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그나카르타만큼 중요한 삼림헌장에 대하여 결코 들어보지 못한 이유



 

지탄을 받던  존 왕이 사망하고 링컨 전투에서 프랑스의 침략을 물리친 이후인 800년 전 11월, 영국 정체(政體)의 주춧돌 중 하나가 마련되었다. 바로 삼림헌장(the Charter of the Forest)인데, 이는 2년 전에 비해 짧아진 (나중에 ‘마그나카르타’라고 불리게 되는) 자유헌장(the Charter of Liberties)과 나란히 1217년 11월 6일에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조인되었다.

삼림헌장은 통치권에 강제된 최초의 환경 헌장이었다. 삼림헌장은 재산 없는 사람들의 권리, 커머너의 권리 및 커먼즈의 권리를 가장 먼저 강력하게 천명했다. 삼림헌장은 또한, 생계자급 수단에 접근하고 재혼하는 것을 거부할 상부(孀婦)의 권리를 인정하는 페미니즘의 정신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얼마간의 진보를 이룩했다.

삼림헌장은 다른 어느 법안보다도 오랫동안 법령집에 올라 있던 영예를 갖고 있다. 삼림헌장은 754년 후인 1971년에 토리당 정부에 의해 폐지되었다.

2015년, 마그나카르타 기념일을 축하하는 데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던 정부는 상원이 제출한 서면 질의에서 올해 삼림헌장을 기념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법무부 장관인 폭스 경(Lord Faulks)은 삼림헌장이 중요하지 않다고, 세계적인 의의가 없다고 말하며 그 의견을 가볍게 일축했다. 

그러나 올해 초 <미국 법조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는 삼림헌장이 미국헌법의 토대였었고 헌장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옳았다.

우파가 삼림헌장을 무시하고 싶어 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삼림헌장의 핵심은, 재산 없는 사람들의 경제적 권리를 위해 사유재산권을 제한하고 토지 종획을 철회하여 커먼즈에 광활한 땅을 돌려주는 것이다. 삼림헌장은 놀랍게도 전복적이었다. 슬프게도 모든 어린 학생들이 마그나카르타에 관해 배우는 데도 삼림헌장에 대하여 들은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동안 삼림헌장이 마그나카르타를 주도했다. 삼림헌장은 일 년에 네 번 영국에 있는 모든 교회에서 낭독되었다. 삼림헌장은 왕, 귀족계급 및 신흥 자본가 계급에 의한 커먼즈의 종획과 약탈에 대항하는 투쟁을 고취했다. 잘 알려진 대로 17세기에 디거파와 수평파들의 투쟁에,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에 종획에 항의하는 투쟁에 영향을 미쳤다.

쓰임이 사라져 버린 단어들이 해석되지 않는 한 이해하기 힘든 삼림헌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커먼즈이다. 즉 커먼즈를 보호하고 커머너의 손실을 배상할 필요성이다. 남아 있는 커먼즈를 민영화하고 상업화하고 있는 정부가 커먼즈를 모르는 체하고 싶어 하는 것이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1066년에 정복자 윌리엄은 자신이 몰고 온 패거리들에게 공유지(커먼즈)의 일부를 분배했을 뿐만 아니라 드넓은 커먼즈 지대를 ‘왕의 삼림’ 즉 자신의 사냥터로 만들어 버렸다. 토지 대장(the Domesday Book)이 작성된 1086년에 그러한 삼림이 25개였다. 윌리엄의 계승자들은 왕의 삼림을 확장했고 전쟁자금을 조성할 수익 지역으로 전환시켰다. 1217년에 왕의 삼림은 143개였다.

삼림헌장은 역전을 이루어냈고 자유민들이 숲에서 생계를 추구할 권리를 군주가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삼림의 개념(([옮긴이] ‘삼림’(forest)은 ‘숲’(woods)의 의미 차이는 http://minamjah.tistory.com/search/마그나카르타 참조))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넓었으며 다트무어(Dartmoor)와 엑스무어(Exmoor) 같이 나무가 거의 없는 마을과 지역을 포함했다. 삼림은 커머너들이 협력해서 살며 일하는 곳이었다.

삼림헌장에는 17개의 조항들이 있다. 그 조항들은 자유민들이 커먼즈에서 생계자급을 위한 모든 요소들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일할 영원한 권리를 천명한다. 이 권리에는 과일을 딸 권리, 건물을 짓는 등의 목적을 위해 나무를 할 권리, 도구와 집에 필요한 땅을 파고 흙을 사용할 권리, 방목할 권리, 낚시할 권리, 연료용 토탄을 가져갈 권리, 물을 관리할 권리, 심지어 꿀을 딸 권리와 같은 기초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삼림헌장은 원료와 생산수단을 획득하는 커머너들의 권리를 천명하고 노동할 권리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했으므로 우리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삼림헌장은 특히 삼림사법관(Verderer) 제도를 통해 지방 의회 및 사법제도의 발전을 준비했는데, 이 삼림사법관 제도가 치안판사 재판소로 가는 길을 다졌다.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삼림헌장은 종획을 반대함으로써 제도상의 자유를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커먼즈의 관리와 관련하여 커머너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함으로써 행위상의 자유도 확대했다.

삼림헌장은 공동 출자된 자산과 자원의 공동체적 파수라고 현재 불리고 있는 것의 토대를 마련했다. 삼림헌장의 에토스는, 자연 커먼즈를 자본화하고 거기서 수익을 내려고 하는 정부의 과시적인 <자연자본위원회>(Natural Capital Committee)와 대조를 이룬다. 커먼즈는 이윤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위해서 존재한다.

수 세기에 걸쳐서 삼림헌장의 에토스는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아왔다. 천만 에이커의 땅을 몰수해서 총신들에게 분배한 헨리 8세가 속해 있던 튜더 왕가가 가장 지독했는데, 이 총신들의 후손들은 여전히 수십만 에이커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1845년의 종획법은 사유재산권의 주장을 모방하는 또 다른 대규모 토지수탈이었다. 1760년과 1870년 사이에 토지를 소유한 엘리트층이 도입한 4천 개가 넘는 의회의 법령에 의해 700만 에이커의 커먼즈가 몰수되었다. 오늘날 영국의 토지소유권 구조는 조직화된 절도의 결과라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수백 년에 걸친 박해를 견뎌왔음에도 불구하고 삼림헌장의 에토스는 여전히 살아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들의 바탕이 된 신자유주의적 경제패러다임의 한 가지 특징이 커먼즈를 무시하는 태도인데현 영국 정부는 긴축정책이라는 용어를 핑계 삼아 이제는 무시의 태도에서 약탈의 태도로 전환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수만 에이커의 연방 커먼즈를 석유가스 산업 관련 기업들에게 거저 나누어 주기 위한 준비를 조용히 해오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커먼즈는 가격이 없고 따라서 가치도 없다. 그래서 커먼즈는 뜬재물처럼 팔리거나 신자유주의자들의 지지자들에게 넘어갈 수 있다. 삼림헌장은 커먼즈에서 생계자급을 할 권리를 천명함으로써 기성 체제에 대안이 되는 원칙을 인정했는데, 우리의 조상들이 바로 이 원칙을 용감하게 지켰던 것이다. 우리도 이제 그렇게 해야 한다. 커먼즈의 약탈에 저항하고 커먼즈를 부활시켜야 한다.

한 단체가 그런 일을 하는 일련의 행사들을 조직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전국 수준과 지역 수준의 <커먼즈 헌장>들을 만들어내는 일이 기념일에 발표될 훌륭한 <나무•숲•인민 헌장>과 함께 진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우리 나름의 노력들은 삼림헌장에 소중히 간직되어 있는 환경원칙들을 강조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 기본소득 운동을 뒷받침하는 생계자급권리가 이 전복적인 헌장의 핵심에 놓여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캠페인은 상징성을 담은 한 행사, 즉 9월 17일에 윈저에서 러니미드까지 가는 템스 강 바지선 왕복여행으로 시작되었다. 러미니드에서는 <커먼즈 헌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식 행사가 2500년 수령의 어마어마한 앵커위크 주목나무(Ankerwycke yew) 밑에서 개최되었다. 러니미드 목초지는 커먼즈를 상징한다. 이전에 토리당 정부가 그곳을 사유화하려고 했으나 영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조직한 점거운동이 성공적으로 경매를 막아냈다.

바지선 여행의 상징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가렛 새처는 1989년에 식수를 민영화했다. 그녀는 아홉 개의 기업들에게 지역 독점권을 주었고 커먼즈에 속한 40만 에이커 이상의 땅을 그들에게 양도했다. 오늘날 대부분 소유주가 외국인인 이 기업들은 영국의 상위 50대 토지 소유자들에 속한다. 그들은 삼림헌장의 원칙들을 조롱한다. <템스 워터>(Thames Water)는 외국인 주주들에게 16억 파운드를 배당금으로 지불하면서도, 하수 14억 톤을 처리하지 않고 템스 강에 흘려보낸 것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혼이 좀 났고 또한 새는 곳을 수리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삼림헌장은 커머너들에게 물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천명했다. 물은 공공재가 되어야 하며, 가장 우선적으로 재(再)국유화되어야 한다.

프래킹[수압균열법]((Fracking에 관한 설명은 http://minamjah.tistory.com/101?category=452913 참조.))을 규탄하는 셔우드 숲에서의 행사뿐만 아니라 두 개의 헌장 초안 중 하나가 보관되어 있는 더럼(Durham)에서도 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11월 7일에 영국 하원의 한 회의에서 <커먼즈 헌장> 초안을 논의할 것이다. 다른 원본 헌장이 보관되어 있는 링컨 시에서는 노동당(the Labour Party)이 11월 11일에 열릴 행사를 조직하고 있다.

자세한 정보는 www.charteroftheforest800.org에서 얻을 수 있다. 아직 접촉하지 않은 조직으로서 자신들의 어젠다가 이러한 행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 알려주기 바란다. 우리는 모든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며, 모든 커머너들이 일어나길 바라며, 커먼즈를 부활시키는 것이 미래를 회복하는 데 핵심임을 우리 모두가 기억하기를 바란다.




800살 된 삼림헌장



 

2년 전 마그나카르타 800주년(([옮긴이] 마그나카르타는 1215년에 작성되었다.))에 왕의 권력에 제한을 가하고 법치를 확립하는 쪽으로의 전진을 나타내는 이정표로서 마그나카르타를 요란스럽게 찬양해대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 대헌장과 짝을 이루는 삼림헌장(the Charter of the Forest)에는 주의가 훨씬 덜 기울여졌다. 삼림헌장은 커머너들의 생계에 매우 중요한 삼림에 접근할 수 있는 관습적 권리를 커머너들에게 보장하는 문서였다.(([옮긴이] 봉건 시대의 맥락에서 ‘삼림’(forest)은 ‘숲’(woods)의 단순한 유사어가 아니라 보통 왕의 관할 아래 둔 사냥터로서의 숲이라는 법적 의미를 가진다.))

이 권리는 왕과의 오랜 내전 끝에 확보되었다. 왕은 그 이전에는 삼림에 대한 배타적 통제력에 대한 주장을 무자비하게 확대하여 삼림 침범자들에게 벌금이나 투옥으로, 때로는 사형으로 처벌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800년 전인 1217년 11월 6일에 헨리 3세가 삼림헌장을 작성하여 커머너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관습적 권리를 문서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커머너들은 거의 모든 것을 삼림에 의존했다. 삼림은 불을 때고 집을 지을 나무를 공급했으며 양을 비롯한 가축을 키울 방목지를 제공했고 식량으로 삼을 사냥감을 제공했다. 삼림에는 버섯, 개암, 딸기류, 민들레 잎, 기타 수많은 초본이 있었다. 또한 삼림은 돼지를 먹이기 위한 도토리와 너도밤나무의 열매의 공급원이었고 빗자루를 만드는 나무를 공급했으며 온갖 종류의 병에 약초를 제공했다.

영국의 박물학자 리처드 메이비(Richard Mabey)는 “그 어떤 다른 종류의 풍경보다도 [13세기 영국 삼림]이 공동체적 장소인데, 그 구조에 여러 세대에 걸쳐 공유된 자연 및 인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고 썼다.

어떻게 이 삼림헌장이 거의 잊혀질 지경이 되었는가? 역사가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는 그의 놀라운 책 『마그나카르타 선언』(The Magna Carta Manifesto)에서 이 두 자유의 헌장이 종종 공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마그나카르타’라는 이름 자체가 1215년의 ‘대헌장’(Great Charter)을 2년 뒤에 선포된 ‘소’헌장인 삼림헌장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297년이 되어서야 에드워드 1세가 두 헌장을 나라의 단일한 법으로 취급할 것을 명령했다. 1369년에 에드워드 3세는 둘을 하나의 성문법으로 통합하는 법을 발포했으며 여기서 삼림헌장은 마그나카르타의 7장이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삼림헌장은 대헌장의 사소한 부분 집합으로 간주되었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대영도서관이 관리하는 중세문서원본 블로그(Medieval manuscripts blog)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어떻게 우리를 과거에 연결해주는가」(“how our ancient trees connect us to the past”)라는 훌륭한 글이 올라있는데, 이 글은 삼림헌장을 언급하면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헌장의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을 나에게 알려준 후안 카를로스 데 마르틴Juan Carlos de Martin과 우고 마테이Ugo Mattei에게 감사한다.) 이 글에 따르면 영국삼림트러스트(British Woodland Trust)의 <고령高齡 수목 목록>(Ancient Tree Inventory)에는 12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올라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1000살 이상이 되었는데, 이는 이 헌장이 발포될 때에 있었던 나무들이다.

이 글은 또한 어떻게 삼림헌장이 “삼림 영역을 땅이 불법으로 취해졌음을 입증할 수 있는 곳에서는 1152년 헨리 2세의 통치가 시작될 때의 경계로 되돌렸”는지를 말하고 있다. (“헨리 2세는 삼림의 경계를 압제를 발생시킬 정도까지 맹렬하게 확대했”던 왕이다.) 이는 커먼즈(공유지) 되찾기의 이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커머너들에게 이 헌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2년 전에 마그나카르타 8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나는 베를린에 있는 <하인리히 뵐 재단>에서 「누가 왕의 삼림을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 시대에 마그나카르타가 가지는 의미커먼즈 그리고 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나의 초점은 민중의 일상적 생존 욕구를 충족시키고 인간의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서 마그나카르타(즉 삼림헌장)가 법으로서 중요하게 기능하는 점에 두어졌다.

이 헌장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물려받은 공통의 부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누가 왕의 삼림을 사용할 수 있는가?’ 1200년대 초의 커머너들은 이 물음에 대한 즉답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왕의 삼림’이라니. 그건 우리 것이야. 수세기 동안 우리 것이었어!”

커머너들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권리—삼림을 사용할 권리, 나름의 통치 규칙을 자기조직화할 권리, 왕의 자의적인 권력남용을 막아줄 시민 자유권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마그나카르타의 잊혀진 유산이다. 이 모든 것들이 문서로 쓰인 법이라는 생각보다 앞섰다. 그 권리들은 근본적인 욕구와 오랫동안의 전통에 기반을 둔 인간의 권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 권리들이 근대 국민국가 및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계속 삭감되었고 많은 경우에 제거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들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광범하게 시행될 수 있는 권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이탈리아의 법학자 스떼파노 로도따(Stefano Rodota)는 이 원칙을 되살리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말이다.

근대에 커먼즈를 위한 법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커머너들이 무자비한 시장/국가로부터 지구의 생태계의 파수꾼들로서 행동할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삼림헌장에 축배를 들고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기억하자. 우리는 앞으로 그것을 위한 영감과 학습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업데이트 : 펠리시티 로런스(Felicity Lawrence)는 『가디언』지에 삼림헌장에 관한 글 「부의 공정한 공유를 위해서는 13세기로 돌아가자」(“For a fairer share of wealth, turn to the 13th century”)라는 글을 막 게재했다.((로런스의 글은 이 글보다 하루 늦은 2017년 11월 8일에 게재되었다.)) 또한 웹진 openDemocracyUK에 실린 <영국사회과학원>(UK Academy of Social Sciences)의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훌륭한 글도 이곳에 가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