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ipotentiality


  • 다음은 미셸 바우엔스의 ‘Equipotentiality'(잠재적 균등성) 개념에 관한 정백수의 설명이다.

 

Equipotentiality

 

‘Equipotentiality’(잠재력 균등성)는 P2P 관계가 ‘등가의 법칙’(law of equivalence’)을 극복하는 원리로서 미셸 바우엔스가 제시하는 개념이다. 아래 두 사이트에 이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https://blog.p2pfoundation.net/harry-walker-on-a-anthropology-of-the-common/2015/07/10

https://wiki.p2pfoundation.net/Equipotentiality

‘등가의 법칙’이란 맑스라면 ‘일반화된 교환의 법칙’이라고 불렀을 것으로서, 자본주의에서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데 작용하는 법칙이다. 가따리는 ‘일반적인 등가물로서의 자본’ 혹은 ‘일반적인 등가관계’라는 말로서 자본의 핵심을 표현하곤 했다.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디킨즈는 상업적 교환을 삶의 핵심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 팽크스(Pancks)를 등장시켜서 그 인물의 다른 잠재된 요소(이는 ‘보시바라밀’에 버금가는 것이다)가 발현되어 (물론 상황의 악화도 한몫한다) 이 사고방식을 파훼하는 방식으로 이 법칙을 비판했다.

상품들 사이의 교환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품들의 질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그 양에서의 차이만 확정하여 교환비율을 정해야 한다. 이 교환비율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교환가치이며 교환가치의 내적 실체를 이루는 것이 (고전적인 자본주의에서는) 가치(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양)이다. 교환가치가 현실적 형태로 드러난 것이 바로 가격이다. 상품들은 바로 이 가격에 따라 서로 교환된다. 이러한 등가관계는 상품교환이 일반화되면서 인간의 사회적 삶 전체에 퍼지고 심지어는 사회적 삶에 영향을 받게 마련인 인간의 정신에도 새겨지게 된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상품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것들이 일정한 비율로 서로 교환될 수 있다는 환상적 생각 속에서 살게 된다. 이 환상은 근대를 구성하는 독특한 물신의 하나로서 대안 근대로 넘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된다. 따라서 대안 근대를 향하는 운동은 이 등가의 법칙의 극복이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가 된다.

직장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성실한 노동의 대가로 상당한 양의 임금과 교환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데, 이것이 굳어져 물신(物神)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 중에는 가령 무조건 모두에게 일정 양의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같은 기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림이 있을 수 있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상품화된 노동과 교환된 임금으로 생활수단을 획득하는 관계가 존재한 시기는 극히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노동자는 생각조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배경으로 바우엔스의 생각을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

 

[위에 제시된 첫째 싸이트에서의 바우엔스의 설명]

바우엔스는 P2P 관계가 ‘equipotentiality’(잠재력 균등성)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 ‘equipotentiality’가 바로 이 등가의 법칙을 극복하는 원리라고 본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어떤 기획에 협력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그 어떤 권위도 협력의 능력을 미리 판정할 수 없으며 기여를 통한 협력의 질은 나중에 수평적인 위치에 있는 동료들(peers)의 공동체에 의해 판정됨을, 즉 ‘공동체의 비준’을 받음을 의미한다. 잠재력 균등적 기획에서는 참여자들이 자신들이 기여할 수 있다고 느끼는 모듈[기획을 구성하는 부분들―옮긴이]을 자율적으로 선택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능력들의 다양한 집합으로 간주되는데, 이 능력들 가운데 일부에서는 특정 개인이 다른 사람들을 능가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한 순위가 존재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바우엔스는 인류학자 해리 워커(Harry Walker)가 「공통적인 것의 인류학」(“Anthropology of the Common”)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등가의 법칙’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 강연의 내용은 볼리어의 블로그에서도 소개되었으며 여기에 옮겨져 있다.

 

[위에 제시된 둘째 싸이트에서의 바우엔스의 설명]

여기서 바우엔스는 찰스 리드비터(Charles Leadbeater)가 요하이 벤클러의 설명을 요약한 것을 인용한다.

오픈소스 공동체들이 서로 연계하는 방식에 대한 벤클러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이 협동의 원료는 창조적 재능이다. 그런데 창조적 재능은 극히 가변적이다. 사람들이 잘 하는 것이 각기 다르며 또 각기 다른 식으로 잘한다. 외적으로는, 가령 시간이나 움직임 연구에 의해서는 누가 더 효율적인 창조적 노동자인지를 식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창조성에 대해서는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가 언제 창조될 필요가 있는지를 자세히 밝히는 상세한 직무기술서와 계약서를 쓰기가 매우 어렵다. 창조성은 ‘때 맞춰’ 배달될 수 없다. 오픈소스 공동체들은 창조성과 질을 평가하는 어려움을 의사결정을 개인들과 소집단으로 탈중심화(분산)함으로써 해결한다. 이들은 무슨 일에 집중해야 할지를 무엇이 행해질 필요가 있고 그들의 숙련된 기술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한다. 이미 직원이 잘 배치되어 있거나 당신의 기여가 별로 표가 나지 않는 기획에 집중하는 것은 의미가 거의 없다. 동료들의 눈을 속이기는 매우 어렵다. 당신이 하는 기여가 일정 기준에 실제로 못 미치면 그들이 곧 발견할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수수께끼를 푸는 데 집중한다. 훌륭한 중추적 디자인 규칙들이 전체가 합쳐지도록 해준다. 오픈소스 공동체들에서의 일은 창조적인 사람들이 상이한 과제에 스스로를 분산시킬 때 이루어지며,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동료들에 의한 열린 평가에 맡겨서 질을 유지하고 생산물은 모듈로서 디자인되어서 개인들의 기여가 쉽게 서로 맞춰지도록 한다.

중간에 실제 사례를 소개하는 부분은 생략하고 마지막으로 바우엔스가 인용하는 조지 페러(George Ferrer)의 대목을 우리말로 옮긴다.

통합적이고 육화된 정신성(spirituality, 영성)이 비교에 기반을 둔 현재의 인간관계 모델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릴 것이다. 현재의 인간관계 모델은 경쟁, 겨룸, 시기, 질투, 갈등 그리고 증오를 쉽게 낳는다. 개인들이 그들의 가장 진정한 강력한 잠재력과 조화를 이루며 발전할 때, 상호교류와 서로 풍요롭게 하기를 특징으로 하는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출현할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의 욕구와 결핍을 서로에게 투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현재 우세한 위계적 방식의 사회적 상호작용―이는 역설적이게도 영성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들에도 매우 확대되어 있다―에서는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전체적으로든 특정의 특권적 측면에서든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보는데, 만일 비교하는 정신을 [전원 내리듯이―옮긴이] 끈다면 이런 위계적 방식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해체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오만이나 정신적 나르시시즘은 말할 것도 없고 참되지 못하고 보람 없는 관계들을 낳는) 이 위계적 모델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다양한 숙련과 노력의 영역에서 (지적, 정서적, 예술적, 기계적, 인간관계적 등) 자신들보다 우월한 동시에 열등하며 이 숙련들 가운데 어느 것도 다른 것들보다 절대적으로 더 높거나 더 낫지 않다는 의미에서 동등한 존재로 경험하는 ‘나-너’ 방식의 조우에 자연스럽게 길을 내줄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조우를 단순하게 동등하기만 한 것으로 평범하게 만드는 것을 피하려면 인간의 평등을 이러한 관점에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또한 의미와 자극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우리의 상호작용에 가져올 것이다. 모두가 우리로부터 무언가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진정으로 열려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개인의 통합적 발전은 “사랑의 수평화”를 낳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경쟁자나 겨루는 상대로 보기보다 내재적 차원에서나 초월적 차원에서나 ‘신비’(Mystery)의 특유한 육화로 볼 것이다. 우리에게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무언가를 줄 수 있고, 우리 또한 그에게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는 그러한 존재로 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