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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삐께띠가 서술한 것보다 더 나쁘다

 



삐께띠의 통계의 문제는 그것이 세상이 얼마나 불평등한가를 매우 낮추어 말하고 있다는 데 있다. 소득에만 시야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자들은 소득을 벌지 않는다. 그들은 자본 이득(capital gains)을 거두어들이며, 자본 이득은 소득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보고는 되는데, IRA가 10년 정도마다 자본 이득에 대한 연구를 할 뿐이다. 영국을 비롯한 많은 유럽 나라들은 아예 자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기지 않으며 그래서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다. 삐께띠의 작업의 중요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이는 그의 책을 잘 읽는다면 알 수 있다―부의 격차가 소득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크며 이는 부자들의 조세회피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는 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제일 큰 기업들이 구글과 애플인데, 애플의 소득 전체가 미국이 아니라 아일랜드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바로 이런 점이 삐께띠에게는 빠져있다. 소득 통계에서 빠져 있는 또 하나는 재산이 실제로 범죄와 사기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다. 삐께띠에게 좋은 점은 그가 프랑스 소설가들이나 영국 소설가들이 경제학보다 부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이나 발자끄의 19세기 소설들이 재산을 버는 방법은 결혼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발자끄는 모든 큰 재산의 뒤에는 큰 절도가 있다는 말도 했다. 『포브스』(Forbes)에 그 목록이 나온 러시아, 중국, 우크라이나의 최고 부자들은 장담컨대 소득을 저축해서 이런 부를 만들지 않았다. 더 높은 소득을 번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기와 내부 뇌물수수로 재산을 훔쳤다. 미국에서 큰 재산이 형성되는 방식과 같은 방식이다. 마이어스(Gustavus Myers)가 쓴 『미국의 거대한 재산의 역사』(History of the Great American Fortunes)는 철도건설용으로 불하된 토지에서, 의회 의원에게 뇌물을 줌으로써 그리고 토지를 사유화함으로써 큰 재산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큰 재산은 자연자원, 토지, 공적 도메인을 사유화함으로써 형성된다. 부와 소득의 집중이 실제로 일어나기 시작한 1980년 이후의 시기, 삐께띠가 보여주는 이 시기는 바로 새처, 레이건, 옐친이 대표하는 사유화의 시기이다.

삐께띠는 격심한 불평등의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토론을 출발시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어떻게 이런 불평등이 생겼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나를 설명하는 것이다. 단지 재산 일반에 세금을 매기는 해결책은 (이것은 실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인데) 치는 면이 너무 넓은 해머와 같다. 특정 종류의 부, 특정 종류의 재산 형성이 약탈적인데, ‘경제적 렌트’(economic rent)―지대(land rent), 자연자원 렌트(natural resources rent), 독점 렌트(monopoly rent), 혹은 금융부문이 벌어들이는 종류의 돈―가 바로 그것이다.[J is for Junk Economics에서의 허드슨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경제적 렌트’는 시장가격이 본래적 경비(가치)를 넘어서는 초과분이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은 모두 경제적 렌트이다.―정리자] 삐께띠의 책은 이것을 논의하지 않고 마지막에 부에 과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할 뿐이다. 맞지만, 어떻게 과세를 할 것인가, 무엇이 경제를 성장하게 만들기에 최고로 좋은 종류의 세금인가는 미래의 또 하나의 책의 주제로 남아 있다. 삐께띠가 논의하지 않은 것 가운데 하나는, 재산을 형성하는 데서 부채가 하는 역할이다. 1980년 이래 형성되기 시작된 부의 대부분은 1980년 이후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증가된 부채 레버리지 때문에 생겼다. 점점 더 많은 은행신용이 투입되어 부동산 가격, 주식 가격, 증권 가격, 모든 종류의 가격을 올렸다. (미술품 가격 상승도 이와 병행했다.) 소득에 대한 부의 비율의 증가와 함께 소득에 대한 부채의 비율의 증가가 일어났다. 이 부채상태와 순가치(net worth)는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가구들이 가지고 있는 주된 자산은 집인데, 이 집 또한 큰 액수가 대출 담보로 잡혀 있으며, 기본적으로 99%가 1%에게 이자를 지불한다. 내가 보기에 금융 부문에서 가속화되어 온 것은 1%가 99%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빚지게 만드는 능력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집을 사고, 교육을 받고, 기타 기본적인 생활필수품을 사는 데로 접근하는 지점을 우리가 통제한다. 우리가 빌려주지 않으면 당신들은 집을 사지 못하고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차도 사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충분한 이자를 매길 것이다. 당신들이 버는 돈을 사실상 다 우리에게 이자로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와 동일한 논리로 기업사냥꾼들은 기업을 공격하여 더 많은 돈을 배당금으로 지불하라고 말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사실상 실질적 부가 해체되고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 혹은 가공적 부(fictitious wealth)라고 불리던 것―모두 기본적으로 부채 레버리지를 통한 부이다―이 증가한다.

도금시대(Gilded Age)[원래 미국의 1880년대와 1890년대를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그 의미가 일반화되어 사업가들·은행가들(‘강도남작들’robber barons)이 경제를 망치면서 부를 축적하는 시대를 가리킨다.―정리자]가 막 시작되었다는 삐께띠의 결론은 맞지만 그의 논리는 내가 따르는 논리가 아니다. 그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것의 정반대를 말하고 있다. 스미스는 가장 빨리 망해가는 나라에서 이자율이 가장 높은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즉 높은 이자율로 망할 수도 있고 낮은 이자율로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삐께띠는 수익률(rate of return)을 말하는데,[삐께띠가 말하는 자본수익률(rate of return on capital)은 이윤, 배당금, 이자, 지대 및 기타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을 말한다.―정리자] 미국 및 여러 나라들에서 가장 큰 부문은 부동산 부문이다. 1945년부터 지금까지를 보면 부동산 부문은 소득을 올리지 않는다. 억만장자들이 부동산을 개인적 자선으로 운영한다는 식이다. 소득을 올린다면 소득세를 내야 할 것이고 신고를 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소득을 올리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거두어들이는 렌트(임대료)가 거의 모두 이자로 지불되거나 감가상각 비용으로 책정된다. 그래서 삐께띠가 준거하는 것은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Earnings Before Interest, Tax,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이 아니라 그 한 부분, 즉 세금 빼고 이자 빼고 감가상각비와 무형자산상각비를 빼고 신고된 수입이다. 부동산 다음으로 부를 많이 축적한 곳은 석유산업이다. 이들도 소득을 신고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세금을 면하게 해주는 감모공제(depletion allowance)가 있거나, 아니면 이들의 모든 소득은 해외에서, ‘편의치적선’(flags of convenience)[상선의 소유주가 자신의 나라와는 다른 나라에 선박을 등록하는 것―정리자] 나라들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자본 이득을 포함한 실질적 총수입은 삐께띠가 보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둘째, 가령 미국의 국민소득계정(National Income and Product Account : NIPA)을 보면 1년 전 미국의 모든 기업이윤의 40%가 은행들, 즉 금융부문에서 거둔 것이다. 이 수익은 기본적으로 ‘이전 지불’(transfer payment)이다. 성장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 금융서비스는 서비스가 아니다. 노상강도가 현금자동인출기 앞에 있는 당신에게 다가와서 ‘돈을 내놓거나 목숨을 내놓아라’라고 말하는 것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는 실제로 당신의 돈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금융 활동과 부동산 투기가, 월가에, 은행 경영자들 및 기업경영자들에게 지불되는 이 모든 돈이 정말로 성장인지 아니면 가공자본의 형성과 병행하는 일종의 가공적 성장인지의 문제가 있다. 지금 통계는 점점 더 허구적인 성격을 띠어가고 있는데, 자신들의 소득에 세금이 매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하는 기업 세금담당 회계사들에 의해 통계가 작성되고 있을 정도이다. 호주의 탄광 부문에서는 호주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1년에 수십억을 거두어들이면서도 자신이 소득을 한 푼도 벌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만들기 의해 많은 돈을 지불한다.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이다. ‘신고전주의’는 ‘반(反)고전주의’를 의미한다. 그는 경제적 렌트 같은 것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또한 은행들이 신용을 창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은행들이 하는 일은 저축을 대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은행들이 신용을 창출하거나 자산가격을 부풀리는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그래서 크루그먼은 대체로 우파 쪽에 의해서 그들이 총애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찬양된다. 그가 경제를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했다면, 그는 노벨상을 타지 못했을 것이다. 노벨상은 경제적 렌트 같은 것이 없고 불로소득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크루그먼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훨씬 더 많이 받고 훨씬 더 많은 소득을 버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심지어 통계에 대해서도 틀렸다. 그가 전문적인 은행 로비스트임을 기억하라. 그는 은행에서 돈을 받는다. 그는 은행들을 규제하려는 정부에 대항하는 싸움에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아이슬란드로 갔다. 은행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 그가 은행의 로비스트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적하는 월가의 소득을 보자. 미국의 조세법 아래에서는 월가의 소득은 실질적으로 일을 해서 벌어들인 소득이 아니다. 그들은 스톡옵션과 증권투기로 대부분의 돈을 번다. 이는 자본 이득으로 간주되며 정상적인 소득처럼 과세되지 않고 훨씬 더 낮게 과세된다. 이는 가공적인 관점, 무엇이 소득이고 무엇이 소득이 아닌가를 회계사의 눈으로 보는 관점이다. 세금담당 회계사들은 정부에 엄청난 돈을 먹여 납세(소득세)신고서의 범주들을 왜곡하고 마치 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금융 형태의 부를 가시적인 부동산과 대조적으로 비가시적 부라고 부른다. 부유한 자들의 생각은 그들의 부를 비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일 눈에 뜨인다면 세금이 매겨질 것이고 사람들의 원망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삐께띠가 한 것은 이 부를 가시화한 것이다. 적어도 그는 부 통계에 의해 ‘보라, 저기 부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측정할 수 있으며 우리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어떻게 이 부를 획득했는가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부에 대응하는 몫이 소득에서 발견되는 정도를 반영하는 소득세 명세서뿐이다. 이는 마치, 열쇠를 떨어뜨렸는데 떨어뜨린 곳을 보지 않고 빛이 있는 곳을 보는 것과 같다. 그가 작업할 통계자료는 소득세 기록뿐이며 그는 기술적으로 엄청난 작업을 해놓았다.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그 통계를 다시 처리하여 풀어내고 무엇이 그 뒤의 실제 현실인지를 찾아내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 월가와 금융 경영자들로 하여금 소득을 거두는 것을 가능하게 한 자본 이득이 무엇인지를 말해야 한다. 그들의 계약은 매우 분명하다. 기업경영자의 소득은 주식 가격에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보너스를 받거나 아니면 스톡옵션을 받는다. 만일 그들이 주식가격에 기반을 둔 보너스를 받는다면 그들은 기업의 수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기업의 소득을 받고 새로운 장비와 설비에 투자하는 대신에,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는 대신에, 더 많이 생산하는 대신에, 자본 투자 대신에 단지 자기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데 돈을 사용할 것이다. 주식을 매입하면 주식 가격이 올라가고 그들은 ‘보라, 나의 회사 경영이 어떻게 주식가격을 올렸는지를, 그러니 나에게 더 높은 보수와 스톡옵션과 보너스를 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자본 이득, 이 공짜 점심(불로소득)에 과세하지 못하는 것은 경제의 왜곡을 낳고, 이것이 삐께띠가 다룬 통계를 산출한다.

▷ [삐께띠의 책이 맑스의 『자본론』을 계승한 것(“a retake of Marx’s Das Kapital”)이라는 견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홍보상으로는 그렇게 부를 수 있으나 이 책은 맑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맑스의 『자본론』은 감가상각(depreciation)에 기반을 둔다. 사유화와 사기를 의미하는 ‘시초 축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이 맑스이다. 삐께띠의 분석은 (그의 부모가 트로츠끼주의자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맑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① 감가상각은 자본 투자, 건무, 장비 기술에 들어가는 비용을 다시 채우기 위해서 신고되는, 소득에서 공제하는 회계항목이다. 이는 원래 투자된 자본의 양을 다시 회수하는 것으로서 투자된 자본에 추가되는 이윤과는 다르다. 허드슨의 책 J is for Junk Economics의 ‘감가상각’ 항목의 한 대목은 이렇다. “감가상각은 칼 맑스에 의해 처음 가치이론에 추가되었다. 맑스는 께네Quenay의 경제표를 비판하면서 께네가 곡물 가운데 종자로 따로 떼어 자본비축고를 유지하고 다음 해 파종에 쓸 몫을 무시했음을 지적했다.” ② 흥미롭게도 허드슨의 아버지도 트로츠끼주의자이며, 허드슨이 태어난 미니애폴리스는 당시 미국 유일의 트로츠끼주의 도시였다.― 정리자]

▷ [맑스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법칙이 이윤율 저하 경향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보다 더 오해된 것은 없다. 맑스가 말한 것은 자본이 생산을 기계화함으로써 노동에 비해 증가할수록 이윤보다는 감가상각의 형태로 회수되는 자본이 양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맑스는 비용회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중농주의자들과 께네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께네의 경제표는 경제에서 소득의 순환, 지주들이 받은 지대의 순환을 말한다. 지주들은 일부는 소비하고 일부는 지출하는데, 여기서 빠진 것은 지대소득에서 새 종자 곡물을 사는 데 지출되어야 하는 양이다. 맑스는, 공장제 생산을 하는 산업자본주의에서는 기계가 있는 공장을 짓는 데 백만 달러를 쓰고 그것으로 이윤을 창출할 것이라면 투자된 백만 달러에 대한 이윤(5%, 즉 1년에 5만이라고 치자)만 얻는 것이 아니라 백만 달러도 회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장과 장비가 마모되거나 노후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정되는 가격에는 이윤분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투자된 자본의 회수분도 포함된다. 그래서 맑스가 이윤율 저하를 설명하는 대목을 직접 읽지 않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나의 책 『거품과 그 너머』(Bubble and Beyond, 2012)에서 설명했다. 그런데 맑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맑스에 대해서, 그리고 이윤율 저하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냥 그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단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서 허드슨이 말하는 것은 경제학이라는 전문분야의 틀 내에서의 것이다.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 있다. 맑스는 『자본론』 3권 14장 「법칙 그 자체」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경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점진적 발달의 표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표현―에 불과하다.” 이윤율 저하 경향이란 생산자의 생산능력이 높아지는 과정의 자본주의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생산자의 생산능력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는 소외의 형태로 즉 자본의 힘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자본(화폐자본)의 물신화를 낳는다.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에서는 생산자의 생산능력이 높아지는 과정이 이와는 다른 식으로 표현될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는 아직 자본을 넘어가는 과정이 현실적 과제로서 주어져 있는데, 맑스가 늘 말한 대로 우리로 하여금 자본을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할 조건도 생산자의 높아진 생산 능력 이외의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맑스는 ‘사회적 개인’과 ‘일반지성’을 말하는데, 전자는 생산능력이 높아진 주체성(생산자)의 특성을 가리키고 후자는 그 능력이 기계(맑스의 시대에는 컴퓨터가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디지털 장비들이 여기서 말하는 ‘기계’의 주된 구성부분이 될 것이다)를 통해 구현되는 측면을 가리킨다. 이에 관해서는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 『공통체』등의 저작에서 이미 충분히 말해놓았다.―정리자]

[감가상각에는 과세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부동산의 경우에는 더 기괴하다. 미국에서는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하는 동안에도 건물이 실제로 가치를 상실하는 척할 수 있다. 건물에 수명이 있어서 건물주가 자본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부동산(이는 실제로 토지를 의미한다)이 기계처럼 마모되거나 컴퓨터처럼 노후화되는 양 말이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사는 뉴욕시에는 건물이 오래될수록 더 가치가 있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지관리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건물주들은 소득의 약 10%를 건물의 유지보수에 지출한다. 그런데 건물주들은 건물이 닳아 없어지는 양 감가상각을 적용하고 그 때문에 그들은 이윤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회수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건물을 완전히 감가상각한 다음에 그것을 서로 팔거나 자신이 다시 사서 전체 과정을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같은 건물이 계속해서 닳아 없어지는 양 계속해서 감각상각한다. 계속 교체되는 소유주들은 이에 대해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 [허드슨이 이윤율 저하 경향이 부의 격차에 대한 분석으로서 아직도 타당하다고 보는 것 같다는 말에 대해]

맑스는 캐시플로(cash flow) 일부의 구성에 대해서 말했다. (캐시플로는 ‘이자, 세금, 감가상각비, 무형자산상각비 차감 전 이익’이다.) 캐시플로 내에서는 자본이 기계를 사용하여 더 자본 집약적이 되는 정도로 감가상각의 역할이 이윤에 대비하여 상승한다고 맑스는 말했다. 따라서 핵심은 자본의 회수와 노동고용 등에 지출된 것의 수익의 관계이다.[여기서 끊겨서 다소 불명확한데, “자본의 회수”라고 했을 때에는 불변자본의 회수로 이해하고, 노동고용 등에 지출된 것의 수익은 가변자본이 낳은 이익인 이윤을 포함한다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정리자]

 

① return of capital  자본의 회수  투자한 자본양이 회수되는 것. 부채의 경우라면 원금이 회수되는 것에 해당한다.
② return to capital  자본 수익 투자한 자본양보다 증가한 양. 부채의 경우라면 이자에 해당한다.
③ capital gains 자본 이득 ‘자본’(capital)이라는 말이 들어갔으나 사실은 생산에 자본으로서 관여하지 않은 자산의 가격이 오름으로써 얻은 이득을 가리킨다.
* 여기서 ‘자본’의 두 유형/두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생산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증식되는 자본이다. 전자의 전형은 산업자본이고 후자의 전형은 대부자본이다. (산업자본도 화폐의 형태로 차입되므로 ‘화폐자본’이라는 말은 너무 넓다.) 흥미롭게도 위의 ‘자본 이득’의 경우처럼 ‘자본화’(capitalization)도 생산과는 무관한 과정을 나타낸다. 이는 이미 맑스의 『자본론』3권에 나온다. “가공자본의 형성은 자본화(capitalization)라고 불린다.(Die Bildung des fiktiven Kapitals nennt man kapitalisieren.) 모든 규칙적인 주기의 수입은, 평균이자율로 대출된 자본이 낳을 수입이라고 간주함으로써, 평균이자율을 기초로 자본화될 수 있다. (···) 이리하여 자본의 현실적인 가치증식 과정과의 모든 연관은 그 최후의 흔적까지 모두 없어지고, 자본은 자신의 힘에 의해 저절로 증식된다는 관념이 확고하게 된다.” 한 달에 2백만 원을 받는 노동자가 있고 당시 이자율이 5%라면 2백만 원을 이자로 계산했을 때 원금은 2백만 원에 20을 곱한 4천만 원이다. 이제 이 노동자는 4천만 원을 가진 자본가로 탈바꿈한다. 모든 개인을 기업가로 만드는 것은 오르도자유주의(독일에서 발생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사상)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 시대가 이런 ‘자본화’에 기반을 둔 사고가 만연되어 있고 ‘자본화’ 세력이 주된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회라면 이 점에 관한 한 우리 시대는 맑스가 본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자본’주의―가치증식(생산과정)으로부터 분리된 것―의 시대일 것이다. 허드슨이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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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경제학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J is for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7)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마이클 허드슨의 저서 J is for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7)에서 ‘쓰레기 경제학’(Junk Economics)을 다룬 부분을 몇 개 발취하여 그 내용을 옮기거나 정리한 것이다.

[서언 : 갈림길에 선 경제와 경제이론]

우리는 2008년의 경제 위기 시에 미국과 유럽이 경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들과 증권소유자들을 구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정부들이 구제금융과 ‘양적 완화’에 수조 달러를 지출하여 거대 채권자들과 투기자들을 악성 대출과 도박으로 손해를 입을 처지에서 구해주었지만, 공공 및 민영 기반시설은 붕괴되도록 방치되었고 중위임금(median wage, 근로자 임금 중간값)은 하강하고 있다. 연금 저축은 거덜이 났고 사회보장을 삭감하는 압박이 일고 있다.

‘쓰레기 경제학’(Junk Economics)이 이 모든 것의 커버스토리이다. 이 쓰레기 경제학은 자신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금융세력의 후원을 받아 소득과 부를 상층부에 몰아주는 식으로 재분배하며 19세기 고전경제학자들과 진보 시대(Progressive Era, 1890-1920)의 개혁가들이 주장한 정책들을 전도시키고 있다. 이 이데올로기는 진보적 과세는커녕 1%가 아니라 99%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 효과는 중산층을 부채에 빠뜨리면서 경제로부터 화폐가 빨려나가 1%에 흡수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생기는 긴축 상태가 공공 자산과 자연자원을 사유화하는 데 구실로 사용된다. (고전경제학자들은 이 공공 자산과 자연자원이 정부의 제대로 된 기능들을 운영하기 위한 조세기반을 제공하기를 바랐다.) 부채에 묶인 지방 및 일국 정부들은 채권자들에게 공공 기반시설을 팔아넘길 수밖에 없다.

이런 사유화의 핑계는 이것이 기본 서비스의 경비를 낮추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아넘겨진 공공 기반시설은 새로운 소유주들이 독점 가격을 매길 기회를 제공했으며 이는 제공 가능한 기본 서비스의 감소를 낳았다. 미국에서 강제적으로 사유화된 오바마케어(Obamacare)는 가구들의 예산을 쥐어짜내고 있으며, 다른 한편 영국에서는 사유화된 철도와 물이 가장 심한 사례이다.

오늘날 사회는 봉건제의 유산과 귀족들·은행업자들·독점가들의 세습적 특권들로부터 해방되어 약속된 풍요로운 여가 경제로 나아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의 금융 엘리트들은 사회를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유서 깊은 ‘공짜 점심’(불로소득)을 증가시키기 위해 ‘쓰레기 경제학’을 장려하고 있다. 그들이 경제 일반에 창출하는 부채 간접비용은 한 세기 전에는 피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금융 계층은 빚을 지는 것이 마치 자산 가격을 부풀림으로써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양 미화했다. 임금, 이윤, 지대(임대료)는 기하학적으로 늘고 있는 이자를 지불하는 데로 들어간다. 한편 국가 통계는 사람들의 주의를, 부채 서비스가 어떻게 가구 및 사업 소득을 빨아들이고 있는지로부터 다른 데로 돌린다.

그 결과 나오는 금융 긴축 상태가 야기하는 고통은 결코 자연법칙의 결과가 아니며,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 시장’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의 이러한 전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이중어(Doublespeak)의 새로운 어휘를 통해 장려된다.[오웰의 『1984년』에서 ‘Newspeak’(신어)는 가상의 초국가 오세아니아Oceania의 공식 언어이다. ‘doublethink’(이중사고)와 합하여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이중사고’는 서로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이다. ―정리자] 예를 들어 ‘개혁’이라는 말은 오늘날 사용되는 바로는 미국과 유럽의 부유한 중산층을 창출하는 것을 촉진했던 진보 시대의 개혁과 반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20세기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이 진보적 과세, (기본적인 경제적 서비스 비용을 낮추기 위한) 공공 기반시설 지출, 뉴딜 및 기타 (화폐와 금융을 약탈적 독점이 아니라 공공 유틸리티로 만드는) 입법이라는 점은 잊혀졌다.

더 현실에 기반을 둔 분석과 정책입안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이 책은 경제학을 (그 어휘와 기본 개념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의 온전한 학문분야로서 재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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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발췌 정리1]

「사기로서의 경제학」(“Economics as Fraud”)을 쓴 이래 나[허드슨]는 현실을 다루는 경제학과 ‘쓰레기 경제학’ 사이의 차이가 훨씬 광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새로운 글 「경제학 방법론은 이데올로기이며, 정책을 좌우한다」(“Economic Methodology is Ideology, and Dictates Policy”)는 어떻게 방법론이 내용을 결정하는지를 설명한다. 방법론이 오늘날의 주류가 규정하는 범위, 수학, 그리고 심지어는 통계조차도 만들어낸다. 쓰레기 경제학의 본질은 ‘경제’를 ‘시장’의 관점에서만 협소하게 개념화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현상유지를 의미할 뿐이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경제모델들은 오늘날의 자산소득자(rentier) 경제에서 부채가 가져오는 정치적·환경적·법적 파급효과들을 배제한다.

[기타 발췌 정리2]

쓰레기 경제학과 이 경제학이 사용하는 완곡어법 어휘들은 사람들의 주의를 원인으로부터 (따라서 필요한 치유책으로부터) 다른 데로 돌림으로써 사고의 도구들을 제한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령 낙수 이론은 현실을 숨기는 어휘로 짠 외투로 자산소득자의 기생적 존재를 가린다. 많은 채무자들의 삶은 그들의 피를 빨아먹는 드라큘라의 경제적 화신에 의해 장악되는 듯하다. 정치가들은 이주민들 또는 다른 소수민족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로비스트들은 임금노동자들과 중산층에게 그들이 빚에 구속된 상태에 있는 것은 높은 주택비용, 모기지에 의해 금융을 제공받는 교육 및 생활, 학자금 융자, 신용카드 빚 때문이 아니라고 설득하려고 한다. 1%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고 사업체들을 ‘과도하게 규제한다’(특히 맑은 공기, 건강한 식품, 정직한 회계를 증진하기 위한 규제)는 비난이 정부에게 가해진다.

[기타 발췌 정리3]

기만을 핵심으로 하는 ‘쓰레기 경제학’은 진보 시대의 실질적인 개혁을 전도시켜 신자유주의적 협정을 법, 과제, 무역규칙에 대한 ‘개혁’으로서 내세운다. 이른바 ‘전문가들’(기업의 로비스트들)은 경제를 민주적 정부의 손으로부터 빼내서 세계의 금융 중심들에 안겨주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고 그에 대한 합리적 대안은 없는 양 진보를 재정의한다. 이 이데올로기적인 신냉전(New Cold War)은 미국의 통제 아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에 의해 집행된다. 월가와 그 위성(외곽) 금융기관들을 위하지 않는 정책들을 시행하는 나라들은 비(非)자유로 가는 길을, ‘타자’의 길을 좇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1세기 전에는 진보로 생각되었던 것을 전도시킨 것은 자유의 희화화이며 저열한 거짓말이다.

[기타 발췌 정리4 : ‘쓰레기 경제학항목의 설명]

‘쓰레기 경제학’이란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행위를 착취적인 제로섬 자산소득사냥 행위로서 서술하지 않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서술하기 위해서 증진시키는 홍보활동을 가리킨다. 쓰레기 경제학은 자산소득자들(rentiers)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유토피아적 평행우주에 적절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공상과학소설이다. 좋은 소설이나 희곡에는 일관되게 행동하는 등장인물들이 나오지만, 이 유사과학의 기준은 단지 그 전제들의 내적 일관성이지 세계의 리얼리즘적 형상화가 아니다. 많은 가장 칭송받는 경제학자들은 가설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계에 관해 선험적인 공리들로 논리적으로 사고한다. 금융 포퓰리즘의 ‘낙수’ 전략은, 상위 1%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나머지 99%에게 가장 좋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려면 생산적 활동과 약탈 행동을 구분하는 자산소득(rent, 금리, 임대료, 지대)이라는 고전적 개념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카고학파의 ‘합리적 시장’ 이론이나 래퍼 곡선(Laffer Curve), 한계효용이론 같은 자유 시장 경제학은 단기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장기적인 것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경제의 큰 그림을 무시한다. 부채는 나중보다는 지금 소비하고 싶어 하는 성급한 소비자들이, 또는 장기적인 자본투자를 위해 차입함으로서 이윤을 만들어내려는 사업가들이 맺는 계약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준거틀에는 하나의 경기 주기에서 다음 주기로 이전되는 부채의 상승하는 총액을 분석할 여지가 없다. 공공 기반시설 지출 또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정부 차입은 단지 경제적 이익 없는 조세로서, 경제에 짐이 될 뿐인 것으로서 나타난다. 정부 지출은 단지 소비자물가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고용을 증가시키거나 사업체와 가구들에게 기반시설 서비스의 경비를 낮추어 주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건전한 화폐’는 정부가 아니라 은행들에 의해서만 창출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전제들의 목표는 화폐 정책과 주류 경제사상을 장악하여 그것을 계급 전쟁(99%와의 싸움)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오류가 반복되는데도 성공이 널리 이루어진다면 그 뒤에는 항상 특수한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가장 넓게 보면 (맑스가 말했듯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 이제 더 이상 이런 혹은 저런 정리(theorem)가 참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자본에 유리한가 해로운가, 편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만을 묻는다···. 사심 없는 탐구자 대신에 고용된 논객들이 들어섰다. 진정한 과학적 연구 대신에 현재의 상태를 옹호하려는 흑심과 사악한 의도가 들어섰다. ”[원주: Marx, “Afterword” to the 2nd German edition of Capital (Vol. I, [1873], London, 1954), p. 25.]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공생관계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The Bubble and Beyond : Fictitious Capital, Debt Deflation and Global Crisis (2012)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정리자 설명]

아래는 마이클 허드슨의 책『거품과 그 너머 ― 가공자본, 부채 디플레이션 그리고 전지구적 위기』(The Bubble and Beyond : Fictitious Capital, Debt Deflation and Global Crisis) 3장의 한 절―“The Symbiosis between the Financial, Insurance and Real Estate (FIRE) Sectors”―의 내용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부채 : 첫 5000년』(Debt: The First 5,000 Years)을 쓴 인류학자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마이클 허드슨보다 나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을 구성하는 예리하고 훌륭한 에세이들은 정말이지 경제학을 배우는 모든 1학년 학생들에게 과제로서 부여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경제학이 자신의 고결한 전통―허드슨이 여기서 그토록 훌륭하게 구현하는 바의 전통―을 배반하고 권력의 한갓 도구가 되었다는 사실의 궁극적 증거이다.

허드슨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검색을 해보니 그의 존재를 인지한 두 블로그(, )가 잡힌다. (더 있을 수 있지만 계속 검색할 여유가 없다.) 그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없고, 신문들에서 그를 다룬 기사도 거의 없는 듯하다. 이는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맑스에서 정점에 이르는 고전경제학에 비탕을 두어 현재의 경제상황을 분석하는 경제학자는 점차 사라지고 있으며(이는 내가 과문한 탓일 수도 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자 지망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면 『자본론』 같은 책은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언론은 그 주요 광고주가 오늘 소개할 내용의 표적인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이니 허드슨을 소개하면 주요 광고주들의 ‘적’을 소개하는 셈이 된다. 사실 허드슨은 여러 경제 이론들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이런 방대함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① 맑스에서 정점에 이른 고전경제학의 문제의식(경제 영역에서 봉건적 특권의 완전한 제거를 통한 자유로운 생산의 실현)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② 그러한 관점에서 현대 자본 세력의 가장 주도적인 부분이 어떻게 경제의 핵심인 생산활동에 해로운 짐이 되고 있는가를 폭로하고 ③ 아울러 그 해결책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부채의 탕감이 불가피함을 (부채탕감의 역사에 대한 서술과 함께) 역설한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허드슨이 맑스의 자본 분석에 기반을 둔다는 점이 마음에 들고 이에 덧붙여 그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현실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서 많이 배우려고 하지만, 내가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 초점을 두는 것과 달리 그는 공적인 것(the public)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여기에는 여러 중요한 논점들이 포함된다.) 물론 그의 책들을 막 읽기 시작한 상태이기에 이런 생각은 현재로서는 어설픈 가설 상태의 것이고 일정한 양의 독서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조금이라도 확연해질 것이다. 혹 이러한 차이가 있더라도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매우 많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이전 블로그의 글에서도 시사했듯이) 허드슨의 저서, 인터뷰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부 내용들을 틈틈이 소개할 생각이다.


금융·보험·부동산 부문의 공생관계

산업혁명이 동력을 얻자 경제학자들은 은행업과 보험이 산업 시스템에 흡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 이론가들의 시선은 여전히 산업 테크놀로지와 혁신에 맞추어져 있고 인구는 농업에서 도시 산업으로 이동한다. 교과서들(과 로비스트들)은 은행가들이 산업자본가들에게 신용을 제공하여 새로운 공장을 짓고 노동자들을 고용하게 함으로써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한다. 대출은 자본 투자에 의해 생성되는 이윤에서 상환될 수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한다. 교과서의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가 금융기관들에게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에 사용된다. 금융기관들의 신용창조가 경제적 복지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자는 (기업사냥꾼이 약탈적인 신용을 사용할 때조차도) 세금이 감면되어야 할 지출로 간주된다.

그런데 지난 세기에 걸쳐서 주로 금융·보험·부동산 부문 사이에 공생관계가 출현했다. 현대 경제에서는 부동산이 자산의 큰 비중을 차지해왔다. (그래서 대출의 담보물이 된다.) 미국과 영국의 상업은행 대출의 약 70%는 모기지 신용의 형태를 띤다. 미국 전체에서 부동산의 추정되는 시장가치는 모든 공장 및 장비의 감가상각된 가치를 초과한다. 은행의 대출담당 직원들은 그들이 일하는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 증가치의 대부분이 모기지론으로 구성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 신용이 급속히 창조되면 될수록 더 많은 기금이 새로운 모기지 금융으로 흘러들어가서 부동산의 가격을 올린다. 그리하여 적어도 단기나 중기적으로는 그러한 대출이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금융화되는 재산 가운데 토지(장소의 가치)가 일반적으로 전체의 반 정도를 차지하며 그 재산이 팔렸을 경우 발생하는 자본 이득의 전체를 차지한다. 산업 기계가 손모될 경우 보통 기술 발전에 보조를 맞추려면 철거되어야 하기 때문에 감가상각액(자본감모충당금, capital consumption allowances)의 대부분은 부동산 부문에서 신고된다. 그런데 건물들은 계속적으로 감가상각될 수 있고, 따라서 그 소유주에게 (특히 이자가 소득에서 공제될 수 있는 만큼) 소득세 부담을 덜어준다. 그 결과 조세제도는 (특히 미국에서) 산업보다 부동산에 훨씬 더 유리하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가 쉬우며 총수익(세후 소득 + 자본 이득)이 더 높다. [자본이득 capital gains : 구매한 자산의 가격이 올라서 얻은 이득. 허드슨의 J is for Junk Economics에 따르면 미국은 정치가들에게 돈을 대어 자본이득에 부과하는 세율을 일반적인 소득세의 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정리자]

금융업은 세금징수원에게서 해방된 돈이 이자를 지불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알고는 부동산에 대한 특별한 세금우대조치를 지지했다. 부동산 소유주들에 의한 정치후원금과 로비활동의 뒤를 금융 부문의 정치후원금과 로비활동이 이었으며, 이에 비하면 제조업 부문의 정치후원금과 로비활동은 초라했다. 그런데 부동산 부문이나 금융 부문은 (보험 산업의 지원을 받아서) 자본 이득에 부과되는 세금의 감면을 위해 로비를 하면서 이 이득이 혁신의 결과로서 산업에 귀속되는 양, 그리고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인 양 제시한다. 현실은 이와 다르다. 대부분의 자본 이득은 부동산에 귀속된다. 미국의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대략 1996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증권시장 수익이 처음으로 부동산 수익 증가분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해로우며, 이러한 사태전개의 이유는 8장에서 설명된다.

왜 경제학자들은 사실을 말하지 않는가? 부(富)가 제조업의 성장보다 토지가격 이득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부동산은 결코 산업처럼 낭만적이지 않다는 사실에서 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혁신가들과 창조자들을 찬양하고 지주들은 원망한다. 또한 은행가들과 보험회사들을 창조적이기보다 기생적이라는 이유로 원망한다. 모기지 대출의 성장으로 토지의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며, 토지의 장소 가치는 공공 기반시설 투자와 번영의 일반적 수준에 의해 창출된다는 명백한 사실도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든 재산을 담보로 하는 대출의 대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한다. 부동산 대출의 성장분은 이렇듯 대출받는 사람들에게 서로 경쟁하여 가능한 한 많은 재산을 구입할 신용을 제공하는 데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토지가격을 올린다. 그 결과는 산업의 붐이 아니라 거품인 것이다.

금융업의 대변인들은 이런 종류의 자산 기반 대출이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부동산 소유주들에게 이자를 지불할 수 있고 결국에는 자본 이득을 얻게 하는 재산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신용시장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미국 금융업의 로비스트들은 부동산업의 로비스트들과 손을 맞잡고 부동산에 대한 세제상의 우대조치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은행들은 세금으로 납부되지 않은 돈은 모두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가리라는 것을 안다. 개발자들이 대출자에게 내놓을 모기지의 크기를 놓고, 따라서 그들이 임대료(rent)로부터 은행에 갚을 모기지 부채서비스액[일정 시기 동안 이자 및 원금의 상환에 들어가는 돈의 액수―정리자]의 크기를 놓고 서로 경쟁을 한다. 이 경쟁이 계속되어 크기가 상승하면 모든 순 임대소득이 이자로 지불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모기지 대출은 보통 재산 구매가격의 80%에서 100%를 (혹은 2008년 9월의 붕괴에 이르는 시기 동안의 거품경제에서 보듯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제공한다. 이는 자기자본에 비한 부채의 비율로서 매우 높은 것이다. 이러한 식의 모기지 부채의 점차적 증가가 1980년대에 기업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정크본드 금융에 모델을 제공했으며, 영국, 유럽 대륙, 제3세계에서 공공 자산이 사유화되는 시류에 모델을 제공했다. 이미 존재하는 부동산·기업·공기업들을 그렇게 구매할 경우의 변별적 특징은 새로운 실질적인 투자를 창출하지 않고 새로운 대출이 추가된다는 것이다. 자본의 새로운 실질적 형성이 이루어지는 대신에 일반적으로 정리해고와 기업분할이 일어난다. 수입에서 이자와 분할상환금을 갚는 데 들어가는 액수가 최대일 경우 운영경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탈산업적’ 관행이 낙관론자들이 산업혁명이 시작할 때 그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이러한 동학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의 은행시스템은 저축한 돈을 새로운 생산수단의 기금으로 사용하지 않고 경제의 자산에 부채라는 짐을 지우고 있을 뿐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산업화 이전의 대출방식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의 고리대금업이 개별 가문 대출자들에 의해 지배되었다면, 지금 새로운 산업화 이후의 부채 시스템은 대규모로, 기업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이 산업과 융합하여 금융 부문이 제조업체들을 지배하게 되었고 제조업체들을 마치 가능한 한 많은 임대소득을 짜내고 그 다음에는 자본 이득을 취하고 팔아버릴 부동산인 양 취급하게 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2016년 미국 대선


  • 저자  :  Michael Hudson, Ross Ashcroft
  • 원문 : (대담)  Prof. Michael Hudson on Hillary Clinton and the US Elections (2016. 10. 27)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주제로 한, 미국 경제학자 허드슨(Michael Hudson)과 레니게이든(Renegades Inc.)의 애쉬크로프트(Ross Ashcroft)의 대담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대담은 선거 약 열흘 전에 있었다.

애쉬크로프트

두 명의 대선 후보 가운데 하나[힐러리 클린턴]는 월가, 특히 골드만삭스와 매우 친하고 다른 하나[트럼프]는 주요한 불로소득사냥꾼(rent-seeker)입니다. 둘 다 근본적으로 월가와 결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이것을 알죠?

허드슨

제 생각에 힐러리는 반대율이 79% 반대이고 트럼프는 81%입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두 사람이 대선에서 붙은 것이죠. 미국인들은 ‘yes’, ‘yes, please’, ‘yes, thank you’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트럼프는 월가에 세금을 삭감해주겠다는 말을 하는 대신 자신이 몇 번 파산을 해봐서 은행을 다루는 법은 알므로 자기를 뽑아달라고 했다면 그것이 결정적인 한 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동의하면서] 선거전략가가 되셨어야 했네요.

허드슨

다만 트럼프를 위해서 일했다면 나에게 친구들이 별로 없을 것이고, 그가 오늘 나에게 동의해도 내일 어떨지는 알 수 없겠죠. 그것이 문제의 일부입니다. 그는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정당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애쉬크로프트

그래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더 낫다고 보시는 거죠? 그가 그런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요. 그가 똑똑하거나 영향력이 있는 유형이 아니라서요. 대통령직이 워낙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요.

허드슨

힐러리도 트럼프도 선거의 관건은 ‘차악’(the lesser evil)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누가 더 큰 악일까요? 힐러리의 뒤에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련에 군사적으로 적대적인 네오콘들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누굴 임명해야 할지, 그와 함께 일할 사람들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만일 미국의 방향이 군사적 적대에 기반을 두고 일극적 세계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덜한 후보를 뽑아야 할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가 그런 ‘덜 악한’ 후보입니다. 그는 나르시시스트이고 정말이지 백지상태 같은 후보입니다. 차라리 뭐를 할지 모르는 후보를 뽑는 게 낫지요. 힐러리가 무엇을 할지는 우리가 이미 알잖아요. 그녀는 남편이 한 일을 이어서 할 것인데, 이 부부는 민주당을 타락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가 그녀에게 맞선 지점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버니는 매우 잘 했죠?

허드슨

매우 잘 했죠. 그런데 그는 민주당이 월가와 루빈 패거리―이들은 정말로 마피아 같습니다―에 의해 전적으로 통제되는 한에서는 노동조합이나 소비자들 혹은 99%에 의한 진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 했습니다. 은행가 가운데 한 명도 감옥에 가는 일 없이 수십억 달러의 돈을 과징금으로 냈는데, 그것이 바로 범죄자들이 원하는 바입니다. 범죄자들이 사법체계를 장악하고 경찰력을 장악하여 판사들에게 뇌물을 먹이면 (1930년대에 헐리우드 영화들을 다 그랬죠), 그러면 범죄자들이 통제하는 것이 되고 금융 부문이 범죄화되는 것입니다. 나의 동료 빌 블랙(Bill Black, 캔자스시티 대학)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거대 은행들(시티뱅크,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의 사업계획은 사기(fraud)라는 것을요. 사람들은 사기가 은행업의 관건이라고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로 증거가 명백한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죠.

애쉬크로프트

힐러리는 어떤 종류의 대통령이 될까요?

허드슨

독재자요. 네오콘들을 국무부장관에, 국방부에 임명하면서 적을 응징하는 원한에 찬 독재자가 될 겁니다. 월가 사람들을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 기용할 것이고, 아주 명시적인 계급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버핏(Warren Buffet)이 “계급 전쟁이 존재하며,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고 말한 바와 같아요.

애쉬크로프트

1%가 이기고 있다는 것이죠?

허드슨

그렇습니다. 그녀는 ‘국민 여러분, 여기는 볼 것이 없으니 계속 갑시다’라는 수사를 사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경제는 계속 망가지고 그녀는 늘 그랬듯이 더욱 많은 이득을 올리고 더욱더 부유해지겠죠. 만일 그녀가 대통령이 된다면 클린턴재단의 범죄적 이해관계충돌(대가성 기부)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클린턴 부부에게 돈을 대준 기업들이 정책에 관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가를 살 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정책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지금 선거와 정치는 사유화되고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의 시민연합(Citizens United) 대 연방선거위원회(FEC) 건의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애쉬크로프트

또 하나의 불로소득사냥 사례이군요?

허드슨

네, 정치 헌금, 그것이 가장 큰 불로소득사냥이지요. 기본적으로 1센트를 내면 1달러 가치를 가진 특권을 얻습니다. ‘rent’[불로소득>금리>지대]는 기본적으로 특권에 대한 지불입니다. 민간부문에서 창출된 특권에 대한 지불입니다. 발자끄(Balzac)가 말했듯이, 모든 거대한 재산은 거대한 절도에서 기원합니다.[발자끄의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 1835)에 나오는 말로서, 정확하게는 “명백한 원인이 없는 모든 거대한 재산의 비밀은 잊혀진 범죄이다”(Le secret des grandes fortunes sans cause apparente est un crime oublié)이다.―정리자] 시장의 일부가 되었기에 더 이상 거대한 절도로 간주되지 않는, 그저 세상 돌아가는 방식인 양 받아들여지는 재산이죠. 그래서 절도가 일어나면 클린턴 부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GDP는 성장하고 있어. 당신들 99%가 더 가난해지는 정도를 우리가 더 부자가 되어서 상쇄하고 있기 때문이지.”

애쉬크로프트

세계정치와 관련해서 힐러리가 사용한 몇몇 수사(修辭)에 대해서 말해보죠. 그리고 오랫동안 숙적이었던 미소관계에 대해 말해보죠. 오랫동안 곰을 자극했다는 명백한 사실, 그러한 적대관계,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5년 동안 어떻게 될지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허드슨

소련이 붕괴한 1991년 이후 러시아는 실제로 신자유주의적이 되었으며 뿌띤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자입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보는 것과 같은 경제 체제의 충돌은 없습니다. 소련에 대해서 미국이 못 마땅해 하는 것은, 미국이 소련의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살 수 없는 점, 소련의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살 수 없는 점, 소련의 공익서비스(전기·가스·수도)에 대한 통제권을 사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economic rent’는 허드슨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가격에서 가치를 뺀 것(Price minus Value, P – V), 즉 시장가격에서 투입된 경비를 초과하는 부분이다. 땅과 관련된 ‘ground rent’는 ‘rent’의 한 형태일 뿐이므로 ‘rent’를 ‘지대’라고 옮기는 것은 맥락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불로소득’이라고 옮기기도 하고 또 맥락에 따라서는 ‘임대료’라고 옮기기도 하는데,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좋은 번역어가 필요하다.―정리자]를 부과할 수 없는 점, 그리하여 1994년에서 위기가 발생한 1998년까지처럼 계속적으로 러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시장 붐으로 만들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양국의 갈등은 경제적 체제 사이의 갈등이 아닙니다. 그저 미국이 다른 나라를 통제하고 싶은 것, 다른 나라를 달러의 영향권 내에 두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만일 전 세계가 달러로 저축을 한다면, 이는 미국 재무부 채권을 구입함을 의미하고, 이는 다시 소련이나 중국 등이 경상수지 흑자를 미국 재무부에 빌려줌을 의미합니다. 미국은 이 돈을 사용하여 이 나라들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고 달러 시스템으로부터 빠져나가려고 하는 나라라면 어느 나라에게든 이라크나 리비아나 아프가니스탄에게 했던, 그리고 지금은 시리아에게 하는 행동을 하겠다고 위협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빠져나가려고 한다면, 미국은 ‘우린 너희를 박살낼 수 있어’라고 말합니다. 군대가 직접 가는 것이 아니라 폭탄을 떨어뜨리고 금융을 사용하여 위협합니다. 핵심은 자연자원, 즉 물, 부동산, 공익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이지 경제 체제가 아닙니다.

애쉬크로프트

그럼 최종단계는 어떻게 될까요?

허드슨

하나는 세계가 붕괴할 때까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오바마는 비록 월가의 도구이지만 적어도 근동에서 싸우는 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힐러리는 근동에서의 싸우는 것이 세상을 붕괴시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내 마음대로 못 하면 세상을 석기시대로 되돌릴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끔찍하게 생각해야 하고, 세계에 대한 통제를 위해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끔찍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경제 철학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지, 자연자원, 정부, 화폐시스템에 대한 소유로써 통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주류 언론은 이 맥락을 설명하는 일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애쉬크로프트

선생님의 그런 말을 들으면 많은 생각 있고 영민하며 국제주의적인 미국인들이 머리를 감싸 쥐고 이번 선거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이 세계에서 더 인기를 잃을 상황에 대비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해야 할 것입니다.

허드슨

그 결과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voting with their backsides’[엉덩이로 투표하다→투표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 있다―정리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선거마다 투표참가자수가 줄어왔습니다. 미국에는 제3의 당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 것을 더 선호할 것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부동산과 독점에 이익을 둔 월가의 재정 지원을 받습니다. ‘yes’와 ‘yes, please’가 두 당의 이름입니다. 대안이 없는 것, 선택지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로 통제의 목적이며 ‘자유시장’의 핵심입니다. 정부가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민중이 선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 비엔나의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 전쟁을 하고 암살을 행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핵심도 이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동운동 지도자들, 대학 교수들, 지식인들을 대량 학살한 칠레의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핵심입니다. 지금 미국은 기관총만 없을 뿐 상황은 똑같습니다. 실제적 대안은 없고 사실상 같은 두 차악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가상적 선택만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미국 민중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8)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아래는 2015년 9월 21일 카운터펀치(CounterPunch) 라디오에서 방송된, 에릭 드레이처(Eric Draitser)와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인터뷰 중에서 오바마(Barack Obama)를 다루는 부분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마이클 허드슨의 저서 J is for Junk Economics: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에도 수록되어 있다. 마이클은 ‘맑스주의 경제학자이고 맑스(그리고 맑스가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는 고전경제학)의 자본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도―그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정책입안자들에게 맑스의 『자본론』2권과 3권을 읽을 것을 권유하기도 할 정도이다―신자유주의가 미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의 한 가운데를 거쳐 온 경력(체이스맨해튼 은행, 아서앤더슨 회계법인 등)으로 인해서 금융세력(월가)이 지배하는 미국 신자유주의의 실상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금융세력의 지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가장 핵심적인 현실진단은,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의 속도를 능가하는 현재의 상태로는 미국의 경제가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부채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그의 핵심적인 생각들을 기회가 되는 대로 소개할 생각인데, 우선 오바마 부분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그의 실제 정체와는 정반대로, 즉 ‘서민에게 잘 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매개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환경에서 이러한 기만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허드슨은 오바마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는 부채를 탕감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실제로는 이 약속을 어기고 자신에게 돈을 대준 월가를 위해 일한 자임을 폭로한다. 허드슨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도 (물론 그 이유 가운데 일부겠지만) 이것과 연관짓는다. 힐러리가 ‘나는 오바마의 셋째 임기를 하겠다, 차악(the lesser evil, 덜 나쁜 후보자)인 나를 뽑아달라’라고 유권자들에게 말했는데, 유권자들은 실제 차악인 트럼프를 뽑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역사”(The History of Neoliberal Economics)라는 제목의 인터뷰의 말미에서 허드슨은 오바마를 이어받겠다는 힐러리가 차악이 아니라 “트럼프가 바로 차악이었음을 기억하세요”(Just remember that Trump was the lesser evil)라고 힘주어 반복한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은 대선에서 허드슨은 두 정당 모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힐러리와 대선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허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정치와 선거는 지금 사유화되어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트럼프가 힐러리보다는 차악이라지만, 두 당이 근본적으로 똑같이 신자유주의에, 금융세력에게 포섭당한 상황에서 미국 민중은 과연 어디서 새로운 정치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상황은 과연 이것과 얼마나 다를까?

오바마가 루비노믹스 패거리를 위해 월가와 한통속으로서 한 선동가 역할

에릭 드레이처

2009년과 제너럴모터스의 붕괴를 돌이켜보면, 붕괴한 것은 제너럴모터스라는 자동차제조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금융 부문인 GMAC이 신용파산스왑(credit default swaps),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기타 이와 유사한 금융파생상품들로 빚을 내었다가 붕괴했던 것이죠. 그래서 오바마가 들어와서 자신이 “제너럴모터스를 구했다”고 주장했을 때,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의 월가 부문을 위했던 것이죠.

마이클 허드슨

맞습니다. 그는 월가를 위한 대통령 후보였고 클린턴의 재무부장관이었던 루빈(Robert Rubin)이 그를 밀어주었습니다. 미국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시티그룹(Citigroup)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드레이처

이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첫 5일 동안에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골드만삭스와 제이피모건(JP Morgan),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시티(Citi)의 CEO 등속을 초청했습니다. 이 내용은 책들, 『뉴요커』(The New Yorker)지 및 기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들에게 ‘내가 있으니 걱정마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허드슨

써스킨드(Ron Suskind)가 이 일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오바마가 “당신들과 쇠스랑들[일반 국민을 건초 등을 집어올리는 쇠스랑에 비유한 것―정리자] 사이에는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흔적은 백악관 웹싸이트에서 재빨리 지워졌지만, 써스킨드의 책에는 있습니다. 오바마가 세기의 대 선동가 가운데 하나로서 출현한 것입니다.

드레이처

그의 정책과 행동이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행동이 필요했던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올바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월가가 원하는 바를 행했습니다. 그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구제금융 등을 옹호했습니다. 이는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대화에서는 피하고자 하는 어떤 것입니다.

허드슨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이중사고’(doublethink)에 기반을 둔 수사(修辭)입니다. 그는 ‘희망과 변화’의 후보로 출마했는데, 그가 실제로 한 역할을 희망을 부수고 변화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로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 그대로 놔둠으로써 그는 미국 경제의 파탄을 주관했습니다. 경제를 희생한대가로 은행, 증권소유자들이 구제되었습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거대 부동산 세력을 위해 지역 조직가로 일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짓을 해서 가난한 흑인 동네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그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이루는 것이었고 고소득 흑인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재산가격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리츠커(Pritzker) 가는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래서 페니 프리츠커(Penny Pritzker)가 그를 루빈에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에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미국의 31대 대통령)보다 왼쪽에 있는 민주당원들을 죄다 당에서 몰아내기 위해 루빈에게 자신의 내각을 임명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오바마의 내각은 첫 수석보좌관은 사악한 반(反)노동론자 이매뉴얼(Rahm Emanuel, 현재 시카고의 시장입니다)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을 오른쪽으로 밀어붙였고, 공화당은 오바마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차악’이 될 수 있는 큰 여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자기는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Kucinich, 민주당에서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와 함께 가장 진보적으로 알려진 인물)가 찬성하는 것, 즉 단일보험자 건강보험(single payer healthcare program)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이에 맹렬히 반대했고 제약 및 건강보험 부문의 로비스트들을 밀어주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유권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의 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사실 그는 그의 선거운동에 돈을 댄 월가의 특정 세력을 옹호하고 있는데 말이죠.

드레이처

맞습니다. 말 그대로 오바마가 행동을 취한 모든 곳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오바마케어(이는 정말이지 보험업에는 큰 혜택이죠)를 옹호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의 사유화, 부동산 등에 이르기까지요. 말 그대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오바마는 금융자본의 하인이지 민중의 하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권자들을 월가에 가져다 바치는 민주당의 현재의 실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