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벽에 맞선 도시들



 

장벽에 맞선 도시들

 

스페인의 도시자치주의 운동이 통치권한을 부여 받은지 2년이 지났다. 이 운동은 지금 전지구적 자본의 강압들에 맞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가?

이제 좌파 진영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가 되었다. 2년 전 소수의 시민 플랫폼들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사라고사, 카디스, 산티아고 등을 비롯한 스페인 주요 도시들의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지역 사회운동 출신의 저명한 인물들을 필두로 해서, 그들은 포데모스를 비롯한 다양한 좌파 조직들을 결합하여 민주주의적 혁명과 진배없는 것을 약속하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참혹한 경제 붕괴와 부패 스캔들의 여파 속에서, 그들은 스페인에 악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정당성의 위기에 급진적인 도시자치주의(municipalism) 프로그램으로 대응했다. 그것은 2011년에 그 심장과 머리를 획득한 인디그나도스(indignados, 분노한 사람들) 운동의 상향식(bottom-up) 정치가 흐를 수 있는 수로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처음으로 부여받은 통치기한의 중간지점에 다다른 지금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에 알맞은 때인 것 같다. 거리에서 제도로의 도약이, 이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일의 정당성의 뿌리인 사회운동들의 요구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그랬다면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이 시기에 해방적인 체제변화의 가능성들이 성장하고 증식했는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적 획일성이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한 세대 전체를 전향시켜서 자신의 구조 속으로 흡수해버렸는가? 복잡한 질문들이다. 답을 시작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현 단계에서 이 도시들이 직면한 어려움들의 크기를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정치인이 된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인장(印章)과도 같은 이슈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것은 어엿한 주거에 대한 권리다.

 

거대한 화폐의 장벽

바르셀로나에서 산츠(Sants)나 그와 유사한 노동계급 거주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아파트 구입을 제안하는 광고 전단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은 손으로 쓴 것이고, 또 어떤 것은 프린트된 것이다. 이 전단들은 이름과 전화번호 외에는 담고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 어떤 것은 아예 익명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처럼 전단지들의 외양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동일한 전화번호들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독립주간지 <La Directa>가 발간한 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단지들의 출처는, 많은 경우 세입자들이 여전히 거주하고 있는 주거지역들을 통째로 사들이고 있는 소수의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세입자들로 하여금 집을 떠나도록 설득하고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더 높은 가격에 팔거나 임대한다. 기업들이 세입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현금을 제공하기도 하고, 집세를 엄청나게 올리기도 하며, 단순히 임대차계약 갱신을 거부하기도 한다. 세입자들이 저항하면, <Desokupa(“점거해산”)> 같은 회사들을 고용해서 강제로 추방해버린다. 파시스트 덩치들에게 돈벌이가 되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종종 법을 어기기도 한다. 이런 관행은 미디어에서 소수의 부도덕한 기업이 이익을 내기 위해 법망의 구멍과 모호한 부분을 이용하는 지역적인 문제로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바르셀로나를 훨씬 넘어선다. 위와 같은 기업들은 모든 스페인 대도시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엄청난 임대료 거품의 특공대들이다. 스페인의 유력 부동산 사이트인 <Idealista>에 따르면 스페인 전역에 걸쳐 2016년 한해에만 임대료가 15.9% 상승했으며, 2017년의 첫 3분기 동안 바르셀로나, 산 세바스티안, 카나리아 및 발레아레스 제도 등지에서는 전년 대비 상승률이 20%에 육박하고 있다. 소규모 지구 단위에서의 상승률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바르셀로나 산트 마르티(Sant Martí) 지구와 산트 안드레우(Sant Andreu) 지구에서는 임대료가 전년 동월 대비 30% 넘게 상승했다.

이러한 가파른 임대료 상승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장기 거주민들이 자신들의 동네로부터 쫓겨나고 있는데, 이는 부동산 서비스 회사인 <Cushman & Wakefield>가 “거대한 화폐의 장벽”이라 이름붙인 것, 즉 대략 4,350억 달러에 달하는 전지구적 부동산 투기 자본에 의한 것이다. 전(前) UN 주거권 특별보고관 Raquel Rolnik이 묘사한 바대로, ‘거대한 화폐의 장벽’은 식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물질화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금융자본의 구름이다. 그녀는 <바르셀로나 현대문화센터(th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e of Barcelona)>에서 한 최근의 강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일부러 ‘식민화’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것이 영토 점령과 문화적 지배를 수반하기 때문이지요. 이 식민화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갖습니다. 금융자본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미개척지를 열어젖힘으로써 임대료를 추출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식민화의 비유가 노예제와 대량학살의 폭력을 삭제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외투자에 목마른 정부들이 이 자본을 자신들의 나라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본은 주민들의 삶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데도 말이다. 스페인은 최근 리츠(REITs), 즉 부동산투자신탁(real estate investment trusts)의 신흥시장으로 떠오름으로써 ‘화폐의 장벽’을 끌어들였다. 리츠는 수입을 발생시키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인데, 이때 부동산은 주거용일 수도 있고 상업용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발생하는 수입의 대부분은 임대료에서 발생하며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으로 지불된다.

스페인에서 리츠는 2009년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합법적 형식으로 도입되었다. 처음에 리츠는 19%의 법인세율 때문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2012년에 마리아노 라호이(Mariano Rajoy)가 이끄는 우파 정부가 리츠에게 이 세금을 면제시켜주었다. 나라 전체에 걸쳐 임대료가 상승한 것은 바로 이러한 조치가 이루어진 이후였다. 에어비앤비(Airbnb) 같이 임대료를 추출해내는 플랫폼들의 부상 ― 이것은 주거용 부동산과 상업용 부동산 사이의 구분, 혹은 공식적 경제와 비공식적 경제 사이의 구분을 흐린다 ― 을 비롯한 여러 발전들과 더불어, 중앙정부의 조치는 무엇보다 스페인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바로 그 부문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주었다. 그것의 끔찍한 결과들을 관리하는 일은 지방 정부들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국가와 시장에 의해 궁지에 몰리다

스페인에서 영토와 임대료를 찾아다니는 ‘거대한 화폐의 장벽’인 금융자본과 시(市)정부 간의 갈등이 가장 심한 곳은 바르셀로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닌데, 스페인의 주거운동과 도시자치주의의 물결이 태어난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사회운동과 선거 플랫폼 간의 연결이 가장 튼튼하고, 활동가들과 시의원들 사이의 구분이 가장 흐릿한 곳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이것은 화젯거리도 되지 않는 흔한 이야기다. 그러나 외부의 관찰자들에게는 평상시에 이것이 어떤 모습을 띨 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 소속 시의원인 갈라 핀(Gala Pin)은 정책의제를 다루는 카탈루니아 지방의 아침방송 <Els matins>에 나가서 <La Directa>의 조사보고서가 확인한 부동산 불량배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MK Premium>의 공동 설립자를 상대했다. 열띤 토론의 와중에 그녀는 <MK Premium>이 하는 일을 violencia inmobiliaria, 즉 ‘부동산 폭력’으로 규정했다. 그녀의 단어 선택은, 그녀가 시의원이 되기 전에 참여했던 주거 플랫폼인 <주택담보대출 피해자 플랫폼(Plataforma de Afectados por la Hipoteca)>(PAH)의 화법과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단어 선택으로 인해 그녀는 우파 야당으로부터 선동가라는 비난을 받았고 <MK Premium>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되었다.

주거운동을 향한 핀의 우호적인 태도는 단순한 표현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녀는 종종 강제퇴거를 가시화하고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북돋기 위해 그녀의 많은 소셜미디어 팔로워들을 활용한다. 전형적인 게시글은 이런 식이다. “내일 5건의 강제퇴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노력하고 있지만, 저지하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오전 9:30, Arc del Teatre가(街)입니다.”

이러한 게시글들은 선동적이라는 이유로, 혹은 다름 아닌 <바르셀로나 엔 꼬무>의 감시 하에 이루어지는 강제퇴거들에 대한 비난을 선제적으로 모면하려 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일부 급진좌파 서클들로부터 비판받아왔다. 핀을 비롯한 이러한 접근법을 사용하는 다른 시의원들은 단지 제도적 힘의 한계에 대해 솔직하고, 그 한계가 부당할 때 그것을 넘어서도록 사람들에게 요청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접근법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많은 강제퇴거를 저지했고, 세입자와 건물주를 중재하기 위해 시정부가 혁신한 주택사무소들의 네트워크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퇴거들을 중단시켰다.

“Occupy and Resist.” A squat in Barcelona. Photo by Oriol Salvador.

이것은 사회운동, 지방의회, 공공행정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 상위 국가기관과 경제세력들의 강압에 맞선 저항을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그리고 지방정부가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더 많이 열려있게 된 도시로 바르셀로나가 유일한 것도 아니다. 가령 마누엘라 카르메나(Manuela Carmena)가 이끄는 <아오라 마드리드(Ahora Madrid)>는 도시의 참여제도를 시민발의 제안들에 개방했으며,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시의 재원 중 일부를 참여예산에 할당했다. 진보적 녹색연합인 <Compromís>가 <발렌시아 엔 꼬무>와 <스페인 사회당>의 지원을 받아 시를 운영하고 있는 발렌시아는 보행자와 자전거를 중심으로 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이동성 모델로의 대규모 이행을 시작하는 중이다. 사라고사에서는 현재 전력망을 통해 공급되는 전기의 100%가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되며, 전력소비량은 15% 가까이 감소되었다.

이 도시들은 사회복지지출을 늘리고 공공주택을 확대하면서도 균형예산을 유지하고 일부의 경우에는 심지어 적자를 감소시킴으로써, 긴축에 대해 “대안이 없다”는 EU의 도그마가 틀렸음을 입증했다. 또한 이들은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도록 중앙정부를 압박하는 중이며, 일부는 서류상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라호이의 인종주의적인 ‘2012 의료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의 시정부들은 인권침해를 지적하고 그에 맞선 상징적·법률적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이민자구금시설을 폐쇄하고자 하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표현해왔다.

물론 이것은 혁명적인 조치들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이 조치들은 녹색 도시계획 및 참여적 거버넌스와 결합된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테크노크러시와 초민족주의적(ultra-nationalist) 극우로 양극화된 유럽의 현재 정치 상황에서 이것은 결코 가볍게 볼만한 것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루어진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진보들에 대한 이러한 방어를 더욱 눈여겨보도록 하는 것은, 그것이 매우 파편화되어 있는 정치체제에서 소수파 지방정부들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은 국가권력과 시장의 변덕 앞에 취약하다. 좌파 정부가 있는 도시들에 내핍을 강제하는 데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크게 감소시키기 위해 2013년에 통과시킨 법안을 시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재무부 장관 크리스토발 몬토로(Cristóbal Montoro)는 이미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매우 분명히 나타냈다. 한편, 임대료 거품은 계속해서 팽창하여 주민들을 집으로부터, 나아가 도시 중심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다. 이러한 위협들에 의해 궁지에 몰린 도시들은 요새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제한할 여유가 없다. 그들은 또한 경계를 넓히기도 해야 한다.

 

갈등과 협력의 역학

2017년 6월초, 몇몇 구역의 시위대들이 바르셀로나 중심에 있는 대학광장(Plaça Universitat)에서 합류했다. 3,000명의 시위대는 거기서 출발하여 “거대한 화폐의 장벽”의 표적이 된 지역들인 산트 안토니(Sant Antoni), 포블레 세크(Poble Sec), 라발 지구(Raval)를 느릿느릿 행진했다. 몇몇 지점에서 시위대는 특정한 주택블록 앞에 멈춰 섰는데, 그곳들은 세입자들이 그들을 쫓아내려 하는 투기꾼들에게 저항하고 있는 곳이었다. 행진의 끝에서 시위대는 8년 동안 버려져 있었던 아파트를 열고 들어가서 점거해버렸다.

시위행진은 새로운 부동산 거품에 맞서 점점 성장하고 있는 투쟁 서클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행동 방식이었다. 이 투쟁 서클은 <“바르셀로나는 판매용이 아니다”(Barcelona No Està en Venda)>라는 플랫폼이 조직했는데, 불법적인 관광객용 아파트와 상승하는 임대료로 인한 추방과 싸우기 위해 지난 2년 사이에 출현한 여러 지역의 모임들을 결합한 것이다. 그것은 아나코-생디칼리즘적인 <노동총동맹(CGT)>, <바르셀로나 주민협의회 연합(Barcelona Federation of Neighborhood Associations)>,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주민회의(Neighborhood Assemblies for Sustainable Tourism)>, <주택담보대출 피해자 플랫폼(PAH)> 뿐만 아니라 2017년 초에 만들어진 <지역 임차인 연합(Sindicat de Llogaters)>까지 포함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공적 토론의 의제를 설정하여 정부와 정당들로 하여금 그 의제 가운데 우선적인 것들을 실행하도록 압박했다. 이들은 기성 언론으로부터 발언권을 빼앗아 왔는데, 언론들은 바르셀로나시와 에어비엔비 그리고 관광업 로비세력 사이에서 최근에 벌어진 갈등에 “관광공포증(touristophobia)” ― 스페인 신문 <El País>가 도입한 용어 ― 이라는 프레임을 덮어씌우려 했다. 사회운동들은 반(反)관광이라는 프레임 ― 이 프레임은 인종주의, 계급차별주의, 외국인혐오의 함의를 갖고 있다 ― 에 말려들지 않고, 갈등의 초점을 부동산 거품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춰 왔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도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프레임을 채택해 왔다. 투기꾼들을 어떻게 겨냥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운동의 일부 부문들과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운동과 좌파 정당들 사이의 이러한 갈등과 협력의 역학은 바르셀로나에서 특히 뚜렷하게 관찰된다. 도시의 오랜 상향식 조직화의 역사가 두터운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에게 길을 열어준 제도적 전회(institutional turn)에 있어서 가장 큰 위험요소는 저명한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제도로 이동함으로써 “두뇌유출”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여 사회운동이 약화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적 전회 이후 일어난 사회적 갈등들을 살펴보면 그러한 우려와는 다소 다른 시나리오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는 그것의 구성원들이 속했던 사회운동의 요구들을 공공정책제안으로 번역하는 데 상대적으로 효과적이었다. 노점상이나 공공운수 노동자들의 운동과 같이 그들이 이전에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운동의 요구들을 다루는 데는 그보다 덜 효과적이었다. 그 결과 이러한 운동들이 현재 바르셀로나의 사회적 적대 구조에서 주도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들이 생산해내는 긴장이 어떻게 해소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반면 마드리드의 사회운동과 지방자치 플랫폼 사이에서는 협력이 훨씬 덜하고 대립은 훨씬 더하다. <아오라 마드리드>의 예비선거 제도가 <바르셀로나 엔 꼬무>보다 더 개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오라 마드리드>를 낳았던 조직들의 연합은 <바르셀로나 엔 꼬무>의 경우보다 훨씬 더 분열되어 있다. 게다가 그들이 합의추대한 후보인 현(現)시장이자 전(前)판사 마누엘라 카르메나는 다른 도시의 지방자치 플랫폼을 이끄는 이들보다 한층 더 제도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카르메나는 여러 경우들에서 당의 프로그램에 반대해왔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가네모스(Ganemos)>나 <포데모스(Podemos)>의 반자본주의 분파와 같은 <아오라 마드리드> 내(內) 급진 조직들이 제기하는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개인적인 열성지지자들과 스페인 지방자치 거버넌스의 “대통령중심제적” 모델을 활용했다. 이러한 분열의 가장 충격적인 징후는, <아오라 마드리드>가 잉태된 점거건물이었던 <El Patio Maravillas>가 관광객용 아파트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우 운동과 제도의 분열은 “화폐의 장벽”을 위해 길을 닦아준 셈이다.

 

목적이 있는 도시자치주의

스페인의 도시자치주의 플랫폼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도시자치주의가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거버넌스의 한 형식이다. 그것의 내용은 자본주의적일 수도 있고 코뮤니즘적일 수도 있다. 전체주의적일 수도 있고 자유주의적일 수도 있다. 민족주의적일 수도 있고 국제주의적일 수도 있다. 개방된 채로 남겨지면 그것은 단순히 자본으로 가득 찬 하나의 브랜드이거나 다른 행정적 권력에게 비난을 전가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도시자치주의에 대한 과도하게 단순한 이해는 상이한 유형의 지방자치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수십 년간의 도시화와 지구화가 만들어낸 권력 불균형들을 무시해버릴 위험을 품고 있다. 도시의 추출주의(extractivism)의 결과로 전지구적 북(Global North)에서 출현한 심대한 문화적·정치적 균열 ― 이것은 진보적인 성장하는 도시들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원주민중심적인 촌락들과 대립시킨다 ― 을 고려할 때 특히 더 그렇다.

신자유주의적인 현상황의 협소한 한계 및 유독한 관계들과 결별하고 단순히 행정적·영토적 자기이익의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 해방적 도시자치주의는 앞을 보고 걸어갈 수 있게 해줄 전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다름 아닌 사회운동들이 이것을 제공한다. 온갖 부정의들에 대한 사회운동의 비판에, 세계가 되어야 할 모습과 현(現)사회질서가 억압하는 가치와 실천들이 있다. 좌파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것들은 상호부조와 연대에 다름 아니다.

가치들을 실천들로 물질화하는 것은 기술적인 과제라기보다는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과제이다. 반대로 거버넌스의 논리는 대개 기술적이다. 거버넌스 자체는 통제와 예측가능성을 중심으로 한다. 저 통제와 예측가능성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표자들이 자신에게 권력을 가져다 준 운동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도시자치주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이 인계받은 제도적 구조의 틈들에서 성장하는 모든 운동들을 양성해야 한다. “화폐의 장벽”이 콘크리트로 메우려 하는 것이 바로 이 틈들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스페인 도시자치주의 플랫폼들의 선거 승리에서 아름다운 점은, 바로 그 승리가 거버넌스의 기술적 논리에 의해 예측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방자치제도의 문지기들이 저 승리를 민주주의의 오류로 여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도시자치주의 플랫폼들은 현재 저 구조를 해체하여, 지금까지 억압되거나 지워지거나 착취되거나 무시되어 왔던 사람들, 운동들, 기억들에게 그것을 개방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장차 그들의 과제는 투기꾼들에게는 더 큰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도시에 거주할 것을 희망하는 이들에게는 더 작은 불확실성을 만들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




괴물 시대의 커먼즈 (2) / 完



 

괴물 시대의 커먼즈―P2P 정치가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전 게시글에 이어짐>

어번 커먼즈의 발생

 

2014년 봄, 유럽 의회에서 뽀데모스가 거둔 성공에 자극을 받은 한 활동가 집단이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점거된 사회 센터들 가운데 하나인 엘 빠띠오 마라빌라스(el Patio Maravillas)에서 만났다. ‘우리는 이 도시를 쟁취하려고 합니다’라고 그들은 선언했다. 그들은 전례 없는 수준의 시민 참여를 조직하고 현실화하기 시작했으며 이전에는 무관하게 흩어져 있던 정치적 행위자들을 위한 공통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을 촉진하기 시작했다. 기본 원칙들에 동의하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완전히 참여에 열린 선거 목록에 자신을 후보자로서 제시할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전에 바르셀로나의 활동가들은 다음의 네 가지 근본적인 목표를 중심으로 모일 것을 기존의 사회운동들과 정치조직들에 권유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1. 모두에게 시민의 기본권과 어엿한 삶을 보장하기,
2. 사회 정의와 환경 정의를 우선으로 하는 경제를 양성하기,
3. 제도들을 참여민주주의 방향으로 바꾸기,
4. 시민들에 대한 윤리 서약을 지키기.

합류 요청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으며, 반(反)철거 및 주거권 운동가인 아다 꼴라우(Ada Colau)가 공적으로 대표하는 구아녬 바르셀로나(Guanyem Barcelona(([옮긴이] Guanyem Barcelona : 이는 카탈로니아 말로 ‘바르셀로나를 쟁취하자’(Let’s win back Barcelona)라는 의미라고 한다.)))가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로 일정한 시간에 걸쳐 변이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바르셀로나 엔 꼬무는 사회운동에서부터 비주류 정당들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포함하는, “도구로서의” 선거연합이다.(([옮긴이] 스페인에는 네 개의 선거가 있다. ① 첫째는 총선(Elecciones generales)이다. 이는 일국 수준의 의회의 의원들을 뽑는 선거이다. 한국의 총선과 같다. 다만 스페인에는 하원과 상원이 모두 있다. ② 둘째는 자치지방의 입법선거(Elecciones autonómicas)이다. 스페인의 13개 자치공동체들―Aragon, Asturias, Balearic Islands, Canary Islands, Cantabria, Castile and León, Castile–La Mancha, Extremadura, La Rioja, Madrid, Murcia, Navarre and Valencia―의 의회의 구성원들을 뽑는 선거이다. 이것을 현 텍스트에서는 ‘the regional (election)’이라고 부른다. ③ 셋째는 지방자치체 선거(Elecciones municipale)이다. 이것을 현 텍스트에서는 ‘the city (election)’라고 부른다. ④ 넷째는 유럽의회 선거(Elecciones al Parlamento Europeo)이다. 스페인의 ‘지방자치체’(municipality)는 ‘자치지방’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자치도시’로 옮기기로 한다. ‘municipalism’은 도시들의 연대로 국가를 넘어서는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을 지닌 운동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는 ‘자치도시주의’로 옮기기로 한다. 자치도시(지방자치체) 선거에 후보를 내는 바르셀로나 엔 꼬무와 같은 ‘municipalist coalitions’는 ‘자치도시 연합’으로 옮기기로 한다.))

주류 미디어에 의해서는 무시되거나 비난을 받은 이 연합은 15-M이나 오큐파이 운동처럼 구체적인 장소들에서 연대를 형성하고 공유된 가치 및 믿음을 중심으로 모여서 스스로를 복제했다. 그 과정은 부잡스럽고 열띠고 분주했다. 이전에 그 누구도 이 일을 시도해 본적이 없으며 교범도 없었다. 실상 교범은 운동과 함께 작성할 수 있을 뿐이었다. 모든 선거 예측, 적대적인 미디어, 확고한 기성 정치세력과 맞서는 불리한 상황에서 이 연합은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에서―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만이 아니라 발렌시아, 아꼬루냐(A Coruña), 사라고사, 카디스에서도―승리를 거두었다. 뽀데모스는 이 많은 연합들 가운데 다수에 참여했지만 자치지방 입법선거(the regional)는 (지방자치체선거에서와 달리) 단독으로 후보를 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연합이 승리한 모든 곳에서 하나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동일한 유권자 집단이 지방자치체(아오라 마드리드Ahora Madrid가 후보를 낸 곳)와 자치지방 입법선거(뽀데모스가 후보를 낸 곳)에서 모두 투표를 할 수 있는 마드리드 시의 선거에서 뽀데모스는 아오라 마드리드가 얻은 표의 겨우 반만큼을 얻었다.

스페인의 자치도시연합은 문화, 사고방식, 권력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여러 운동들의 결과였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15-M이며 뽀데모스가 아니라 연합이 그 진정한 정치적 부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2014-15년 이전의 선거들에서 15-M은 주거, 공중보건, 교육,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들을 횡단적으로 연결하는 관계를 발전시키기도 했다. ‘라스 마레아스’(las mareas) 혹은 ‘시민들의 파도’(citizen’s tides)라고 알려진 이 운동들은 노동조합과 정당들과 같은 전통적인 조직들을 포함하면서 진정으로 다수적 구성의 성격을 띠는(truly multi-constituent in nature) 자기조직된 항의들과 능력구축을 특징으로 했다. 예를 들어 공중보건 마레아는 공중보건 서비스의 지지자들만이 아니라 건강관리 전문가들, 환자들, 보건개혁가들, 병원 직원들, 특수한 질병에 초점을 맞춘 연대조직들, 협조 기관들 등을 포함하고자 했다. 15-M 자체도 기존의 경향들―디지털 행동주의, 자유문화(free culture) 운동, 탈성장, 커먼즈, 기타 많은 운동들―의 산물이었다.

오늘날 자치도시 플랫폼들은 서로 연계하여 자원과 최선의 실행들을 공유하면서 초지역적 친화 네트워크들로서 기능하고 있다. 연합들[=플랫폼들]은 비록 선거구에서의 현실적 해결책들을 제공하는 데 주로 초점을 두지만 여러 두드러진 특징들을 공유한다. 가장 신선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정치적 담론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더욱더 여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제도권 정치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보수적이고 남성적인 태도와 대조된다.

자치도시연합이 많은 거리집회들을 통해 연마된 참여/급진 민주주의에 초점을 두는 것은 공유된 ‘윤리 코드’(“código ético”)로 더욱 정련되었다. 이 코드가 제도들 내에서의 플랫폼들의 행위에 형태를 부여한다. 이 코드는 참여자들을 한데 모으는 아교이자 끌개 역할을 하는데, 당원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참여를 원하는 모두에게 적용된다. 주된 항목은 다음과 같다.

· 회전문 인사 금지 (민영 기업과 공직 사이를 오가는 인사 금지)
· 봉급 삭감
· 시민의 참여에 열린 프로그램
· 오픈 프라이머리―당 쿼터가 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음
· 자발적/시민 자기금융과 제도 혹은 은행을 통한 금융 거부

모든 자치도시 플랫폼들은 지역 관심사들과 초지역적 연대를 넘어서 초국적 차원에 시선을 두고 있다. “반란 도시들‘(Rebel Cities)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P2P 생산공동체들의 실천이 지역에 뿌리를 두지만 전지구적으로 네트워크화되어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 덧붙이자면, 시민의 파도 운동에 들어있는 다수적 구성 접근법이 연합들 내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비록 기존의 정당들을 포용하지만 특정 정당의 노선을 위주로 하지믐 않는다. 시민사회의 광범한 범위의 행위자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들은 그 이후에 행복하게 살았는가? 물론 아니다. 활동가가 된 정치 대표자들은 변함없이 적대적인 미디어 환경과 대면하는데, 미디어는 이들의 성과는 묻어버리면서 이들의 실수는 과장한다(혹은 필요하다면 없는 실수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4년 동안의 불안정성 및 치열한 활동 이후에 1주일에 60시간 이상의 작업조건을 맞는 한편 사회노동당과의 연대라는 틀 내에서 소수 의석을 유지하며 수평주의적 관료주의(horizontalist bureaucracy)(([옮긴이] 보통 관료주의는 수직적 위계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수평주의’는 이와 달리 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를 가리킨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수평주의적 관료제’는 구성원들의 평등한 관계는 인정되지만 과제의 실제적인 해결로는 나아가지 못함으로써 관료주의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무능에 빠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듯하다.))의 굳어진 현실과 충돌하게 된다. 시민 연합들의 다원주의적 성격은 당연하게도 비일관성과 과실을 낳았으며 가장 나쁜 것은 직접 행동 전술과 대항권력 구축 노력의 폐기가 두드러진 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버텨나가고 있으며, 초국적기업들과의 공공 계약의 취소, 시민참여 예산책정, 젠더의 균형을 더 잘 맞춘 문헌 및 재현, 공공지출의 증가, 반(反)젠트리피케이션 전략,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 직접민주주의 메커니즘들 등 많은 이익과 전진을 가져왔음은 모두가 보기에 명백하다.

진짜 좋은 소식 가운데 최고는 자치도시연합이 스페인에서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의 진보적인 도시들이 커머닝을 가능하게 하고 커머닝에 힘을 부여하고 있다. ‘반란 도시들’(Rebel Cities)―혹은 앞으로 있을 행사에서 부르는 바로는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은 시민들이 자신과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시 정부가 지도하기보다는 커머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보통 사람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신들에게 관련되는 일을 직접 관리하는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 벨기에의 헨트(Ghent), 이탈리아의 볼로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영국의 프롬(Frome), 브라질의 벨로오리존테(Belo Horizonte), 이탈리아의 나폴리, 캐나다의 몬트리올, 미국의 잭슨, 프랑스의 릴, 영국의 브리스틀, 칠레의 발빠라이소(Valparaiso)가 그 사례들이다. 이 도시들의 시민들은, 각 지역 맥락에서 적절한 많은 행동들 외에도,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예산책정을 가능하게 하며 공터를 공동체 정원으로 바꾸고 기술과 도구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들을 공동창출하며 사회적 돌봄 협동조합들의 창출을 촉진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새롭게 상상된 관점을 통해 시장과 국가로부터 스스롤 해방시키려는 커먼즈 운동에 필요한 상호 인식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도시 수준을 넘어서 커머닝의 실천을 제도화하려는 범유럽적 노력 또한 존재한다. 2016년 11월에 유럽 전역에서 온 150명의 커머너들이 함께하는 강한 운동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브뤼셀에 모였으며 유럽커먼즈의회(the European Commons Assembly, ECA)가 탄생했다. 정책을 제안하는 여러 주 동안의 집단적 작업을 바탕으로 ECA는 유럽의회 안에 자리를 잡고 ECA를 플랫폼으로 삼고 커먼즈를 정책입안의 강력한 패러다임으로 삼는 방안을 탐구하게 되었다.

 

커먼즈 이행 :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거버넌스의 정치적 어휘를 구축하기

 

이 자치도시연합, ‘반란 도시들’, 초국적 의회들이 형성되고 고유한 거버넌스를 표현하게 된 과정에는 커머닝의 어휘와 실천이 명백하게 들어있다. 이 연합들, 도시들, 의회들은 투명성과 시민 참여에 초점을 두고 오픈소스 P2P 테크놀로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더 나은 미래의 정치의 여러 측면들을 예시한다. 앞에 놓인 과제는 스페인에서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네트워크 논리를 오큐파이와 15-M의 잠재력을 되찾아 복원력 있고 더 여성적이며 윤리적으로 일관된 초국적 정치운동을 구축하는 데 적용하는 것이다.

예시적 전략들이 사회적·환경적 우선사항들을―시장이나 국가가 이 ‘외부성들’을 다루기를 기다리지 않고―그 비공식적 재도들에 통합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치도시연합의 윤리적 코드도 커먼즈 지향적 연합의 원리들로 온전히 전환되어 현재의 정치에 새로운 책임성(accountability)(([옮긴이] ‘accountability’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설명(account)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이 ‘accountability’의 가장 저급한 수준을 경험한 바 있다.))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일단의 정치적 지침들의 핵을 형성할 수 있다.

잠재적 성공을 위해서는 중요한 것을 현실적이고 이야기 가능한 것으로 유지하는 것 또한 관건이다. 구좌파는 전통적으로 추상태들로 소통을 했는데, 이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만들어내는 경향을 가진다. 시리자, 뽀데모스, 볼리비아 사회당의 포퓰리즘적 ‘신’좌파도 시민참여적이고 실행 가능한 행동들을 제안하는 대신에 거창한 온정주의적 약속들을 제시하는 데, 그리고 비난 던지기에 호소하는 데 만족하는 듯이 보인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친연 집단(affinity groups)을 스스로 조직하고 비공식적인 참여 공동체들이 출현하여 부패하는 복지국가의 단점들을 문제 삼는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세상을 운영하는 데 자신도 발언권을 가지고 싶어 함을 당당히 밝힌다. 사람들은 자신이 버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보수를 받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발언을 해주는 누군가의 존재를 원하지 않는다. 커먼즈 정치가 과연 자기조직화로 향하는 이러한 전환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가?

새롭게 출현하는 커먼즈 및 P2P 정치 운동을 국지적 장소의 현실적인 동학의 특징들을 보존하면서도 높은 복잡성의 수준―지역적(regional)(([옮긴이] ‘지역’(region)이란 국가보다 작고 구체적인 국지적 장소보다는 넓은 규모에 쓰이기도 하지만 ‘동아시아’처럼 몇 개의 국가들이 모여서 이루는 규모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하므로 유의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국적, 초국적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커먼즈 기반의 실천들은 정치적 과정에 의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공동체들의 창조성과 참여에 관여함으로써 효과적인 정치 행동에 쓰일 수 있는 일체감을 양성할 수 있다. 커먼즈의 통합적 내러티브는 시장국가와 시장경제의 협소한 관료주의 외부에서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권유한다.

근본적으로 다시 개편되고 민주적으로 책임성 있는 구조를 상상해보자. 복지국가의 바람직한 특징들―사회적 복지 및 공중보건, 거대한 기반시설의 관리와 유지―을 보존하면서도 그것들을 근본적으로 민주화한 구조를. 이 구조는 국가의 시장과의 아늑한 공생을 제거하는 한편, 화폐의 창출과 교환, 재산과 법적 권리에 대한 국가의 해로운 독점을 해제할 것이다. 그 다음의 일련의 조치들은 불평등의 구조적 발생을 금지시키고 해방적 대안들에 대한 종종 폭력적인 억압을 금지시킬 것이다. 이 구조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경제에서 재단들이 기능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기능할 것이다. 협동 및 커먼즈의 창출과 유지를 위한 기반시설을 제공하면서도 사회적 가치의 창출과 분배의 과정을 위에서 이끌지는 않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커머닝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고 보호할 것이다.

이렇게 커머닝을 가능하게 하는 메타구조(metastructure)―이는 종종 ‘파트너 국가’(The Partner State)라고 불린다―는 이미 존재하는 P2P/커먼즈 실천에서 도출되는 새로운 기능들을 취할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욕구 지향적인 실질적인 기업가활동/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의 증진이 속하는데, 이 활동/정신은 개방형 협동조합들, 무선 네트워크망, 혹은 공적 영역과 커먼즈의 파트너관계를 통해 개발되는 공동체 재생에너지원과 같은 상향식 생산 기반시설의 뒷받침에 의해 강화된다. 이는 커머너들로 하여금 사용되지 않고 있거나 덜 사용되고 있는 공공건물들을 사회적 목적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카피레프트에 의해 영감을 받은 재산법 개혁에 의해서든 커머닝을 점진적으로 제도화하는 더 긴 과정을 통해서든 커머닝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 풀뿌리 민주주의적 에토스는 새로운 금융 메커니즘들과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공적 화폐를 창출할 것이다. 이 화폐는 사회적 통화들과 나란히 존재하면서 환경을 재생성하는 일이나 새로운 분산된 오픈소스 기반시설을 만드는 데 기금을 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위에 서술된 유형의 노동을 선호하는 세제 계획에 의해 뒷받침되는 한편, 투기와 기생적 지대와 사회 및 환경에 부정적인 외부성들을 처벌할 것이다.

널리 확산된 참여정치 문화―이는 병행되는 교육에 의해 현실적으로 가능해진다―를 통해서 정치적·입법적 이슈들과 예산책정을 숙의하고 실시간으로 의논하는 데 새롭게 권리를 얻은 시민들을 포함시키도록 전체 체제를 통제해야 한다. 권력의 문제에서 파트너 국가는 유체적인 촉진자로 전환하여 국가를 통제하는 상향식 대항권력을 돕고 해방시킨다.

이 이야기가 유토피아적인가? 오큐파이와 15-M의 제안들을 ‘그들의 요구는 무엇인가···?’ 식으로 제시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실상 위에서 말한 파트너 국가 실천들이 ‘대담한 도시들’에 의해서 이미 많이 실행되고 있다. 유토피아주의라는 비난은 상상력의 커먼즈를 종획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불가피한 갈등과 자기이익 말고도 인간의 본성에 있는 더 좋은 것을 상상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격려)가 필요하다. 역사는 관찰될 수 있는 패턴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론적이지 않다. 그 무엇도 정밀한 개념들에서 갑자기 온전히 형성된 실재로 현실화되지 않는다. 15세기 플로렌스에서 일단의 현명한 사람들의 집단이 둘러앉아서 “···우리는 자본주의를 창출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전진할 것이다! 우리는 고빈도 알고리즘 트레이딩(high frequency algorithmic trading)을 할 것이다!” 등과 같은 허튼 소리를 선언한 일은 없다. 그렇지만 잘 보면 상인계급의 발생, 인쇄기, 복식부기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테크놀로지적 트렌드들을 포착해낼 수 있다. 이 트렌드들은 모두 18세기부터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인식하는 것을 형성하게 될 것이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카오스 상태에서는, 정치의 영역에 커먼즈 이행을 적용하는 것은 세 구별되는 진보적 경향들의 최선의 실천들을 활용하는 새롭고 포괄적인 내러티브를 창출하는 것을 수반한다. 개방성(해적당들), 공정성(신좌파), 지속 가능성(녹색당들)이 그 셋이다. 우리 시대의 과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적 비전을 구축하는 최적의 플랜은 이 세 경향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을 포함한다. 바로 자치도시주의자들이 성취했고 정치적·입법적 힘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새로운 정치를 위한 이 비전은 인종, 젠더, 재생산과 관련된 정의(正義) 같은 뒷전으로 밀린 관심사들 그리고 균형에 대한 증가된 관심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크게 다양화하는 정치적 대의 또한 증진해야 한다. 대표적인 상이 항상 그리고 유일하게 ‘백인 이성애 남자들’인 것은 아니라는 (특히 지도자 역할의 경우에)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서 승리한 자치도시연합 후보들로서 선봉에 섰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P2P 동학이 실행 가능한 해결책들을 도입할 수 있고 토대가 있고 바이오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 참여를 도입할 수 있는 시골 및 탈산업화된 지역들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커먼즈는 본성상 포용적이기 때문에 정치에 적용되었을 때 해당 개인들과 공동체들에 의한 풀뿌리 수준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내러티브는, 기존의 제도들만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과 시민사회 조직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이미 존재하는 (규모를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실천들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요컨대 자치도시주의(municipalism)가 권력구조를 성공적으로 점거한 데서 우리는, 커먼즈 논리가 P2P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는 민주적·참여적 관계들과 결합되면 오늘날의 정치 장(場)에서 새로운 목적의식을 되살리고 불어넣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커먼즈 정치를 포함하는 커먼즈 지향적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가져오는 데 가진 모든 힘을 다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윤리적 책무가 된다. 괴물 시대의 이 싸움. 다윗과 골리앗의 이 싸움에서 다윗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원주] 이 아이디어는 원래 수압균열법 반대 활동가인 쌘드러 스타인그레이버(Sandra Steingraber)가 제시한 것이다. [옮긴이] 수압균열법에 대해서는 http://minamjah.tistory.com/search/fracturing#footnote_101_15 참조. 쌘드러 스타인그레이버에 대해서는 http://www.truth-out.org/news/item/16033-sandra-steingrabers-war-on-toxic-trespassers 참조.)) 다윗은 결국 이겼으며, 자치도시운동의 승리 경험을 볼 때 우리 또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