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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에너지가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클린에너지가 우리를 구하지는 못한다

―새로운 경체체제만이 할 수 있다

 

올해 초 세계의 미디어들은 2월에 지구 전체의 기온 기록이 충격적일 정도의 차이로 깨졌다고 보도했다. 3월 또한 모든 기록을 깼다. 6월에 텔레비전 스크린들은 파리의 홍수, 센 강이 둑을 넘어 도로로 범람하는 모습으로 뒤덮였다. 런던에서 난 홍수로 인해 물이 지하수로 시스템을 통해 코번트 가든(([정리자]코번트 가든(Covent Garden)은 영국 런던 시티오브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쇼핑 및 관광 명소이다. ))의 심장부까지 흘러들었다. 런던 남동부의 도로들은 2미터 깊이의 강이 되었다.

이런 극심한 사건들이 다반사가 되면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제 거의 없게 되었다. 마침내, 화석 연료가 우리들을 죽이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둘러싸고 합의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클린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화석 연료의 위험에 대한 이러한 점증하는 깨달음은 우리의 의식에 결정전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요점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클린에너지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기후변화를 막아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과학은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서 100% 클린에너지를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올바른 방향으로의 힘찬 발걸음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선의 경우를 가정하는 이 시나리오조차도 기후 재난을 피해가는 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화석 연료를 태우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실 가스 방출의 약 70%에 해당할 뿐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30%는 여러 원인에서 온다. 삼림파괴가 큰 원인이다. 산업화된 농업도 역시 큰 원인인데, 이는 이산화탄소를 용해시킬 정도로 토양의 질을 퇴화시킨다. 그 다음으로 가축사육이 큰 원인이다. 이는 매해 9천만 톤의 메탄가스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산화질소의 세계 총량의 대부분을 배출한다. 이 가스들 둘 다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더 크다. 세계의 모든 자동차, 열차, 비행기, 배를 합친 것보다 가축사육 하나가 지구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준다. 시멘트, 강철, 플라스틱의 생산이 온실 가스의 또 다른 주된 원인이며, 그 다음으로는 쓰레기 매립이다. 쓰레기 매립은 세계 총량의 16%라는 엄청난 양의 메탄을 대기 중에 뿜어낸다.

기후변화에 관한 한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무슨 종류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 에너지로 무엇을 하느냐이다. 100% 클린에너지로 우리가 하는 일은 바로 우리가 화석 연료로 하던 그 일일 것이다. 더 많은 숲을 제거하고, 더 많은 가축사육을 하고 농업 산업을 확장하고 더 많은 시멘트를 생산하고 더 많은 매립지를 쓰레기로 채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끔찍한 양의 온실 가스를 대기 중으로 펌프질해 올릴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우리의 경제 체제가 부단한 성장을 요구하기 때문인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이것을 문제삼을 생각은 해 본적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비(非)화석 연료에서 오는 30%의 온실 가스는 고정적이지 않다. 매해 대기 중에 더 많은 온실 가스를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리의 열대 삼림이 2050년이면 완전히 파괴되어 2000억 톤의 탄소 폭탄을 대기 중에 방출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계의 상층토(topsoil)는 60년 이내에 영양분이 고갈되어 더 많은 온실 가스를 방출할 것이다. 시멘트 산업이 방출하는 양은 매해 9% 이상 늘고 있다. 쓰레기 매립은 눈이 아릴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100년 쯤이면 하루에 1100만 톤의 쓰레기를 만들어낼 것인데, 이는 현재의 3배이다. 클린에너지의 사용은 이런 일을 늦추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후운동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주의력을 화석연료에 집중했던 것이다. 더 심층에 있는 것, 즉 우리의 경제적 체계가 작동하는 기본 논리를 지적했어야 하는 데 말이다. 우리는 무엇보다 GDP 성장이라는 광범한 과제에 연료를 대기 위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근본 문제는 우리의 경제 체계가 추출, 생산, 소비의 수준이 점점 더 증가하기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정치가들은 지구 경제가 매해 3% 이상 성장하도록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말한다. 큰 회사들이 총이익을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최소치이다. [개별 회사들의 이익은 이 총이익을 능력대로 나눈 몫이 될 것이다.―정리자] 이는 20년 마다 세계 경제의 크기를 두 배로 늘려야 함을 의미한다. 차들도 두 배, 어업도 두 배, 탄광업도 두 배, 아이패드도 두 배. 그 다음 20년에는 이미 도달한 두 배에서 또 다시 두 배로 늘려야 하고.

우리의 낙관적인 전문가들은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을 물질적 스루풋(material throughput)(([정리자]기업 경영에서 스루풋(throughput)은 ‘투입’(input)에서 ‘산출’(output)까지의 과정을 가리킨다. 현대 경제는 생산지와 소비지(판매지점 근처)가 다르므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상품을 구성하는 물질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물질적 스루풋’이 된다. 현대 경제에서는 이동하는 거리가 지구적 규모이다.))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중거는 없다. 지구상의 물질 추출과 소비는 1980년 이해 94% 증가했으며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의 추산으로는, 2040년이 되면 세계의 선박·비행기·트럭을 사용한 수송거리가―그리고 수송되는 물질이―거의 정확하게 GDP의 성장률에 보조를 맞추어 지금의 두 배 이상이 된다고 한다.

클린에너지는 중요하지만 우리를 이 악몽에서 구해주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시스템을 바꾸면 가능하다. 사람들은 GDP 성장이 더 나은 세상을 창출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 않고 빈곤을 줄이지 않으며 그 ‘외부성’(externalities)(([정리자]‘외부성’(externalities)은 상품생산이 시장의 외부에서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긍정적 외부성과 부정적 외부성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는 맥락상 외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 국한되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학교 근처에 있는 화상경마장은 학교의 아이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이 모든 종류의 사회적 폐해―부채, 과다노동, 불평등, 기후변화―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확고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GDP 성장을 진보의 주된 척도로 삼지 말아야 하며, 이는 올해 말에 모로코에서 비준될 기후변화협약의 일환으로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우리의 창조적 능력을 새로운 지구 경제를 상상하는 데 쏟을 때이다. 생태 발자국을 적극적으로 축소하면서 인간의 복지를 최대화하는 경제를. 이는 불가능한 과제가 아니다. 여러 나라들이 매우 낮은 소비 수준을 가진 높은 수준의 인간 발전을 이루는 데 이미 성공했다. 사실 리즈 대학 경제학자인 대니얼 오닐(Daniel O’Neill)이 물질적 탈성장(degrowth)이 높은 수준의 인간 복지의 발전과 양립 불가능하지 않음을 입증한 바 있다.

우리는 화석 연료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클린에너지로 전환하는 한에서는 현재의 상태대로 지속할 수 있다고 안심하게 되었으나, 이는 위험하게 단순화된 생각이다. 만일 우리가 다가오는 위기를 물리치려면 심층에 있는 원인과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 저자 제이슨 히켈은 <더 룰즈>(The Rules)에 속해 있다 <더 룰즈>는 활동가들, 예술가들, 농업가들, 농민들, 학생들, 노동자들, 디자이너들, 해커들, 몽상가들 등의 세계적 네트워크로서 지구의 내러티브를 새로운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