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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 저자  : Peter Linebaugh, Sasha Liley
  • 원문 :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 (https://kpfa.org/episode/against-the-grain-april-8-2020/)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Pacifica radio>의 프로그램 ‘Against the Grain’에서 2020년 4월 8일에 있었던 싸샤 릴리(Sasha Liley)와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의 인터뷰 내용을 (약속한 대로^^)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상황에서 라인보가 30년 전인 1989년에 쓴 팸플릿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인터뷰 당사자들에 의해 읽기 좋게 편집된 텍스트는 정리자가 알기에 현재로서 없으며, 정리자가 직접 팟캐스트를 듣고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했다. 내용 정리이지만, 잘 읽힐 수 있도록 인터뷰의 형식과 어투는 유지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내용을 이미 정리해서 옮겼으니 서로 교차해서 참조할 수 있다.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싸샤 릴리(Sasha Liley)
인간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바이러스들과 기생체들이 인간을 괴롭혀왔습니다. 계급사회의 출현 이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고통에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기생체들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역사가 피터 라인보(Perter Linebaugh)는 HIV 에이즈라는 유행병이 도는 와중에 이 역사를 추적한 바 있습니다. 라인보는 『마그나카르타 선언』(The Magna Carta Manifesto), 『메이데이의 완결되지 않은, 진실하고 진정하며 놀라운 역사』(The Incomplete, True, Authentic, and Wonderful History of May Day) 등의 저자입니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는 『뜨겁게 불타는 붉고 둥근 지구』(Red Round Globe Hot Burning)가 있습니다. 라인보, 당신은 1989년에 <ACT UP>(the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민중의 힘을 촉발하기 위한 에이즈연합)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는데요,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라고 이름을 정한 팸플릿을 쓰게 된 맥락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
저는 보스턴에서 <ACT UP>이 한창 투쟁을 하는 가운데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저는 역병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에 대한 우리의 기억 자체가 우리의 힘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세계사에 일어났던 10개의 역병들을 간단히 알아보는 일이, [COVID-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해온 싸움의 와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으며, 그로써 이 질병을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동성애혐오증적 방식으로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데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성되는 공포가 불안정과 공포의 조건에서 번성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연결고리입니다.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역병이 도는 때는 민중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때이지만 동시에 사회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대 그리스, 이집트로 가서 이 점에 대해 고찰합니다. 역사가의 눈으로 이러한 사회 질서의 전복 가능성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민중이 겪는 공포, 혼란 그리고 가난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요.

라인보
우선적으로 말해야 할 핵심은 전염병, 역병, 팬데믹이 치명적이라는 점, 즉 인간 개인들, 가족들, 공동체들을 파괴하며 때로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역병들은 사회적 삶의 재생산이라는 기획 일체와 필수적인 연관을 가집니다. 그래서 전염병들은 적어도 과거에는 역사적인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염병들에 대한 여러 대응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령 대략 2000년 전인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인간의 질병 유전자풀이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최초로 혼합된 것이지요. 아마도 이는 대륙간 통상의 한 측면일 겁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종교들이 (일신론적 종교들입니다) 형성되었습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기축시대’(axial age)를 말할 때 그는 이 종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Achsenzeit(Axial Age)’라는 말은 1949년 출간된 야스퍼스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에 처음 등장하며, 기원전 800년에서 300년 사이에 페르시아, 인도, 중국,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철학에서 병렬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등장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당시에는 도시국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도 형성되고 있었지요. 이때에는 사람들이 전염병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들이 이 질병들을 발생시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박테리아도 알지 못했고 바이러스도 알지 못했으며 세포생물학도 없었습니다. 수천 년을 지나 바로 우리 시대에 들어와서야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이지요.

도시 전체가 지워져버릴 수도 있는 그러한 위기에서 그에 대한 여러 계급적 반응이 있었습니다. 저를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로 이끈 허스턴(Zola Neale Hurston)은 파라오와 맞선, 지팡이를 든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허스턴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역병·기근·기아를 마음대로 부리는 파라오를 물리치는 모세의 힘, 그의 대항마법(counter-magic)입니다. 이 대항마법은, 흑인 민속지식에 대한 허스턴의 지식에 따르면, 모세가 파라오의 마구간지기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 마구간지기는 이 마법을 말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모세에게 공짜로 준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멘투(Mentu)가 해주는 ‘도마뱀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에게 전염병들을 아래로부터 보기를 권하기 위해, 파라오나 벼락을 던져대는 야훼를 제시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로서 보기를 권하기 위해 ‘lizard talk’라는 어구를 사용했습니다. [‘lizard talk’는 허스턴의 소설에서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①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크게는 세상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작게는 인간의 여러 행동들에 대한 논평). ② 멘투가 도마뱀이 해주듯이 해주는 이야기(이야기의 내용은 ①과 같다). ③ 멘투가 해준, 도마뱀(및 기타 동물들)도 이러저러한 말을 한다는 이야기. 나중에 (멘투는 이미 죽고 없는 때이다) 모세는 ‘기억들의 보관자’(keeper of memories)인 ‘수염난 도마뱀’을 찾아간다. (이때 모세는 예전의 멘투처럼 도마뱀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모세는 우연히 만난 늙은 도마뱀에게 ‘수염난 도마뱀’이 시나이 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시나이 산을 찾아가는데 아마도 거기서 그가 ‘수염난 도마맴’에게 들을 ‘liard-talk’는 기독교의 정사에 나오는 야훼에게서 받은 십계명과 대조될 터이다. 전자는 아래로부터의(from below) 지식을 나타내고 후자는 위로부터의(from above) 지식을 나타낸다.]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 마구간지기의 이름인 ‘멘투’를 다시 언급하게 되니 반갑군요. 제 의도는 지상의 힘, 우리 인간의 힘, 우리의 공통적인 힘이 지배자들의 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종종 우리도 잘 모르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말입니다. 이는 팬데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물론 팬데믹에 대한 지식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여러 모습의 멘투들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경험에서도 오지요. 어떻든 저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겪는 다중과 지배계급을 대조시키는 것, 힘의 두 형태를 대조시키는 것. 그것이 역사적인 역병들의 경우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파라오를 다룬 다음, 투키디데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의 역병들을 다루고, 로마 시대의 역병들을 다루며 물론 중세의 중앙 유럽을 강타한 큰 역병들을 다룹니다. 이런 식으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라인보=도마뱀=멘투]

제가 <ACT UP>에 그런 메시지를 전한 것은 <ACT UP>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델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ACT UP>의 현장 활동가들은 발견·조사를 하도록 촉구할 수 있었으며, 그 자신들이 깊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로서 치료를 낳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질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이 ‘공공보건의 커먼즈’(the commons of public health)의 주된 원리입니다.

릴리
우리가 사회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함께 모여야 하는데, 무심코 행한 사회적 상호작용조차도 바이러스를 퍼지게 할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팬데믹의 시기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순입니다.

라인보
네, 정말 큰 모순입니다. 에이즈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것, 그리고 이전의 전염병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도시봉쇄(lock-down)는 아니지만―집에 있으면서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공동체적 관계들이 정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간호,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기, 죽은 사람들을 묻기와 같은 일들은 아무리 끔찍한 인간의 위기상황에서도 남아있습니다. 자애를 베푸는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 죽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은 대중모임의 금지나 기타 형태의 공동체적 활동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애의 엄청난 재천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상업활동은 종종 가장 최소로, 혹은 가장 나중에 정지되지요.

릴리
정말 그렇습니다. 또한 팬데믹의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고대 역사를 되돌아보며 말했듯이 상이한 이념들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점입니다. 당신이 말했던 아래로부터의 지식과 같은 것도 있고 반대로 우리를 일종의 숙명론이나 현실수용적 태도로 몰고 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뜻하는 것은 가령 당신이 언급한, 옛날의 종교들이 팬데믹 시기에 한 복합적인 역할들 같은 것입니다.

라인보
네, 그러죠. 계급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문제를 두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억압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에도 적용되고 전염병들에도 적용됩니다. 제 생각에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위로부터 사고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뉴스에서 들은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지는 멘투를 다시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팸플릿은 종교의 사회학이 아니며 분명 포괄적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ACT UP>의 활동에 고취되고 역병의 역사를 다룬 맥닐(William McNeill)의 책[Plagues and Peoples, 1976]에 촉발되어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아시겠지만, 최근 『네이션』(The Nation)지에서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우리가 읽을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각자 집에 있는 동안 책을 읽으라는 거지요. 학자인 저도 책을 읽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도시를 도망칠 여유가 있던 부유한 층을 위해서 그리고 그 부유한 층에 대해서 쓴 작품입니다. 『데카메론』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든 각본작가들의 책꽂이의 사전 옆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100개의 플롯들을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위해 다시 다듬기 위해서죠. 이 이야기들은 선페트스(bubonic plague)가 돌고 있던 1340년대에 동포 인간들을 놔두고 피렌체를 도망친 사람들이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단으로서 한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오락으로 의도된 형태의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에요. 물론 이 이야기들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당연히 대단한 이야기들이죠.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유행병의 문학은 도피의 문학이라고 썼습니다. 문학창작가들이 지배계급으로부터 보수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배계급의 대응은 그것이 존재할 경우에는 언제나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바로 이런 동학을 거론했습니다. 바로 지금 사람들이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현상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라인보
물론이죠, 저도 넷플릭스(Netflix) 앞에 딱 붙어 있습니다만, 이는 저에게 특별히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공공보건 전문가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생산적입니다. 저는 가령 핫스팟이 되고 있는 여기 미시건주의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계속 알려줄 수 있는 공공보건 간호사에게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알싸이드 박사(Dr. Abdullah Al Said)가 COVID-19와 연관된 더 심층적인 하부구조 차원의 광범한 유행병에 대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물 공급의 거부, 삶에서의 안전의 거부, 주택의 거부가 바로 이 하부구조 차원의 유행병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담수저장소(fresh water reserve)가 있는 미시건 주인데 디트로이트에서는 물공급이 끊겼고 플린트에서는 물에 납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디트로이트 시 당국은 2014년부터 수도료를 내지 못하는 가구들에 수돗물의 공급을 끊었고 시민들은 이에 맞서 투쟁을 조직해왔다. 한 미시건 지역 뉴스잡지의 2020년 3월 26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9년에만 23,000 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차단되었다. 시당국은 COVID-19 국면에서도 처음에는 이 물공급차단(water shutoffs) 정책을 유지하려 했는데, 손을 씻는 것이 COVID-19의 확산을 막는데 필수적이라는 여러 전문가들의 확정된 견해로 인해서 정책을 바꾸어 3월 9일에 수돗물 서비스를 재개했다. 월 25달러를 내면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 수도료 지불은 팬데믹 국면 이후로 연기된다. 디트로이트 시장은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공급중지가 재개된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 플린트 시는 수원을 디트로이트의 물(휴런Huron호)에서 플린트강물로 바꾸었는데, 물에 부식방지제를 넣지 못하여 오래된 관의 납이 침출되어 공급되는 물로 섞여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중금속 신경독을 발생시켰고 10만 명 이상이 주민들이 납에 노출되었다. 이와 관련된 본 블로그의 글로 http://commonstrans.net/?p=859 참조.]

이는 그저 악행이거나 사고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물에 대한 요구를 짓밟은 의도적 범죄입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 신선한 식품을 먹지 못하는 것, 지붕으로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것―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COVID-19의 가속적인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알싸이드 박사는 (그는 디트로이트보건국의 국장을 지낸 바 있으며 존경받는 전염병학자입니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며, 저도 과거의 역병들을 훑어보면서 각 역병이 그 당시에 인간이 창출한 사회·경제적 구조들과 특수한 연관을 가진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도시의 거주지이든 상업자본주의든 심지어는 미국과 같은 거대한 부르주아 공화국이든 말이죠.

아시다시피 미국은 인종주의 및 강도질[무엇보다 백인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한 것을 가리킨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 곳입니다. 인종주의와 강도질은 흑인들이 당시 수도인 필라델피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1793년 황열병이 돌던 때에 생겨나서 매우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때 흑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고 아픈 사람들을 간호했으며 시체들을 매장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면역력을 얻거나 황열병에서 살아남아서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로 악마화되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은 1950년대에 오면 매카시즘의 ‘빨갱이’로 대체된다.] 이때 아이티에서는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들 가운데 하나가 한창이었죠.

릴리
막 언급하신 시기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8세기 말에 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황열병의 발발이 그 때의 정치를 아래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어떻게 형성했나요?

라인보
먼저 위로부터 일어난 일을 보면.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도시에서 도망쳤고요, 해밀턴(Alexander Hamilton)도 도망갔습니다. 대부분이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수도를 떠났어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군사 공화국을 보존하여 오하이오강 계곡(the Ohio river valley)을 포위하고 애팔래치아산맥을 넘고 포타와토미족(Potawatomi)[미시시피강 상부와 오대호 서부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쇼니족(Shawnee)[오하이오 계곡 지역에 살았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및 기타 그곳에 사는 많은 부족들로부터 땅을 훔치는 데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황열병은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흑인들을 악마화했던 것입니다.

이때는 세계사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두 일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 하나는 황열병이 강타하기 몇 달 전인 1793년 2월,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act)[특정 주에서 다른 주 또는 영토로 도망간 노예의 반환을 규정한 법]이 조지 워싱턴의 서명으로 통과된 일입니다. 이로써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 미국 전체의 노예들에 대한 백인의 지배가 확대되었습니다. 둘째는, 1793년 봄에 일어난 일인데요, 조면기(the cotton gin)의 발명입니다.[발명가 휘트니Eli Whitney가 발명했으며 1794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이 기술이 면화체제의 남부로의 확대, 인도의 면화생산의 파괴, 이집트와 오토만 제국의 면화생산의 파괴를 가능하게 하고 영국에서의 공장체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제 아래로부터 일어난 일을 봅시다. 우리 모두 1793년 황열병 발발 시 멘투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 한때 노예였던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와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입니다. 앨런은 아프리카감리교감독교회(AME Church,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만들었고 이 교회는 그 이후 일종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한 형태로서 존속했습니다. [존스와 앨런은 감리교에서 설교를 하도록 승인받은 흑인 목사 가운데 속했다. 존스와 앨런은 Free African Society (FAS)를 창립했으나, 1794년 이후 일의 방향이 달라서 각기 다른 길을 갔다. 둘은 평생 친구로서, 협력자로서 남아있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가 가진 인종주의의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교회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배격당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분명 황열병의 결과로 아래로부터 일어난 다른 움직임들도 있을 것입니다.

릴리
남·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은 유럽인들이 남·북아메리카에 가져온 전염병이 끼친 엄청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점에 대해 말해주시겠습니까? 이른바 신세계의 발견과 남·북아메리카를 재형성하는 데서 질병과 정복이 교차하는 모습에 대해서요?

라인보
14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유행병이 멕시코를 유린했고 17개가 페루를 강타했습니다. 대부분 천연두였습니다. 정복된 지 10년 만에 멕시코의 인구는 25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200만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천연두 및 다른 두 전염병이 저지른 집단학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배운 것은,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광산에 가두고 과도하게 노동을 시킨 것이 이러한 거대한 말살을 거들었다는 점, 그래서 천연두의 확산과 착취의 형태들은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매더(Cotton Mather)는 뉴잉글랜드에서 1616-1617년에 돈 전염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했습니다. 집단학살에 전염병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죠. 이런 일은 한 세기 후인 1760년대에 앰허스트(Amherst) 장군에 의해서도 벌어졌는데, 그는 지금은 펜실베이니아인 곳의 원주민들을 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로 잔뜩 감염시킨 자선 담요들을 원주민들 사이에 배포했습니다.

이렇듯 이제 전염병은 전쟁의 도구, 지배계급의 도구, 집단학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이런 부분을 보면 끔찍하고 극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계급파괴에 다시 한 번 굴복하지 않으려면 이것을 꼭 붙잡아 기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계급파괴’라고 할 때 이는, 온갖 형태의 지배계급이 그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피억압자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이 이른바 유럽과 아메리카의 최초의 조우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릴리
그것은 또한, 당신이 말한, 황열병에 의한 죽음과 노예상태와 광산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죽음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사회가 일종의 환경결정론[전염병은 자연적 환경에 의한 것이지 인재가 아니라는 생각]의 관점에서 전염병들을 받아들이도록 형성되어온 것으로 고대부터의 역사를 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적 결정들)의 역할을, 사태의 사회적 맥락을 잊을 수 있고, 이른바 자연적 재해의 결과를 이해하는 데서 사회·정치적 맥락이 결정적임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라인보
물론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점은 거시기생체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시기생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사회·경제적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릴리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당신이 상기시켜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유행병들이 지배층의 정치와 지배층의 대응들을 형성해온 역사를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즉 당신이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라고 부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라인보
그것은 우리의 공통적 삶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인간의 생존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보건커먼즈에의 접근, 공기·물·주택의 커먼즈(공통재)에의 접근을 유지하는 능력이지요. 이는 지배계급이 준 선물이 아닙니다. 지구에서의 우리의 삶을 위해 모두가 향유해온 커먼즈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지배체제 아래에서, 최근에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 세기 동안, 더 최근에는 우리의 생애 동안 강탈된 것입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전적으로 필수적입니다. 자본주의가 물, 주택, 신선한 공기를 뺏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긴 공급사슬로부터 생기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 공급사슬에서는 동력사슬톱에 굴복하고 자본주의적 농업에 굴복하는 숲으로부터 새로운 식품이 요구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태지대들이 파괴되면서 가장 복잡한 생명체들의 일부가 파괴됩니다. 이와 함께 예전의 숙주를 잃은 미시기생체들이 생기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저는 지금 최근에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에 글을 실은 네 명의 과학자들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by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이들은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은 또한 우리, 즉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질병 방어능력이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공립학교들, 공립병원들, 공공주택, 물에 대한 권리, 공기에 대한 권리가 갑자기, 혹은 단계적으로, 혹은 부채라는 교활한 형태로 강탈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미시기생체들에 취약해진 것입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난주만 해도 공기가 좀 신선해진 틈을 타서 트럼프가 자동차에 대한, 내연기관에 대한 오염통제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공기가, 우리의 폐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틈타서 몰래 해치운 것이죠. 이는 정말로 사악하고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파괴를 심화시킬 뿐입니다. 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이 네 명의 저자들, 이 전염병학자들 썼듯이 삼림과 그 생태의 파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폐만큼이나 삼림이라는 지구의 폐도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아마존의 파괴와 볼쏘나로(Bolsonaro)[브라질의 현 대통령]의 무지한 권력은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릴리
이 팬데믹이 전지구적 위기가 되면서 일시적으로든 어떻든 다른 전지구적 위기, 즉 기후위기를 우리의 관심에서 좀 멀어지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나 재택근무 등의 조치들이 자동차의 사용을 크게 막고 탄소방출 수준을 낮추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신은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불리는 것의 시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오신 것으로 압니다만.

라인보
현 국면은 아이러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정치가들이 많은 수의 홈리스들에 눈물을 흘리는 반면 많은 호텔들이 손님이 없어서 연방정부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공기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고 폐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으며 탄소방출과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현 국면은 기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집으로부터 쫓아내는 일의 중지를 원하며 부채의 탕감을 원합니다. 우리는 단일건강보험자체제(single payer health system)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주자들을 억류 상태에서 풀어주기를 원합니다. 이미 일부 수감자들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학자금 대출금의 탕감을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전반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맥락에서의 일입니다. 바삐 서두르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하늘에 비행기가 없고 거리에 차가 없다고 썼습니다. 물론 이는 비상조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태가 새로운 세계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선한 공기의 세계, 더 차분한 세계, 바삐 서두르는 조급함이 없는 세계, 모든 시간이 사업의 시간이 되는 일이 없는 세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수감이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합니다. 이런 가능성들을 우리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능성들은 바로 우리의 창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릴리
팬데믹을 겪으면서야 이런 상태에 도달한 것이 좀 놀랍습니다. 세상의 종말,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란 쉽다고 종종 (필시 너무 많이) 말해졌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자본주의는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상상력의 위기를 느끼면서) 우리는 공포와 불안의 와중에서 (이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 일상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고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떤 일이 사용가치들을 창출하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돌봄노동, 쓰레기처리, 식량을 재배하고 공급하기―이런 일들은 중요한 반면 다른 일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상위 10%로의 부의 대대적인 집중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력적인 가능성의 순간입니다. 몇 달 만에, 불안과 불평등의 상황에서 이런 순간이 온 것이죠.

라인보
물론입니다. 완전히 동의합니다. 아시다시피, 메이데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달 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는 1886년 시카고에서 전염병이 했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는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의 때였지요. 참, 이제는 옛날 일이네요. 요즘 누가 8시간 이상 노동을 하나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갑자기 0시간 노동을 강제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0시간 노동을 하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앞에서 저는 독서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우리는 정말로 속도를 늦추고 더 생각하기 시작할 수, 더 잘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나 연방정부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들을 돌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돌보는 일을 하려고 하며 저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이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노동을 중단하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총기판매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바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항상적인 공포 속에서 사는 자들의 삶의 한 편린일 뿐입니다. 다른 가능성들이 있음을 보는 것이 이토록 쉬운 때에 공포 속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릴리
물론 지금과 같은 순간에 우리가 맞서 투쟁해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는 전염병을 인종화하는 경향, 질병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트럼프가 이런 경향에 부채질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인보
18세기 말에 개발된 이데올로기적 억압의 체제인 백인우월주의의 중심 개념인 인종 개념의 큰 부분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상이한 기생체들, 질병들과 연결되면 이것이 더 나아가 인종 개념을 구성할 요소들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데, 저의 저작이나 다른 이들의 저작이 보여준 바지만, 이런 과정들 가운데 ‘타자의 악마화’를 포함한 다수가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집단에 대하여 일어났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항상 냄새와 연관되고 때(dirt)와 연관되고 불결함과 연관되었습니다. 이렇듯 지배계급의 차별적 순결 코드가 모든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바로 이로부터 인종과 백인우월주의라는 변종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제 이것이 그 추한 고개를 다시 쳐들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제가 알기로···[‘없는 듯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다 생략한 것으로 추정됨]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매우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지식을 얻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에서 멘투들과 민중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신선한 물을 요구하는 엄청난 투쟁을 보세요. 디트로이트는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올리언스도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시들은 흑인 문명의 수도들이며, 이로부터 모두가 혜택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간접적인 것 말고는 지배계급[백인들]의 반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흑인 친구들과 동지들은 매우 옳게도 다소 걱정하고 조심하며 지냅니다.

릴리
당신이 언급한, 그리고 책에서 많이 다룬 메이데이에 대한 물음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몇 주 후면 메이데이가 오는데요, 우리가 억압받지 않는 세상,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관련하여 메이데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라인보
메이데이는 위대한 재생산의 순간, 지구의 재생산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위의 생명체들에서, 식물들이나 동물들에서 봅니다. 메이데이는 5월이고 봄이요 삶의 부활입니다. 또한 근대 세계의 역사에서, 끝없는 노동과 고역에 맞서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의 역사에서 놀이와 투쟁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의 메이데이는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군사주의나 전체주의의 행사로서 퍼진 것이 아니라 집단성의 행사로서 퍼졌습니다. 올해의 메이데이는 우리에게 특별한 도전이 될 듯합니다. 확신컨대, 이 도전으로부터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메이데이를 축하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것입니다. 되풀이하건대, 메이데이는 지구상의 기쁨의 순간이요 재생산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는 출산이 고통을 동반하듯이 투쟁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거시기생체들에 맞서는 것입니다.((메이데이에 대한 라인보의 상세한 설명을 보려면 도서출판 갈무리의 신간 『메이데이』(2020)를 참조하기 바란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2/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4-6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4,5절), 민서(6절)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4-6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의 100개의 사랑 이야기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카치오는 『데카메론』(The Decameron)을 1347-1349년의 흑사병(the Black Death) 얼마 후에 썼는데,[1353년에 완료되었다] 이 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망했다. 보카치오는 피렌체 은행가의 아들이었는데, 경영 공부에도 손을 대보고 교회법에도 손을 대보았으나 잘 안 되어서 외교관이 되어 역병에서 살아남았다.

100개의 이야기에는 교회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많은 풍자적 비판들이 담겨있다. 보카치오는 죽어가는 농민들로부터 이야기들을 훔쳐왔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데카메론』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빌려온 것들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라틴 이야기들이 주로 참고되었지만, 어떤 것들은 인도, 중동, 스페인 등에 기원을 둔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 지역에서 구전되던 것들이리라고 추정한다.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확정하기 어렵지만 라인보는 이 후자의 것에 강조를 두는 듯하다.] 보카치오와 농민들의 관계는 해리스(Joel Chandler Harris)와 흑인들의 관계에 비견될 수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해리스는 흑인의 구비전통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을 Uncle Remus: His Songs and His Sayings(1880)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둘 모두 원래의 이야기들의 농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상류층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간간이 쾌활하게 풍자되곤 하지만 말이다.

농민들은 “도와줄 의사도 하인들도 없었으며 길가에, 들판에, 집에 밤낮 없이 하루 종일 쓰러져서 인간이라기보다 동물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보카치오는 이 재미있는 책을 위안과 연민에 대한 짧은 논변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는 아픈 사람을 간호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기라는 주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의미하는 위안이란 도시를 버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흐느낌”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생판 남인 양 자신의 자식들을 돌보고 돕기를 거부했다.”

『데카메론』의 일곱 숙녀들과 세 신사들이 도시를 피한 것은 “대부분의 집들이 공동재산이 되었”기 때문이고 “신과 인간의 법에 대한 모든 존중이 우리의 도시에서 실질적으로 무너졌고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가족을 잃는 것이 “웃어대고 재담을 하는 등 모두 즐거워하게” 하는 신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숙녀들은 예배에서 만나서 이야기하며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범죄자들이 추방되지 않고 “법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면서” 거리를 싸돌아다니는 상황이며, 숙녀들은 “우리의 피 냄새를 맡고 자신들을 교회의 머슴이라 부르며 온갖 곳을 시끄럽게 활보하며 음탕한 노래를 불러 우리의 상처에 모욕을 추가하는 도시의 불량배들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숙녀들은 도시를 피하고 동양의 향료를 친 연회음식들의 소화를 돕기 위해 여러 재담과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이 향료들은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pasteurella pestis)’를 가져온 바로 그 배에 실렸던 것이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가 바로, 벼룩이 매개체이며 ‘검은 쥐’(ship rat, 곰쥐=black rat)가 숙주인 미시기생체의 이름이다. [최초로 페스트균을 분리해낸 예르신Yersin 이 처음에 그 균의 학명을 파스퇴르 연구소를 기념하여 이렇게 지었다. 이는 나중에 ‘이에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학명으로 바뀐다.] 이 쥐는 두 거시기생체들의 합작으로 유럽에 왔다. ① ‘약탈자 칭기즈 칸’(Ghengis Khanis plunderitis)이 낳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생명체들의 급속한 순환 ② 유럽 상품교역의 중심동맥인 ‘탐욕스런 베네치아’(Venetia avaricious)라는 바이러스. [라인보는 칭기즈칸과 베네치아를 라틴어 두 단어로 된 페스트균의 학명처럼 표기하고 있다.] 이 거시기생체들은 자기면역의 기술들을 아직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유럽 도시지역에서 질병의 만연을 다루는 ‘행정 루틴들’(환자선별분류, 격리)이 없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는 잔치를 벌일 만큼 풍부한 인간집단을 발견했다. 숙주의 방어력이 영양실조와 전쟁으로 심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농민들은 이 재앙에 맞서는 나름의 방어패턴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교회, 주(Lord), 군주라는 기생체들에 맞서는 천년왕국운동과 농민반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사례들 가운데 영국의 롤라드운동(The Lollard movement)과 이탈리아의 소형제회운동(Fraticelli movement)이 있다. [롤라드운동은 14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개신교 이전의 기독교 종교운동이며, 소형제회는(이탈리아어로 ‘Fraticelli’, 영어로는 ‘Little Brethren’) 성자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의 회칙, 그 중에서도 특히 청빈에 관한 회칙을 극단적으로 옹호한 프란치스코회 내부 급진소수파다.] 지배계급의 관점을 가진 논평자들이 흑사병을 환영한 것은 이 병이 모든 다른 형태의 일탈만이 아니라 이 두 운동에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이다. 질병에 대한 지배계급의 이론은, 병이 천체들에서의 변화(점성술)에 영향을 받은 것이거나 아니면 간악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신이 내린 천벌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의 연대기편자 나이턴(Henry Knighton)은 흑사병이 가령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막고 처벌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치료제’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흑사병이 진행되는 동안 악랄한 유대인학살이 행해졌다.

한편 교회는 돈을 받고 구원을 제공했다. 교황은 기독교인들을 로마로 초청했다. 120만 명이 부름에 따랐으며 순례를 마치면서 헌금을 바쳤다. 그리고 10%만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나머지 90%는 그들의 시신 또한 바쳤다. 교황은 교인들을 피해 더 풍토가 좋은 곳인 아비뇽으로 몰래 도망갔으며 거기서 주사위공장들을 묵주제조공장으로 전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독일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 듯하다. 바로 중앙유럽에서 채찍질운동(Flagellant movement) 혹은 십자가의 형제들(the Brothers of the Cross) 운동이 흑사병에 대한 대응으로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들도 몇 명 끼어서) 황폐해진 시골지역을 200-300명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이들은 도시(town)에 도착하면 큰 원 모양으로 모여서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며 광적인 상태가 되어 울고 노래하고 소리쳤다. 처음에 당국은 이들을 미심쩍어 하면서도 그냥 놔두었다. 그러나 채찍질운동이 교회에 이익을 줄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이 운동이 위계를 조롱하고 수도원이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것들을 약탈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경건한 가학피학증은 혁명적 천년왕국운동으로 전환되었다.

흑사병이 낳은 대규모의 대량학살은 거시기생체들에 보복을 가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는 봉기의 원천을 멸절하지도 않았고 노동계급을 훈육하여 고역을 감당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유럽에서 임금은 두 배로 올랐으며 삶은 실제로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더 나아가 로저스(Thorold Rogers)의 말을 빌자면, “흑사병은 토지의 점유에서 완전한 혁명을 일으켰다.” 이는 영국에서 정점에 달했는데, 이곳에서 1381년에 일어난 농민봉기는 봉건제의 역사적 위기를 낳았다. 농민들과 도시의 장인(匠人)들이 수도원들을 공격하고 감옥을 해방시키며 토지를 차지하고 법률가들·성직자들을 공격하면서,

아담이 땅을 파고 이브가 실을 자을 때
그때 누가 신사였는가?

라는 강한 슬로건 아래 뭉쳤다.

의미는 이중적이다. ‘파다(delve)’와 ‘잣다(spin)’ 같은 단어들은 농업의 비옥함을 가리킬 수도 있고(쟁기질과 추수) 인간의 생식을 가리킬 수도 있기(성교와 출산) 때문이다.

 

  1. 콜럼버스의 교환 (The Columbian Exchange)

1492년에 봉건제가 끝나고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상인들, 은행가들, 초기 자본가들이 유럽의 군주들과 손을 잡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여 농장주들, 농민들, 도시 장인들에 맞섰으며, 농장주들, 농민들, 도시 장인들은 넓은 세상의 공통적인 것(the wide world’s common)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들은 바로 유럽 제국들의 육군과 해군에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대대적인 임금노동 경험을 했다. 미시기생체들의 대륙 간 전송의 관점에서 볼 때 콜럼버스의 교환은 간단하게 천연두와 매독의 교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독을 최초의 ‘역사적’ 질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전염병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이 생물학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는 데 있다.

유럽인들은 효율적인 보균자들이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라인보는 그냥 ‘아메리카인들’(the Americans)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방어능력이 없었다. 15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전염병이 멕시코를 유린했으며 17개의 전염병이 페루를 강타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천연두였다. 멕시코는 정복당한 지 10년 이내에 인구가 2500만 명에서 168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180만 명으로 떨어졌다. 이와 유사한 학살이 페루에서도 일어났다. 질병에의 저항력이 노예상태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서 크게 약해져 있었다.

유럽인들은 세균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1616-1617년 뉴잉글랜드의 유행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코튼 매더(Cotton Mather)는 쓰고 있는데, 매더는 매사추세츠를 “새로 발견한 골고다”로 보았다.[‘해골’을 의미하는 ‘Golgotha’는 ‘Calvary’라고도 불리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처형장이다.] 필그림스(Pilgrims)[1620년 미국으로 건너가 플리머스 식민지에 초기에 정착한 영국의 분리주의자들]가 ‘언덕 위의 도시’라고 부른 곳은 이렇듯 로마의 처형장에 비견되었다. [마태오의 복음 5장 14절에 나오는 “city on the hill”은 한국어본 성경들에서는 ‘산 위에 있는 마을’, 또는 ‘산 위에 있는 동네’라고 옮겨져 있다.] 역사가 드레이크(Francis Samuel Drake)는 버지니아 주(州) 로어노크(Roanoke)의 “미개한 족속”에 대해 쓴 바 있는데, 드레이크를 돕는 한 원주민에 따르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그토록 빨리 죽게 만든 것은 영국의 신”이라는 말이 돌았다.

다른 한편, 콜럼버스의 배가 돌아가고 나서 가장 ‘역사적인’ 질병이라는 매독이 유럽에서 악성 전염병의 형태로 등장했다. 그 이후 “문명과 매독 감염은 함께 전진했다.”

매독은 즉시 자본주의의 고전적인 질병이 되었다. 첫째, 눈 깜빡할 새(1500년 경)에 매독은 유럽 제국들에 의해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둘째, 이는 쾌락을 규제하는 핑계가 되어 공중목욕탕이 폐쇄되었고 키스는 수상한 행동이 되었으며 술잔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사라졌다. 셋째, 매독은 민족주의의 질병이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병이라고 불렀고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병이라고 불렀으며 독일인들은 폴란드병, 폴란드인들은 러시아병, 중국인들은 유럽병, 일본인들은 중국병이라고 불렀다.

이런 민족주의적인 낄낄댐 아래에는 인종주의적 도살의 히스테리적인 웃음이 깔려있다. 1530년쯤 이 병은 이탈리아의 시인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가 지은 「씨필리스」(“Syphilis”)라는 시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 시는 신에게 복종하지 않은 벌로 이 병을 얻은 아이티의 한 양치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점으로 보아 이 이름 자체가 그 기원에 잠재한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암시했다.

넷째, 매독은 완전히 부르주아 여성혐오증의 질병이었다. 이는 여러 방면으로 작용했다. 매독의 두려움은 유럽에서 르네쌍스 여성들의 대량학살―이는 ‘마녀광기(witch craze)’[=마녀사냥witch-hunt]라고 불렸다―에 필수적인 구성요소였다. 매독은 악마의 표식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1826년에 교황은 콘돔의 사용을 금지했다. 죄를 저지른 인체의 부위에 벌을 내리는 것이 신의 섭리인데, 콘돔은 이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1987년 9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캐스트로(the Castro)[샌프란시스코 유레카밸리 근교에 있는 동성애자들의 마을]의 사람들은 ‘교황은 동성애자가 되라(Popo Go Homo)’고 요구했다. [당시 2000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는데, 동성애자활동가들, 페미니스트들, 유대인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여러 문구 가운데 하나가 다른 문구들 가운데 하나인 ‘Pope Go home’을 변형한 ‘Popo go homo’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같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지도자들은 대량학살의 의도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내가 만일 판사라면 나는 저런 유독한 매독에 걸린 탕녀들을 거열(車裂)형에 처하고 살가죽을 벗겨 죽일 것이다. 저런 더러운 탕녀들이 젊은이들에게 끼칠 해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오면 부르주아지는 매독을 귀족층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귀족들에게는 매독이 용감성의 표식이었다!) 성애에 대한 자신들의 사정없는 억압을 보상해주는 것으로 보았다.

 

  1. 시체들을 실은 마차가 더 많이 기여했다···” (“The Death Carts Did More···”)

“역병을 아는 데에는 역병이 필요하다”는 말은 예방접종의 원칙에 대해서도 할 수 있고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 서술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이 말은 대니얼 디포의 책 『역병 일지』(The Journal of the Plaugue Year, 1722)[한국어본이 『전염병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에는 확실하게 적용된다. 이 책은 겉으로는 1665년의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과 관련이 있지만 실제로는 선페스트(bubonic plague)와 천연두가 유럽과 대서양 서쪽 지역에 재등장한 1721년의 역병을 다루는 데 공헌했다.

1721년에 선페스트가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를 종교적인 경건함과 억압적인 검역(격리)으로 맞이했다. 네덜란드 항구에서는 뱃짐들이 불태워졌고 선원들은 옷을 다 벗고 해변으로 헤엄쳐 가도록 강요받았다. 런던에서는 남해버블(South Sea Bubble)이라는 금융스캔들 때문에 수익이 떨어져 휘청거리는 상인들이 이와 유사한 격리조치에 동의하기를 꺼렸다. 위험은 ① 최근 수탈된 몇몇 왕의 삼림들에서 일어난 게릴라 형태의 운동 ② 런던의 산업화된 직공(織工)들에 의한 심각한 파업 ③ 도시 범죄의 급증 그리고 ④ 왕조에 저항해서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이라는 네 가지 흐름이 교차하는 종합국면에서 발생했다.

이 불안정한 현상들은 노동계급의 무절제한 행동과 구빈원 설립의 필요성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 한가운데서 발생했다. 그래서 정부는 런던 주교에게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주교는 디포를 고용해서 전염병의 관리를 특징짓는 정신적 공황 형성에 기여하는 글을 쓰게 했다.

한편, 같은 해에 대서양 건너편 마블헤드(Marblehead)와 보스턴에서 예방접종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면역학의 역사에서 질병통제를 통한 계급전쟁의 고전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이야기는 유명한 여류 문학자 메리 워틀리 몬태규(Lady Mary Wortley Montagu)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남편이 대사로 재직했던 콘스탄티노플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파도바의 가장 앞서가는 의과대학교에서 예방접종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낳는 효과를 공부했던 두 명의 그리스 의사에게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왔다. 그 의사들은 테살리아에 사는 그리스 여성농민들에서 접종법을 배웠다. 이렇듯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또는 약초를 사용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민간요법이 ‘서양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다.

‘서양 의학’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뉴잉글랜드의 예방접종 논쟁에서 포착할 수 있다. 천연두는 상인들과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원주민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유용한 우군이었다. 세균전은 수탈과 집단학살의 선제조건이었다. 1763년 제프리 앰허스트(Lord Jeffery Amherst)는 천연두에 감염된 담요를 적의 부족들 사이에 배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720년대에 이 질병은 실질적인 위험으로서 지배층 엘리트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올 우려가 있었다.

영국에서 예방접종을 재빨리 수용한 것은 천연두가 귀족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왕조의 위기를 초래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앤 여왕의 아들이 천연두로 죽어서 하노버 왕가로 왕위가 넘어갔으며 합스부르크가 사람 하나가 천연두로 사망함으로써 스페인왕위계승 전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보일스톤 박사(Dr. Zabdiel Boylston)가 보스턴에 예방접종을 소개하자 코튼 매더가 선뜻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는데, (우리가 보았듯이) 이때에는 지배계급이 ‘과학을 위한 희생’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더는 오랜 사용으로 효과가 입증된 모세의 게임(Mosaic game)을 하며 “질병은 사실 인간의 죄에 신이 내리는 채찍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채찍질’이 막상 그의 등을 위협했을 때 그 또한 ‘멘투’에게 의지했는데 그는 보수도 주지 않고 고용한 오네시모스(Onesimus)라는 이름의 아프리카인으로부터 접종을 알게 되었다. [‘Onesimus’는 기독교의 신약성서인 빌레몬서에 나오는 빌레몬의 노예이며 바울을 만난 후 개종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접종은 두 가지 근거로 격렬하게 반대에 부딪혔다. 하나는 그것이 비싸고 따라서 부자만이 접종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면역력을 생성할지라도 감염을 예방하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코튼 매더의 집 창문으로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마블헤드에서는 어부들, 해상 노동자들 및 접종에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폭동(“이교도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들은 접종을 장려하는 자들의 집을 무너뜨렸다.

이렇듯 1721년은 자본주의적인 전염병학의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지배계급은 ‘우연한’ 죽음을 맞이할 위험이 있었고, 노동계급의 지식이 강탈되었으며, 전염병의 파괴성의 관리에 계급성이 부여되었고, 공황(panic)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의미심장하게도 미시기생체의 역사가 거시기생(macroparasitism)이라는 계급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병원과 의약품 교역의 제도적 기반시설과 함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내과 의사들 및 외과 의사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역병 일지』에서 사용된 방법은 투키디데스의 정치가 같은 분석도 아니었고, 모세의 마법을 부리는 귀신도 아니었으며, 보카치오의 태평한 즐거움도 아니었고, 집단학살을 촉구하는 청교도 지도자들의 열변도 아니었다. 디포는 ‘상식’에 호소하는, 상점 주인들이 갖고 있는 형태의 지식을 제시한다. 즉 ‘구술 역사’의 맥락에서 이야기된 사례들을 경험적으로 결합시켜 놓은 것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머리 가로젓기, 악어의 눈물, 동네 수다, 노동자들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말들이 많이 들어있다. 이런 방식은 믿을 수 있고 그럴듯한 논픽션, ‘인쇄하기 적합한 소식’인 양 가장한다. 왜일까?

전체 기획은 표면적으로는 화려했고 핵심에서는 반혁명적이었다. 거시기생체는 그 숙주들을 들들 갈아서 가난, 영양실조에 빠뜨리고 골수를 파괴함으로써 공격한다. 면역체계는 과도한 노동, 점점 더 많은 잉여가치의 추출로 인해 무너진다. 영국의 거시기생체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겉모습을 하고 있었고(의회가 있는 입헌 군주제, 지주와 상인으로 구성된 지배계급), 다른 한편으로 이 관습적인 모습에 새로운 요소 두 가지를 더함으로써 1660년대에 어떤 강력한 변이를 이루었다.

그 첫 번째 요소는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아일랜드, 아프리카, 벵골, 카리브해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먹이로 삼을 숙주들을 찾았다. 그 DNA는 귀족적이어서 뉴턴과 로크가 했던 것처럼 다양한 숙주들에 맞추어 특수하게 패턴화된 공격을 발전시켰다. 이 거시기생체는 파라오의 마법사들에 비유될 수 있으며, 아테네의 투키디데스와 피렌체의 보카치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1665년 역병이 도는 동안 뉴턴은 거시기생체들에게 매개체들, 순환, 유동에 관하여 정보를 주는 미분법을 개발했다.

추가된 두 번째 요소는 나폴레옹이 ‘상회 주인’(shopkeeper)이라 불렀던 층, 역사가들이 ‘중간 부류’라 부르는 층, 맬서스(Thomas Malthus)가 ‘근면한’ 자들이나 ‘훌륭한’ 자들이라 불렀던 층, 수가 많고 점잖다는 층이었다. 이들은 숙주인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힘을 빨아먹었다. 이들은 막대기와 돈주머니로 묘사되어야 하는데, 그 활동이란 것이 세는 것과 강압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궁전이 아니라 집에서 살았다. 융통성이 없고 입술이 얇은 이들은 1640-1660년의 영국혁명에 의해 심하게 위협을 당했었다. 디포는 바로 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

중세시대에 가난은 축복이었고 노동은 저주였다. 1660년 이후 거시기생체들은 이것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1665년의 역병 이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노동을 신성하게 보는 사고방식이 훌쩍 대세가 되었다.

디포는 거지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놀이, 게임, 발라드 부르기를 금지하며 축제모임을 금지하는 도시 당국의 명령을 기록하고, 오후 9시에 선술집·맥주집·커피하우스를 닫으라는 법령을 기록한다. 일하며 살기, 재미있게 보내기, 음식을 아주 많이 즐기기 또는 늦게 술마시기는 이렇듯 단성생식 신드롬(parthenogenetic syndrome)[모임의 금지로 인해서 개인들이 서로 격리되어 원자화된 현상]의 일부가 되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질병의 매개체로 간주되었다. 교구의 조사관들, 야경꾼들 그리고 수색관들로 이루어진 경찰의 감시체제가 수립되었다. 장례식은 폐지되었고 죽은 자를 위한 어떤 모임도, 심지어는 예배시간의 위령기도조차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매장은 밤에만 허용되었다.

디포는 가난한 자들이 “모험적 행동”을 함으로써 역병을 자초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언제나처럼 앞날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분별없고 무절제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공장에서의 근면한 노동습관(시간엄수, 규칙성, 절약 그리고 복종)이 면역력을 준다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아픈 자들을 돌보며 감염된 사람들을 격리시설로 옮기고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보이는 그들의 ‘무자비한 용기’는 가난한 자들이 왜 천연두에 걸리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특히 “어마어마한 수가 간병 일로 분주했”던 여성들이 “가장 무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필사적”이었다.

디포는 감염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동체들을 공격한다. 더 나아가—이것이 섬뜩한 부분인데—그는 계급 규율 유지에 역병이 유용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전에 말했듯이 시장과 재판관들의 훌륭한 관리가 분노와 절망에 찬 사람들로 하여금 갑자기 폭도가 되어 날뛰지 못하게, 즉 빈자들이 부자들을 약탈하지 못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분명히 말하는데, 시체들을 실은 마차가 더 많이 기여했다.” 이것이 유행병이 사회적 사건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물이 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첫 번째 것이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1/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1-3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커먼즈의 역사가라 불리는 라인보(Peter Linebaugh)가 Against the Grain과 가진 인터뷰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2020. 04. 08)의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정리하려다가 이 인터뷰의 원자료가 되는 팸플릿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1989. 02. 26)의 내용을 먼저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팸플릿은 에이즈 종식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적 풀뿌리정치단체인 <액트 업>(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1988년 창립)의 돌을 맞아 라인보가 일종의 생일선물로 작성한 것으로서 모세의 시대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닥친 역병들에 대한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제목의 ‘lizard talk’(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는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인 민중의 지식을 가리킨다. 이는 근대 이후로는 (특히 역병의 경우에) 과학적 지식에 의해 보완될 것이지만, 인류의 역사 내내 저류에서 존재했던 지식이다. (물론 망각되기가 십상이기도 하지만.) 라인보는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이 1939년에 출애굽기 이야기를 흑인의 관점에서 다시 쓴 소설 Moses, Man of the Mountain((http://onlinereadfreenovel.com/zora-neale-hurston/p/18/33960-moses_man_of_the_mountain.html))에 나오는 마구간지기 멘투(Mentu)를 이 지식을 전하는 사람의 원형으로 본다. 멘투는 모세에게 “만물의 시작에 대한 모든 것”을, 즉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를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이 팸플릿 자체가 하나의 ‘lizard talk’이고, 라인보가 멘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라인보 자신이 밝히듯이, 라인보가 이 팸플릿을 통해 전하려는 요점 가운데 하나는 아래로부터 역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위로부터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현대의 주류 미디어는 거의 대부분 우리를 위로부터 보는 관점으로 세뇌한다.) ‘lizard talk’에 바로 이 아래로부터의 지식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요점은 미시기생체(microparasite, 즉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때마다 거시기생체(macroparasite, 즉 각종 형태의 지배계급)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지배를 더 강화하려 하지만, 반대로 아래로부터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 기반을 두어 사회를 전복시킬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결코 먼저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라인보의 ‘lizard talk’는 여기서 좀더 나아간다. 팸플릿의 맨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우리가 더 섞이고 교류할수록 ··· 우리는 더 강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병/병원체들과의 관계 역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인류의 활력의 역사의 일부인 것이다.

    이 팸플릿의 내용이 조금 많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도 있고 해서 네 번에 나누어서 올리려고 한다. 먼저 ① 서두와 1·2·3절을 묶어 올리고(정리자 정백수), 그 다음에 ② 4·5·6절을(정리자 정백수), 이어서 ③ 7·8 절(정리자 성철), 마지막으로 ④ 9·10절을 묶어 올릴 것(정리 영광)이며, 그 뒤에 앞에서 말한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릴 것(정리자 정백수)이다.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은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서두]

에이즈도 그 이전의 전염병들처럼 분할(젠더들 사이의 분할, 인종들 사이의 분할, 민족들 사이의 분할, 대륙들 사이의 분할)의 원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분할은 역풍을 맞았다. 이에 맞선 투쟁은 우리를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투쟁들이 에이즈에 맞선 투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답하는 선물로 10개의 역병의 역사를 드리겠다.

HlV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실질적으로 출현했다. 동시에 시카고에서는 한 경제이론이 퍼졌는데, 이 이론은 세계 전역의 가난, 기근, 질병 등을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조직했다. 지배계급의 막장 부패는 레이건이 상징했다. 시카고는 또한 법 해석에 자유시장경제 모델들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는데(포스너Stephen Possner), 이는 정의로움에 신경 쓰기를 그치고 삶과 죽음의 비용편익을 수량화했다. 이런 법학자들이 정치적 우세함을 얻었다. 오래지 않아 인문학 분야의 개[犬]들도 베넷(William Bennett)의 멍멍거리는 명령 아래 ‘서양 문명’의 찬양에 동참했다. 시카고 역사가 맥닐(William McNeill)은 에이즈 팬데믹이 등장하기 조금 전인 1976년에 『역병들과 민족들』(Plagues and Peoples)를 냈다.

그는 우리의 생존이 ① 우리 몸에 사는 미시(微視)기생체들(microparasites,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맞선 싸움과 ② 거시(巨視)기생체들(macroparasites, 여러 형태의 지배계급들)에 맞선 싸움에서 살아남는 데 달려있다고 본다. 기생체는 어떤 종류든 숙주에 의존한다. HIV든 지배계급이든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숙주를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는 것이 기생체에 이익이다. 숙주는 기생체를 위한 잉여를 생산하는 정도까지만 살도록 허용된다.

맥닐은 『나의 투쟁』의 히틀러처럼 떠벌이지는 않지만, 질병을 은유적으로 다루는 문제점을 보이기는 한다. 그는 질병에 대해 일반인이 가진 지식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배계급에 대해서는 시카고 사람이 가진 정도의 지식을 가가지고 있다. 역병과 역사에 대한 계급 관점에서의 분석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the lost history of our own communism)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도마뱀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다.

 

  1. 고대 이집트의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 in Ancient Egypt)

고대 이집트의 역병들은 루터교, 깔뱅교, 바티칸, 시온주의에서 ‘검디검은 아프리카’를 ‘영광의 그리스’로부터 구분하는 기초원리였다. 즉 관개의 제국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이집트)을 도시국가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그리스)로부터 구분한 것이었고, 고대의 제3세계를 고대의 제1세계로부터 구분한 것이었다.

구약의 역병들은 기원전 14세기에 일었다. 이는 출애굽기에 서술된 전염병들이다. 출애굽기는 적어도 300년 뒤인 솔로몬의 재위 시에 지어졌다. 출애굽기는 예배에서의 암송, 노래, 연대기를 요약한다. 고대 국가의 공식적 신화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에 맞추어 취급되어야 한다.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출애굽기의 역병들을 범아프리카적 이야기로 본다. 그 전염병들은 힘을 가진 지팡이―이는 노예들을 자유로 이끄는 뱀신(a serpent god)이다―를 지니고 있는 모세의 마법이 발휘된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의 억압자들 및 이집트의 신들과 싸워야했다. 파라오에게 이긴 것은 우월한 마법으로 인한 승리였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지팡이가 뱀이 된다. 그가 지팡이를 나일강의 물에 담그면 강물이 핏물이 된다. 그가 흐르는 강물 위로 지팡이를 뻗으면 개구리들이 땅을 덮는다. 그가 땅의 먼지를 치면, 구더기들이 올라와 인간과 짐승을 덮는다. 파리들, 우박들, 메뚜기들, 일식들, 전염병들―이 모든 것들을 모세의 지팡이가 불러오며 파라오의 마법사들은 항상 쩔쩔 맨다. 이런 식으로 야훼는 개구리신, 태양신, 가축신들을 물리친다.

허스턴이 발견한 바로는 이런 뱀-지팡이 힘은 아이티(Haiti)와 다호메이(Dahomey)[약 1600년부터 1904년 사이 오늘날 베냉 지역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왕국]에서 살아있는 힘이다. 노예들과 무법자들(‘Hebrew’라는 단어가 가진 이집트어 의미들이다)의 지도자인 모세는 어떻게 그의 마법을 얻었을까? 그는 그것을 파라오의 마구간지기인 멘투(Mentu)[‘mentor’를 연상시키도록 고안된 이름이다]로부터 얻었다. 멘투가 모세에게 전해준 것이 바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이다. 지식을 전수받는 대가로 모세는 멘투에게 파라오의 부엌에서 남은 음식들을 가져다준다. 예전에는 삶은 돼지머릿고기를 먹었는데 이제는 모세가 가져다주는 더 좋은 부위를 먹게 된다.

마법-지식의 계급적 특성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부엌과 마구간에서 만들어지며 대가를 받고 교환되며 그 다음에야 반란, 학살, 새로운 왕국이라는 익숙하고도 모호한 이야기가 오게 된다. “‘모래를 나르고 회반죽을 갤 일은 이제 없어! 파라오를 위해 돌을 가져오고 건물들을 지을 일은 더 이상 없어! 채찍을 맞아 등이 피가 낭자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아직 어두운 아침부터 어두워진 저녁까지(from can’t see in the morning to can’t see at night) 노예로 일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자유! 자유! 멍청해질 정도로(till I’m foolish) 자유야.’ 그들은 수 세기의 세월을 눈에 담고 그저 앉아서 울었다.”[이 대목은 Moses, Man of the Mountain에서 모세로부터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후 모세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보여준다. 모세는 환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예상은 틀렸다.]

분명 이는 기독교, 유대교, 부두교(Voodoo)에 다 걸쳐있는 역사적 존재인 흑인의 해방 이후에만 가능한 버전이다. 여기서 이집트의 전염병들에 대한 독해는 자본주의의 신들이며 실로 ‘노동하라, 아니면 교수형이다’라는 복음을 전하는 루터와 깔뱅의 정반대이다.

 

  1.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고대 그리스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귀족 가문 출신인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영광의 그리스’에 속한다. 그는 아테네 제국의 국경에 있는 금광의 관리자였다. 그는 실패한 장군으로서 20년 동안 유배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The Peloponnesian War)을 지었다. 이 책을 ‘서양 문명’의 일부로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해상 제국주의를 찬양했으며, 지중해의 패권을 쥐려는 아테네의 노력을 이야기했다. 그는 상품생산으로의, 화폐형태로의 이행기에 살았다. 이는 곧 해적질에서 상업으로의 이행이었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의 책은 모세의 마법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설명한 소피스트 질병이론―증상의 관찰, 진행과정의 기록, 위기의 포착, 원인의 분석―이 이 책에 영향을 주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둘째 해인 기원전 430년에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침입하여 은광산을 공격했다. 동시에 전염병이 아테네를 덮쳐 맨 먼저 항구도시 페이라이에우스(Peiraieús)를 공격했다. 소문에 따르면 이 병은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너머 에티오피아에서 애초에 발생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이는 ‘타자’의 질병으로 간주되었다. ‘검디검은 아프리카’가 서양문명을 괴롭힌다는, 그리고 ‘서양문명’은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테네에서 이 병은 병사들을 죽이고 도시 인구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스파르타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자 이 병은 맹렬한 속도로 퍼졌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염병의 증상을 염증, 갈증, 불면증, 설사라고 서술한다. 투키디데스로서는 이 병을 자연적 위기의 일부로서 보는 수밖에 없다. 새나 짐승도 감염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했다.

외교관들과 은행가들의 역사가이며 모든 정치가를 위한 핸드북을 쓰는 투키디데스는 이 유행병에 ‘자연적’ 측면을 조금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이름 모를 질병이 유발한 ‘극단적 무법’을 서술했다. “번영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고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이 그들의 번영을 이어받는, 급속한 변화를 보고 ··· 사람들은 이제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했다.” 질병의 사회적 동학은 해방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걱정이 되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든 인간의 법이든 그들을 제한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전염병은 또한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를 낳았다. 페리클레스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 자신도 전염병에 굴복했다. 이것이 군사적 전환점이 되어서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떠났다. 이 병은 모든 곳에서 계급투쟁을 격화시켰다. 코르큐라 섬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익숙한 가난을 제거하기를 바라고 이웃의 재화를 열렬히 탐낸 자들의 간악한 의지”와 “공정한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 실로 지배자들의 오만한 대접만을 받은 피지배자들이 가하는 보복”이 투키디데스를 걱정시켰다. 그러나 노예들, 가난한 사람들, 피해를 입은 사람들 쪽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 바로 치료과정이 되었다.

 

  1. 기독교와 대탕녀 바빌론’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로마 시대의 거시기생체들은 공납, 세금, 십일조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 세계의 민족들을 먹이로 삼았다. 팔레스타인에서 포르투갈에 걸쳐 있는 가난한 서민들은 이방인들의 공격으로부터의 면역성을 시저와 네로의 문명화된 군대들에 돈을 지불하고 샀다. 이 ‘보호자들’은 그들의 ‘건강’을 아프리카, 인도, 북부 유럽까지 확대하여 네 개의 인간 질병 유전자풀(유전자급원遺傳子給源)이 지중해 세계로 합류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유행병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홍역, 천연두,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이질, 볼거리, 말라리아가 정기적으로 찾아오면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이는 상업과 정복이 이 ‘알려진 세계’를 확대하면서 기원 후 543년 유스티니아누스의 역병[나중에 ‘흑사병’이라 불리게 된 ‘페스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지중해 질병 유전자풀의 형성은 힌두교, 불교, 기독교가 공고화되던 바로 그 세기들에 일어났다. 질병과 종교는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각 종교의 초월적 숙명론이 중국, 인도, 로마의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제도화된 기독교인들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았으며, 죽음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정의는 저승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카이싸레아의 에우쎄비우스(Eusebius of Caesarea)는 흐뭇하게 자신의 교회를 신뢰했으며, 카르타고의 주교는 죽음을 ‘유익한 떠남’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로마 제국의 미생물학은 초기 교회 건립자들의 신학장사에 묻히게 되었다.

그런데 ‘대탕녀 바빌론’인 로마의 거시기생체는 파토모스의 요한에게 규탄을 받았는데, 요한은 「요한의 묵시록」에서 증거의 천막(the Tent of Testimony)에서 일곱 재난(Seven Plagues)과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일곱 대접(Seven Bowls of the Wrath of God)을 갖고 나온 일곱 천사에게서 구원을 본다.

첫째 대접은 독한 종기를 쏟아냈다. 둘째 대접은 바닷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셋째 대접은 강물과 샘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넷째 대접은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 다섯째 대접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게 했다. 여섯째 대접을 유프라테스 강에 쏟자 강물이 말라버렸다. 일곱째 대접을 쏟자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이런 대목들은 중세(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에서 17세기(아비저 콥Abiezer Coppe)를 거쳐 20세기(피터 토시Peter Tosh, 밥 말리Bob Marley)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년 동안 천년왕국설 신봉자들과 혁명가들에게 예언적 희망의 원천이 되어왔다.[피오레의 요아킴은 이탈리아에서 <피오레의 싼 조반니> 수도회를 창설한 사람이고 아비저 콥은 영국의 종교운동가이며 이탈리아의 피터 토시는 밥 말리와 함께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가이다.]

「요한의 묵시록」전체에 담긴 계급적 분노가 이 묵시록을 대중을 위한 아편이라기보다는 전위를 위한 크랙[강력한 코카인의 일종]으로 만든다. 바빌론과 간통을 한 지상의 왕들과 바빌론의 부풀어진 부에 기반을 두어 부자가 된 세상의 상인들은 울며 슬퍼할 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상품을 사고 팔 수가 없었다. “그 상품에는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모시, 자주 옷감, 비단, 진홍색 옷감, 각종 향나무, 상아 기구, 값진 나무나 구리나 쇠나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밀가루, 밀, 소, 양, 말, 수레 그리고 노예와 사람의 목숨 따위”가 있었다.[「요한의 묵시록」18장 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