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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와 자본의 회로

 


  • 저자  :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 원문 :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5월호라고 하지만 3월 27일에 업로드되었다.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본 블로그에 직전에 올린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와 싸샤 릴리(Sasha Liley)의 인터뷰에서 라인보는 이 글을 자신에게 생산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든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의 저자들은 모두 네 명이다. 롭 왈리스(Rob Wallace)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의 자문역을 한 바 있는 진화전염병학자(evolutionary epidemiologist)이다. 리브먼(Alex Liebman)은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인문지리학 박사과정 학생이다. 차베스(Luis Fernando Chaves)는 질병생태학자이며, 코스타리카의 트레스리오스(Tres Rios)에 있는 <코스타리카 영양 및 건강에 관한 연구교육원>(Costa Rican Institute for Research and Education on Nutrition and Health)에서 상임연구원을 한 바 있다. 로드릭 왈리스(Rodrick Wallace)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New York State Psychiatric Institute)의 전염병학과의 연구과학자이다. * 정리자의 논평이나 설명은 대괄호 안에 삽입하기로 한다. 

COVID-19와 자본의 회로

 

계산

2002년 이후 가장 독한 호흡기증상 바이러스인 COVID-19는 이제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되었다. 3월말 현재 도시들이 봉쇄되었고 환자들의 폭증으로 병원들은 응급실과밀화를 겪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상황 생략]

임페리얼 컬리지(Imperial College)의 전염병학 팀은 최선의 완화(발견된 환자의 격리와 연장자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누적환자수의 상승하는 그래프 곡선을 꺾어서 수평에 가깝게 만드는 것)를 이루는 캠페인을 하더라도 미국은 110만 명이 사망할 것이고 환자의 수는 미국에서 가능한 전체 중환자병상 수의 8배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질병을 진압하려면 환자격리와 (기관들의 업무정지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거리두기 쪽으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을 이런 조치의 대표로 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의 사망자는 약 20만 명이 될 것이다.[5월 2일 현재 미국의 사망자는 65,711명이다.]

임페리얼 컬리지 팀은 성공적인 캠페인을 적어도 18개월 동안 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 동안 경제가 수축되고 공동체 서비스들이 쇠퇴할 것이다. 이 팀은 가용한 중환자병상의 수에 따라 공동체 격리의 시행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질병통제와 경제 사이의 균형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탈렙(Nassim Taleb)이 이끄는 팀은 임페리얼 컬리지의 모델이 접촉자 추적과 호별 모니터링을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모델은, 많은 정부들이 그런 식의 지역봉쇄를 기꺼이 행할 태도이지만 COVID-19는 그러한 태도를 가진 정부들을 제치고 발발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의 확산 기세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많은 나라들이 그런 조치들을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너무 과격하다. 미국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대응할 수 있는 더 온건한 바이러스가 필요하다.”

탈렙 팀은 임페리얼 팀이 어떤 조건에서 바이러스가 절멸(extinction)에 이르는지를 연구하기를 거부하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절멸이란 환자수 0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환자들이 새로운 감염의 연쇄를 산출하지 않도록 충분한 고립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감염자와 접촉한 감염 가능자들 가운데 5%만이 나중에 감염되었다. 탈렙 팀은 장기적으로 질병통제와 노동력공급의 보장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마라톤에 들어가지 않고 전면적으로 신속하게 질병을 절멸하는 중국의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이 글의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월러스(Rodrick Wallace)는 모델링 전체를 뒤집어엎는다. 비상상태의 모델링은 그것이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어디서 언제 시작할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원인들도 마찬가지로 비상상태의 일부이다. 이 구조적 원인들을 포함해야 경제를 단지 재가동하는 것을 넘어서 나아가는 최선의 대응책을 생각해낼 수 있다고 한다.

전염병 발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서의 실패는 12월 우한에서 COVID-19가 유출되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가령 미국에서 실패는 트럼프가 팬데믹 준비팀을 해체하거나 CDC의 7백 개의 자리들을 채우지 않고 두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연방정부가 2017년의 팬데믹 씨뮬레이션의 결과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는 데 실패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미국이 바이러스 발발 몇 개월 전에 중국에 있는 CDC 전문가의 수를 삭감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 현장에 있는 미국 전문가와의 직접적 접촉을 상실한 것이 미국의 대응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미 사용 가능한, WHO가 제공하는 진단키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물론 초기 정보의 지체와 검사의 총체적 결여로 인해 많은 사람들, 필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다.)[42일 현재 미국 내의 사망자는 65,776명이다.]

실패는 수십 년 전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가 소홀히되고 화폐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즉 신자유주의의 시작과 함께] 실제로 프로그램되었다. 병상과 정상적 의료활동을 위한 장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사례에 대응하는 개별화된 전염병학적 치료법에 의해 포획된 나라는 정의상 중국식 통제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집결시킬 수가 없다.

이 글의 공저자 가운데 또 한 사람인 차베스(Luis Fernando Chaves)는 ‘숫자가 말하게 하기’는 이미 안에 함축된 모든 전제들을 가릴 뿐이라고 한다. 임페리얼 팀의 것과 같은 모델들은 분석의 범위를 지배적인 사회질서의 틀 안에서 협소하게 재단된 문제들에 명시적으로 국한된다는 것이다. 이 모델들은 그 의도상 전염병의 발발과 정치적 결정들을 추동하는 더 광범한 시장 세력들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 결과로 나오는 기획들―여기에는 질병 통제와 경제를 위한 통제해제가 교대로 일어나는 동안 죽음을 당할 감염에 취약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포함된다―은 모두의 건강의 확보를 부차적인 것으로 제쳐놓는다. 푸꼬가 말한,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구에 작용을 가하는 것은 영국의 토리 정부와 네덜란드가 제안한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라는 맬서스적인 정책―인구 전체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의 (비록 더 자애롭지만) 갱신판일 뿐이다. 집단면역이 전염병의 발생의 중지를 보장하리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희망일 뿐, 그 증거는 거의 없다. 바이러스는 인구의 면역장막(immune blanket) 아래로부터 쉽게 진화해 나올 수 있다.

 

개입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나?

종합병원을 국립화한다. 검사의 양을 늘리고 소요시간을 줄인다. 약을 사회화한다. 의료종사자들의 보호를 극대화한다. 인공호흡기 등을 수리할 권리를 확보한다. 렘데시비르와 클로로콰인의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인공호흡기와 보건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개인보호장비를 생산하도록 회사들을 강제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할당한다.

연구에서 돌봄까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대적인 팬데믹 인력을 바이러스로 인한 수요의 수준에 근접하도록 확충한다. 증가된 환자의 수에 병상과 의료진, 그리고 필요한 장비의 수를 맞춘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COVID-19의 계속적인 공격에서 그저 살아남았다가 나중에 접촉자 추적과 환자격리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충분한 인력을 동원해서 가가호호 COVID-19를 포착해내고 마스크와 같은 필요한 보호장구를 갖추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탈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 질병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이 실행될 수 있기까지 대다수의 인구가 대체로 방치될 것이다. 정부들로 하여금 하기 싫어도 하도록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야 하므로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매일 새로 출현하는 상호부조단체들과 동네단체들에 참여해야 한다. 자원자들이 봉사활동을 하다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이 없도록 여력이 되는 전문적인 공공보건요원들이 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바이러스의 구조적 기원을 비상상태 시의 계획과 연계시키는 것은 모든 발걸음이 이윤에 앞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 된다.

많은 위험 가운데 하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을 규범화하는 데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사스(SARS) 바이러스가 야생의 은신처로부터 나와서 8주 만에 인간이 사는 곳에 전역에 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받은 충격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는 특이식품(exotic food)의 지역 공급라인의 한 쪽 끝에서 출현했으며 다른 쪽 끝인 중국 우한에서 인간에서 인간으로의 감염연쇄를 성공적으로 개시했다. 거기서부터 전염병은 지역으로 확산되기도 하고 비행기나 기차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여행에 의해 구조화된 연결망을 통해 그리고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내려오면서 지구 전체에 퍼졌던 것이다.

야생식품시장을 전형적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보지 말라. ‘특이식품이 어떻게 더 전통적인 가축과 함께 우한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팔릴 수 있게 되는가?’라는 명백한 질문을 생각해보자. 동물들은 트럭에서 혹은 골목에서 팔리는 것이 아니다. 관련되는 허가증과 대금지불(그리고 그 규제의 완화)을 생각해보라. 전 세계의 야생식품에 투여되는 자본과 산업생산에 투여되는 자본은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다. 비록 산출량의 크기는 어디에서도 비슷하지 않지만, 그 구분은 지금 더욱 불투명하다.

중첩되는 경제적 지리는 우한 시장에서부터 특이식품들과 전통적인 식품들이 재배되는 후배지들로 뻗어있다. 산업생산이 가장자리의 숲을 침범할 때, 야생식품업은 더 깊이 들어가거나 가장자리 지역을 공략해야 한다. 그 결과 가장 특이한 병원체들이, 가령 이번 경우에는 박쥐를 숙주로 삼는 SARS-2가, 식용동물들을 통해 혹은 그것을 다루는 노동자들을 통해 트럭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침투

어떤 병원체들은 바로 생산의 중심지들에서 발생한다. 살모넬라(Salmonella)와 캄필로박터균(Campylobacter)처럼 식품을 통해 감염되는 박테리아가 그렇다. 그러나 COVID-19를 비롯한 다수의 병원체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프런티어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인간 병원체의 적어도 60%가 야생동물에서 해당 지역의 인간 공동체들로의 유출(spillover)에 의해 발생한다. 그 다음에 세계의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와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이들은 기업식 농업이 주도하는 삼림파괴의 유혈 낭자한 가장자리를 밀어붙이는 회사들이다―으로부터 일부 재정을 지원받는 이들을 포함한 에코헬스(ecohealth)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이전의 전염병 발발에 기반을 두어 새로운 병원체들이 출현할 법한 곳이 앞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세계지도를 만들어냈다. 색깔이 붉은 색에 가까울수록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이 지도에서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의 일부가 붉다. 그런데 이 지도는 절대적 지리(absolute geographies)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중대한 점을 놓쳤다. 발발 지역에 초점을 두는 것은 전염병학을 형성하는 전지구적인 경제적 요인들이 공유하는 관계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들에서 개발과 생산에 의해 토지사용과 질병출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후원하는 자본가 세력은 발발의 책임을 토착민들과 그들의 ‘더럽다’고 추정되는 문화적 관행들에 지우는 노력에 보상을 해준다. 야생동물고기를 먹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집에서의 시신의 매장이 새로운 병원체의 출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두 가지 관행이다. 이와 달리 관계적 지리(relational geographies)의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전지구적 자본의 핵심 원천인 뉴욕, 런던, 홍콩이 세계의 최악의 핫스팟 가운데 세 곳이 된다.

발발지역들은 심지어 전통적인 정치체들에 의해 조직되어 있지도 않다. 불평등한 생태교환이 (이는 산업화된 농업으로부터 온 최악의 피해를 글로벌 사우스에 돌린다) 이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제국주의에 의한 지역 자원 약탈의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규모와 상품이 관련되는 새로운 복합체의 형태로 일어난다. 기업식 농업은 그 추출주의적 작업을 상이한 규모의 영토들을 가로지르는 공간적으로 불연속적인 네트워크들로 전환시켰다. 가령 일련의 다국적기업 기반의 ‘콩 공화국들’(Soybean Republics)은 현재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걸쳐있다. 이 새로운 지리는 회사관리구조, 자본조달, 하청, 공급체인대체, 임대 그리고 초국적 토지공동이용(land pooling)에서의 변화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 ‘상품 공화국들’은 여러 국경 사이에서 여러 생태들과 정치적 경계들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전염병학적 현상들을 산출하고 있다.

전염병의 발발과 관련하여 도시와 시골을 나누는 이분법은 시골이 도시 주변의 ‘desakotas’(city villages, 도시 마을들)나 ‘zwischenstadt’(in-between cities, 사이 도시들)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그 결과 병원체의 원초적 원천인 숲질병 동학은 이제 후배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와 연관된 전염병학적 현상들도 관계적이 되었으며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스(SARS) 같은 것이 박쥐 동굴에서 나온 지 며칠 만에 대도시의 인간들에게로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야생’ 바이러스들이 열대림의 복잡성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통제되었던 생태계들은 자본이 주도하는 삼림파괴와 공공보건 및 환경위생의 결핍에 의해 철저하게 간소화되고 있다. 많은 야생 조수(鳥獸)에서 발생하는 병원체들은 숙주와 함께 죽지만, 숲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퍼졌던 일부 병원체들이 이제는 감염에 취약한 인간집단(이들의 취약성은 종종 도시들에서 긴축정책과 부패에 의해 부실해진 규제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을 가로질러 증식하고 있다. 효과가 있는 백신이 있어도 발발한 전염병은 이전보다 더 큰 범위, 더 긴 지속기간, 더 큰 동력을 가진다. 한때 지역에 국한된 유출(spillover)이 지금은 전 지구를 가로지르는 유행병이 된 것이다.

이렇게 환경이 변한 것만으로 에볼라(Ebola), 지카(Zika), 말라리아(malaria), 황열병(yellow fever) 같은 예전의 전형적 병들이 (이는 비교적 진화를 적게 한다) 위협적이 되었다. 이 병들은 먼 마을들로 유출되고 다시 큰 도시들로 퍼져 수천 명을 감염시켰다. 오랜 동안 질병의 저장소였던 야생동물들도 블로우백(blowback)을 겪고 있다. 적어도 100년 동안 노출되어온 야생유형의 황열병에 걸리기 쉬운 토착 신세계원숭이들(New World monkeys)은 삼림파괴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서 그들의 집단면역 능력을 잃고 있으며 수십만 마리씩 죽어가고 있다.

 

확산

기업화된 농업은 여러 기원을 가진 병원체들을 가장 멀리 있는 저장소로부터 가장 국제적인 인구 중심지들까지 이동하게 하는 동력이자 그러한 이동의 연결망으로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병원체들이 농업 공동체들로 침투한다. 연관된 공급체인이 길수록, 그리고 연관된 삼림파괴의 범위가 클수록 푸드체인에 진입하는 동물원성 병원체들이 더 다양해진다. 최근에 (재)발생한 식품에 의해 전달되며 인간의 활동에 의해 유발되는 범주에 속하는 병원체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속한다. African swine fever, Campylobacter, Cryptosporidium, Cyclospora, Ebola Reston, E. coli O157:H7, foot-and-mouth disease, hepatitis E, Listeria, Nipah virus, Q fever, Salmonella, Vibrio, Yersinia ( 그리고 H1N1 (2009), H1N2v, H3N2v, H5N1, H5N2, H5Nx, H6N1, H7N1, H7N3, H7N7, H7N9, H9N2를 포함하는 다양한 신종들).

아무리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생산의 전체가 병원체의 유독성의 진화와 전염을 가속화하는 관행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다. 점증하는 유전자 단작(monoculture)―거의 동일한 게놈을 가진 식품용 동물과 식물―이 전염속도를 늦추는 방역 방화벽을 제거한다. 지금 병원체들은 평상적인 숙주 면역형질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인구밀집이라는 조건이 면역반응을 억제한다. 농장의 동물 개체수의 크기와 밀집도가 더 신속한 전염과 반복적인 감염을 촉진한다. 산업생산의 특징인 큰 처리량은 취약개체들의 공급을 계속 갱신하여 병원체의 치명성의 상한선을 제거한다. 동물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는 것은 가장 잘 퍼질 수 있는 변종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도살 시기―닭의 경우에는 6주―는 병원체들이 더 튼실한 면역체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데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산 동물의 교역의 범위가 넓어짐으로써 게놈의 다양성이 증가되고 연관된 병원체들이 교환되어 그 진화 가능성의 탐색 속도가 빨라진다.

병원체의 진화가 이런 식으로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개입은 심지어는 산업 자체가 요구하는 경우일지라도 (전염병이 발발한 비상상태에서 한 분기의 재정수익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것 말고는)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다. 전체적인 경향은 농장들과 가공공장들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점점 더 줄어들고 정부의 감시와 활동가의 폭로에 반대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며 치명적인 전염병 발발의 세부에 관해 미디어를 통해 보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농약과 식용돼지의 오염에 맞선 법정 싸움에서 최근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생산은 여전히 전적으로 이윤에 초점을 맞춘다. 전염병의 발발로 야기된 피해는 가축, 농작물, 야생, 노동자들, 지역 및 일국 정부들, 공공보건 시스템들에 외화되며, 자국의 우선성이라는 태도로 인해 해외의 대체 농업시스템들(agrosystems)로 외화된다. 미국에서 CDC는 식품에 의해 전달되는 전염병 발발이 여러 주들과 감염된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자본이 초래하는 소외는 병원체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공공 이익은 농장 및 식품공장의 문에서 걸러내어지는 한편, 병원체들은 산업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바이오안전을 지나쳐 퍼지고 공중에게로 되돌아간다. 매일 이루어지는 생산은 우리의 공유된 건강 커먼즈(health commons)를 갉아먹는 수지맞는 도덕적 해이를 내장하고 있다.

 

해방

바이러스의 발생지에서 지구의 반만큼 떨어져 있는 뉴욕, COVID-19 때문에 이동제한이 걸려있는 뉴욕에 아이러니가 있다. 3년 전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제이피모건(JPMorgan), 아메리카은행(Bank of America), 시티그룹(Citigroup), 웰스파고(Wells Fargo & Co). 그리고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연방정부의 비상대출금의 63%를 취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거대한 기업식 농업의 일부를 차지하는 Shuanghui Investment and Development의 주식 60%를 취했다. Shuanghui Investment and Development는 미국에 본사를 둔 Smithfield Foods―세계에서 가장 큰 식용 돼지고기 생산회사―를 샀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3억 달러로 푸젠성과 후난성―우한의 바로 아래 지역이며 도시의 야생식품 조달권 내에 있다―에 있는 10개의 가금농장의 소유권을 얻어냈다. 또한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와 함께 같은 지역의 식용 돼지사육에 3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렇듯 COVID-19의 발발의 원인들의 고리의 일부는 애초에 뉴욕에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의 농업의 크기에 비해 골드만삭스의 투자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말이다.

트럼프가 인종주의적으로 ‘중국 바이러스’ 운운하는 것과 같은 민족주의적인 손가락질은 국가와 자본이 서로 전지구적으로 엮여있는 상황을 가린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발생하며 국가가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팬데믹은 체제의 관리자들과 수혜자들이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2월 중순에 5명의 미국 상원의원들과 20명의 하원의원들은 팬데믹이 오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산업분야들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수백만 달러의 주식을 싼 값에 팔았다. 정치꾼들은 팬데믹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공적인 메시지가 계속적으로 나오는 가운데 대중에게는 발표되지 않은 정보를 기반으로 내부자거래를 했다. 미국의 부패는 이런 이기적인 탈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걸친 것으로서 자본이 빠져나갈 때 미국의 자본축적 사이클이 종말을 맞음을 알리는 표시이다.

생태학(그리고 그와 연관된 전염병학)의 현실보다 금융을 더 우위의 놓는 사물화된 태도를 중심으로 자본의 물줄기가 계속 분출되도록 하려는 노력은 무언가 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노력의 관점에서 보면 팬데믹은 가령 골드만삭스에게도 성장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살육에 섬뜩해진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와 다른 결론들을 낸다. 병원체들이 방사성 꼬리표(radioactive tags)[‘방사성 꼬리표달기’는 어떤 원소의 정상적인 동위원소를 방사성 동위원소로 대치하여 그 원소를 추적하는 것을 가리킨다]처럼 차례차례 표시하는 자본과 생산의 회로들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 그룹은 치명적인 질병의 출현을 낳은 삼림파괴를 항상 토착민들과 지역 소자작농들 탓으로 돌리는―에코헬스(ecohealth)[Ecohealth Alliance를 말하는 듯하다]와 <원 헬스>(One Health)에서 발견되는―근대의 식민 의료를 넘어서는 모델을 도출하는 중이다. [주석으로 달린 “The dawn of Structural One Health: a new science tracking disease emergence along circuits of capital”의 저자들―일부 저자들이 이 글의 저자들과 겹치는 것으로 보아서 두 글의 입장은 동일한 듯하다―은 ‘One Health’가 가축유행병 유출의 사회적 규정요인들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이 결핍을 메운 자신들의 모델을 ‘구조적 원 헬스Structural One Health’라고 부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질병 출현에 대한 우리의 일반이론은 아래와 같다.

자본의 전지구적 회로가 근본적인 문제다. 더 구체적으로는 유독한 병원체들의 개체수의 성장을 억제하는 환경복합성을 파괴하는 식의 자본 배치가 문제다. 그 결과로 병원체가 유출되는, 즉 원래의 야생동물 숙주에서 나와 인간 공동체로 진입하는 사건들의 속도와 분류학상의 폭이 증가한다. 도시 주위의 확장된 상품회로들이 이 유출된 병원체들을 가축과 노동력을 매개로 후미진 지역에서 해당 지역의 도시들로 옮긴다. 증가하는 전지구적 여행(및 가축 교역) 네트워크가 병원체들을 이 도시들에서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재빠르게 배달한다. 이 네트워크들이 전염과정에서의 마찰을 낮추어 가축과 인간 모두에서 더 치명도가 높은 병원체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가축의 생식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즉석에서 (그리고 거의 무상으로) 질병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인 자연선택이 제거된다.

심층에 있는 전제는, COVID-19와 그와 같은 기타 병원체들의 원인은 어떤 한 감염원이나 그 임상과정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 및 기타 구조적 원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고정시켜 놓은 생태계 관계들의 장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탈소외(disalienation)가 다음의 거대한 인간의 이행방향이다. 정착자 이데올로기를 버리는 것, 인류를 재생성의 순환으로 되돌리는 것,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 다중들 속에서 개인화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경제에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머리가 여럿인 히드라로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전유하고 내화하고 질서짓는다. 자본주의는 인종, 계급, 젠더가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지형을 가로질러 작동한다.

우리는 탈소외를 통해 이 다양한 억압의 위계들과 이 위계들이 지역마다 특수하게 축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들을 해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의 확대되는 재전유의 반경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전체주의로 귀결되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 심지어는 지속 가능성 자체도 상품화된다. 그리고 이는 공장과 농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온갖 방식으로 시장에 종속되어 있다.

자본 및 자본의 지역 대표자들과의 전지구적 규모의 충돌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업식 농업은 공공보건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공공보건이 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생태를 경제와 다시 연결하는 전지구적 물질대사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다. 우리는 직접적인 해결책들에 집중한다. 병원체의 성장을 억제하는 숲의 복잡성을 보호한다. 가축 및 농작물의 다양성을 다시 도입하며, 병원체의 유독성의 증가와 범위 확대를 막는 범위의 동물사육 및 농작물 재배를 재도입한다. 동물들의 현장에서의 자연생식을 허용하여 병원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게 하는 자연선택을 재개한다. 크게 보면,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으로 가득한 자연과 공동체를 시장에 의해서 제압되어야 할 또 하나의 경쟁자로 취급하기를 그친다.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키는 것―바로 이것이 우리의 출구이다. 지구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또한 현재의 절박한 문제들의 다수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뉴욕에서 베이징까지 이동제한이 걸려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런 발발을 다시 겪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염병은 그간의 역사 대부분을 볼 때 때이른 죽음의 가장 큰 원천이었기에 언제나 위협이 된다. 우리는 1918년부터 지금까지의 100년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또 하나의 치명적인 팬데믹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자연을 전유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조정하여 이 전염병과의 더 나은 휴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 저자  : Peter Linebaugh, Sasha Liley
  • 원문 :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 (https://kpfa.org/episode/against-the-grain-april-8-2020/)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Pacifica radio>의 프로그램 ‘Against the Grain’에서 2020년 4월 8일에 있었던 싸샤 릴리(Sasha Liley)와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의 인터뷰 내용을 (약속한 대로^^)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상황에서 라인보가 30년 전인 1989년에 쓴 팸플릿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인터뷰 당사자들에 의해 읽기 좋게 편집된 텍스트는 정리자가 알기에 현재로서 없으며, 정리자가 직접 팟캐스트를 듣고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했다. 내용 정리이지만, 잘 읽힐 수 있도록 인터뷰의 형식과 어투는 유지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내용을 이미 정리해서 옮겼으니 서로 교차해서 참조할 수 있다.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싸샤 릴리(Sasha Liley)
인간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바이러스들과 기생체들이 인간을 괴롭혀왔습니다. 계급사회의 출현 이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고통에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기생체들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역사가 피터 라인보(Perter Linebaugh)는 HIV 에이즈라는 유행병이 도는 와중에 이 역사를 추적한 바 있습니다. 라인보는 『마그나카르타 선언』(The Magna Carta Manifesto), 『메이데이의 완결되지 않은, 진실하고 진정하며 놀라운 역사』(The Incomplete, True, Authentic, and Wonderful History of May Day) 등의 저자입니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는 『뜨겁게 불타는 붉고 둥근 지구』(Red Round Globe Hot Burning)가 있습니다. 라인보, 당신은 1989년에 <ACT UP>(the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민중의 힘을 촉발하기 위한 에이즈연합)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는데요,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라고 이름을 정한 팸플릿을 쓰게 된 맥락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
저는 보스턴에서 <ACT UP>이 한창 투쟁을 하는 가운데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저는 역병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에 대한 우리의 기억 자체가 우리의 힘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세계사에 일어났던 10개의 역병들을 간단히 알아보는 일이, [COVID-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해온 싸움의 와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으며, 그로써 이 질병을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동성애혐오증적 방식으로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데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성되는 공포가 불안정과 공포의 조건에서 번성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연결고리입니다.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역병이 도는 때는 민중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때이지만 동시에 사회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대 그리스, 이집트로 가서 이 점에 대해 고찰합니다. 역사가의 눈으로 이러한 사회 질서의 전복 가능성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민중이 겪는 공포, 혼란 그리고 가난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요.

라인보
우선적으로 말해야 할 핵심은 전염병, 역병, 팬데믹이 치명적이라는 점, 즉 인간 개인들, 가족들, 공동체들을 파괴하며 때로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역병들은 사회적 삶의 재생산이라는 기획 일체와 필수적인 연관을 가집니다. 그래서 전염병들은 적어도 과거에는 역사적인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염병들에 대한 여러 대응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령 대략 2000년 전인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인간의 질병 유전자풀이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최초로 혼합된 것이지요. 아마도 이는 대륙간 통상의 한 측면일 겁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종교들이 (일신론적 종교들입니다) 형성되었습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기축시대’(axial age)를 말할 때 그는 이 종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Achsenzeit(Axial Age)’라는 말은 1949년 출간된 야스퍼스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에 처음 등장하며, 기원전 800년에서 300년 사이에 페르시아, 인도, 중국,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철학에서 병렬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등장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당시에는 도시국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도 형성되고 있었지요. 이때에는 사람들이 전염병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들이 이 질병들을 발생시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박테리아도 알지 못했고 바이러스도 알지 못했으며 세포생물학도 없었습니다. 수천 년을 지나 바로 우리 시대에 들어와서야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이지요.

도시 전체가 지워져버릴 수도 있는 그러한 위기에서 그에 대한 여러 계급적 반응이 있었습니다. 저를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로 이끈 허스턴(Zola Neale Hurston)은 파라오와 맞선, 지팡이를 든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허스턴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역병·기근·기아를 마음대로 부리는 파라오를 물리치는 모세의 힘, 그의 대항마법(counter-magic)입니다. 이 대항마법은, 흑인 민속지식에 대한 허스턴의 지식에 따르면, 모세가 파라오의 마구간지기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 마구간지기는 이 마법을 말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모세에게 공짜로 준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멘투(Mentu)가 해주는 ‘도마뱀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에게 전염병들을 아래로부터 보기를 권하기 위해, 파라오나 벼락을 던져대는 야훼를 제시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로서 보기를 권하기 위해 ‘lizard talk’라는 어구를 사용했습니다. [‘lizard talk’는 허스턴의 소설에서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①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크게는 세상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작게는 인간의 여러 행동들에 대한 논평). ② 멘투가 도마뱀이 해주듯이 해주는 이야기(이야기의 내용은 ①과 같다). ③ 멘투가 해준, 도마뱀(및 기타 동물들)도 이러저러한 말을 한다는 이야기. 나중에 (멘투는 이미 죽고 없는 때이다) 모세는 ‘기억들의 보관자’(keeper of memories)인 ‘수염난 도마뱀’을 찾아간다. (이때 모세는 예전의 멘투처럼 도마뱀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모세는 우연히 만난 늙은 도마뱀에게 ‘수염난 도마뱀’이 시나이 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시나이 산을 찾아가는데 아마도 거기서 그가 ‘수염난 도마맴’에게 들을 ‘liard-talk’는 기독교의 정사에 나오는 야훼에게서 받은 십계명과 대조될 터이다. 전자는 아래로부터의(from below) 지식을 나타내고 후자는 위로부터의(from above) 지식을 나타낸다.]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 마구간지기의 이름인 ‘멘투’를 다시 언급하게 되니 반갑군요. 제 의도는 지상의 힘, 우리 인간의 힘, 우리의 공통적인 힘이 지배자들의 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종종 우리도 잘 모르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말입니다. 이는 팬데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물론 팬데믹에 대한 지식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여러 모습의 멘투들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경험에서도 오지요. 어떻든 저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겪는 다중과 지배계급을 대조시키는 것, 힘의 두 형태를 대조시키는 것. 그것이 역사적인 역병들의 경우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파라오를 다룬 다음, 투키디데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의 역병들을 다루고, 로마 시대의 역병들을 다루며 물론 중세의 중앙 유럽을 강타한 큰 역병들을 다룹니다. 이런 식으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라인보=도마뱀=멘투]

제가 <ACT UP>에 그런 메시지를 전한 것은 <ACT UP>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델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ACT UP>의 현장 활동가들은 발견·조사를 하도록 촉구할 수 있었으며, 그 자신들이 깊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로서 치료를 낳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질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이 ‘공공보건의 커먼즈’(the commons of public health)의 주된 원리입니다.

릴리
우리가 사회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함께 모여야 하는데, 무심코 행한 사회적 상호작용조차도 바이러스를 퍼지게 할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팬데믹의 시기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순입니다.

라인보
네, 정말 큰 모순입니다. 에이즈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것, 그리고 이전의 전염병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도시봉쇄(lock-down)는 아니지만―집에 있으면서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공동체적 관계들이 정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간호,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기, 죽은 사람들을 묻기와 같은 일들은 아무리 끔찍한 인간의 위기상황에서도 남아있습니다. 자애를 베푸는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 죽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은 대중모임의 금지나 기타 형태의 공동체적 활동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애의 엄청난 재천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상업활동은 종종 가장 최소로, 혹은 가장 나중에 정지되지요.

릴리
정말 그렇습니다. 또한 팬데믹의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고대 역사를 되돌아보며 말했듯이 상이한 이념들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점입니다. 당신이 말했던 아래로부터의 지식과 같은 것도 있고 반대로 우리를 일종의 숙명론이나 현실수용적 태도로 몰고 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뜻하는 것은 가령 당신이 언급한, 옛날의 종교들이 팬데믹 시기에 한 복합적인 역할들 같은 것입니다.

라인보
네, 그러죠. 계급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문제를 두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억압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에도 적용되고 전염병들에도 적용됩니다. 제 생각에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위로부터 사고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뉴스에서 들은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지는 멘투를 다시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팸플릿은 종교의 사회학이 아니며 분명 포괄적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ACT UP>의 활동에 고취되고 역병의 역사를 다룬 맥닐(William McNeill)의 책[Plagues and Peoples, 1976]에 촉발되어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아시겠지만, 최근 『네이션』(The Nation)지에서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우리가 읽을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각자 집에 있는 동안 책을 읽으라는 거지요. 학자인 저도 책을 읽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도시를 도망칠 여유가 있던 부유한 층을 위해서 그리고 그 부유한 층에 대해서 쓴 작품입니다. 『데카메론』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든 각본작가들의 책꽂이의 사전 옆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100개의 플롯들을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위해 다시 다듬기 위해서죠. 이 이야기들은 선페트스(bubonic plague)가 돌고 있던 1340년대에 동포 인간들을 놔두고 피렌체를 도망친 사람들이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단으로서 한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오락으로 의도된 형태의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에요. 물론 이 이야기들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당연히 대단한 이야기들이죠.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유행병의 문학은 도피의 문학이라고 썼습니다. 문학창작가들이 지배계급으로부터 보수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배계급의 대응은 그것이 존재할 경우에는 언제나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바로 이런 동학을 거론했습니다. 바로 지금 사람들이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현상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라인보
물론이죠, 저도 넷플릭스(Netflix) 앞에 딱 붙어 있습니다만, 이는 저에게 특별히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공공보건 전문가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생산적입니다. 저는 가령 핫스팟이 되고 있는 여기 미시건주의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계속 알려줄 수 있는 공공보건 간호사에게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알싸이드 박사(Dr. Abdullah Al Said)가 COVID-19와 연관된 더 심층적인 하부구조 차원의 광범한 유행병에 대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물 공급의 거부, 삶에서의 안전의 거부, 주택의 거부가 바로 이 하부구조 차원의 유행병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담수저장소(fresh water reserve)가 있는 미시건 주인데 디트로이트에서는 물공급이 끊겼고 플린트에서는 물에 납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디트로이트 시 당국은 2014년부터 수도료를 내지 못하는 가구들에 수돗물의 공급을 끊었고 시민들은 이에 맞서 투쟁을 조직해왔다. 한 미시건 지역 뉴스잡지의 2020년 3월 26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9년에만 23,000 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차단되었다. 시당국은 COVID-19 국면에서도 처음에는 이 물공급차단(water shutoffs) 정책을 유지하려 했는데, 손을 씻는 것이 COVID-19의 확산을 막는데 필수적이라는 여러 전문가들의 확정된 견해로 인해서 정책을 바꾸어 3월 9일에 수돗물 서비스를 재개했다. 월 25달러를 내면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 수도료 지불은 팬데믹 국면 이후로 연기된다. 디트로이트 시장은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공급중지가 재개된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 플린트 시는 수원을 디트로이트의 물(휴런Huron호)에서 플린트강물로 바꾸었는데, 물에 부식방지제를 넣지 못하여 오래된 관의 납이 침출되어 공급되는 물로 섞여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중금속 신경독을 발생시켰고 10만 명 이상이 주민들이 납에 노출되었다. 이와 관련된 본 블로그의 글로 http://commonstrans.net/?p=859 참조.]

이는 그저 악행이거나 사고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물에 대한 요구를 짓밟은 의도적 범죄입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 신선한 식품을 먹지 못하는 것, 지붕으로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것―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COVID-19의 가속적인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알싸이드 박사는 (그는 디트로이트보건국의 국장을 지낸 바 있으며 존경받는 전염병학자입니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며, 저도 과거의 역병들을 훑어보면서 각 역병이 그 당시에 인간이 창출한 사회·경제적 구조들과 특수한 연관을 가진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도시의 거주지이든 상업자본주의든 심지어는 미국과 같은 거대한 부르주아 공화국이든 말이죠.

아시다시피 미국은 인종주의 및 강도질[무엇보다 백인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한 것을 가리킨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 곳입니다. 인종주의와 강도질은 흑인들이 당시 수도인 필라델피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1793년 황열병이 돌던 때에 생겨나서 매우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때 흑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고 아픈 사람들을 간호했으며 시체들을 매장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면역력을 얻거나 황열병에서 살아남아서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로 악마화되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은 1950년대에 오면 매카시즘의 ‘빨갱이’로 대체된다.] 이때 아이티에서는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들 가운데 하나가 한창이었죠.

릴리
막 언급하신 시기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8세기 말에 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황열병의 발발이 그 때의 정치를 아래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어떻게 형성했나요?

라인보
먼저 위로부터 일어난 일을 보면.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도시에서 도망쳤고요, 해밀턴(Alexander Hamilton)도 도망갔습니다. 대부분이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수도를 떠났어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군사 공화국을 보존하여 오하이오강 계곡(the Ohio river valley)을 포위하고 애팔래치아산맥을 넘고 포타와토미족(Potawatomi)[미시시피강 상부와 오대호 서부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쇼니족(Shawnee)[오하이오 계곡 지역에 살았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및 기타 그곳에 사는 많은 부족들로부터 땅을 훔치는 데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황열병은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흑인들을 악마화했던 것입니다.

이때는 세계사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두 일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 하나는 황열병이 강타하기 몇 달 전인 1793년 2월,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act)[특정 주에서 다른 주 또는 영토로 도망간 노예의 반환을 규정한 법]이 조지 워싱턴의 서명으로 통과된 일입니다. 이로써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 미국 전체의 노예들에 대한 백인의 지배가 확대되었습니다. 둘째는, 1793년 봄에 일어난 일인데요, 조면기(the cotton gin)의 발명입니다.[발명가 휘트니Eli Whitney가 발명했으며 1794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이 기술이 면화체제의 남부로의 확대, 인도의 면화생산의 파괴, 이집트와 오토만 제국의 면화생산의 파괴를 가능하게 하고 영국에서의 공장체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제 아래로부터 일어난 일을 봅시다. 우리 모두 1793년 황열병 발발 시 멘투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 한때 노예였던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와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입니다. 앨런은 아프리카감리교감독교회(AME Church,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만들었고 이 교회는 그 이후 일종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한 형태로서 존속했습니다. [존스와 앨런은 감리교에서 설교를 하도록 승인받은 흑인 목사 가운데 속했다. 존스와 앨런은 Free African Society (FAS)를 창립했으나, 1794년 이후 일의 방향이 달라서 각기 다른 길을 갔다. 둘은 평생 친구로서, 협력자로서 남아있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가 가진 인종주의의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교회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배격당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분명 황열병의 결과로 아래로부터 일어난 다른 움직임들도 있을 것입니다.

릴리
남·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은 유럽인들이 남·북아메리카에 가져온 전염병이 끼친 엄청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점에 대해 말해주시겠습니까? 이른바 신세계의 발견과 남·북아메리카를 재형성하는 데서 질병과 정복이 교차하는 모습에 대해서요?

라인보
14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유행병이 멕시코를 유린했고 17개가 페루를 강타했습니다. 대부분 천연두였습니다. 정복된 지 10년 만에 멕시코의 인구는 25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200만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천연두 및 다른 두 전염병이 저지른 집단학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배운 것은,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광산에 가두고 과도하게 노동을 시킨 것이 이러한 거대한 말살을 거들었다는 점, 그래서 천연두의 확산과 착취의 형태들은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매더(Cotton Mather)는 뉴잉글랜드에서 1616-1617년에 돈 전염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했습니다. 집단학살에 전염병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죠. 이런 일은 한 세기 후인 1760년대에 앰허스트(Amherst) 장군에 의해서도 벌어졌는데, 그는 지금은 펜실베이니아인 곳의 원주민들을 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로 잔뜩 감염시킨 자선 담요들을 원주민들 사이에 배포했습니다.

이렇듯 이제 전염병은 전쟁의 도구, 지배계급의 도구, 집단학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이런 부분을 보면 끔찍하고 극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계급파괴에 다시 한 번 굴복하지 않으려면 이것을 꼭 붙잡아 기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계급파괴’라고 할 때 이는, 온갖 형태의 지배계급이 그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피억압자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이 이른바 유럽과 아메리카의 최초의 조우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릴리
그것은 또한, 당신이 말한, 황열병에 의한 죽음과 노예상태와 광산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죽음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사회가 일종의 환경결정론[전염병은 자연적 환경에 의한 것이지 인재가 아니라는 생각]의 관점에서 전염병들을 받아들이도록 형성되어온 것으로 고대부터의 역사를 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적 결정들)의 역할을, 사태의 사회적 맥락을 잊을 수 있고, 이른바 자연적 재해의 결과를 이해하는 데서 사회·정치적 맥락이 결정적임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라인보
물론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점은 거시기생체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시기생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사회·경제적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릴리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당신이 상기시켜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유행병들이 지배층의 정치와 지배층의 대응들을 형성해온 역사를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즉 당신이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라고 부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라인보
그것은 우리의 공통적 삶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인간의 생존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보건커먼즈에의 접근, 공기·물·주택의 커먼즈(공통재)에의 접근을 유지하는 능력이지요. 이는 지배계급이 준 선물이 아닙니다. 지구에서의 우리의 삶을 위해 모두가 향유해온 커먼즈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지배체제 아래에서, 최근에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 세기 동안, 더 최근에는 우리의 생애 동안 강탈된 것입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전적으로 필수적입니다. 자본주의가 물, 주택, 신선한 공기를 뺏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긴 공급사슬로부터 생기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 공급사슬에서는 동력사슬톱에 굴복하고 자본주의적 농업에 굴복하는 숲으로부터 새로운 식품이 요구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태지대들이 파괴되면서 가장 복잡한 생명체들의 일부가 파괴됩니다. 이와 함께 예전의 숙주를 잃은 미시기생체들이 생기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저는 지금 최근에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에 글을 실은 네 명의 과학자들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by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이들은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은 또한 우리, 즉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질병 방어능력이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공립학교들, 공립병원들, 공공주택, 물에 대한 권리, 공기에 대한 권리가 갑자기, 혹은 단계적으로, 혹은 부채라는 교활한 형태로 강탈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미시기생체들에 취약해진 것입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난주만 해도 공기가 좀 신선해진 틈을 타서 트럼프가 자동차에 대한, 내연기관에 대한 오염통제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공기가, 우리의 폐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틈타서 몰래 해치운 것이죠. 이는 정말로 사악하고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파괴를 심화시킬 뿐입니다. 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이 네 명의 저자들, 이 전염병학자들 썼듯이 삼림과 그 생태의 파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폐만큼이나 삼림이라는 지구의 폐도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아마존의 파괴와 볼쏘나로(Bolsonaro)[브라질의 현 대통령]의 무지한 권력은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릴리
이 팬데믹이 전지구적 위기가 되면서 일시적으로든 어떻든 다른 전지구적 위기, 즉 기후위기를 우리의 관심에서 좀 멀어지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나 재택근무 등의 조치들이 자동차의 사용을 크게 막고 탄소방출 수준을 낮추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신은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불리는 것의 시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오신 것으로 압니다만.

라인보
현 국면은 아이러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정치가들이 많은 수의 홈리스들에 눈물을 흘리는 반면 많은 호텔들이 손님이 없어서 연방정부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공기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고 폐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으며 탄소방출과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현 국면은 기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집으로부터 쫓아내는 일의 중지를 원하며 부채의 탕감을 원합니다. 우리는 단일건강보험자체제(single payer health system)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주자들을 억류 상태에서 풀어주기를 원합니다. 이미 일부 수감자들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학자금 대출금의 탕감을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전반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맥락에서의 일입니다. 바삐 서두르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하늘에 비행기가 없고 거리에 차가 없다고 썼습니다. 물론 이는 비상조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태가 새로운 세계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선한 공기의 세계, 더 차분한 세계, 바삐 서두르는 조급함이 없는 세계, 모든 시간이 사업의 시간이 되는 일이 없는 세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수감이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합니다. 이런 가능성들을 우리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능성들은 바로 우리의 창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릴리
팬데믹을 겪으면서야 이런 상태에 도달한 것이 좀 놀랍습니다. 세상의 종말,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란 쉽다고 종종 (필시 너무 많이) 말해졌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자본주의는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상상력의 위기를 느끼면서) 우리는 공포와 불안의 와중에서 (이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 일상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고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떤 일이 사용가치들을 창출하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돌봄노동, 쓰레기처리, 식량을 재배하고 공급하기―이런 일들은 중요한 반면 다른 일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상위 10%로의 부의 대대적인 집중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력적인 가능성의 순간입니다. 몇 달 만에, 불안과 불평등의 상황에서 이런 순간이 온 것이죠.

라인보
물론입니다. 완전히 동의합니다. 아시다시피, 메이데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달 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는 1886년 시카고에서 전염병이 했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는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의 때였지요. 참, 이제는 옛날 일이네요. 요즘 누가 8시간 이상 노동을 하나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갑자기 0시간 노동을 강제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0시간 노동을 하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앞에서 저는 독서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우리는 정말로 속도를 늦추고 더 생각하기 시작할 수, 더 잘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나 연방정부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들을 돌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돌보는 일을 하려고 하며 저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이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노동을 중단하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총기판매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바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항상적인 공포 속에서 사는 자들의 삶의 한 편린일 뿐입니다. 다른 가능성들이 있음을 보는 것이 이토록 쉬운 때에 공포 속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릴리
물론 지금과 같은 순간에 우리가 맞서 투쟁해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는 전염병을 인종화하는 경향, 질병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트럼프가 이런 경향에 부채질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인보
18세기 말에 개발된 이데올로기적 억압의 체제인 백인우월주의의 중심 개념인 인종 개념의 큰 부분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상이한 기생체들, 질병들과 연결되면 이것이 더 나아가 인종 개념을 구성할 요소들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데, 저의 저작이나 다른 이들의 저작이 보여준 바지만, 이런 과정들 가운데 ‘타자의 악마화’를 포함한 다수가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집단에 대하여 일어났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항상 냄새와 연관되고 때(dirt)와 연관되고 불결함과 연관되었습니다. 이렇듯 지배계급의 차별적 순결 코드가 모든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바로 이로부터 인종과 백인우월주의라는 변종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제 이것이 그 추한 고개를 다시 쳐들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제가 알기로···[‘없는 듯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다 생략한 것으로 추정됨]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매우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지식을 얻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에서 멘투들과 민중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신선한 물을 요구하는 엄청난 투쟁을 보세요. 디트로이트는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올리언스도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시들은 흑인 문명의 수도들이며, 이로부터 모두가 혜택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간접적인 것 말고는 지배계급[백인들]의 반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흑인 친구들과 동지들은 매우 옳게도 다소 걱정하고 조심하며 지냅니다.

릴리
당신이 언급한, 그리고 책에서 많이 다룬 메이데이에 대한 물음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몇 주 후면 메이데이가 오는데요, 우리가 억압받지 않는 세상,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관련하여 메이데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라인보
메이데이는 위대한 재생산의 순간, 지구의 재생산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위의 생명체들에서, 식물들이나 동물들에서 봅니다. 메이데이는 5월이고 봄이요 삶의 부활입니다. 또한 근대 세계의 역사에서, 끝없는 노동과 고역에 맞서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의 역사에서 놀이와 투쟁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의 메이데이는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군사주의나 전체주의의 행사로서 퍼진 것이 아니라 집단성의 행사로서 퍼졌습니다. 올해의 메이데이는 우리에게 특별한 도전이 될 듯합니다. 확신컨대, 이 도전으로부터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메이데이를 축하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것입니다. 되풀이하건대, 메이데이는 지구상의 기쁨의 순간이요 재생산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는 출산이 고통을 동반하듯이 투쟁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거시기생체들에 맞서는 것입니다.((메이데이에 대한 라인보의 상세한 설명을 보려면 도서출판 갈무리의 신간 『메이데이』(2020)를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