어딘가에서 ‘추상을 점령하기’라는 어구를 본 적이 있다. 그럼 당신들이 개발해내는 이 경제는 추상적인 것을 ‘점령하는’ 것인가?

 

매닝

— 만일 우리가 추상적인 것을 점령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토와 무관한 방식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유 실험이다. 우리가 그 씨앗을 심지만 다른 이들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계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찌어찌해서 과정 씨앗을 산출했는데 그것이 우리를 떠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넘어서게 된다면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브라이언은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 우리가 무언가를 점령하고 있다면, 점령 대상은 상상이다. 탈자본주의적 상상.

 

마쑤미

— 종종 임시적 자율지대(a temporary autonomous zone, TAZ)라고 불렀던 것을 창출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모두 자본과 공모자라는 것을 알면서, 그리고 그저 걸어서 자본주의를 유유히 빠져나올 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한다. 만일 자본을 유유히 빠져나온다면 그것은 검토되지 않은 전제를 지니고 나오는 것이 될 것이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우리는 전략적 이중성을 구사하면서 자본과의 공모관계로부터 출발하고 그 공모관계와 함께 움직이고 싶다. 기만적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동시에 두 영역에서 움직인다는 말이다.

우리는 아나코-코뮌주의적 논리를 따라 임시적 자율지대를 창출하는 동시에 그것을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에 접목시킬 수 있으면 한다. 좋든 싫든 신자유주의가 오늘날 우리의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촉수는 사방팔방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까지 뻗쳐서 그 장악력을 느슨하게 하기 위해서는 힘들게 노력해야 하고 좋은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에 사는 방법들을 찾아야 하는 한편, 장차 올 탈자본주의적 세계를 미리 보여주는 미래성의 불꽃들을 발산해야 한다. 따라서 함께 살기라는 의미의 점령이다. 임시적 자율지대는 따로 떨어진 세계가 아니다. 현재 있는 그대로의 세계 속에 있는 구멍이며, 거기서 무언가가 자랄 수 있다. 이 지대는 기존의 세계를 떠난다는 기만적인 생각이 없이 들어설 수 있는 관계적 공간이다. 즉각적인 대체를 목적으로 삼기보다는 보완함으로써 시작한다. 이 보완이 자라서 우리의 ‘함께 살기’를 더 많이 끌어들여 마침내 지배적인 경제와 맞설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의 ‘추상을 점령하기’는 ‘월가를 점령하라’가 하려는 일을 다른 식으로 하려는 것이다. 즉 화폐를, 금융을 점령하고 가치를 되찾으려는 것이다. 월가와 금융 세계는 현재의 지배적 경제 부분이다. 이들과 씨름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에 맞설 수 없다. 파생상품이나 신용파산스왑(credit default swaps) 같은 지배적인 금융도구들은 고도로 추상적이다. 이 도구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형태의 잉여가치생산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더 많이’를 향한 투기적 에너지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만일 우리가 금융을 점령하기를 바란다면, 함께 사는 새로운 삶의 양태를 창조하기 위해서 이 투기적 에너지를 되찾아 와야 한다. 우리는 상상을 점령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집단적 상상이어야 한다.




‘코드가 법이다’에서 ‘법은 코드다’로


  • 저자  :  싸메르 하싼(Samer Hassan)((Associate Professor, Univ. Complutense de Madrid Faculty Associate, Berkman Klein Center at Harvard University)), 프리마베라 데 필리피(Primavera De Filippi)((Researcher at CERSA/CNRS Faculty Associate at Berkman-Klei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
  • 원문 : “The Expansion of Algorithmic Governance : From Code is Law to Law is Code” (2017.12.31)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오픈 에디션』(OpenEdition, journals.openedition.org)에 실린 원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알고리즘 거버넌스의 확대 : ‘코드가 법이다’에서 ‘법은 코드다’로

 

I.

우리는 플랫폼 안에서의 상호작용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플랫폼들의 사용자 베이스는 기존의 국민국가들을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 페이스 북 20억, 유튜브 10억, 인스타그램 7억. 그런데 이 플랫폼들의 거버넌스는 민주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이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의 상호작용과 온라인 소통을 소스코드에 함입된 불명료한 규칙들을 통해 규제하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들에 의해 통치되며 소수의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디지털 환경은 코드를 통해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가는 문을 열었다. 레씩이 말했듯이 “코드가 법이다”(Lessig, 1999). 코드가 궁극적으로 인터넷의 구조이며 기술공학적 수단을 통해 개인들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

상호작용이 점점 더 소프트웨어에 의해 규제됨에 따라 우리는 규칙들을 직접 시행하는 수단으로서의 테크놀로지에 더 의존하게 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하는 전통적인 법적 규칙과 달리, 기술적 규칙들은 애초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규정한다. 이로 인해서 제3자적 위치에 있는 당국이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사후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궁극적으로 법보다도 더 자주 소프트웨어가 온라인의 특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한다.

그 상징적 사례는 디지털권리관리(DRM, digital rights management)이다. 이는 저작권법의 조항을 기술적 보호조치로 전환시켜서 저작권이 걸린 작품들의 사용을 제한한다. 이러한 형태의 규제가 가지는 장점은, 법원이나 경찰이라는 제3자에 의한 사후(ex-post) 단속에 의존하지 않고 규칙들이 사전(ex-ante)에 시행되어서 사람들이 애초에 규칙을 깨는 것이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유연하고 다의적인(모호한) 전통적인 법적 규칙들과 달리, 기술적인 규칙들은 극히 형식화되어 있고 모호성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기에 사법적 중재의 필요가 없어진다.

코드에 의한 규제는 오늘날 민간 부문만이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많이 채택된다. 정부들과 공공 기관들도 코드 기반의 규칙들을 정하는 데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들과 기술공학적 도구들에 점점 더 의존하며 이 규칙들은 그 바탕에 깔린 테크놀로지에 의해 자동으로 실행(시행)된다. 예) ① 미국의 No Fly List. 이는 국가안보에의 잠재적 위협을 예측하여 평가하기 위해 데이터마이닝을 활용한다(Citron 2007). ② 사법적 의사결정과 선고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정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기(O;’Neill 2016).

사회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기술공학적 도구들이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을 활용하는 것은 법을 자동화할 수 있고 규칙과 규제를 사전에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코드에 의한 규제는 법의 기본적 취지 가운데 일부를 파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점도 가지고 있다.

① 코드 기반의 규칙들은 고정되어 있고 형식화된 코드 언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자연 언어가 가지는 유연성과 다의성(ambiguity)이 주는 이익을 얻지 못한다. ② 온라인 플랫폼들의 구조적 실행은 궁극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증진하거나 막으려 하는 플랫폼 운영자들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특수한 선택에 의존한다. 다른 기술공학적 인공물처럼 코드도 중립적이지 않고 본래 정치적이다. 특정의 정치적 구조들을 지지하거나 다른 행동들을 누르고 특정의 행동들을 촉진할 수 있다(Winner, 1980).

 

II.

비트코인을 떠받치고 있는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법을 코드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많은 기회들과 함께 나온 새로운 테크놀로지이다(De Filippi & Hassan, 2016). ‘스마트 계약’—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에 깔려서 분산된 피어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분산된 방식으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의 출현과 함께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서로 연계하고 많은 경제적 거래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방식을 혁신할 수 있게 되었다(Tapscott & Tapscott 2016). 법 혹은 계약 조항들을 스마트 계약으로 옮겨놓으면 “실행보장”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일단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이 나올 수 있다. 이 규칙들은 바탕에 깔린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의해 자동으로 실행되므로 당사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계획된 대로 돌아간다.

스마트 계약은 다수의 당사자들(인간이든 기계든)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다. 이 상호작용들은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에 의해 매개되고 소스 코드에 삽입된 일단의 부동의 규칙들에 의해서만 통제된다. 스마트 계약은 거래와 계약을 미리 정해진 일단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이는 자기실행적이고 자기시행적이다)로 형식화함으로써 코드에 의한 규제의 응용성을 증가시킨다.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들과 스마트 계약은 그 어떤 중앙 서버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중지될 수 없다. 코드에 딱 그렇게 정해져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것이 코드 기반 규제의 경직성 및 형식성과 관련된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코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 혹은 그 코드의 실행에 영향을 주는 것조차도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계학습(ML, Machine learning)은 소프트웨어로 하여금 외부의 정보원(情報源)으로부터 지식을 획득하여 학습하거나 명시적으로 행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은 일을 행하도록 해준다. 점점 더 증가하는 양의 데이터(‘빅 데이터’)를 얻을 가능성과 신경 네트워크와 데이터 마이닝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으로 인해서 여러 온라인 플랫폼들에서 기계학습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기계학습 덕택에 전통적으로 코드에 의한 규제와 연관된 한계들 가운데 일부를 피해갈 수 있다. 기계학습은 역동적이고 변화에 적응하는 코드 기반 규칙들의 도입을 허용하여 자연 언어가 가진 유연성과 다의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전통적인 법적 규칙들의 특징 가운데 일부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수집하는 데이터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만큼 이 시스템들은 적용되는 특수한 상황들에 더 잘 부합하도록 규칙들을 항상 정련함으로써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학습의 사용에도 규제의 맥락에서 단점은 있다. 데이터에 의해 추동되는 의사결정은 이미 편향을 함축하는 불공정한 것으로 입증되었다(Hardt, 2014). 말로는 ‘중립적’이라고 하는 알고리즘들이 일반화 작업을 하면서 소수자 그룹들을 구조적으로 차별하여 예를 들어 인종주의적인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결과를 보이는 것이다(Guarino 2016).

더 나아가, 만일 법으로 실행되면 이 규칙들의 역동성이 보편성(즉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과 비(非)차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는 데 따라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코드 기반의 규칙들에 법이 통합되면서,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의 정당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문제로 삼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규칙들의 점점 더 많은 수가 개별 사용자들의 프로필에 맞추어질 수 있게 되면 현재의 법적 체계를 특징짓는 보편성과 비차별성이라는 기본 원칙은 영원히 상실될 수도 있다.

 

Bibliography

Citron, D. K. (2007). Technological due process. Wash. UL Rev., 85, 1249.

De Filippi, P., & Hassan, S. (2016). Blockchain technology as a regulatory technology: From code is law to law is code. First Monday, 21(12).

O’Neil, C. (2016). Weapons of math destruction: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and threatens democracy. Crown Publishing Group (NY).

Tapscott, D., & Tapscott, A. (2016). Blockchain Revolution: How the Technology Behind Bitcoin Is Changing Money, Business, and the World. Penguin

V. Buterin, “Ethereum: A next-generation cryptocurrency and decentralized application platform,” 2014.

Langdon Winner, 1980. “Do artifacts have politics?” Daedalus, volume 109, number 1, pp. 121–136.

Lawrence Lessig, 1999. 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New York: Basic Books.

Bill Rosenblatt, William Trippe and Stephen Mooney, 2002. Digital rights management: Business and technology. New York : M&T Books.

Moritz Hardt, How big data is unfair: Understanding unintended sources of unfairness in data driven decision making. Medium. 2014. https://medium.com/@mrtz/how-big-data-is-unfair-9aa544d739de

Ben Guarino. Google faulted for racial bias in image search results for black teenagers. (2016).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morning-mix/wp/2016/06/10/google-faulted-for-racial-bias-in-image-search-results-for-black-teenagers/

 

 




홀로체인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 저자  :  제이미 클링어(Jamie Klinger)
  • 원문 : What is Holochain and why does it matter?
    (2018.2.15)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원문에는 홀로체인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비디오가 맨 앞에 ‘임베드’되어 있고, 저자인 클링어가 홀로체인을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이 그 뒤를 잇는다. 아래는 클링어의 설명 부분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정리자가 프로그래밍 분야를 잘 알지 못해서 일부 용어들의 경우 적절하지 못한 번역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홀로체인: 블록체인이 한 차원 높아지다

비트코인의 중앙 메커니즘인 블록체인은 컴퓨터 과학에서 기념비적인 성취이다. 이 성취로부터 많은 다른 암호화폐들이 출현하여 이 모델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개선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홀로체인은 탈중심화를 더 진척시키고 효율성을 최대화하며 모든 유형의 인터페이스들과 응용프로그램들[‘응용프로그램’ 혹은 ‘어플리케이션’은 ‘앱’으로 줄인다—정리자]이 그것과 함께 구축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

홀로체인은 비트토렌트(BitTorrent)의 평행성(parallelism)을 활용하여 완전히 분산된 앱들을 가동시킨다.

홀로체인은 분산된 앱들을 위한 ‘데이터 무결 엔진’(a data integrity engine)이다

엔진이란 “움직이는 부분들을 가진, 힘을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기계”이다.(출처 구글)

‘데이터 무결’(Data Integrity)이란 블록체인들과 토렌트들이 해온 일이다. 블록체인들과 토렌트들은 내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가 당신의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와 동일하도록 보장한다. 블록체인들과 토렌트들은 데이터의 순서가 정확하게 동일하도록 보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능장애가 일어날 것이다.

분산된 앱들이란 (클라우드가 아니라) 당신의 개인 장치에서 국지적으로 돌아가는 앱들이다.

스냅챗(Snapchat) 같은 중앙집중화된 앱은 당신에게 중앙집중화된 서버들로부터 데이터를 보내는 작은 파일(앱)을 다운받도록 제공한다.

텐엑스(TenX같은 탈중심화된 앱은 탈중심화된 블록체인(Ethereum) 위에서 돌아간다.

분산된 앱은 당신의 개인 장치에서 국지적으로 돌아가며 P2P 연결을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만일 스냅챗이 분산된 앱이라면,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모두 분산된 앱을 당신의 폰에 깔 것이며, 사진을 보낼 때에는 그것이 직접 당신의 친구들에게, 오직 당신의 친구들에게만 갈 것이다. 중간에 매개하는 서버들은 없다. 중간에 매개하는 블록체인도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분산된 앱이란 분산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데이터를 컴파일링하는 스크립트(실행되는 코드)인 셈이다.

홀로체인은 공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앱들을 구축할 수 있게 해준다

홀로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트위터 클론(복제품)을 만들고 싶으면 (사실 핵심 팀이 이미 작업을 시작했으며 ‘클러터’Clutter라고 불린다) 메시지의 크기, 해시태그들, 그리고 당신에게 중요한 모든 매개변수들을 위한 규칙들을 결정하라. 만일 당신의 이 특수한 트위터 앱에서 개인의 색 선호도에 의해 게시물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사람들이 가입할 때 그들이 좋아하는 색을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부분을 앱에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표하기를 게시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응답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사람들의 응답을 그들이 좋아하는 색에 의해 자동으로 분류되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색 선호 기능을 가진 트위터를 ‘색-트위터’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것이 가장 유용한 특징은 아니다. 더 유용한 매개변수에 대해 투표하도록 하여 견해를 수렴할 수 있다. 투표하면서 연령을 선택하도록 하고, 앱을 만든 사람에게 색-트위터에 이 매개변수를 추가하도록 요청한다. 그럼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앱을 만든 사람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좋아할 때

앱을 만든 사람이 당신의 업데이트를 통합하고 싶어 한다면 앱에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을 것이다. 그런데 분산된 체계 안에 있기 때문에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최신 버전을 다운받을 필요가 있다.

앱을 처음 만든 사람은 두 버전을 모두 돌릴 것인데 (그리고 새 버전으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두 버전을 모두 돌려야 한다) 이 경우 업그레이드를 한 사용자들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트윗 메시지를 남길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여기에 글을 올리지 않습니다. 이 링크를 따라서 ‘색·연령-트위터’(ColAge-Twitter)의 HonestlyJamieK로 나를 찾으세요.”

일부 사용자들은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계속 색-트위터를 사용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이들은 색·연령-트위터 계정과는 상호작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색·연령-트위터의 계정들이 여전히 색-트위터를 돌리는 일련의 사용자들의 옛 체인에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색·연령-트위터의 매개변수는 모든 사용자들에 의해 충족되지 않지만, 색-트위터의 매개변수들은 모든 사용자들에 의해 충족되기 때문이다.

색-트위터는 그 특수한 앱을 돌리는 사용자들이 있는 동안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모든 색-트위터 사용자들이 오픈라인으로 나가고/나가거나 색·연령-트위터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색-트위터가 더 이상 접근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색·연령 트위터를 쓰기로 한 사용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연령을 등록해야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쎕터(Ceptr)—홀로체인과 그와 연관된 테크놀로지를 포괄하는 모(母)프로젝트(parent project)—가 통합되면, 다른 앱이 색-트위터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이미 보유할 때 색-트위터가 자동으로 이 매개변수에의 접근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자동입력 기능처럼 보일 수 있다. 당신의 연령을 일단 입력하며, 다시는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운로드받은 특수한 앱으로 그 정보에 접근을 승인하기만 하면 된다.

앱을 만든 사람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을 때

만일 앱을 만든 사람이 제안된 연령 매개변수가 자신의 체계의 비전에 속한다고 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업그레이드를 거부하고 색-트위터에 머물 수 있다.

이제 이전과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다만 색-트위터의 제작자가 뒤에 처지는 사람이 된다. 나는 원래의 앱의 코드를 취해서 가지치기하여(fork) 연령 매개변수를 추가하여 홀로체인에서 나의 독립적인 앱으로 띄운다. 사람들은 원한다면 나의 앱을 사용하여 트윗을 날릴 수 있다.

다른 사례들에서처럼 만일 내 새로운 앱이 색-트위터의 모든 규칙들을 따른다면, 누군가가 색·연령-트위터 앱으로 메시지를 브로드캐스트할 때 (원한다면) 그와 동시에 색-트위터 앱으로도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다. 모든 앱들의 규칙들(색-트위터에는 색, 색·연령-트위터에는 색+연령)이 충족된다면, 당신은 당신이 돌리고 있는 수만큼의 앱들—홀로체인-호환적인 페이스북, 플리커(Flickr), 슬랙(Slack) 등—에서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다.

탈중심화가 아니라 분산

색-트위터에 게시하고 싶으면 네트워크 부하(負荷)를 나눠가질 태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홀로체인 앱들은 당신의 휴대폰에서 돌아가기에 충분하게 가벼우며 언제라도 당신이 요청한 정보만을 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효율적일 것이다.

만일 탈중심화된 체계라면 색·연령-트위터가 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업그레이드된 노드들(nodes)이 필요하다. 분산된 체계는 전적으로 개별화되어 있으며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오는 데 따른다. 그러나 당신의 디앱(dApp)[분산된 체계에서 돌아가는 앱]이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당신이 사용자들에게 체계의 샤드(shard)*를 유지할 것으로 요구하지 않고 접근을 제공한다면 디앱 유지자들에게 노드들/서버들을 돌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 모든 앱은 사용자베이스 전체에 분산된 일련의 샤드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샤드들이 서버부하를 나눠 갖는다. 토렌트 기능에 비견된다.

리프트(Lyft) & 우버  대  라주즈(La’Zooz) & 홀로체인

라주즈는 블록체인 기반의 승차공유 앱이었다. 이 앱은 자립적인 체계로서 기능했다. 네트워크는 이 앱을 돌리고 토큰을 버는 모바일 사용자들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이들은 다시 토큰 구입자들에 의해 재정적으로 지탱되었고, 이는 운전자들이 토큰을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서 작동되었다. 이들은 우버가 하는 중간 매개인을 완전히 제거했다. 이 프로젝트가 중도에서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 아이디어는 블록체인과 연관을 맺어본 누구에게나 완전히 명백한 듯했다. 그리고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체계를 기업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빼낼 수 있는데, 왜 중간 매개인에게 돈을 지불하는가? 리프트나 우버가 오늘날 존재할 필요가 있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그리고 블록체인이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이유가 실제로 있다. 법적 문제, 안전 문제, 보험요건 등 승차공유를 위한 순전히 P2P적인 체계를 아직은 실행에 조금 못 미치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몇 년 있으면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s)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탈중심화된 혹은 분산된 준거 체계들이 바로 모서리를 돌면 보이는 곳에 있다. 우리는 잠재적인 운전자들을 위해 적절한 보험의 확인(verification), 배경조사 및 기타 모든 요건들을 위한 매개변수들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스마트 계약과 유사하게 기능하여 일단 받아들여지면 사용자들로 하여금 확인의 다음 수준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일단 우버-클론이 나와서 돌아가면, 누군가가 그것을 가지치기해서(fork) 전기차를 사용하는 운전자들만을 지원하는 생태친화적인 버전을 만들기로 결정할 수 있다. 에코-우버는 비용이 더 들지도 모르지만,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매개변수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너무 앱이 많다!

에코-우버가 출범한 후에 누군가가 붉은 색 차 용으로 레드-우버를 만들었고 파란색 차 용으로 블루-우버를 만들었다. 만일 운전자가 매스조인드라이버스(Mass-Join-Drivers) 앱에 가입되어 있어서 적절한 운전자 매개변수에 부합한다면 이 운전자는 자동적으로 (허가를 받아서) 모든 최신 앱에서 운전자가 될 수 있다.

사용자들에게 레드-우버, 블루-우버 등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련의 옵션들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는 너무 많은 중요하지 않은 선택항들이 있는 셈이다. 사용자들은 누가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 운전을 하는지는 개의치 않는다. 빨리 가기만 하면 된다. 색-트위터와 색·연령-트위터의 경우처럼, 만일 브로드캐스터로서의 당신이 모든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누구에게나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다수의 앱들을 동시에 브로드캐스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용자는 모든 적절한 운전 앱들에 승차 요청을 보낸다. 일단 첫 운전자가 요청(call)에 응답하면 그것을 사용자에게로 돌리고 모든 다른 승차 요청은 취소할 것이다.

홀로체인은 모든 인터넷 앱들의 능력 전부에 동시에,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하지 않고 접근하는 것과 같다. 언어들이 전적으로 양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홀로체인은 전 인터넷 아래에 IFTTT[‘If This Then That’의 약자로 인터넷과 컴퓨터에 존재하는 여러 별개의 서비스와 앱들을 임의로 연동시켜주는 서비스] 층을 구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글에 기술된 일부 심층적인 특징들은 쎕터(연관성이 높지만 현재로서는 분리된 자매 프로젝트) 안에 내장된 자기기술적인(self-describing) 프로토콜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인 대시보드

오늘날 우리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에 어쩔 수 없이 만족해야 한다. 우리의 피드를 조작하는 우리의 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홀로체인의 경우, 우리는 앱들이 설정한 매개변수들에만 제한된다. 만일 당신이나 당신의 친구들이 이 매개변수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가지친 앱으로 매개변수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가 앱 위의 층에 존재하고 사유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피드들을 마음에 드는 쪽으로 혼합하고 맞출 수 있다. 나는 모든 상황들에 대해 대시보드들을 만들 수도 있으며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매끄럽게 도약할 수 있다. 나의 모든 앱 채널들에서 적어도 10번 게시물을 올린 사용자들로부터 뽑은 개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내 대시보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의 10킬로 이내에서 살며 높은 등급의 평판을 가진 사용자들의 모든 피자 관련 게시물들이 또 하나의 대시보드가 될 수 있다.

정보는 각 앱 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최종 사용자는 자신이 선택한 매개변수로 자신에게 맞추어진 경험을 창출할 수 있다. 데이터 발굴과 합의 구축의 가능성들은 무한하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데이터 독점이 끝장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홀로체인의 사용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보가 공유되고 커먼즈로 하여금 집단적 성장과 이해를 위해 그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key words: holochain, blockchain, distributed, interoperable, decentralized, dApp, smart contracts,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