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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넘어선 미래와 크립토 커먼즈

 


  • 저자  : Sarah Manski
  • 원문 :  crypto-commoners only want the earth crypto commons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루케아
  • 설명 : 아래는 https://www.shareable.net/에 실린 글 “A post-capitalist guide to the future: crypto-commoners only want the earth”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의 저자인 맨스키(Sarah Manski)는 정치경제학자, 윤리학자, 세계적인 테크놀로지스트이자 조지메이슨 대학교 교수이다. 맨스키는 또한 <VERSES.io>와 씨바나 재단(Civana Foundation)의 고문이며, P2P재단과 조지메이슨 대학교의 사회과학연구 센터의 연구자이고,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SBIR 프로그램의 전문 검토위원이다. 그녀는 지난 25년 동안 활동가, 노동조직가, 저널리스트, 연구자 및 ‘비즈니스/글로벌 어페어즈’ 교수로서 노동자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크립토 커먼즈의 확대를 위해 일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스트들이 2021년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의 일정으로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작은 시골 호텔에서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Crypto Commons Gathering 2021, CCG21)을 개최하고 여기서 크립토 커먼즈의 확대를 위한 테크놀로지 설계 및 개발 방향을 논의했다. 이 글은 저자가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에 발표자로 참여하여 행사의 개최 취지와 크립토 커먼즈의 확대를 위해 일하고 있는 몇몇 참석자들의 아이디어 및 그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일종의 기행일기이다.

저자는 암호화가 본격적으로 미국인의 삶속으로 진입해 들어가고 있고 도처에 만연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진단한다.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를 주류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응용프로그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암호화폐의 일종인 비트코인을 매입하고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까다로운 과정이다. 하지만 처음으로 수백 개의 미국은행의 지점들이 곧 기존 계좌를 통해 암호화폐를 구입하고 보유하며 팔 수 있을 것이므로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비트코인이란 다음의 것을 포함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들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전지구적인 움직임을 응용한 것들 가운데 가장 가시적인 것일 뿐이다.

  • 분산원장들
  • 열린 혁신 생태계들
  • 사회적 기업들
  • 플랫폼 협동조합들
  • 탈중심화된 데이터 관리 인프라들
  • 지역 혁신가들과 P2P 네트워크들
  • 마켓스페이스와 지방 연구소들
  • 바이오핵랩들(bio-hacklabs)
  • 커먼즈 기반의 글로벌 정치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토큰 경제와 새로운 가치 시스템들

생산•관계•소유권의 대안적인 형태를 창출하기 위하여 다채로운 창발적인 커뮤니티들이 테크놀로지의 사용을 실험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인 추출•착취•시장경쟁 및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근본적으로 새롭고 다른 논리―공통의 선, 글로벌 커먼즈에 기반을 둔 공유, 탈중심화 및 협력―를 실험하고 있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의 장소는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작은 시골 호텔이다. 이곳에 모인, 스스로를 크립토커머너들(CryptoCommoners)이라 부르는 테크놀로지스트들의 임무는 크립토 커먼즈(Crypto Commons)의 확대를 위해 일하는 실무자들과 교수들을 모아서 전지구적인 운동을 하기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은 탐구적인 활동과 학문적인 연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상호적으로 유익하도록 설계되었다. 이 글의 저자인 맨스키를 포함해서 대략 30여 명의 남녀 테크놀로지스트들이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에 참석했다. 맨스키는 이 글에서 5명의 테크놀로지스트들 소개하고 있으며 아울러 바우엔스의 기조발제(“Commoning as a mode of production”)의 내용을 전해준다.

맨스키 자신의 연구는 인류에게 미치는 테크놀로지의 영향력과 결부되어 새로이 등장하는 윤리적 문제들 그리고 가치•소유•생산•공평함•노동과정•사회적 역동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가진 커먼즈 기반 경제 모델이 구축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 맨스키는 “시장에서 긍정적인 행동을 촉진하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경제 모델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새롭고 지속가능한 커먼즈 기반 경제를 창출하는데 블록체인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연구한다.

조쉬(Josh, ‘블록체인 사회주의자’로도 알려져 있다)는 블랙체인 세계의 커먼즈 운동 부문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주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브레드체인 프로젝트>(BreadChain Project)에서 일한다. <브레드체인>은 탈중심화된 협력기획들을 위한 공동의 소유권 분야에서 자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이 열린 회의장소와 숙소를 제공한 펠릭스(Felix)는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의 주요 조직자이다.

스콧 모리스(Scott Morris, ‘토큰 제디’라고도 알려져 있다)는 <QOIN> 재단의 공동 설립자로 지역화폐 분야에서 협력적인 토큰 생태계를 설계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또한 뱅코르 백서(Bancor whitepaper)의 공인되지 않은 저자이다. 뱅코르는 스마트 토큰이라 불리는 새로운 종류의 디지털 자산을 확립하기 위한 첫 기획이었다. 스마트 계약은 디지털 자산을 운영하는 한 방법으로 하나 이상의 기존의 토큰이 준비금으로 유지되는 것을 요구한다. 스마트 계약에 교환 가능한 토큰을 준비금으로 보유함으로써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아무 때나 스마트 토큰을 매입하거나 현금화할 수 있다.

자감(Michael Zargham)은 <블록싸이언스>(BlockScience)―복잡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엔지니어링, R&D 및 분석회사이다―의 설립자이자 CEO이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테크놀로지의 힘을 활용하는 모델링 프레임워크와 강력한 시뮬레이션 도구인 소프트웨어 ‘복잡적응역동계 컴퓨터지원설계’(Complex Adaptive Dynamics Computer-Aided Design, cadCAD)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또한 그는 <메타거버넌스 프로젝트>(Metagovernance Project)에서 일하고 있다. ‘복잡적응역동계 컴퓨터지원설계’는 시스템의 복잡성을 인지하면서도 시스템 디자인을 단순하고 통찰력 있는 어떤 것으로 전환시킬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자감의 설명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서 자치는 자연권이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의 자치는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의 아키텍처에 의해 가능해지거나 제한되며, 같은 아키텍처는 사용자들이 생성하는 별개의 기관들의 상호작용을 제어한다. 메타거버넌스가 이 자치의 두 가지 관련 역할들—사용자들이 자신의 기관을 창출하는 그들의 능력을 가능하게 하기/제약하기, 개별 기관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치하기—을 의미한다.

에멧(Jeff Emmett)은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즈>(Augmented Bonding Curves)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블록싸이언스>에서 자감을 위해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하며 <더 커먼즈 스택>(The Commons Stack) 소속 핵심 조직자이다.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는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지속적인 조직체들을 위한 새로운 펀딩 모델을 창출할 경우, 내재 가치를 가진 암호화된 토큰을 보유한 초기 사용자들을 보상하도록 설계된다.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에는 자금 풀(funding pool), 토큰 잠금/수령권 메커니즘 및 시스템간 피드백 회로가 포함되어 있다.

<더 커먼즈 스택>의 임무는 오픈소스 도서관, 상호운영적인 웹3 부품들을 만들어냄으로써 인센티브 일치, 지속적인 자금지원, 지역사회 거버넌스를 통해 공공재를 지속시키는 커먼즈 기반 미시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더 커먼즈 스택>은 효과적인 새로운 도구들을 지역사회에 맡기게 될 것인데 이 도구들 때문에 지역사회는 공유자금을 늘리고 분배할 수 있으며 투명한 결정을 하고 커먼즈 지원사업의 진행사항을 추적•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최소한의 자립 커먼즈’(Minimum Viable Commons)를 창출할 구성요소로서 다음 네 가지를 구축했다.

  •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가 지속가능한 자금을 지역사회에 제공한다.
  • ‘기베스 댑’(Giveth Dapp)은 제안과 에스크로 서버스를 제공한다.
  • 연속적인 의사결정 거버넌스 과정인 ‘확신 투표’(Conviction Voting)((확신투표는 특정 시점에서 구성원 전체의 다수결로 어떤 제안의 채택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제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선호도를 일정 기간 축적하여 가장 선호도가 큰 제안을 확인하는 결정방식이다.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토큰을 자신이 선호하는 제안에 걸며, 이런 식으로 각 제안에 걸린 토큰의 양과 이 토큰들이 걸려있는 시간의 양을 토대로 제안에 대한 구성원들의 선호도가 계산된다.)) 플랫폼
  • 커먼즈 분석 대시보드 (이것은 cadCAD로 움직인다)

바우엔스는 커먼즈의 내부 경제와 외부 세계 사이의 인터페이스로서 작동할 무언가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강조해왔는데 바로 ‘오그먼티드 본딩 커브’가 이 역할을 한다. 바우엔스는 <커먼즈 트랜지션>(Commons Transition, 커먼즈 사회로 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 개발 플랫폼)의 연구 책임자이자 헬프리히(Silke Helfrich)와 볼리어(David Bollier)와 함께 <커먼즈 전략 그룹>(Commons Strategies Group)의 창립 멤버로, 동료 생산, 거버넌스, 재산권을 탐구하는 분야에서 전 세계 연구자 집단과 공동연구를 한다. 바우엔스는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로 된 몇 권의 책과 보고서들을 공동 출간했는데 주요 작품들에 속하는 것으로 『협력 경제를 위한 네트워크 사회와 미래 시나리오』(Network Society and Future Scenarios for a Collaborative Economy)가 있으며, 보다 최근에 나온 『P2P: 커먼즈 선언』 (P2P: A Commons Manifesto)이 있다.

늘 그렇듯이 바우엔스는 커먼즈 경제가 인간 상호작용의 첫 형태였고 자본주의의 종획이 소수의 이익을 위해 공통의 부를 해체한다고 언급하며 발표를 시작한다. 바우엔스의 주장에 따르면 1993년, 인터넷이 커먼즈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의 도래를 알렸다. 인터넷을 사용하여 국가의 외부에서 조직화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세상에 등장한 2008년 이후로 전지구적인 규모의 커먼즈가 발전하고 엄청나게 성장했으며 그것은 모든 개인들이 다른 어떤 개인에게 연결될 수 있는 P2P방식의 관계 역학, 즉 새로운 유형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자유를 탄생시켰다.

허가가 필요 없는 블록체인들(신뢰와 무관한 블록체인 또는 퍼블릭 블록체인으로도 알려져 있다)은 합의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이용 가능한 열린 네트워크이다. 블록체인은 이 과정을 거래와 데이터를 인증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 블록체인들은 알려지지 않은 거래당사자들 전체를 가로질러 완전히 탈중심화된 형태로 존재한다. 바우엔스는 이러한 블록체인들의 특징이 커먼즈 실천에 참여한 전통적인 인간 소그룹들의 특징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즉 글로벌 오프소스 시민네트워크들의 가능성 그리고 국가 위계구조 및 자본주의 시장의 동학 둘 다의 역량을 능가하는 생성적인 경제 연합체들의 가능성을 창출한다.

물론 이 상상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몇 가지 경고 사항들이 있다. 바우엔스는 모든 서버가 자율적이라는 P2P개념은 지속적인 커머닝(자원들을 공동 출자하고 상호화하며 공유하는 자유로운 연합) 능력과 갈등관계에 놓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기존의 권력 불균형과 불평등을 강화할 수도 있다(사회를 개별 기업가들의 집합으로 보는 무정부주의적자본주의적, 자유방임적소유주의적 비전). 커먼즈 관점과 하이퍼마켓 관점 사이의 차이가 심대하다. 이것을 크립토커머너들과 비트코인브로들(BitcoinBros)이 서로 공존하며 경쟁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라고 생각해보자. 누구든지 이기는 쪽이 미래를 차지할 것이다.

<크립토 커먼즈 개더링 2021>에 모인 참석자들은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시스템 설계는 다음의 공유된 원칙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 이해관계자 인센티브 일치는 꼭 해야 하는 일이다.
  •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오픈소스여야 하며, 강력한 공학적인 실천들을 통합하는 반복적인 개발을 보장하는,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의미론적으로 호환이 되는 프로토콜을 가능케 해야 할 것이다.
  • 다중심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 시스템은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y) 개념에 기반을 둔 생태경제학을 포함해야 한다.
  • 그것은 설계상으로 생체 모방이어야 한다.

맨스키는 다음 단락으로 글을 맺는다.

우리의 목표는 크립토 커먼즈와 전 세계 협동조합 운동을 연결하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관건은 자본주의에 투여되던 자금 가운데 수조 달러를 더 순환적인 경제로 돌리는 데 어떤 종류의 도구와 생태계가 가장 잘 활용될 것인가였다. 우리가 공유한 합의는 다음과 같다. 정확한 계획과 절차가 정해지는 데 수년이 걸릴지라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이 새롭고 재생성적인 시스템 하에서 모든 인류를 연합시키는 데에는 함께 나눌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공들여 만드는데 전념하고 있다. 함께 말이다.

 




암호화폐의 안정성에 관하여


  • 저자  :  브라이언(Dick Bryan), 비르타넨(Akseli Virtanen)
  • 원문 : Whose stability? (2018.05.15)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웹진 <미디엄>에 2018년 5월 15일 자로 실린 글 Whose stability?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은 이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린 글 What is a crypto economy?의 후속편이다. 이 글에는 “Reframing stability in the crypto economy”(‘크립토경제에서 안정성의 틀을 다시 만들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저자는 브라이언(Dick Bryan)과 비르타넨(Akseli Virtanen)이다. 이 두 저자는 네그리와 하트가 Assembly에서 자본주의적 화폐에 대한 대안적 화폐인 ‘공통적인 것의 화폐’(a money of the common)라고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말한 것을 실제로 금융현실 속에서 탐구하는 경제학자들이다. 브라이언이 래퍼티(Michael Rafferty)와 같이 쓴 책 Capitalism with Derivatives (Palgrave Macmillan, 2006)와 논문 “Financial Derivatives and the Theory of Money,” Economy and Society, 36:1 (2007), “Fundamental value: a category in transformation”, Economy and Society, 42:1 (2013)도 자본주의의 고전적 전제의 변형을 탐구한다는 맥락에서 주목에 값한다. 블록체인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그것을 ‘통째로’ 좋다거나 나쁘다고 하는 반응들이 학자들에게서든 일반인들에게서든 종종 보인다.((이런 반응을 양성한다는 점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주류 언론이다. 양비론 혹은 양시론으로 나름대로 세련되게 무장한 듯하지만, 사실 이는 ‘통째로’ 반응, 들뢰즈·가따리의 말을 빌자면 그램분자적 반응의 무력한 변형태일 뿐이다.))  음식의 경우 재료를 손질도 안 하고 통째로 먹는 법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말고는) 없고 먹은 음식이 통째로 우리의 몸에 (구성성분이나 에너지로) 흡수되는 법은 결코 없는데, 이는 음식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분자적 차원으로의 분해 혹은 들뢰즈·가따리의 말을 빌자면 ‘분자적으로 되기’의 지혜를 발명하는 것이 언제나 필요하며 암호화폐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체의 활력이 가진, 세상을 바꾸는 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온전한 ‘객체’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주기를 바란다.

 

암호통화들의 불안정한 가치에 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맞추어 코인 가치들을 안정화하는 메커니즘들이 매력을 더해간다.

 

안정성이라는 목표

안정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신뢰와 평판이 생긴다. 미국의 달러가 안정성의 벤치마크로 간주되고 암호통화들은 군소 통화로 머물러 있는 한 암호통화의 휘발성이 주된 문제로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암호통화들이 벤치마크로 간주되고 미국 달러가 그에 비교해서 휘발성을 가진 것으로 서술되는 세계를 상상할 수도 있다. 아직은 저 멀리 놓여있는 세계이지만.

그런데 이런 형태의 안정성이 진정으로 우리의 목표인가?

근본적인 문제는 암호통화들이 단지 화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호통화들은 부분적으로는 화폐이고 부분적으로는 자산이며 부분적으로는 정치적 조직화이다. 우리가 ‘안정성’을 고찰할 때에는 이런 차원들이 주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제안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안정성’을 화폐의 세 기본적 기능—① 교환수단 ② 가치의 저장 ③ 회계의 단위— 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

 

교환수단

가치가 오래 유지되는 가치단위가 교환수단으로 바람직하다. 그런데 통화의 단위가 여럿일 경우 상이한 화폐들을 같은 척도로 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통일적 작동의 유지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짧은 시기인 1944-1977년 동안에만 일국 통화들의 가치의 상대적 안정이라는 목표가 추구되었던 것이다.(고정환율) 더 나아가 그 과정에서 준비통화인 미국의 달러와 연방준비제도(the Federal Reserve)가 지구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환율이 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화폐는 기술적(技術的메커니즘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다. 각 통화가 적용되는 영토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그 통화에 반영된다. 각 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다 다르며 같은 척도로 잴 수가 없다. 시장가격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틈(divisions)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각 통화들의 교환비율은 변동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경제학자들은 국제수지의 적자와 지불해야 할 잉여(과거)를 이 틈으로 보았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이자율(미래)이 그 틈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데 실제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너무나도 복잡해서 이 틈과 균열을 고려하기 위해 급속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팔씨름이 일어나고 이는 투기적인 ‘노이즈’ 거래에 의해 추동되는 휘발성으로서 발현된다.

 

가치의 저장

스테이블코인의 옹호자들은 암호통화들이 그 휘발성으로 인해서 가치저장소로서 작동하지 못한다고 말하겠지만, 이는 좀 낡은 생각이다. 전통적으로 현금이 가장 안전한 가치저장소이다. 가장 유동적인 자산이며 국가가 책임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미리 막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적 안정성을 확보하지는 못하지만 그 시도에 대량의 재원을 지출할 수는 있다. 국가채권은 같은 이유로 장기적인 가치저장소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이제 시대에 뒤떨어졌는데, 암호화폐의 관점에서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현금과 국가채권은 음의 수익률(negative returns)(디플레이션, 음의 이자율)로 인해서 그 안전성에 도전을 받고 있다.

금융시장은 안정성을 점점 더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다.

1. 개별 자산의 독립적 가치의 안정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관련이 없으며 개별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자산들의 포트폴리오(총체)의 안정성을 본다. 후자의 경우 상이한 자산들의 휘발성은 각기 상이한 패턴을 따르며 서로 상쇄한다.

2. 자산 총체의 전반적 휘발성에 방비하게 위해서 파생상품 포지션을 취한다.

이 틀에서는 모두 합해서 특정 수준의 가치 안정성을 나타내는 여러 자산군들의 스펙트럼(a spectrum of asset classes)에서 암호통화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안정성을 이렇게 보는 관점에서는 암호자산들의 역할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진화 중이며 이 진화는 다음에 의존한다.

ㄱ) 암호자산이 증권시장, 부동산, 자산유동화증권(asset-backed securities)의 가치와는 상이하게 순환하는 휘발성을 가진다.

ㄴ) 암호자산이 투자은행, 헤지펀드, 펜션펀드(연금기금)의 포트폴리오들에 통합된다.

이렇게 되려면 암호자산 시장이 더 성숙되어야 한다. 아직은 이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도달하게 될 것이다.

 

회계 단위

이제 우리는 실질적 요점에 도달했다. 회계단위로서 암호통화는 미국 달러화와의 관계에서 안정적으로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그 역할과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화(그리고 법정불환지폐 일반)는 가치를 구성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생각들을 반영하고 시행하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화폐는 기존의 소유체계를따라서 분배체계를 코드화한다. 이것이 화폐가 단지 기술적인 메커니즘이 아니라 사회적 메커니즘인 가장 심층적인 이유이다. 회계단위로서의 법정불환지폐가 교환에서의 등가를 측정하고 그 과정에 (재화와 서비스를 실제로 창출하고 시장에 가져온) 사회적 관계의 미덕을 함입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윤과 손실, 소득과 지출을 참조하여 경제를 틀짓는 문화를 함입하며 이 벤치마크들을 정부들, 회사들, 가구들, 심지어는 개인들에게 적용한다. 우리가 이러한 관행들을 사회적으로 (손실을 낳는 활동을 지원하고, 인권이나 환경과 관련하여 이윤을 할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제한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통용되는 법정불환지폐에 내장된 개인주의, 사적 소유 그리고 이윤추구의 우선성을 어쩔 수는 없다.

이러한 사회적 생각들이 도전을 크게 받으면 법정불환지폐는 불안정해진다. 만일 우리가 부자와 빈자 사이의 대대적인 소득 재분배를 요구한다든가, 이윤과 임금 사이의 비율 전환을 요구한다든가, 비임금 활동에 대한 ‘합리적인’ 보수를 요구한다든가, 생산결정을 추동할 중요한 환경적· 사회적 기준을 요구한다든가 하면 국가는 ‘감당할 수 없다’, ‘재정적자를 낳을 것이다’, ‘투자와 노동의 인센티브를 망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정부가 기반을 둔 전제 위에서는 대충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핵심은 얼마나 재정을 지출하게 되느냐가 아니라 사회적 지각 변동이다. 2007-2008 전지구적 금융위기의 맥락에서 금융기관들을 위한 구제금융은 감당할 수 없다거나 인플레이션을 낳을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구질서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암호통화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이 통화들을 사용하여 전과는 다른 사회적·경제적 과제들을 표현할 수 있고 사물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점전과는 다른 인센티브들을 실행하고 그 효과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는 설계 문제가 된다. 이것이 전과는 다른 사회·경제적 과제들을 구축하기 위한, 그리고 ‘이윤’이나 ‘효율성’ 같은 개념들에 구현된, 사회적 기여를 사적이고 개인적으로 측정하는 규칙들을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되돌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암호통화의 ‘안정성’은 미국 달러화와는 무관하다. 여기서 안정성은 암호통화가 ㄱ) 통화의 존재근거가 되는 활동과 결과가 제대로 수행되고 이루어지는 신뢰할만한 가치의 척도로서 그리고 ㄴ) 그 활동과 결과를 사회적으로 타당화하는 것(이는 사람들이 통화를 가지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의해 확증된다)으로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암호통화가 이런 식으로 틀이 지어지면 법정불환지폐와의 그 어떤 상관관계도 우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암호통화에 대한 가치평가가 단지 이 두 기준을 반영하기만 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투기적’ 거래가 암호통화 가격이 움직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위의 논의가 함축하는 바

암호통화의 ‘안정성’은 3개의 상이한 목적과 연관된 3개의 상이한 의미를 가지는 듯하다.

화폐 기능

암호화폐 안정성의 기준

법정불환지폐와의 차이는?

교환수단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

없음

가치의 저장

자산 포트폴리오 내에서의 리스크/수익(return) 계산.

안정성의 관건은 이 계산의 확증 가능성이다.

유사하지만 다름. 포트폴리오 내에서 (상이한 리스크/수익 특성을 가진) 상이한 자산군.

회계의 단위

포스트자본주의적 생산의 가치

다르면서 대립적임

 

이 차이에 비추어본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의 옹호자들은 암호화폐를 법정불환화폐와의 직접적 유사성으로 틀짓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교환수단 기능에 특권을 부여하고 가치 저장에서의 안정성을 교환에서의 안정성의 직접적 귀결로 본다.

따라서 그들의 목표가 중앙은행의 역할(화폐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 준비금을 사고파는 것)에 의존하는, 혹은 이윤에 대한 대가로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짊어지는 민간 인수회사들[증권회사들]에 의존하는 안정성 메커니즘들을 (재)발명하는 것이라는 점은 놀랍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틀짓기를 개념적으로 비판했는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교훈을 얻은 바 있다. 1990년대의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헤지펀드들이 미국 달러화에 연동된 환율을 감독하는 일국 중앙은행들과 맞서는 일이 있었다. 중앙은행들은 그 엄청난 준비금에도 불구하고 방어할 수 없는 환율을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에 졌다. 중앙은행들은 특정의 환율을 방어함으로써 보장된 재정거래기회(arbitrage opportunities)를 헤지펀드들에게 제공했다.(([정리자] 재정거래(arbitrage)란 어떤 시장에서 증권을 구매과 동시에 가격이 더 높은 다른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다.)) 헤지펀드들은 중앙은행이 가진 주권적 힘이 없으면서도 신용 라인들과 파생시장에서의 단기 포지션들을 사용하여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변동시세제를 택하도록 강요할 수단을 획득했다.

이는 미래에도 적용될 교훈이다. 암호화폐가 미국 달러화와 동등한 지위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암호 스테이블코인 투매가 시작되면, 스테이블코인 회사의 준비금이 아시아의 일국 중앙은행들이 가진 준비금보다 더 뛰어난 수행능력을 가지리라고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시장에서 고정된 환율이 지속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매도의 표적이 되면 붕괴하게 되어있다.

문제를 더 단순하게 볼 수도 있다. 만일 목적이 법정불환통화와의 관계에서 안정적인 암호화폐를 가지는 것이라면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블록체인의 능력을 통합하여 자신들의 고유한 암호화폐를 발행할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게 어떤가.

만일 이와 달리 국가로부터 분리된 암호화폐를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핵심은 ‘분리의 목적이 무엇인가?’이다. 만일 단지 교환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면 민간 암호화폐들은 항상 국가 암호화폐들보다 덜 안정적이리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 생각에는 있다.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경제를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경제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크립토경제를 구축하는 이유는 분명, 금융이 이른바 실물 경제의 독립적인 척도로서의 화폐라는 범주를 넘어선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있다. 금융혁신에서는 많은 자산들이 화폐의 유동성을 획득하며 화폐와 다른 자산 사이의 구분이 붕괴된다.(이에 대해서는 크립토경제란 무엇인가? 참조」) 그 결과 객관적인 측정단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가려졌던 화폐의 사회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정리자] 네그리와 하트는 화폐의 ‘사회성’을 화폐가 “사회적 관계를 제도화하는” 능력에서 본다.)) 암호화폐의 핵심은 그 사회성을 탐구하고 재가동하는 것이다지금과는 다른 경제가 어떨지에 대한 안들을경제를 다르게 하는 방법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틀짓기가 ‘안정성’을 무시한다는 말은 아니다. 핵심은 우리가 넘어서고자 하는 체제에 준거하여 안정성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파악된 크립토경제의 수행에 준거하여 정의하는 데 있다. ♣

 

[부록]

아래는 네그리와 하트의 Assembly 11장 1절에 나온 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표의 제목은 “The Social Relations of Capitalist Money”(‘자본주의적 화폐의 사회적 관계’)이다. 

 

1. 시초 축적

2. 매뉴팩처 및 대규모 산업

3. 사회적 생산

a. 생산의 시간성

과제에 따른 노동시간과 자연의 리듬

시계의 시간과 노동일의 분할

논스톱 전지구적 체계의 24/7 시간

b. 가치 형태

절대적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

삶정치적 잉여가치

c. 추출 방식

정복과 강탈

산업적 착취와 식민지 추출

공통적인 것의 전유로서의 추출

d. 재산의 형태

부동 재산

유동 재산

재생산 가능한 재산

e. 노동력의 구성

장인노동과 일반 노동의 조련(dressage)

매뉴팩처링과 산업노동의 조직화

사회적·인지적 노동

f. 실현의 시간성

동시간적 가치실현

포디즘적 신용체제의 시간성

미래로 투사된 금융적 실현

g. 계급투쟁의 형태

민중투쟁 혹은 자크리

노동계급의 투쟁과 파업

삶정치적 사회투쟁 및 사회 파업

h. 적대적 정치조직화의 형태

길드와 상호부조단체

노동조합과 당

사회적 연대

i. 화폐 창출의 원리

국립은행의 화폐 창출

국립은행과 기업의 화폐 창출

금융적 화폐 창출

j. 거버넌스 형태

식민주의 왕정과 주권

제국주의적 과두체제와 훈육

제국과 삶정치적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