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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크립토네트워크로


  • 저자  :  조지 자카다키스(George Zarkadakis)
  • 원문 : Do platforms work?” (2018.5.28)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자카다키스는 과학 작가, 소설가, 인공지능 엔지니어이다. 최근의 저서로 In Our Own Image: Savior or Destroyer? The History and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 (2016)가 있다.

 

자카다키스는 이 글에서 회사의 대표적인 형태인 코퍼레이션(corporation)이 쇠퇴하고 플랫폼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고 있음을 포착해서 제시한다. 코퍼레이션의 사전적 의미는 ‘단일한 법 주체(법인)로서 행동하고 그렇게 법에서 인정받는 회사, 혹은 집단 혹은 조직’인데, 자카다키스가 말하는 코퍼레이션은 여기서 법인 형태의 회사이다. 실제로 ‘corporation’이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기업’, ‘(주식)회사’, ‘법인’ 등으로 옮길 수 있는데, 여기서는 다른 형태의 법인을 배제하기 위해서 그냥 ‘코퍼레이션’이라고 옮기기로 한다. ‘corporation’은 어원상으로는 ‘법’의 의미도 ‘인’(person)의 의미도 없다. ‘통합’이 그 원래의 의미이다. 즉 여러 요소들이 통합되어 하나의 단일한 법 주체가 되었다는 말이다.

자카다키스는 ‘코퍼레이션’(즉 회사로서의 법인)에 어떤 요소들이 통합되었는지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코즈(Ronald Coase)의 1937년 회사(firm) 이론을 원용하여 설명한다. 코즈는 다음의 세 요소를 통합하여 하나의 회사(company)로 만드는 것이 비용을 세 측면에서 최소화해준다고 설명했다.

① 자원 확보(resourcing) : 적절한 숙련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할 때마다 회사 외부에서 찾기보다는 회사 내부로부터 찾아 구하는 것이 덜 비싸다.

② 거래하기(transacting), 혹은 과정 및 자원을 관리하기 : 다수의 외부 계약자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것보다는 회사 내부에 팀을 두는 것이 관리 부담이 덜하다.

③ 계약하기(contracting) : 회사 내부에 작업이 생길 때마다 매번 규칙과 조건을 새로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계약에 들어있는 규칙과 조건이 계속 유지된다.

이 세 비용을 줄임으로써 코퍼레이션은 경제활동을 증가시키기는 데 최적의 구조가 되었다고 코즈는 주장한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소프트웨어, 인터넷, 인공지능 덕분에 코즈가 말한 비용들이 회사 외부의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회사 내부의 도구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줄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시장을 통해 프리랜스 노동자들을 발견하는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고 덜 위험하고 더 빠를 수 있다. 협동 도구들이 관리자가 없는 형태의 노동이 들어설 공간을 열어준다. 그리고 계약비용은 블록체인 프로토콜의 출현 덕분에 상당히 하락할 수 있다. 이러한 혁신의 결과로 새로운 방식의 노동이 출현하고 있다. 이제 노동은 개방적이고 숙련에 기반을 두며 소프트웨어에 의해 최적화된 일련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게 된다. ‘코퍼레이션’이 있던 자리에 ‘플랫폼’이 들어서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 희망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위협적인 것인가?’이다.

『플랫폼 혁명』(Platform Revolution, 2016)이라는 책에서 파커(Geoffrey Parker), 반 앨스타인(Marshall Van Alstyne), 그리고 초우더리(Sangeet Paul Choudary)는 사업체들이 예전에는 ‘파이프’(선형 모델)였는데 이제는 ‘플랫폼’(네트워크 모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혁명 이전에 회사들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여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과정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의 흐름이라는 형태를 띤다. 마치 파이프들이 심해 유정을 차에 휘발유를 급유하는 사람에게 연결하는 것과 같다. 이와 달리 플랫폼들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뚜렷한 구분을 무너뜨린다. 사용자들도 가치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들은 파이프 형태와는 다른 기반시설을 필요로 한다. 사업체의 주요 과제는 창조자들과 소비자들을 거래가 일어나기에 적절한 비율로 끌어 모으는 것이다. 두 (혹은 더 많은) 집단들 사이의 교환을 양성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플랫폼들은 사실 시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이제 경제적 가치가 회사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다.

우버가 그 고전적인 사례이다.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승차 주문을 쉽게 만들기에 충분한 운전자들이 플랫폼에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운전자들이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 소득을 보장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소비자들이 있어야 한다. 이 둘 사이의 평형을 찾으려면 상당한 선행 투자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이 아직 없더라도 돈을 지출하거나 공급자들이 뛰어들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떤 지점에서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발동한다. 플랫폼이 더 많은 공급자들과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것이 되고 이로 인해 거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제 플랫폼의 소유자는 모든 거래에서 일정 몫을 플랫폼사용료(‘rent’)로 취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다. 네트워크가 커지면 소유자가 버는 돈도 커진다. 이런 식으로 플랫폼은 경제적으로 가치를 낳는 것이 된다.

그런데 모든 플랫폼들이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인터넷의 첫째 국면)에는 웹을 돌아다니면서 모두가 상당히 평등한 지위에 있는 대화방과 포럼 형태의 열린 공간을 만나곤 했다. 그런데 인터넷의 둘째 국면에서는 이 공간들이 폐쇄되고 네 개의 거대한 첨단기술 회사들―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이 제공하는 사유화된(proprietary) 서비스들에 의해 대체된다. 사용자들은 효율성과 편의 때문에 그런 플랫폼들로 이동했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첨단기술 과점(寡占) 현상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체들은 중앙집중화되어 있고 소수가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크다. 소비자 데이터가 이윤과 권세를 위해 마구 이용될 수 있고 개발자들은 기업 우두머리들이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이 규칙들은 소수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따라 예측 불가능하게 바뀔 수 있다. 요컨대 인터넷이라는 경쟁의 장이 더 이상 평평하지 않고 플랫폼을 소유한 거물들을 향해 크게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플랫폼들은 회사가 사용자들과 관계하는 방식을 재발명했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재발명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일을 인간들과 알고리즘들의 혼합이 실행하는 과제들로 분해했을 때, ‘긱 경제’(노동이 임시적이고 숙련 기반이며 온디맨드 식)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우버의 운전자이든 업워크(Upwork)를 통해 계약한 금융분석가이든 구글이나 아마존의 개발 사업에서 마이크로태스크를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든, 그 생계가 수요의 주기적 변동에 의존한다. 잉여 이윤은 플랫폼의 소유자에게 돌아가는데, 이 소유자는 고용과 관련된 보호장치들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 여기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위협을 더한다면 그 결과는 적자생존이라는 시나리오가 된다.

회사를 ‘제대로 된’ 직원들로 플랫폼화하더라도 인간 본성과 충돌할 수 있다. 현재 아마존이 소유하고 있는, 신발과 의류를 파는 디지털 숍인 자포스(Zappos)는 약 1,500명의 직원을 채용하여 매해 3십억 달러 상당의 제품을 판다. 2013년에 자포스는 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발명한 자기조직화 방법인 ‘홀러크라시’(holacracy)라고 부르는 시스템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홀러크라시는 피라미드식 위계 대신에 ‘서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다. 각 서클은 마케팅 같은 전통적인 시장 기능과 동시에 특수한 기획이나 과제에 집중하는 다른 ‘하부서클’도 포함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하부서클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일에 방해가 되는 관리자는 없다. 그 대신에 소프트웨어가 개인들과 팀들의 협동과 수행을 가능하게 하고 ‘전술 미팅들’이 직원들로 하여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도록 한다. 그런데 홀러크러시가 약속하는 유연성과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관찰자들은 이 시스템이 노동자들의 정서적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며 인간을 디지털 자본주의의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으로 환원시킨다고 비판한다. 이와 유사하게 우버 운전자들은 자신이 사람 같이 느껴지기보다는 앱이 조작하는 로봇 같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일을 과제들로 분해하고 그 할당을 자동화함으로써 오늘날의 인간 노동자들은 내일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에 의해 축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디지털 군주들에 종속된 이류 농노들로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기를 바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직접 플랫폼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자기조직된 사업네트워크를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라고 불렀다. 가령 일단의 운전자들이 우버와 유사한 플랫폼을 구축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것을 개발할 소프트웨어 도구는 오픈소스라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개발하고 설계할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여할 인센티브를 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자율적 기획이 이미 존재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승차공유 플랫폼인 라주즈(La’Zooz)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누구나 가입하여 주즈(Zooz) 토큰을 벌 수 있다. 이 토큰으로 차를 탈 수도 있고 이 사업의 소유권의 지분을 나타내는 가치를 저장할 수도 있다. 해당 앱으로 20킬로 이상을 운전하거나 설계에 코드를 기여하거나 다른 사람을 참여시킬 때마다 토큰을 벌 수 있다. 주즈 토큰의 이중적 목적은 ① 플랫폼의 소유권을 민주화하는 것 ②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창조하는 가치로부터 혜택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폐쇄된 플랫폼에서는 네트워크 효과가 증가하면 플랫폼사용료가 빼내어져 주주들 혹은 자본 소유자들에게로 간다. 이와 달리 토큰화된 플랫폼에서는 사용자들의 거래가 창조한 가치가 사용자들이 소유한 토큰의 가치를 증가시킨다. 요컨대 사용자들은 네트워크 효과가 낸 경제적 가치를 멀리 있는 주주들에게 뺏기지 않고 토큰을 통해 최대의 이득을 볼 수 있다.

민주화된 구조의 또 하나의 사례는 ‘탈중심화된 자율조직’(decentralised autonomous organisation, DAO)이다. 이는 2016년 5월에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인 이더리움(Ethereum)을 바탕으로 선을 보였다. DAO의 목표는 리더가 없는 벤처 자본 펀드가 되는 것이다. 관리구조도 없고 이사진도 없으며 직원도 없다. DAO는 DAO 토큰을 보유한 18,000명 이상의 ‘이해관계자들’에게 소유권을 확대했다. 이들은 투표권도 가진다. 모든 펀딩 결정은 투표에 의해 결정되며 그 결과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된다. 그런 다음에 이윤과 손실이 토큰 소유자들에게 분배된다. 참여자들은 다수결 투표 기반으로 거래를 안전하게 하는 규칙들을 통해 ‘온체인’(on chain)으로 결정에 대하여 직접적 발언권을 가진다. 그들은 또한 토론그룹과 같은 사교적 구조들을 통해 ‘오프체인’(off-chain)으로도 발언권을 가진다.

DAO는 신뢰받는 투자관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작동 주기는 ‘스마트 계약들’ 안에 함입되어 있다. ‘스마트 계약’이란 소프트웨어 코드로 작성된, 실행에 관한 규칙들을 담은 합의(agreements)이다. DAO는 비록 초기에 겪게 마련인 어려운 문제들― 여기에는 2016년 6월의 대대적 해킹 사건도 포함된다― 을 안고 있지만, 새로운 유형의 자치적인 조직이 어떻게 창출되는지를 원칙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인터넷 진화의 제3기가 ‘크립토네트워크들’(cryptonetworks)에 의해서 도래하고 있다. 이 플랫폼들은 본래 탈중심화되어 있으며 참여자들은 네트워크에서의 거래에서 토큰(혹은 ‘암호코인’)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권위를 가진 중앙이 없이 합의에 도달하거나 거래가 기록된다. 토큰과 합의라는 이 두 요소가 민주적·공동체적 거버넌스 모델을 낳는데, 이는 이전에는 신뢰받는 제3자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참여자들은 코인을 팖으로써 간단하게 퇴장하거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과거의 버전을 떠나 새 버전으로 분기하는 새로운 규칙을 채택하는 ‘하드포킹’(hard-forking)을 함으로써 퇴장할 수 있다.

크립토네트워크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자신들의 플랫폼을 건설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노동자들이 주인이고 소득이 공정하게 분배되며 이윤과 손실이 공유된다. 토큰의 동학이 참여자들의 이익이 공통의 포부와 목표를 중심으로 정렬될 수 있게 만든다. 토큰의 가치의 인정이 네트워크의 성장을 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크립토네트워크의 초기에 있다. 규모와 수행성에서 아직 심각한 기술적 결함들이 존재한다. 현재로서는 블록체인이 처리하는 거래들의 수가 중앙집중화된 소프트웨어들이 처리하는 엄청난 수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이 기술적인 이유로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왜 크립토네트워크들이 미래의 플랫폼일 수 있다고 낙관하는가?

중앙집중화된 플랫폼들이 개발자들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 데이터로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어서 상상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응용프로그램을 내기 위해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좌절하고 있다. 플랫폼 집단주의 경제가 플랫폼 자본주의의 승자가 모두 가져가는 식의 접근법보다 더 큰 자유와 보상을 제공한다.

협동하는 집단들의 상호연결된 생태계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재화를 생산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 코퍼레이션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위계를 일소하고 공동선을 위해 협동하는 세포들(cells)의 네트워크가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회사 구조는 사용기한이 다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플랫폼의 경제를 수용할 수 있고 소유권이 노동자들에게로 이동하면 더 공정하고 복원력 있으며 민주적인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