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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디지털 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2

  • 저자  : Neil Gershenfeld, Alan Gershenfeld, Joel Cutcher-Gershenfeld

  • 원문 : Designing Reality: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2018)의 서설(Introduction) 
  • 분류 : 일부 내용정리
  • 정리자 : 민서

3차 디지털 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 2

 

디지털 제작의 힘과 전망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3차 디지털 혁명에 동력을 공급하는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과 테크놀로지와 함께 진화해야 하는 사회체계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저자들 가운데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길잡이는 닐 거션펠드이다. 닐은 20년 동안 디지털 제작의 선구자로 일해오고 있으며 코앞에 와있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업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각하는 사물』(When Things Start to Think, 1999)에서 사물인터넷으로 알려지게 된 것을 미리 내다보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기여했으며 『팹』(Fab, 2005)에서는 팹랩들과 메이커 운동들(maker movements)의 출현을 설명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제작의 힘과 전망을 소개했다.

 

『현실을 설계하기』에서 닐은 이 추세가 어떻게 3차 디지털 혁명으로 이어졌는지를, 이 추세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진화하는 연구 로드맵의 미래에서 이 추세가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사물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의 짜임새를 디지털화한다면, 『스타트렉』식의 복제기(물질재조합장치) 같은 것도 가능함을 보여준다.

 

닐은 팹랩 운동의 우연한 기원 이야기로 1장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는 공동체 팹랩들이 전 지구적 네트워크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식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늘날의 디지털 제작 과정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미 힘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부각시킨다. 노르웨이 북쪽 끝에서 아프리카 남쪽 끝까지, 시골 마을에서 불규칙하게 확대되는 도시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기반을 둔 팹랩들은 혁신을 분출시켰고 디지털 제작의 힘과 잠재력의 초기 징후들을 제시했다.

 

3장에서 닐은 3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과학적 토대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탐구한다. 그는 이 토대가 어떻게 생명이 분자 제작을 위한 기계를 발전시킨 40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설명하고, 그 바탕에 있는 신뢰성, 모듈방식, 지역성 및 가역성이라는 원칙이 어떻게 디지털 통신기술, 컴퓨팅 및 제작을 통합하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로 기여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테크놀로지가 그 최종 형태에 도달하기 훨씬 전에 그것이 함축하는 바를 포착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강조한다.

 

닐은 이 3장에서 라스의 법칙(Lass’ Law)을 소개하는 데 이것은 디지털 제작에 적용되는 무어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칙의 이름은 셰리 라시터(Sherry Lassiter, 일명 ‘Lass’)에게서 온 것이다. 선도적인 <팹 재단>(팹랩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과 함께 라시터는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의 지역사회봉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팹랩 요청서들의 더미가 커져가는 속도를 보고 팹랩의 수가 1년 반마다 대략 두 배가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팹』을 쓸 때 닐은 이런 급격한 성장을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 당시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는 몇 개 안되는 최초의 팹랩들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닐에게 2003년은 팹랩의 시작점이고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팹랩들의 수는 두 배가 되었다. 이제 라스의 법칙을 적용하면 향후 10년 정도에 걸쳐 100만 개의 팹랩에 해당하는 능력이, 그리고 그 다음 10년에 걸쳐 10억 개의 팹랩에 해당하는 능력이 생성됨을 의미한다. 공간을 채우는 10억 개의 시설이 들어선다는 말이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융합, 접근성 및 범위에서의 진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서 중요해진 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바와 같은 팹랩이 아니라 물리적 형태를 제작하고 그 기능을 프로그램하는 능력이다.

 

닐은 팹랩에서 현재 사용하는 도구들의 목록과 그 도구들에 대한 설명으로 5장을 시작한다. 그런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뚜렷이 구분되는 4단계를 개관한다. ① 공동체 제작(기계를 통제하는 컴퓨터가 추동함) ② 개인 제작(기계를 만들 수 있는 기계에 바탕을 둠) ③ 보편적 제작(디지털 재료로의 이행을 표시함) ④ 유비쿼터스 제작(재료가 프로그램 가능함).

 

그런데 3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요소들이 랩에서 등장해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우리는 이 영향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회 시스템이 3차 디지털 혁명을 가속화하는 기술과 함께 효과적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도록 안내하는 길잡이는 조엘과 앨런이다. 조엘과 앨런은 첫 번째 랩을 시작한 이후 팹랩 운동에서 닐과 함께하고 있다. 조엘은 일리노이 주 섐페인 어배너에서 팹랩을 시작하는 것을 도왔고 팹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새로운 이해관계자 연대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주도했다. 앨런은 팹랩에 맞는 지속가능한 모형을 연구했고 그가 설립한 <이라인 미디어>는 <팹재단> 및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와 협력해서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의 자금지원을 받아 디지털 제작의 미래를 탐구하는 비디오 게임을 작업했다.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할 때 조엘과 앨런은 전 세계 팹랩들을 방문했고 수십 명의 팹 선구자들을 인터뷰했으며 수백 명의 이해관계자들을 조사했다.

 

닐은 테크놀로지 로드맵을 연구하고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만한 도구와 기술들을 제안한다. 조엘과 앨런은 사회적 로드맵을 연구하고 사회 시스템과 기술 시스템이 함께 진화할 수 있게 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을 제안한다. 2장에서 조엘과 앨런도 현재 구축된 전 지구적인 팹랩의 네트워크를 관찰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러나 닐과 다르게 그들은 힘을 북돋고 즐거움을 주는 측면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팹랩 네트워크에 스며드는 긴장과 문제들도 부각시킨다. 개별 제작의 전망과 자신이 소비하는 것을 제작하는 개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제작이 대부분 사람들에게 현실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팹에의 접근, 팹 리터러시 및 진정으로 민주화된 기술을 보장하는 생태계의 양성을 중심으로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팹 생태계 도처에 있는 분리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은 그 바탕에 함입되어 있는 전제를 그리고 상충하는 가치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 현재의 작업흐름을 완전히 익히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오늘날 팹랩의 혜택들은 결과보다는 제작과정에서 나온다. 앞으로 디지털 제작이 우리가 소비하는 것을 만드는 데로 나아가려면 결과에 비중을 더 두는 방향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장에서 앨런과 조엘은 어떻게 무어의 법칙이 기술적 구축물 못지않게 사회적 구축물인지를 강조한다. 무어의 법칙은 결코 물리학 법칙이 아니며 관찰의 기록인데, 이것이 회사를 위한 핵심 사업전략이 되고 산업의 벤치마크가 되며 마지막으로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값싼 디지털 기술을 활성화하는 틀이 된 것이다. 4장은 사회적인 변화와 기술적인 변화의 상호교직이 새롭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런데 사회과학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지배적인 관행은 테크놀로지의 공동창출보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찰이다. 보다 진취적인 입장 취하기는 개인들·조직들·제도들이 변화의 속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속도 제한장치와 속도 가속장치가 핵심적인 역할들을 할 것이며, 기술적 체계와 사회적 체계를 효과적으로 함께 진화시키기 위해 디지털 플랫폼과 새로 출현하는 생태계가 가진 힘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는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배운 교훈들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조엘과 앨런은 6장에서 디지털 제작의 미래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그들은 다섯 대륙의 팹 선구자들과 공동으로 만들어낸 야심적인 여덟 개의 시나리오를 설명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사회적 체계와 기술적 체계는 함께 진화한다. 미래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심상지도(mental maps, 인지지도)만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심상지도가 필요하다. 이 더 나은 미래를 현실로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조엘과 앨런은, 모든 사람이 3차 디지털 혁명에서 의미•목적•존엄성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사고방식을 촉진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적용하는 틀을 제안하고 있다.

 

『현실을 설계하기』의 세 저자들은 3차 디지털 혁명에 과학•테크놀로지•사회과학•인문과학의 관점을 적용한다. 각 저자는 책에 상이한 렌즈를 갖다 댄다. 각 저자의 렌즈를 통해 어떤 것은 명확해지고 다른 어떤 것은 불분명해진다. 이 책을 쓰기 위해 함께 모였을 때 일치한 의견들보다 일치하지 않은 의견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서로 다른 분야들이나 영역들이 집단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복잡하고 급속히 바뀌는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을 때면 언제나 그렇다.

 

지금 우리는 가능성 높은 궤적들을 예견할 수 있으며, 아직 시기가 일러서 우리가 후회할 방식으로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형성하기 전에 우리가 테크놀로지의 형성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독특한 역사적 순간에 서있다. 3차 디지털 혁명의 임팩트는 1, 2차 디지털 혁명의 임팩트보다 크지는 않더라도 그 만큼은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방식의 심장부로 파고드는 수많은 새로운 기회 및 도전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애리조나 주립 대학의 리터러시 학자 제임스 폴 기(James Paul Gee)는 자신의 논문 「리터러시: 글쓰기에서 패빙으로」(“Literacy: From Writing to Fabbing”)에서 이 기회와 도전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팹은 우리가 현재 겪는 것보다 한층 더 심한 불평등의 세계, 다시 말해 몇 명만이 아이디어를 비트로 바꾸고 다시 비트를 원자로 바꾸거나 그 반대로 원자에서 비트를 거쳐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과정을 행하는 연금술에 참여하는 세계를 창출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질료—물건들, 세포들, 재료들—를 단지 몇 명이 소유하고 사용하는 세계에 살게 될 것이다. 팹은 새로운 리터러시이고 우리는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되어 갈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하고 어떤 의미에서 결정적인 것이다.

 

우리 중 몇 명이 호모 파베르가 될 것인가? 인간은 항상 최고의 도구 제작자였다. 곧 모든 사람이 세계를 만드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도구의 가격은 저렴해 질 것이다. 우리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다. 우리 중 몇 명 혹은 대부분 혹은 모두가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신과 같은 창조자가 될 때, 우리는 하나의 종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더 나쁜 세상을 만들 것인가? 팹과 리터러시의 관계는 불과 인간발전의 관계와 같다. 다시 말해 불은 길을 밝힐 수도 있고 태워 버릴 수 있는 도구이다.

 

불이 길을 밝히는 쪽으로 이용되도록 영향을 미칠 힘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디지털 제작이 민주화되면서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비트를 지렛대로 삼아 원자를 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비유적으로나 말 그대로나 현실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3차 디지털 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1

  • 저자  : Neil Gershenfeld((닐 거션펠드(Neil Gershenfeld) : MIT의 <비트와 원자를 위한 센터>(Center for Bits and Atoms, CBA)의 책임자)), Alan Gershenfeld((앨런 거션펠드(Alan Gershenfeld) : <이라인 미디어>(E-Line Media)의 대표이자 공동 설립자)), and Joel Cutcher-Gershenfeld((조엘 거션펠드(Joel Cutcher-Gershenfeld) :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의 사회정책과 경영을 위한 헬러 대학원(Heller School for Social Policy and Management) 교수이며 <노동과 고용 관계 협회>(Labor and Employment Relations Association)의 회장을 역임))

  • 원문 : Designing Reality: How to Survive and Thrive in the Third Digital Revolution(2018)의 서설(Introduction) 
  • 분류 : 일부 내용정리
  • 정리자 : 민서

3차 디지털혁명에서의 생존과 번영

 

지난 반세기에 걸쳐 두 개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다. 1차 디지털 혁명은 통신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아날로그 전화에서 인터넷으로의 이행을 가져왔다. 2차 디지털 혁명은 컴퓨팅 분야에서 일어났으며 우리에게 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가져다주었다. 현재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알려진 무어의 예측―컴퓨팅 성능이 앞으로 10년 동안 계속해서 두 배로 증가한다―은 그가 처음 예상했던 10년 동안만 지속된 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리고 컴퓨터는 이제 1965년의 컴퓨터보다 10억 배 가량 강력하고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으며 팔목에 찰 수도 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를 따라 잡으려는 노력은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크게 뒤쳐져 있다. 고든 무어의 글이 출판된 지 반세기를 넘긴 오늘날에도 지구의 절반이 넘는 지역에서 아직도 인터넷 접속이 전혀 불가능하며 이에 더하여 수십억의 사람들이 제한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접속을 한다. 전 세계 많은 곳에서 (디지털 공명실과 ‘항상 대기중’인 소셜미디어에 추동된) 심화되는 소득•부의 불평등, 기술발전으로 인한 비고용, 그리고 사회적 양극화가 결합되어 사회의 짜임새 자체를 찢어발기고 있다.

 

1, 2차 디지털 혁명의 부정적인 측면은 단순히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끈 것도 아니었다. 초기에 내려진 (혹은 내려지지 않은) 결정과 정해진 (혹은 정해지지 않은) 우선하는 것들이 테크놀로지가 개발되고 그 테크놀로지가 시장에 도입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새로운 지평을 여는 디지털 통신 능력을 구축했지만 시민담론을 강화할 수 있는 문화적 규범, 피드백 루프 및 알고리즘을 그 안에 구축해 놓지는 못했다. 우리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새로운 전자상거래 모형은 창출했지만 사생활과 안전에 새로운 위협을 도입하기도 했다. 테크놀로지 때문에 사라진 일자리의 충격과 싸우면서도 우리는 디지털 자동화로 가능해진 진전을 중시한다.

 

1, 2차 디지털 혁명의 모든 부정적인 결과를 예견하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개인들, 조직들, 제도들이 테크놀로지와의 동반 진화를 촉진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적극적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생겨나는 피해를 완화시킬 커다란 기회들을 놓쳐 버렸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온다. 이 기회는 3차 디지털 혁명, 즉 제작 영역에서 생긴다.

 

3차 디지털 혁명은 비트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세계의 프로그램화 가능성을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로 가져옴으로써 1, 2차 혁명을 완성한다. 이 물질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엄연히 있으므로 3차 디지털 혁명이 미치는 영향은 이전 혁명들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이 혁명은 여전히 근본적으로 디지털 과학 위에 구축된다. 다만 이제 그것은 비트와 원자 모두가 급격한 속도로 처리될 수 있게 해준다. 통신기술과 컴퓨팅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고 그 결과 개인용 컴퓨터, 모바일폰 및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제작의 디지털화는 수요가 생길 때마다 즉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개인과 공동체가 제품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개별 제작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초기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매우 유사하게, 오늘날 대부분의 본격적인 디지털 제작은 선진적인 연구기관과 대기업에서 일하는 고도로 훈련된 조작자들이 가동하는 엄청나게 큰 기계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곧 엄청나게 큰 이 기계 속에 있는 힘에 누구나 접근 가능해질 것이다. 주머니에 넣어 들고 다니는 컴퓨터가 과거의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가졌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누구든지 데이터를 사물로, 그리고 사물을 데이터로 바꿀 수 있고 비트와 원자로 이루어진 인터넷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미래가 코앞에 와 있는 것을 이미 볼 수 있다.

 

이 비전은 이론적으로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이것이 급격하게 현실이 되어가는 경로 위에 있다. 팹랩(Fablab)은 개인들이 디지털 제작에 필요한 강력한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제작실로, 2003년에 첫 제작실이 설립된 이후 1년 반마다 그 수가 두 배로 늘고 있다. 그러나 1, 2차 디지털 혁명의 초기처럼 3차 디지털 혁명의 급격한 진행속도는 평범한 관찰자에게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기하급수적인 성장은 기만적이다”라고 지적한다. “이 성장은 감지 못하는 사이에 시작하고 그런 다음 불시에 맹렬하게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다시 말해 이 성장은 그 궤적을 조심해서 따라가지 않는다면 뜻밖일 수밖에 없다.”

 

『현실을 설계하기』(Designing Reality)의 핵심은 디지털 제작이 진행되는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사람들이 3차 디지털 혁명에 대비하는 동시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이 책의 지식을 이용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혁명에 작거나 크게 기여할 행동능력이 있다. 우리는 앞으로 여러 분야의 지도자들이 팹에의 접근 및 팹 리터러시(Fab literacy)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반세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아직은 3차 디지털 혁명이 초기 단계에 있다. 연구 우선사항들이 정식화되고 있고 핵심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으며 팹에의 접근 및 팹 리터러시를 보편화하는 데 필수적인 조직과 제도들이 출현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서 우리는 사실상 한계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음악•비디오•블로그•뉴스•이메일•문자메시지 및 다른 디지털 자료를 복제•변경•공유하는 우리 능력이 긍정적이면서 부정적으로 경제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아왔다. 이 능력은 테크놀로지의 성격 그 자체에 내재해 있다.

 

디지털 제작은 디지털 통신기술과 컴퓨팅에 속하는 속성의 일부를 공유한다.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비트는 원자를 간접적으로 즉 새로운 능력과 행동을 창출함으로써 바꾸었다. 3차 디지털 혁명에서 비트는 사람들이 원자를 직접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는 아직 원자 수준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실현에 필요한 것은 물질세계를 변경하기 위하여 디지털 설계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1, 2차 디지털 혁명으로 야기된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물질세계—도로•주택•기기들•교통기관•음식—는 현저하게 예전 그대로이지만, 3차 디지털 혁명에서는 물질세계가 구성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전 지구적으로 디자인(설계)을 공급받지만 제작은 지역에서 하는 방식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옷•가구•장난감•컴퓨터와 심지어 주택과 자동차도 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혁신의 지속적인 흐름이 팹랩의 전지구적 네트워크를 가로질러 이미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3차 디지털 혁명은 인간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제작 욕망을 끌어내어 활용한다. 지하실 작업장이 있는 집에서 사는 기계 수리공이든 인도의 시골에 위치한 팹랩에서 일하는 농부든 <메이커 페어>(Maker Faire) DIY 모임에서 활동하는 12살 아이든, 제작은 취미생활자들•예술가들•발명가들•엔지니어들 및 광팬들(덕후들)을 깊이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영감을 준다.

 

이 책 곳곳에서 우리는 디트로이트의 <인사이트 포커스>(Incite Focus) 팹랩에 소속된 블레어 에반스(Blair Evans)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블레어는 디트로이트의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30에이커의 땅을 개발했고, 모든 사람이 “적게 일하고 적게 소비하며, 더 많이 창조하고 더 많이 접속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형들을 연구하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을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니지만, 블레어와 그의 동료들은 디지털 제작 플랫폼들이 식품에서 가구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인 재화를 협력해서 생산하기 위해 사용될 때 이 플랫폼들이 어떻게 자급자족을 가속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등장한 큰 문제가 있다. 일자리들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및 빠르게 가속화하는 다른 테크놀로지 분야의 진전 때문에 일자리의 무려 절반이 머지않아 자동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공장일이나 트럭운전 같은 블루칼라 일자리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 보조원의 일에서 방사선학과 심지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이르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들도 사라진다. 물론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연관된 새로운 일자리가 사라진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다른 예측도 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더라도 (이는 결코 확실하지는 않다) 옛날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널리 접근 가능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 사이에는 격차가 있을 것이다. 기술적인 진보로 인한 비고용, 소득과 부의 불평등, 그리고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추동하는 끊임없는 변화의 유독한 조합은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고 화나게 했으며 세계 도처에서 민족주의 운동을 추동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제작 과정의 민주화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급자족이 전 지구적 독립과 지식공유—이는 두려움보다 능력에 기반을 둔다—와 결합하는 더 매력적인 미래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지구화와 지역의 자급자족 사이의 잘못된 이분법을 허물어뜨리고 정치적 분열을 넘어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보다 지속가능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가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도시와 시골 규모에서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가 만나게 될 또 한 명의 팹 선구자인 토마스 디에스(Tomas Diez)도 바르셀로나 팹랩 소속으로 세계적인 ‘팹시티’(Fab City) 운동을 이끌고 있다. 토마스는 ‘팹시티’ 운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시가 추출적이기보다는 생성적이며, 파괴적이기보다는 복원력이 있고 소외시키기보다는 힘을 부여할 수 있기 위하여 생산을 다시 지역화함으로써 우리는 도시를 그리고 도시의 사람 및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발명할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에서 아마존에 이르기까지 토착 공동체에서 활동하는 팹선구자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의 자급자족과 공동체 건설에 적합한 고대의 관행들을 살아있는 채로 보존하기 위하여 진보된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지역 문제를 협력해서 해결하기 위하여 지역의 재료들을 사용하는 보다 효과적인 도구를 제공하는 것은, 전통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사회에 살면서 주변의 자연과 물질세계에 한층 더 연결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깊은 욕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녀들을 ‘테크놀로지로부터 벗어난’ 학교에 보내는 실리콘 밸리 임원들에게서, 그리고 디지털로부터 자유로운 휴일이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날’과 같은 기획들에서 가상 세계로 빨려들어 가는 위험에 관한 불안을 본다. 3차 디지털 혁명은 비트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계와 원자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 사이에서 우리가 보다 건강하게 균형 잡힌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향으로 우리를 추동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고무하며 필요한 조직을 창출하고 물려받은 제도를 바꾸려는 우리의 열렬한 노력을 통해서만 이 야심에 찬 비전들은 실현될 것이다. 우리가 실로 3차 디지털 혁명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궤적을 이해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현실을 설계하기』는 3차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지를, 이 혁명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그리고 (결정적인 것으로는) 일어나고 있는 이 혁명에 대비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데 당신이 어떻게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제시할 것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강화되는 두 개의 극단적인 비전이 테크놀로지와 관련해서 존재한다. 하나는 테크놀로지가 미쳐 날뛰고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훔쳐도 인간은 무기력하기만 한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는 뒤로 물러나 앉아 있을 뿐이고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유토피아적인 비전이다. 우리가 1, 2차 디지털 혁명에서 보았듯이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결들로 이루어진다. 급속히 발전하는 테크놀로지가 가지고 있는 혜택과 위험은 매우 실질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개인적·집단적으로 이 영향력을 좋은 방향으로 유도할 힘이 있다.

 

우리는 한층 자급자족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 3차 디지털 혁명의 궤도를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행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될 수 없는 노동과 관련해서는 지속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와 병행하여 디지털 제작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새로운 일자리들도 생길 것이다. 새로 출현하는 모형들에서는 개인과 공동체들이 자신들이 소비하는 것을 직접 제작하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의 일(노동) 개념에 도전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의 활동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새로운 선택지들을 제공할 것이다. 이런 혼합된 사회적 배치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디지털 제작 테크놀로지의 능력 및 범위가 10억 배로 증가한다면, 우리는 더 많이 창출하고 더 많이 연결하면서 더 적게 일하고 더 적게 지출하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추출적이기보다는 생성적이며 파괴적이기보다는 복원력이 있고 소외시키기보다는 힘을 부여하는” 사회에 대한 ‘팹시티’ 비전을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