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연결된 다중까지


  • 저자  :  Amador Fernández-Savater, Guiomar Rovira
  • 원문 : “No Future: From Punk to Zapatismo and Connected Multitudes (2018.08.07)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스페인어 원문 : https://www.eldiario.es/interferencias/punk-zapatismo-multitudes_conectadas-red-accion_colectiva_6_748285172.html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이 텍스트는 기오마르 로비라(Guiomar Rovira)의 책 『네트워크화된 행동주의와 연결된 다중들 ―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행동』(Activismo en red y multitudes conectadas: Comunicación y acción en la era de Internet)(([정리자] 영어로 ‘Networked Activism and Connected Multitudes’라고 옮겨져 있지만, 영어본은 아직 없는 듯하다.))의 출판기념회에서 있었던, 아마도르 페르난데스-싸바떼르(Amador Fernández-Savater)와 로비라의 인터뷰(2017년 9월 19일 UAM-Xochimilco에서 행해짐)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원래 스페인어로 된 인터뷰를 후아레스(Gerardo Juárez)가 영어로 옮겼고 페르난데스-싸바떼르가 편집했다. 영어본을 옮기다보니 의미가 잘 안 통하는 부분들이 있어서 스페인어 원본을 보고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의미의 손실이 다소 생긴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스페인어본만으로 옮기자니 능력도 시간도 부족해서 결국 영어본을 우선으로 하고 스페인어본으로 확인하는 방식을 취하다보니 분류상 ‘번역’보다는 ‘정리’의 형태로 귀착되게 되었다. 물론 정리로서는 매우 상세한 것에 해당한다.

 

[스페인어 편집자의 설명]

90년대 일어난 소련의 몰락 이후 ‘단일한 사유’(([영역자주1] ‘단일한 사유’(Pensée unique)는 프랑스 저널리스트 칸(Jean-François Kahn)이 만들어낸 말로서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에의 순응을 가리킨다.))에 대한 말이 많이 돌았다. 이는 시장 민주주의를 공통적 삶의 상상 가능하고 식별 가능한 유일한 틀로 제시하는 담론이다. 촘스키(Noam Chomsky)가 말했듯이, 이 내러티브가 침투하는 유일한 방식은 정보와 미디어의 집중, 즉 발언권과 가능한 것의 상상의 집중이었다. 이는 바로 신자유주의의 번성기였다.

로비라는 『네트워크화된 행동주의와 연결된 다중들 ―인터넷 시대의 소통과 행동』에서 어떻게 이 신자유주의라는 독백에 물음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힐지에 대해서 말한다. 책은 인터넷의 개방적이고 탈중심화된 구조를 활용한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출현에서 시작한다. 이 네트워크들은 공식적 내러티브와 구분되는 이미지·단어·감정을 보급할 새로운 테크놀로지 도구들을 창출했다. 이는 사빠띠스모와 반지구화운동의 시기였다. 나중에 웹2.0과 함께 네트워크들의 정치화된 활용이 사회화되어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는 연결된 다중의 시대이며 여기에는 15-M을 비롯한 운동들이 포함된다.

기오마르의 서술은 일반적인 학술적 글들과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이 책은 비판적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긍정적이다. 일단 사람들이 전유했을 경우의 테크놀로지가 가진 정치적 활력이 긍정된다. 저자는 권력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 않는다. 우리의 활력부재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고 우리가 지배당하고 조작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며 우리가 희생당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행해진 것, 행해지고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세상을 활력의 관점에서 본다.

둘째, 이 책에는 몸으로 겪은 체험이 담겨 있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 ―펑크, 사빠띠스모(Zapatismo) 혹은 멕시코의 ‘나는 132번째다’(#Yosoy132) 운동을 거쳐간다― 이 성찰의 바탕을 이룬다. 로비라는 까딸루냐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서 1994년 이래 멕시코에 와서 살고 있다. 그녀는 여러 글들의 저자이며 멕시코시티의 우암-호치밀꼬 대학(UAM-Xochimilco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아마도르

당신의 책에서 말하는 최초의 역사적 시기는 ‘활동가 네트워크들’의 시기입니다. 그 근본적인 구성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이 80년대에 바르셀로나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펑크(punk)입니다. 펑크는 어떻게 이 네트워크들의 창출에 영향을 미쳤나요?

 

기오마르

거기서 출발하시니 좋군요. 펑크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는 ‘미래는 없다’입니다. ‘미래는 없다’에 집중하는 것은 새로운 정치를, 훨씬 더 예시적인 정치를 열어젖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를 기다리며 꿈꾸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시작하기 위해서 지시나 승인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음악과 공간을 전유했습니다. 펑크에서는 누구나 기타 등을 들고 노래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든 가까이 놓인 것을 가지고 하는 DIY 정신을 발견합니다. 문화적인 것이 정치적이 됩니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약속을 위해 늘 지체시키고 희생시키는 체제의 정해진 경계를 떠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팬진(fanzine)(([정리자] ‘팬진’(fanzine = fan a+ magazine/-zine)은 특정의 문화현상(문학 장르나 음악 장르)의 열광자들이 관심을 공유하는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비전문적이고 비공식적으로 발행하는 잡지이다. 이 용어는 1940년 10월에 쇼브네(Russ Chauvenet)가 발행한 과학소설 팬진에서 처음 사용되어 과학소설 열광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으며 다른 공동체들이 이를 채택했다. (영어위키피디아)))에서 건물점거(squatting)까지 펑크는 매우 풍요롭습니다. 미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살아야 합니다. 집이 없기 때문에 건물을 점거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 운동은 초국적이 되었습니다. 국가적이거나 국민적인 것이 아니라 도시의 공간들에, 네트워크들의 창출에 각인되었습니다. 확장된 의미의 공동체인 것이죠. 지역을 전유하는 전지구적 운동이며, 누구나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정치이고, 문화 및 소통형태를 허가를 구할 것도 없이 구축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펑크는 해커 정신을 미리 구현합니다. 그 당시 저는 레트라 아(Lletra A)라고 불리는 잡지에서 활동했는데, 우리는 전부 손으로 자르고 붙여서 이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또 바르셀로나에 점거활동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수한 자기조직된 사회센터 엘 안티(el Anti)를 열었는데, ‘미래가 없으니 우리의 삶을 지금 구축하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대항정보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변부에 생태계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사빠띠스모와 ‘희망 인터내셔널’(the Hope International)

 

아마도르

활동가 네트워크들을 창출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는 둘째 계기가 있는데요, 바로 사빠띠스모(Zapatismo)입니다. 사빠띠스모는 펑크와 달리 ‘어두운’ 운동이 아닐 것입니다. 사빠띠스모는 메트로폴리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망의 지평을 엽니다. 사빠띠스모와 테크놀로지 그리고 소통의 관계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해주실 수 있나요?

 

기오마르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우리는 ‘역사의 종언’을 특징으로 하는 일극 세계에서 살았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장 놀랍고 뜻밖의 장소에서 반란이, 희망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운동이 일었고 저는 이 운동에 완전히 빨려들었습니다.

사빠띠스모의 의의는 전지구적인 공통의 틀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당시는 투쟁 전체에 의기소침의 분위기가 팽배할 때입니다. 전지구적으로 좌파가 기가 꺾이고 남미의 게릴라들이 침체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고립된 저항의 과정들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물음을 던지는 틀이 탄생한 것입니다. 많은 상이한 투쟁들로 하여금 공유된 하나됨의 감각과 공동의 적을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능동적 기동의 틀입니다. ‘인류 대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 틀이라고 사빠띠스따는 말했습니다. 누가 이 틀을 제안했나요? 토착민 공동체나 저항이 혹은 투쟁의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하는 세상의 저 구석 치아파스에 있는 가장 망각되어 있고 가장 규모가 작은 토착민들입니다.

이 일은 전지구적으로 미디어의 관심을 받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신문, 라디오, 텔레비전)들이 보도를 했지요. (월드와이드웹은 태어난 지 갓 1년 되어서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신문과 라디오는 이 기사를 더 이상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반란을 세상을 위한 희망의 장소로 지지하면서 치아파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함께하고 그것에 개입하는 방법들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아마도르

이때 인터넷의 활용이 일어났지요? 당시 인터넷은 새로운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요?

 

기오마르

인터넷의 활용은 거의 자연스럽고 자연발생적인 일이죠. 전통적인 미디어로부터의 정보가 없기 때문에 대안 미디어가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주류 미디어에, 주도적인 신문들에 참여하면서 기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안적 라디오 방송국들, 대안 미디어, 팬진들에도 많은 정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 미국인들이 (미국인들도 때로는 좋은 일을 합니다!) 우리에게 ‘인터넷을 사용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이들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컴퓨터에 모뎀과 이상한 장치들을 설치하는 최초의 해커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매니아들이 뭐 때문에 야단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이 안 되어서 우리 모두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두’라고 말했을 때 이는 저널리스트들, NGO들, 활동가들을 지칭합니다. 치아파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다루는 최초의 웹사이트들이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몇몇 미국 학생들은 상황을 좇으면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의 성명서들을 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성명서들은 팩스에 의해서 보내졌으며 그 다음에 ‘Ya Basta’라고 불리는 웹사이트에 공표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성명서들을 영어로, 프랑스어로 그리고 또 다른 언어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하고 정보의 비계가 치아파스의 상황을 중심으로 구축되었습니다. 이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멕시코 정부는 국제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밀어붙이는 데 열중했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진 거죠. 그런데 정보만이 유통되는 유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치아파스로 갔고 공동체들을 방문했으며 더 많은 정보를 생성했습니다. 주고받기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보를 받은 사람들이 토착민 반란을 지지했고 토착민 반란은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세계의 많은 곳에서 반향을 찾고 차이들을 넘어 공통의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호소였습니다.

 

발터 벤야민 : 무엇보다도 활력

 

아마도르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연결된 다중으로 넘어가기 전에 고전적인 저자 벤야민에게서 당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서 잠깐 질문을 하고 싶군요. 벤야민의 어떤 점이 그를 일종의 우군으로 보게 만들었나요?

 

기오마르

제가 벤야민에게서 발견한 것은 매우 은유적이고 시적이며 정치적 영감입니다. 그는 암흑과도 같은 자신의 시대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그 어떤 사람보다 뛰어나게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벤야민은 저로 하여금 매 순간, 매 장소에서 활력을 발견하고자 하는 저의 욕구를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기술은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기술은 자연과 우리의 관계가 적대적이지 않은, 더 충만한 세계에서 살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폭력에 처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기술의 활력을 왜곡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창출된 고통과 희소성에 기반을 둔 약탈적 자본주의입니다. 삶을 축출하고 강탈을 통해 축적을 한다는 비난은 인터넷에 가해질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류에 복무하지 않고 희소성을 약탈적으로 산출하는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전지구적 체제에 가해져야 합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다른 가능한 근대를 구상하라고 우리에게 권유합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벤야민은, 우리 모두가 기술을 전유해서 능동적 주체가 되어 우리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더 충만한 삶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민주화 가능성이 생성되는 것을 봅니다. 「역사철학에 관한 테제」에 나오는 ‘지금 시간’(jetztzeit)―모든 것이 열리는 일종의 현현이 ‘지금 이곳’에 성좌처럼 빛나는 순간―이라는 생각도 주목할 만합니다. 성좌라는 생각은 제 책에서 계속 나옵니다.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은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우리에게 청합니다. 그런데 운동에 단일한 하나의 계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운동이 제각각 고유한 역사를 구축하고 그 빛나는 순간들을 창출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운명을 구체화합니다. 이는 정치적인 것의 바탕에는 과거에의 열림도 존재한다는 점을 매우 창조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벤야민은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나의 할아버지의 고향인 뽀르보우(Portbou)에서 죽었습니다. 올해 여름 나는 그의 무덤을 보러갔습니다. 그는 끔찍한 삶을 살았고 그가 응당 받아야 하는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당대의 가장 낙관적인, 가장 창조적인 지식인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열림을, 가능성을, 활력을 가장 잘 볼 수 있습니다.

 

연결된 다중 :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진 테크놀로지

 

아마도르

처음에는 활동가들의 네트워크가 있었고요 활동가들이 테크놀로지를 전유했습니다(펑크, 사빠띠스모, 반지구화 운동). 그 다음 운동은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킨 것으로서 ‘연결된 다중들’(connected multitudes)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이행에 대해서 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오마르

활동가들의 네트워크의 소통 환경은 주로 전투적 활동가들, 즉 정치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채워져 있습니다. 연결된 다중들로의 이동은 주된 목소리가 더 이상 활동가들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크게 특징지어집니다. 사회적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정치화를 거치거나 어떤 특정한 활동가 공간에 속하지 않고 발언권을 가집니다. 이는 이윤을 추출하는 네트워크들인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처럼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 공간들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멕시코의 ‘나는 132번째다’(#Yosoy132) 운동을 예로 들어봅시다. 시위를 시작했던 모든 이베로아메리카 대학의 학생들이 이전에 이미 정치화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느꼈고 뻬냐 니에또(Peña Nieto) 대통령의 대학 방문에 대한 말이 나온 후에 불만을 표현해서 미디어에서 들리게 할 도구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유튜브에 업로드한 비디오가 인상적인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의 분노를 고조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공감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중요한 운동이 UNAM(([영역자주2] 멕시코 자율대학(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or National Autonomous University of Mexico)은 연구개발에서 세계 최고의 대학 가운데 하나이다. 더 자세한 것은 위키피디아 참조.))에서 혹은 오랫동안 부당한 상황을 비판하며 이를 갈던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고 전혀 뜻밖의 예측할 수 없던 집단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합니다.

그 투쟁에서 마누엘 까스뗄스(Manuel Castells)가 ‘대량자주소통’(Mass Self Communication)이라고 부른 현상이 산출됩니다. 누구나가 정보 생산자, 리믹스하는 사람, 리트윗하는 사람이 되고, 누구나가 대화에 참여하고 가령 그래픽 아트 같은 자신의 능력으로 운동을 강화합니다. 내보내는 과정과 받아들이는 과정의 구분이 흐려지며, 기원, 권위, 원(原)저자 같은 오래된 관념들의 견고성이 감쇠됩니다.

 

아마도르

당신의 책은 대안적 소통의 단계들에서 일어난 이 이행의 긍정적 성격을 부각시킵니다. 이는 민주화 과정입니다. 만일 이전에 네트워크들이 활동가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이제 테크놀로지의 정치적 사용은 모든 사람의 손에 쥐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우리는 그 사이에 해커 정신에서 결정적인 요소들인 테크놀로지 기반시설과 테크놀로지 주권의 중요성을 시야에서 놓치고, 시스템을 우리가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네트워크들 덕분에 얻게 되는 내용의 보급에서의 ‘편의’만을 보는 것은 아닐까요?

 

기오마르

당신이 언급한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우리가 놓치는 것에 대해 당신이 말한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군요. 내 생각에 스노우든과 위키리크스의 폭로 덕분에 우리는 네트워크를 별 의식없이 자동적으로 사용하는 데서 더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우리는 사회적 네트워크에서의 감시, 통제 및 데이터 전유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새로운 운동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높은 의식은 이전에는 없던 것이며 우리가 이에 도달한 것은 일부 해커들의 활동 덕분입니다. 나는 스노우든, 첼시 매닝, 줄리언 어산지를 해커들로 봅니다. 그들은 왜 우리가 조심해야 하고 토르(Thor)를 사용하고 프리소프트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왜 우리가 안전한 비밀번호를 가질 필요가 있는지를, 그리고 웹을 책임감 있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결과가 어떨지 보기로 하죠.

 

함께 하기

 

아마도르

지식인들이 손가락을 올리면서 우리에게 ‘잘못 되고 있으니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테크놀로지의 더 많은 사회적 전유, 더 많은 학습, 더 많은 테크놀로지 리터러시(technology literacy), 더 많은 핵랩들(hacklabs)입니다. 내 생각에 이는 당신의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신은 인터넷 외부에서는 해결책이 발견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면서도 인터넷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기오마르

테크놀로지에 대한 담론 차원의 비판은 결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 합니다. 우리는 공간들을 전유하고 협동형태들을 구축하며 우리가 아는 것을 공유함으로써,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고 전과는 다른 방식들을 생성함으로써 네트워크에서의 사회성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 책에서 ‘해커 되기’라고 불렀습니다. 해킹은 단순히 테크놀로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에게 해킹은 테크놀로지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해커는 무언가를 해체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것을 구축합니다. 블랙박스처럼 주어진 것을 해체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죠. 이는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잠재력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해커페미니즘 전문가인 브리오네스(Fernanda Briones)는 ‘함께 해요’라고 말합니다.(([영역자주3] 원어로는 “Hagámoslo juntas”이다. 스페인어 어휘에는 성(젠더)에 따른 변화가 있다. “juntas”는 “함께”(together)의 여성형[복수]이다. 15M운동 이후에 기본형인 남성형(‘juntos’)보다 여성형이 더 자주 사용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젠더의 사람이든 젠더가 혼합된 집단을 서술하는 경우에는 여성형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아마도르

테크놀로지와 신체들의 관계, 즉 바이트의 세계와 원자의 세계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오마르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의 구분을 넘어서 모든 것이 온-라이프(on-life)로, 즉 삶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조우라는 신체적 경험이 열쇠입니다. 나가서 서로 바라보고 신체와 신체의 연결을 경험하는 것, 신체적 조우, 나타남의 공간들을 열고 신체의 민감함을 실험하는 것―이것이 내가 보기에 열쇠입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이루게 되면 수탈적인 자본주의와 접하고 있는 조건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신체들의 조우가 탁월한 정치적 계기인 거죠.

내 생각에 신체의 민감성과 연관된 이 차원이 주의주의적 행동주의를 무언가 더 살아있고 덜 계획된 것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신체는 가시화되고 상호작용하며, 공락·정동·돌봄의 공간들을 창출하는 동시에 사적인 것을 정치화합니다. 현재 내 생각으로는 연결된 다중의 페미니즘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불가피해지는 페미니즘의 자유로운 전유와도 같은 것이죠. 그 어떤 해방운동도 여성들의, 페미니스트들의 오랜 투쟁에서 나오는 폭넓게 다양한 제안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신체를 통해 일어납니다.

나는 거리에서 조우하는 신체들과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을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종의 사이보그입니다. 우리는 테크놀로지로 된 우리 자신의 연장부분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정치와 연관해서 말하자면, 테크놀로지는 집단적 행동의 일부가 됩니다. 부가적이거나 상이한 어떤 것이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면, 가장 중요한 사이버공간 및 네트워크 행동은 항상 거리에서의 집회라는 맥락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동하기는 소통하기이며 소통하기는 행동하기입니다. 모든 것이 라이프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두뇌들이 궁극적인 플랫폼입니다. 신체적인 것의 외부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네트워크들이 신체적인 것의 외부에 있다는 생각이 매우 강한데요, 나는 이와 반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페미니즘과 혁명: 과거를 되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며


  • 저자  :  Julie Matthaei(([옮긴이] 줄리 매사이(Julie Matthaei) : 웰즐리 대학(Wellesley College) 경제학 교수. 페미니즘 경제학과 젠더•인종•계급에 관련된 정치경제학을 가르친다. 그녀는 <미국연대경제네트워크>(U.S. Solidarity Economy Network)의 공동 설립자이자 이사이며, 근간 도서 『불평등에서 연대로: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경제를 공동으로 창출하기』(From Inequality to Solidarity: Co-Creating a New Economics for the Twenty-First Century)의 저자이다.))
  • 원문 : “Feminism and Revolution: Looking Back, Looking Ahead (2018.06) / CC BY-NC_ND 4.0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반세기 전에 ‘제2물결’ 페미니즘이 퍼지고 난 후 페미니즘 운동은 점차 더 포괄적이고 조직적으로 되었다. 초기에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진정한 여성해방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며 따라서 한때 페미니스트와 반계급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곧 그들 역시 인종•민족성•성적 지향성 및 여타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의 원천들에서 발생하는 억압을 인정하는 이론과 실천을 확장하라는 도전에 직면했다. 이 도전에 응하는 것이,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에 뿌리를 두고 있고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여타 운동들과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연대정치를 낳았다. 중요하게도 이 새로운 정치는 연대경제에서 새로운 실천과 사회제도를 창출함으로써 개인들이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참여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확고하고 포괄적인 페미니즘은 모든 종류의 억압을 없애는 ‘거대한 이행’에 필요한 더 큰 연대정치와 연대경제를 구축하는데 여전히 필수적이다.

 

1. 서론

누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싸움을 이끌 것인가? <거대한 이행 기획>(The Great Transition Initiative, GTI)은 세상을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바꿀 수 있는 “전지구적 시민운동”의 출현을 10년이 넘도록 확인했다. 이 운동이 하나의 온전한 운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인데, 과거 50년에 걸친 페미니즘의 진화가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미국 맑스주의-페미니스트이자, 반인종차별주의자 및 생태경제학자로서 나는 이론과 실천 측면에서 이 진화의 일부분이었다. 1970년대 초 제2물결 페미니즘에 꼭 필요한 부분으로서 우리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억압적인 시스템과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을, 다시 말해 이 두 가지를 극복하지 않고는 해방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단지 여성다움이라는 정체성에 기반을 둔 정치나 노동계급 혁명을 중심으로 하는 맑스주의적 계급정치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었다.

곧 우리와 여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렌즈를 더 확장해야 할 필요성에 맞닥뜨렸다. 젠더•계급•인종•섹슈얼리티•민족성 등등의 정체성들은 상호간에 결정하고 있다는 통찰력이 새로운 개념인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낳았다. 일부 사람들은 정체성과 억압의 형태들이 상호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분열을 초래하는 것으로 판명되리라고 우려했지만 분열에서 시작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 즉 연대정치를 낳았다. 연대정치는 운동들을 가로질러 그리고 운동들 내부에서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고 어떤 성공적인 전지구적 시민운동에라도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사실 이 동학은 현장의 다양한 사회 운동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고 연대경제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실천과 제도의 발전에 영감을 주고 있다.

 

2. 페미니즘, 맑스주의와 만나다

1970년대 초에 제2물결 페미니즘(참정권 획득에 초점을 맞춘 제1물결과 대조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 미국과 그외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일었다. 의식을 고양하는 집단에서 만난 여성들은 풀뿌리 조직들을 형성하여 사무직 조직화에서부터 미디어 개혁에 이르는 광범위한 페미니즘 투쟁에 참여했다. 주류 페미니즘 조직들은 재생산권을 보장하는 데, 그리고 유급노동자로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 및 기회를 획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에는 또한 활동적인 좌파인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포함되었으며 그들은 자본주의와 혁명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을 발판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비판했다. 맑스주의/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맑스주의의 이론적 틀이 자본가들이 여성을 노동자로서 억압하는 것을 분석하지만 가정과 일터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이상적으로는 노동계급 운동을 혁명적으로 표현하는 노동조합이 여성들의 평등과 관련하여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19세기에 노동조합들은 여성을 고임금직에서 배제하고 가정에 묶어두는 것을 옹호했다. 전통적인 남성들처럼 전통적인 맑스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맑스주의와 연결될 때에는—전통적인 아내들처럼—그들의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했다.((원주1. 미국에서 나온 두 주목할 만한 선집들로는 Zillah Eisenstein, Capitalist Patriarchy and the Case for Socialist Feminis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9)와 Lydia Sargent, Women and Revolution: A Discussion of the Unhappy Marriage of Marxism and Feminism (Boston: South End Press, 1981) 참조. 영국에서는 Annette Kuhn and AnnMarie Wolpe, Feminism and Materialism: Women and Modes of Production (London: Routledge, 1978)가 유사한 주제들을 탐구했다.))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또한 맑스주의의 혁명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맑스주의 이론은 노동자들을 혁명적인 사회 변화의 주체로 보고, 계급투쟁을 그 발동기로 보았으며,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목표로 여겼다. 이 변화의 비전이 너무 강력해서 소련에서 민주주의의 개탄스러운 부재가 분명해진 이후에도 초기의 맑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스트들은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과 함께 조직화하는 것을 계급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자 주도의 혁명을 쟁취한 이후로 연기하라는 말을 들었다. 남성 좌파들에 따르면 페미니스트들의 조직화는 노동계급을 갈라놓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본주의를 영속시킬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혁명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으며 맑스주의나 더 나은 사회주의 미래와 연결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페미니즘이 고조되자 근본적인 변화를 느꼈고 사회주의자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두 가지 진실을 보았다. 다시 말해 여성해방은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우리의 해방을 위한 싸움을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미룰 수도 없었다. 가정주부들은 유급노동자로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결혼에서 겪던 젠더 억압에서 풀려나와 고용주에 의한 계급 및 젠더 억압을 겪게 되었다. 젠더 불평등과 지배구조가 페미니즘 운동으로 어떻게든 없어지더라도 여성들은 계속해서 노동자로서 억압받게 될 것이다.

동시에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적어도 지금까지 실행된 바의 사회주의 혁명으로는 여성의 억압이 없어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여성들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겪은 경험은 미국의 좌파남성들도 마찬가지로 성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회주의-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페미니즘적·반(反)계급주의적 조직화에 몰두했고 탈자본주의적, 사회주의-페미니즘적 체제라는 한층 폭넓은 비전 쪽으로 나아가는 데 몰두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버클리•시카고•뉴헤이븐에서의 사회주의-페미니즘적 여성들의 연합을 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가했는데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자본주의를 페미니즘적•반계급주의적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에 한데 모였다.((원주2. 사회주의 국가에서의 여성을 다룬 것으로는 Hilda Scott, Does Socialism Liberate Women?: Experiences from Eastern Europe (Boston: Beacon Press, 1974) 참조. 사회주의-페미니즘 조합의 발생에 대해서는 “The Berkeley-Oakland Women’s Union Statement,” in Capitalist Patriarchy and the Case for Socialist Feminism , ed. Zillah Eisenstein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9) 참조.))

우리는 맑스주의 이론을 좀 고쳐서 여성의 경제적 위치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데 더 잘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가사노동 논쟁’에서 우리는 집안일이 생산적 노동이 되어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지 아닌지를 검토했다(논쟁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맑스의 유물론 분석—‘생산과 재생산의 양식’을 구체화하는 분석—을 사용하여 가정관리와 육아라는 여성의 무급 노동을 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의 일부로서, 따라서 혁명적인 조직화에 핵심이 되는 것으로서 분석했다. 이 논의들은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는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논쟁이 하나의 이론적 틀을 중심으로 한 합의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을지라도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을 경제적·사회적 삶의 핵심적인, 그러나 저평가된 측면으로서 부각시키고 확증했다.((원주3. Julie Matthaei, “Marxist-Feminist Contributions to Radical Economics,” in Radical Economics , eds. Susan Feiner and Bruce Roberts (Norwell, MA: Kluwer-Nijhoff, 1992), 117–144. 이 생각들은 가령 Nancy Folbre, The Invisible Heart: Economics and Family Values (New York: New Press, 2001)에서 더 발전된다.))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사회 전반적인 계급 억압 및 젠더 억압이 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때는 두 가지가 일제히 작동하고 다른 때에는 자본주의 발전이 결혼한 여성들을 유급노동자로 끌어들일 때처럼 그 둘이 서로를 침식한다.((원주4. Heidi Hartmann, “The Unhappy Marriage of Marxism and Feminism: Towards a More Progressive Union,” in Women and Revolution , 1–42와 Ann Ferguson and Nancy Folbre, “The Unhappy Marriage of Patriarchy and Capitalism,” Women and Revolution , 313–338 참조.)) 두 억압 모두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라는 두 갈래 운동에 의해 분석되고 극복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남성지배에 저항하는 여성을 조직화하고 계급지배에 저항하는 노동자를 조직화함으로써 서로 엮여있는 두 가지 경제 시스템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이중의 투쟁을 주장했다. 이런 유형의 분석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둘 다를 공존하면서 서로 얽혀있고 억압적인 시스템으로 인정하는 분석—이 ‘이중체계이론’(dual systems theory)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중체계이론을 채택하면서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혁명이나 체계 변화에 대한 맑스의 기본적인 분석을 받아들여 확장했다. 우리는 경제적 변형을 억압받는 집단에 의한 투쟁으로 추동되는 혁명 과정으로 바라보는 맑스의 견해에 찬성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이 혁명의 주체인 노동자를 여성으로 대체했지만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은 계급투쟁을 혁명의 핵심적 측면으로 받아들였고 여성을 두 번째 피억압 집단으로 노동자에 포함시켰다. 우리는 여성들이 해방되기 위해 급진적인 변형을 필요로 하는 두 개의 억압 시스템—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을 개념화했다.

 

3. 상호교차성과 정체성에 기반을 둔 혁명적 정치의 붕괴

이중체계이론이 맑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하이픈을 녹여버리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그리고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곧 유색인 반(反)인종주의 여성들의 분명한 도전에 직면했다.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은 ‘자매애’ 내지 여성에 기반을 둔 정체성 정치라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의 개념들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의 인종주의를, 특히 백인 여성들이 지도자 지위를 독점하는 것과 백인 여성들의 관점에서 ‘여성의 문제들’을 정의하는 것을 지적했다.((원주5. 선구적인 책들에는 Cherie Moraga and Gloria Anzaldua, This Bridge Called My Back (London: Persephone Press, 1981)과 bel hooks,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 (Cambridge, MA: South End Press, 1984)가 포함된다.))

설상가상으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도 페미니즘 운동에서 동성애 공포증에 항의하고 있었다. 두 집단은 백인과 이성애 페미니스트들에게 인종차별주의와 동성애 혐오에 반대한다고 솔직하게 자기입장을 밝힐 것과 그들의 실천, 강령 및 이론에 이러한 입장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여성의 억압을 자연에 대한 지배와 연결시키는 에코페미니즘은 맑스주의-페미니즘적 담론에 또 다른 차원의 복잡성을 추가했다. 에코페미니스트들은 여성되기의 확장으로서 생태운동에 참가할 것을 여성들에게 호소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요청에 따랐다. 풍부한 내용의 좌파 에코페미니즘적 분석이 발전했다. 캐롤린 머천트(Carolyn Merchant)는 『자연의 죽음』(The Death of Nature)에서 자연의 지배는 서구 과학이 출현할 때 여성의 대상화 및 여성에 대한 지배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7 뛰어난 저서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에서 마리아 미스(Maria Mies)와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는 기본적인 생활필수품들을 공급하는 것을 중심으로 운동들의 연합을 제안하면서 계급, 젠더, 남/북, 흑인/백인 그리고 인간/자연 사이에 일어나는 지배와 폭력을 상호연결된 현 세계체제의 부분들로서 종합적으로 분석해냈다.((원주7. Maria Mies and Vandana Shiva, Ecofeminism (London: Zed Books, 1993).))

지구상의 선진지역(Global North)과 지구상의 후진지역(Global South) 사이의 분할 또한 대두되었다. 유엔이 정한 ‘여성을 위한 10년’(United Nations Decade for Women, 1975–1985) 동안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이 세 번의 전 세계 회의에서 함께 모였다. 우선사항에서의 엄청난 차이들이, 특히 노동력과 재생산권에서의 평등권에 중점을 두는 선진지역 여성들과 신식민주의와 가난을 우려하는 후진지역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표면화되었다. 이런 차이들로 인해 페미니스트들은 초국적 페미니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노력할 때 여성 문제에 관한 그들의 관점을 확장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계급지배(남북 문제)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었다.((원주8. Valentine Moghadem, Globalizing Women: Transnational Feminist Networks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5).))

관점을 넓히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중요한 페미니즘 개념인 상호교차성이, 즉 인종•젠더•계급•민족 및 우리의 ‘자연’관조차 상호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이 생겨났던 것이다. 페미니즘 및 반인종주의 활동가이자 법학자인 킴벌리 크렌쇼(Kimberlee Crenshaw)가 이 용어와 가장 관련이 있지만, 이 개념의 배후에 있는 사고는 인종•계급•민족•섹슈얼리티 등의 차이를 가로질러 함께 페미니즘을 조직하고자 하는 다양한 여성 집단들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들은 여성다움에 대한 공통의 경험― 가시적으로 명백하거나 조직화의 중심 원리가 될 수 있거나 요구 창출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그러한 공통적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인종•계급•섹슈얼리티•국가 등을 가로지르면서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흑인이나 노동계급이 겪는 경험에 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각 경험은 독특한 차원의 억압에서 나오지만 다른 차원들과 별개로 이해될 수 없다. 엘리자베스 스펠먼(Elizabeth Spelman)이 언급하듯이 젠더•인종•계급은 정체성이라는 목걸이의 ‘팝비즈’(([옮긴이] pop beads :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장난감용의 구슬들로서 자유롭게 꿰었다 분리했다 할 수 있다.))가 아니다.((원주9. Elizabeth Spelman, Inessential Woman: Problems of Exclusion in Feminist Thought (Boston: Beacon Press, 1988).))

상호교차성의 인식은 맑스주의-페미니즘과 페미니즘적 조직화 일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류 페미니즘 및 맑스주의-페미니즘의 기반이었던 정체성 정치—여성은 남성에 의해 그리고 남성과 비교해서 억압받고 있다는 사고—는 여성의 경험을 분할하고 계층화하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이 기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억압 체계들을 간과하는 것은, 백인이며 이성애자이고 선진지역에 사는 중산층의 전문직 여성의 경험과 욕구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페미니즘 운동이 계급, 인종-민족, 남-북 및 여타 형태의 불평등을 어떻게 재생산하고 있었는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젠더뿐만 아니라 인종•민족•계급•성정체성이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고방식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페미니스트로서 함께 만날 때에 이 차이들이 드러나고 여성들을 계층화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들에게 재계에서 성공하는 법을 조언하는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의 책 『린 인』(Lean In)에 관한 페미니즘 논쟁을 생각해 보라. 이 책은 많은 교육을 받고 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떨쳐내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유리 천장을 깨는’ 법에 대해 알려주지만 이 성공 공식은 피부색과 무관하게 노동계급과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애초에 가능성이 없는 공식이다. 한 좌파 페미니스트 블로거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적 노력에서 우선해야 할 것은 유리 천장(([옮긴이] 유리 천장(琉璃 天障, glass ceiling)은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직장 내 성 차별이나 인종 차별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학 용어이다. [한국어 위키피디아]))을 깨는 것이 아니라 ‘집의 지하실이 물에 잠기고 있는’ 가난한 여성들을 옹호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원주10. Laurie Penny, “Don’t Worry about the Glass Ceiling—the Basement is Flooding,” New Statesman , July 27, 2011, https://www.newstatesman.com/blogs/laurie-penny/2011/07/women-business-finance-power.))

상호교차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단순한 정체성 정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성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경험이 없다면 (이는 분명히 사실이다) 여성들은 조직화를 통해 가부장제를 전복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동질적 계급을 구성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조직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젠더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동질적 계급을 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으로, 젠더 억압의 경험은 변화를 위한 투쟁에서 다른 차이의 선들을 가로질러 여성들을 한데 모으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은 다른 불평등들이 존재하는 정반대되는 양극단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는 다양하게 억압받고 있는 여성들을 정체성에 기반을 둔 별개의 집단으로 분열시킨다. 이 집단들 각각의 내부에서 갈등이 더 일면서 더 심화된 분열을 조장한다. 페미니즘의 갈래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정체성에 기반을 둔 분열이 바로 페미니즘의 새로운 ‘제3물결’을 정의하는 특징이 되었다. 백인남성 좌파들의 악몽—페미니즘이 사회주의 운동을 갈라놓고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운동과 혁명적인 체계 변화에 대한 비전의 토대인 정체성 정치가 와해된 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다른 역사적 변화들과 동시에 일어났다. 마가렛 새처(Margaret Thatcher)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1979년과 1980년에 각각 반혁명을 시작했다. 노동계급과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새처가 보인 반응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였다. 레이건이 대통령으로서 한 첫 행동은, 오늘날에도 미국 노동역사에서 그 파문들이 계속되는 악명 높은 사건인 항공 교통 관제사 조합의 파업을 중지시킨 것이었다. 1990년대가 되면 찰스 코크(Charles Koch)와 다른 우파 기부자들—이들은 케인스 학설과 정부규제를 거부했고 ‘자유시장’을 수용했다—이 자금 지원을 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힘을 얻어 자본이 의기양양하게 지배하게 되었다.((원주11. Nancy MacLean, Democracy in Chains: The Deep History of the Radical Right’s Stealth Plan for America (New York: Viking, 2017).))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의 불꽃은 사그라들었다. 노조조직률은 조립라인의 해외 이전과 하향경쟁에 굴복하여 급속하게 하락했다. 소련의 민주주의 실패 및 해체 그리고 가차 없는 정치적 공격에 직면한 노동운동의 쇠퇴와 함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널리 인용되는 자신의 책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1992)에서 공산주의와 맑스주의가 죽었다고 선언했다. 맑스주의, 사회주의 및 맑스주의(사회주의)-페미니즘이 모두 구식이 된 것이었다.

 

4. 연대정치의 부상

제3물결을 특징짓는 페미니즘의 분열로 많은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죽어가고 있거나 죽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성에 기반을 둔 다른 사회 운동과의 연계를 통해 좀 더 복잡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즉 정체성 정치를 기반으로 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페미니스트들, 특히 맑스주의-페미니스트들에게 상호교차성이 제기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페미니즘의 실천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페미니스트들인 우리는, 우리의 운동 내부와 사회에서 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른 형태의 억압들 또한 인정하지 않거나 뿌리 뽑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여성들을 한데 모아 여성해방을 위해 싸우는 데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억압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투쟁으로 바라보는 정치를 넘어서, 우리의 운동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경제와 사회로부터 모든 억압의 형태들—가부장제, 인종주의, 계급 차별주의, 동성애 혐오증, 장애자차별, 신식민주의, 종(種)차별주의 등—을 끝내고자 하는 연대정치를 향할 필요가 있다. 이 부상하는 연대정치는 모든 불평등의 형태를 해체하고자 하는 공유된 목적을 갖고 모든 불평등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연대정치는 페미니즘 운동만이 아니라 일차원적 견해의 부적절성에 부딪혀 상호교차성의 문제와 씨름하는 다른 사회운동들 안에서도 발전해왔다.

페미니즘 내부에서의 이 핵심적 전환은 또 다른 형태의 연대정치가 각 사회운동 내부가 아니라 사회운동들 사이에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바로 그 때에 발생했다. 전 세계 사회운동과 NGO 단체들은 노동자•여성•환경 그리고 지구상의 후진지역을 사정없이 파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싸우기 위해 ‘운동들의 운동’(movement of movements)에서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이 ‘운동들의 운동’은 1999년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시애틀 전투’에서 전지구적으로 이목을 모았고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의 다른 회의들에 대한 항의로 계속 이어졌다. 2001년에 여성운동, 노동자운동, 환경운동, LGBTQ 운동, 평화운동, 농민운동, 토착민운동 및 여타 사회운동들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모토 아래 제1차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에서 모여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전지구적이고 지역적인 조직화의 물결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핵심 원리는 모든 형태의 착취와 억압을 거부하는 것, 다시 말해 연대정치였다.((원주12. “World Social Forum Charter of Principles” 2002, http://www.universidadepopular.org/site/media/documentos/WSF_-_charter_of_Principles.pdf의 제10 원칙 참조.))

이런 식으로 연대정치는 페미니즘 (그리고 다른 사회 운동) 내부에서 그리고 이 운동들을 한데 모으는 ‘운동들의 운동’ 내부에서 발전해오고 있다. 개인과 조직들이 계속해서 구체적인 초점—특정 억압 유형(젠더, 인종, 계급 등) 내지 특정 쟁점(식량, 의료서비스, 재생산의 자유, 기후변화)—을 가지면서도 점점 더 이 초점을 모든 억압형태에 저항하는 공통의 투쟁 양상들 가운데 하나로 이해한다. 따라서 맑스가 사회주의의 건설자로서 마음에 그렸던 동질적인 산업 노동계급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포괄적인 혁명의 주체, 즉 서로 연결되고 상호적으로 결정하는 일단의 사회 운동들이 등장했다. 이 변혁 주체는 어떤 쟁점을—그저 특권계급에 속하는 소집단이 아니라—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쟁점을 현재의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다수의, 상호의존적인 불평등 및 억압형태들을 해체하고 변형하는 과제에 부합시킨다.

여기서 연대정치의 세 가지 양상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연대정치는 여성 운동 같은 정체성 정치에 기반을 둔 운동들로 하여금 그 리더십과 정책형성에서 억압받는 하위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손을 뻗쳐 그들을 끌어들이도록 만든다. 이것이 체면치레처럼 보일지라도 성심으로 실천한다면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억압을 받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지배적인 소집단(예를 들어, 이성애자인 전문직 백인 여성들) 사이에서 그리고 조직의 이론들 및 강령에서 특권 때문에 발생하는 편견들을 바로잡을 수 있다.

둘째, 목표대상이 지배집단—즉 “남성들(혹은 1% 혹은 백인들)은 적이다”—에서 특정한 구조적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영속시키는 사회적 개념들, 관행들 및 제도들로 바뀐다. 이것은 정체성 정치 집단들이 상호교차성과 씨름할 때 이 집단들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 혐오증과 인종차별주의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페미니스트 집단에서 레즈비언들은 동성애 혐오증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성애적 여성들을 보게 되고 유색인 여성들은 인종차별주의를 반대하는 백인여성들을 목격한다. 미국에서 경찰의 만행에 대응하여 등장했고 인종의 정체성 정치에 기초를 두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옮긴이] BLM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향한 폭력과 제도적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다. BLM은 경찰에 의한 흑인의 죽음, 인종 프로파일링, 경찰의 가혹행위, 미국의 형사 사법제도 안의 인종간 불평등 같은 광범위한 사안들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항의집회를 연다. [위키피디아] ))은 구성원들의 상당 부분이 백인 ‘동지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과정의 훌륭한 예에 해당한다.

셋째, 연대정치는 서로 다른 운동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 운동 내부의 서로 다른 갈래들 사이에서도 연합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억압들의 상호교차성은 불가피하게 정체성 정치 집단, 예를 들어 ‘여성들’ 내부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되풀이한다. 억압받는 소집단들이 내부에서 세계와 자신들에 관한 해방적인 인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공간들, 위원회들 및 조직들을 스스로 창출하고, 그 다음에 여타의 섞여 있지만 대부분 백인/중산층/이성애적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집단과 함께 연합하여 공유된 페미니즘적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일이다.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에는, 그 문제가 풀리려면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층의 시민들에 의해 접근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구조적인 뿌리가 있다는 것을 주요 사회운동들이 점차 알게 되면서 이 사회운동들 사이에서의 연합 또한 발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한 다음 날 열린 <여성 행진>(The Women’s March)은 정체성 정치와 연대정치 사이의 이런 관계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였다. ‘여성들의’ 행진으로서 그것은 명백히 정체성 정치에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또한 연대정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여성 행진’의 조직화를 시작한 것은 백인여성들이지만 그들은 ‘전국 공동 의장들’(National Co-Chairs) 및 ‘조직가들’(Organizers)로 이루어진 다양한 집단을 구성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이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지키는 것임을 알기에 우리는 함께 서 있다”라고 주장한 ‘여성 행진’의 선언문에서 상호교차성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이 가장 주목 받는 위치를 차지했다. 그 통합원리는 “젠더정의는 인종정의이자 경제정의이다”였고, 이민자의 권리, 시민권, LGBTQ의 권리, 장애자 및 노동자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와 환경정의에의 헌신이 전면에 부각되었다. 시민권, 노동, 기후행동 조직들을 포함하여 300명이 넘는 ‘여성 행진’의 후원자들은 페미니즘을 서로 연결되고 상호간에 힘을 주는 ‘운동들의 운동’의 일부로서, 즉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그러한 종류의 운동으로서 자리매김했다.((원주13. “Women’s March 2017,” accessed August 30, 2017, https://www.womensmarch.com.))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은 <여성 행진>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감을 고취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전 대륙에 있는 60개국에서 이루어진 600개가 넘는 후속 여성 행진들에서 행진한 여성들의 수는 총 50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원주14.Together We Rise: The Women’s March: Behind the Scenes at the Protest Heard Around the World (New York: Dey Street Books, 2018), 215 –216.))

 

5. 연대정치에서 연대경제로

상호교차성과 씨름함으로써 페미니즘과 여타 진보적인 사회 운동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불평등과 억압에 저항하는 정치에 이르게 되었다. 연대정치가 경제적•사회적 변형을 위한 강력한 도구인 것은 모든 사회적 실천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유형의 불평등을 인지•거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적 시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상호교차성의 관점에 기반을 두고 특정 사회문제를 중심으로 모일 수 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은 페미니즘 연대정치의 훌륭한 한 예로, 세 명의 흑인여성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을 끝내려는 데 집중하면서도 우머니즘적,(([옮긴이] ‘우머니즘’(womanism)은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이 흑인여성들 및 여타 주변화된 집단의 여성들의 역사와 경험에 관해서 보여준 한계의 발견에 기반을 둔 사회이론이다. 앨리스 워커(Alice Walker)가 『어머니의 정원을 찾아서』(In Search of our Mother’s Gardens: Womanist Prose)에서 ‘womanist’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퀴어/트랜스적 관점 또한 긍정했다.((원주15. www.Blacklivesmatter.com/about/ 참조.))

연대정치는 자연스럽게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억압이 한 사람의 경험에서 또는 어떤 특정한 사회적 관행 내지 제도에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인식은, 억압적인 관습과 제도가 경제적•사회적 총체 내부에서 결합하고 상호작용하는 체계적인 방식에 대한 이해로 진화한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의 경우, 경찰의 만행에 대한 비판적 저항이 학교 시스템과 감옥산업복합체(the prison industrial complex)에 대한 비판으로 진화했다.

페미니즘(과 여타) 연대정치의 발전에서 다음 단계로 취해야 할 중요한 행동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과 그곳에 도달하는 방식을 중심으로 단결하는 것이다. 그런 비전에는 연대정치를 실천하는 페미니스트들 및 여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지금 여기서 구체적으로 사회구조의 변화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포괄적인 사회체계 변형의 비전이 없던 미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지배적인 시스템 내부에서 동등한 기회요구― 가령 남성들이 독점한 경제적 위계의 상부에 여성들이 진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로 인해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적인 규칙을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는 운동으로 축소되고, 노동력에서의 차별과 재생산권의 결여로만 여성의 억압을 규정한다. 최악의 경우에 이 접근법은 페미니즘을 ‘유리 천장을 깨는 것’, 즉 소수의 여성들이 남성들이 하는 대로 일을 함으로써, 거의 항상 이런 방식으로 최고의 자리에 접근하는 것으로 축소시킨다. 여성의 상호교차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성차별에 인종 및 계급차별을 추가해서, 가령 유색인 여성이 높은 급여를 받는 기술직에 진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조차 우리는 아직도 경제의 기본적인 구조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구조는 여성과 그 가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긴 하지만 ① 경제 위계의 밑바닥에서 여성이 받는 부족한 임금 ② 가족을 돌보는 무보수 노동의 착취와 예속 ③ 소수의 소유자들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생산 시스템 조직화 ④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태계 파괴라는 여러 중요한 면에서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을 비판하고 뛰어넘으며 체계 차원의 경제적 변형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적 변형의 다른 비전, 즉 연대경제 운동이 출현했으며 현재 탄력을 받고 있다. 성장세를 타고 있는 이 운동은 1990년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현했고 특히 ‘새로운 경제’(New Economy) 운동, ‘쑤막 까우쎄이’/‘부엔 비비르’(Sumak Kawsay/Buen Vivir)(([옮긴이] ‘쑤막 까우세이’(Sumak Kawsay)는 스페인어 ‘buen vivir’에 해당하는 케추아어이다. 영어로는 ‘good living’, ‘well living’의 의미이다.)) 및 ‘공동체 경제’ (Community Economy) 운동과 겹쳐지는 세계사회포럼 운동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원주16. 연대경제에 대한 개관들로는 Allard, Jenna, Carl Davidson, and Julie Matthaei, Solidarity Economy: Building Alternatives for People and Planet (Chicago: Changemaker, 2008), Emily Kawano, Thomas Neal Masterson, and Jonathan Teller-Elsberg, Solidarity Economy I: Building Alternatives for People and Planet (Amherst, MA: Center for Popular Economics, 2010) 그리고 Peter Utting’s edited collection, Social and Solidarity Economy: Beyond the Fringe (London: Zed Books/UNRISD, 2015) 참조. <사회적 연대경제 증진을 위한 대륙간 네트워크>(the Transcontinental Network for the Promotion of the Social Solidarity Economy, RIPESS, www.ripess.org)와 <미국 연대경제 네트워크>(the US Solidarity Economy Network, www.ussen.org)도 훌륭한 참조처이다.))

연대경제의 틀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장경제 내부에 이미 현존하는 해방적인 경제활동과 제도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통합적인 신흥 ‘연대경제’의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연대경제에서 기본적인 통합 기준은 경제적 실천이나 제도에 의해 구체화된 가치들이다. 연대적 가치의 목록에는 협력, 모든 차원에서의 공평, 정치적•경제적 참여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 및 다양성/다원주의가 포함된다. 이 틀은 어떤 특정한 관습이나 제도가 모든 가치 혹은 어떤 특정한 가치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을 것임을 인정한다. 연대경제에 기반을 둔 이 차원들 각각은 스펙트럼 상의 특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체계변형을 위한 투쟁에는 우리의 경제활동과 제도들이 이 스펙트럼 위에서 불평등에서 연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포함된다.

모든 부류의 협동조합들(노동자•소비자•생산자 협동조합)이 연대경제의 핵심적 구성요소를 포괄하듯이,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소비패턴을 촉진하도록 노력한다면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목표 쪽으로 투자가 이동할 것이며 기업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재설계될 것이다. 공동체 텃밭에서부터 버려진 공장이나 땅의 인수 및 공동체 통화 창출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표적 실천들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적인 경제제도의 실패에 대응하여 한데 모이면서 생긴 것이다. 본질적으로 연대경제는 경제에서의 연대정치를 표현한다.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혁명관과는 대조적으로 연대경제의 틀은 자본주의의 혁명적인 전복을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에 사회 전반에 걸친 경제적 변형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북돋운다. 연대경제는 자본주의적인 제도와 나란히 시장 내부에서 심지어 그 제도 내부에서도 번성하고 있다. 긍정적인 체계적 변화에 참여하여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들은 넘치도록 많다. 이런 유형의 변화에 적절한 용어가 혁명/진화(r/evolution)인데, 체계 수준에서 작동한다는 면에서 혁명적이지만 점진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진화적이다. 이 변화가 다차원적이고, 다부문적이며 다층적(미시적이고 거시적)이기 때문이다.

 

6. 페미니즘과 연대경제

연대경제의 틀은 심층적으로 페미니즘적이다. 자본주의 경제는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특성을 가지는 경쟁―이기기 위한, 다시 말해 다른 남자들을 ‘능가하’거나 지배하기 위한 투쟁―에 의해 규정된다. 남성은 기업가•농부•노동자로서 돈을 추구하는 경제에서 서로 경쟁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백인) 남성의 이상형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부와 권력을 가진 꼭대기의 경제적 계층이 되는 데 성공한 사람이었다. 기업은 노동자, 소비자 및 생태계의 요구를 냉담하게 무시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생산의 형태로 이 편협한 물질주의적인 이기심이라는 에토스/정신을 구현했다.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은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무급노동과 평가 절하된 노동으로, 또는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저임금 서비스 일로 한정되었다.

연대경제는 남성이 지배하는 경제의 핵심구조에 전통적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는 여성의 일을 투입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경제활동은 자본가의 부를 증가시키도록 구조화된다. 기업의 소유주와 경영자들은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사실상 관심을 갖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생계를 빼앗기고, 소비자들은 조종당하고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게 되며 환경은 파괴된다. 이 모두가 사업의 정상적인 일부분인 것처럼 이루어진다. 많은 페미니즘 경제학자들이 공언한 것처럼 경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경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람과 비인간 생물 사이에서 상호간에 배려하는 유익한 관계를 촉진해야 한다. 연대라는 용어를 부각시키는 연대경제의 틀은 연대정치가 향하고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이런 핵심적인 측면을 긍정한다.

이와 연관하여 경제의 주체가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연대경제를 페미니즘 프로젝트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본주의는 중상류층 백인들 가운데 남편/가장으로서 남성 경제인과 아내/어머니/주부로서 여성 경제인으로 경제의 주체를 양극화한 것에 기반을 두었다. 전형적인 남성 경제인의 노동은 생계비를 버는 일이었다. 즉 적어도 가족 임금을 벌고 경제적 지위가 높아지며 경쟁력 있는 소비에 지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장’에서의 유급노동이었다. 전형적인 여성 경제인의 노동은 육아를 포함해서 가정에서 무급 노동을 직접 하거나 감독함으로써 남편과 가족을 돌보고 그들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연대경제의 주체에게는 남성 주체와 여성 주체의 최고의 측면들이 혼합되어 있다. 일과 사업활동은 생계 수단, 자기표현 및 자기 개발(초개인주의와 경쟁으로 구성되는 자본주의적인 남성성을 뛰어넘는 긍정적인 형태의 남성성)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사회 및 세상에 봉사하고 도움이 되는(자기 예속을 수반하지 않는 긍정적인 형태의 여성성) 길이 된다.

결과적으로 돌봄 노동 자체의 관행을 변형시키는 것은 연대경제와 ‘거대한 이행’을 깨닫는 데 필수적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전통적으로 권위적인 자녀양육을 통해 지배와 종속의 두 역할이 산출되며 이는 다시 전통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적이고 권위적인 회사에서 재생산된다. 불평등한 지배와 복종 관계는 아내 위에 남편 그리고 아이들 위에 부모로 이루어진 가족에서 시작된다. 아이들은 교사가 지도하고 평가하는 학교에 다니고 그 후에는 상관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직장에 다닌다. 우리가 경제를 상호적으로 유익하고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려면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남을 지배하라거나 종속되라고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하는 법, 자립하는 법 및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돌보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위세를 부리는 존재(전통적인 아버지)이거나 굴종적인 존재(전통적인 어머니)이기보다 그들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상호관계를 모형화함으로써 가르칠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전통적인 돌봄 노동과 저임금의 돌봄 일에 재정적 지원을 해 줄 것을 주장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보살피기•양육•돌봄을 사회를 변형시키는 페미니즘의 렌즈 밑에 둘 필요가 있으며 체계 차원의 변화를 꾀하는 우리 일의 일부로서 우리 모두가 그 일을 더 잘하도록 도와줄 혁신적인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7. 결론

진정한 페미니즘—모든 여성을 해방하고자 하는 페미니즘—은 연대정치, 연대경제 및 혁명/진화로, <거대한 이행 기획>에서 설명된 것처럼 전지구적 시민운동으로 거침없이 이어진다. 여성과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계속해서 이것을 긍정하고 연대정치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이 온전히 페미니즘적이고자 한다면 혁명적/진화적이어야 한다. 더군다나 모든 진보적인 운동은 반드시 눈을 크게 뜨고 상호교차성의 문제와 씨름해야 하며 조직 내부에서 그리고 조직화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형태의 불평등—남성 지배 및 젠더 억압을 포함해서—을 뿌리 뽑는데 전념해야 한다.

‘운동들의 운동’은 새로운 세계 극장에서 주연배우이지만 아직 대다수 사람들은 이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에서 구성으로, 우리가 반대하고 있는 것에서 우리가 찬성하는 것으로 렌즈를 계속해서 바꾸어야 하며 전 세계 많은 연대경제의 사례들로 우리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역사상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과 모든 진보주의자들에게 중요한 임무는, 진보적인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시너지 효과를 가진 연계된 대열에 동참하도록 고무하기 위해서 혁명적/진화적인 전진방식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

 




지도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 저자  :  Antonio Negri, Michael Hardt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Assmebly의 1장 3절 “Leaderless movements as symptoms of a historical shift”(‘역사적 전환의 징후로서의 지도자 없는 운동’)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오늘날 운동에 지도자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연한 일도 아니고 산발적인 일도 아니다. 대의제의 위기와 민주주의에의 열망으로 인해서 사회운동 내에서 위계적인 구조들이 전복되고 해체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지도 문제는 심오한 역사적 변형의 징후이다. 근대적 조직형태들이 파괴되었지만 적절한 대체물들이 아직 발명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를 온전하게 보기 위해서는 분석을 정치 영역 너머 경제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로 확대해야 한다. 이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은 정치영역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철창에 갇혀 있거나 묻혀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 공권력에 의해 (때로는 제도권 좌파 정당과의 협력 아래) 투옥되거나 사살당한 것이다. 각 나라에는 쓰러진 영웅들과 순교자들의 고유한 목록이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안또니오 그람시, 체 게바라, 넬슨 만델라, 프레드 햄턴(Fred Hampton), 이브라힘 카이파카야(Ibrahim Kaypakkaya) 등등. 이와 다르게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살해와 투옥이라는 가장 스펙터클한 것들 말고도 다른 억압 무기들이 많다. 전문화된 법을 통한 박해, 비밀공작, 검열, 지배적인 대중매체를 통해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창출하거나 아니면 사건을 왜곡하기, 지도자들을 유명인으로 만들어서 포섭하기. 모든 반란 집압 매뉴얼은 혁명적 지도자의 제거가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머리를 자르면 몸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도층이 왜 쇠퇴하는지를 드러내주지는 않는다. 늘 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외적 원인에 초점을 두는 것은 운동의 진화에 대한 빈약한 이해를 가져온다. 변화의 진정한 동력은 내적이다. 운동 내부에서 반권위주의와 민주주의가 중심적인 토대가 된 것이 내적 이유이다.

이 맥락에서 하나의 강력한 계기는 1960~70년대 페미니즘 조직들이 운동 내에서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도구들을 개발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의식고양과 모임에서 모든 사람의 발언을 보장한 것은 정치적 과정에 모두가 참여하는 것을 양성하고 모두가 관여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만다는 수단이었다. 페미니즘 조직들은 또한 예를 들어 전체의 허가 없이는 미디어에 아무도 발언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대표자나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했다. 한 개인이 지도자나 대표자로 지명되면 힘들게 얻은 민주주의, 평등, 조직의 활력강화의 성취를 무너뜨릴 것이었다. 누군가가 지도자나 대변인으로 자청하거나 그렇게 지목되는 것을 받아들이면 그녀는 “trashing”이라 불리는 공격을 받았는데, 이는 때로는 비판과 고립의 몰인정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반권위주의적인 정신이 있었으며 더 중요하게는 민주주의를 창출하려는 욕망이 있었다. 1960~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민주적 실천을 생성하고 발전시키는 이례적인 인큐베이터였다. 이 실천은 현재의 사회운동에 일반화되게 된다.

실천에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대의제를 비판하는 이러한 경향은 1960~70년대의 다른 운동들에서도 번성했다. 이 운동들은 남성 입법자들이 여성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백인의 권력구조가 흑인을 대변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운동의 지도자들이 조직을 대표하겠다고 주장하는 것도 거부했다. 운동의 많은 부문들에서 대의제의 해독제로서 참여가 장려되었고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가 중앙집중화된 지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오늘날 리더십의 쇠퇴를 탄식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 미국 흑인정치의 역사를 반대사례로 지적한다. 1950~60년대의 시민권운동의 성공은 대부분 (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소속의) 흑인 남성 설교자들인 (마틴 루터 킹 2세를 필두로 한) 지도자들의 지혜와 실력 덕분으로 돌려진다. 맬컴 엑스, 휴이 뉴턴(Huey Newton), 스토클리 카마이클(Stokely Carmichael) 등과 연관된 <블랙 파워> 운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가장 명확한 것으로 흑인 페미니즘 담론에서 발전되었으며 지도자를 미화하는 전통적인 경향에 반대하는 소수 노선도 있다.

에리카 에드워즈(Erica Edwards) : “카리스마적인 지도층을 정치적 소망으로서 그리고 서사 및 설명의 메커니즘으로서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것(전자는 ‘우리에겐 지도자가 없어’라고 탄식하는 것, 후자는 흑인 정치의 이야기를 흑인 지도층의 이야기로서 말하는 것)은 ··· 역사적으로 부정확한 만큼이나 ··· 정치적으로 위험하다.”(([원주9] Erica Edwards, Charisma,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2, p. 12. For her explanation of the three types of violence, see pp. 20–21.))

에드워즈가 분석하는 ‘카리스마적 지도층의 폭력’의 세 양태

① 과거를 허위적으로 제시함 (다른 역사적 주체들을 가림)

② 운동 자체의 왜곡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하는 권위구조 창출)

③ 이성애규범적인 남성성(heteronormative masculinity) (카리스마적 지도에 함축된, 젠더와 성애에 대한 규제적 이상)

마르시아 채털린(Marcia Chatelain) : “소독처리가 되고 지나치게 단순화된 시민권 이야기의 가장 해로운 영향은 카리스마적 남성 지도자 개인들이 사회운동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불어넣은 것이다. 이는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원주10] Marcia Chatelain, “Women and Black Lives Matter: An Interview with Marcia Chatelain,” Dissent, Summer 2015, pp. 54–61, quote on p. 60.))

일단 주류 역사들 너머를 보면 미국 흑인 운동을 포함한 근대 해방 운동 전체에 걸쳐서 민주적 참여의 여러 형태들이 제안되고 실험되었고 오늘날 규범이 되었음을 볼 수 있다.

2014년 이후 반복되는 경찰의 폭력에 대응하여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강력한 항의 운동들의 연합인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는 지도에 대한 운동들의 면역체계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BLM은 전옹적인 흑인 정치제도의 지도 구조와 기율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종종 비판받는다. 그러나 해리스(Frederick C. Harris)의 설명대로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흑인 정치를 지배해온 카리스마적 지도 모델을 거부하고 있었으며 그럴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원주11] Frederick C. Harris, “The Next Civil Rights Movement?,” Dissent, Summer 2015, pp. 34–40, quote on p. 36.)) 이전 세대들이 가르친 중앙집중화된 지도는 이들의 생각으로는 비민주적일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BLM에는 지도자도 대변인도 없다. 맥케슨(DeRay Mckesson)이나 컬러스(Patrisse Cullors) 같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촉진자들(facilitators)의 넓은 네트워크가 거리에서 그리고 소셜미디어에서 연결을 구축하고 때로 집단행동의 ‘안무’—Paolo Gerbaudo의 용어를 쓰자면—를 한다. 물론 네트워크내에 차이들이 존재한다. 일부 활동가들은 중앙집중화된 지도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명시적인 정책목표와 ‘흑인의 점잖음’도 거부하고 저항과 분노의 격렬한 표현으로 나아가는 한편, 다른 일부 활동가들은 수평적 조직구조를 정책적 요구들과 결합하려고 노력한다. 2016년의 <흑인 생명 운동>(Movement for Black Lives) 플랫폼이 후자의 사례이다. 달리 말해서 BLM 안팎의 활동가들은 민주적 조직을 정치적 효율성과 결합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시험하고 있다.

BLM 활동가들이 보여주는, 전통적 지도구조에 대한 비판은 젠더 및 성애 위계에 대한 거부와 강하게 중첩된다. 과거에는 시스젠더 흑인들이 운동의 전면에 부각되고 퀴어, 트랜스를 비롯한 소수자들은 뒷전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반면 BLM에서는 여성들이 중심적인 조직화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세 명의 여성들— Garza, Cullors, and Opal Tometi—이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낸 것이 종종 그 예로 들어진다.)

지도자의 젠더와 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운동에서 발전된 조직형태들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해방을 위해 흑인 여성들—그 가운데 다수가 퀴어이다—의 재능을 한데 모으는 운동이 지도자가 없는 운동으로 간주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흑인 여성들은 매우 종종 보이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이다.”(([원주 16] Chatelain, “Women and Black Lives Matter,” p. 60)) BLM 운동은 과거로부터 (때로는 지하에 잠복했던) 민주적 경향들을 한데 모으는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실험하는 장이다. 오늘날의 많은 운동들처럼 그것도 새로운 조직모델이라기보다는 역사적 전환의 징후를 보여준다.

오늘날 지도자들의 결핍을 탄식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종종 ‘사회적 지식인들’(public intellectuals)의 부족을 한탄한다. 때로 정치조직에서의 지도의 거부가 학자나 지식인에게 운동을 대변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상응하기도 한다. 1968년 혁명 시에 새로운 사회적 주체들이 ‘말을 잡고’ 발화를 했다. 이러한 ‘말을 잡기’(prise de parole, taking the word) 자체가 혁명을 구성했다. 그러나 발화를 하는 행동만으로는 무엇을 말할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정을 받는 지식인에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지식인이 되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프랑스 등지에서는 싸르트르가 주된 모델이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이러한 대변 행동이 다른 목소리들을 익사시킬 수 있다는 것이 1960년대 후반에 인식되었다. 하버마스(Jurgen Habermas)의 사례가 있다. 그는 운동을 지지했고 운동에 대한 아도르노의 무근거한 비판을 공격했지만, 그 또한 운동을 개인주의 윤리와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에 묶어놓음으로써 운동을 붕괴시켰던 것이다.(([원주 18]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연합>(the 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과의 갈등에 대한 하버마스 관점에서의 설명으로는 Matthew Specter, Habermas: An Intellectual Biograp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pp. 101–116 참조.)) 활동가들 자신들은 개인주의에 대항해서 집단적 기획을 표현하려 했고 (정당과 국가 관료제로 구성된) 순전히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대항해서 피착취자의 진실과 혁명의 필연성을 표현하려 했다.

가장 총명한 지식인들은 이 교훈을 가슴에 새겼다. 운동을 지지할 때에는 대변인으로 행세하기보다 운동으로부터 배우려고 하거나 운동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자 했다. 들뢰즈, 푸꼬, 싸이드(Edward Said), 스피박(Gayatry Spivak), 버틀러(Judith Butler), 홀(Stuart Hall)이 그 좋은 사례들이다. 최고의 지식인들이 배운 근본적 교훈은 “결코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이다. 이제 운동이 지식인들에게 가이드가 되어 정치적 방향을 표시해주어야 한다. 이미 1960년대 초에 트론띠(Mario Tronti)가 ‘당 지식인’의 역할이 끝났음을 이해했다. 이제 모든 이론적 지식은 실천 활동에 함입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회적 지식인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So, let’s be done with public intellectuals!) 학자들이 상아탑에 갇혀 있어야 한다거나 잘 모르는 소리로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재능과 의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공동연구 과정에 협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운동으로부터 나오는 이론적 지식과 정치적 의사결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지도 문제’를 이해하는 첫 걸음은 그 정치적 계보를 구축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국가와 우익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왔지만 더 중요하게는 운동 자체 내에서 방지되어왔다. 운동에서 권위와 수직성에 대한 비판은 매우 일반화되어서 이제 지도는 운동의 목표를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해방 운동은 더 이상 지도자를 산출할 수 없다. 아니, 지도가 운동과 양립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운동이 권위, 비민주적 구조들, 중앙집중화된 의사결정, 대의메커니즘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운동이 머리 없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베어냈다. 지도에 대한 내적 비판은 이제 곧바로 조직화의 문제로 이어진다.

하나의 예외가 있다. 오늘날 해방운동의 지도자들이 등장할 때에는 가면을 써야 한다. 가면을 쓴 부사령관 마르꼬스는 상징적이다. 그의 가면은 경찰과 군대가 알아보는 것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사빠띠스따 공동체들의 민주주의와 애매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면은 사령관(subcommandante)으로서의 그의 지위를 표시했으며 ‘마르꼬스’가 개인이 아니라 모든 종속된 민중의 자리를 나타냄을 강조할 수 있게 했다. “마르꼬스는 샌 프란시스코의 게이이며 남아프리카의 흑인이고 유럽의 아시아인이며 산이시드로(San Isidro)의 치카노이고 스페인의 아나키스트이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이고 산크리스토발(San Cristobal) 거리의 토착민이다.”(([원주 21] Subcomandante Marcos, Ejercito Zapatista de Liberacion Nacional (EZLN) communique of May 28, 1994, reprinted in Zapatistas! Documents of the New Mexican Revolution, Autonomedia, 1995, pp. 310–311.))

그러나 가면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2014년 5월 25일 마르꼬스는 자신의 모습은 항상 운동을 위한 홀로그램일 뿐이었으며 이제 그만 존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지도자의 가면조차도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제

① 어떻게 위계 없는 조직을 구축할 것인가?

② 어떻게 중앙집중화 없는 제도들을 창출할 것인가?

여기에는 지속적인 정치적 틀에는 초월적 힘이 필요하지 않다는 유물론적 직관이 담겨 있다. 즉 정치 조직과 제도에는 주권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근대의 정치적 논리와의 심오한 단절을 나타낸다. ‘근대의 황혼기’의 빛이 근대 여명기의 빛을 닮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6, 17세기에 스피노자, 알투지우스(Johannes Althusius) 등은 주권 및 절대주의국가의 이론가들인 홉스, 보댕 등에 맞서 싸우며 대안적인 정치적 비전을 제시했다. 수 세기 동안 군주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계급들이 각자의 힘을 시험하며 충돌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하나의 중심을 가진 원이 아니라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을 형성했다. “역사적으로 피지배 사회계급들이 군주들에게 압박을 가해서 자유권들과 면제를 인정하는 법들과 문서들을 작성하게 만든 계급들이었다. 반대로 군주들이 그 사회계급들의 도전을 관리하고 다른 방식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저항을 다스리려고 하면서 그 계급들에게 가하는 자극이 타원의 윤곽을 그리는 것을 돕는 것이다.”(([원주 24] Sandro Chignola, “Che cos’e un governo?,” http://www.euronomade.info/?p=4417. Chignola borrows the image of the ellipse from Werner Naf. [정리자] 근대 이전의 정치적 구도에서 근대의 정치적 구조로의 이동과 그 차이에 대해서는 맑스가 그의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여러 번 언급한다. “정치적 계급들을 사회계급들로 변형시킨 것은 역사의 발전을 통해서이다. 기독교도들이 천국에서는 평등하지만 땅 위에서는 불평등하듯이 한 민족의 개인들은 그 정치세계의 천국에서는 평등하지만 사회의 속세적 실존에서는 불평등하다. 정치적 계급들의 사회적 계급(civil classes)으로의 실질적 변형은 절대 왕정 하에서 일어났다. 관료제가 국가 내의 다양한 신분들에 맞서 통합의 이념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왕정의 관료제와 병행하여 계급들의 사회적 차이가 정치적 차이로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 관료제 내에서의, 그것과 병행하는 정치적인 요소였다. 프랑스 혁명이 비로소 정치적 계급들의 사회적 계급으로의 변형을 완성했다. 다시 말해서 시민사회의 계급 구분을 단순한 사회적 구분―사적 삶에 속하며 정치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구분―으로 만들었다. 이로써 정치적 삶과 시민사회의 분리가 완성되었다.” “중세는 실제적 이분법의 시기이다. 근대는 추상적 이분법의 시기이다.”))

우리에게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근대 시기 유럽에서 벌어진 투쟁의 진실의 일부는 지금도 우리에게 유용하다. 우리는 근대적 주권을 반복하는 모든 지도형태에 저항해야 한다. 맞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에 알았던 것을 재발견해야 한다. 주권이 정치의 전체 영역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며 비주권적 형태의 조직 및 제도들이 강력하고 지속적일 수 있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