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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서 커먼즈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인터넷 문화에는 희망에 찬 실험과 정치적 해방의 꿈이 넘쳤다. 통찰력 있는 디지털 활동가인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가 다음과 같이 웅대한 문장을 특징으로 한 유명한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Declaration of Independence of Cyberspace)을 발표했다.

산업계의 정부들, 살과 강철의 지루한 거인들이여, 나는 정신의 새로운 집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 나는 미래를 대표해서 과거에 속한 당신들에게 우리를 내버려두라고 요구하노라. 당신들은 우리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우리가 모이는 곳에서는 당신들에게 주권이 없다.

인터넷에 접속한 새내기들—그 당시에 우리 대부분이 새내기였다—에게 이 문장들은 인터넷을 통한 해방을 감동적으로 일별하게 해주었다. 그 당시의 파열적인 사회-기술적 혁신의 아찔한 속도를 생각한다면 이 문장들은 꽤 신뢰할 만하다. 여러분이 30세 미만이라면 프리 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급증을 둘러싼 흥분, 특히 레니게이드 운영체제[주석1]로서 리눅스 그리고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와 위키(들)의 등장을 어쩌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비트토렌트(BitTorrent) 및 P2P 파일 공유의 가능성이 따분하고 착취적인 음악 산업을 뛰어넘어 도약하자 어디에서나 정치적 반란자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통한 저작권법의 재창조로 일반 사람들이 컨텐츠를 공유할 권한을 합법적으로 인가할 수 있었고 동시에 무수한 여타 기술 혁신들이 협력 및 공유의 새로운 형태들을 촉진했다.
[옮긴이 주석: ‘레니게이드 운영체제’(renegade operating system)는 기존의 규범 혹은 표준에서 벗어난 운영체제(OS)를 가리킨다. 영어 명사 ‘renegade’는 ‘배반자’ 혹은 ‘배교자’를 의미한다. 블로고스피어(Blogosphere)는 커뮤니티나 소셜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모든 블로그들의 집합이다.]

자본주의와 국민국가들이 인터넷을 상업적인 시장으로서 철저히 길들였고 식민화했으므로 발로우의 선언문은 끔찍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 된다. (그의 동시대 동료들―크립토 세계―이 비슷한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주의를 내놓았을지라도 말이다.)

자본가/국가 동맹은 인터넷에서의 사용자 주권을 효율적으로 억제하고 길들였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우리의 온라인 삶의 지리적 위치 감시를, 온라인 피드 및 여론에 대한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듬 조작을, 대안우파•러시아 및 여타 불량 집단들이 행하는 허위정보 공작과 해킹하기라는 조직적 활동을, 그리고 한때 단일했던 웹을 소규모 웹으로 분할하고 있는 기업의 페이월 및 국가의 방화벽을 생각해보라.

따라서 미국 웨스트조지아 대학의 지리학 교수인 하네스 게르하르트(Hannes Gerhardt)의 신간인 『자본에서 커먼즈까지: 자본 너머의 세상에 대한 전망을 탐색하기』(From Capital to Commons: Exploring the Promise of a World Beyond Capitalism)를 접하는 것은 기분이 상쾌해지는 일이었다. 빅테크의 독점, 순응적인 입법부, 그리고 정보기관들이 인터넷과 해커문화에 널리 퍼진 증가 일로에 있는 아이디어들을 분쇄했을지라도 게르하르트는 커머닝과 테크놀로지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이행을 실제로 실현하는 길들이 있다고 용감하게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어젠다를 ‘동료주의’라고 부른다. 이 동료주의는 이데올로기도 전략적 구상도 아니며 오히려 탈자본주의적 가능성들을 현실화하기 위한, 커먼즈로부터 영감을 받은 전망이다. 그는 책 첫 줄에서 자신의 임무를 요약한다. “커먼즈 중심의 협력적 생산형식이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디지털 공간들에서 그리고 생물물리학계에서 커먼즈를 추진하려는 게르하르트의 전략에 관하여 더 많기 알기 위해 팟캐스트 <커머닝의 프론티어>(에피소드 47)에서 그와 인터뷰를 했다.

게르하르트는 지난 50년간 인터넷 문화에 관한 광범위한 문헌—비평들, 역사들, 기술적 논쟁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의 책을 인터넷에 관한 많은 다른 책들과 구별 짓는 것은 과제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의 정치적 날카로움이다. 그는 “전지구적으로 디자인하고 지역에서 제조하는” 생산을 지원하는 방법에 관한 장들, 그리고 배전망 및 인터넷 자체와 같은 “기반시설을 민주화하기”에 관한 장들을 제시한다. 많은 기술 전문가들과 다르게 게르하르트는 자연세계의 경계선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그는 재생자원으로서의 지역적 특성, 도시 폐기물 그리고 농업에 공간을 할애한다.

게르하르트는 “화폐와 가치”에 관한 두 개의 장에서 국가가 화폐 창출을 독점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데 시간을 또한 할애한다. 근대적 화폐 창출이 대출을 통해 무(無)에서 돈을 창출하는 개인은행에 아웃소싱되었으므로, 게르하르트는 기본소득 요소를 좀 가지고 있는 탈중심화된 지역 크립토 통화(예를 들어 써클즈Circles, 매너베이스Mannabase, 및 스위프트디맨드SwiftDemand)에 주목하고 한편으로는 비트코인 같은 자본주의적인 모험적 투기를 피한다.
[옮긴이 주석: 써클즈(Circles)는 공동체가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대안 통화이다. 써클즈와 화폐에 대해서 http://commonstrans.net/?p=2306 참조. 매너베이스(Mannabase)는 전 세계 최초 기본소득 암호화폐용 온라인 플랫폼이다. 스위프트디메드(SwiftDemand)는 모든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데 집중하는 새로운 디지털 통화이다.]

디지털 삶을 ‘공통화’하기 위한 전략적 기회들은 게르하르트가 논의할 수 있던 것보다 더 많이 있다. 저작권과 특허권의 독점적인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것, 반트러스트적 개입을 확대하는 것—이 주제와 관련하여 레베카 기블린(Rebecca Giblin)과 코리 닥터로우(Cory Doctorow)의 『관문 자본주의』(Chokepoint Capitalism)를 참조하라—그리고 홀로체인 같은, 커먼즈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프로토콜과 플랫폼들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이 기회들에 포함된다. 어떻든 디지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너머로 나아가고자 하는 진지한 전략적 기획들을 숙고하는 것은 활기를 북돋우는 일이다.

하네스 게르하르트와 함께 한 팟캐스트 인터뷰를 여기서 들을 수 있다. 인터뷰의 녹취록은 여기서 PDF 형태로 다운받을 수 있다.




탈중심화가 왜 중요한가?


  • 저자  :  크리스 딕슨(Chris Dixon)
  • 원문 : Why Decentralization Matters (2018.2.29)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미디엄(Medium)에 실린 원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정리에서 ‘centralization’은 ‘중앙집중화’로, ‘decentralization’은 ‘탈중심화’로 옮긴다. 이 단어의 다른 파생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탈중심화가 왜 중요한가?

 

[인터넷 제1기]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이다. 이때 인터넷 공동체가 통제하는 공개 프로토콜 위에 인터넷 서비스들이 구축되었다. 사람들이나 조직들이 게임 규칙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인터넷 존재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Yahoo, Google, Amazon, Facebook, LinkedIn, YouTube가 이때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서 AOL 같은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의 중요성이 크게 감소되었다.

 

[인터넷 제2기]

2000년대에서 현재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영리 첨단기술 회사들―특히 GAFA, 즉 구글(G), 애플(A), 페이스북(F), 아마존(A)―이 구축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가 공개 프로토콜의 능력을 급속히 뛰어넘었다. 스마트폰의 폭발적 성장이 이 경향을 가속화했다. 모바일 앱들이 인터넷 사용의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용자들은 공개 서비스에서 이 더 세련되고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서비스들로 이동했다. 웹과 같은 공개 프로토콜에 접근할 때에도 사용자들은 보통 GAFA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를 거쳐 접근한다. 좋은 점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수의 놀라운 테크놀로지들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나쁜 점은 스타트업들, 개발자들 등이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이 그 규칙을 바꾸어서 고객과 이윤을 뺏어갈지도 모른다는 염려 없이 자신들의 인터넷 존재를 성장시키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이것이 혁신을 가로막고 인터넷을 덜 재미있고 덜 역동적인 장소로 만들었다. 중앙집중화는 또한 광범한 사회적 긴장을 창출했는데, 페이크뉴스, 국가가 후원하는 봇들(bots), 사용자 봉쇄, EU 프라이버시 법, 알고리즘상의 편향 같은 문제들에 대한 논란에서 볼 수 있다. 이 논란들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이다.

 

[인터넷의 특성]

중앙집중화에 대한 하나의 대응책은 거대한 인터넷 회사에 정부 규제를 부과하는 것인데, 이는 인터넷이 과거의 전화, 라디오, TV 통신네트워크들과 유사하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과거의 하드웨어 기반의 네트워크들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네트워크인 인터넷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드웨어 기반의 네트워크들은 일단 구축이 되면 구조를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반면에 소프트웨어 기반의 네트워크들은 기업가적 혁신과 시장 세력에 의해서 구조를 다시 바꿀 수 있다. 인터넷은 궁극적인 소프트웨어 기반의 네트워크로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코어 계층(core layer)((인터넷의 수직적 설계 모델(Hierarchical Design Model)에서 세 계층은 코어 계층, 분배계층(distribution layer), 액세스 계층(Access layer)이다.))이 가장자리에 있는 수십억 개의 컴퓨터들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소프트웨어란 단순히 인간의 사유를 인코딩한 것으로서 거의 무한한 설계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들은 대체로 원하는 어떤 소프트웨어든지 자유롭게 돌릴 수 있다.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꿈꾸어질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금세 인터넷에 퍼질 수 있다. 인터넷 구조는 기술적 창조성과 인센티브 설계가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인터넷은 아직 그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다. 앞으로 수십 년 내에 코어 인터넷 서비스들은 거의 완전히 구조가 바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크립토네트워크들일 것이다. 즉 처음 비트코인에 도입되고 이더리움에서 더 발전된 아이디어들이 일반화되는 것이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처음 두 시기의 최고의 특성들을 결합한다. 다시 말해서 ① 가장 발전된 중앙집중화된 서비스들의 능력을 능가할 능력이 ② 공동체에 의해 다스려지는 탈중심화된 네트워크와 결합되는 것이다.

 

[탈중심화에 대한 흔한 오해]

탈중심화는 일반적으로 오해되고 있는 개념이다. 가령 크립토네트워크 옹호자들이 탈중심화를 선호하는 것은 정부의 검열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개인주의적인 정치적 견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것은 탈중심화가 중요한 주된 이유가 아니다.

 

[중앙집중화의 문제점]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은 예측 가능한 생명주기를 따른다. 시작할 때에는 사용자들과 서드 파티 (개발자들, 사업체들, 미디어 조직들 등)를 모집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네트효과가 발생하면서 플랫폼들은 S자 곡선을 따라 상승하고 사용자들과 서드 파티를 장악하는 힘도 점점 더 상승한다. S자 곡선의 상부에 도달하면 네트워크 참여자들과의 관계가 포지티브섬(positive-sum)에서 제로섬(zero-sum)으로 변한다. 성장을 지속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사용자들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하고 서드 파티와 (고객 및 이윤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다. 그 역사적 사례는 마이크로소프드 대 넷스케이프(Netscape), 구글 대 옐프(Yelp), 페이스북 대 징가(Zynga), 트위터 대 그 서드 파티들이다. iOS나 안드로이드 같은 OS들은 더 낫게 행동했다. 물론 여전히 30%나 되는 세금(OS사용료)을 받고 자의적인 이유로 앱들을 거부하며 서드 파티 앱들의 기능을 임의대로 포획한다. 서드 파티 회사들에게 이러한 협동에서 경쟁으로의 이행은 ‘미끼로 후리기’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고의 기업가들, 개발자들, 투자자들은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 위에서 작업하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그런 작업이 실망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수십 년 동안의 증거가 현재 존재한다. 이에 덧붙여 사용자들은 프라이버시, 자신들의 데이터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고 안전문제에 취약하게 된다.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에게 존재하는 이 문제들은 미래에는 훨씬 더 분명하게 될 것이다.

 

[크립토네트워크란?]

크립토네트워크는 인터넷 위에 구축되는 네트워크로서 ① 상태를 유지하고 업데이트하기 위해서 블록체인과 같은 합의 메커니즘을 사용하고 ② 합의 참여자들(채굴자들/확증자들) 및 기타 네트워크 참여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서 암호통화들(코인/토큰)을 사용한다. 이더리움 같은 일부 크립토네트워크들은 거의 모든 목적에 사용될 수 있는 범용 프로그래밍 플랫폼들이다. 다른 크립토네트워크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진다. 가령 비트코인은 주로 가치를 저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골렘(Golem)은 전산을 수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파일코인(Filecoin)은 탈중심화된 파일 저장을 목적으로 한다.

초기의 인터넷 프로토콜들은 전문가집단들 혹은 비영리 조직들이 인터넷 공동체의 관심이 일치되리라고 믿고 만들어낸 전문적인 설계표준이었다. 이 방법은 인터넷의 초기 단계에서는 잘 작동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이래 널리 채택된 프로토콜들은 몇 개 안 된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이런 문제를 개발자들, 유지관리자들 및 기타 토큰 형태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해결한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또한 기술적으로 훨씬 더 튼실하다. 예를 들어 패킷의 상태를 유지하면서((비전문가인 정리자로서는 ‘keep state’라는 전산용어가 가지는 정확한 의미에 대한 설명을 아직 찾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규칙을 세워 어떤 데이터 패킷을 통과시킬지(pass) 막을지(block)를 정한 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상태를 바탕으로 임의적 변형을 할 수 있는데, 이는 과거의 프로토콜들은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성장하면서 중립적으로 남아있도록 보장하는 다수의 메커니즘들을 사용하여 중앙집중화 플랫폼에서 일어나는 ‘미끼로 후리기’를 방지한다. ① 크립토네트워크와 참여자들 사이의 계약이 오픈소스코드로 이루어진다. ② ‘발언권’(voice)이나 ‘퇴장’(exit) 같은 메커니즘들을 통해 견제 기능이 이루어진다. 참여자들은 온라인에서도 (프로토콜을 통해) 이루어지고 오프라인에서도 (프로토콜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구조들을 경유하여) 이루어지는 공동체 거버넌스를 통해 발언권을 부여받는다. 참여자들은 코인을 다 팔고 네트워크를 떠남으로써 혹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프로토콜을 포킹(forking)((‘forking’ 혹은 ‘fork’는 기존의 소스코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포크의 끝처럼 새로운 갈래로 분기한다는 말이다. 이 분기의 정도가 높아서 규칙이 아예 바뀔 경우는 ‘hard-fork’라고 한다.))함으로써 퇴장한다.

요컨대 크립토네트워크들은 참여자들을 공동의 목적인 네트워크의 성장과 토큰의 가치인정을 향해 함께 나아가도록 정렬한다. 이 정렬이 이더리움 같은 새로운 네트워크들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성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오늘날의 크립토네트워크에는 중앙집중화된 기득권 플랫폼들에 본격적으로 도전하는 것을 막는 한계가 있다. 가장 심한 한계는 수행성 및 규모와 관련된다. 앞으로 몇 해 동안은 이 한계를 풀고 크립토 스택(crypto stack)((‘크립토 스택’은 블록체인 및 암호통화 자원을 관리된 방식으로 수집한 것을 가리킨다.))의 기반시설 계층을 형성하는 네트워크들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그 이후에는 그 기반시설 위에 응용프로그램들을 구축하는 일에 대부분의 에너지가 들어가게 될 것이다.

 

[탈중심화가 어떻게 이기는가]

탈중심화된 네트워크들의 우위에 대해 낙관적일 수 있는 특수한 이유가 있다. 소프트웨어와 웹서비스들은 개발자들에 의해 구축된다. 세계에는 고도의 숙련을 가진 개발자들이 수백만 명 있다. 그 가운데 얼마 안 되는 일부만이 거대한 첨단기술 회사에서 일하며 그 작업의 얼마 안 되는 일부만이 새로운 생산물의 개발에 투여된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 기획들의 다수가 스타트업들 혹은 독립개발자들의 공동체들에 의해 창출되었다. 탈중심화된 네트워크들은 인터넷 제1기에 승자가 되었던 바로 그 이유로 제3기에 승자가 될 수 있다. 즉 기업가들과 개발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얻음으로써 말이다.

2000년대에 위키피디아와 중앙집중화된 경쟁자인 엔카타(Encarta) 사이에 경합이 있었다. 2000년대 초의 생산물을 비교해보면 엔카타 것이 정확성이나 포괄하는 항목 면에서 훨씬 더 좋았다. 그러나 위키피디아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개선되었다. 탈중심화되고 공동체에 의해 다스려지는 에토스에 끌린 자발적 기고자들의 활발한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쯤에 위키피디아는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참조 사이트가 되었고 엔카타는 2009년에 폐쇄되었다.

이 일이 주는 교훈은 중앙집중화된 체계와 탈중심화된 체계를 비교할 때에는 양자를 정태적으로, 즉 굳어진 생산물로서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즉 과정으로서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집중화된 체계들은 종종 완전히 익은 채로 시작하여 후원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체계를 개선하는 속도로만 더 좋아진다. 탈중심화된 체계들은 반만 익은 채로 시작하지만, 제대로 된 조건이 갖추어지면 새로운 기여자들을 끌어 모으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의 경우 코어 프로토콜의 개발자들, 보완적 크립토네트워크들의 개발자들, 서드 파티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자들, 그리고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서비스 제공자들을 포괄하는 다수의 복잡한 피드백 고리들이 있다. 이 피드백고리들은 연관된 토큰 인센티브에 의해 더 증폭된다. 이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의 경우에 보았듯이 크립토공동체들이 발전하는 속도를 고도로 높일 수 있다. (때로는 비트코인 채굴이 과도한 전기를 소비한 경우처럼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터넷의 다음 시기에 탈중심화된 체계가 이길 것이냐 중앙집중화된 체계가 이길 것이냐의 문제는 누가 사람들을 끄는 힘이 가장 큰 생산물을 만들어낼 것이냐로 수렴된다. 이것은 다시 누가 더 실력이 좋은 개발자들과 기업가들을 자기 쪽으로 얻느냐의 문제로 수렴된다. GAFA는 현금보유액, 광범한 유저 베이스, 기반시설을 포함하는 많은 이점들을 가지고 있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현저하게 더 매력적인 가치 제안을 개발자들과 기업가들에게 할 수 있다. 만일 크립토네트워크들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얻는다면, GAFA보다 훨씬 더 많은 자원을 가동할 수 있으며 제품 개발에서 GAFA를 금세 능가할 수 있다.

 

[탈중심화된 플랫폼들의 잠재력이 낮게 평가되는 이유]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은 종종 출시 때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앱들과 함께 번들로 나온다. 페이스북은 사회화와 관련된 핵심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폰은 여러 주요 앱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달리 탈중심화된 플랫폼들은 종종 반만 익은 채로 명확한 사용 사례들 없이 출시된다. 그 결과 제품시장적합도(product-market fit)를 높이는 두 단계를 거칠 필요가 생긴다. ① 플랫폼을 완성하고 생태계를 구축할 플랫폼과 개발자들/기업가들 사이의 제품시장적합도를 높인다. ② 플랫폼/생태계와 최종 사용자들 사이의 제품시장적합도를 높인다. 바로 이 두 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세련된 기술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관되게 탈중심화된 플랫폼들의 잠재력을 낮게 평가하게 만든다.

 

[인터넷 제3기에 대한 전망]

탈중심화된 네트워크들이 인터넷에서 모든 문제를 고칠 은탄환은 아니지만 중앙집중화된 체계들보다는 더 나은 접근을 제공하는 것이 분명하다. 트위터 스팸을 이메일 스팸과 비교해보자. 트위터가 서드 파티 개발자들이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것을 막은 이후 트위터 스팸에 관해 작업을 하는 유일한 회사는 트위터 자신뿐이다. 이와 달리 벤처 자본과 기업 펀딩으로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아 이메일 스팸과 싸우려는 회사들은 수백 개가 있다. 이메일 스팸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훨씬 나아진 형편이다. 이메일 프로토콜은 탈중심화되어 있기에 게임의 규칙이 나중에 바뀔 것을 걱정할 필요 없이 그 위에 새로운 사업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서드 파티 회사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거버넌스 문제를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거대한 플랫폼들에서는 무책임한 직원 집단들이 중요한 거버넌스 관련 결정― 정보의 순위 매기기, 정보가 걸러지는 방식 정하기, 어느 사용자가 승급되고 어느 사용자가 추방될지 결정하기 등―을 한다. 크립토네트워크들에서는 이런 결정들이 공동체에 의해서 공개적이고 투명한 메커니즘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오프라인 세계에서 경험해서 알듯이, 민주적 체계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른 것들보다는 훨씬 낫다.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이 너무 오랫동안 지배해왔기에 사람들은 인터넷 서비스를 구축하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공동체가 소유하는 네트워크들을 개발하고 서드 파티 개발자들, 사업체들에게 동등한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강력한 방법이다. 우리는 인터넷 제1기에 탈중심화된 체계들의 가치를 보았다. 아마 다음 시기에 우리는 그것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