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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이 어긋난 신자유주의적 행정


  • 저자  :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네그리와 하트의 책 Assembly(2017)의 12장 「관절이 어긋난 신자유주의적 행정 」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2장의 뒤에 딸린 “Fifth Response”는 제외되어 있다. 다음에 따로 올릴 에정이다.

 

Chapter 12. Neoliberal Administration Out of Joint 207

 

화폐와 금융이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하지는 못한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관계와 생산관계가 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제도들에 의해 운영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일반적 내러티브: 신자유주의적 행정은 근대 관료제(일국적)의 위기에서 나왔다.

보완적 내러티브: 일국 주권과 근대 행정은 외부에서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다양한 형태의 부패를 통해 공동(空洞)화되었다. 기업들의 로비 및 기타 합법화된 부패.

요컨대, 근대 행정과 일국 주권들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이미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이 내러티브들은 유용하다. 그러나 이는 전개과정을 위에서만 보기 때문에 이 시각은 부분적이고 본질적 요소들을 놓치고 있다. 8장에서 이미 말했듯이. 근대 행정을 위기에 빠뜨린 살아있는 동력은 아래로부터 왔다. 즉 생산적 다중의 창조적이고 협동적인 회로들이다. 그 증가하는 능력, 지식, 정보에의 접근, 그리고 고정자본의 재전유.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행정의 제도들과 실행들을 이해하는 열쇠는 다중의 저항, 반란. 자유의 기획, 자율능력에 대한 반응으로 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행정은 근대 관료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만든 에너지와 능력을 봉쇄하고 수습하기 위해 고안된 무기이다.”

 

Neoliberal freedom 208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자유를 정치적 어젠다의 중심에 놓는 보수적·자유주의적 전통의 정점이다. 그 자유들 가운데 일부는 단지 신비화일 뿐이다.

 

개인의 수준이 아니라 사회적 수준에서 보면 자유는 노예상태를 의미한다. 작은 정부도 종종 재산의 보호, 안보장치들, 경계철책들, 군사프로그램들에 드는 예산의 증가를 의미하곤 한다. 즉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이 아니며 정부 활동이나 강압의 감소를 포함하지 않는다. 푸꼬는 “신자유주의적 통치개입은 다른 체계에서만큼이나 밀도 있고 잦으며 능동적이고 연속적이다”라고 썼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신비화된 자유 개념 아래에는 사회적 자율이 맥박치고 있다.

 

푸꼬 : 신자유주의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이제 교환의 파트너가 아니라 개인 기업가이다. 기업가의 일반화.

 

이 기업가 형상은 사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발명품이 아니라 점점 더 자율적이 되는 사회적 생산형태들을 굴절시켜 해석하고 전유한 것이다.

(푸꼬의 강의들 전체에 걸쳐 사회를 가로지르는 저항과 투쟁에 대한 인식이 때로는 낮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사회에서 보이는 기업가 형식의 일반화는 사실 신자유주의와는 반대방향을 가라킨다. 즉 협동적인 사회적 주체성들의 자유와 자율을 가리킨다. “달리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앞에서 그리고 그 아래에서 우리는 다중의 기업가정신을 발견한다.”

신자유주의의 자유 주장을 타당한 것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다. 저항적 주체성들의 힘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개인이 기업가가 되고 자신의 삶을 관리할 자유는 실제로는 대부분 불안정성과 가난으로 옮겨간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푸꼬의 강의를 듣고 그의 비판적 목소리를 긍정으로 오인한 듯하다. 노동자들이 개인 기업가가 되는데 주된 장애는 안정된 평생보장 직업이라고 드러커는 주장한다. 노조가 깨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야 노동자가 늘 자신의 삶에서 혁신하고 갱신할 테니까. 대학이나 정부도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안정 역시 자기혁신을 위축시키니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본질적으로 새처럼 자유롭다, 안정된 직업에서 자유롭고 복지 서비스에서 자유로우며 국가의 지원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자신의 불안정한 삶을 최선을 다해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다 하니 이 얼마나 멋진 위선인가!

 

일본에서 나온 프리터(freeter)라는 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전도된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가 프리터의 자유, 가난과 불안정의 자유이다.

 

신자유주의의 신비화에 분노하여 저 아래 있는 사회적 협동의 동학을 놓치면 안 된다. 다중의 기업가를 놓치면 안 된다.

 

테크놀로지 소비에는 계속적인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는 가장 낮은 수준에서 1인 관료제(a bureaucracy of one)를 창출한다. 자유와 제한을 서로 구분하기 어려운 개인적 자기관리의 구조이다.

금융과 사회적 생산에서 가치를 추출하는 자본형태들은 생산과 협동의 자기관리와 자기조직화에 의존한다.

신자유주의 아래에는 자기관리와 협동의 사회적 형태들이 자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여기서 나오는 가치를 추출하고자 한다.

 

자기(자주)관리는 식민화된 민족들, 페미니스트들, 인종적으로 종속된 사람들, 조직된 노동자들 등의 세계 전체에 걸쳐서 투쟁의 핵심적 요구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정점에 달했다.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공동체 자기(자주)관리의 성공적인 실험 사례들 가운에 일부는 흑표범당의 해방학교 및 어린아이들을 위한 무상아침급식 프로그램; Gabriel Cohn-Bendit가 창립한, 학생과 선생이 함께 관리하는 학교인 Lycee experimental de Sainte-Nazaire; 2001년 경제위기 때 소유주에 의해 버려진 후 노동자들이 되살려 운영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Bauen Hotel; Our Bodies, Ourselves를 출판한 Boston Women’s Health Collective가 있다.

모든 나라, 모든 공동체에 그러한 다중의 기업가정신의 사례들이 풍부하게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 전유는 ① 자유와 자기관리 개념을 집단에서 개인의 규모로 축소한다. ② 다중의 지식과 능력을 포획하고 전유한다. 여기서도 신자유주의는 추출에 의해 작동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자유는 과거의 투쟁의 왜곡된 부호―의미 없이 되풀이 하는 옛날 단어―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형태의 지식, 자율, 집단적 자주관리를 가리킨다. 푸꼬의 말을 명심하라.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에게만, 그리고 그들이 자유로운 한에서만 행사된다.” 열쇠는 그 자유를 찾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그 다음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다.

 

Crisis points of neoliberal administration 212

 

8장에서 말했듯이, 근대의 행정은 지식, 능력, 정보에의 접근이 인구에 일반화되고 행정통제의 경계를 넘쳐흐를 때 위기에 처하게 된다. 또한 자신이 계산하는 사회적 요인들이 점점 더 측정 불가능하게 될 때 무너진다. 행정은 이제 엄밀하게 합리적인 사회적 요인만이 아니라 정동과 주체성의 생산에 그리고 공통적인 것의 부의 포획에 관여해야 하는 것이다. 일국 및 초국적 수준의 행정 및 법 장치들은 점점 더 단편화된다.,

Andreas Fischer-Lescano and Gunther Teubner: 법의 단편화는 전지구적 사회 자체의 단편화를 반영한다.

버넌스의 한 양태로서 신자유주의적 행정은 흘러넘치고 측정불가능하고 단편화된 특징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기를 종식시키지 않는다. 정부와 달리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는 단편들 사이의 약한 양립 가능성에 의존하는 다수적이고 유연한 통제네트워크를 발생시키고 유지한다. 신자유주의적 행정의 열쇠는, 영속적인 위기의 상태에서 기능하고 명령을 행사하고 가치를 추출하는 능력이다. 그 아래 있는 생산적인 사회적 장을 궁극적으로 통제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신자유주의적 행정의 위기점 가운데 첫째는 가치 측정을 중심으로 한다. 특히 사회적·비물질적 생산물과 관련된다. 자본주의 회사들과 근대 행정이 산업 및 농업 생산물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 어찌어찌 성공한 반면에, 사회적 생산물들은 일반적으로 계산에 저항한다. 간호사가 제공하는 돌봄의 가치나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는 콜센터 노동자의 지성의 가치 혹은 문화생산물, 아이디어 등의 가치를 어떻게 수량화할 것인가? “공통적인 것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계산에 저항한다.” 그리고 사회적 생산의 모든 결과는 공통적인 것으로서의 특징을 띤다. 공유에 열려 있고 사유재산으로 폐쇄되기 힘들다. 모두가 사회적 삶형태들을 구성한다. 사회적 생산의 생산물들을 어떤 식으로든 있지만, 그것들의 가치는 할당된 양을 흘러넘친다. “공통적인 것의 가치는 본성상 측정 너머에 있다.”

 

공통적인 것의 가치의 측정 불가능성이 자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테크놀로지들이 측정 불가능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동원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파생상품들이 미지의 가치에 대한 벤치마크를 제공하고 하나의 자본을 다른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메커니즘을 창출한다.

 

그러나 이 테크놀로지들도 전지구적 경제의 토대를 성공적으로 안정화하지는 못한다. 사실 더 휘발성 있게 만드는 쪽이다. 매일 아침 신문에는 경제의 불안정을 나타내는 사건들로 가득하다. 이 불안정은 부분적으로는 범죄적 행위 때문이지만, 체제 차원의 단층선(systemic fault lines)의 징후이기도 하다.

마라치(Christian Marazzi) : “경제적·금융적 위기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 되어가고 있으며, 가치의 불안정성이 한 유발 요인이다.”

금융자본의 지배 하에서는 거버넌스와 위기가 모순적이지 않다. 자본이 위기를 거버넌스의 한 양태로 채택한다.

 

신자유주의적 행정의 둘째 위기점은 정보와 소통에의 접근이다.

각 정부들의 통제 및 감시 노력.

비밀과 감시가 안보 주장에 의해 정당화된다.

 

그러나 아무리 댐을 튼튼하게 해도 인터넷 경찰은 항상 새로운 누수에 직면할 것이다. 어떤 10대가 노트북으로 장애물들을 제치고 금지된 사이트에 접근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항상 일어날 것이다.

 

이주가 셋째 위기점이다.

2014년에 6천만 명이 강제로 이동.

오늘날 2억 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태어난 나라의 바깥에서 산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10분의 1이 이주민들이라고 추산할 수 있다.

 

국민국가들과 초국적 거버넌스 기구들이 무관심한 가운데 활동가들이 이주민들을 돕고 있다.

 

많은 다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주민들은 자유롭고 유동하는 주체들이다.

돕는 사람들도 너무나도 자주 그들을 희생자들로만 본다.

싼드로 메짜드라(Sandro Mezzadra) : “이주의 주체적 측면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온정주의적 시각을 넘어서 이주민들을 오늘날의 전지구적 변형 과정의 주인공들로 볼 수 있다.”

 

부와 가난의 역설을 한데 묶어서 보기.

① 삶의 발판들을 박탈당한 상태.

② 탈주는 자유의 행동이며 강함의 표현이다.

 

주체성의 관점에서 이주자들은 모든 행정적·자본주의적 척도 논리를 넘어선다. 여기서도 신자유주의적 행정은 영속적인 위기관리 장치의 형태를 띤다.

 

자유와 주체성이 생산, 정보에의 접근, 이주를 특징짓는다. “주체성의 생산이 행정의 기능에 필요한 척도의 경계들과 테크놀로지들을 항상 초과한다.” 위기관리가 신자유주의적 행정의 작동양태이다.

 

이렇듯 위기가 신자유주의적 행정의 규칙(규범)이지만 이것이 행정의 매끄럽고 성공적인 기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결과로 규칙적인 위기를 낳는다. 다 효과적이지는 않다는 말이다.

① 사회적 생산의 결과들을 하나의 척도에 종속시키지 못함 ② 정보의 통제 불가능성 ③ 이주의 봉쇄 불가능성 — 이 셋이 행정의 무력(효력을 내지 못함)에 추가되어 혼란스럽고 심지어는 재앙급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Emptying the public powers 218

 

신자유주의 행정은 액체 거버넌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공적인 힘들(공적인 것)을 비워내고 행정 기능에 자본의 논리를 부과하는 프로젝트를 향해서 정렬된 분산되고 무질서한 연관들로 짜인 내구성 있는 직물과 더 닮았다. 그러나 주체성들은 결코 그 규칙에 맞추어져 기능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행정을 분석할 때 하나의 과제는 어떻게 신자유주의 너머를 지향하는 저항과 반란의 잠재력이 아래로부터 출현하는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행정이 공적인 것을 비워내는 양태

①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의 부의 이전

민영화

국가부채

긴축정책이 국가 재산을 팔게 함. 예) 2015년 그리스의 부채 드라마.

불법적 수단을 통한 부의 이전. 공적 기금의 횡령, 공공 자산의 부적절한 판매, 허위 토목공사 도급, 뇌물 등.

드러난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다.

“부패가 신자유주의 행정의 거버넌스 및 규범적 구조의 구성적 요소가 되었다.”

② 다양한 내적·외적 압력을 통해 국가행정장치의 핵심 기능을 변형하기

외부 압력: 예를 들어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협박하여 일국의 결정능력을 압도하기

내부 압력 : 민영 싱크 탱크, 로비스트들의 입법 지시, 선거에의 합법적 기여

 

그런데 이 현상은 더 일반화된다. 행정력이 사유화되고, 시장의 척도가 행정수행의 벤치마크가 되며, 행정 결정에 경제적 기준들이 침투함으로써 정치적인 것 자체가 공동화(空洞化)되고 있다.

Wendy Brown: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합리성이 정치적인 것에 위로부터 부과되는 것 + 경제적 논리에 의해 구성된 새로운 주체들의 창출>로 정의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호모 폴리티쿠스를 정복하기”이다.

법 실행과 법 이론이 신자유주의 행정이 부리는 무기들 가운데 일부이다.

 

우리는 공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이전 지위를 복원시키려는 마음은 없다. 아래에서 보면, 신자유주의에 저항 행동들과 생산적 활동이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매끄럽거나 안전하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항상 저항과 투쟁의 장소로 남아있다.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의 세 전선]

① 투명성

신자유주의 행정의 전략적 불투명성과 싸움.

② 접근

행정 및 기업 활동에 빛을 비추면 비리를 막을 뿐만 아니라 생산적 지식과 정보를 사회 일반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사회적 생산 수단의 자유로운 사용.

③ 의사결정

의사결정에 관한 문제가 양자를 통합하여 우리를 정치적 지형에 세운다. 그러나 이는 앞에서 말한 바처럼 정치의 자립성을 경제적 합리성으로부터 구출하는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종속에 맞서는 주체성들의 잠재적 생산을 지향하게 한다.

 

이 모든 전투에서 주된 전선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세계이다.

디지털 감시

신자유주의적 보안 장치들과 사회적 미디어 기업에 의한 공통적인 것으로부터의 추출 사이에는 강한 연속성이 존재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이중적 역할 : ① 사회적 생산이 포획과 신자유주의 행정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는 동시에 ② 다중으로 하여금 지식, 소통, 자기행정 능력에 접근하도록 허용한다. 7장에서 말한 고정자본의 재전유가 해방기획을 위해 이러한 힘들을 이용할 한 수단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가 결코 만만한 대상은 아니다. 자본과 신자유주의가 가진 무기는 종종 우리를 완전히 무력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낙관주의나 절망 어디에도 빠지지 않고 하는 말이다) 신자유주의의 명령과 단절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주체성과 사회적 삶의 생산을 위한 잠재력을 우리의 상황이 제공함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IV부에서 다룰 과제는 이 지형 위에서 혁명적 과정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조직할 것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