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협동조합 운동– 슈나이더와의 인터뷰

 



이번 주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 7주년이자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여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 위기는 ‘월가를 점령하라’, 스페인의 M-15 운동 및 그리스의 긴축재정 반대운동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서 대대적으로 반자본주의 운동들을 촉발했다. 저자이자 활동가인 네이선 슈나이더(Nathan Schneider)는 “우리가 이 날들, 특히 경제가 붕괴된 날을 거의 추념하지 않는 ··· 이유는, 붕괴의 원인···을 다루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어떤 진지한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슈나이더는 자신의 신간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활한 협동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대안적 경제 모형의 윤곽을 그린다. 이 신간의 제목은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Everything for Everyone: The Radical Tradition That Is Shaping the Next Economy)이다.

 

인터뷰 시작

 

후안 곤살레스

이번 주는 ‘월가를 점거하라’ 운동 7주년이자 미국 투자 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여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미국 정부가 월 스트리트의 최대 부실 은행 몇 곳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했지만, 미국과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집과 평생 모은 재산을 날렸습니다. 유럽의 활동가들은 주말 내내 10주년을 추념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 은행 밖에서 항의했습니다.

 

에이미 굿맨: 금융위기는 이곳 미국에서의 점거운동과 스페인의 15-M 운동 및 그리스의 긴축재정 반대운동을 포함해서 전 세계 반자본주의 운동들을 대대적으로 촉발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금융위기의 영향에 관해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네이선 슈나이더씨와 함께 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씨는 협동적 소유권에 기반을 둔 대안적 경제 모형의 윤곽을 그리는 신간의 저자이시며, 협동조합 운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다시 고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슈나이더씨의 책이 막 발간되었습니다. 책 제목이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Everything for Everyone: The Radical Tradition That Is Shaping the Next Economy)입니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미국을 망가뜨리고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Rich People Broke America and Never Paid the Price”)라는 헤드라인이 달린 그의 이 <바이스>(Vice)지에 실렸습니다. 또한 『고마워, 아나키—오큐파이 아포칼립스로부터의 소식』(Thank You, Anarchy: Notes from the Occupy Apocalypse)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씨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미디어학 교수입니다.

 

<디마크러시 나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막 볼더에서 오셨군요. 자, 경제 붕괴라고 불리는 것의 10주년과 당신이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던 오큐파이운동 7주년, 이 두 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우리가 이 날들, 특히 경제가 붕괴된 날을 거의 추념하지 않는 게 놀랍습니다. 경제 붕괴가 지난 10년을 규정했고 제 세대를 규정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의 삶을 규정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그날을 추념하지 않는 이유는, 붕괴의 원인과 붕괴에 대한 끔찍한 반응을 다루기 위해 우리가 정말로 어떤 진지한 일을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붕괴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일자리를 잃어야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상력이 바닥나 있는 동안에도, 풀뿌리 수준에서 그리고 점점 더 정책 수준에서 운동이 조용하게 성장하여 이런 협동조합 기업 전통을 통해 세상을 바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곤살레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경제 위기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미국에 협동조합 운동이 있었죠. 붕괴 이후에 일어난 변화를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말씀해주세요.

 

슈나이더

물론, 오랜 전통이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은 농부들에게 힘을 실어준 전통이자 소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해준 전통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저의 조부가 소규모 철물점들이 살아남고 번창할 수 있도록 하는, 전국적인 철물점 구매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기여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것이 협동조합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배운 어떤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붕괴 이후 몇 년 동안 예를 들어, 2011년 점거 운동을 하는 동안 ‘예금 옮기기’(Move Your Money) 날이 있었는데 이날 수십만 개의 계좌가 대형 은행에서 신용협동조합(은행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들이 소유한 은행)으로 이동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특히 도시에서 노동자 소유권에 대한 관심, 즉 노동자들이 그들이 고용된 사업체의 소유주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점점 더 연방정부의 전략으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놀라울 정도로 초당파적인 기회입니다. 10년 전 있었던 우리 경제 시스템의 실패를 실질적으로 벌충할 조용한 기회죠.

 

곤살레스

하지만 일부 약탈적인 자본가들도 사업가들 간의 협동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거나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소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공유 경제 전체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협동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있고 이것으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슈나이더

맞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지만 협동조합 만들기가 사실상 원조 크라우드펀딩이었으며 원조 공유경제였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이제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경제가 진정한 공유경제가 아니라 추출경제라는 사실을 알 만큼 똑똑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관심을 가지고 주로 추적해 온 것은 세계 전역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입니다. 디지털 도구들을 사용해서 맨 아랫사람까지 소유권과 거버넌스를 모두 공유하고 최전방 노동자들—청소하는 사람들과 운전자들 등등—이 자신들의 노동 기준을 직접 결정하는 긱경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죠.

 

에이미 굿맨: 이것은 당신이 ‘월가를 점거하라’에서 당신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일곱 번째 기념일이 어제 9월 17일 월요일이었는데요, 이것은 저기 주코티 공원에서 당신이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집회입니다. 제 생각에 현재의 핵심요구 사항은 조직할 권리, 공공장소에서 정치적인 대화를 나눌 권리, 말하자면 월 스트리트에 민주주의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 줄 권리인 것 같습니다.”

 

굿맨

슈나이더씨, 저것은 7년 전 당신의 영상이에요. 이제 당신은 이 책을 쓰셨군요. 당신이 말하고 있는 이 급진적 전통과 전 세계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협동조합, 구체적으로 이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이 기대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슈나이더

놀랍게도 저 광장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상적인 삶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잃어버린 일종의 희망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1930년대와 40년대에도 미국 정부가 촉진하고 있던 그런 것이었죠. 그것은 잊혀진 가능성,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개개의 기획들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긱경제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것과는 사뭇 다른 기회가 놓여있는데, 현재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옮긴이] 실버 쓰나미(Silver Tsunami)는 급격한 인구 고령화를 빗댄 말로 주로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시기를 나타낸다.))로 알려진 현상으로 기업 소유주들 전부가 은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전국의 고용주들인 중소기업들이 사적 지분에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이야말로 직원 소유권으로 전환할 기회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정책도구와 제대로 된 쓸모 있는 금융도구를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기회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회운동들과도 연결됩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위한 강령은 그 정책제안들에서 ‘협동’과 유사한 단어들을 40번 이상 언급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운동이 협동조합 기업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곤살레스

그렇다면 정치권력 구조에 어떠한 종류의 변화도 없다면 입법자들이 협동조합 운동들을 억제할 방법과 사회에서 특혜 받는 위치에 있는 독점자본이나 대자본을 유지할 방법을 항상 내놓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슈나이더

이상한 것은 사실상 이것이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지르며 일어나고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아시다시피 실제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2016년 강령은 노동자 소유권이 늘어나는 것을 지지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민주당은 이것이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를 원하는 쟁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 왔죠. 불과 2주전에 기업의 노동자 소유권과 기업의 전환을 촉진하는 메인스트리트 고용인소유권 법안(Main Street Employee Ownership Act)이 통과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양극화된 이 순간에 우리에게 흥미로운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정치적 토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토대를 강화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10년 전 붕괴를 만들어 낸 바로 그 시스템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요구사항을 훨씬 큰 소리로 키워서 저들이 경청하도록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굿맨

긱경제와 조작된 경제(rigged economy)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슈나이더

조작된 경제—맞습니까?—는 책임이 위로 향하는 경제로서, 이 경제에서 기업은 궁극적으로 소수의 주주들과 대규모 투자자들에게만 책임을 지게 됩니다. 기업이 모진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업의 책임은 위로 향하고, 담보대출금 때문에 위태로운 사람들은 책임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입니다.

 

긱경제는 어떤 의미에서 기회이자 위험입니다. 긱경제는 그것이 노동자들이 수십 년 동안, 수백 년 동안 쟁취해온 것을 포기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는, 종종 그런 의미였다는 점에서는 위험입니다. 하지만 긱경제가 보다 유연한 노동의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통제권을 쥐고 있는 노동의 미래를 창출할 기회가 됩니다.

 

굿맨

마지막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 누가 책임을 졌는가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10년 전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하는 사실이 있죠?

 

슈나이더

제 생각에 우리는 사실상 아무에게도 충분할 정도로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가지 않은 사람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한동안 많이, 혹은 상당히 있었습니다.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도구세트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준거할 수 있는, 입증된, 사실상 초당적인 전통도 있습니다.

 

굿맨

네이선 슈나이더씨는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의 미디어학 교수입니다. 그의 신간은 『모두를 위한 모든 것—앞으로의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인 전통』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후안 곤살레스와 함께 하고 있는 에이미 굿맨입니다. 함께 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P2P 시대의 개방형 협동주의


  • 저자  :  Michel Bauwens
  • 원문 : “Open Cooperativism for the P2P Age (2014.06.16) / Attribution-ShareAlike 3.0 Unported
  • 분류 : 번역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 4년 전의 글이라서 더 정밀해졌을 현재의 바우엔스에는 못 미칠 수 있지만 협동조합이 나아갈 기본적 방향을 P2P 관점에서 잘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옮겨서 소개한다.

 

오래 버텨온 협동조합 기업들 가운데 일부가 실패하는 중인데도 협동조합 운동과 협동조합 기업들은 부활을 맞고 있는 중이다. 이 부활은 협동조합의 흥망성쇠의 한 국면인데, 이 흥망성쇠는 주류 자본주의 경제의 흥망성쇠와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2008년도의 금융위기 같은 체제 차원의 위기 이후에 많은 사람들은 대안들을 찾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옛 모형들을 찾아서 부활시키는 식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들과 요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네트워크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어포던스들(affordance)((어포던스란 주체가 특정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객체가 ‘제공’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옮긴이))을 고려해야 한다.

‘P2P’ 관점에서 몇 가지 생각을 제시해본다. P2P재단의 맥락에서 발전시켜온 것들이다.

첫째, 옛 협동조합 모형들의 비판에서 시작해보자.

협동조합들이 임금에 의존하고 내적인 위계에 기반을 두는 자본주의 기업들보다 더 민주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움직이는 협동조합들은 경쟁적 태도를 점점 더 가지게 되며 그렇지 않더라도 공동선이 아니라 회원들만을 위해서 움직인다.

둘째, 협동조합들은 일반적으로 커먼즈(공통재)를 창출하거나 보호하지 않는다. 영리 기업들처럼 특허와 저작권을 따가지고 커먼즈를 종획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일쑤다.

셋째, 협동조합들은 회원 자격을 지역 혹은 일국에 국한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 전지구적 무대는 영리를 추구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도록 열어놓는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뀌어야 하고 또 오늘날 바뀔 수 있다.

 

우리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영리 기업들과 달리 새로운 협동조합들은 공동선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이는 협동조합들의 정관과 거버넌스 문서에 포함되어야 하는 요건이다. 이는 협동조합들이 영리를 추구할 수는 없음을, 사회적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함을 의미하며, 이것이 그 정관에 기입되어야 한다. 북부 이탈리아나 퀘벡 같은 지역들에서 사회적 돌봄과 관련하여 이미 활동 중인 연대 협동조합들(solidarity cooperatives)은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는 중요한 발걸음에 해당한다.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 모형에서 사회적·환경적 외부성(externalities)((여기서 ‘외부성’은 기업이 기업 외부 즉 사회와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가리킨다―옮긴이))은 무시되고 외부에 있는 국가가 가하는 규제에 맡겨진다. 새로운 협동조합 시장 모델에서는 외부성이 정관에 통합되며 법적 의무가 된다.

2. 단일한 계층의 이해관계자들에서 회원을 끌어오는 협동조합들과 달리 새로운 협동조합들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운영에 포함시켜야 한다. 협동조합들은 다중 이해관계자들(multi-stakeholders)의 거버넌스에 맡겨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재의 회원제가 다른 유형의 회원제를 포함하도록 확대되어야 하거나 현재의 회원제 모형에 대한 대안― 가령 새로 제안된 페어셰어즈(FairShares) 모형―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3. 사실 우리 시대의 결정적 혁신은, 협동조합이 커먼즈를 (공동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 커먼즈는 두 유형이 있다.

a. 첫째 유형은 비물질적 커먼즈이다. 열려있고 공유 가능한 라이선스를 사용하여 전지구적 인류 공동체가 협동적 혁신을 구축하고 다시 그것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2P재단에서는 커먼즈 기반 상호성 라이선스(Commons-Based Reciprocity Licenses) 개념을 도입했다. 이 라이선스는 윤리적 기업 및 협동조합 기업이 공동으로 산출하는 커먼즈를 중심으로 윤리적 기업 및 협동조합 기업의 연합을 창출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이런 라이선스의 핵심 규칙은 이렇다 : ① 커먼즈를 비상업적 사용에 열어놓는다 ② 커먼즈를 공동선을 추구하는 단체들에 열어놓는다 ③ 커먼즈를 커먼즈에 기여하는 영리 기업들에 열어놓는다. 여기서 예외 조항은, 커먼즈에 기여하지 않는 영리 회사들은 라이선스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주된 목적이 소득을 생성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시장 경제에 상호성 개념을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윤리적 경제, 비자본주의적 시장 동학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b. 둘째 유형은 물질적 커먼즈의 창출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를 들어 장비를 제조하는 데 기금을 댈 커먼즈의 창출이다. 클라이너(Dmytri Kleiner)의 제안을 따라서, 협동조합들이 증권을 발행하고 여기에 모든 조합원들(체계 내에 있는 모든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기여하여 제조를 위한 커먼즈 기금을 창출할 수 있다. 기금을 구하는 협동조합은 조건 없이 기계를 얻을 수 있지만, 협동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소유자가 될 것이며, 이런 식으로 기금에 의해 생성된 소득으로 점차적으로 기본 소득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전지구적인 사회·경제적 힘의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 초국적인 인도전자 협동조합(Sociedad Cooperativa de las Indias Electrónicas)의 선도적 사례를 따라서 우리는 전지구적 부족(풀레, phyle)의 창출을 제안한다. 부족이란 커먼즈와 기여자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전지구적 사업 생태계를 말한다. 부족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움직인다. 개방형 농업기계들(혹은 다른 생산물이나 서비스)을 설계하는 전지구적인 오픈디자인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 기계들은 욕구가 있는 곳 가까이 존재하는, 일련의 개방되어있고 분산된 미시공장들(microfactories)에서 효율적으로 제조되고 생산된다. 그런데 이 모든 미시적 협동조합들이 고립된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비물질적 생산에 초점을 두는’ 전지구적인 오픈디자인 공동체를 통해서만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은 미시공장들을 통합하는 전지구적 협동조합을 통해서도 서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 전지구적 부족들의 결합이 새로운 형태의 전지구적인 사회·정치적 힘― 전지구적인 윤리적 경제를 대표하는 힘―의 씨앗이 될 것이다. 윤리적 기업가 연합과 부족들은 개방형 회계와 열린 공급망 제도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자본주의적 시장 이후의 시장(post-market)에서 물리적 생산의 조정에 관여할 수 있다.

요약하면, 전통적인 협동조합들이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진보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그 형태는 네트워크 시대에 맞추어 P2P와 커먼즈 생산의 측면을 도입함으로써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새 시대의 개방형 협동주의에 대해 우리가 권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협동조합들은 정관의 차원에서 (내적으로) 공동선을 지향해야 한다.

2. 협동조합들은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하는 거버넌스 모형을 가져야 한다.

3. 협동조합들은 비물질적·물질적 커먼즈를 공동으로 산출해야 한다.

4. 협동조합들은 비록 지역에서 생산활동을 하더라도 그 사회적·정치적 조직화는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협동조합과 커먼즈



 

[게시자 설명]

P2P재단은 오큐파이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에서 시작해서 2014년 에콰도르에서 진행한 우리의 FLOK 프로젝트(일국의 국가기관의 초청으로 착수한 최초의 커먼즈 이행 프로젝트)에 그가 방문한 것에 이르기까지 네이선 슈나이더의 작업을 여러 해 동안 뒤쫓았다. [FLOK은 “Free/Libre Open Knowledge”의 약자이다― 정리자] 그 다음 네이선은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와 함께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고 컨퍼런스들을 여는 데서 주된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 콜로라도의 보울더(Boulder)에서 교사를 하고 있으며 또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종교 분야에서 진보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최근 책 『모든 것이 모두를 위해서』(Everything for Everyone)의 한 장은 에콰도르에서의 경험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아래는 협동조합 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와 이 운동이 커먼즈의 부활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다룬 이 흥미로운 책에 관한 인터뷰이다.

 

미셸 바우엔스

이게 당신의 첫 책은 아닙니다. 당신이 책을 써온 행로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개괄해주실 수 있나요? 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협동조합 전통의 미래에 대한 새 책을 낳게 된 통찰과 동기에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좀 뜻밖의 행로였던 것 같습니다. 먼저, 신에 대한 주장들에 관한 책을 썼고, 그 다음에는 ‘월 가를 점령하라’에 대해 상세하게 썼으며, 지금은 협동조합에 대한 책이군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는 어떻든 말이 됩니다. 저에게 최우선의 과제는 항상 사람들이 그 최고의 포부를 현실화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험적 상상력과 함께 그것을 실천하는 대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이번 책은 ‘오큐파이’를 다룬 책인 『고마워, 아나키』(Thank You, Anarchy)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었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 투쟁이 잦아든 이후 제가 관심을 가진 활동가들 가운데 일부가 협동조합 일에 관여하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월 가를 점령하라’ 싸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게 된 첫 사업은 노동자 협동조합인쇄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욕 지역들에서 협동조합을 창출하는 것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한다는 생각은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민주적 가치들을 보유하면서 생계를 버는 한 방식인 것이었죠. 저도 이 행복감을 좀 경험했는데, 이는 제가 이 협동조합의 전통이 얼마가 길고 깊은지를 깨달으면서 더 진지한 매료로 전환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플랫폼 협동조합에 관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해주시겠어요?

 

슈나이더

이런 활동을 하던 꽤 초기에, 저는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할 기회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프리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에 좀 관여해왔습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를 일종의 커먼즈로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실리콘밸리의 이른바 ‘공유경제’― 그 당시 주류였죠―가 실제로는 공유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던 2014년경에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리에 있는 위셰어(OuiShare) 네트워크, 셰어러블(Shareable)의 고렌플로(Neal Gorenflo), 그리고 물론 P2P재단의 인도 아래 저는 몇몇 기업가이자 활동가인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 공유가 회사 자체에 내장된 경제를 그려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놓치고 있던 해킹이었습니다. 오픈소스 사람들은 지적 재산권 관련법을 해킹했지만 투자자에 의해 통제되는 추출적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회사의 논리를 다시 생각할 때이며, 오랜 협동조합 전통이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 같았습니다.

2014년 말에 저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숄츠와 팀을 이루었고 그 다음 해에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에서 최초의 플랫폼 협동조합 컨퍼런스를 조직했습니다. 반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운동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새 스타트업들이 저에게 접근하면 할수록 저는 증거 같은 것에 입각하여 조언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역사에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배우고 가져올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협동조합주의와 커먼즈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양자가 융합될 수 있을까요?

 

슈나이더

저는 협동조합을 일종의 커먼즈로산업 시기의 국가와 시장에게 명료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커머닝의 한 방식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커먼즈 활동가들의 비전과 비교해 볼 때 협동조합 전통은 꽤 보수적입니다. 나는 이 보수주의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마찬가지로 재발명의 필요가 있는 ‘바퀴 개수 줄이기’에 기여합니다. 이야기꾼으로서 저는 더 첨단의 커머너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짊어질 과제가 너무 어렵고 새로워서 이념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붙어있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사람들을 커먼즈의 급진적인 비전에 입문시키는 한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비자, AP통신 그리고 동네에 있는 신용조합 같은 귀에 익은 것들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저는 협동조합들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렵니다. 협동조합은 더 다양하고 광범한 커머닝으로 나아가는 출발점, 관문이지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모두 구식 재산 및 소유권과 연관됩니다. 저는 ‘재산은 절도다’와 같은 식의 아나키즘에 마음이 갑니다만, 또한 커머너들이 영주들이 소유권을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공유경제의 정신에 따라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봉건제입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리눅스 코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으며 현재 그것이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기업감시도구인 안드로이드 OS를 가능하게 합니다. 삐께띠가 보여주듯이 자본 소유권이 (임금소득보다 더) 경제적 불평등의 추동력입니다. 협동조합 전통은 소유권을 더 균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재산이 덜 중요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에 더 좋은 위치에 놓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먼즈를 통해서 우리의 욕구를 더 많이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커머너들은 강한 힘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책의 한 장에서 당신은 당신과 대담을 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의 경험과 에콰도르의 ‘FLOK 사회’ 프로젝트를 평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떤지요?

 

슈나이더

한 나라 규모의 커먼즈 이행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었던 FLOK의 경험은 저에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것은 커머닝이 단순히 일련의 고립된 실천들로서 제시되기보다 포괄적인 사회적 비전으로서 제시되는 것을 볼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당연히 그 모든 일에서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의 후속조치는 매우 제한되었습니다만 그 과정은 커먼즈 이행을 위한 자원을 산출했고 이것이 그 모든 일의 핵심을 포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더없이 소중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굉장한 교육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경험을, 세계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는 데 참여하는 경험을 때때로 가져야 합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활동은 당신의 신앙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진보적 기독교인이 될 수 있나요? 당신은 기독교 전통의 특정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나요?

 

슈나이더

협동적 전통을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종교적 전통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더욱더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특히 저의 가톨릭 전통에서 봅니다. 이 전통은 북미 협동조합은행들과 몬드라곤 노동자 협동조합들과 같은 사례를 산출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다른 많은 신앙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협동이 종교로 환원된다거나 종교에 의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 세계의 다른 많은 주된 세력들의 경우처럼 종교도 삶에 활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통해 몇몇 새로운 성인들을 후원자들로서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중세 프란치스코회의 공동 설립자인 아시시의 클라라(Clare of Assisi)는 수녀들이 자치할 권리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모든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이언(John A. Ryan)은 협동조합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덕성 교육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신부인 맥나이트(Albert J. McKnight)는 범아프리카주의적 비전을 남부협동조합연맹(Federation of Southern Cooperatives)의 발전에 적용했습니다. 영어에 갇혀있는 우리에게는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을 창시한 신부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따(José María Arizmendiarrieta)의 저작을 더 많이 번역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이 분들은 신이 우리에게 우리의 공동체를 같이 다스릴 수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는 존엄을 부여했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협동적 경제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바우엔스

새로운 세계로의 ‘상전이’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보시나요? 인류가 이 과정을 완수하리라고 어느 정도 낙관하시나요?

 

슈나이더

제 책의 부제[‘다음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 전통’―정리자]가 암시하는 바와 달리 전 예측을 잘 못해요.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만일 우리가 현재보다 더 풍요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면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언제가 미래에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방대한 불평등과 독재적 기업들, 때때로 이루어지는 투표 등으로 구성되는 현재의 현실을 떠올리며 웃는 일이 분명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리가 더 탁월한 민주주의 형태들을 선택해 나갈 가능성만큼이나 민주주의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커먼즈의 렌즈를 통해 정치를 다시 상상하기



 

여러 우파 민족주의 운동들의 출현—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Charlottesville)의 신나치주의자들, 유럽 전역의 반(反)이민 시위들—은 제 나름의 뚜렷하게 구분되는 기원과 맥락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전체로 보아 그 운동들은 믿을 수 있는 변화를 위해 기꺼이 생각해 볼 선택지들이 자본주의적인 정치문화에서 줄어들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보다 건강한 대안적 비전들은 왜 그토록 드물고 좀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발생시킨다.

정치 엘리트들과 그들의 동지인 기업가들은 현재 존재하는 바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심충적인 모순들을 어떻게 화해시킬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자유 시장 원칙의 고전적인 적들인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조차 낡은 세계관과 일단의 정치 전략들 안에 갇혀 있어서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실속이 없는 일처럼 들린다. 잘 알려진 그들의 진보서사—즉 정부 개입과 재분배로 증대되는 경제적 성장이 실제로 작동하여 사회를 한층 안정적이고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도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아래에서 내가 주장하는 바는 커먼즈 패러다임이 정치•거버넌스•법을 다시 상상하기 위한 새롭고 실천적인 렌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커먼즈는 공유된 부를 관리하기 위한 자기조직화된 사회 체제가 그 핵심이다. 커먼즈는 “비극”이기는커녕 책임과 혜택을 상호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시스템으로서 매우 생성적이다. 커먼즈는 숲, 농지, 물의 성공적인 자기관리에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공동체들과 오픈 액세스 학술 저널에서, 그리고 “세계-지역적” 디자인과 제조 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2008년 경제 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적인 담론을 유포시켰던 많은 합의 신화들에 드리워져 있던 커튼을 열어 젖혔다. 성장은 널리 혹은 공평하게 공유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빈민, 노동계급, 심지어 중산층도 부자들이 누리는 생산성 향상분, 세금 우대 조치나 주식 가치 상승분을 그다지 나눠 갖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모든 경제활동 참여자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해지는 부의 편중은 새로운 전지구적 금권지배체제를 창출하고 있으며, 지배세력은 모든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폐단들에 무관심한 동시에 민주적인 과정을 지배하고 타락시키기 위해 그들의 재산을 이용하고 있다. 시장/국가 체제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이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반적인 비판의 맥락에서,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과제가 좌파나 우파로부터 현재 제공되는 것들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정치적인 상상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약탈을 일삼는 시장과 자본주의를 변형시키거나 길들이거나 혹은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거버넌스와 자급(自給) 계획을 상상할 필요가 있다. 지난 50년간 자본주의가 무자비하게 발생시킨 반(反)생태론적, 소비자 적대적, 반(反)사회적인 ‘외부효과들’(externalities)의 홍수를 국가의 규제로 완화하는 데 실패한 것은 주로 자본가의 힘이 국민국가와 시민 주권의 힘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통적인 좌파는 다시 데운 케인스주의, 부의 재분배 및 사회적 프로그램들이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계속해서 착각하고 있다.

문화 비평가인 더글라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는 “저는 경제를 고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경제는 고장 나있지 않습니다. 불공평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경제는 감독관인 자본가들이 의도한 대로 대체로 작동하고 있다. 시민들은 민주적 절차들이 부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민주정치 내부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위한 투쟁이 자주 무산되기 때문에 종종 절망한다. 국가 관료 체제들과 심지어 경쟁력 있는 시장들도 많은 문제들을 구조적으로 다룰 능력이 없다. 기후변화•불평등•기반시설 및 민주적인 책임감에 관하여 ‘시스템’이 줄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매일매일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가에 대한 불신이 커짐에 따라 정치적 주권과 정당성이 앞으로 어디로 이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타당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비전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오래된 이데올로기 논쟁들이 계속해서 공적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심층적인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늘 존재하던 다수의 의견 차이들을 끝없이 거의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고 성장할 조건이 정말로 거의 없다. 새로운 비전이 사회 개선론적 개혁주의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려면 그 비전이 숨을 쉴 여지, 그 자체의 자주적인 논리와 윤리를 발전시킬 여지가 있어야 한다.

『더네이션』(The Nation)지에 실린 최근 글에서 내가 설명한 것처럼 반란 서사와 프로젝트들은 실제로 상당히 풍부하다. 무엇보다도 기후 정의, 협동조합, 이행도시들, 지역 식품 시스템, 대안적 금융, 디지털 통화, 수평적 네트워크 생산, 오픈디자인과 오픈매뉴팩처링(Open Manufacturing)에 초점을 맞춘 운동들이 자율적인 거버넌스와 자급이라는 새로운 탈자본주의 모델들을 개척하고 있다. 단편적이며 다양할지라도 이 운동들은 공통의 테마—이윤이 아니라 가정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생산과 소비, 상향식 의사 결정 그리고 장기적으로 공유된 부의 파수(把守)—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 가치들 전부 커먼즈의 핵심에 해당한다.

현재로서는 이 운동들이 주류 매체와 정당들에게 거의 무시당한 채 문화 비주류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운동들이 온전함과 실질을 갖추고 발전해 올 수 있었던 이유이다. 오로지 이곳, 주변부에서 이 운동들은 정당들, 정부 기관들, 상업적 매체, 자선 단체, 학계, 산업과 비영리 단체가 결탁한 복합체의 따분한 편견들과 자기중심적인 제도상의 우선순위를 피할 수 있었다.

사회를 변형시키는 변화를 위한 공적인 상상력은 왜 이토록 위축되어 있는가? 부분적으로는 대부분의 기성 기관들이 그들의 브랜드 평판과 기관의 특권을 관리하는 데 더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관들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대담하고 새로운 기획과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한편, 체계를 변화시키는 운동들은 규모가 너무 작고 사소하거나 비정치적이어서 중요성을 띨 수가 없는 것으로 보통 무시된다. 체계를 변화시키는 운동들은 또한 주류 행위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힘, 어포던스(affordance, 개별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구조적인 능력) 그리고 도덕성을 구축하기 위해 인터넷 기반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 뒷전으로 밀려난다. 소작농 그룹 <라비아깜뻬시나>(La Via Campesina)의 등장, 토착민들 사이의 초국적 협력, 우버와 에어앤비에 대한 공유 대안을 촉진하는 플랫폼 협동조합 및 ‘벼증산시스템’(System for Rice Intensification, 농부들 스스로 개발한 일종의 오픈소스 농업)이 바로 그러한 예들이다.

활동가들은 자신들을 특권•평판•간접비용을 유지해야 하는 위계적인 조직들에 속해서 활동하는 존재로 보기보다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개방되어 유동적인 환경에서 유연한 행위자로서 활동하는 존재로 본다. 네트워크에 의해 추동되는 행동주의는 그들에게 활동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자기조직화하고 연계시키며, 재능을 가진 자발적인 참가자들을 끌어들이고, 창조적인 반복을 빠른 주기로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준다.

체계를 변화시키는 운동은 관례적인 정책과 정치과정을 삼가고 자기조직화된 창발을 통해 변화를 추구한다. 생태학적으로 말하자면, 체계를 변화시키는 운동은 오픈 디지털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이용권”(利用圈, catchment areas)을 창출하려고 노력한다. 즉 (물, 식물, 토양, 유기체 등등) 수많은 흐름들이 합류하여 활기찬 에너지가 스스로를 다시 채우는 상호의존적인 지대를 발생시키는 지형을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복잡성 이론과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학자인 마가렛 위틀리(Margaret Wheatley)와 데보라 프리즈(Deborah Frieze)는 다음과 같이 쓴다.

지역의 개별적인 노력들이 네트워크로서 서로서로 연결되고 실천 공동체로서 강화될 때, 갑작스럽고 놀랍게도 새로운 체계가 대규모 수준에서 나타난다. 영향력을 가진 이 체계는 개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다. 자질과 능력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아니다. 체계가 출현할 때까지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그것은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체계의 속성이다. 하지만 일단 체계가 존재하면 개인들도 그 속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발생하는 체계는 계획된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가능한 것보다 더 큰 힘과 영향력을 항상 갖고 있다. 창발은 삶이 급진적인 변화를 창출하고 사물들을 적절한 규모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다.

선거 정치와 전통적인 경제학을 신봉하는 보수집단은 창발의 역동적인 힘을 강화하고 집중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 구조의 필요성을 인식하기는커녕 창발 원리를 이해하는 것조차도 힘들어한다. 보수집단은 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② 위키피디아식 협력과 지식 집성체의 속도와 신뢰성, 그리고 ③ (오큐파이 운동, 스페인의 인디그나도스와 뽀데모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그리고 그리스의 시리자 등등)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자기조직화에 촉매가 된 소셜 미디어의 힘으로 가능해진 상향식 혁신을 한결같이 과소평가했다. 전통적인 경제•정치•권력의 보수적인 신봉자들은 탈중심화되고 자기조직화된 네트워크의 생성적인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제도적 통제와 정치적 분석이라는 시대에 뒤진 범주들을 적용한다. 마치 “말이 끌지 않는 마차들”이라는 말을 통해 자동차의 악영향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낡은 좌우 스펙트럼—이는 사회를 조직하는 데서 “시장”과 “국가”가 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반영한다—을 고수하는 대신에, 거버넌스•생산•문화의 새로운 추진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서사를 맞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 개인적인 작업의 경우, 나는 농부들, 어부들, 대도시 시민들과 인터넷 사용자들이 자본주의 기계의 먹이가 되어버린 공유 자원을 되찾고자 그리고 나름의 거버넌스 대안을 마련하고자 시도할 때 거기서 커먼즈의 엄청난 잠재력을 본다. 이런 식으로 커먼즈는 패러다임이자 담론이며 일단의 사회적 실천이자 윤리이다.

지난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커먼즈는 모든 것의 시장화와 상품화, 자원의 약탈과 사유화 그리고 민주주의의 부패에 도전하는 다양한 운동들을 위한 일종의 포괄적인 메타담론 역할을 해왔다. 커먼즈는 커머너처럼—협동적이며 사회에 관심을 가졌고 자연에 함입되어 있으며 장기적인 환경파수에 관심이 있고 우리의 지구를 구성하는 다원 세계를 존중하는 커머너처럼—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한 언어와 윤리도 제공해왔다.

진정으로 체계 변화를 현실화하려면 우리는 일부 과거 회고적인 개념들과 어휘에서 해방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부상하고 있는 자급 모델과 자율적인 거버넌스에 관하여 새롭게 탈자본주의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펼쳐지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데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은 여러 지도자들과 정책을 선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바꿀지를, 새롭게 공유된 지향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조직할지를 그리고 커먼즈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어떻게 고양시킬지를 배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