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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슴 ― 크래플의 ‘표행’(飄行)과 ‘더 커먼즈’(The Commons) 02

 


  • 저자  : Paul Krafel
  • 원문 : Roaming Upward : The Quest of a Naturalist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크래플의 웹북 Roaming Upward : The Quest of a Naturalist의 내용 소개를 시작해놓고 이런저런 일로 이어가지 못했다. 이제 이 작업을 해보려고 한다.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장을 골라서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8장부터 시작한다. 이번 것을 포함하여 앞으로 내용을 정리할 장들은 다음과 같다.

 

0. 개괄적 소개 [보기]
8장 The Dead Deer
11장 Roaming
19장 Koans
22장 Reflecting
25장 Gaia
29장 The Upward Spiral
30장 The Invisible Power
31장 Time Lags
32장 Roaming Together
36장 Barbarians at the Gate
37장 Encouraging the Light
40장 The Fifth Dimension
41장 Towards Upward
42장 Offer a New Path . . .
43장 . . . before Opposing the Current Path
44장 Money Flows
45장 The Cascade of Change

 


8장 죽은 사슴

크래플의 ‘표행’(飄行)과 ‘더 커먼즈’(The Commons) 02

 

크래플이 디날리국립공원에서 일하던 어느 날 크렌쇼(Hugh Crenshaw)라는 구역담당 삼림관리원이 크래플과 같은 젊은 “seasonal naturalist”(시즌인 여름에는 일하고 오프시즌에는 자연을 표행하는 삼림관리원)에게 방문객들에게 공원에 대해서 말하기보다 공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해보라며, 예를 들어 죽은 사슴이 분해되는 과정을 지켜보라고 권유한다. 차에 받혀 죽은 사슴이 생기자 크렌쇼는 크래플에게 통지해주며, 이에 크래플은 죽은 사슴이 구더기 떼에 먹혀 껍데기만 남아가는 과정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으며 다음 시즌에 방문객들에게 제공할 ‘사막에서의 죽음’(Death in the Desert)이라는 슬라이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다음 시즌에는 숙소에서 몇 백 야드 떨어진 곳에서 퓨마(mountain lion)가 사슴을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먼저 검정파리들이 와서 새끼를 까고 그 수백만 마리의 유충들이 사슴을 파먹으며 눈에 보이는 구더기들로 성장한다. 그 다음으로 청딱지개미반날개(rove beetles)들이 와서 구더기들을 먹어댄다. 크래플이 그곳에 가볼 때마다 새로운 포식자들과 썩은 고기를 먹는 동물들이 온다. 사슴 몸체가 구더기 몸체들로 전환되자 일정 시점에서 검정파리들이 떠난다. 전체적으로 구더기들이 먹히면서 몰려드는 동물의 절대수는 감소하지만, 덤벼드는 종의 수는 잠시 늘어난다. 말벌 한 마리가 사체 주위에 날아다니는 포식자 곤충 하나를 잡아 그 안에 알을 낳는다. 저 말벌의 유충들은 구더기들이 사슴 몸체를 다 먹어치우며 성장하듯이 그 곤충의 몸을 다 먹어치우리라.

일정 시점이 되자, 구더기들이 사체에서 떨어져 나와 기어가기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땅 속으로 들어가서 번데기를 거쳐 성인 파리가 되기 위해서이다.) 음식 역할을 한 구더기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몰려든 종의 수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간혹 새로운 종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더 적은 수의 종의 더 적은 수의 개체들이 남아서 가죽과 골수에 남아있는 에너지만 수확한다.

크래플은 이 과정을 오덤(Odum)의 생태학 교과서를 통해 성찰한다. [본인은 자연에서 진실을 얻는다고 했지만, 이는 앎의 근본적 연원을 말한 것일 뿐이고, 사실 그는 책을 통한 지식과 연결짓기를 그치지 않는다.―정리자]

얼마나 다양한 곤충들이 각각 사체의 상이한 부분들을 전문적으로 먹어치우는가. 사슴 안의 분자들은 어떻게 재배열되어 수천의 새로운 곤충의 몸들이 되는가. 사슴의 몸에 집중되어 있던 에너지가 이제 어떻게 수천의 다른 생명체들을 관통해서 흐르고 있는가. 무언가 심오한 것이 여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오덤의 책 안에서 흘러다니는 수백 개의 화살표에 담긴 큰 진실이 바로 나의 눈과 코 앞에서 육화되고 있었다. 사슴이 죽은 지 몇 분 내에 일시적인 ‘생태계’가 사체에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 생태계는 여러 날에 걸쳐 점점 더 복잡한 것이 되었다. 죽은 고기와 퓨마로 구성된 단순한 체계가 들끓는 구더기들, 구더기 포식자들, 포식자들의 포식자들로 구성된 체계로 다양화된 것이다. 사체가 먹히고 사슴의 분자와 에너지가 줄어들었을 때 구더기들은 성인이 될 준비를 하기 위해 꿈틀대며 빠져나갔다. 생태계는 해산되어 어딘가에 있을 또 하나의 사체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흩어졌다. 이것이 죽은 뒤에 몸이 가는 곳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부끄럼 없이 보여준다. 뼈, 가죽, 털 말고는 놀랍도록 빠르게 다른 생명체의 몸이 되는 것이다. 갈릴레오가 그의 망원경으로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관찰하듯이, 나는 매료된 채 앉아서 한 개체의 죽음과 다른 개체들의 탄생 사이의 매우 중요한 이행을 나의 육안으로 관찰했다.

이 지점에서 크래플은 열역학 제2법칙을 떠올리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피력한다.

태양에너지는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 일부가 지구에 도달하여 지구를 비춘다. 또 그 일부가 광합성의 동력이 되고 먹이사슬을 통해 흘러내린다. 그러는 동안 물질대사를 위한 열이 우리의 대기로, 따라서 우주 공간으로 새어나오는데, 우주 공간에서 에너지는 흩어진다. 임의적인 분자운동의 형태로 공간 전체에 퍼지는 것이다. 변하거나 어떤 일을 할 잠재력이 없이.

사슴의 사체가 이 법칙을 예증한다고 본다. 사슴 안의 원자들은 일주일 후에 어린 곤충들로 이동하는 등 어디선가 돌고 있으며 결코 소진되지 않지만, 사슴 안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usable energy)는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수천 마리의 구더기들을 키우는데, 그리고 구더기 포식자들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줬지만 결국에는 소진되고 만 것이다.

전문적 정확성 에너지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열역학 제1법칙은 에너지는 창조되지도 파괴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너지가 가진, 무언가에 실질적으로 힘을 줄 수 있는 능력은 유한하다. 더 나아가 모든 사용가능한 에너지는 덜 사용 가능한 형태의 에너지를 향하여 자연발생적으로 흘러가서 결국 임의적인 진동만이 남는 경향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생물체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튀어가던 공이 결국 멈추는 것, 차에 휘발유가 다 떨어지는 것, 소리가 사라지는 것, 호수에 돌멩이를 던져 생긴 파문이 확대되다가 감지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지는 것, 장난감의 태엽이 다 풀리는 것 등등도 이 법칙의 표현이다. 크래플은 이 책에서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사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다고 한다.

보통 에너지의 자연발생적 흐름은 ‘엔트로피’의 증가를 향한다고 말한다. (엔트로피란 어떤 체계―‘계’―에서 사용될 수 없는 에너지의양을 가늠하는 척도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간을 x축(오른쪽이 미래, 왼쪽이 과거)으로 하고 엔트로피를 y축(항상 0보다 크다)으로 하는 그래프로 그릴 수 있다. 사슴 사체의 경우를 그리면 다음과 같다.

축에 숫자가 없는 이유는 어떤 시간 단위로 재든 엔트로피의 증가는 엄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2법칙은 어떤 비율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폭탄의 폭발은 엔트로피를 폭발적으로 변화시킨다. 사막에 있는 뼈의 분해는 매우 느린 변화과정이다.

이론적으로는 증가율이 제로일 수 있다(실제로는 아니지만). 다만 자연발생적으로 흘러간다면 그 방향이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쪽일 수는 없다. 이 그래프는 이 책에서 나중에 다시 사용할 것이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무언가(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떨어져간다는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y축을 ‘엔트로피’에서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바꾸면 다음과 같이 된다.

이제 이 그래프는 무언가 줄어들어 가고 있다는 우리의 감각에 부합한다.

사실 엔트로피의 증가, 즉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감소가 무엇을 함축하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크래플은 처음에는 제2법칙은 ‘모든 것은 줄어들게 되어있다’는 의미라고 들었다. 나중에 그는 ‘닫힌 체계는 에너지가 줄어들게 되어있다’가 더 정밀한 의미임을 알게 된다. 이 닫힌 체계에서 생물체들은 죽어서 분해되고 박테리아들이 유기체 분자를 감소시키고 그 다음에는 박테리아도 죽는다. 수역(水域)은 파도 없이 잔잔해지고 평평해질 것이다. 그런데 빛이 사라지므로 이것을 볼 수도 없다. 별빛조차도 없다. 별이 보인다면 닫힌 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젊은 크래플은 ‘체계가 닫히지 않는다면 제2법칙은 적용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정확하지 않은 생각이다. ‘닫힌 체계’는 제2법칙이 함축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도구이지 제2법칙의 진정한 핵심이 아니다. 이 핵심은 에너지는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더 높은 엔트로피를, 더 낮은 사용 가능성을 향하여 흘러간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책에서는 ‘엔트로피’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사용 가능한 에너지’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제2법칙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증가가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가능하지만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훨씬 더 큰 감소가 해당 체계를 둘러싼 더 큰 체계의 어디선가 일어나야 한다. 검정파리들의 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슴이 죽어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려면 엄마가 다른 생명체들을 먹어야 한다.

모든 생명체들은 이 아래로 흐르는 열역학적 흐름 내에서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즉 살아있기 위해서 계속 상류 쪽으로 헤엄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식물들은 햇빛을 사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의 저에너지 분자들로부터 고에너지의 당 분자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이 일을 한다. 우리 포유류는 어떻게 내부 열을 유지하는가? 옷을 입고, 더 많은 음식을 먹고, 벽을 둘러치고 불을 피우는 것이 그 일련의 일시적인 해법들이다. 이 해법들이 동이 나면 우리는 몸이 식어 죽는다.

생명[이런 경우에는 전체로서의 생명을 말함]은 상류 쪽으로의 헤엄치기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 생물학 교과서들은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생명체들은 주위의 에너지원의 수확을 통해 생존한다고. 식물은 햇빛을 수확하고, 초식동물은 식물을 수확하며 포식자들은 먹잇감을 수확하며 사첼ㄹ 분해하는 생물체는 모든 사체들을 수확한다. 이렇듯 다른 체계들의 희생이 있어야 우리 체계가 상류 쪽으로 나아가거나 적어도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크래플은 사슴 옆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열역학 제2법칙의 근본적인 귀결, 즉 우리는 다른 것들을 수확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유지한다는 사실과 대면하게 된다. 제2법칙은 우리가 우리 주위에 경계를 긋고 그 경계 너머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수확하기를, 우리가 폐기물로 바꾼 것을 다시 그 경계 너머로 배출하기를 요구한다. 동시에 호랑이든 진드기든 식민화하는 국가든 외부에서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경계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 우리의 경제적 활동 대부분은, 사라지는 시체를 서둘러 수확하는 구더기들과 똑같다. ‘청딱지개미반날개들이 잡아먹기 전에 주위 세계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될 수 있는 한 많이 취하라.’

크래플이 ‘사막에서의 죽음’이라는 슬라이드쇼를 디날리국립공원 방문객들에게 보여주었을 때, 방문객들은 이전에 지질학 강연을 할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수동적 수용의 태도로 등을 뒤로 젖히고 앉아있기보다는 기대하는 태도로 고개를 앞으로 빼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고 않아있게 사로잡는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명강연가가 되기보다는, 아직 진행 중이고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하지만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 탐험을 서술했다.

이전에는 강연이 끝나면 박수가 나왔지만, 이제 사람들은 더 직접적이고 활발한 관심을 보였다. 칭찬보다는 질문들이 크래플을 둘러쌌다. 지질학 강연 접근법이 에고의 영광을 증가시키는 데 더 이익이 되었지만, 크래플은 사람들이 어떤 복잡한 사안에 열렬히 참여하는 모습을 더 좋아했다. 이것이 그의 “교사로서의 길에서 평생 의미를 가지게 될 갈림길이었다.”

<8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