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거버넌스를 위한 도구로서의 크라우드법



[편집자 설명]

2018년 3월 13–17일 거버넌스랩(겁랩)은 24명의 크라우드법 전문가들을 세계 전역에서 초청하여 입법과 정책입안 과정의 모든 단계에서 더 많은 다양한 견해와 전문지식을 도입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발전시키는 작업을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모임은 이탈리아의 벨라지오에 있는 록펠러 재단의 유명한 벨라지오 센터에서 열렸다. 아래 글은 크라우드법 컨퍼런스 참여자들이 작성하는 일련의 블로그 게시글들 가운데 첫째 글이다.

꼬모(Como) 호숫가에 있는 벨라지오의 아름다운 경치는 모든 자연 풍경을 넘어선다. 그곳은 기온이 내려가 흰 눈이 알프스 꼭대기를 덮고 고요한 호수와 산 사이에 안개가 멈추어 있을 때 아름답다. 그곳은 라리아노 삼각지대(Larian triangle) 전체를 덮은 따스한 햇살이 불러낸 청둥오리들이 호수 위에서 장난칠 때에도 아름답다. 벨라지오의 경치가 데이터 과학자들, 정치이론가들, 학자들, 열린 거버넌스 실무자들이 크라우드법의 리스크, 혜택, 기회를 숙고하는 지난주의 모임에 배경을 제공해주었다(야외에서 모임을 가질 때에는 말 그대로 배경이 되었다.) 크라우드법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도시의 입법에 시민의 참여를 증진시킨다는 첨단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 크라우드법은 시민에게 정보와 자문을 제공하기, 시민을 참여시키기, 시민과 협동하기, 시민으로 하여금 지역자치 수준에서 입법 작업을 할 수 있게 하기를 핵심으로 한다. 이는 테크놀로지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입법참여 메커니즘이다.

민주주의는 벨라지오와 무척 닮았다. 민주주의 제도의 변천, 그 흥망성쇠의 과정 전체를 통해서 민주주의는 거버넌스의 (처칠의 말을 풀자면, 지금까지 시험해본 모든 것들 가운데) 최고 형태로 남아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4, 5년마다 공적 대표자들을 뽑는 선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더 넘어서는 어떤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민중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에 민중이 참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참여가 민주주의의 혜택을 향유하기 위해 우리가 지불하는 통화(通貨)이다. 참여 없이는 민주주의가 상실된다.

그런데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지 않는 것은 멸종되게 마련이다. 이는 유기체들이나 사고방식들 모두에 공히 적용된다. 우리가 주위의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에서부터 일하는 방식, 노는 방식, 세상과 주위의 사건들을 인식하는 방식에 이르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테크놀로지의 진전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테크놀로지의 진전은 산업, 전문업, 지식 분야들 전체를 변형시키고 있다. 그런데 테크놀로지 혁신이 가져오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불확실해하는 영역이 거버넌스 분야이다.

나는 ‘거버넌스 분야’(governance field)라는 용어를 민주적 제도, 정책형성, 입법 같은 분야들을 포괄하는 넓은 말로 사용한다. 모바일 뱅킹, 인공지능이 뒷받침하는 기반시설 설계, 의료에서의 가상현실의 사용이 우리의 삶의 표준적인 특징이 되었지만, 가령 선거에서 전자 혹은 온라인 투표의 활용은 극히 미미하다. 정부가 온라인·오프라인 메커니즘들을 사용하여 정책 형성에의 참여를 증진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수백 개의 사례들이 있고 최상의 방법(best practice)으로 기록된 것도 있지만, 지역 자치 행정의 수준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입법과정 전체(문제 포착, 방안 포착, 초안 작성, 결정, 실행 및 평가)에 통합하는 경우는 적고 그나마 지속적이지 않다. (이는 이 시리즈의 다른 게시글들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기존의 법적 틀이 빠르고 갑작스러운 테크놀로지 변화에 느리게 반응해서 규제 대상으로 의도된 분야들을 온전히 포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테크놀로지가 대중의 입법 참여를 증진하는 유일한 (혹은 심지어는 선호되는) 매체는 아니라는 주장이 강하게 존재한다. 그런데 대중 참여를 위한 전통적인 메커니즘들(대부분 오프라인)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입법 당국에 보낼 수 있게 하거나 자치정부의 소재지에 직접 가서 입법인들과 만날 수 있게 하는 정보와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경향이 있다. 모바일폰 보급률의 전지구적으로 급속한 성장(([원주1] 통계 포털인 스터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구 전체에서 모바일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2017년에 47억7천만 명이며 2019년에는 5십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67%의 모바일폰 보급률에 해당한다. 모든 모바일폰 사용자들의 50%는 현재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데이터는 https://www.statista.com/statistics/274774/forecast-of-mobile-phone-users-worldwide에서 얻을 수 있다.))은 테크놀로지를 사용하여 입법과정에 광범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더 큰 기회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불평등이 존재할 때 테크놀로지는 그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민주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어서 더 포용적인 입법을 가능하게 한다.

만일 거버넌스 영역이 테크놀로지의 변화를 활용하는 데 실패한다면 이 영역은 닳고 시들어서 멸종될 것인가? 거버넌스라는 개념 자체는 멸종된다고 할 수 없지만, 거버넌스에 대한 여러 접근법들은 만일 현대화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갈수록 부적절해질 것이다. 내 생각에 이는 민주주의 제도에도 해당된다.

다행히도 민주주의 제도의 증진을 위해서 어떻게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것인가를 함께 실험하는 많은 개인들, 조직들, 정부들이 있다. 이 실험은 정부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하락하는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들, 시민사회 그룹들, 시민테크놀로지 주창자들과 함께 일하는 <열린 정부 파트너십>(the Open Government Partnership, OGP) 같은 다중이해관계자 기획들이 공사(公事)의 실행과 줄어드는 공적 자원의 관리를 위해 시민들과 정부 사이의 더 깊고 더 임팩트 있는 협동을 추구하는 놀라운 새로운 플랫폼들을 창조하고 있다. 전 세계의 정부들은 가령 온라인 자문을 통해서든 공동체 채점카드(community score cards)(([옮긴이]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이 그 서비스에 대해 점수를 매기는 제도))나 e서비스를 통해서든 시민들의 욕구를 더 잘 이해하고 충족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형태의 참여 및 피드백 메커니즘들을 실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거버넌스랩의 의장인 노벡(Beth Noveck) 교수의 요청으로 벨라지오에 모인 그룹은 전지구적 프로젝트 맵핑에서, 기획들의 효율성 연구 그리고 크라우드법 실행의 규범들과 표준들의 개발에 이르는 과정 전체에서 이 중요한 작업을 추동할 운동을 양성하는 방법들을 숙고했다. 노벡 교수에 따르면

테크놀로지는 입법 조직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공개하고 입법자들이 선거일만이 아니라 다른 날에도 시민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게 만들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대체로 닫힌 방 안에서 작업하는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에 의해 실행되며 입법의 영향을 받는 시민들의 견해의 직접적인 수용이 거의 없는 전통적인 입법방법에 대한 대안을 크라우드법이 제공해줍니다. 이는 전통적 방식과 달리, 산출된 결과물의 질을 증진시키는 목적으로 올바르게 설계된다면 매 단계―문제설정, 해결책 포착, 연구 및 초안 작성, 규제 실행, 결과 모니터링―마다 더 많은 전문지식을 입법과정에 효율적으로 도입할 기회들이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동시에 잘못 설계되면 결과에 관계없이 참여가 의사결정을 불구로 만들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원주2] Beth Simone Noveck, Director, The Governance Lab, e-mail communication with author, 13 November 2017.))

크라우드법의 몇 개의 잠재적인 함정들에 대한 노벡 교수의 경고가 중요하다. 크라우드법을 실행하는 것은 시간과 자원을 비용으로 치르며 더 중요하게는 보통 사람들의 소원과 기대를 비용으로 치른다. 크라우드법 기획의 실행 및 이 기획에의 참여와 관련하여 정부들에게나 시민들에게 하는 가치제안(value proposition)은 잘 구체화되어야 하고 실험적 기획들에서 얻는 증거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크라우드법이 시민들에게 주는 혜택은 쉽게 주장할 수 있는 반면에 크라우드법이 어떻게 기존의 시민참여과정을 강화할 수 있으며 어떻게 정부들이 시민참여의 연속성(정보 제공에서 자문 및 시민의 참여를 거쳐 시민과의 협동 및 시민에의 권리부여로 움직이는 과정)을 제고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가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거버넌스를 증진하는 아이디어들―가령 참여예산, 입법의 개방성 등―의 광범한 생태계 내에서 크라우드법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더 분석될 필요가 있다. 크라우드법 옹호자들은 (정보 및 참여에의) 접근의 제한이 공법에서 인정되는 문제와 더 씨름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을 입법과정의 절차 전체에 위치시키는 것이 크라우드법의 이상이지만, [현재로서는?] 시민 참여의 제한의 윤곽이 구체화되고 정부 측의 크라우드법 실행자들에게 지침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가입한 76개국과 준국가적 주체들(자치도시, 자치지역, 주정부 혹은 위임정부)이 현재 활동계획들을 작성하고 있는 OGP는 크라우드법을 위한 이상적인 인큐베이터이다. 특히 “테크놀로지가 시에서의 더 많은 입법참여를 촉진하는 방법, 혜택, 잠재적 리스크, 측정기준”(노벡 교수)에 대한 지식과 초기의 교훈들을 잘 보관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크라우드법과 의회/입법의 개방성의 증진이라는 OGP의 과제 사이에는 분명한 시너지 관계가 있다. 크라우드법 개념은 OGP에 참여하는 나라들과 준국가적 주체들에게 입법과정을 더 개방적이고 협동적으로 만들 혁신의 가능성을 시험할 도구를 제공한다.

꼬모 호수의 한 구석에 있는 작고 조용한 곳에서 부화된 아이디어가 세계에 울려 퍼져 입법과정을 영원히 근본적으로 변형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는 좋은 일이다. 아마도 근본적인 재편성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믿음을 복구하는 데 필요한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