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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권력과 커머닝



 

새 보고서 ― 국가권력과 커머닝

 

커머닝이 자급과 거버넌스의 합법적 형태로서 번성하려면 국가권력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 커먼즈의 성공이 거버넌스의 한 형태로서의 국가의 미래에 대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는 지난해에 <커먼즈전략그룹>에서 동료들과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궁구하면서 이 문제들을 조명하는 것을 도울 진지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인리히 뵐 재단>의 지원으로 우리는 2016년 2월 28일에서 3월 2일까지 「국가권력과 커머닝―문제적 관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심층잠수’ 워크숍을 열었다.

이제 우리의 대화를 종합하고 압축한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의 핵심 요약이 아래 실려 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다.) 50쪽의 전체 보고서는 여기서 pdf 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다.

워크숍 참가자들이 다룬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커먼즈와 국가는 생산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커머너들이 ‘국가’를 커먼즈의 관점에서 다시 상상하여 그 권력이 커머닝을 지원하고 탈자본주의적·탈성장적 자급 및 거버넌스 수단을 지원하는 데 긍정적으로 사용되도록 할 수 있는가? 정치학자 스캇(James C. Scott)이 한 유명한 말을 빌자면, ‘국가처럼 보기’가 ‘커머너처럼 보기’와 결합될 수 있는가? 커머너들의 앎의 방식, 삶의 방식, 존재방식과 결합될 수 있는가? 그러한 혼종은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신자유주의가 ‘자유 시장’ 도그마의 이데올로기적 우위를 다시 천명하려고 하면서 이런 문제들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 실행 가능하고 생태친화적인 대안인 커머닝은 종종 상징적인 심지어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위협을 가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 보고서가 이 문제들에 대한 더 광범한 토론이 시작되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보웬스(Michel Bauwens)의 도움을 받아 이 행사를 조직하는 것을 도운 헬프리히(Silke Helfrich)와 뢰쉬만(Heike Loeschmann)에게 큰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보고서를 썼으며, 트론코소(Stacco Troncoso)와 우트라텔(Ann Marie Utratel)이 멋진 출판 및 웹페이지 제작을 담당했다. 명민한 통찰들을 공유하게 해준 워크숍 참가자에게 또한 감사한다.

 

핵심요약

 

국가권력과 커머닝

커머닝은 종종, 억압적이고 자원을 추출·고갈시키는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대한 도전의 한 방식―욕구를 충족시키는 더 인간적이고 생태친화적인 방식을 발전시킴으로써 행하는 도전―으로 간주된다. 커머닝은 우리 시대의 문제들―경제성장, 불평등, 불안정노동, 이주, 기후변화, 대의민주주의의 실패―에 대한 많은 유망하고 실천적인 해결책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다양한 커먼즈들이 성장하고 더 큰 중요성을 띠게 됨에 따라 국가와의 관계에서의 애매한 위치가 점점 더 심각한 이슈가 되고 있다. 직절적으로 말하자면, 민족국가라는 생각 자체가 커먼즈라는 개념과 상충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커먼즈 기반의 해결책들은 종종 범죄화되고 주변화된다. 권력체제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일국 주권과 서양의 법적 규범들이라는 지배적 조건에 암묵적으로 도전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 그리고 이와 연관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서 <커먼즈전략그룹>은 <하인리히 뵐 재단>과 함께 커먼즈 지향적 활동가들, 학자들, 정책전문가들, 프로젝트 선도자들로 다양하게 구성된 인원을 2016년 2월 28일부터 3월 1일까지((앞에서는 ‘3월 2일까지’라고 했는데, 2016년 2월은 29일까지 있으므로 3월 1일이 맞는 것 같다.)) 독일의 레닌(Lehnin)―베를린 외곽에 있다―에 3일 동안 초대했다. 목표는 커먼즈를 중심에 놓고 국가를 다시 상상하는 것에 대한 개방적이고 탐구적인 토론을 하고 가능하다면 새로운 비전을 발전시킬 창조적 행동기획들을 생각해내는 것이었다.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었다. 커먼즈와 국가는 생산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커머너들이 ‘국가’를 커먼즈의 관점에서 다시 상상하여 그 권력이 커머닝을 지원하고 탈자본주의적·탈성장적 자급 및 거버넌스 수단을 지원하는 데 긍정적으로 사용되도록 할 수 있는가? 정치학자 스캇(James C. Scott)이 한 유명한 말을 빌자면, ‘국가처럼 보기’가 ‘커머너처럼 보기’와 결합될 수 있는가? 커머너들의 앎의 방식, 삶의 방식, 존재방식과 결합될 수 있는가? 그러한 혼종은 어떤 모습을 띨 것인가?

 

1.국가권력을 이해하기

헬프리히가 국가에 대한 적절한 이론들 일부를 종합하는 발제문을 준비했다. 그녀의 발제문에는 우리가 ‘국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때 제기되는 핵심 이슈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그 첫 통찰들 가운데 하나는 “국가에 대한 이론적으로 타당한 일반적 정의”는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국가는 사회 속에 있는 권력관계들을 공고히 하고 그 관계들을 변화시킬 능력을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복잡한 제도 체계로서 나타난다”고 헬프리히는 썼다. “따라서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국가’ 그 자체가 아니다. 각 경우마다 구체적인 이해관계와 권력의 위치들을 가진 특수한 집단들이 행동한다.” 물론 이 집단들과 이해관계들은 경우마다 엄청나게 다를 것이다.

‘국가’의 이러한 가변성에도 불구하고, 각 경우마다 적용되는 것처럼 보이는 국가성(statehood)의 기본적 측면들이 넷 있다. ① 영토에 대한 정치적 통제 ② 규칙들을 세우고 시행하는 데서 기능하는 힘 ③ 관료제와 조직된 권력이 가진 제도적 능력들 ④ 국민을 국가권위에 종속시키는 사회적 통제력. 국가와 ‘국가성’의 이러한 기준들은 제솝(Bob Jessop) 교수가 그의 2013년 책 『국가 ―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The State: Past, Present and Future )에서 정식화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 기반을 두어 헬프리히가 주목하는 것은, 국가가 “규칙들과 규범들에 기반들 둘 뿐만이 아니라 절차들, 관행들, 관습화된 사고방식들―이것들의 사회적으로 구축된 기능들은 국민들에 의해서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에 의해 사회에 대하여 행사되는 영토화된 정치권력”으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국가권력은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형성하는, 뚜렷한 질서 원칙들을 도입한다고 헬프리히는 말한다. 근대 국가들에서 인간 사회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분리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국가는 후자에 대한 통제력을 주장한다. 국가권력은 또한 생산의 세계와 재생산의 세계를 분리하며 이원론적 젠더 구분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다(남성은 생산/노동에 관여하며 여성은 재생산/가족에 관여한다). 마지막으로, 국가권력은 공적 삶을 ‘경제’와 ‘정치’로 분리하며 ‘자유 시장’을 자연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제시하고 정치를 의견의 불일치와 (추정컨대 불법적인) 사회적 개입을 위한 영역으로 제시한다.

영원하거나 선험적인 국가 규칙들과 제도들이란 없다. 규칙들과 제도들은 항상 사회적 투쟁과 논쟁의 결과이다. 그래서 하나의 국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주체 혹은 존재물이라기보다는 정치권력(국가권력)의 항상적인 표현인데, 무엇을 표현하느냐 하면 변화하는 사회적 관계들의 문화적으로 결정되는 그물망을 표현한다고 헬프리히는 썼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정말이지 사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와 국가성은 항상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워크숍 참여자이자 영국 랑카스터 대학의 사회학 공로교수(Distinguished Professor of Sociology)인 제솝 교수는 ‘국가’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국가권력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유용하고 ‘커먼즈’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커머닝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제안했다. 어휘 사용에서의 이러한 이동은 ‘국가’가 역동적인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며 ‘국가’와 ‘커먼즈’를 고정된 실제적인 존재물로 사물화하는 것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국가권력을 사회적 관계들로 보는 이러한 관점과 강력하게 연관된 것이 푸꼬의 권력 연구이다. 푸꼬는 본질로서의 국가(국가 그 자체)와 전통적으로 연관된 ‘권력’(Power)에 집중하던 기존의 연구에 힘들의 관계(relation of forces)로서의 권력 연구를 맞세웠다. 이에 대해서는 꼴레즈 드 프랑스에서의 푸꼬의 강의를 책으로 낸 것들 가운데 『사회는 방어되어야 한다』, 『안전, 영토, 인구』,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참조하라.))

 

왜 국가이론이 커머너들에게 중요한가

국가이론에 관한 첫 발제에서 제솝 교수는 그의 전략적-관계적 접근법을 개관했는데, 이는 단일하고 고정된 국가라는 생각을 거부하며 주어진 국가의 엘리트들 사이의 사회적 권력관계에 초점을 둔다. 그는 이렇게 썼다. “국가는 정치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목표를 추구할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그리고 자신들의 목표를 (그게 무엇이든) 실현할 동등한 기회를((원문에는 “changes”라고 되어있는데 맥락으로 보아 ‘chances’의 오식일 듯하다.)) 가지고 싸우는 중립적 지형이 아니다. 국가 장치들의 조직, 국가의 역량 및 자원은 [···] 특정 세력에게, 특정의 이익에, 특정의 정체성들에게, 행동의 특정의 시공간적 지평에, 특정의 기획들에게 유리하다.”

제솝은 계급, 인종, 젠더와 같은 고전적인 ‘타자들’까지 가기도 전에 국가의 사법적 언어 자체가 구조적 적대를 낳는 구분들을 창출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커먼즈를 예로 들어보자. “커먼즈는 국가 내에서 정의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국가 자체를 넘어서는가?”라고 제솝은 묻는다.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은 극히 복잡한 일이다. “국가와 커먼즈에 관한 일반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양자 사이에는 대체로 공식적인 사법적 관계가 거의 혹은 전혀 없다. “국가권력과 커머닝”은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갖기 때문에 제솝은 이 관계를 파악하는 데서 단지 하나의 분석 방법에 의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주제는 상이한 목적을 가진 다수의 진입점을 권유한다. 하나의 진입점을 택한다면 다른 진입점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수의 관점들이 대상을 더 입체적으로 보게 해준다.”

국가가 사회적 권력관계의 도구라는 점, 그리고 국가권력이란 스스로를 영속화하는 이기적인 힘이라는 점을 분명하다. 국가는 특정의 분파들에게는, 특히 자본(재계)에게는 그들의 이익을 촉진시켜줄 수 있는 메커니즘이다. 커머닝으로 더 나은 세계―생태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나 젠더와 관련하여 더 정의로우며 개인들이 더 안전한 세계―를 일구어내려는 커머너들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커머너들이 어떻게 국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이익과 자유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

 

국가권력의 다양한 양태들

국가권력의 반복되는 패턴들은 세계 전역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현실화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농업 국가들의 경우 국가권력은 라틴아메리카, 유럽 혹은 미국에서의 국가권력과는 전혀 다른 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는 대체로 나라들 사이의 기본적인 지리적 및 자원과 관련된 차이에서 나오지만, 국가권력과 시장들을 혼합하는 다양한 정책들, 문화들, 사회적 규범들에서 나오기도 한다. 국가권력의 가장 두드러진 양태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①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국가권력, ② 아프리카의 농업 국가들, ② 긴축재정·종획·위기로 특징지어지는 유럽연합, ④ 신자유주의 국가를 공격적으로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미국.

 

2.국가권력에 대항하는 힘으로서의 커머닝

‘심층잠수’에서 계속 나오는 주제는 ‘어떻게 커머닝이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가능하다면 재편할 수 있는 대항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였다. “국가와 관련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볼리비아 다민족국(Plurinational State of Bolivia)((‘볼리비아 다민족국’(Plurinational State of Bolivia)은 볼리비아의 공식 명칭이다.))의 전(前) 유엔 대사인 쏠론(Pablo Solón)은 물었다. 분명히 국가권력을 바꾸는 데서 먼저 달성할 목표들 가운데 하나는 커머닝 행동들을 탈범죄화하고 합법화하는 것이리라. 이는 적어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들을 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들을 열어줄 것이다. 더 장기적 목표는 국가권력을 활용해서 커머닝과 커머닝이 창출하는 가치(들)을 창조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좌파가 볼리비아를 장악한 일이 보여주듯이, 그 전체가 불안정하고 방심할 수 없는 지형이다. 권력은 그것을 휘두르기 시작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민들보다 다른 민족국가들에게 더 많이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 종국에는 국가와 기존의 법이 커머닝을 과연 도울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존재한다. 사무적으로 관리되는 민족국가의 거대한 체계들이 커먼즈 기반의 거버넌스와 인간적 규모의 커머닝을 실제로 양성할 수 있는가? 기존의 관료체제들을 바꾸어서 커머닝을 인정하고 지원하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한가?

크로아티아의 정치생태연구소(Institute for Political Ecology)의 토마세비치(Tomislav Tomašsević)는 “국가는 다양한 유형의 행위자들이 움직이는 장”이며 커머너들이 그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커먼즈운동과 그 참여자들로서는 국가를 재전유하고 재정의하여 권력관계를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한다. 그 다음 이 과제는 초국적 무대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단 국가를 재정의하는 일을 해내면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는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커먼즈 기반 사회의 규모를 다른 나라들로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어떻게 지역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전지구적 차원으로 나아갈 것인가? 국가를 통해 커먼즈를 다스리는 데 필요한 보편성 개념들을 무엇인가?” 우리가 국가와 국가성을 다시 상상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위기’는 계속해서 존속하리라는 그 점 하나 때문일지라도 “커먼즈 운동은 이런 과제들을 무시할 수 없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국가권력을 변형시키는 데서 다루어야 할, 국가권력과 커머닝에 관한 세 기본 물음들을 가려냈다. ① 일국의 맥락에서 무엇이 커머닝을 막고 있는가? ② 커머닝이 존재할 수 있고 확대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가 변화시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③ 오늘날 국가들과 정부들은 어떻게 커머닝을 방해하고 있는가?

커머너들은 구조적 분석, 전략 및 전술을 하나의 패키지로 통합할 설득력 있는 비전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정치적 물음들을 우리의 진입점으로 삼아야 한다. 커머너들은 또한 정치적 좌파와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자신들의 시민개념을 분명히 하며, 그리하여 커머너들이 어떻게 국가와 관계를 맺을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커머닝을 탈범죄화하고 지원하기 위해서 법을 재발명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통(通)개인적(transpersonal) 합리성과 연계―개인들의 다른 개인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새로운 범주―의 중요한 형태”로서의 커먼즈라는 생각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커먼즈전략그룹>의 헬프리히는 말했다.

 

3.국가권력을 커머닝을 지원하도록 다시 개념화하기

국가권력의 성격, 그 유형들, 그리고 커먼즈와 커머닝의 성격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우리를 ‘심층잠수’의 중심 문제에 이르게 한다. 어떻게 국가권력을 다시 상상할 수 있고 커머닝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가? 국가의 ‘공통화’(commonification)((원문에 명사를 썼기 때문에 “국가의 ‘공통화”라고 옮겼으나 ‘국가를 공통적인 것으로 만들기’라고 풀어 쓸 수 있을 것이다.))를 위한 전략들은 무엇인가? 커먼즈 기반의 국가는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헬프리히가 이 문제에 답하는 데서 출발점을 제공했다. “커머닝 없는 커먼즈는 없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 커머닝 없이 커먼즈에 기여하기는 가능하다. 여기가 국가가 관련되는 지점이다. 국가는 커머닝에 반드시 참여할 필요 없이 커먼즈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국가는 커머너들의 권리만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으며 커머너들 사이의 건설적 관계들을 지원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국가가 돕는 커먼즈를 상상하는 방식과 커머너가 국가가 돕는 커먼즈를 상상하는 방식은 즉각적으로 구분되어야 한다고 헬프리히는 말했다. 커머너는 커머닝을 병원에서 수도 시스템, 사회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본다. 원칙적으로 커머닝은 사람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새로운 창출 능력에 접속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제공한다. 이와 달리 자유주의자는 커머닝을 진보적 가치들과 복지국가에 가해지는 위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커머닝은 국가를 그 책임과 지출을 회피하도록 장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이론가 제솝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커머닝에 관심이 있다면, 문제는―마치 국가가 우리의 활동들의 외부에 있는 양―어떻게 국가장치가 커먼즈를 돕도록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전략이 국가 시스템 내외의 힘들의 균형을 바꿈으로써 국가권력을 변형시킬 수 있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권력과 커머닝을 다시 살펴보기―전략적 행동을 위한 상호 학습’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쏠론(Pablo Solón)은 이렇게 말했다. “문제의 핵심은 권력과 대항권력(counterpower)이다. 어떻게 커머닝이 대항권력을 구축할 것인가? 우리는 다른 식으로는 국가권력을 변형시킬 수 없다.”

대의민주주의가 정치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여전히 가동될 수 있는 틀인지 아닌지, 혹은 정치권력의 집성이 ‘체제’의 외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아닌지는 열린 문제라고 P2P재단의 전략담당자이자 <게릴라 번역>의 공동창립자인 트론코소는 말했다. 시리자의 전(前) 당원인 카리치스(Andreas Karitzis)는 최근에 다음과 같은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민중의 힘은 다양한 민주적 제도들에 일단 각인되면 소진된다. 우리는 긴요한 결정들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을 엘리트들이 받아들이고 관용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던 것을 더 한다고 해서 일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전투가 일어나는 터가 변해서 우리의 전략을 무력하게 한다면, 이런 불안정한 전쟁터에서 더 능력을 갖추어봐야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전투의 지형을 다시 형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사항들을 대의정치에서 경제적·사회적 힘을 생산하는 자율적인 네트워크의 수립으로 이동시킴으로써 해결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공공 서비스와 커먼즈

풀지 못한 문제는 어떻게 커먼즈가 공공 서비스, 공공재(public goods), 공적 도메인(public domain) 개념들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이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코리아(Benjamin Coriat)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가 이런 기능들을 감독한다. 국가는 접근권을 결정하거나 민영 회사들에 소유권을 넘길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공통 자산(common asset) 개념은 국가가 자원이나 서비스를 사유화(私有化)할 수 없다는 생각을 도입한다. 오늘날 국가가 사유화 기계가 되었기 때문에, 커머너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보호장치들을 도입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공공 서비스들이나 공공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공통화’할 수 있는가이다. 그는 공통재(common goods) 개념은 단지 자산과 서비스의 ‘재(再)시유화(市有化)’(re-municipalization)가 그 관건이 아니라 ‘공공재를 공통재로 변형시키는 것’이 그 관건임을 강조한다. ‘공통재’는 새로운 개념적 범주이다. 이는 커머너들을 보호할 새로운 권리들을 창출한다.

 

거버넌스와 법에서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상하기

커머닝과의 관계에서의 국가권력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패러다임 전환은 권력의 다른 새로운 회로들을, 새로운 유형의 거버넌스를 필요로 할 것이며, 더 넓은 의미에서는 제솝이 언급했던 국가 이념―Staatsidee((Staatsidee : ‘국가 이념’을 의미하는 독일어이다.))―에 대한 대위(代位)로서 기능할 수 있는, 널리 인정되는 커먼즈 이념을 필요로 할 것이다. 상이한 권력회로들을 발전시키려면 커먼즈의 내부 거버넌스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고 국가와 커먼즈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구조지어질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커먼즈는 거버넌스의 형태로서 효율적이고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 포용적인 윤리와 공유되는 목표들을 개발함.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심지어 추방하는 특정의 권리들은 계속 유지한다.)
  • 책임을 지는 제도를 갖춤.
  • 커머너들이 규칙 작성을 발기(發起)하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음.
  • 집단의 이익이 상호적으로 만족스럽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발생함.
  • 모든 구성원들이 현행의 규칙들과 관행들의 전제들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짐.

 

결론

신자유주의 정책의 옹호자들이 저항을 누르려고 함에 따라, 그리고 커머닝 자체가 더 널리 퍼지고 강해짐에 따라 국가권력과 커머너들과의 복잡한 관계들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 주제에 관한 진전이 있으려면 반드시 커머너들 사이에 토론이 더 진행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는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국경 안에 나름의 합법적으로 승인된 커먼즈들을 가지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의 ‘플랜 C’이든, 부엔비비르(buen vivir)를 증진하려는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 정책들이든, 자연자원 커먼즈를 보호하는 인도에서의 법정 판결이든, 국가와 병행하는 탈자본주의 경제인 커먼즈가 어디에서나 확대되는 것이든 말이다.

앞으로 이루어질 그런 전개들을 평가하려면 지역의 고유성을 고려한 ‘더 심층으로의 잠수’가 필요할 것이며 전통적인 좌파 및 노동계와 새로운 대화를 하여 생계, 기본소득, 공공 서비스, 경제정책의 문제들에 대해 일종의 임시 연대(working rapprochement)를 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커먼즈가 전통적인 자유주의 및 국가 권위와 정치적이고 합법적으로 통합될 수 있는가? 어떤 구체적인 조처를 취해야 할지를 알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가권력의 지형학에 심대한 변화가 생기지 않고서는 우리 시대의 위기가 해결될 수 없음은 분명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