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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3/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7-8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성철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7-8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기
 5. The Columbian Exchange 보기
 6. “The Death Carts Did More…” 보기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황열병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인종주의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갓 성체가 된, 피를 빤 적 없는 모기들이 세심히 준비된 흡혈 케이지 속에서 10분 동안 지원자들의 팔뚝에 방사된” “이집트-숲모기 연구”((이집트-숲모기는 황열병의 매개체가 되는 모기로, 학명은 Aedes aegypti이다.)) 캘리포니아 교정국, 「조사와 연구」(1971)

1790년대가 “혁명”의 십년이었던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이 시기에 백인 자산가 계급(the White Men of Means)이 미국 헌법의 5, 6조를 제정하기 위해 자신의 점포의 셔터를 내리고 스스로를 가둔 “필라델피아의 기적”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기적”은 1787년 5월 25일에서 9월 17일까지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필라델피아 대회의’를 가리킨다. 애초 이 회의는 연합규약의 개정만을 예정했었지만, 제임스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의 의도는 처음부터 현존하는 정부를 ‘수정’하는 게 아닌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 결과 이 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 회의는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라고도 불린다.)) 또 프랑스 전역에 빨강, 하양, 파랑의 삼색으로 된 깃발들이 휘날렸으며 ,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퍼졌고,  바스티유 감옥 습격 등이 있었다.((삼색기는 프랑스 국기를 가리킨다. 현재와 같은 삼색의 프랑스 국기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은 1794년이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가로, 원래 1792년 스트라스부르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이라는 군인이자 아마추어 음악가가 출정을 앞두고 작사, 작곡하였고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러 쳐들어오는 외국군에 대항하여 자원병들이 파리에 집합할 때 마르세유에서 막 도착한 자원병들이 파리 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눈 밝은 이가 이 십년의 일로 기억할 것은 서인도제도의 거대한 전쟁, 세 유럽 제국들을 격퇴하고 플랜테이션을 폐지했으며 콜럼버스의 첫 기항지에 독립국 아이티를 세운 노예들일 것이다.

18세기 카리브해 지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럽인들의 뒤섞임은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의 대륙 간 유전자 혼합에 비견될만하다. 다만 지중해 지역에서는 수백 년이 걸려 일어난 일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단 몇 년 만에 일어나서 1790년대에 인구학적·혁명적 정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정치 뿐 아니라 전염병학의 관점에서 아이티는 고대 그리스 및 로마와 유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주된 것은 아프리카인들의 경험의 중심성이었다. 18세기 후반의 팬데믹들에서는 노예 경험이 최전선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고대의 유행병과 마찬가지로 이 팬데믹들 또한 유럽인들에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고대와 달리 이번의 유럽인들의 해석은 그 뿌리부터 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이와 대립하여 범아프리카주의가, 해방 전쟁의 경험이 그리고 흑인성(négritude)의 철학이 발전되었다.

차이는 더 있다. 1790년대는 자신의 투키디데스를 갖지 못했다. ((투키디데스와 고대 그리스의 전염병에 대한 설명은 이 글의 2절을 참조)) 대신에 성직자 토마스 맬서스 (Thomas Malthus)가 있었는데, 그는 그의 정원의 질서 정연한 관점에서 신앙심 깊은, 온통 수학적 집단학살로 가득한 글을 썼다. [『인구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맬서스는 주로 자신의 정원에서 집필을 했다고 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인구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인구의 재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이 그의 “추론”의 전제란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한다. 증명 끝. [저자가 앞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수학적 집단학살로 가득한 글”이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 역병, 기근은 “자연 법칙”이었고, 그는 이것들을 매질하는 농장주의 필요에 맞춰 그리고 1일 18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공장주에 맞춰 평가했다.

그의 관점은 ① 전세계적이었고 ② 야훼를 대자연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이다. 친절하게 죽이니 말이다. 이는 여전히 공식적인 언론을 지배하는 관점이다. 그리하여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에이즈 팬데믹을 다루면서 단 한 번의 신문 칼럼에서 “자연”이란 말을 13번이나 언급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처럼 사회적 지배층이 자연의 ‘법칙’을 사회 전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선언하는 것은 자연이 사회 아래에 포섭된 영역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소처럼 먹으세요.” 쟝 윌리엄 팝(Jean William Pape) 박사는 포르토프랭스[아이티 공화국의 수도]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팝 박사는 아이티의 공중보건 연구소인 GHESKIO의 창립자이자 소장이다. 특히 그는 HIV 바이러스와 관련된 활동으로 공중보건 전문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소모성 질환[체력을 소모시켜 몸을 전체적으로 쇠약하게 만드는 질병]을 앓는 환자들이 에이즈 치료실을 떠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했다. 이 처방을 이해하는 데 혹은 그러한 치료법에 함축된 정치적 암시를 이해하는 데 현대 과학의 그 눈부신 발전이 필요하진 않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새로운 수도였고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 헌법의 제정에서 1787년 ‘필라델피아 대회의’가 결정적인 계기였고 그 후 1790년부터 10년 간 필라델피아는 미 연방의 수도였다.] 그것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노예적 기반을 가면으로 가리려 해도 그것은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1793년 7월 서인도제도의 노예 반란에서 피난 한 백인, 흑인, 물라토 난민들을 실은 상퀼로트호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나라”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도망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상퀼로트(Sans-Culottes)는 프랑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중 계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명칭은 민중들이 귀족처럼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culotte)가 아니라 작업복인 긴 바지(pantalon)를 입은 것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겁을 먹었는데 그 배는 또한 새로운 모기 즉 황열병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를 날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황열병은 “볼람 열병(the fever of Bollam)”, “바베이도스 열병(the fever of Barbadoe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프리카의 혹은 카리브해의 혁명의 결과인 것처럼 보였다. 1793년 여름과 가을 내내 필라델피아 인구의 많은 수가 죽었다. 시계는 멈췄고 가난과 기아가 횡행했다. 아이들은 유기되었다. 연방정부의 신사들은 도망쳤다. ((1793년 필라델피아의 황열병 유행은 소설과 영화로 그려질 만큼 미국 역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해 8월에서 11월 사이의 공식적인 사망자 집계는 4044명이나 이는 무덤 숫자를 센 것에 기초하므로 실제 사망자수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필라델피아의 인구수가 약 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이다. 또 유행병이 시작되고 11월까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약 2만 명이 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이 유행병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은 병의 원인을 공기로 돌렸다. 공기 중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화약을 폭발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예방책으로 추천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필라델피아의 부르주아지들은 카리브해의 풀려난 노예들을 탓했고 이 유행병의 종식을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서 필라델피아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에 대한 인종 공격을 방치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의 노동계급은 복수의 기회를 잡았다. 절반의 하인들이 자신의 주인을 버렸다. 수감자들은 석방되었다. 간호사들은 강도로 고발당했다. 다른 이들은 일당 3달러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우리가 자주 보았듯이 이 유행병 속에서도 그것으로 가장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시기생체를 처리할 기회로 삼았다. 그것은 가능성의 시기였다.

지도자들은 바로 이 고통받는 기층의 흑인들에서 출현했다.  노예로 태어난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은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자유 아프리카 협회(the Free African Society)를 세웠고 후에 흑인들을 위한 첫 번째 감리교 교회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노예인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는 미 본토에 처음으로 흑인들을 위한 성공회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함께 이 유행병에 대처하여 치료와 위로를 위한 활동을 조직했다. 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 앉았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들은 열병을 앓는 사람들의 이마를 닦았다. 그들은 영구차를 구했다. 그들은 관을 제작했다. 그들은 땅을 팠다. 부유한 이들이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서 도망치는 가운데 그들은 아무 보상 없이 인류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그 유행병은 집단적인 자기인식(self-recognition)과 집단적인 역사적 정체성의 구축을 위한 사건이 되었다. ((저자가 다음을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인지 확실친 않지만, 생화학 용어로서 ‘자기 인식’은 개체의 면역 계통이 자기의 화학 물질·세포·조직과 외계로부터의 침입물을 식별하게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1. 산업화의 고딕식 가장가면들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콜레라나 장티푸스의 대해 우리는 대조군(백신을 맞지 않은 인구)의 25% 혹은 30%에서 질병을 낳을 생물체들을 사용할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 리처드 호닉(Richard Hornick) 박사. 메릴랜드 교정국, 「콜레라 및 장피푸스 연구」 (1971)

유행병 문학은 도피의 문학인데 왜냐하면 문필가들은 지배계급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 지배계급의 유행병에 대한 반응이란 언제라도 가능할 경우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그 예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애드가 앨런 포(1809~1849)는 미국의 작가·시인·편집자·문학평론가이다. 특히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들은 음산하고 괴이한 분위기로 인해 소위 고딕물(Gothic fiction)로 분류된다. 라인보가 이 장의 제목을 ‘산업화의 고딕식 가장가면들’이라고 하면서 포에 대해 다루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1842년에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썼다.((한국어본이 『붉은 죽음의 가면』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다.)) 이 해는 중요한 해로서 우리는 조금 후에 이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이렇다. 프로스페로(Prospero) 왕자는 고딕풍 수도원의 높다란 담벼락 안으로 천 명의 신하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치명적인 전염병(“붉은 죽음”)의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바깥 세계의 일은 자연히 처리될 것이었다. 그 사이에 비통해하거나 고심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야기는 고딕풍의 분위기를 내는 것들로 가득하다. 관능적인 쾌락의 도구들이 기이하고 퇴폐적인 미의 길고 밀폐된 삶을 위해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진 일곱 개의 방에 준비되어 있었다. 오로지 매 시간 울리는 흑단같이 까만 시계의 알림소리만이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을 멈추게 했다. 그것은 환영의 집합체와 같았다. 이 섬뜩한, 자극적인 장면은 ‘붉은 죽음’이라는 무언극 배우에 의해 중단되는데, 그는 프로스페로의 방에 들어와서 그를 죽인다. “그는 밤에 도둑같이 왔다”고 포는 「요한의 묵시록」을 인용하여 말한다. ((이 구절은 그의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 등장한다. 한편 비록 「요한의 묵시록」에 ‘도둑같이 온다’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하긴 하지만 (3장 3절, 16장 15절) 정확히 이와 상응하는 구절을 찾을 순 없다. 오히려 성경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구절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5장 2절에서 발견된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포는 전염병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맞다면, 그가 또한 당시의 노동계급 혁명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 전염병은 붉은 전염병일까? 그리고 그는 왜 그 전염병을 유럽의 천년왕국설의 고전적 진술과 결부 지을까?[위에서 봤듯이 라인보는 포가 문제의 소설 구절을 「요한의 묵시록」에서 인용했다고 생각하는데 천년왕국설이 자신의 성경적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다름 아닌 이 「요한의 묵시록」이다.]

여기서 실제 역사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 [미국의 의학사가]는 『콜레라의 해들』(The Cholera Years, 1962)에서 황열병과 천연두가 17-18세기의 고전적 유행병이었듯이 “콜레라는 19세기의 고전적 유행병이었다”고 말한다. 포의 세대에 충격을 주었던 팬데믹은 1831년과 1832년 사이에 동양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의 도시들로 퍼졌던 콜레라였다.

콜레라의 기원은 벵골(Bengal)지방으로 여기서 콜레라의 전파는 영국의 상업적·군사적 이동에 힘입었다. ((벵골지방은 원래 인도 북동부의 한 주였으나, 현재 일부는 방글라데시의 영토로 되었다.)) 실제로 인도 주민들의 도마뱀 이야기에 따르면 이 유행병이 암시하는 우주적 불균형은 영국 제국주의의 소란에 신들(시탈라, 마리암마, 올라 비비)이 진노한 결과였다.((이 신들은 인도 지역에서 숭배되는 여신들로, 시탈라(Sitala/Shitala)는 천연두의 여신, 마리암마(Mariyamma) 혹은 마리암만(Mariamman)은 비의 여신, 그리고 올라 비비(Ola Bibi) 혹은 올라데비(Oladevi)는 콜레라의 여신이다.)) 이 여신들의 변덕스런 화를 달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을간 의례적(ritual) 식량교환은 영국인의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소통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피억압자들은 ‘건강’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소통망은 제 1차 인도 독립 전쟁 즉 1857년 대반란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이 독립 전쟁 혹은 대반란은 세포이(인도인 용병)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까닭에 우리에게는 주로 세포이 항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인도의 ‘미신이 대개 콜레라라는 수인성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을지 몰라도 바로 그 ‘민중-구전이 영국 거시기생체에 맞선 투쟁의 기반시설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포는 1831년 웨스트 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나서 볼티모어에서 극빈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콜레라에 대한 소문과 공포에 민감했을 텐데 이 소문과 공포는 근대 역사에서 매 번 그랬듯이 당시에도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인종주의를 부추기며 계급관계의 병리학(노동자는 병적이고 지배자는 건강하다)을 설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언론은 콜레라가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의 결과라고 보았다. 신문들은 1,400명의 “파리의 외설적인 여성”들 가운데 1,300명이 콜레라로 죽었다고 보도했다. 그것은 일부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만족의 감정을 느끼는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의 역병”으로 여겨졌다. 콜레라의 용도는 “인간 사회를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쓰레기와 오물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볼티모어에서는 콜레라 희생자들의 대다수가 “가장 쓸모없는” 부류라고 보도되었다. 콜레라를 앓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일랜드인들과 흑인들은 운명으로 정해진 콜레라의 희생자처럼 보였”고 많은 도시에서 콜레라 발병률은 흑인들의 경우에는 두 배로 증가했다. 의사들은 남부의 노예와 북부의 슬럼 거주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인종 의학(racial medicine)이 이 세기의 전반부에 탄생했다. 콜레라를 앓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단지 수동적인 희생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밤에 도둑이 되는 등 정의와 사회적 치료책에 대한 자신들의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뉴욕은 무단침입(Breaking and Entering)이라는 유행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의사들과 공무원들은 공격당하고 난폭하게 구타당했다.”

1832년 7월 23일자 「뉴욕 이브닝 포스트」지는 맨해튼의 악명 높은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파이브 포인츠에는 온갖 피부색, 연령, 성별, 민족의 사람들이,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일한 처지에 있으며 거의 모두 폭력적인 야만성을 지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한 집단이 이 도시의 가장 밀집되고 중심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언제쯤에나 우리가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천국으로부터 순수한 공기가 내려온다 한들 그들의 숨은 그것을 오염시키고 병으로 감염시킬 수 있을 것이다.”((파이브 포인츠 지역은 뉴욕의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에 있던 지역으로, 그 이름은 네 개의 거리(앤써니가(오늘날 워쓰가), 크로스가(오늘날 모스코가), 오렌지가(오늘날 백스터가), 리틀 워터가 (오늘날엔 존재하지 않는다)가 합류하는 지점인 데서 유래한다. 특히 이 지역의 이름을 딴 갱 집단(파이브 포인츠 갱)이 유명할 정도로 소위 도시의 ‘우범지역’이었다.)) 노동계급의 숨마저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노동계급은 젠더, 인종 혹은 연령에 의해 분할된 정도가 가장 낮은 경우에 가장 위험했다. 게다가 특히 파이프 포인츠의 노동계급은 허드슨 강 부두와 선창의 노동력을 공급했기에 국제 무역에서 전략적으로 핵심적이었다. 가치의 국제적 순환이 가장 민감하고 응축된 농도에 도달한 것은 바로 이 곳에서였다. 이런 이유에서 선택적인 집단학살이 “자연법칙”의 가면 아래에서 고려되고 실행되었다.

이것의 목적을 노동계급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노만 롱메이트(Norman Longmate)가 썼듯이 1831년 콜레라 유행병의 시기에 “부자들이 맬서스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인구를 줄이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그 질병을 퍼트리고 있다는 믿음이 전 유럽에 퍼졌다.” (『콜레라 왕 : 한 질병의 전기』(King Cholera: The Biography of a Disease (1996), p.4))

183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은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의 기계화였다. 이는 남성, 여성 그리고 아동들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필요로 했다. 막대한 수의 인구가 그토록 더럽고 그토록 악취가 진동하는 밀집 지역에 욱여넣어졌는데 이것이 맨체스터, 리버풀, 뉴욕, 보스턴의 ‘도시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노동조합들과 대중 정당이 형성되는 것에 더해 또 다른 사회적 동학이 자리 잡았다. 즉 한편으로 도시 공동체들의 격리와 그들의 계획된 고립(‘슬럼’)이 일어났고 다른 한편으로 음주, 절도 그리고 자포자기의 위험한 문화가 생겨났다.

찰스 마크스(Charles Marks)[‘Karl Marx’를 영어식으로 쓴 것이며 이어지는 인용은『1844년 경제철학 수고』의 한 대목이다]라는 젊은 혁명가는 1844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협잡꾼, 도둑, 사기꾼, 거지, 그리고 무직자. 굶어죽고 비참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노동자. 이들은 정치경제학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른 눈들, 의사, 법관, 무덤 파는 사람 그리고 집달관 등의 눈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정치경제학의 영역 밖에서는 유령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에게 노동자들의 필요란 단지 하나 뿐이다. 노동자라는 종족이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한에서 노동자가 노동하는 동안 자신을 유지할 필요 말이다.” 새로운 종류의 노동자, 즉 “정신적·육체적으로 탈인간화된 존재로서”의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포가 영국에서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출판한 해에 구빈법 위원회 위원(the Poor Law Commissioner)인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은 ‘공중 보건’ 운동의 청사진인 「대영제국의 노동인구의 위생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했다. 그것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절하고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플랜테이션 노예와 마찬가지로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는 세심하게 재생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도시 수도 공급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도시의 계급 관계의 ‘수리학’(hydraulics)을 제시했고 벤섬(Bentham)에 의해 시작된, 아프고 병든 사람들의 강제수용운동을 추진했다. 미셸 푸코라면 “임상적 시선(the clinical gaze)”의 확립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임상적 시선은 근대 의학의 전개에 핵심적인 요소로 푸코가 그의 책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제시하는 개념이다. 질병의 치료의 시선이 ‘임상적 시선’으로 전환됨과 더불어 1) 질병 치료에서 더 이상 환자의 시선이 아니라 의사의 시선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며 2) 이 시선 하에서 환자는 더 이상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되고 3) 그에 따라 질병은 환자의 신체 전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특정 부분에 국한된 장애로 이해된다.))

산업도시들의 구조에 대해 보자면, 1830년대와 1840년대의 발전은, 가장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홈즈-왓슨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방식을 도입했다. 연역추리를 특기로 하는 뛰어난 탐정인 셜록 홈즈와 전통적인 신앙심을 가진 현실안주적인 의사인 닥터 왓슨은 19세기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선 쌍둥이 조직―치안과 위생―을 요약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십 년 동안 ‘공중보건 운동’을 통한 노동계급의 수리학적  통제뿐 아니라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배치된 새로운 경찰 부대의 무장순찰경찰(the armed-cop-on-the-beat) 제도의 확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힘을 합쳐 동종용법(homeopathic) 의학(이것의 기반은 가족농family farm이었다)을 파괴했고 질병을 통제하기 위한 도시 ‘개혁’을 채택했는데, 이에 따라 질병은 더 이상 엔데믹한 즉 한 지방 특유의(endemic) 것이 아니라 에반 스타크(Evan Stark)가 ‘엔도폴릭(endopolic)이라고 부른 것 즉 도시 특유의 것이 된다.((‘엔도폴릭’이라는 개념은 에반 스타크가 1977년 그의 논문 「사회적 사건으로서 유행병」(‘Epidemic as a Social Event’)에서 제시한 것으로 그는 이 개념을 통해 질병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정한 정치·경제적 결정과 과정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19세기가 끝날 때쯤 자본은 이민·사회·교육·도시 정책을 통해 도시 대중의 생애 주기를 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가운데 자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한 승리가 자신의 거시기생체적 권력을 제한함을 알아차렸다. 히틀러는 “나에게 거대한 도시는 인종적 신성모독의 체현물로 보였다”고 썼다.((히틀러의 이 말은 그의 책 『나의 투쟁』에 나온다. 자본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이제 도시의 리듬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구성되는바, 자본의 전제조건은 노동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이기에 자본은 전염병의 정복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미 보았듯이 대도시의 노동력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도시에서 다양한 인종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히틀러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대도시가 “인종적 신성모독의 체현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가장 유용하고 치명적인 질병의 대다수는 다양한 미생물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들[의사들]은 이 미생물의 수고를 무해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 황열병, 흑사병, 콜레라, 디프테리아를 비롯해 우리가 앓았던 거의 모든 귀중한 병들이 고작 한가한 시간의 오락거리가 되었고 정부에게 복통보다도 못한 것이 되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2/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4-6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4,5절), 민서(6절)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4-6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의 100개의 사랑 이야기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카치오는 『데카메론』(The Decameron)을 1347-1349년의 흑사병(the Black Death) 얼마 후에 썼는데,[1353년에 완료되었다] 이 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망했다. 보카치오는 피렌체 은행가의 아들이었는데, 경영 공부에도 손을 대보고 교회법에도 손을 대보았으나 잘 안 되어서 외교관이 되어 역병에서 살아남았다.

100개의 이야기에는 교회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많은 풍자적 비판들이 담겨있다. 보카치오는 죽어가는 농민들로부터 이야기들을 훔쳐왔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데카메론』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빌려온 것들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라틴 이야기들이 주로 참고되었지만, 어떤 것들은 인도, 중동, 스페인 등에 기원을 둔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 지역에서 구전되던 것들이리라고 추정한다.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확정하기 어렵지만 라인보는 이 후자의 것에 강조를 두는 듯하다.] 보카치오와 농민들의 관계는 해리스(Joel Chandler Harris)와 흑인들의 관계에 비견될 수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해리스는 흑인의 구비전통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을 Uncle Remus: His Songs and His Sayings(1880)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둘 모두 원래의 이야기들의 농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상류층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간간이 쾌활하게 풍자되곤 하지만 말이다.

농민들은 “도와줄 의사도 하인들도 없었으며 길가에, 들판에, 집에 밤낮 없이 하루 종일 쓰러져서 인간이라기보다 동물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보카치오는 이 재미있는 책을 위안과 연민에 대한 짧은 논변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는 아픈 사람을 간호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기라는 주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의미하는 위안이란 도시를 버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흐느낌”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생판 남인 양 자신의 자식들을 돌보고 돕기를 거부했다.”

『데카메론』의 일곱 숙녀들과 세 신사들이 도시를 피한 것은 “대부분의 집들이 공동재산이 되었”기 때문이고 “신과 인간의 법에 대한 모든 존중이 우리의 도시에서 실질적으로 무너졌고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가족을 잃는 것이 “웃어대고 재담을 하는 등 모두 즐거워하게” 하는 신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숙녀들은 예배에서 만나서 이야기하며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범죄자들이 추방되지 않고 “법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면서” 거리를 싸돌아다니는 상황이며, 숙녀들은 “우리의 피 냄새를 맡고 자신들을 교회의 머슴이라 부르며 온갖 곳을 시끄럽게 활보하며 음탕한 노래를 불러 우리의 상처에 모욕을 추가하는 도시의 불량배들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숙녀들은 도시를 피하고 동양의 향료를 친 연회음식들의 소화를 돕기 위해 여러 재담과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이 향료들은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pasteurella pestis)’를 가져온 바로 그 배에 실렸던 것이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가 바로, 벼룩이 매개체이며 ‘검은 쥐’(ship rat, 곰쥐=black rat)가 숙주인 미시기생체의 이름이다. [최초로 페스트균을 분리해낸 예르신Yersin 이 처음에 그 균의 학명을 파스퇴르 연구소를 기념하여 이렇게 지었다. 이는 나중에 ‘이에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학명으로 바뀐다.] 이 쥐는 두 거시기생체들의 합작으로 유럽에 왔다. ① ‘약탈자 칭기즈 칸’(Ghengis Khanis plunderitis)이 낳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생명체들의 급속한 순환 ② 유럽 상품교역의 중심동맥인 ‘탐욕스런 베네치아’(Venetia avaricious)라는 바이러스. [라인보는 칭기즈칸과 베네치아를 라틴어 두 단어로 된 페스트균의 학명처럼 표기하고 있다.] 이 거시기생체들은 자기면역의 기술들을 아직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유럽 도시지역에서 질병의 만연을 다루는 ‘행정 루틴들’(환자선별분류, 격리)이 없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는 잔치를 벌일 만큼 풍부한 인간집단을 발견했다. 숙주의 방어력이 영양실조와 전쟁으로 심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농민들은 이 재앙에 맞서는 나름의 방어패턴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교회, 주(Lord), 군주라는 기생체들에 맞서는 천년왕국운동과 농민반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사례들 가운데 영국의 롤라드운동(The Lollard movement)과 이탈리아의 소형제회운동(Fraticelli movement)이 있다. [롤라드운동은 14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개신교 이전의 기독교 종교운동이며, 소형제회는(이탈리아어로 ‘Fraticelli’, 영어로는 ‘Little Brethren’) 성자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의 회칙, 그 중에서도 특히 청빈에 관한 회칙을 극단적으로 옹호한 프란치스코회 내부 급진소수파다.] 지배계급의 관점을 가진 논평자들이 흑사병을 환영한 것은 이 병이 모든 다른 형태의 일탈만이 아니라 이 두 운동에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이다. 질병에 대한 지배계급의 이론은, 병이 천체들에서의 변화(점성술)에 영향을 받은 것이거나 아니면 간악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신이 내린 천벌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의 연대기편자 나이턴(Henry Knighton)은 흑사병이 가령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막고 처벌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치료제’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흑사병이 진행되는 동안 악랄한 유대인학살이 행해졌다.

한편 교회는 돈을 받고 구원을 제공했다. 교황은 기독교인들을 로마로 초청했다. 120만 명이 부름에 따랐으며 순례를 마치면서 헌금을 바쳤다. 그리고 10%만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나머지 90%는 그들의 시신 또한 바쳤다. 교황은 교인들을 피해 더 풍토가 좋은 곳인 아비뇽으로 몰래 도망갔으며 거기서 주사위공장들을 묵주제조공장으로 전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독일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 듯하다. 바로 중앙유럽에서 채찍질운동(Flagellant movement) 혹은 십자가의 형제들(the Brothers of the Cross) 운동이 흑사병에 대한 대응으로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들도 몇 명 끼어서) 황폐해진 시골지역을 200-300명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이들은 도시(town)에 도착하면 큰 원 모양으로 모여서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며 광적인 상태가 되어 울고 노래하고 소리쳤다. 처음에 당국은 이들을 미심쩍어 하면서도 그냥 놔두었다. 그러나 채찍질운동이 교회에 이익을 줄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이 운동이 위계를 조롱하고 수도원이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것들을 약탈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경건한 가학피학증은 혁명적 천년왕국운동으로 전환되었다.

흑사병이 낳은 대규모의 대량학살은 거시기생체들에 보복을 가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는 봉기의 원천을 멸절하지도 않았고 노동계급을 훈육하여 고역을 감당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유럽에서 임금은 두 배로 올랐으며 삶은 실제로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더 나아가 로저스(Thorold Rogers)의 말을 빌자면, “흑사병은 토지의 점유에서 완전한 혁명을 일으켰다.” 이는 영국에서 정점에 달했는데, 이곳에서 1381년에 일어난 농민봉기는 봉건제의 역사적 위기를 낳았다. 농민들과 도시의 장인(匠人)들이 수도원들을 공격하고 감옥을 해방시키며 토지를 차지하고 법률가들·성직자들을 공격하면서,

아담이 땅을 파고 이브가 실을 자을 때
그때 누가 신사였는가?

라는 강한 슬로건 아래 뭉쳤다.

의미는 이중적이다. ‘파다(delve)’와 ‘잣다(spin)’ 같은 단어들은 농업의 비옥함을 가리킬 수도 있고(쟁기질과 추수) 인간의 생식을 가리킬 수도 있기(성교와 출산) 때문이다.

 

  1. 콜럼버스의 교환 (The Columbian Exchange)

1492년에 봉건제가 끝나고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상인들, 은행가들, 초기 자본가들이 유럽의 군주들과 손을 잡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여 농장주들, 농민들, 도시 장인들에 맞섰으며, 농장주들, 농민들, 도시 장인들은 넓은 세상의 공통적인 것(the wide world’s common)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들은 바로 유럽 제국들의 육군과 해군에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대대적인 임금노동 경험을 했다. 미시기생체들의 대륙 간 전송의 관점에서 볼 때 콜럼버스의 교환은 간단하게 천연두와 매독의 교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독을 최초의 ‘역사적’ 질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전염병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이 생물학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는 데 있다.

유럽인들은 효율적인 보균자들이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라인보는 그냥 ‘아메리카인들’(the Americans)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방어능력이 없었다. 15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전염병이 멕시코를 유린했으며 17개의 전염병이 페루를 강타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천연두였다. 멕시코는 정복당한 지 10년 이내에 인구가 2500만 명에서 168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180만 명으로 떨어졌다. 이와 유사한 학살이 페루에서도 일어났다. 질병에의 저항력이 노예상태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서 크게 약해져 있었다.

유럽인들은 세균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1616-1617년 뉴잉글랜드의 유행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코튼 매더(Cotton Mather)는 쓰고 있는데, 매더는 매사추세츠를 “새로 발견한 골고다”로 보았다.[‘해골’을 의미하는 ‘Golgotha’는 ‘Calvary’라고도 불리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처형장이다.] 필그림스(Pilgrims)[1620년 미국으로 건너가 플리머스 식민지에 초기에 정착한 영국의 분리주의자들]가 ‘언덕 위의 도시’라고 부른 곳은 이렇듯 로마의 처형장에 비견되었다. [마태오의 복음 5장 14절에 나오는 “city on the hill”은 한국어본 성경들에서는 ‘산 위에 있는 마을’, 또는 ‘산 위에 있는 동네’라고 옮겨져 있다.] 역사가 드레이크(Francis Samuel Drake)는 버지니아 주(州) 로어노크(Roanoke)의 “미개한 족속”에 대해 쓴 바 있는데, 드레이크를 돕는 한 원주민에 따르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그토록 빨리 죽게 만든 것은 영국의 신”이라는 말이 돌았다.

다른 한편, 콜럼버스의 배가 돌아가고 나서 가장 ‘역사적인’ 질병이라는 매독이 유럽에서 악성 전염병의 형태로 등장했다. 그 이후 “문명과 매독 감염은 함께 전진했다.”

매독은 즉시 자본주의의 고전적인 질병이 되었다. 첫째, 눈 깜빡할 새(1500년 경)에 매독은 유럽 제국들에 의해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둘째, 이는 쾌락을 규제하는 핑계가 되어 공중목욕탕이 폐쇄되었고 키스는 수상한 행동이 되었으며 술잔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사라졌다. 셋째, 매독은 민족주의의 질병이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병이라고 불렀고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병이라고 불렀으며 독일인들은 폴란드병, 폴란드인들은 러시아병, 중국인들은 유럽병, 일본인들은 중국병이라고 불렀다.

이런 민족주의적인 낄낄댐 아래에는 인종주의적 도살의 히스테리적인 웃음이 깔려있다. 1530년쯤 이 병은 이탈리아의 시인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가 지은 「씨필리스」(“Syphilis”)라는 시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 시는 신에게 복종하지 않은 벌로 이 병을 얻은 아이티의 한 양치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점으로 보아 이 이름 자체가 그 기원에 잠재한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암시했다.

넷째, 매독은 완전히 부르주아 여성혐오증의 질병이었다. 이는 여러 방면으로 작용했다. 매독의 두려움은 유럽에서 르네쌍스 여성들의 대량학살―이는 ‘마녀광기(witch craze)’[=마녀사냥witch-hunt]라고 불렸다―에 필수적인 구성요소였다. 매독은 악마의 표식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1826년에 교황은 콘돔의 사용을 금지했다. 죄를 저지른 인체의 부위에 벌을 내리는 것이 신의 섭리인데, 콘돔은 이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1987년 9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캐스트로(the Castro)[샌프란시스코 유레카밸리 근교에 있는 동성애자들의 마을]의 사람들은 ‘교황은 동성애자가 되라(Popo Go Homo)’고 요구했다. [당시 2000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는데, 동성애자활동가들, 페미니스트들, 유대인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여러 문구 가운데 하나가 다른 문구들 가운데 하나인 ‘Pope Go home’을 변형한 ‘Popo go homo’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같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지도자들은 대량학살의 의도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내가 만일 판사라면 나는 저런 유독한 매독에 걸린 탕녀들을 거열(車裂)형에 처하고 살가죽을 벗겨 죽일 것이다. 저런 더러운 탕녀들이 젊은이들에게 끼칠 해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오면 부르주아지는 매독을 귀족층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귀족들에게는 매독이 용감성의 표식이었다!) 성애에 대한 자신들의 사정없는 억압을 보상해주는 것으로 보았다.

 

  1. 시체들을 실은 마차가 더 많이 기여했다···” (“The Death Carts Did More···”)

“역병을 아는 데에는 역병이 필요하다”는 말은 예방접종의 원칙에 대해서도 할 수 있고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 서술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이 말은 대니얼 디포의 책 『역병 일지』(The Journal of the Plaugue Year, 1722)[한국어본이 『전염병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에는 확실하게 적용된다. 이 책은 겉으로는 1665년의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과 관련이 있지만 실제로는 선페스트(bubonic plague)와 천연두가 유럽과 대서양 서쪽 지역에 재등장한 1721년의 역병을 다루는 데 공헌했다.

1721년에 선페스트가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를 종교적인 경건함과 억압적인 검역(격리)으로 맞이했다. 네덜란드 항구에서는 뱃짐들이 불태워졌고 선원들은 옷을 다 벗고 해변으로 헤엄쳐 가도록 강요받았다. 런던에서는 남해버블(South Sea Bubble)이라는 금융스캔들 때문에 수익이 떨어져 휘청거리는 상인들이 이와 유사한 격리조치에 동의하기를 꺼렸다. 위험은 ① 최근 수탈된 몇몇 왕의 삼림들에서 일어난 게릴라 형태의 운동 ② 런던의 산업화된 직공(織工)들에 의한 심각한 파업 ③ 도시 범죄의 급증 그리고 ④ 왕조에 저항해서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이라는 네 가지 흐름이 교차하는 종합국면에서 발생했다.

이 불안정한 현상들은 노동계급의 무절제한 행동과 구빈원 설립의 필요성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 한가운데서 발생했다. 그래서 정부는 런던 주교에게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주교는 디포를 고용해서 전염병의 관리를 특징짓는 정신적 공황 형성에 기여하는 글을 쓰게 했다.

한편, 같은 해에 대서양 건너편 마블헤드(Marblehead)와 보스턴에서 예방접종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면역학의 역사에서 질병통제를 통한 계급전쟁의 고전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이야기는 유명한 여류 문학자 메리 워틀리 몬태규(Lady Mary Wortley Montagu)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남편이 대사로 재직했던 콘스탄티노플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파도바의 가장 앞서가는 의과대학교에서 예방접종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낳는 효과를 공부했던 두 명의 그리스 의사에게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왔다. 그 의사들은 테살리아에 사는 그리스 여성농민들에서 접종법을 배웠다. 이렇듯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또는 약초를 사용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민간요법이 ‘서양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다.

‘서양 의학’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뉴잉글랜드의 예방접종 논쟁에서 포착할 수 있다. 천연두는 상인들과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원주민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유용한 우군이었다. 세균전은 수탈과 집단학살의 선제조건이었다. 1763년 제프리 앰허스트(Lord Jeffery Amherst)는 천연두에 감염된 담요를 적의 부족들 사이에 배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720년대에 이 질병은 실질적인 위험으로서 지배층 엘리트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올 우려가 있었다.

영국에서 예방접종을 재빨리 수용한 것은 천연두가 귀족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왕조의 위기를 초래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앤 여왕의 아들이 천연두로 죽어서 하노버 왕가로 왕위가 넘어갔으며 합스부르크가 사람 하나가 천연두로 사망함으로써 스페인왕위계승 전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보일스톤 박사(Dr. Zabdiel Boylston)가 보스턴에 예방접종을 소개하자 코튼 매더가 선뜻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는데, (우리가 보았듯이) 이때에는 지배계급이 ‘과학을 위한 희생’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더는 오랜 사용으로 효과가 입증된 모세의 게임(Mosaic game)을 하며 “질병은 사실 인간의 죄에 신이 내리는 채찍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채찍질’이 막상 그의 등을 위협했을 때 그 또한 ‘멘투’에게 의지했는데 그는 보수도 주지 않고 고용한 오네시모스(Onesimus)라는 이름의 아프리카인으로부터 접종을 알게 되었다. [‘Onesimus’는 기독교의 신약성서인 빌레몬서에 나오는 빌레몬의 노예이며 바울을 만난 후 개종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접종은 두 가지 근거로 격렬하게 반대에 부딪혔다. 하나는 그것이 비싸고 따라서 부자만이 접종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면역력을 생성할지라도 감염을 예방하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코튼 매더의 집 창문으로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마블헤드에서는 어부들, 해상 노동자들 및 접종에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폭동(“이교도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들은 접종을 장려하는 자들의 집을 무너뜨렸다.

이렇듯 1721년은 자본주의적인 전염병학의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지배계급은 ‘우연한’ 죽음을 맞이할 위험이 있었고, 노동계급의 지식이 강탈되었으며, 전염병의 파괴성의 관리에 계급성이 부여되었고, 공황(panic)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의미심장하게도 미시기생체의 역사가 거시기생(macroparasitism)이라는 계급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병원과 의약품 교역의 제도적 기반시설과 함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내과 의사들 및 외과 의사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역병 일지』에서 사용된 방법은 투키디데스의 정치가 같은 분석도 아니었고, 모세의 마법을 부리는 귀신도 아니었으며, 보카치오의 태평한 즐거움도 아니었고, 집단학살을 촉구하는 청교도 지도자들의 열변도 아니었다. 디포는 ‘상식’에 호소하는, 상점 주인들이 갖고 있는 형태의 지식을 제시한다. 즉 ‘구술 역사’의 맥락에서 이야기된 사례들을 경험적으로 결합시켜 놓은 것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머리 가로젓기, 악어의 눈물, 동네 수다, 노동자들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말들이 많이 들어있다. 이런 방식은 믿을 수 있고 그럴듯한 논픽션, ‘인쇄하기 적합한 소식’인 양 가장한다. 왜일까?

전체 기획은 표면적으로는 화려했고 핵심에서는 반혁명적이었다. 거시기생체는 그 숙주들을 들들 갈아서 가난, 영양실조에 빠뜨리고 골수를 파괴함으로써 공격한다. 면역체계는 과도한 노동, 점점 더 많은 잉여가치의 추출로 인해 무너진다. 영국의 거시기생체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겉모습을 하고 있었고(의회가 있는 입헌 군주제, 지주와 상인으로 구성된 지배계급), 다른 한편으로 이 관습적인 모습에 새로운 요소 두 가지를 더함으로써 1660년대에 어떤 강력한 변이를 이루었다.

그 첫 번째 요소는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아일랜드, 아프리카, 벵골, 카리브해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먹이로 삼을 숙주들을 찾았다. 그 DNA는 귀족적이어서 뉴턴과 로크가 했던 것처럼 다양한 숙주들에 맞추어 특수하게 패턴화된 공격을 발전시켰다. 이 거시기생체는 파라오의 마법사들에 비유될 수 있으며, 아테네의 투키디데스와 피렌체의 보카치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1665년 역병이 도는 동안 뉴턴은 거시기생체들에게 매개체들, 순환, 유동에 관하여 정보를 주는 미분법을 개발했다.

추가된 두 번째 요소는 나폴레옹이 ‘상회 주인’(shopkeeper)이라 불렀던 층, 역사가들이 ‘중간 부류’라 부르는 층, 맬서스(Thomas Malthus)가 ‘근면한’ 자들이나 ‘훌륭한’ 자들이라 불렀던 층, 수가 많고 점잖다는 층이었다. 이들은 숙주인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힘을 빨아먹었다. 이들은 막대기와 돈주머니로 묘사되어야 하는데, 그 활동이란 것이 세는 것과 강압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궁전이 아니라 집에서 살았다. 융통성이 없고 입술이 얇은 이들은 1640-1660년의 영국혁명에 의해 심하게 위협을 당했었다. 디포는 바로 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

중세시대에 가난은 축복이었고 노동은 저주였다. 1660년 이후 거시기생체들은 이것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1665년의 역병 이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노동을 신성하게 보는 사고방식이 훌쩍 대세가 되었다.

디포는 거지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놀이, 게임, 발라드 부르기를 금지하며 축제모임을 금지하는 도시 당국의 명령을 기록하고, 오후 9시에 선술집·맥주집·커피하우스를 닫으라는 법령을 기록한다. 일하며 살기, 재미있게 보내기, 음식을 아주 많이 즐기기 또는 늦게 술마시기는 이렇듯 단성생식 신드롬(parthenogenetic syndrome)[모임의 금지로 인해서 개인들이 서로 격리되어 원자화된 현상]의 일부가 되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질병의 매개체로 간주되었다. 교구의 조사관들, 야경꾼들 그리고 수색관들로 이루어진 경찰의 감시체제가 수립되었다. 장례식은 폐지되었고 죽은 자를 위한 어떤 모임도, 심지어는 예배시간의 위령기도조차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매장은 밤에만 허용되었다.

디포는 가난한 자들이 “모험적 행동”을 함으로써 역병을 자초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언제나처럼 앞날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분별없고 무절제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공장에서의 근면한 노동습관(시간엄수, 규칙성, 절약 그리고 복종)이 면역력을 준다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아픈 자들을 돌보며 감염된 사람들을 격리시설로 옮기고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보이는 그들의 ‘무자비한 용기’는 가난한 자들이 왜 천연두에 걸리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특히 “어마어마한 수가 간병 일로 분주했”던 여성들이 “가장 무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필사적”이었다.

디포는 감염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동체들을 공격한다. 더 나아가—이것이 섬뜩한 부분인데—그는 계급 규율 유지에 역병이 유용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전에 말했듯이 시장과 재판관들의 훌륭한 관리가 분노와 절망에 찬 사람들로 하여금 갑자기 폭도가 되어 날뛰지 못하게, 즉 빈자들이 부자들을 약탈하지 못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분명히 말하는데, 시체들을 실은 마차가 더 많이 기여했다.” 이것이 유행병이 사회적 사건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물이 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첫 번째 것이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1/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1-3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커먼즈의 역사가라 불리는 라인보(Peter Linebaugh)가 Against the Grain과 가진 인터뷰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2020. 04. 08)의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정리하려다가 이 인터뷰의 원자료가 되는 팸플릿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1989. 02. 26)의 내용을 먼저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팸플릿은 에이즈 종식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적 풀뿌리정치단체인 <액트 업>(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1988년 창립)의 돌을 맞아 라인보가 일종의 생일선물로 작성한 것으로서 모세의 시대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닥친 역병들에 대한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제목의 ‘lizard talk’(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는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인 민중의 지식을 가리킨다. 이는 근대 이후로는 (특히 역병의 경우에) 과학적 지식에 의해 보완될 것이지만, 인류의 역사 내내 저류에서 존재했던 지식이다. (물론 망각되기가 십상이기도 하지만.) 라인보는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이 1939년에 출애굽기 이야기를 흑인의 관점에서 다시 쓴 소설 Moses, Man of the Mountain((http://onlinereadfreenovel.com/zora-neale-hurston/p/18/33960-moses_man_of_the_mountain.html))에 나오는 마구간지기 멘투(Mentu)를 이 지식을 전하는 사람의 원형으로 본다. 멘투는 모세에게 “만물의 시작에 대한 모든 것”을, 즉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를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이 팸플릿 자체가 하나의 ‘lizard talk’이고, 라인보가 멘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라인보 자신이 밝히듯이, 라인보가 이 팸플릿을 통해 전하려는 요점 가운데 하나는 아래로부터 역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위로부터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현대의 주류 미디어는 거의 대부분 우리를 위로부터 보는 관점으로 세뇌한다.) ‘lizard talk’에 바로 이 아래로부터의 지식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요점은 미시기생체(microparasite, 즉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때마다 거시기생체(macroparasite, 즉 각종 형태의 지배계급)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지배를 더 강화하려 하지만, 반대로 아래로부터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 기반을 두어 사회를 전복시킬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결코 먼저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라인보의 ‘lizard talk’는 여기서 좀더 나아간다. 팸플릿의 맨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우리가 더 섞이고 교류할수록 ··· 우리는 더 강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병/병원체들과의 관계 역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인류의 활력의 역사의 일부인 것이다.

    이 팸플릿의 내용이 조금 많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도 있고 해서 네 번에 나누어서 올리려고 한다. 먼저 ① 서두와 1·2·3절을 묶어 올리고(정리자 정백수), 그 다음에 ② 4·5·6절을(정리자 정백수), 이어서 ③ 7·8 절(정리자 성철), 마지막으로 ④ 9·10절을 묶어 올릴 것(정리 영광)이며, 그 뒤에 앞에서 말한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릴 것(정리자 정백수)이다.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은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서두]

에이즈도 그 이전의 전염병들처럼 분할(젠더들 사이의 분할, 인종들 사이의 분할, 민족들 사이의 분할, 대륙들 사이의 분할)의 원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분할은 역풍을 맞았다. 이에 맞선 투쟁은 우리를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투쟁들이 에이즈에 맞선 투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답하는 선물로 10개의 역병의 역사를 드리겠다.

HlV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실질적으로 출현했다. 동시에 시카고에서는 한 경제이론이 퍼졌는데, 이 이론은 세계 전역의 가난, 기근, 질병 등을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조직했다. 지배계급의 막장 부패는 레이건이 상징했다. 시카고는 또한 법 해석에 자유시장경제 모델들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는데(포스너Stephen Possner), 이는 정의로움에 신경 쓰기를 그치고 삶과 죽음의 비용편익을 수량화했다. 이런 법학자들이 정치적 우세함을 얻었다. 오래지 않아 인문학 분야의 개[犬]들도 베넷(William Bennett)의 멍멍거리는 명령 아래 ‘서양 문명’의 찬양에 동참했다. 시카고 역사가 맥닐(William McNeill)은 에이즈 팬데믹이 등장하기 조금 전인 1976년에 『역병들과 민족들』(Plagues and Peoples)를 냈다.

그는 우리의 생존이 ① 우리 몸에 사는 미시(微視)기생체들(microparasites,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맞선 싸움과 ② 거시(巨視)기생체들(macroparasites, 여러 형태의 지배계급들)에 맞선 싸움에서 살아남는 데 달려있다고 본다. 기생체는 어떤 종류든 숙주에 의존한다. HIV든 지배계급이든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숙주를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는 것이 기생체에 이익이다. 숙주는 기생체를 위한 잉여를 생산하는 정도까지만 살도록 허용된다.

맥닐은 『나의 투쟁』의 히틀러처럼 떠벌이지는 않지만, 질병을 은유적으로 다루는 문제점을 보이기는 한다. 그는 질병에 대해 일반인이 가진 지식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배계급에 대해서는 시카고 사람이 가진 정도의 지식을 가가지고 있다. 역병과 역사에 대한 계급 관점에서의 분석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the lost history of our own communism)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도마뱀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다.

 

  1. 고대 이집트의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 in Ancient Egypt)

고대 이집트의 역병들은 루터교, 깔뱅교, 바티칸, 시온주의에서 ‘검디검은 아프리카’를 ‘영광의 그리스’로부터 구분하는 기초원리였다. 즉 관개의 제국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이집트)을 도시국가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그리스)로부터 구분한 것이었고, 고대의 제3세계를 고대의 제1세계로부터 구분한 것이었다.

구약의 역병들은 기원전 14세기에 일었다. 이는 출애굽기에 서술된 전염병들이다. 출애굽기는 적어도 300년 뒤인 솔로몬의 재위 시에 지어졌다. 출애굽기는 예배에서의 암송, 노래, 연대기를 요약한다. 고대 국가의 공식적 신화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에 맞추어 취급되어야 한다.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출애굽기의 역병들을 범아프리카적 이야기로 본다. 그 전염병들은 힘을 가진 지팡이―이는 노예들을 자유로 이끄는 뱀신(a serpent god)이다―를 지니고 있는 모세의 마법이 발휘된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의 억압자들 및 이집트의 신들과 싸워야했다. 파라오에게 이긴 것은 우월한 마법으로 인한 승리였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지팡이가 뱀이 된다. 그가 지팡이를 나일강의 물에 담그면 강물이 핏물이 된다. 그가 흐르는 강물 위로 지팡이를 뻗으면 개구리들이 땅을 덮는다. 그가 땅의 먼지를 치면, 구더기들이 올라와 인간과 짐승을 덮는다. 파리들, 우박들, 메뚜기들, 일식들, 전염병들―이 모든 것들을 모세의 지팡이가 불러오며 파라오의 마법사들은 항상 쩔쩔 맨다. 이런 식으로 야훼는 개구리신, 태양신, 가축신들을 물리친다.

허스턴이 발견한 바로는 이런 뱀-지팡이 힘은 아이티(Haiti)와 다호메이(Dahomey)[약 1600년부터 1904년 사이 오늘날 베냉 지역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왕국]에서 살아있는 힘이다. 노예들과 무법자들(‘Hebrew’라는 단어가 가진 이집트어 의미들이다)의 지도자인 모세는 어떻게 그의 마법을 얻었을까? 그는 그것을 파라오의 마구간지기인 멘투(Mentu)[‘mentor’를 연상시키도록 고안된 이름이다]로부터 얻었다. 멘투가 모세에게 전해준 것이 바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이다. 지식을 전수받는 대가로 모세는 멘투에게 파라오의 부엌에서 남은 음식들을 가져다준다. 예전에는 삶은 돼지머릿고기를 먹었는데 이제는 모세가 가져다주는 더 좋은 부위를 먹게 된다.

마법-지식의 계급적 특성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부엌과 마구간에서 만들어지며 대가를 받고 교환되며 그 다음에야 반란, 학살, 새로운 왕국이라는 익숙하고도 모호한 이야기가 오게 된다. “‘모래를 나르고 회반죽을 갤 일은 이제 없어! 파라오를 위해 돌을 가져오고 건물들을 지을 일은 더 이상 없어! 채찍을 맞아 등이 피가 낭자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아직 어두운 아침부터 어두워진 저녁까지(from can’t see in the morning to can’t see at night) 노예로 일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자유! 자유! 멍청해질 정도로(till I’m foolish) 자유야.’ 그들은 수 세기의 세월을 눈에 담고 그저 앉아서 울었다.”[이 대목은 Moses, Man of the Mountain에서 모세로부터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후 모세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보여준다. 모세는 환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예상은 틀렸다.]

분명 이는 기독교, 유대교, 부두교(Voodoo)에 다 걸쳐있는 역사적 존재인 흑인의 해방 이후에만 가능한 버전이다. 여기서 이집트의 전염병들에 대한 독해는 자본주의의 신들이며 실로 ‘노동하라, 아니면 교수형이다’라는 복음을 전하는 루터와 깔뱅의 정반대이다.

 

  1.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고대 그리스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귀족 가문 출신인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영광의 그리스’에 속한다. 그는 아테네 제국의 국경에 있는 금광의 관리자였다. 그는 실패한 장군으로서 20년 동안 유배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The Peloponnesian War)을 지었다. 이 책을 ‘서양 문명’의 일부로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해상 제국주의를 찬양했으며, 지중해의 패권을 쥐려는 아테네의 노력을 이야기했다. 그는 상품생산으로의, 화폐형태로의 이행기에 살았다. 이는 곧 해적질에서 상업으로의 이행이었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의 책은 모세의 마법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설명한 소피스트 질병이론―증상의 관찰, 진행과정의 기록, 위기의 포착, 원인의 분석―이 이 책에 영향을 주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둘째 해인 기원전 430년에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침입하여 은광산을 공격했다. 동시에 전염병이 아테네를 덮쳐 맨 먼저 항구도시 페이라이에우스(Peiraieús)를 공격했다. 소문에 따르면 이 병은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너머 에티오피아에서 애초에 발생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이는 ‘타자’의 질병으로 간주되었다. ‘검디검은 아프리카’가 서양문명을 괴롭힌다는, 그리고 ‘서양문명’은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테네에서 이 병은 병사들을 죽이고 도시 인구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스파르타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자 이 병은 맹렬한 속도로 퍼졌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염병의 증상을 염증, 갈증, 불면증, 설사라고 서술한다. 투키디데스로서는 이 병을 자연적 위기의 일부로서 보는 수밖에 없다. 새나 짐승도 감염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했다.

외교관들과 은행가들의 역사가이며 모든 정치가를 위한 핸드북을 쓰는 투키디데스는 이 유행병에 ‘자연적’ 측면을 조금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이름 모를 질병이 유발한 ‘극단적 무법’을 서술했다. “번영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고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이 그들의 번영을 이어받는, 급속한 변화를 보고 ··· 사람들은 이제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했다.” 질병의 사회적 동학은 해방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걱정이 되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든 인간의 법이든 그들을 제한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전염병은 또한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를 낳았다. 페리클레스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 자신도 전염병에 굴복했다. 이것이 군사적 전환점이 되어서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떠났다. 이 병은 모든 곳에서 계급투쟁을 격화시켰다. 코르큐라 섬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익숙한 가난을 제거하기를 바라고 이웃의 재화를 열렬히 탐낸 자들의 간악한 의지”와 “공정한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 실로 지배자들의 오만한 대접만을 받은 피지배자들이 가하는 보복”이 투키디데스를 걱정시켰다. 그러나 노예들, 가난한 사람들, 피해를 입은 사람들 쪽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 바로 치료과정이 되었다.

 

  1. 기독교와 대탕녀 바빌론’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로마 시대의 거시기생체들은 공납, 세금, 십일조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 세계의 민족들을 먹이로 삼았다. 팔레스타인에서 포르투갈에 걸쳐 있는 가난한 서민들은 이방인들의 공격으로부터의 면역성을 시저와 네로의 문명화된 군대들에 돈을 지불하고 샀다. 이 ‘보호자들’은 그들의 ‘건강’을 아프리카, 인도, 북부 유럽까지 확대하여 네 개의 인간 질병 유전자풀(유전자급원遺傳子給源)이 지중해 세계로 합류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유행병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홍역, 천연두,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이질, 볼거리, 말라리아가 정기적으로 찾아오면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이는 상업과 정복이 이 ‘알려진 세계’를 확대하면서 기원 후 543년 유스티니아누스의 역병[나중에 ‘흑사병’이라 불리게 된 ‘페스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지중해 질병 유전자풀의 형성은 힌두교, 불교, 기독교가 공고화되던 바로 그 세기들에 일어났다. 질병과 종교는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각 종교의 초월적 숙명론이 중국, 인도, 로마의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제도화된 기독교인들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았으며, 죽음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정의는 저승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카이싸레아의 에우쎄비우스(Eusebius of Caesarea)는 흐뭇하게 자신의 교회를 신뢰했으며, 카르타고의 주교는 죽음을 ‘유익한 떠남’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로마 제국의 미생물학은 초기 교회 건립자들의 신학장사에 묻히게 되었다.

그런데 ‘대탕녀 바빌론’인 로마의 거시기생체는 파토모스의 요한에게 규탄을 받았는데, 요한은 「요한의 묵시록」에서 증거의 천막(the Tent of Testimony)에서 일곱 재난(Seven Plagues)과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일곱 대접(Seven Bowls of the Wrath of God)을 갖고 나온 일곱 천사에게서 구원을 본다.

첫째 대접은 독한 종기를 쏟아냈다. 둘째 대접은 바닷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셋째 대접은 강물과 샘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넷째 대접은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 다섯째 대접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게 했다. 여섯째 대접을 유프라테스 강에 쏟자 강물이 말라버렸다. 일곱째 대접을 쏟자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이런 대목들은 중세(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에서 17세기(아비저 콥Abiezer Coppe)를 거쳐 20세기(피터 토시Peter Tosh, 밥 말리Bob Marley)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년 동안 천년왕국설 신봉자들과 혁명가들에게 예언적 희망의 원천이 되어왔다.[피오레의 요아킴은 이탈리아에서 <피오레의 싼 조반니> 수도회를 창설한 사람이고 아비저 콥은 영국의 종교운동가이며 이탈리아의 피터 토시는 밥 말리와 함께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가이다.]

「요한의 묵시록」전체에 담긴 계급적 분노가 이 묵시록을 대중을 위한 아편이라기보다는 전위를 위한 크랙[강력한 코카인의 일종]으로 만든다. 바빌론과 간통을 한 지상의 왕들과 바빌론의 부풀어진 부에 기반을 두어 부자가 된 세상의 상인들은 울며 슬퍼할 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상품을 사고 팔 수가 없었다. “그 상품에는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모시, 자주 옷감, 비단, 진홍색 옷감, 각종 향나무, 상아 기구, 값진 나무나 구리나 쇠나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밀가루, 밀, 소, 양, 말, 수레 그리고 노예와 사람의 목숨 따위”가 있었다.[「요한의 묵시록」18장 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