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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대의정치의 위기


  • 저자  :  Rahman Bouzari
  • 원문 : An Iranian crisis of representation(2019. 11. 22) 이 글은 독립온라인잡지 www.opendemocracy.net에 최초로 실렸다.
  • 분류 : 번역
  • 정리자 : 에스페라
  • 설명 : [정백수]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바이지만, 주류 언론을 통해서는 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들다. 이 언론들은 거기에 봉사하는 개인들의 자질과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눈이 멀어있기 때문이다. 이 구조적인 눈멂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중심으로 세상을 본다는 점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삶은 민중에게 있으며 국가는 이 삶을 돕거나 해치거나이다. 그래서 민중의 삶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국가의 움직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이글에서 우리는 이란 민중의 삶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란과 미국의 군사적 충돌을, 국가들 사이의 이 ‘전쟁놀이’를 이란 민중의 삶에 중심을 두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라만 부자리(Rahman Bouzari)는 이란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개혁주의 신문 가운데 하나인 <샤그 데일리>(Shargh Daily)의 저널리스트이다. 그의 다른 글로 “How the Mass Media Misread the Iranian Protests”(2018. 1. 24)가 있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일어난 봉기들은 이란의 정치 지형을 영구히 바꿔놓았다. 그때 이후로 이란은 아주 훌륭한 ‘유기적 위기’로 진입해오고 있다. 한 세기 전에 이탈리아의 맑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처음 소개하고 설명한 이 위기는 지배 계급들이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광범위한 경제·정치·사회 그리고 이념의 위기이다. 그는, 자주 인용되는 말이지만, 그의 『옥중수고』(Prison Notebooks)에서 “정치 공백기에는 온갖 종류의 병적 증상들이 나타난다”라고 썼다.

이란에서 나타나는 명백히 병적인 증상들에는 실업, 스태그플레이션, 통화문제, 부패, 그리고 환경악화가 있다. 그러나 인구의 많은 부분, 이주와 실업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젊은이들, 사회적 포부를 잃은 학생들, 방치된 노동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체 직전에 있는 사회 구조를 가로질러 퍼지고 있는 다른 잘 안 보이는 증상들도 있다.

전국의 수십 개의 작은 도시와 큰 도시에서 일어나는 현재의 일련의 시위들은 기본적으로 2017년부터 2018년까지의 봉기들에서 내세워졌던 것과 같은 사회·경제적 요구의 연속일 뿐이다. 최소 106명의 사람들이 21개 도시에서 살해되었고 시위가 시작된 지 3일 만에 수천 명이 다치거나 체포되었다. 살해된 시위자들이 그보다 훨씬 많아서 200명 이상에 이르리라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이 현장에 나돌고 있다. 이란 정부는 인터넷 연결을 차단했으며, 그 결과 이란에 대해서 국제 사회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로 인해 이를 지켜보는 서양 사람들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이란의 시위에 대하여 우리는 몇 가지 사항들을 명심해야 한다.

 

단지 기름값 때문만이 아니다.

첫째, 이란 문제에 대한 영어권에서의 보도에 널리 퍼진 오해는 정부가 기름값을 리터당 50% 올렸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 내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배급된 휘발유의 가격을 50% 인상했지만, 이는 차량당 매월 60리터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60리터를 넘으면 가격이 200% 올랐다. 이는 40년간 부패한 지배 계급을 이미 참을 만큼 참아온 사람들의 일상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둘째, 많은 방송 해설자들이 이란 휘발유 가격과 국제 휘발유 가격을 비교하면서 ‘가격 인상’ 대신에 ‘보조금 철회’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이란의 휘발유 가격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성급하게 결론지었다. 여기서 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이란의 최저임금(한 달에 125달러)이 미국 달러로 지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수반되는 물가 상승과 다른 상품들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다. 리알화로 (값싼 노동력, 값싼 기름 등을 사용해서) 휘발유를 생산해서 미국 달러로 파는 것은 불공평한 것처럼 보인다. 가격 체계에서는 항상 교환 비율이 문제다.

셋째, 휘발유 가격 인상은 정부의 예산 적자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110명의 사람들이 이란 은행으로부터 빌린 총 92억 달러에 상응하는 엄청난 미상환 대출금이 투자된 집단시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는가 하면 이란의 고위 공직자들이나 그들의 친척들이 횡령과 약탈 행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매일 들은 사람들은 누구라도 휘발유 가격 인상 결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란 정부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소수 세력의 채무변제를 요청하기보다, 공공 지출 요구에 맞추기 위해 겨우 벌어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박살내기로 계획한 것이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 인상은 사람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마지막 방아쇠였으며 노동자들과 중산층 하부가 궁핍화에 저항하게 되는 계기의 역할을 해 왔을 뿐이다. 시위가 매우 빠르게 정치화되었다는 사실은 2017부터 2018년까지 일어났던 진압된 봉기들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리고 이란의 유기적 위기는 기존 시스템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연료 가격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인종적·민족적 차별을 여성·무신론자들·소외계층들에 대한 성적·종교적·계급적 차별과 40년 동안 융합해 온 아파르트헤이트(분리주의) 정권이다.

개혁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로 구성된, 지난 40년 동안 이란을 통치해 온 정치 세력은 전체 구조를 둘러싼 위기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는 이란의 현재 위기를 미국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이란과 그 밖의 나라에서 많이 안다고 떠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되풀이되는 새로운/낡은 수사(修辭)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유기적 위기는 40년 동안의 이란의 정치경제에 그 구조적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국의 제재는 자라나고 있던 위기에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삐걱거리는 부적절한 연합

위기의 본질은 1979년 혁명 직후 실권을 장악한 정치 엘리트 집단과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가까스로 나라를 운영하게 된 소수 금권세력 사이의 부적절한 연합에 기인한다. 1979년 혁명 직후, 종교 세력은 독재 정권을 전복시키고 대다수의 “외부자” 집단에 맞서는 소규모 집단인 “내부자(khodi)”를 만들어 냈다. ‘시아파-페르시아인-남성’ 소수자들로 구성된 이 내부자들은 약 2,300명의 정치적 인물들로서 약 40년 동안 모든 정치적 반체제 인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란 정치를 주도해오다 1988년 정치범 학살에서 그 지배의 정점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이란 경제도 소수 금권세력에 의해 지배되었다. 1980-88년의 이라크와의 전쟁 이후 이란의 재건이 일단 실행에 옮겨지자, 정치 엘리트들과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장관이나 국회의원부터 성직, 법조, 군사 영역의 지도자들까지 대부분 지배 계층에 속하는 자리에 있는 소수의 경제 엘리트들이 등장했다. 서로 유착된 소수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국가 자원 전체를 수십 년 동안 약탈했다. 사유화(민영화), 도시화, 개발계획, 탈산업화, 삼림파괴, 그리고 뱅킹시스템에 관해서는 정치인들이 소수의 경제 엘리트들과 긴밀히 내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들은 친척들에게 재정 자원에의 접근권을 제공해주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

만약 혁명 이후의 정치경제의 구축 자체에 위기가 내장되어 있다면, 근본적인 해체가 필요할 것이다. 정말로 지금과 같은 낡은 사회·정치적 상황에서는 정권이 합의를 성취할 수도 없고 심지어 조작해낼 수도 없다. 2017-18년의 봉기들은 이념의 헤게모니 영역에 어떤 진공상태를 만들어놓았는데, 이 진공상태는 이란 정치의 그 어떤 기존 세력에 의해서도 긍정적인 방식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대의정치의 위기

이런 상황의 주된 이유는 대의정치의 위기이다. 이란 혁명 이후 정치는 민중의 움직임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었다. 사실 “외부자들”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개별화되고 주변화된 문화 활동을 제외하고는 대의될 여지가 거의 없다. 비록 나라가 온통 혼란 상태에 있고, 노동자들은 민영화, 규제 완화 그리고 금융화에 질려있지만, 이러한 사회·경제적 불만이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옮겨지는 일은 없다.

2017-18년의 봉기 이후로, (가장 중요한 셋만 꼽자면) 화물차 운전기사들, 교사들, 노동자들에 의해 수백 차례의 시위가 발생했다. 2018년 5월 말에는, 이란의 지방 수십 곳에서 수천 명의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낮은 임금에 항의하여 파업을 벌였고 미국의 가장 큰 노조 가운데 하나[the Teamsters]가 이 파업을 지지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교육민영화와 저임금에 항의하는 교사들의 첫 번째 전국적인 연좌 농성이 열렸다. 11월 13일에서 14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두 번째 연좌 농성이 이어졌고, 그 결과 많은 교사권리 운동가들의 체포와 수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란의 남서쪽에 위치한 후제스탄(Khuzestan)주에 있는 하프트 타페 사탕수수 공장(Haft Tappeh Sugarcane Company) 노동자들의 연속적인 파업이 민영화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선언을 하고 노동자 자치평의회를 창출하고 설립하겠다고 결의한 마지막 파업에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후 곧바로, 노동자 대표인 에스마일 바크쉬(Esmail Bakhshi)는 노동운동가들 및 노동자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바크쉬에게 내려진 14년형과 74회의 채찍형벌을 포함하여 이들 모두는 총 110년 동안 감옥에 투옥될 것을 선고받았다. 동시에, 이러한 항거를 보도한 기자들은 강압적으로 감금당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경우에, <샤그 데일리>(Shargh Daily) 신문의 경제부 기자인 마르지 아미리(Marzieh Amiri)가 2019년 5월 1일 테헤란에 있는 이란 의회 건물 앞에서 벌어진 노동의 날 시위를 보도하던 중 체포되었다. 그녀는 결국 10년 반 동안의 투옥과 148회의 채찍형벌을 선고받았다.

휘발유 가격 인상에 대한 대응으로 최근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시위들은 이란에서의 ‘장기간의 혁명 과정’을 암시하는 또 한 번의 조짐으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강제적 은폐에 대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패, 횡령, 사유화(민영화), 규제완화, 그리고 하층민의 빈곤화에 대항하는 다면적인 투쟁인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정치단체, 시민사회, 자유 언론, 정당, (노동)조합, 그리고 지도자의 부재 속에서 일어났고 이제는 심지어 놀랍게도 인터넷 연결의 부재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들은 노동자들과 하층민들이 자신들의 연합조직 또는 자율적인 모임을 만들기 위해 생명까지 위태롭게 하면서 착수한 자발적인 기획들인 것이다.

 

잘못된 대의(代議)와 선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궁지에서 탈출하기 위한 이란인들의 투쟁이 한창 벌어지는 가운데, 즉 국가에 의한 진압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국가 공권력의 작용범위를 좁히는 위험한 활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병적인 증상들이 또한 대의의 수준에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세상사를 늘 정권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자칭 전문가들이 문제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이란의 현존하는 엘리트 파벌에 속하는 사람들에 속하거나 그들의 관점을 반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논설, 기사 등이 점점 증가하는 것을 봐왔다. 이것들이 이란 정치와 서양 언론 모두에서 가시화되는 정도는 높다. 저널리즘의 핵심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약 40년 동안 말하지 못했거나 억눌려 왔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이란에서 이러한 목소리들은,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이란 전역에 걸쳐 약 100개 도시에서 거리로 자발적으로 쏟아져 나온 일반 대중들, 100개 이상의 마을과 도시의 거리에서 지금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 최근 며칠 동안 체포되거나 다친 사람들, 시위 3일 동안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 뿐만 아니라 초강대국의 후견에서 벗어나 있기에 합법적으로 그들을 대의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계속 진행되는 교착된 차단 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개혁주의자들 또는 중도주의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 어떤 구조변경도 거부하는, 스스로 결정하는 대안 세력의 형성이다. 이 형성과정은 자발성에서 조직화로 이행하는, 이미 탄생한 과정이다. 만약 위기가 광범하고 유기적인 것이라면, 해결책도 이념적·민족적·젠더적 다양성이 있는 이란 사회의 건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란 여성의 해방을 포함하는 광범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널리 퍼져있는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답을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즉 ‘이슬람 공화국’(이란)을 넘어서 부와 힘의 근본적인 재분배를 향해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라건대 지역 민중의 결속, 즉 레바논·이라크·시리아·이란 민중의 결속을 낳아, 그들을 평생 괴롭혀온 부패한 지도자들을 제거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