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크립토네트워크로


  • 저자  :  조지 자카다키스(George Zarkadakis)
  • 원문 : Do platforms work?” (2018.5.28)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자카다키스는 과학 작가, 소설가, 인공지능 엔지니어이다. 최근의 저서로 In Our Own Image: Savior or Destroyer? The History and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 (2016)가 있다.

 

자카다키스는 이 글에서 회사의 대표적인 형태인 코퍼레이션(corporation)이 쇠퇴하고 플랫폼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음을 포착해서 제시한다. 코퍼레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단일한 법 주체(법인)로서 행동하고 그렇게 법에서 인정받는 회사, 혹은 집단 혹은 조직’인데, 자카다키스가 말하는 코퍼레이션은 여기서 법인 형태의 회사이다. 실제로 ‘corporation’이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기업’, ‘(주식)회사’, ‘법인’ 등으로 옮길 수 있는데, 여기서는 다른 형태의 법인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냥 ‘코퍼레이션’이라고 옮기기로 한다. ‘corporation’은 어원상으로는 ‘법’의 의미도 ‘인’(person)의 의미도 없다. ‘통합’이 그 원래의 의미이다. 즉 여러 요소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단일한 법 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자카다키스는 ‘코퍼레이션’(즉 회사로서의 법인)에 어떤 요소들이 통합되었는지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즈(Ronald Coase)의 1937년 회사(firm) 이론을 원용하여 설명한다. 코즈는 다음의 세 요소를 통합하여 하나의 회사(company)로 만드는 것이 비용을 세 측면에서 최소화해준다고 설명했다.

① 자원 확보(resourcing) : 적절한 숙련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할 때마다 회사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회사 내부로부터 찾아 구하는 것이 덜 비싸다.

② 거래하기(transacting), 혹은 과정 및 자원을 관리하기 : 다수의 외부 계약자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것보다는 회사 내부에 팀을 두는 것이 관리 부담이 덜하다.

③ 계약하기(contracting) : 회사 내부에 작업이 생길 때마다 매번 규칙과 조건을 새로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계약에 들어있는 규칙과 조건이 계속 유지된다.

이 세 비용을 줄임으로써 코퍼레이션은 경제활동을 증가시키기는 데 최적의 구조가 되었다고 코즈는 주장한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소프트웨어, 인터넷, 인공지능 덕분에 코즈가 말한 비용들이 회사 외부의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회사 내부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줄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시장을 통해 프리랜스 노동자들을 발견하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덜 위험하고 더 빠를 수 있다. 협동 도구들이 관리자가 없는 형태의 노동이 들어설 공간을 열어준다. 그리고 계약비용은 블록체인 프로토콜의 출현 덕분에 상당히 하락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로 새로운 방식의 노동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노동은 개방적이고 숙련에 기반을 두며 소프트웨어에 의해 최적화된 일련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게 된다. ‘코퍼레이션’이 있던 자리에 ‘플랫폼’이 들어서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 희망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위협적인 것인가?’이다.

『플랫폼 혁명』(Platform Revolution, 2016)이라는 책에서 파커(Geoffrey Parker), 반 앨스타인(Marshall Van Alstyne), 그리고 초우더리(Sangeet Paul Choudary)는 사업체들이 예전에는 ‘파이프’(선형 모델)였는데 이제는 ‘플랫폼’(네트워크 모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혁명 이전에 회사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과정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흐름이라는 형태를 띤다. 마치 파이프들이 심해 유정을 차에 휘발유를 급유하는 사람에게 연결하는 것과 같다. 이와 달리 플랫폼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뚜렷한 구분을 무너뜨린다. 사용자들도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들은 파이프 형태와는 다른 기반시설을 필요로 한다. 사업체의 주요 과제는 창조자들과 소비자들을 거래가 일어나기에 적절한 비율로 끌어 모으는 것이다. 두 (혹은 더 많은) 집단들 사이의 교환을 양성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플랫폼들은 사실 시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이제 경제적 가치가 회사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우버가 그 고전적인 사례이다.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승차 주문을 쉽게 만들기에 충분한 운전자들이 플랫폼에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운전자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 소득을 보장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소비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평형을 찾으려면 상당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아직 없더라도 돈을 지출하거나 공급자들이 뛰어들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떤 지점에서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발동한다. 플랫폼이 더 많은 공급자들과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되고 이로 인해 거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제 플랫폼의 소유자는 모든 거래에서 일정 몫을 플랫폼사용료(‘rent’)로 취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 네트워크가 커지면 소유자가 버는 돈도 커진다. 이런 식으로 플랫폼은 경제적으로 가치를 낳는 것이 된다.

그런데 모든 플랫폼들이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인터넷의 첫째 국면)에는 웹을 돌아다니면서 모두가 상당히 평등한 지위에 있는 대화방과 포럼 형태의 열린 공간을 만나곤 했다. 그런데 인터넷의 둘째 국면에서는 이 공간들이 폐쇄되고 네 개의 거대한 첨단기술 회사들―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 제공하는 사유화된(proprietary) 서비스들에 의해 대체된다. 사용자들은 효율성과 편의 때문에 그런 플랫폼들로 이동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첨단기술 과점(寡占)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체들은 중앙집중화되어 있고 소수가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크다. 소비자 데이터가 이윤과 권세를 위해 마구 이용될 수 있고 개발자들은 기업 우두머리들이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들은 소수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따라 예측 불가능하게 바뀔 수 있다. 요컨대 인터넷이라는 경쟁의 장이 더 이상 평평하지 않고 플랫폼을 소유한 거물들을 향해 크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플랫폼들은 회사가 사용자들과 관계하는 방식을 재발명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재발명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일을 인간들과 알고리즘들의 혼합이 실행하는 과제들로 분해했을 때, ‘긱 경제’(노동이 임시적이고 숙련 기반이며 온디맨드 식)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우버의 운전자이든 업워크(Upwork)를 통해 계약한 금융분석가이든 구글이나 아마존의 개발 사업에서 마이크로태스크를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든, 그 생계가 수요의 주기적 변동에 의존한다. 잉여 이윤은 플랫폼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데, 이 소유자는 고용과 관련된 보호장치들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여기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위협을 더한다면 그 결과는 적자생존이라는 시나리오가 된다.

회사를 ‘제대로 된’ 직원들로 플랫폼화하더라도 인간 본성과 충돌할 수 있다. 현재 아마존이 소유하고 있는, 신발과 의류를 파는 디지털 숍인 자포스(Zappos)는 약 1,500명의 직원을 채용하여 매해 3십억 달러 상당의 제품을 판다. 2013년에 자포스는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발명한 자기조직화 방법인 ‘홀러크라시’(holacracy)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홀러크라시는 피라미드식 위계 대신에 ‘서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각 서클은 마케팅 같은 전통적인 시장 기능과 동시에 특수한 기획이나 과제에 집중하는 다른 ‘하부서클’도 포함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하부서클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일에 방해가 되는 관리자는 없다. 그 대신에 소프트웨어가 개인들과 팀들의 협동과 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전술 미팅들’이 직원들로 하여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한다. 그런데 홀러크러시가 약속하는 유연성과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들은 이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정서적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며 인간을 디지털 자본주의의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으로 환원시킨다고 비판한다. 이와 유사하게 우버 운전자들은 자신이 사람 같이 느껴지기보다는 앱이 조작하는 로봇 같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일을 과제들로 분해하고 그 할당을 자동화함으로써 오늘날의 인간 노동자들은 내일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에 의해 축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군주들에 종속된 이류 농노들로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기를 바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플랫폼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자기조직된 사업네트워크를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라고 불렀다. 가령 일단의 운전자들이 우버와 유사한 플랫폼을 구축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것을 개발할 소프트웨어 도구는 오픈소스라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개발하고 설계할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여할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자율적 기획이 이미 존재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승차공유 플랫폼인 라주즈(La’Zooz)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누구나 가입하여 주즈(Zooz) 토큰을 벌 수 있다. 이 토큰으로 차를 탈 수도 있고 이 사업의 소유권의 지분을 나타내는 가치를 저장할 수도 있다. 해당 앱으로 20킬로 이상을 운전하거나 설계에 코드를 기여하거나 다른 사람을 참여시킬 때마다 토큰을 벌 수 있다. 주즈 토큰의 이중적 목적은 ① 플랫폼의 소유권을 민주화하는 것 ②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창조하는 가치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폐쇄된 플랫폼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증가하면 플랫폼사용료가 빼내어져 주주들 혹은 자본 소유자들에게로 간다. 이와 달리 토큰화된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의 거래가 창조한 가치가 사용자들이 소유한 토큰의 가치를 증가시킨다. 요컨대 사용자들은 네트워크 효과가 낸 경제적 가치를 멀리 있는 주주들에게 뺏기지 않고 토큰을 통해 최대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민주화된 구조의 또 하나의 사례는 ‘탈중심화된 자율조직’(decentralised autonomous organisation, DAO)이다. 이는 2016년 5월에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인 이더리움(Ethereum)을 바탕으로 선을 보였다. DAO의 목표는 리더가 없는 벤처 자본 펀드가 되는 것이다. 관리구조도 없고 이사진도 없으며 직원도 없다. DAO는 DAO 토큰을 보유한 18,000명 이상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소유권을 확대했다. 이들은 투표권도 가진다. 모든 펀딩 결정은 투표에 의해 결정되며 그 결과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된다. 그런 다음에 이윤과 손실이 토큰 소유자들에게 분배된다. 참여자들은 다수결 투표 기반으로 거래를 안전하게 하는 규칙들을 통해 ‘온체인’(on chain)으로 결정에 대하여 직접적 발언권을 가진다. 그들은 또한 토론그룹과 같은 사교적 구조들을 통해 ‘오프체인’(off-chain)으로도 발언권을 가진다.

DAO는 신뢰받는 투자관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작동 주기는 ‘스마트 계약들’ 안에 함입되어 있다. ‘스마트 계약’이란 소프트웨어 코드로 작성된, 실행에 관한 규칙들을 담은 합의(agreements)이다. DAO는 비록 초기에 겪게 마련인 어려운 문제들― 여기에는 2016년 6월의 대대적 해킹 사건도 포함된다― 을 안고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자치적인 조직이 어떻게 창출되는지를 원칙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인터넷 진화의 제3기가 ‘크립토네트워크들’(cryptonetworks)에 의해서 도래하고 있다. 이 플랫폼들은 본래 탈중심화되어 있으며 참여자들은 네트워크에서의 거래에서 토큰(혹은 ‘암호코인’)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권위를 가진 중앙이 없이 합의에 도달하거나 거래가 기록된다. 토큰과 합의라는 이 두 요소가 민주적·공동체적 거버넌스 모델을 낳는데, 이는 이전에는 신뢰받는 제3자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참여자들은 코인을 팖으로써 간단하게 퇴장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과거의 버전을 떠나 새 버전으로 분기하는 새로운 규칙을 채택하는 ‘하드포킹’(hard-forking)을 함으로써 퇴장할 수 있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자신들의 플랫폼을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주인이고 소득이 공정하게 분배되며 이윤과 손실이 공유된다. 토큰의 동학이 참여자들의 이익이 공통의 포부와 목표를 중심으로 정렬될 수 있게 만든다. 토큰의 가치의 인정이 네트워크의 성장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크립토네트워크의 초기에 있다. 규모와 수행성에서 아직 심각한 기술적 결함들이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블록체인이 처리하는 거래들의 수가 중앙집중화된 소프트웨어들이 처리하는 엄청난 수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이 기술적인 이유로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왜 크립토네트워크들이 미래의 플랫폼일 수 있다고 낙관하는가?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이 개발자들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데이터로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어서 상상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응용프로그램을 내기 위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좌절하고 있다. 플랫폼 집단주의 경제가 플랫폼 자본주의의 승자가 모두 가져가는 식의 접근법보다 더 큰 자유와 보상을 제공한다.

협동하는 집단들의 상호연결된 생태계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재화를 생산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 코퍼레이션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위계를 일소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동하는 세포들(cells)의 네트워크가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회사 구조는 사용기한이 다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플랫폼의 경제를 수용할 수 있고 소유권이 노동자들에게로 이동하면 더 공정하고 복원력 있으며 민주적인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코드가 법이다’에서 ‘법은 코드다’로


  • 저자  :  싸메르 하싼(Samer Hassan)((Associate Professor, Univ. Complutense de Madrid Faculty Associate, Berkman Klein Center at Harvard University)), 프리마베라 데 필리피(Primavera De Filippi)((Researcher at CERSA/CNRS Faculty Associate at Berkman-Klei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
  • 원문 : “The Expansion of Algorithmic Governance : From Code is Law to Law is Code” (2017.12.31)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오픈 에디션』(OpenEdition, journals.openedition.org)에 실린 원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알고리즘 거버넌스의 확대 : ‘코드가 법이다’에서 ‘법은 코드다’로

 

I.

우리는 플랫폼 안에서의 상호작용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플랫폼들의 사용자 베이스는 기존의 국민국가들을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 페이스 북 20억, 유튜브 10억, 인스타그램 7억. 그런데 이 플랫폼들의 거버넌스는 민주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이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의 상호작용과 온라인 소통을 소스코드에 함입된 불명료한 규칙들을 통해 규제하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들에 의해 통치되며 소수의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디지털 환경은 코드를 통해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가는 문을 열었다. 레씩이 말했듯이 “코드가 법이다”(Lessig, 1999). 코드가 궁극적으로 인터넷의 구조이며 기술공학적 수단을 통해 개인들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

상호작용이 점점 더 소프트웨어에 의해 규제됨에 따라 우리는 규칙들을 직접 시행하는 수단으로서의 테크놀로지에 더 의존하게 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하는 전통적인 법적 규칙과 달리, 기술적 규칙들은 애초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규정한다. 이로 인해서 제3자적 위치에 있는 당국이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사후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궁극적으로 법보다도 더 자주 소프트웨어가 온라인의 특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한다.

그 상징적 사례는 디지털권리관리(DRM, digital rights management)이다. 이는 저작권법의 조항을 기술적 보호조치로 전환시켜서 저작권이 걸린 작품들의 사용을 제한한다. 이러한 형태의 규제가 가지는 장점은, 법원이나 경찰이라는 제3자에 의한 사후(ex-post) 단속에 의존하지 않고 규칙들이 사전(ex-ante)에 시행되어서 사람들이 애초에 규칙을 깨는 것이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유연하고 다의적인(모호한) 전통적인 법적 규칙들과 달리, 기술적인 규칙들은 극히 형식화되어 있고 모호성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기에 사법적 중재의 필요가 없어진다.

코드에 의한 규제는 오늘날 민간 부문만이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많이 채택된다. 정부들과 공공 기관들도 코드 기반의 규칙들을 정하는 데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들과 기술공학적 도구들에 점점 더 의존하며 이 규칙들은 그 바탕에 깔린 테크놀로지에 의해 자동으로 실행(시행)된다. 예) ① 미국의 No Fly List. 이는 국가안보에의 잠재적 위협을 예측하여 평가하기 위해 데이터마이닝을 활용한다(Citron 2007). ② 사법적 의사결정과 선고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정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기(O;’Neill 2016).

사회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기술공학적 도구들이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을 활용하는 것은 법을 자동화할 수 있고 규칙과 규제를 사전에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코드에 의한 규제는 법의 기본적 취지 가운데 일부를 파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점도 가지고 있다.

① 코드 기반의 규칙들은 고정되어 있고 형식화된 코드 언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자연 언어가 가지는 유연성과 다의성(ambiguity)이 주는 이익을 얻지 못한다. ② 온라인 플랫폼들의 구조적 실행은 궁극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증진하거나 막으려 하는 플랫폼 운영자들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특수한 선택에 의존한다. 다른 기술공학적 인공물처럼 코드도 중립적이지 않고 본래 정치적이다. 특정의 정치적 구조들을 지지하거나 다른 행동들을 누르고 특정의 행동들을 촉진할 수 있다(Winner, 1980).

 

II.

비트코인을 떠받치고 있는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법을 코드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많은 기회들과 함께 나온 새로운 테크놀로지이다(De Filippi & Hassan, 2016). ‘스마트 계약’—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에 깔려서 분산된 피어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분산된 방식으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의 출현과 함께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서로 연계하고 많은 경제적 거래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방식을 혁신할 수 있게 되었다(Tapscott & Tapscott 2016). 법 혹은 계약 조항들을 스마트 계약으로 옮겨놓으면 “실행보장”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일단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이 나올 수 있다. 이 규칙들은 바탕에 깔린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의해 자동으로 실행되므로 당사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계획된 대로 돌아간다.

스마트 계약은 다수의 당사자들(인간이든 기계든)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다. 이 상호작용들은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에 의해 매개되고 소스 코드에 삽입된 일단의 부동의 규칙들에 의해서만 통제된다. 스마트 계약은 거래와 계약을 미리 정해진 일단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이는 자기실행적이고 자기시행적이다)로 형식화함으로써 코드에 의한 규제의 응용성을 증가시킨다.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들과 스마트 계약은 그 어떤 중앙 서버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중지될 수 없다. 코드에 딱 그렇게 정해져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것이 코드 기반 규제의 경직성 및 형식성과 관련된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코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 혹은 그 코드의 실행에 영향을 주는 것조차도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계학습(ML, Machine learning)은 소프트웨어로 하여금 외부의 정보원(情報源)으로부터 지식을 획득하여 학습하거나 명시적으로 행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은 일을 행하도록 해준다. 점점 더 증가하는 양의 데이터(‘빅 데이터’)를 얻을 가능성과 신경 네트워크와 데이터 마이닝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으로 인해서 여러 온라인 플랫폼들에서 기계학습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기계학습 덕택에 전통적으로 코드에 의한 규제와 연관된 한계들 가운데 일부를 피해갈 수 있다. 기계학습은 역동적이고 변화에 적응하는 코드 기반 규칙들의 도입을 허용하여 자연 언어가 가진 유연성과 다의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전통적인 법적 규칙들의 특징 가운데 일부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수집하는 데이터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만큼 이 시스템들은 적용되는 특수한 상황들에 더 잘 부합하도록 규칙들을 항상 정련함으로써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학습의 사용에도 규제의 맥락에서 단점은 있다. 데이터에 의해 추동되는 의사결정은 이미 편향을 함축하는 불공정한 것으로 입증되었다(Hardt, 2014). 말로는 ‘중립적’이라고 하는 알고리즘들이 일반화 작업을 하면서 소수자 그룹들을 구조적으로 차별하여 예를 들어 인종주의적인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결과를 보이는 것이다(Guarino 2016).

더 나아가, 만일 법으로 실행되면 이 규칙들의 역동성이 보편성(즉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과 비(非)차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는 데 따라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코드 기반의 규칙들에 법이 통합되면서,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의 정당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문제로 삼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규칙들의 점점 더 많은 수가 개별 사용자들의 프로필에 맞추어질 수 있게 되면 현재의 법적 체계를 특징짓는 보편성과 비차별성이라는 기본 원칙은 영원히 상실될 수도 있다.

 

Bibliography

Citron, D. K. (2007). Technological due process. Wash. UL Rev., 85, 1249.

De Filippi, P., & Hassan, S. (2016). Blockchain technology as a regulatory technology: From code is law to law is code. First Monday, 21(12).

O’Neil, C. (2016). Weapons of math destruction: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and threatens democracy. Crown Publishing Group (NY).

Tapscott, D., & Tapscott, A. (2016). Blockchain Revolution: How the Technology Behind Bitcoin Is Changing Money, Business, and the World. Penguin

V. Buterin, “Ethereum: A next-generation cryptocurrency and decentralized application platform,” 2014.

Langdon Winner, 1980. “Do artifacts have politics?” Daedalus, volume 109, number 1, pp. 121–136.

Lawrence Lessig, 1999. 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New York: Basic Books.

Bill Rosenblatt, William Trippe and Stephen Mooney, 2002. Digital rights management: Business and technology. New York : M&T Books.

Moritz Hardt, How big data is unfair: Understanding unintended sources of unfairness in data driven decision making. Medium. 2014. https://medium.com/@mrtz/how-big-data-is-unfair-9aa544d739de

Ben Guarino. Google faulted for racial bias in image search results for black teenagers. (2016).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morning-mix/wp/2016/06/10/google-faulted-for-racial-bias-in-image-search-results-for-black-teenagers/

 

 




아마추어 계급 혹은 웹의 예비군


  • 저자  :  바실리스 코스타키스 (Vasilis Kostakis)
  • 원문 : “The Amateur Class, or, The Reserve Army of the Web” (2009)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Rethinking Marxism에 실린 코스타키스(Vasilis Kostakis)의 논문 “The Amateur Class, or, The Reserve Army of the Web”(2009)의 내용을 단락별로 정리한 것이다. (초록抄錄은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정리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고문헌을 표시하지 않았다. 참고문헌을 보려면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초록

이 글은 웹의 새로운 버전에 의해 개시된 컴퓨터 산업의 변형을 다룬다. Tim O’Reilly (2006)에 따르면 사회적 웹 혹은 웹 2.0의 출현은 아마추어들이 웹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면서 아마추어 계급의 형성과 새로운 착취 방식을 낳는다. 자본주의적 생산 내에서 웹 2.0의 기능은 아마추어들의 자발적 기여를 착취하고 가치화하는 것이다. 이 논문의 바탕에 되는 주장은 웹 2.0이 해방적 측면과 착취적 측면을 모두 보여주며 아마추어들의 역할이 어느 한 쪽의 우위가 결정되는 데 작용한다는 것이다.

Key Words: Web 2.0, Amateur Class, Exploitation, Netarchists, Commons

 

웹 2.0과 집단 지성 및 창조성의 착취는 서로 엮여 있는 개념들이다. 웹 1.0의 내부에서 출현한 웹 2.0은 사회적 창조성, 협동 그리고 사용자들 사이의 정보공유를 촉진한다. 그 참여구조는 사용자들이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가치를 추가할 수 있게 한다. 웹 2.0의 출현은 eBay, Facebook, Flickr, MySpace, del.icio.us와 YouTube 같은 막대한 이윤을 발생시키는 기업을 낳았다. 이 기업들은 집단지성을 착취하기 위해서 웹 2.0에 들어있는 일단의 참여활동과 도구들에 돈을 댄다.

그레엄(Paul Graham)에 따르면 웹의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전문가(professional), 아마추어. 최종 사용자이다.((D. Kleiner and B. Wyrick. 2007. InfoEnclosure 2.0. Mute. http://www.metamute. org/en/InfoEnclosure-2.0 (accessed 21 December 2007).)) 여기에 ‘해커’를 추가할 수 있다. 해커는 전문가의 특징(깊고 전문화된 지식)과 아마추어의 특징(낭만주의)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킹을 제한을 받지 않는 순수한 실험적 활동으로 보는 워크(McKenzie Wark)에 따르면 해커는 사적 소유의 형태 너머에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전문적 아마추어”이다.((M. Wark, A hacker manifesto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아마추어와 해커의 핵심적 차이는, 전자는 플랫폼의 소유자들에 의해 착취되고 전문가들(해커일 수도 있고 전문가일 수도 있다)의 도움이 없으면 자유의 잉여―즉 진정한 커먼즈―를 산출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아마추어가 플랫폼 소유자에게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소유자도 아마추어 계급에게 의존한다. 사업에 가치를 추가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해커나 전문가가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아마추어 계급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아마추어 계급의 계급으로서의 형성이 웹 2.0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웹 1.0에서는 전문가, 해커, 최종 사용자의 역할이 정해진 반면 아마추어가 들어설 구체적인 공간이 없었다. 웹 1.0의 탁하고 복잡한 성격으로 인해 아마추어가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웹 1.0의 미로 속에서도 생산에 참여하고 싶은 잉여 인구가 있었는데, 이 웹 1.0의 예비군은 아직 아마추어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 느슨한 아마추어들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아직 능력이 비물질적 생산에 참여할 정도로 진전되지 못한 아마추어들은 웹 2.0에도 존재하며 웹 2.0 노동인구의 잠재적 부분을 이룬다. 이 잠재적 부분은 아직 온전하게 자본주의적 생산에 통합되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들은 직장―플랫폼들―에 위계의 형태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형태로 배치된다. 다른 한편 플랫폼들은 잉여 인구를 착취하기 위해 손쉬운 형태로 변형된다. 앞으로 새 버전의 웹은 해커나 전문가들처럼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작은 돈을 받더라도 웹 생산에 참여할 큰 열성을 가진 아마추어들을 더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마추어는 금전상의 이득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고 더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여가 시간에 창조를 하지만 (그리스어로 ‘아마추어’를 의미하는 ‘ερασιτέχνης’는 ‘애호가, lover’를 의미하는 ‘εραστής’와 ‘기예, art’를 의미하는 ‘τέχνη’가 합해진 것이다) 그 지식은 해커나 전문가처럼 전문화되어 있지 않다. 맑스는 인간의 자유에 채워진 족쇄는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화폐라고 주장한다. 아마추어는 통상적인 인식과 단절하며 이를 통해 과거와의 단절이 일어난다. 아마추어는 인간 노동의 소외된 본질인 화폐를 그 자체 목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마추어 계급의 생산은 화폐의 논리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공유·존중·사회화·인정 같은 가치들에 기반을 둔다. 워크가 말하는 해커처럼 아마추어도 배타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창조한다. 둘 다 집단적 노동, 혁신, 자유의 옹호자들이다. 아비드슨은 아마추어가 참여하는 경제 유형을 ‘윤리적 경제’―인간들이 소통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주체들이 서로 연결되는 질서를 창출하는 경제―라고 부른다.((http://www.p2pfoundation.net/Introduction_to_the_Ethical_Economy)) 이와 달리 근대 기업 자본주의는 윤리적으로 건전한 사회질서와 양립될 수 없다고 한다.

웹 2.0은 아마추어들의 예비군을 착취하는 조건을 창출했다. Flickr, MySpace, Facebook, del.icio.us와 YouTube가 그 대표적인 웹 플랫폼들이다. 이들은 아마추어들의 능력과 창조성에 대한 욕망을 활성화하여 포획한다. 아마추어의 자발적 참여가 플랫폼 관리자들에게서 (잉여) 가치로 변형된다. 아마추어들에게 생산수단이 이용가능해지지만 플랫폼들은 기업이 계속적으로 소유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새로운 표현이다. 산업 생산에서는 노동자들(전문가들)이 보수를 받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판매한다. 창조·자부심·충족감은 느끼지 못한다. 회사는 부유해진다. 더욱이 생산과정이 경쟁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소외된다. 경쟁에 기반을 두지 않는 웹 2,0의 지적 생산에서는 아마추어들이 (때로 소액의 보수를 받고) 창조·소통·사회화·자부심의 즐거움을 향유하며, 기업들은 이로부터 (주로 광고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다.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페이스북의 1.6% 지분에 해당하는 주식을 2억4천6백만 달러에 샀으며, 1년 후에 구글은 유튜브를 16억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보수가 거의 지불되지 않는 아마추어들의 웹 생산에서도 자본은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 자본 축적은 항상 자본의 자기확장에 충분한 수 이상의 노동 인구, 즉 과잉 인구를 발생시킨다고 맑스는 『자본론』에서 말했다. 그런데 아마추어 생산에서는 임금 의존성이 없으며 따라서 추가적으로 아마추어를 착취할 때 한계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래서 넷지배자들(netarchists 혹은 netocrats)―플랫폼들을 소유한 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아마추어들을 착취하려고 한다. 예비군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성취될 수 있는 목표이다. 넷지배자들은 그 투기적 성격 때문에 커먼즈 영역의 강화를 위한 여러 계획들을 위임받기에는 위험하다. 플랫폼을 소유하는 자본가들의 착취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커먼즈 영역의 창출과 강화의 이름으로 폐지하는 것이 아마추어들과 해커들의 손에 달려있다.

들뢰즈와 가따리는 “우리에게 소통이 결핍된 것이 아니다. 사실 소통이 너무 많다. 우리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창조이다. 우리는 현재에 대한 저항을 결여하고 있다”라고 썼다.((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What is philosoph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108.)) 아마추어들은 창조하고 저항하지만, 그 이상으로 성취될 것이 있다. 플랫폼의 독립과 자율성이 필연코 투쟁의 전술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웹의 생산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계약이 출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사회 계약 2.0’이라고 불린다. 여기에는 생산과 소유의 새로운 의미들 및 방식들(피어 생산peer production과 피어 소유peer property)이 포괄되며, 이것들이 실질적 커먼즈 영역의 창출에 기여한다. 피어 생산에서 의사결정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참여와 협력에서 이루어진다. 이 생산양식은 등가교환에 기반을 둔 시장 생산이나 위계적 구조에 기반을 둔 계획경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피어 소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나 GPL과 같은 법적 형태 아래에서 자원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공동체적 공유의 형태를 띤다. 피어 소유는 사적 소유나 국가소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통적인 소유형태들이 배제적인(‘나의 것이면 당신의 것이 아니다’) 반면에 피어 소유는 포함적이다(‘나의 것일지라도 당신의 것도 될 수 있다’). 국가는 민중(국민)을 대신해서 공적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반면에, 피어 소유에서는 민중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관리한다. 즉 커먼즈이다. 따라서 피어 3요소(피어 생산, 피어 소유, 피어 거버넌스)에 기반을 둔 진정한 커먼즈가 넷지배 플랫폼들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 커먼즈에서는 집단적 지성과 사회적 창조성의 관리가 ‘넷지배적 이데올로기’―이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라고 불린 바 있다((Barbrook, R., and A. Cameron. 1995. The Californian ideology. Alamut, August. http://www.alamut.com/subj/ideologies/pessimism/califIdeo_I.html (accessed 31 arch 2008).))―에 의해 추동되는 사적인 영리 기업들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넷지배자들은 참여를 포용하는 듯하지만, 자본주의를 인류 미래의 유일한 지평으로 본다.

이 논문에서 행한 넓은 범주화와 일반화가 특수한 사례들에서 해석의 오류를 낳을지도 모른다. 나[코스타키스]는 웹 2.0이 해방적 측면과 착취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아마추어들이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일정하게나마 조명했기를 바란다. 아마추어들이 창조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일정한 권리들을 플랫폼의 소유자들에게 양도해준 듯 보일 수도 있다. 넷지배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아마추어들을 착취하여 거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비물질적 가치의 생산이 임금 의존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회질서를, 더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생산하는 아마추어들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의 홍수 속에서 커먼즈의 강화를 향하는 플랫폼의 독립과 자율성은 성취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 이상의 것이다. “사회 변화의 핵심적 동인으로서 공유 및 커먼즈 공동체들의 지속적인 강화”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Michel Bauwens, “The social Web and its social contracts: Some notes on social antagonism in netarchical capitalism”, Re-public. http://www.re-public.gr/en/ p261 (accessed 25 July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