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 대 바이든’?

 


  • 저자  : Chris Hedges
  • 원문 :  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 (October 16, 2020)

    https://www.youtube.com/watch?v=GxSN4ip_F6M&list=TLPQMTcxMTIwMjDZLmYzc8ZbYQ&index=2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크리스 헤지스가 올해 10월 16일(대선 18일 전)에 The Sanctuary for Independent Media (in Troy, NY)에서 한 강연의 내용 가운데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주류미디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미국의 현실이 강연 내용에 많이 담겨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소개한다. 강연이 제법 길고 질의응답도 있어서 내용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몇 번으로 나누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오늘 올리는 것은 ‘트럼프 대 바이든’이라는 대립구도의 허구성이 제시되는 부분이다. 강연의 원고는 https://scheerpost.com/2020/10/19/chris-hedges-the-politics-of-cultural-despair/에서 볼 수 있다.

[유튜브 동영상 19:35 지점]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더 위험한가요? 네.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더 무능하고 더 부정직한가요? 네. 트럼프가 열린 사회에 더 위협이 되는가요? 네. 그러면 바이든이 해결책인가요? 아닙니다!

바이든은 변화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현재와 동일한 상태를 좀더 제공할 수 있을 뿐이며,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냉담과 혐오로 투표를 하지 않는 최대의 유권자층인 1억 명 이상의 시민들이 다시 한 번 투표장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3일 실시된 미국 선거에서 전체 투표자가 1억 6천만 2천 명 정도라고 하니 전체 등록유권자 2억 3천 900만 명에서 이 수를 제하면 등록유권자 가운데 대략 7900만 명이 투표하지 않은 것이 된다. 헤지스가 예상한 것보다는 투표율이 높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사기저하는 의도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증오의 대상의 반대쪽에 투표하는 것만이 허용됩니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는 미디어들은 한 집단을 다른 집단에 대립시키는데, 이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2분 증오’(the Two Minutes Hate)의 소비자 버전입니다. 미디어들은 우리의 선호와 습성에 관한 상세한 디지털 분석의 도움으로 우리의 견해들과 편견들의 구미에 능숙하게 맞추고 이것들을 강화하며, 다시 우리에게 되팝니다. 그 결과로 우리에게 ‘맞춤 분노 패키지’가 주어지게 됩니다. 대중은 조작된 분열을 가로질러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정치는 조작된 정치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싸구려 리얼리티 쇼가 됩니다. 시민들의 담론은 악담과 거짓으로 물듭니다. 그러는 사이에 권력은 문제 삼아지지 않고 도전받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두어집니다.

정치관련 보도는 스포츠 보도를 모델로 합니다. 세트는 일요일 미식축구 경기의 세트처럼 해놓았습니다. 앵커는 어느 한쪽 편이고, 각 팀에서 두 명씩, 4명의 해설자들이 나옵니다. 모니터에서는 득점이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정치적 정체성들은 쉽게 소화될 수 있는 상투형들로 환원됩니다. 전술, 전략, 이미지, 선거기부금의 월별 누적기록, 여론조사가 끝없이 검토됩니다. 진정한 정치적 이슈들은 무시됩니다. 이는 전쟁의 언어, 전쟁의 이미지입니다.

이런 종류의 보도는 두 정당이 거의 모든 주된 이슈들에 대해서 완전히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립니다. 주요 이슈들은, 금융기업의 규제완화, 무역협상, 경찰의 군사화(1990년 이래 국방부는 74억 달러 이상을 8천 개에 달하는 연방 및 국가 법집행기관들에 이전하여 군사장비와 병기를 갖추도록 했습니다), 교도소 재소자들의 폭증, 탈산업화, 긴축, 프래킹(fracking) 및 화석연료 산업 지원, 중동에서의 중단 없는 전쟁, 부풀려진 군비예산, 기업들에 의한 선거 및 매스미디어 통제, 정부에 의한 대대적인 국민감시(정부가 하루 24시간 당신을 감시하면 당신은 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으며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등입니다. 이 이슈들은 모두 양당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거의 논의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인구의 일부분을 다른 일부분과 대립시키는 것입니다. 적대를 부추기는 것이 뉴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널리즘 정신에 의해서 추동되지 않고) 시청률을 높이고 기업의 후원을 증가시키기 위한 마케팅 전략에 의해서 추동되는 엔터테인먼트입니다. 뉴스가 구현하는 분할구도는 기업수입의 흐름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입니다. 뉴스에 사용되는 틀은 프로레슬링에서 사용되는 단순화된 도덕극입니다. 미국에는 트럼프를 좋아하느냐 증오하느냐라는 두 개의 실질적 정치적 입장만이 존재합니다. 이것이 프로레슬링의 각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이든과 민주당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트럼프가 싫어서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더라도] 무언가를 지지하며 던지는 셈이 됩니다. 바이든에게 표를 던진다면 당신은

  • 자신을 학대한 자들에게 맞섰던 애니타 힐(Anita Hill) 같은 용기 있는 여성들의 굴욕을 승인하는 셈이 됩니다.
  • 중동에서 중단 없는 전쟁을 기획한 자들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인종분리적인 이스라엘 국가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정부의 정보기관에 의한 대중의 대대적 감시를 그리고 적정절차(due process) 및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의 폐지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복지의 파괴와 사회안전의 삭감을 포함한 긴축 프로그램들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나프타, 탈산업화, 임금의 실질적 감소, 제조업 분야 일자리들 수십만 개의 상실, 멕시코, 중국, 월남 등 낮은 보수를 받으며 착취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로의 일자리 이전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교사들 및 공공교육에 대한 공격과 연방기금의 영리적인 기독교 차터스쿨들(charter schools)로의 이전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교도소 재소자의 수가 두 배로 늘고 형의 선고가 세배, 네 배로 증가하는 데, 그리고 사형에 처해질 범죄들이 크게 확대하는 데 표를 던지는 셈이 됩니다.
  • 유색인이 대부분인 가난한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군대화된 경찰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그린뉴딜과 이민법개혁에 반대하는 셈이 됩니다.
  • 프래킹[수압파쇄법] 산업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낙태와 재생산권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부유층이 교육의 기회를 받고 가난한 유색인들은 기회를 거부당하는, 차별적인 공립학교시스템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기혹한 수준의 학자금대출금과 파산을 하더라도 그 부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은행업의 규제완화와 글래스-스티칼(Glass-Steagall)법의 폐지를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정리자―글래스-스티갈 법은 1933년 제정된 미국의 은행법 중에서 4개 항목을 가리키는 것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은행업과 증권업의 분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영리적인 보험업과 제약기업들을 찬성하고 보편적 건강보장을 반대하는 셈이 됩니다.
  • 모든 재량지출(discretionary spending)[정리자―행정부와 의회가 재량권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심사할 수 있는 지출]의 반 이상을 잡아먹는 국방예산을 찬성하는 셈이 됩니다.
  • 과두세력과 기업이 돈으로 우리의 선거를 사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 됩니다.
  • 상원의원으로 활동할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 신용카드회사이며 바이든의 아들 헌터(Hunter)를 고용한 MBNA의 이익에 비열하게 복무했던 정치가에게 표를 던지는 것입니다.

바이든은 중동에서의 전쟁들을 기획한 주요 인물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는 7조 달러 이상을 낭비했으며 수백만 명의 삶의 파괴하거나 멸절시켰습니다. 바이든은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트럼프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죽음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제대로 기능하는 사법 및 입법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바이든은 제국전쟁과 기업에 의한 나라의 약탈을 기획하고 미국 노동계급을 배반한 죄목으로 (다른 공범자들과 함께) 법정에 세워졌을 것이지 이렇게 정치적·경제적 붕괴의 해결자로서 내세워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민주당과 이 당을 옹호하는 지유주의자들은 인종, 종교, 이민, 여성의 권리, 성정체성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관용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것이 그들의 정치인 척합니다. 그런데 이 이슈들은 집단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윤리적인 이슈들입니다. 이것들은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슈들이 아닙니다. 빌 클린턴과 민주당이 가령 예전의 복지제도를 파괴했을 때 전지구적 투기자들과 기업들로 구성된 계급이 경제의 통제권을 장악하여 민주당이 응원하는 척하는 바로 그 집단들의 삶을 파멸시켰습니다. 그 복지제도의 수혜자의 70%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오른쪽에 있는 자들은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악마화하여 희생시킵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민주당은 그 입장대로라면 유럽에서는 극우당의 되리라는 점입니다.) 문화전쟁이 현실을 가립니다. 두 당은 우리의 민주적 제도들을 파괴하는 데서 완전히 한패입니다. 두 당은 미국 사회를 마피아 국가로 재편성했습니다.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민주당, 2019년부터 연방 하원의장), 척 슈머(Chuck Schumer, 2016년부터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Mitch McConnell, 2007년부터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같은 정치가들의 힘은 기업의 돈을 선발된 후보자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데서 나옵니다. 제대로 기능하는 정치체제, 즉 기업의 돈이 퍼부어지지 않는 체제에서라면 이들은 권력을 잡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공통체’(commonwealth), ‘공공적인 것’(res publica)라고 부른 것, 혹은 민중의 재산을 전지구적 기업 과두세력을 위한 약탈과 억압의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부를 약탈하고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으며 사법부, 미디어, 입법부를 왜곡시킨, 그리하여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고 금융 사기와 절도에 가담할 자유를 확보한, 부유하고 전능한 주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노예들입니다.

팬데믹의 와중에서 우리의 도둑정치가들이 한 짓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오바마와 바이든이 주관한 2008년 구제금융 이래 유례없는 규모인 4조 달러를 약탈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를 희생시켜 실컷 먹고 배를 불리고는, 남은 부스러기들을 개인용 제트기, 요트, 고급아파트, 궁전 같은 저택의 창문 바깥으로 고통 받고 경멸 받는 대중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지원금이나 세금삭감의 형태로 석유회사들, 항공산업체들(이들만 500억 달러를 경기부양금으로 받았습니다), 유람선업체들에게 수조 달러를 건네주었으며, 부동산업체들에게 1700억 달러를 안겨주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사모펀드, 로비그룹들(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정치가들에게 선거기부금으로 1억9100만 달러를 주었습니다), 정육업체들 그리고 미국에서 세금을 나내지 않기 위해서 해외로 이전한 기업들에게도 지원금을 주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소기업들을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시켜는 데 쓰여야 할 돈을 가장 큰 기업들이 집어삼키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법안은 경기부양 패키지 하에서 백만장자들에게 80%의 세금삭감 혜택을 주었으며 가장 부유한 자들이 평균 170만 달러에 해당하는 경기부양금을 받도록 허용했습니다. 경기부양법안은 또한 4540억 달러가 재무부의 환율안정기금에 할당했는데, 이는 트럼프 패거리들이 기업들에게 나누어준 막대한 비자금으로서 10대 1의 비율로 차입을 한다면 4조5천억 달러의 자산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이 법안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월가에 1조5천억 달러의 대출을 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이 돈이 상환될 것이라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들은 팬데믹 이후 4340억 달러만큼 더 부유해졌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제프 베조스(그의 기업인 아마존은 지난해에 연방소득세를 하나도 내지 않았습니다) 혼자만 팬데믹 이후 자신의 부에 거의 720억 달러를 추가했습니다. 동일한 기간에 5500만 명의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정리자―강연 원고가 실린 사이트에 가보면 이 단락의 주요 항목마다 해당 자료로 가는 링크가 걸려있다.]

[34:00]




미국은 이제 시체다

 


  • 저자  : Chris Hedges
  • 원문 : America Is Now a Corpse (2020년 11월 5일)  https://www.commondreams.org/views/2020/11/05/america-now-corp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크리스 헤지스가 Common Dreams에 실은 2020년 11월 5일자 글 “America Is Now a Corpse”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어조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첫 단락만 번역이다.) 여기서도 헤지스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주류 혹은 준주류 미디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그는 ‘미국 제국 몰락의 예언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 현실의 어두운 측면을 지적하는 데 집중한다. 그 이유는 미국의 제도화된 체제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희망이 어디에도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운동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 (Chris Hedges: Revolutions Only Happen Through Movements 참조) 다만 미국이 새로운 주체성을 구성하는 시민들의 운동의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진국이라는 점―달리 말하자면 그 동안 신자유주의가 사회에 파고든 정도가 미국에서 매우 높았다는 점―이 그로 하여금 부정적 현실(제도화된 기성 체제)의 비판에 치중하게 만든 듯하다. 긍정적인 움직임이 왕성한 곳에서라면 부정적인 측면의 비판에 과도하게 집중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분단 상황에서 수십 년 동안 어둠 속을 기고 기어서 비로소 수많은 촛불들이 삶을 밝히는 곳에 도달한 우리로서는 헤지스가 대변하는, 미국 민중이 처한 상황이 잘 이해되고 또 그렇기에 안타깝다. 그러나 혹시 모른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제도 영역에서 일어날 변화를 짚어보느라고 바쁠 일반 미디어들로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고 보려고도 않는 저 아래의 영역에서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미국 민중의 주체성 형성의 새로운 큰 흐름이, 그 큰 흐름의 맹아가 형성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항상 그렇듯이 아래로부터 보는 것이 중요하며 길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이제 시체다

 

“끝났다. 선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capitalist democracy)가 끝났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비록 부유층의 이익을 위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고 빈자와 소수자에게 적대적이지만, 적어도 점진적이고 점증적인 개혁의 가능성을 제공하기는 했다. 이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시체가 되었다. 상징과 수사(修辭)는 동일하다. 그러나 그 실체는 소수의 과두세력이 자금을 지원하는 공들인, 그러나 공허한 ‘리얼리티 쇼’이다. (바이든은 선거운동에 15억1천만 달러를 들였고 트럼프는 15억7천만 달러를 들였다.) 그 목적은 미국인들에게 마치 선택지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택지는 없다. 장광설을 늘어놓는 트럼프와 언어 능력에 손상을 입은 바이든 사이의 공허한 대결은 진실을 가리도록 계획된 것이다. 과두세력이 항상 이긴다. 민중은 항상 진다. 백악관에 누가 앉아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는 실패한 국가이다.”

미국의 ‘열린사회’를 살해한 세력들은 다음과 같다.
① 선거과정, 법원, 미디어를 사들인 기업과두집단(corporate oligarchs). 이들은 로비스트들을 통해 입법을 하여 미국 민중을 빈곤하게 만들고 자신들은 부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을 얻고 있다.
② 쓸모없는 부단한 전쟁을 위해 국고를 탕진한 군사주의자들과 전쟁산업체들. 이들은 약 7조 달러를 탕진했으며 미국인들을 국제적 천민으로 만들었다.
③ 상여금과 보상 패키지를 수억 달러씩 받으며 일자리들을 해외로 보내고 우리의 도시를 폐허로 만들며 노동자들을 (지속적인 소득과 희망이 없는) 비참과 절망의 상태에 빠뜨려 놓은 CEO들.
④ 과학과 전쟁을 벌이며 인류가 멸종하든 말든 이윤을 추구하는 화석연료 산업체들.
⑤ 뉴스를 생각 없는 오락과 우리 당 응원하기로 바꾼 언론.
⑥ 대학으로 물러나서 정체성 정치와 다문화주의의 도덕적 절대성을 설교하지만, 다른 한편 노동계급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경제전쟁과 시민들의 자유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공격에는 등을 돌린 지식인들.
⑦ 아무 것도 안 하고 말, 말, 말만 해대는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자유주의 계층(liberal class).

가장 큰 경멸의 대상은 자유주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사회의 도덕적 중재자를 자처하지만 자신들이 수호한다는 가치를 그것이 불편해지는 순간 저버린다. 또한 자유주의 계층은 유럽에서라면 극우로 간주될 후보자와 정당의 치어리더들이며 검열자 기능을 한다. 자유주의자들은 바이든에 의해서 그리고 민주당 고위층에 의해서 조롱당하고 무시당하면서도, 바이든과 민주당을 비판한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 같은 저널리스트들을 소외시키느라고 바빴다. 『인터셉트』(The Intercept)든 『뉴욕타임즈』든 자유주의자들은 민주당을 해칠 수 있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그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민주당과 그 자유주의적 지지자들은 미국을 휩쓸고 있는 절망을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다. 이들은 아무 것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어느 것을 위해서도 싸우지 않는다. 법치의 복원, 보편적 건강보장, 프랙킹 금지, 그린뉴딜, 시민의 자유의 보호, 노조의 구축, 사회적 복지 프로그램의 보존 및 확장, 철거와 가압류의 금지, 학자금대출금의 탕감, 엄격한 환경통제, 정부일자리창출 프로그램 및 기본소득, 금융규제, 부단한 전쟁과 군사적 모험주의에의 반대―이 모든 것들이 다시 한 번 망각되었다. 이런 이슈들을 옹호했다면 민주당은 산사태를 겪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정치자금을 공급하는 기업들에게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공동선을 키우고 기업의 이윤을 감소시키며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불가능하다. 바이든은 아이디어들과 정책 이슈들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 마치 그와 민주당이 아메리카의 영혼을 구한다는 약속으로 선거를 휩쓸 수 있다는 듯이. 적어도 신파시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신착란적 확신들을 표현하는 용기라도 있다.

전통적 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 계층은 점진적 개혁을 가능하게 하고 자본주의의 최악의 과잉을 개선함으로써 안전밸브 역할을 한다. 그러나 또한 급진적 사회운동을 불신의 대상으로 만드는 공격견 역할도 한다. 자유주의 계층은 ‘파워 엘리트’의 강력한 구성요소이다. 변화의 희망과 가능성을 아니면 적어도 변화의 환상을 제공한다.

자유주의 엘리트들의 독재에의 투항이 권력 공백을 창출했고 그 공백을 투기자들, 전쟁으로 이익을 얻어내는 자들, 갱스터들, 킬러들이 채웠다. 이로 인해 파시스트 운동을 위한 문이 열렸고 이 운동은 자유주의 계층과 그들의 가치들의 불합리함을 조롱하면서 부각되었다. 파시스트들이 약속하는 바는 허황되고 비현실적이지만, 자유주의 계층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진실에 근거를 둔다. 자유주의 계층이 일단 기능하기를 그치면 억제하기 어려운 악들이 들어있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

트럼프주의의 질병은 트럼프가 있든 없든 정치체 안에 깊이 함입되어 있다. 트럼프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이 ‘개탄스러운 자들’(deplorables)이라고 조롱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가진 소외감과 분노의 표현이다. 이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획책한 것인데 이들은 이제 이 문제를 다루기를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주의는 또한 백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백인들의 트럼프 지지는 실제로 감소하였다.

19세기 말 도스또옙스끼는 러시아의 쓸모없는 자유주의 계층의 행위가 피와 테러의 시기를 예고한다고 보았다. 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지지한 이상들을 지키지 못하자 불가피하게 도덕적 허무주의의 시대가 왔다. 『지하 생활자의 수기』의 주인공은 파산한 자유주의 이념들을 그 논리적 극단까지 몰고 간다. 그는 열정과 도덕적 목적을 피한다. 그는 합리적이다. 그는 자유주의적 이념들의 이름으로 부패하고 죽어가는 권력구조를 수용한다. 지하생활자의 위선이 러시아로 하여금 파멸을 맞게 했다면, 이제 그 위선이 미국을 멸망케 한다. 신념과 행동 사이의 치명적 분리가 핵심이다.

자유주의 계층은 기업이 권력을 시민들의 손에서 탈취했음을, 헌법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이 법의 명령에 의해 철회되었음을, 선거는 엘리트 지배집단이 연출하는 공허한 스펙터클에 불과함을, 미국 민중이 계급전쟁에서 지고 있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기에 더는 현실에 상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한다.

대중은 지배자가 효과적으로 권력을 관리하고 발휘하는 한에서는 정치적 억압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풍부한 사례로써 보여준 것은, 일단 권력자들이 잉여적이 되고 무능력한데도 권력의 치장물들과 특권들을 틀어쥐고 있다면 무자비하게 폐기된다는 사실이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도 그랬다. 내[헤지스]가 『뉴욕타임스』에서 취재한, 이전의 유고슬라비아의 갈등에서도 그랬다.

독일 역사가 슈테른(Fritz Stern)은 그의 책 『문화적 절망의 정치』(The Politics of Cultural Despair)에서 독일에서의 파시즘의 상승은 자유주의의 붕괴의 결과라고 썼다. 사회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이 폭력, 문화적 증오, 개인적 원한에 중심을 둔 정치에 동원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노의 많은 부분은 정당하게도 자유주의적 엘리트들을 향해 있다.

그들은 자유주의가 근대 사회―부르주아적 삶, 맨체스터주의[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사회정치적·경제적 운동=자유방임주의], 물질주의, 의회, 당.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의 주요 전제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공격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유주의에서 그들의 모든 내적 고통의 원천을 본다. 그들은 자유주의가 그들을 상상적인 과거로부터, 그들의 신앙으로부터 뿌리뽑았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증오했다.

미국이 지금 그런 상태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건강관리제도는 국가적 보건위기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건강관리 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종합병원들을 합병하고 폐쇄했으며 지역 공동체들에서 건강관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했다. 일선 노동자들의 거의 반이 병가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고 약 4천3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고용주 제공 건강보험을 잃었다. 바이든과 민주당이 확립할 의도가 전혀 없는 ‘보편적 건강보장’이 없이는 팬데믹이 극성을 부릴 것이다. 12월까지 30만 명이 사망할 것이며 1월까지는 40만 명이 사망할 것이다. 팬데믹이 소진되거나 백신이 확보될 때쯤이면 어쩌면 수백만 명이 사망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팬데믹의 경제적 낙진인, 만성적 불완전고용과 실업—현재 직업을 구하기를 멈춘 사람, 일시해고되었으나 재고용될 전망이 없는 사람, 시간제로 일하지만 빈곤선 아래인 사람이 공식적 통계에 포함되면 20%에 가깝다—은 1930년대 이래 최악의 불황을 낳을 것이다. 기아자의 수는 지난 해 이후 이미 세 배로 증가했다. 충분히 먹지 못하는 아이들의  수는 지난해보다 14배 늘었다. 푸드뱅크들의 식사 제공 능력은 수요를 쫓아가지 못했으며 압류와 철거의 일시적 정지가 취소되어 3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거리에 쫓겨나게 생겼다.

기업권력을 견제할 힘은 어디에도 없다. 불가피한 사회적 소요로 인해 국가는 그 주된 사회적 통제도구들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① 대대적 감시 ② 감옥 ③ 군대화된 경찰이 그 도구들이며 이것을 법체계가 지탱하고 있다. 법체계는 비판세력을 잔인하게 짓밟기 위해 인신보호영장과 적정 절차를 취소하기 일쑤다. 유색인들, 이주자들, 무슬림들은 토박이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비난받고 공격의 표적이 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항하여 기업국가(corporate state)와 제국의 범죄들을 비판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침묵을 강요받을 것이다. 자신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민주당의 이익에 복무하는 자유주의 계층의 무기력함은 널리 퍼진 배반감―바로 이 배반감으로 인해 투표자들의 거의 반수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저속하고 인종주의적이며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는 것이다ㅡ 에 땔감을 공급할 것이다. 기독교화된 파시즘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치장하고 있는 미국식 전제정치가 한 시기의 획을 긋는 미국 제국의 쇠퇴를 규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리 후기]

‘시체’의 이미지는 이미 로런스(D. H. Lawrence)가 『미국 고전문학 연구』(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 1923)에서 사용한 바 있다. 로런스는 『모비 딕』(Moby Dick, 1851)의 피쿼드호가 침몰한 이후의 미국을 가설적으로 ‘사후효과’(post-mortem effect)로 본다. 피쿼드는 미국의 영혼의 배이므로 피쿼드호의 침몰은 영혼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면 된다. 로런스에게서 사후효과란 사람들이 영혼이 없이도 에고(ego)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로런스는 ‘에고’를 ‘자아’(self)와는 달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종획당한 자아, 즉 담이 둘러쳐진 자아라고 이해하면 된다. ‘종획된 자아’의 이미지는 소유적 개인주의의 본국인 미국에 매우 적절하다. 그러나 로런스는 미국의 부정적 측면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가령 휘트먼에게서 ‘열린 길’(open road)이 제시되고 있음을 짚어낸다. ‘열린 길’은 미지(未知)로 향해있다. 영혼들이 미지로 향하는 이 ‘열린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삶이다. 삶에는 미리 정해진 성취될 목적이 따로 없고 여정(旅程)만이 있다. ‘열린 길’에서는 남녀관계든 동료관계든 사회적 관계든 오직 영혼의 인정에 기반을 둔다. 영혼들이 유일한 부(富)이다. 이러한 측면이 앞으로 미국에서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제도만을 보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도란 끊임없이 개선되지 않는 한 사후효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도의 바깥을 보고 제도의 아래를 봐야 한다. ‘열린 길’이라는 형태의 커먼즈가 어렴풋게나마 미국에서 형성되고 있는지를 포착하려면···.




몰락하고 있는 미국 제국과 대통령 선거

 


설명 : 

아래는 비영리 미디어인 Democracy At Work의 울프가 크리스 헤지스와 인터뷰한 것(유튜브에 올려져있다)의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 목적은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아래로부터 바라보는 시각 하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크리스 헤지스는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해외특파원으로 15년 동안(1995-2005) 활동했으며 2001년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기사로 2002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으며 이 일로 <뉴욕 타임스>를 떠났다. 이후 뉴스 웹사이트인 <트루스딕>(Truthdig)의 칼럼니스트가 되었는데 14년 동안 활동한 후 2020년에 모든 편집진과 함께 해고되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 반대 이후 미국의 주류 미디어에서 따돌림을 당한 것으로 보이며 주로 대안미디어에 나와서 자신의 견해를 펴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제국의 몰락이 주된 주제이다. 계속 저서를 집필해왔는데, 2010년 이후의 것만 꼽자면 Death of the Liberal Class (2010), Days of Destruction, Days of Revolt (2012), Wages of Rebellion: The Moral Imperative of Revolt (2015), America: The Farewell Tour (2018)이 있으며 지금도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  America: The Farewell Tour 는 『미국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그의 급진주의는 흥미롭게도 종교에 입각해 있는데(그는 장로교 목사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맑스를 자본주의의 주요한 비판자로서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서는 2015년의 <좌파 포럼>(Left Forum) 발제문 「맑스가 옳았다」(“Karl Marx Was Right”)를 참조하면 되는데, 그 두 대목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맑스는 혁신하고 적응하는 자본주의의 능력을 예리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자본주의적 확장이 영속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대단원과 글로벌리즘의 해체를 목격하고 있기에, 칼 맑스는 자본주의의 가장 예지력 있고 중요한 비판자로서 옹호되어야 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자신의 내부에 자신의 파괴의 씨앗을 심어놓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들―가령 신자유주의―이 창출되어 엘리트 층, 특히 경제적 엘리트 층의 이익에 복무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맑스의 통찰들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특기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맑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맑스의 통찰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현실을 분석하는 데 이렇게 긴요하고 실질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The Declining Empire With Chris Hedges

[앞부분 생략]

WOLFF
당신이 말한 모든 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이지만, 저 위의 정부는 올해 3월 팬데믹 위기의 늪에서 회복하여 상승하는 증권시장을 찬양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부의 더 나아간 축적에 취해서 주위의 현실에 대한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고전적인 ‘붕괴하는 제국의 지배계급’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인가요? 이들은 모두에게서 훔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느라고 바쁜 것인가요?

HEDGES
그렇습니다. 그것은 죽어가는 문명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엘리트 층은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금융과 정치체제를 모두 통제하는 과두세력이 미국에서 살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창출한 거품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이를 ‘Richistan’이라고 부릅니다.[Robert Frank, Richistan: A Journey Through the American Wealth Boom and the Lives of the New Rich] 이들은 일반 여객기를 타지 않고 노동계급과 접촉하지도 않으며 오직 적은 수의 엘리트들하고만 어울립니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의 한 기사는 미국 직장에서의 생산성이 1973년 이래 77% 증가했지만, 시간당 임금은 겨우 12% 올랐다는 점을 짚은 바 있습니다. 연방 최저임금이 생산성과 연동된다면 시간당 20달러가 넘으리라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팬데믹 이전의 일입니다) 시간당 12달러 이하를 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주가 후원하는 건강보험에 접근하지 못하며, 현재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줄고 있습니다. 직장을 잃은 2천7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건강보험도 잃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탐욕스러운 전지구적 엘리트층의 공격이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습니다. 팬데믹은 증권시장을 부풀리고 억만장자 층의 은행계좌를 부풀렸습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본 수치로는, 이들의 부가 5천억 달러 증가했습니다. 가령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가장 최근에 본 수치로는) 자신의 부를 3백억 달러 증가시켰습니다. 선거에 돈이 퍼부어지기 때문에, 로비스트들이 우리의 법을 작정하기 때문에, 법원이 기업들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에, 시민들을 구제하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기업들이 세금 거부에 참여하는 체제를 창출했습니다. 아마존은 지난 해애 그 어떤 연방 세금도 내지 않았습니다. 사실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아마존만이 아닙니다. 뱅크 오프 아메리카도 그렇고 다른 여러 곳도 그렇습니다. 제지를 받지 않고 계속됩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맑스는 자본주의를 궁극적으로 혁명적 힘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약탈과 탐욕에는 내적 제지도, 외적 제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매우, 매우 무서운 사회적·정치적 귀결을 낳고 있으며 그 귀결들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WOLFF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미국 제국의 몰락이라는 시나리오에 이번 선거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HEDGES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선거의 문제는 중요한 사안들이 개별 인물들의 대결구도로 환원된다는 점에 있고 이번 선거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싫기 때문에 바이든에게 표를 던지는 것입니다. 바이든 개인은 우리를 이 지경에 빠뜨린 상황의 연속 말고는 다른 어떤 것을 창출할 수도 없고 제공할 수도 없습니다. 바이든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부단한 전쟁’이라는 판을 구축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투표가 트럼프에 반대하는 측면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신은 트럼프에 반대하지만, 바이든을 뽑게 됩니다. 1994년의 Violent Crime Control and Law Enforcement Act(폭력범죄통제 및 단속법)를 바이든이 밀어붙였는데 이 법은 300억 달러 이상을 경찰과 감옥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바이든은 모든 사형 이슈들을 밀어붙였고, 나프타(NAFTA)의 구축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전쟁 지지자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과거[1991년]로 한참 거슬러 올라가서 힐(Anita Hill)에 불리하게 청문회를 진행한 데서 그의 여성혐오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분리주의자였으며 사회보장제도를 공격할 것을 여러 번 요구했습니다. 이런 미국의 정치체제에서는 골드만삭스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 공손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을 한 바이든을 뽑든 아니면 자기도취적이고 분열을 조장하며 인종주의적인 말을 해대는 트럼프를 뽑든 기업 권력의 체제는 실제로 하나도 건드려지지 않습니다.

WOLFF
트럼프 대 바이든이라는 구도 역시 몰락하는 제국의 징후라는 것이죠? 이런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가진 최선의 방책이 겨우 이 구도라는 점이요?

HEDGES
당연히 그렇습니다. 바이든은 민주당 과두세력 엘리트층이 선발한 사람임을 분명히 합시다. 골드만삭스의 전 CEO인 블래크파인(Lloyd Blankfein)과 같은 인물들은, 만일 샌더스가 (워런Warren도 해당되지만 특히 샌더스가) 후보로 지명되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질 것임을 공표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덜 악한 자’를 뽑는다는 것은 당신과 나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조 바이든을 후보로 내세운 것은 바이든이 트럼프처럼 그들의 이익에 복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경제적 체계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선거가 해결책이 아닌 것은, 민주당이 (클린턴이 기업 세력에게 팔려 넘어간 이후로) 시행한 것과 같은 정책들이 계속된다면 두뇌를 가진 파시스트, 능력 있는 파시스트가 나올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이를 입증할 것입니다.)

WOLFF
그럼 진행되고 있는 긍정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공화당, 민주당 등등이 표시한 길들 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은 어디에 있나요?

HEDGES
거리의 항의 시위들입니다. 유색인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한 살해에 의해 촉발된 이 시위들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본 것은 성숙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시위들은 펠로시(Nancy Pelosi)가 가나의 켄테 천으로 짠 스카프를 매고 있다거나 경찰들이 한쪽 무릎을 꿇는다거나 브라우어(Muriel Brower, 워싱턴 시장)가 백악관 앞에 35피트의 큰 글자로 “Black Lives Matter”라고 썼다고 해서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브라우어는 그러는 한편으로 경찰예산의 4천5백만 달러 증가와 5억 달러에 상당하는 새 감옥의 건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엘리트층, 특히 민주당의 그런 식의 조작이 시위자들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어떤 희망이든 지속적인 대중의 시민불복종에서, 세계 전역에서 (레바논, 칠레, 기타 모든 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바와 같은 봉기들에서 옵니다. 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해결할 문제들이 체제 차원의 문제들임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들은 트럼프나 바이든 같은 개별 정치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트럼프와 냉전 2.0



트럼프 대통령은, 만일 중국이 6월 29-30일에 일본에서 열리는 G20 회의에서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관세전쟁과 중국의 수출 및 기술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완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시진핑 주석을 협박했다.

중국 지도자들과 미국 지도자들 사이의 만남이 실제로 일어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질적 협상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런 만남은 정상적인 경우 미리 계획된다. 전문화된 공무원들이 함께 작업을 해서 국가의 정상들에 의해 발표될 합의안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준비가 있어본 적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다.

그는 협박으로 협상을 개시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으며 혹시 그에게 공짜로 생기는 것이 있을지 모른다(적어도 그는 모른다). 미국이 바라는 것을 충실하게 따르기로 동의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미국은 그 나라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협박 내용이다. 그런데 현재의 경우에는 바라는 것이 매우 비현실적이어서 미디어도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곤란해 한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항복하라는, 그 어떤 나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에서는 무역전쟁인 듯이 보이는 것이 본격적인 냉전 2.0이다.

미국이 바라는 것: 다른 나라들의 신자유주의적 굴종

걸려있는 것은, 중국이 과연 러시아가 1990년대에 했던 것―즉 옐친 같은 신자유주의적 계획자 역할을 할 꼭두각시를 세워서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정부로부터 미국의 금융 부문과 그 계획자들에게로 이전시키는 것―을 하는 데 동의할 것인가 아닌가이다. 그래서 실제로 싸움은 중국과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이 어떤 종류의 계획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다. 더 제고된 번영을 가져올 정부들에 의한 계획인가 아니면 수익을 추출하고 긴축을 부과할 금융 부문에 의한 계획인가?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수출농산물, 미국의 석유(혹은 미국 대기업들과 그 연합세력이 통제하는 나라들의 석유), 정보, 군사기술에 의존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런 무역의존성으로 인해 미국 전략가들은 미국의 요구에 저항하는 나라들에게 제재를 부과하여 기본적인 식량, 에너지, 통신 그리고 교체용 부품들을 그 나라의 경제로부터 박탈할 수 있게 된다.

그 목적은 전지구적 자원에 대한 금융적 통제력을 획득하고, 무역 ‘파트너들’로 하여금 미국이 지적 재산에 대한 독점가격책정‘권’을 향유하는 생산품들에 대해 이자, 사용료 및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무역전쟁이 노리는 것은 미국이 통제하는 식량, 석유, 은행업 및 금융, 혹은 첨단기술 재화에 다른 나라들이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굴복할 때까지 긴축과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트럼프에게 승리를 기꺼이 양보할 중국

협박 자체에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지만, 만일 트럼프가 이 협박을 밀어붙여서 중국에 부과할 관세로 인해 생활비용과 사업비용이 증가한다면 그는 선거 시에 농업경영자들, 월가, 증권시장, 월마트 그리고 IT 부문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그의 외교적 협박은 실제로는 만일 중국이 순순히 따르지 않는다면 미국의 수입업자들과 투자자들에게 제재를 부과함으로써 미국 자신의 경제의 목을 베게 되는 그러한 협박이다.

중국의 응답이 어떨지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은 물러서서 미국이 자멸하도록 놔둘 것이다. 중국의 협상자들은 중국이 어떻든 계획했던 것을 매우 기꺼이 ‘제공할’ 것이며 트럼프가 그것이 자신이 얻은 ‘양보’라고 떠들어대도록 놔둘 것이다.

내 생각에는 시진핑이 제공할 큰 사탕이 중국에게 있다.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지명할 수 있다. 우리는 오바마가 가진 것을 그도 원한다는 것을 안다. 그가 더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어떻든 그는 유라시아를 결속시키는 것을 돕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를 이웃 나라들과 연합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으며 유럽에 손을 뻗고 있다.

트럼프는 이 말에 들어있는 아이러니를 깨닫기에는 너무 자기도취적일지도 모른다. 아시아와 유럽이 무역·금융·식량·IT에서 미국의 제재 위협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촉매가 되면 미국은 앞으로 출현할 다자주의 세계에서 고립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옐친에게 (그리고 러시아의 또 하나의 옐친에게) 바라는 것

좋은 외교관은 ‘No’가 대답일 수밖에 없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 중국이 그 혼합 경제를 해체하고 자국의 경제를 미국이나 기타 전지구적 투자자들에게 내놓을 가능성은 결코 없다. 미국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교육·도로·통신 및 기타 기본적인 기반시설에의 집중적 공공 부문 지원을 함으로써 세계 산업에서 우월한 위치를 점하는 데 성공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오늘날의 사유화되고 금융화되었으며 ‘새처화’된 경제는 고비용 비효율 경제이다.

그런데 미국의 관리들은 중국의 어떤 신자유주의적 관리나 ‘자유시장’당을 밀어줘서 옐친과 그의 미국 조언자들이 러시아에 끼친 것과 같은 피해를 중국에 끼칠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서로 이득을 보는’ 합의란, 중국이 독립적인 경쟁자가 아니라 미국의 금융 및 무역 위성국가가 되는 데 동의하는 한 성장을 허용받는 그런 합의이다.

트럼프는, 한때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으나 지금은 미국과 유럽의 많은 곳에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파괴된 바로 그 경제전략을 다른 나라들이 쫓는다는 이유로 떼를 쓰고 있다. 미국의 협상자들은 미국이 산업 경쟁에서의 우위를 잃고 고비용의 자산소득자(rentier) 경제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미국의 GDP는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자산소득, 이윤 및 자본이득으로 주로 구성되는 ‘텅 빈’ 것이다. 미국의 기반시설은 쇠퇴하고 있고 노동은 시간제 ‘긱’ 경제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무역 협박이 발하는 효과는 경제적으로 자립적이 되려는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가속시키는 것이 될 수 있을 뿐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2016년 미국 대선


  • 저자  :  Michael Hudson, Ross Ashcroft
  • 원문 : (대담)  Prof. Michael Hudson on Hillary Clinton and the US Elections (2016. 10. 27)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주제로 한, 미국 경제학자 허드슨(Michael Hudson)과 레니게이든(Renegades Inc.)의 애쉬크로프트(Ross Ashcroft)의 대담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대담은 선거 약 열흘 전에 있었다.

애쉬크로프트

두 명의 대선 후보 가운데 하나[힐러리 클린턴]는 월가, 특히 골드만삭스와 매우 친하고 다른 하나[트럼프]는 주요한 불로소득사냥꾼(rent-seeker)입니다. 둘 다 근본적으로 월가와 결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것을 알죠?

허드슨

제 생각에 힐러리는 반대율이 79% 반대이고 트럼프는 81%입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두 사람이 대선에서 붙은 것이죠. 미국인들은 ‘yes’, ‘yes, please’, ‘yes, thank you’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월가에 세금을 삭감해주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자신이 몇 번 파산을 해봐서 은행을 다루는 법은 알므로 자기를 뽑아달라고 했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한 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동의하면서] 선거전략가가 되셨어야 했네요.

허드슨

다만 트럼프를 위해서 일했다면 나에게 친구들이 별로 없을 것이고, 그가 오늘 나에게 동의해도 내일 어떨지는 알 수 없겠죠. 그것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그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정당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애쉬크로프트

그래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더 낫다고 보시는 거죠? 그가 그런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요. 그가 똑똑하거나 영향력이 있는 유형이 아니라서요. 대통령직이 워낙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요.

허드슨

힐러리도 트럼프도 선거의 관건은 ‘차악’(the lesser evil)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더 큰 악일까요? 힐러리의 뒤에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련에 군사적으로 적대적인 네오콘들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누굴 임명해야 할지, 그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미국의 방향이 군사적 적대에 기반을 두고 일극적 세계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덜한 후보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가 그런 ‘덜 악한’ 후보입니다. 그는 나르시시스트이고 정말이지 백지상태 같은 후보입니다. 차라리 뭐를 할지 모르는 후보를 뽑는 게 낫지요. 힐러리가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이미 알잖아요. 그녀는 남편이 한 일을 이어서 할 것인데, 이 부부는 민주당을 타락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그녀에게 맞선 지점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버니는 매우 잘 했죠?

허드슨

매우 잘 했죠. 그런데 그는 민주당이 월가와 루빈 패거리―이들은 정말로 마피아 같습니다―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되는 한에서는 노동조합이나 소비자들 혹은 99%에 의한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은행가 가운데 한 명도 감옥에 가는 일 없이 수십억 달러의 돈을 과징금으로 냈는데, 그것이 바로 범죄자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범죄자들이 사법체계를 장악하고 경찰력을 장악하여 판사들에게 뇌물을 먹이면 (1930년대에 헐리우드 영화들을 다 그랬죠), 그러면 범죄자들이 통제하는 것이 되고 금융 부문이 범죄화되는 것입니다. 나의 동료 빌 블랙(Bill Black, 캔자스시티 대학)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거대 은행들(시티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의 사업계획은 사기(fraud)라는 것을요. 사람들은 사기가 은행업의 관건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증거가 명백한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죠.

애쉬크로프트

힐러리는 어떤 종류의 대통령이 될까요?

허드슨

독재자요. 네오콘들을 국무부장관에, 국방부에 임명하면서 적을 응징하는 원한에 찬 독재자가 될 겁니다. 월가 사람들을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 기용할 것이고, 아주 명시적인 계급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버핏(Warren Buffet)이 “계급 전쟁이 존재하며,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고 말한 바와 같아요.

애쉬크로프트

1%가 이기고 있다는 것이죠?

허드슨

그렇습니다. 그녀는 ‘국민 여러분, 여기는 볼 것이 없으니 계속 갑시다’라는 수사를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제는 계속 망가지고 그녀는 늘 그랬듯이 더욱 많은 이득을 올리고 더욱더 부유해지겠죠. 만일 그녀가 대통령이 된다면 클린턴재단의 범죄적 이해관계충돌(대가성 기부)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클린턴 부부에게 돈을 대준 기업들이 정책에 관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가를 살 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책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지금 선거와 정치는 사유화되고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의 시민연합(Citizens United) 대 연방선거위원회(FEC) 건의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또 하나의 불로소득사냥 사례이군요?

허드슨

네, 정치 헌금, 그것이 가장 큰 불로소득사냥이지요. 기본적으로 1센트를 내면 1달러 가치를 가진 특권을 얻습니다. ‘rent’[불로소득>금리>지대]는 기본적으로 특권에 대한 지불입니다. 민간부문에서 창출된 특권에 대한 지불입니다. 발자끄(Balzac)가 말했듯이, 모든 거대한 재산은 거대한 절도에서 기원합니다.[발자끄의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1835)에 나오는 말로서, 정확하게는 “명백한 원인이 없는 모든 거대한 재산의 비밀은 잊혀진 범죄이다”(Le secret des grandes fortunes sans cause apparente est un crime oublié)이다.―정리자] 시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 이상 거대한 절도로 간주되지 않는, 그저 세상 돌아가는 방식인 양 받아들여지는 재산이죠. 그래서 절도가 일어나면 클린턴 부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GDP는 성장하고 있어. 당신들 99%가 더 가난해지는 정도를 우리가 더 부자가 되어서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지.”

애쉬크로프트

세계정치와 관련해서 힐러리가 사용한 몇몇 수사(修辭)에 대해서 말해보죠. 그리고 오랫동안 숙적이었던 미소관계에 대해 말해보죠. 오랫동안 곰을 자극했다는 명백한 사실, 그러한 적대관계,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될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허드슨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러시아는 실제로 신자유주의적이 되었으며 뿌띤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자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경제 체제의 충돌은 없습니다. 소련에 대해서 미국이 못 마땅해 하는 것은, 미국이 소련의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살 수 없는 점, 소련의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살 수 없는 점, 소련의 공익서비스(전기·가스·수도)에 대한 통제권을 사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economic rent’는 허드슨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가격에서 가치를 뺀 것(Price minus Value, P – V), 즉 시장가격에서 투입된 경비를 초과하는 부분이다. 땅과 관련된 ‘ground rent’는 ‘rent’의 한 형태일 뿐이므로 ‘rent’를 ‘지대’라고 옮기는 것은 맥락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불로소득’이라고 옮기기도 하고 또 맥락에 따라서는 ‘임대료’라고 옮기기도 하는데,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좋은 번역어가 필요하다.―정리자]를 부과할 수 없는 점, 그리하여 1994년에서 위기가 발생한 1998년까지처럼 계속적으로 러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시장 붐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양국의 갈등은 경제적 체제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그저 미국이 다른 나라를 통제하고 싶은 것, 다른 나라를 달러의 영향권 내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만일 전 세계가 달러로 저축을 한다면, 이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구입함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소련이나 중국 등이 경상수지 흑자를 미국 재무부에 빌려줌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이 돈을 사용하여 이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달러 시스템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하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에게든 이라크나 리비아나 아프가니스탄에게 했던, 그리고 지금은 시리아에게 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위협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미국은 ‘우린 너희를 박살낼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군대가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폭탄을 떨어뜨리고 금융을 사용하여 위협합니다. 핵심은 자연자원, 즉 물, 부동산, 공익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이지 경제 체제가 아닙니다.

애쉬크로프트

그럼 최종단계는 어떻게 될까요?

허드슨

하나는 세계가 붕괴할 때까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오바마는 비록 월가의 도구이지만 적어도 근동에서 싸우는 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힐러리는 근동에서의 싸우는 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못 하면 세상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해야 하고, 세계에 대한 통제를 위해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끔찍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경제 철학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지, 자연자원, 정부, 화폐시스템에 대한 소유로써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주류 언론은 이 맥락을 설명하는 일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애쉬크로프트

선생님의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은 생각 있고 영민하며 국제주의적인 미국인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이번 선거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이 세계에서 더 인기를 잃을 상황에 대비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허드슨

그 결과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voting with their backsides’[엉덩이로 투표하다→투표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 있다―정리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선거마다 투표참가자수가 줄어왔습니다. 미국에는 제3의 당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부동산과 독점에 이익을 둔 월가의 재정 지원을 받습니다. ‘yes’와 ‘yes, please’가 두 당의 이름입니다. 대안이 없는 것, 선택지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통제의 목적이며 ‘자유시장’의 핵심입니다. 정부가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민중이 선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 비엔나의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 전쟁을 하고 암살을 행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핵심도 이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동운동 지도자들, 대학 교수들, 지식인들을 대량 학살한 칠레의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핵심입니다. 지금 미국은 기관총만 없을 뿐 상황은 똑같습니다. 실제적 대안은 없고 사실상 같은 두 차악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가상적 선택만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미국 민중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8)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아래는 2015년 9월 21일 카운터펀치(CounterPunch) 라디오에서 방송된, 에릭 드레이처(Eric Draitser)와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인터뷰 중에서 오바마(Barack Obama)를 다루는 부분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마이클 허드슨의 저서 J is for Junk Economics: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에도 수록되어 있다. 마이클은 ‘맑스주의 경제학자이고 맑스(그리고 맑스가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는 고전경제학)의 자본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도―그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정책입안자들에게 맑스의 『자본론』2권과 3권을 읽을 것을 권유하기도 할 정도이다―신자유주의가 미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의 한 가운데를 거쳐 온 경력(체이스맨해튼 은행, 아서앤더슨 회계법인 등)으로 인해서 금융세력(월가)이 지배하는 미국 신자유주의의 실상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금융세력의 지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가장 핵심적인 현실진단은,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의 속도를 능가하는 현재의 상태로는 미국의 경제가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부채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그의 핵심적인 생각들을 기회가 되는 대로 소개할 생각인데, 우선 오바마 부분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그의 실제 정체와는 정반대로, 즉 ‘서민에게 잘 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매개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환경에서 이러한 기만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허드슨은 오바마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는 부채를 탕감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실제로는 이 약속을 어기고 자신에게 돈을 대준 월가를 위해 일한 자임을 폭로한다. 허드슨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도 (물론 그 이유 가운데 일부겠지만) 이것과 연관짓는다. 힐러리가 ‘나는 오바마의 셋째 임기를 하겠다, 차악(the lesser evil, 덜 나쁜 후보자)인 나를 뽑아달라’라고 유권자들에게 말했는데, 유권자들은 실제 차악인 트럼프를 뽑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역사”(The History of Neoliberal Economics)라는 제목의 인터뷰의 말미에서 허드슨은 오바마를 이어받겠다는 힐러리가 차악이 아니라 “트럼프가 바로 차악이었음을 기억하세요”(Just remember that Trump was the lesser evil)라고 힘주어 반복한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은 대선에서 허드슨은 두 정당 모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힐러리와 대선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허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정치와 선거는 지금 사유화되어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트럼프가 힐러리보다는 차악이라지만, 두 당이 근본적으로 똑같이 신자유주의에, 금융세력에게 포섭당한 상황에서 미국 민중은 과연 어디서 새로운 정치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상황은 과연 이것과 얼마나 다를까?

오바마가 루비노믹스 패거리를 위해 월가와 한통속으로서 한 선동가 역할

에릭 드레이처

2009년과 제너럴모터스의 붕괴를 돌이켜보면, 붕괴한 것은 제너럴모터스라는 자동차제조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금융 부문인 GMAC이 신용파산스왑(credit default swaps),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기타 이와 유사한 금융파생상품들로 빚을 내었다가 붕괴했던 것이죠. 그래서 오바마가 들어와서 자신이 “제너럴모터스를 구했다”고 주장했을 때,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의 월가 부문을 위했던 것이죠.

마이클 허드슨

맞습니다. 그는 월가를 위한 대통령 후보였고 클린턴의 재무부장관이었던 루빈(Robert Rubin)이 그를 밀어주었습니다. 미국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시티그룹(Citigroup)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드레이처

이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첫 5일 동안에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골드만삭스와 제이피모건(JP Morgan),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시티(Citi)의 CEO 등속을 초청했습니다. 이 내용은 책들, 『뉴요커』(The New Yorker)지 및 기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들에게 ‘내가 있으니 걱정마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허드슨

써스킨드(Ron Suskind)가 이 일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오바마가 “당신들과 쇠스랑들[일반 국민을 건초 등을 집어올리는 쇠스랑에 비유한 것―정리자] 사이에는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흔적은 백악관 웹싸이트에서 재빨리 지워졌지만, 써스킨드의 책에는 있습니다. 오바마가 세기의 대 선동가 가운데 하나로서 출현한 것입니다.

드레이처

그의 정책과 행동이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행동이 필요했던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올바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월가가 원하는 바를 행했습니다. 그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구제금융 등을 옹호했습니다. 이는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대화에서는 피하고자 하는 어떤 것입니다.

허드슨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이중사고’(doublethink)에 기반을 둔 수사(修辭)입니다. 그는 ‘희망과 변화’의 후보로 출마했는데, 그가 실제로 한 역할을 희망을 부수고 변화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로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 그대로 놔둠으로써 그는 미국 경제의 파탄을 주관했습니다. 경제를 희생한대가로 은행, 증권소유자들이 구제되었습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거대 부동산 세력을 위해 지역 조직가로 일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짓을 해서 가난한 흑인 동네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그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이루는 것이었고 고소득 흑인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재산가격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리츠커(Pritzker) 가는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래서 페니 프리츠커(Penny Pritzker)가 그를 루빈에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에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미국의 31대 대통령)보다 왼쪽에 있는 민주당원들을 죄다 당에서 몰아내기 위해 루빈에게 자신의 내각을 임명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오바마의 내각은 첫 수석보좌관은 사악한 반(反)노동론자 이매뉴얼(Rahm Emanuel, 현재 시카고의 시장입니다)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을 오른쪽으로 밀어붙였고, 공화당은 오바마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차악’이 될 수 있는 큰 여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자기는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Kucinich, 민주당에서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와 함께 가장 진보적으로 알려진 인물)가 찬성하는 것, 즉 단일보험자 건강보험(single payer healthcare program)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이에 맹렬히 반대했고 제약 및 건강보험 부문의 로비스트들을 밀어주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유권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의 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사실 그는 그의 선거운동에 돈을 댄 월가의 특정 세력을 옹호하고 있는데 말이죠.

드레이처

맞습니다. 말 그대로 오바마가 행동을 취한 모든 곳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오바마케어(이는 정말이지 보험업에는 큰 혜택이죠)를 옹호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의 사유화, 부동산 등에 이르기까지요. 말 그대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오바마는 금융자본의 하인이지 민중의 하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권자들을 월가에 가져다 바치는 민주당의 현재의 실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