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크립토네트워크로


  • 저자  :  조지 자카다키스(George Zarkadakis)
  • 원문 : Do platforms work?” (2018.5.28)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자카다키스는 과학 작가, 소설가, 인공지능 엔지니어이다. 최근의 저서로 In Our Own Image: Savior or Destroyer? The History and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 (2016)가 있다.

 

자카다키스는 이 글에서 회사의 대표적인 형태인 코퍼레이션(corporation)이 쇠퇴하고 플랫폼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음을 포착해서 제시한다. 코퍼레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단일한 법 주체(법인)로서 행동하고 그렇게 법에서 인정받는 회사, 혹은 집단 혹은 조직’인데, 자카다키스가 말하는 코퍼레이션은 여기서 법인 형태의 회사이다. 실제로 ‘corporation’이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기업’, ‘(주식)회사’, ‘법인’ 등으로 옮길 수 있는데, 여기서는 다른 형태의 법인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냥 ‘코퍼레이션’이라고 옮기기로 한다. ‘corporation’은 어원상으로는 ‘법’의 의미도 ‘인’(person)의 의미도 없다. ‘통합’이 그 원래의 의미이다. 즉 여러 요소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단일한 법 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자카다키스는 ‘코퍼레이션’(즉 회사로서의 법인)에 어떤 요소들이 통합되었는지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즈(Ronald Coase)의 1937년 회사(firm) 이론을 원용하여 설명한다. 코즈는 다음의 세 요소를 통합하여 하나의 회사(company)로 만드는 것이 비용을 세 측면에서 최소화해준다고 설명했다.

① 자원 확보(resourcing) : 적절한 숙련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할 때마다 회사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회사 내부로부터 찾아 구하는 것이 덜 비싸다.

② 거래하기(transacting), 혹은 과정 및 자원을 관리하기 : 다수의 외부 계약자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것보다는 회사 내부에 팀을 두는 것이 관리 부담이 덜하다.

③ 계약하기(contracting) : 회사 내부에 작업이 생길 때마다 매번 규칙과 조건을 새로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계약에 들어있는 규칙과 조건이 계속 유지된다.

이 세 비용을 줄임으로써 코퍼레이션은 경제활동을 증가시키기는 데 최적의 구조가 되었다고 코즈는 주장한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소프트웨어, 인터넷, 인공지능 덕분에 코즈가 말한 비용들이 회사 외부의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회사 내부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줄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시장을 통해 프리랜스 노동자들을 발견하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덜 위험하고 더 빠를 수 있다. 협동 도구들이 관리자가 없는 형태의 노동이 들어설 공간을 열어준다. 그리고 계약비용은 블록체인 프로토콜의 출현 덕분에 상당히 하락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로 새로운 방식의 노동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노동은 개방적이고 숙련에 기반을 두며 소프트웨어에 의해 최적화된 일련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게 된다. ‘코퍼레이션’이 있던 자리에 ‘플랫폼’이 들어서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 희망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위협적인 것인가?’이다.

『플랫폼 혁명』(Platform Revolution, 2016)이라는 책에서 파커(Geoffrey Parker), 반 앨스타인(Marshall Van Alstyne), 그리고 초우더리(Sangeet Paul Choudary)는 사업체들이 예전에는 ‘파이프’(선형 모델)였는데 이제는 ‘플랫폼’(네트워크 모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혁명 이전에 회사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과정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흐름이라는 형태를 띤다. 마치 파이프들이 심해 유정을 차에 휘발유를 급유하는 사람에게 연결하는 것과 같다. 이와 달리 플랫폼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뚜렷한 구분을 무너뜨린다. 사용자들도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들은 파이프 형태와는 다른 기반시설을 필요로 한다. 사업체의 주요 과제는 창조자들과 소비자들을 거래가 일어나기에 적절한 비율로 끌어 모으는 것이다. 두 (혹은 더 많은) 집단들 사이의 교환을 양성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플랫폼들은 사실 시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이제 경제적 가치가 회사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우버가 그 고전적인 사례이다.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승차 주문을 쉽게 만들기에 충분한 운전자들이 플랫폼에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운전자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 소득을 보장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소비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평형을 찾으려면 상당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아직 없더라도 돈을 지출하거나 공급자들이 뛰어들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떤 지점에서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발동한다. 플랫폼이 더 많은 공급자들과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되고 이로 인해 거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제 플랫폼의 소유자는 모든 거래에서 일정 몫을 플랫폼사용료(‘rent’)로 취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 네트워크가 커지면 소유자가 버는 돈도 커진다. 이런 식으로 플랫폼은 경제적으로 가치를 낳는 것이 된다.

그런데 모든 플랫폼들이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인터넷의 첫째 국면)에는 웹을 돌아다니면서 모두가 상당히 평등한 지위에 있는 대화방과 포럼 형태의 열린 공간을 만나곤 했다. 그런데 인터넷의 둘째 국면에서는 이 공간들이 폐쇄되고 네 개의 거대한 첨단기술 회사들―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 제공하는 사유화된(proprietary) 서비스들에 의해 대체된다. 사용자들은 효율성과 편의 때문에 그런 플랫폼들로 이동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첨단기술 과점(寡占)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체들은 중앙집중화되어 있고 소수가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크다. 소비자 데이터가 이윤과 권세를 위해 마구 이용될 수 있고 개발자들은 기업 우두머리들이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들은 소수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따라 예측 불가능하게 바뀔 수 있다. 요컨대 인터넷이라는 경쟁의 장이 더 이상 평평하지 않고 플랫폼을 소유한 거물들을 향해 크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플랫폼들은 회사가 사용자들과 관계하는 방식을 재발명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재발명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일을 인간들과 알고리즘들의 혼합이 실행하는 과제들로 분해했을 때, ‘긱 경제’(노동이 임시적이고 숙련 기반이며 온디맨드 식)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우버의 운전자이든 업워크(Upwork)를 통해 계약한 금융분석가이든 구글이나 아마존의 개발 사업에서 마이크로태스크를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든, 그 생계가 수요의 주기적 변동에 의존한다. 잉여 이윤은 플랫폼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데, 이 소유자는 고용과 관련된 보호장치들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여기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위협을 더한다면 그 결과는 적자생존이라는 시나리오가 된다.

회사를 ‘제대로 된’ 직원들로 플랫폼화하더라도 인간 본성과 충돌할 수 있다. 현재 아마존이 소유하고 있는, 신발과 의류를 파는 디지털 숍인 자포스(Zappos)는 약 1,500명의 직원을 채용하여 매해 3십억 달러 상당의 제품을 판다. 2013년에 자포스는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발명한 자기조직화 방법인 ‘홀러크라시’(holacracy)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홀러크라시는 피라미드식 위계 대신에 ‘서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각 서클은 마케팅 같은 전통적인 시장 기능과 동시에 특수한 기획이나 과제에 집중하는 다른 ‘하부서클’도 포함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하부서클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일에 방해가 되는 관리자는 없다. 그 대신에 소프트웨어가 개인들과 팀들의 협동과 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전술 미팅들’이 직원들로 하여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한다. 그런데 홀러크러시가 약속하는 유연성과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들은 이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정서적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며 인간을 디지털 자본주의의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으로 환원시킨다고 비판한다. 이와 유사하게 우버 운전자들은 자신이 사람 같이 느껴지기보다는 앱이 조작하는 로봇 같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일을 과제들로 분해하고 그 할당을 자동화함으로써 오늘날의 인간 노동자들은 내일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에 의해 축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군주들에 종속된 이류 농노들로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기를 바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플랫폼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자기조직된 사업네트워크를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라고 불렀다. 가령 일단의 운전자들이 우버와 유사한 플랫폼을 구축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것을 개발할 소프트웨어 도구는 오픈소스라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개발하고 설계할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여할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자율적 기획이 이미 존재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승차공유 플랫폼인 라주즈(La’Zooz)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누구나 가입하여 주즈(Zooz) 토큰을 벌 수 있다. 이 토큰으로 차를 탈 수도 있고 이 사업의 소유권의 지분을 나타내는 가치를 저장할 수도 있다. 해당 앱으로 20킬로 이상을 운전하거나 설계에 코드를 기여하거나 다른 사람을 참여시킬 때마다 토큰을 벌 수 있다. 주즈 토큰의 이중적 목적은 ① 플랫폼의 소유권을 민주화하는 것 ②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창조하는 가치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폐쇄된 플랫폼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증가하면 플랫폼사용료가 빼내어져 주주들 혹은 자본 소유자들에게로 간다. 이와 달리 토큰화된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의 거래가 창조한 가치가 사용자들이 소유한 토큰의 가치를 증가시킨다. 요컨대 사용자들은 네트워크 효과가 낸 경제적 가치를 멀리 있는 주주들에게 뺏기지 않고 토큰을 통해 최대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민주화된 구조의 또 하나의 사례는 ‘탈중심화된 자율조직’(decentralised autonomous organisation, DAO)이다. 이는 2016년 5월에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인 이더리움(Ethereum)을 바탕으로 선을 보였다. DAO의 목표는 리더가 없는 벤처 자본 펀드가 되는 것이다. 관리구조도 없고 이사진도 없으며 직원도 없다. DAO는 DAO 토큰을 보유한 18,000명 이상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소유권을 확대했다. 이들은 투표권도 가진다. 모든 펀딩 결정은 투표에 의해 결정되며 그 결과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된다. 그런 다음에 이윤과 손실이 토큰 소유자들에게 분배된다. 참여자들은 다수결 투표 기반으로 거래를 안전하게 하는 규칙들을 통해 ‘온체인’(on chain)으로 결정에 대하여 직접적 발언권을 가진다. 그들은 또한 토론그룹과 같은 사교적 구조들을 통해 ‘오프체인’(off-chain)으로도 발언권을 가진다.

DAO는 신뢰받는 투자관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작동 주기는 ‘스마트 계약들’ 안에 함입되어 있다. ‘스마트 계약’이란 소프트웨어 코드로 작성된, 실행에 관한 규칙들을 담은 합의(agreements)이다. DAO는 비록 초기에 겪게 마련인 어려운 문제들― 여기에는 2016년 6월의 대대적 해킹 사건도 포함된다― 을 안고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자치적인 조직이 어떻게 창출되는지를 원칙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인터넷 진화의 제3기가 ‘크립토네트워크들’(cryptonetworks)에 의해서 도래하고 있다. 이 플랫폼들은 본래 탈중심화되어 있으며 참여자들은 네트워크에서의 거래에서 토큰(혹은 ‘암호코인’)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권위를 가진 중앙이 없이 합의에 도달하거나 거래가 기록된다. 토큰과 합의라는 이 두 요소가 민주적·공동체적 거버넌스 모델을 낳는데, 이는 이전에는 신뢰받는 제3자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참여자들은 코인을 팖으로써 간단하게 퇴장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과거의 버전을 떠나 새 버전으로 분기하는 새로운 규칙을 채택하는 ‘하드포킹’(hard-forking)을 함으로써 퇴장할 수 있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자신들의 플랫폼을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주인이고 소득이 공정하게 분배되며 이윤과 손실이 공유된다. 토큰의 동학이 참여자들의 이익이 공통의 포부와 목표를 중심으로 정렬될 수 있게 만든다. 토큰의 가치의 인정이 네트워크의 성장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크립토네트워크의 초기에 있다. 규모와 수행성에서 아직 심각한 기술적 결함들이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블록체인이 처리하는 거래들의 수가 중앙집중화된 소프트웨어들이 처리하는 엄청난 수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이 기술적인 이유로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왜 크립토네트워크들이 미래의 플랫폼일 수 있다고 낙관하는가?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이 개발자들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데이터로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어서 상상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응용프로그램을 내기 위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좌절하고 있다. 플랫폼 집단주의 경제가 플랫폼 자본주의의 승자가 모두 가져가는 식의 접근법보다 더 큰 자유와 보상을 제공한다.

협동하는 집단들의 상호연결된 생태계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재화를 생산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 코퍼레이션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위계를 일소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동하는 세포들(cells)의 네트워크가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회사 구조는 사용기한이 다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플랫폼의 경제를 수용할 수 있고 소유권이 노동자들에게로 이동하면 더 공정하고 복원력 있으며 민주적인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탈자본주의적 기업가활동



[책 설명]

1. 보이드 코헨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여러분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최근의 교류로 알고 있지요) 이 책은 자본주의가 전반적인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며, 분산적 테크놀로지에 의해 향상된 더 민주적인 조직화·가치창조·포획의 새로운 (그리고 오래된) 형태들이 공동체적 기업가활동(entrepreneurship)(([옮긴이] entrepreneurship’은 ‘entrepreneur’(기업가)에 접미사 ‘-ship’이 붙은 것이다. ‘-ship’은 일반적으로 추상명사로 만드는 기능을 하지만, 영여에서는 추상명사와 구체명사가 자유롭게 호환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ship’이 붙으면 오히려 상황에 따라 여러 구체명사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ntrepreneurship’이 추상명사일 때에는 ‘기업가임’ 혹은 ‘기업가로서의 존재’ 등의 의미인데, 기업가라는 존재는 기업가로서의 정신도 가져야 하고 능력도 가져야 하며 기업가로서 활동도 해야 하는 등 여러 측면들이 있을 것이다. ‘entrepreneurship’이 구체 명사로 쓰이면 이 여러 의미들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맥락을 잘 보아야지 기계적으로 ‘기업가정신’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맥락을 보아 주로 ‘기업가활동’으로 옮겼다. 참고: ‘entrepreneurship’은 실제로는 드물지만 잠재적으로는 기업가들 전체를 통칭할 수 있다. ‘leadership’이 ‘지도층’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와 같다. ‘-ship’은 미디어를 통칭하는 단어인 ‘mediascape’의 ‘-scape’와 어원이 같다.))이라는 대안적인 경제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책의 여러 장들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커먼즈 기반 피어 생산,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대안적 통화(通貨), 분산된 자율적 조직, 탈자본주의 기업가활동에서의 벤처자본의 중요성의 감소.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것을 도시 수준에서 총괄하여 탈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기본소득 및 팹시티들(fab cities)(([옮긴이] fab city’란 지역에서 생산하고 전지구적으로 연결된 자기충족적 도시들을 나타내는 새로운 어번 모델이다. fab.city 참조.))과 결합되어 작동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2017년 4월 저자의 전자메일)

2. 출판사의 책 설명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오큐파이 운동은 미국에서 그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세계의 여러 민주 국가들에서 가동되는 시장 기반의 자본주의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인식에 대한 반응으로 출현했다. 일반 시민은 체제가 부유한 자들을 더 부유하게 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확신을 점점 더 가지게 되었다. 지니 계수(Gini Index)와 같은 소득 불평등 관련 데이터는 대중의 인식이 정확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우리는 탈자본주의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새로운 경제적 모델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음을 목격해왔다.

탈자본주의 사회의 주창자들은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러시코프(Rushkoff)는 지식 사회가 어떻게 더 큰 소득 분배와 모든 사람의 소득의 증가를 낳기보다 실제로 부가 1%의 수중에 축적되는 악화된 상황을 가져오고 있는지를 탐구했다. 러시코프와 마슨(2016)은 에어비앤비(Airbnb)나 우버(Uber) 같은 메가플랫폼 디지털 P2P 독점체들의 출현을 탄식한다. 이 독점체들은, 야심있고 벤처자본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소유하는 P2P 플랫폼들이 반드시 더 나은 평등을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기어코 전지구적인 지배를 추구하여 결국 나의 동료이지 <셰어러블>(Shareable)의 창립자인 고렌플로(Neal Gorenflo)가 ‘죽음의 별 플랫폼들’(‘platform deathstars’)(([옮긴이] 음의 별’(Death Star)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조그만 행성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이동 구조물이다.))이라고 부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러시코프는 자본주의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과 투자자들을 실제로 비난하는 것은 거부한다. 그 대신 그는 그들 ‘자신이 다른 모든 디지털 거대 기업들을 제치고 지배하려는 승자독식형 경쟁에 빠져있다. 커지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것이다’(pp.3-4)라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이미 탈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중이라면 이것이 기업가들에게 (실리콘밸리만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책은 전 세계의 기업가활동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대해 탈자본주의 사회가 가지는 함축을 이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며, 탈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기업가들이 창업을 하는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창업투자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서 혹은 하지 않으면서 창업을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생각들 가운데 다수를 문제 삼는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대안적 통화(지역, 암호화폐, 시간 은행), 블록체인을 도입한 분산된 자율 조직들(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s, DAOs)의 출현과 같은 주제들에 각각 장을 할애하여, 출현하는 실제 이야기들을 탐구하고 탈자본주의적 기업가활동(post-capitalist entrepreneurship, PCE)의 여러 형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강하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시장 자본주의와 PCE 사이의 연속성에 착목하는 혼성(混成)적 접근법들을 탐구할 것이다. 공유경제 내에 있는 플랫폼 협동조합들이나 베네핏 기업들(예를 들어 B랩 인증 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각 장의 내용 요약]

1장 커먼즈 기반 기업가활동을 향하여

기업가활동에 대한 고전적 접근법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는, 기업가들이 지적 재산을 발전시키고 보호함으로써 경쟁에서의 우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적 재산을 보호하는 것 대신에 그 자리에 가치창조 및 추출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법이 들어선다. 탈자본주의 기업가들은 전문지식을 보호하려고 하기보다 혁신과 가치창조를 열린 과정으로 본다. 즉 그것을 통해 공동체(디지털 형태든 물리적 형태든 양자 모두이든)가 혁신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도구들에 무제한 접근할 수 있는 그러한 과정으로 본다. 소비자들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참여자들이 되어 다른 이들의 작업을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다음 작업을 해나간다. 자원(디지털, 물리적, 자연적)의 공유나 공동생산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동을 나타내는 커먼즈 개념은 탈자본주의적 활동을 틀짓는 방식으로서 추진력을 얻었다. 자본주의가 자원과 보호되는 지적 재산의 희소성을 장려하는 반면에 PCE는 풍요와 접근을 장려한다. 이 장은 탈자본주의적 기업가활동을 틀짓는 방식으로서의 커먼즈를 탐구하는 데 할애되어 있으며, 커먼즈 기반 PCE를 가능하게 하는 몇몇 새로 출현하는 패러다임들과 도구들 살펴볼 것이다.

2장 신생 베네핏 기업들

나는 전통적인 자본주의 모델을 통해 규모를 키우려고 하는 신생 기업들이 곧 혹은 아마 중기적으로라도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과 PCE 사이의 어떤 혼성적 모델에 해당하는 일련의 과도적 접근법들을 목격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도적 접근법들을 탐구하기에 제일 좋은 사례는 미국 등지에서 법적 지위를 점점 더 굳혀가고 있는 신생 베네핏 기업들(for-benefit startups)(([옮긴이] for benefit’은 ‘for-profit’(영리)과 ‘nonprofit’(비영리)이라는 기존의 기업 구분의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기업, 즉 수익을 남기지만 명시적인 사회적 사명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아직 좋은 번역어를 찾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일단 ‘베네핏’으로 음역하기로 한다. ‘for benefit’은 자기 이득만 취하지 않고 사회에 ‘선행’(benefit)을 베푸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이다. B랩인증 기업들(B Corporations, B Corps)(([옮긴이] B Corporations’는 B랩 인증을 받은 영리기업들을 말한다. B랩 인증은 전지구적 비영리 조직인 B랩(B Lab)이 기업의 사회적 지속가능성 및 환경수행 기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준 등을 얼마나 충족시키는지를 평가하여 발행하는 인증이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법적으로 구속하여 사회적·환경적 수행의 높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회사들이다. 이 장은 B랩인증 기업들(현재 전 세계에 약 2000개가 있으며 계속 늘고 있다)의 출현과 B랩인증 기업들의 지위를 확립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것을 탐구하고 법적 구속력을 가진 시장 외적 목표들을 자신들의 전략과 운영에 수용한 몇몇 흥미로운 기업가들의 사례를 부각시키는 데 할애될 것이다.

3장 대안 통화와 장소 기반의 PCE

화폐란 무엇인가? 둘 이상의 거래자들 사이의 가치교환 메커니즘일 뿐이다. 일국의 정부와 지방 정부가 지원하는 지폐 형태의 통화(‘명목화폐’라고 불린다)가 존재하기 이전에 금 및 기타 금속들이 교환을 촉진하는 데 사용되었다. 금 이전에는 가치 있는 물건들을 서로 교환하는 물물교환 같은 제도들이 많이 존재했다. 우리는 세계 전역에서 지역 지폐통화에서 디지털 암호화폐, 시간 은행, 선물 경제에 이르는 광범한 대안적 통화들이 부활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 장은 대안적 통화들을 활용하거나 창조하거나 지원하는 기업가활동을 탐구하는 데 할애된다.

4장 ‘죽음의 별 플랫폼들’에서 테크놀로지에 의해 구현되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로

우리는 사람들과 사업체들을 서로 연결하는 플랫폼들의 사용이 급속하기 증가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여기에 공유경제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이 기업들 가운데 다수는 공동체를 개선하기보다 착취 행태와 피해주기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에어비앤비, 우버, 딜리버루(Deliveroo) 등은 규제를 회피하고 ‘독립계약자들’―이들은 실상 최소임금, 각종 혜택, 건강관리를 못 받는 고용인들이다―을 고용했다는 이유로 세계 전역에서 소송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공유경제와 거기 속한 기업가들은 악명을 얻었다. 사실 <셰어러블>의 고렌플로와 같은 사람은 이 기업들을 ‘죽음의 별 플랫폼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공유보다는 커먼즈 접근법을 수용하는, 수 천 개의 다른 공유경제 기획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테크놀로지 기반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테크놀로지와 무관하거나 낮은 수준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 장에서 나는 내 동료인 파블로 무뇨즈(Pablo Muñoz)와 함께 수십 개의 공유경제 비즈니스모델들을 연구한 후에 개발한 공유경제 모델 나침반(the sharing business model compass)과 공유경제모델 캔버스를 소개할 것이며, 공유경제 기업들의 창출에의 흥미로운 대안적 접근법으로서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의 성장을 소개할 것이다.

5장 분산된 자율적 조직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모델 내에서 작동하는 플랫폼 협동조합 너머에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출현한, 분산된 자율적 조직(a 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이라 불리는 새로운 PCE 모델이 있다. DAO는 기본적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1장 참조)와 플랫폼 협동조합(4장 참조) 사이의 잡종이다. DAO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업이 아니며 공동체를 통해 개발되고 개선된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가령 지식 공유를 위한 오픈소스 도구인 위키피디아와 달리 DAO는 피어들 사이의 교환을 촉진하는 오픈소스 도구이다. 우버가 끼지 않아서 운전자들이 거래가치의 100%를 얻을 수 있는 우버를 생각해보라. 이는 과학소설도 아니다. 애초에 3장에서 살펴본 디지털 통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상된 블록체인 같은 분산된 원장들에 의해서 주로 가동되는 DAO들이 이렇게 우리가 말하고 쓸 때에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지역의 생태계와 P2P 상호작용을 뒷받침하는 데 전지구적 분산 테크놀로지를 활용함으로써 DAO들이 지역과 전지구적 수준 모두에서 작동할 수 있을까? 갈등은 어떻게 해소될까? 중개자 없이 P2P 플랫폼들이 돌아가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DAO 플랫폼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협동집단을 위한 새로운 수익모델들이 있을까? 이 장에서 나는 새로 생기는 DAO의 사례들에 대해 일정한 통찰을 제공하면서 이 물음들 가운데 일부에 답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조명해보는 작업은 하려고 한다.

6장 PCE 세계에서 벤처자본은 죽는다

승자독식형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계속 추동세력으로 남겠지만, 99%의 운동과 점점 더 충돌하게 될 것이다. 기업가들이 더 이상 세계를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벤처자본모델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PCE 세계에서는 어떻게 신생 기업들이 재정을 조달할 것인가? 이 장에서 나는 신생 기업들에게 재정을 제공하는 일을 하는, 벤처자본과는 다른 새로운 광범한 대안들을 탐구하면서 일련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에 강하게 초점을 맞추고 심지어는 PCE를 위한 완전히 가벼운(lean)(([옮긴이] 여기서 ‘lean’은 불필요한 것이 다 빠졌다는 의미이다. 몸에 해로운 기름기가 빠졌다는 식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해하기 쉽게 ‘가벼운’으로 옮겼다. 데이빗 플레밍(David Fleming)은 그의 유작 Lean Logic: A Dictionary for the Future and How to Survive It(2016)에서 ‘leanness’(홀쭉함)를 중요한 개념으로 다듬어냈다. ‘leanness’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와는 다른 특징―자기증강보다는 자기창조로서의 인간의 살림, 다양성, 지역특수성, 정신지향성 등―을 통합적으로 가리킨다.)) 창업 방법론을 수용할 것이다. 나는 또한 점증하는 ‘느린 화폐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강한 사회적·환경적 사명을 따르는 기업들에 투자하려고 하는 점점 더 수가 늘어나는 영향력 있는 투자자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또한 시민 기업가들이 지역 자치정부들이 혁신 프로그램들에 주는 지원금을 타서 그들의 기획에 재정을 대는 방식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7장 미래로 돌아가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나는 탈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루어지는 광범한 대안적인 조직화 형태들을 탐구했다. 각 장이 별도의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도록 되어있고 탈자본주의적 기업가들이 거주하는 지리적 장소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지만, 이 장에서는 특정의 장소(도시들)가 이 책에서 논의된 모든 PCE 형태들을 기본소득이나 팹시티들과 같은 다른 탈자본주의적 논제들과 아울러 수용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시선을 돌려, 미래로 돌아가서 지나간 시대의 개념들을 블록체인이나 3D 인쇄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들과 혼합하여 우리의 경제를 그 바탕에서부터 재구성해볼 것이다. ♣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에서 프로토콜 협동조합주의로?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에서 프로토콜 협동조합주의로?

 

협동조합주의가 효과있게 작동하고 있는가?

18세기에 ‘정치경제’가 주제가 된 이래 노동 대 자본이라는 지배적인 정치적 이분법이 구축되었다. 맑스는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가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로부터 뺏어내야 할 본질적 정치적 힘이라고 말했다. 많은 행동주의와 정치 이론이 이 노선에서 계속되고 있다. 알페로위츠(Gar Alperowitz)의 저작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What then must we do?)의 핵심은 노동자 소유의 협동조합들 및 이와 유사한 단체들의 재구축이다. 150년의 역사가 이 단체들의 효율성을 입증한다.

운동은 흥성과 쇠퇴를 반복했지만, 그 대립물을 (아직은) 극복하지 못했다. 자본가들은 거의 무제한의 신용을 만들어 낼 힘이 있으며 사회운동은 아무리 널리 퍼졌다 하더라도 항상 수세에 있는 것 같다. 나로서는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단체들이 과연 경제를 지배하게 될지 의문이다. 한편으로 경제 정의가 많은 곳에서 많은 형태로 스스로를 천명하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둡고 강력한 세력이 이를 억압하고 있다. 협동조합들의 경쟁력을 앗아가기 위해 법을 바꾸고 있으며, 때로 신자유주의 흐름을 거스르는 나라들이 CIA가 이끄는 체제 변화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재산을 통제하는 권력이 법·미디어·안보세력·군부·은행들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 시대는 기계와 공장을 필요로 했으며, 따라서 자본과 재산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투자를 할 수 있게 했다. 이런 생각은 디지털 시대까지 이어졌는데, 이 시대에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이라면 다수의 숙련된 사람들을 모아서 과도한 양의 불필요한 도구들―이들 가운데 일부만 살아남아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팔리게 될 것이다―을 (위한 시장들을) 창출하는 데 들일 엄청난 양의 돈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자본을 중심으로 부를 창출하는 방식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요소가 없다.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디지털 ‘생산수단’인 플랫폼이 거기에 참여하는 가치 창출자들에 의해 소유되고 다스려지며 이들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핵심으로 한다. 접근법이자 전술인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19세기의 초보적 협동조합주의가 디지털 시대와 사이버공간으로 곧바로 확대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이 (늘 그래왔듯이) 주변부에서 작동하지 광범한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주리라고 예측할 수가 없다.

 

왜 프로토콜인가?

내 생각에는 다른 전략이 유망할 듯하다. 재산이나 소유 혹은 통제에 초점을 두지 말고 관계들, 프로토콜들, 그리고 협동에 초점을 두자. 살펴볼 선례들이 많지만, 이런 생각이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공간에 적용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내가 ‘프로토콜’로 의미하는 것은 언어, 관례, 혹은 표준이다. 이런 것들의 사용은 제한되거나 금지되거나 화폐화될 수 없다. 이는 단어, 제스처, 사회적 코드가 제한되거나 금지되거나 화폐화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인터넷은 본질적으로 TCP/UDP, http, HTML과 같은 프로토콜들로 이루어지며, 이것들은 매우 평등한 참여를 허용하는 기반시설을 낳는다. 이것이 필연은 아니었다. 역사가 다른 경로를 거쳤다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구개발팀이 웹을 발명하고 그 결과 모든 페이지가 비주얼 베이직에 의해 향상되는 문서가 될 수 있었다. MS 오피스가 웹페이지를 작성하는 유일한 도구가 되고 라이선스를 얻는 데 5천 달러를 들여도 파이어폭스에서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저 오픈 프로토콜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이 경로를 피해 갔다. 내 생각에 바로 이것이 초기의 웹이 사회경제적인 활동영역의 평등화에 관해서 그토록 많은 낙관주의를 불어넣은 이유이다. 발로우(John Perry Barlow)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혹은 태생에 따른 특권이나 편견 없이 모두가 들어올 수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라도 어디서나 자신의 믿음을 그것이 아무리 특이하더라도 침묵과 순종을 강제당할 두려움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과 관련된 당신의 법적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윤리, 계몽된 자기이익 그리고 공동의 행복으로부터 우리의 거버넌스가 출현하리라고 믿는다. (“A cyberspace Independence Declaration”)

인터넷의 기본은 고안된 대로 자유로운 상태로 남아있다. 우리는 가령 전자메일을 보내거나 웹페이지를 보는 데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언가가 잘못 되었다. 모든 테크놀로지들처럼 인터넷도 새로운 겹들이 구축되면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각 겹의 내적 논리는 전적으로 다른 겹들과는 무관하다. 마치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구성되는 안정된 원자 모델이 그것이 기반을 둔 불확실한 양자(quantum) 차원의 실재와 무관하듯이 말이다. 자본가 세력은 자신들의 논리와 구조를 사이버공간에 어떻게 복제할지의 문제를 서서히 해결했다. 그들은 오픈 프로토콜 위에 지불 장벽들(pay walls), 화폐화된 서비스들, 종획된 공간들을 지었다. 규칙들은 수준마다 다르다. 2017년에 이르면 작든 크든 플랫폼들이 사적 투자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데이터를 소유하고 경제적 영토를 통제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이 된 듯하다. 가장 큰 플랫폼들이 가장 많은 사용자들과 가장 많은 돈과 가장 많은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내 생각에는) 마인드닷컴 같은 플랫폼은 페이스북과 일대일로 맞서서 이기기가 힘들다.

 

플랫폼을 넘어서 프로토콜로

나는 다음의 주장을 이어받아 더 발전시키고 싶다.

플랫폼 협동조합이나 플랫폼 회사 모델은 진정으로 분산된 네트워크로 향하는 잠재력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모델이 아니다. 이 모델에는 여전히 중심적 플랫폼 오퍼레이터가 중앙부에 존재하면서 조정, 질 보장, 그리고 가장 본질적으로는 신뢰를 제공한다. 그러나 플랫폼을 넘어서 프로토콜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 즉 공통적으로 동의되는 작동(오퍼레이팅) 방식으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경우에는 규칙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네트워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Mikko Dufva)

‘승차공유’(Ride-sharing)는 공유경제의 상징이며 플랫폼 협동조합들에 의해서 선택된 혈(穴)자리이고 현재 우버의 영지(領地)이다. 이는 자연적 독점으로 간주될 수 있는데, 기반시설이 추가적으로 복제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여러 신분들, 앱들, 사용자 인터페이스들, 가격구조들 등을 원하지 않는다. 사업가들은, 이런 독점들은 바람직하며 경쟁은 패배자들에게나 해당한다고 주장한 페이팰(PayPal)의 창조자 씰(Peter Thiel)을 칭찬하고 있다. 그는 독점사업들이 어떻게 소유되어야 하는가, 혹은 다스려져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투자전략으로 보아 그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직접 소유하려고 할 것이라고 추측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화폐에의 접근 능력의 직접적 결과로 얻어지는 우버의 준(準)독점은 심각한 경쟁 없이 마켓을 최대한 쥐어짤 수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상업적 이익을 가져온다. 우버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그랬을 경우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버가 망한다면 시장은 아마도 많은 양립할 수 없는 조각들로 쪼개질 것이며, 이는 차를 가진 사람들에게나 차를 타고 싶은 사람들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승차공유 서비스는 협동조합을 구성하여 이윤을 재활용하고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보수를 줌으로써 우버와 경쟁하려는 시도처럼 들린다. 이는 비록 우버가 경쟁사들을 불법적으로 방해했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설득력 있는 사업계획이 아니다. 우버는 경쟁사들이 질식할 때까지 더 싼 값에 서비스를 제공할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차공유를 위한 오픈 프로토콜은 게임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누구라도 네트워크에 가입하여 여행할 의도나 운전사 역할을 할 의지를 고지할 수 있다. 단순한 알고리즘이 이들을 연결할 것이며 여행이 끝나면 서로 현금, 비트코인, 집에서 만든 음료 등 무엇으로라도 서로 보답할 수 있다. 친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과 생계를 버는 것 사이의 구분선은 매우 흐릿할 것이다. 회사 측을 대표하여 사용료를 받거나 운전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지시할 중간상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픈 프로토콜은 자유 시장을 창출한다. 가상과도 같은 달러화로 원하는 어떤 나라든 그 경제를 쓸어버릴 수 있는 월가 식의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이 아니라 공급자들과 고객들이 중간상인들, 규제자들, 혹은 임대업자들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 시장이다. 이는 세금을 걷고 보호비를 뜯는 데 적합하기보다는 모두에게 경제에 접근할 기회를 부여하는 데 더 적합하며, 별로 사용되지 않는 수송 기반시설을 사용한다는 관점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이 글의 제목은 협동적 기반시설의 토대로서 프로토콜이 플랫폼을 대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더 정확하게는, 오픈 프로토콜이 플랫폼들의 역할을 감소시키고 작동 환경을 다음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사용자들에게 돌아가는 주된 혜택은 프로토콜 안에 내장되며 따라서 사용자들에게 시장이 독점사업에 의해 지배되는 데서 오는 혜택은 없다.

· 공급자들과 고객들이 중간 상인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이것이 인터넷의 초기 약속들 가운데 하나였다.)

· 사용자들은 ‘벽으로 두른 정원’(walled garden) 안에 더 이상 갇혀 있지 않다는 데서 이익을 얻는다.

· 데이터 소유의 문제가 법에서도 아니고 제3자에 의해서도 아니라 바로 프로토콜 안에서 다루어지며, 이것이 비용을 낮춘다.

· 플랫폼 소유자는 공급자들과 고객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 더 이상 책임지지 않으며, 이것이 감시와 수수료의 필요를 감소시킨다.

· 나라의 법은 오직 교환자들의 행위에만 적용되며 따라서 훨씬 더 단순하다.

 

변화된 경제

요컨대 플랫폼의 대부분의 기능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그 대신이 새로운 종류의 조직들이 들어서서 새로운 종류의 기능을 수행할 여지가 생긴다. 새로운 종류의 조직들은 그들이 프로토콜에 추가할 수 있는 모든 가치를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저 사용자들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데 협동할 수 있다. 멀리 가지 말고 승차공유의 구체적 사례를 보자.

· 회사들은 최선의 사용자 경험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유료 앱들을 개발할 수 있다.

· 오래된 차들을 모는 운전자들은 항상적인 공급과 서로 가격 낮추기 경쟁을 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해서 조직을 구성할 수 있다.

· 운전자들은 상호 보험 그리고/혹은 상호 금융을 조직할 수 있다.

· 같은 차에 목적지가 다른 여러 승객을 태우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추가된 수익의 일부를 취하는 시스템을 프로토콜 위에 구축할 수 있다.

· 견인 서비스, 우편 서비스, 장거리 여행 및 정기통근자 승차공유와 함께 사설 앰뷸런스 서비스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운전자들 그리고/혹은 승객들의 신분을 확인하거나 이들이 일정한 사회적 신망을 가졌음을 보장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만일 프로토콜이 이것을 다룰 수 없다면 제3자의 서비스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프로토콜은 널리 이용되면 우리의 수송 생태계를 알아볼 수 없게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정규 운전직들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며 ‘히치하이킹 2.0’ 접근법이 더 선호의 대상이 될 것이다. 자유 시장이 정규 운전직들과 비고용 운전자들 사이의 차이를 지우고 비용과 수입을 평준화할 것이며, 이는 아마도 (적어도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장악하기 전까지는!) 더 평등한 사회로 이르게 할 것이다.

 

블록체인의 역할

기본적으로 개방된 참여를 허용하는 프로토콜인 블록체인이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만들고 있다. 블록체인은 어떤 한 단체에 의해 소유되지 않고 플랫폼들의 중대한 기능들 가운데 일부를 수행한다. 그 기능들은 다음과 같다.

· 데이터 저장

· 계약 실행

· 지불 관리

아케이드 시티(Arcade City)에 관한 한 글이 이 점을 분명하게 한다.

결국 아케이드 시티는 우리의 기반시설 위에서 실행되는 앱들과 사업들의 전(全) 생테계로써 전지구적 물류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이서리엄(Ethereum) 스마트 계약들로 구성된 프로토콜이 될 것이다. 전자메일과의 관계에서 SMTP가 하는 역할을 분산된 물류에서 아케이드 시티가 하게 될 것이다.

아케이드 시티가 장차 등장할 플랫폼 협동조합이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에 소유되고 팔리는 물건이라는 의미에서의 플랫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케이드 시티의 홍보 사이트가 구성원들에 의해 소유되고 작동된다고 주장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잘못된 말이다.

 

인적 요인

어떤 법적 관할권 내에 있는 협동조합과 같은 법적 조직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일이 가져오는 이익 및 과제는 보편적인 프로토콜을 사용하고 다스리고 파수하는 일이 가져오는 이익 및 과제와 판이하다. 아쉽게도 아케이드 시티는 현재 이사회의 내분 이후 분열되었으며 이는 그 구성원들이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을 심히 의심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테크놀로지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필요한 것은 협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 저자 슬레이터는 이 글의 주제를 더 탐구하여 벤델 교수(Professor Jem Bendell)와 함께 새 글 “Thwarting an Uber Future for Complementary Currencies: Open Protocols for a Credit Commons”를 썼다. 이 글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커먼즈로서의 도시

*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에 2015년 11월 14일자로 게시된 글 “The City as Commons: The Conferenc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글들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커먼즈로서의 도시

옮긴이 : 정백수

 

지난 주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매력적인 200여 명의 커머너들이 모인 걸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커먼즈 옹호의 새로운 주된 전선이 도시라는 집중점에 모였다고 선언해도 무방하다. 개최된 행사는 “커먼즈로서의 도시: 도시 공간, 공통재, 시 거버넌스를 다시 생각하기”(The City as a Commons: Reconceiving Urban Space, Common Goods and City Governance)라는 제목의 컨퍼런스(학술대회)였으며, 이 컨퍼런스는 랩겁(LabGov, LABoratory for the GOVernance of the Commons), 국제커먼즈연구협회(IASC,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he Commons, ), 포드햄로스쿨 도시법 센터(Fordham Law School’s Urban Law Center), LUISS 로마법학교1에 의해 개최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여러 주목할 만한 도시커먼즈(urban commons) 기획들이 있었지만, 이 행사는 창조적 에너지, 사람들과 생각들의 다양성, 열정과 목적의식이 돋보였다.

 

볼로냐 시는 이 행사의 완벽한 주최자였다. 이 시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개척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역할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도시커먼즈를 위한 협동에 관한 조례>(Regulation on Collaboration for the Urban Commons)인데, 이 조례는 동네들과 시민들로 하여금 도시 공간들―텃밭(정원), 공원, 유치원, 낙서 청소―을 위한 자신들의 기획을 제안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컨퍼런스를 매우 생동감 있는 것으로 만든 것은 세계 전역에서 온 커먼즈 혁신가들의 다양성 그 자체이다. 도시 퍼머컬처 농업가, 오래된 공항들을 메트로폴리스 커먼스로 전환시키는 것을 연구해온 연구자, 도시 개발의 모델인 ‘작은 가정 생태 마을’(tiny home eco-villages) 전문가, 한국의 협동적 도시 서울에서 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활동가들, 시리아의 이주자들이 피난처가 될 가정들을 이탈리아에서 찾는 것을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여 돕는 ‘유목적 커먼즈’를 서술하는 전문가 등등.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한 시 공무원으로부터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에 대한 발제를 들었다. 이는 시 정부가 움직이는 방식을 다시 만들려고 시도하는 시민 플랫폼으로서 사회 정의와 시민 참여에 강조를 두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 정부는 도시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비전의 일부로서, 에어비앤비(Airbnb)가 임대료를 올리고 튼실한 동네들을 공동(空洞)화시켜 밤을 새우는 관광객들을 위한 죽은 지대로 만든 이후에 에어비앤비를 금지시켰다.

 

브룩클린에 터를 둔 기획인 ‘596 에이커즈’(596 Acres)는 비어 있는 공공지의 거대한 목록을 만들어서 동네들이 일정한 땅을 공동체 텃밭, 오락, 학습을 위해 기능하는 커먼즈로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유비쿼터스 커먼즈’ 기획은 사람들이 수많은 장치들로부터 자신들이 생성하는 개인 데이터들이 특히 도시 맥락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통제하는 것을 돕도록 고안된 본보기적인 법적/기술적 툴킷이다.

 

이 컨퍼런스가 국제커먼즈연구협회가 도시커먼즈를 다룬 제1회 주제 컨퍼런스였기 때문에, 꽤 많은 학자들, 특히 젊은 학자들이 참석했다. 따라서 자원으로서의 커먼즈와 관련된 전통적인 원칙을 적용하는 많은 학술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커먼즈 활동가 헬프리히(Silke Helfrich)와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략가인 에지오 만지니(Ezio Manzini)가 주목할 만한 기조발제를 했다. 헬프리히는 자신의 「2040년의 도시(골) 커먼즈를 상상하기」(“Imagining the (R)Urban Commons in 2040”)에서 커먼즈로서의 도시가 2040년에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자신의 전망을 피력했다.

 

대학 기반의 디자인 랩들의 네트워크인 ‘지속 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혁신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 for Sustainability, DESIS)의 창립자 만지니는 또 하나의 생각 깊은 기조발제에서 도시들이 관계들의 세계로 간주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도시커먼즈는 “유동적인 형태들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커먼즈들을 실제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고정된 디자인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법, 이론, 도시 거버넌스에 대해 진지한 독서를 일정하게 하고 싶은 사람은 『예일 법 및 정책 평론』(Yale Law and Policy Review)에 곧 실릴 포스터(Sheila Foster)와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 공저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글은 커먼즈로서의 도시라는 생각을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개괄하고 있으며, 도시들을 위한 일련의 협동적·다중심적 거버넌스 전략들을 제안하고 있다.

 

바우엔스(Michel Bauwens)와 나는 ‘개방적 협동조합주의’와 특히 우버(Uber), 에어비엔비와 같은, 사회 공동체들을 착취만 하지 거기에 재투자하거나 혜택을 공유하지는 않는 ‘죽음의 별’ 플랫폼들2에 대항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모델들을 고안하려는 새로운 노력에 대해 단상에서 대담을 했다.

 

이 컨퍼런스가 아주 많은 에너지를 뿜어냈기에, 나는 미래에 도시커먼즈에 대해서 더 많은 기획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도시를 커먼즈로서 관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새롭고 더 집중된 대화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본다. 다행히도, 도시커먼즈를 다루는 국제커먼즈연구협회의 제2회 주제 컨퍼런스가 2017년으로 이미 계획되어 있다.

 

  1. http://www.luiss.edu/university [본문으로]
  2. ‘죽음의 별’(Death Star)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조그만 행성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이동 구조물이다. ‘Structure3C’(http://www.structure3c.com/phone/index.html)의 빌 존스턴(Bill Johnston)이 우버, 에어비앤비 등을 이 ‘죽음의 별’에 빗대었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