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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선 슈나이더와 협동조합 운동의 미래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이 사회 변화를 위한 수단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떠한 실질적 개입이 IT 대기업들의 반사회적 행동을 저지할 수 있을까? 이 두 질문은 내가 콜로라도 볼더 대학교(the 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의 미디어학 교수인 네이선 슈나이더(Nathan Schneider)와 함께 나의 팟캐스트 「커머닝의 새로운 영역들」(“Frontiers of Commoning”)의 에피소드 8편에서 최근 탐구한 것들이다.

네이선은 저항운동·비폭력운동·체제변화운동에 초점을 맞춰 오랫동안 활동해 온 언론인 겸 학자이다. 그의 연구 중 많은 부분은 협동조합과 디지털 기술이 오늘날의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특히 플랫폼 협동조합을 우버, 에어비엔비 그리고 태스크래빗과 같은 착취적인 사업 모델을 뛰어넘는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활동해 왔다.

슈나이더에게 협동조합의 역사는 큰 영감과 실질적인 가르침의 원천이다. 그는 영국인으로부터 인도인들을 해방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서 협동조합을 수용한 간디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협동조합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상을 형성해왔지만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일을 하는 한 형태입니다. 가령, 사람들은 협동조합이 시민권 운동의 큰 요소였다는 것을 종종 잘 알지 못하죠.”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신용조합을 시작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열심히 도왔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협동적인 은행업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로 하여금 억압적인 지역 상황으로부터 더 독립적이 되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네이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미시시피 지역의 한 원로 시민+권+운동가를 인터뷰했고 그에게 협동조합이 1960년대에 있었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죠. ‘당신은 누가 사람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고 했다고 생각하세요?’”

소작인들은 감히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면 언제든지 땅에서 쫓겨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구성원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운동에 참여하기에 충분할 만큼 안전했다. 그는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 세상의 지형(地形)이다.”

슈나이더는 이 지형을 전면에 내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이윤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것, 지역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그리고 공동체에 의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협동조합은 당연한 대응인 것이다.

네이선은 협동조합을 미국의 대세에 진입시키기 위해 두 가지 주요한 전략을 본다. 하나는 1880년대와 1890년대 정치체제의 기반을 흔들기 위해 협동조합을 이용했던 민중주의자들의 방식으로 알려진 솔직하게 정치적인 접근이다. 다른 하나는 소유권과 같은 전 국민이 공유하는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덜 적대적이며 합의에 의해 추동되는 접근이다. 그는 루이스 켈소(Louis Kelso)의 ‘우리사주신탁제도(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의 창안을 사례로 인용했다. 우리사주신탁제도는 직원들이 직장에서 개인의 지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합법적이고 구조적인 혁신이었으며 동시에 전반적인 노동 문화를 개선하기도 했다.

슈나이더는 협동조합이 자본의 힘을 위협할 수 있을 경우에만 궁극적으로 강력한 운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행들에게 경쟁 도전장을 내민 신용협동조합들과 공익사업으로부터 사업을 인수한 지방전기협동조합은 고전적 사례들이다. 네이선에게 다른 협동 기획들보다 플랫폼 협동조합의 미래 힘에 대한 낙관론을 심어준 것은 견고한 대항을 극복한 바로 이러한 풍부한 협동조합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한 목표를 밀고 나가기 위해 슈나이더는 여러 핵심적인 운용기획을 만들어 오고 있으며, 그 기획 중 일부는 미디어 조직에서의 공동체 소유권과 거버넌스를 위한 실천 지향적인 연구 센터인 <미디어 기업 디자인 랩>(Media Enterprise Design Lab)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미디어 기업 디자인 랩>은 새로운 금융 제도, 소프트웨어 도구, 교육 전술을 찾아내기 위해 기업가들, 스타트업 프로젝트 그리고 활동가들과 협동한다.

슈나이더는 온라인 프로젝트에서 민주적인 소유권과 거버넌스를 확장시키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는 데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한 노력 중 한 가지는 그렉(Greg)과 하워드 브로드스키(Howard Brodsky)를 포함하는 여러 협동조합 리더들에 의해 만들어진, 협동조합 ‘가속장치’인 <스타트.코업>(Start.Coop)이다. 이 프로젝트는 스타트업 회사들이 투자자들을 찾고 프로젝트 개발에 관한 도움을 얻으며 협동조합 관행과 문화를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젝트이다.

네이선은 ‘공동체로 가는 출구’(Exit to Community)라고 알려진 새로운 금융 전략을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보통 전통적인 스타트업의 성공한 창립자들은 회사를 월가(Wall Street)나 IT 대기업에 매도하지 않을 수 없다. ‘공동체로 가는 출구’는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더 나아가길 원하거나 더 많은 돈을 마련하기를 원하는 기업가들이 그들의 회사를 지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매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업을 더욱 목적 지향적이고 사회 지향적이며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으로 유지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슈나이더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커뮤니티 내의 거버넌스 상태를 보고 실망한 바 있는데, 그는 그 상태를 참여 거버넌스가 형식적인 형태로라도 거의 없는, ‘봉건제를 내포한’ 체제라고 부른다. 그는 이런 상황의 개선을 돕기 위해 디지털 커뮤니티들에 기본적인 ‘거버넌스 도구모음’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룰>(CommunityRule)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통제가 중앙에 집중되고 설립자들이 ‘영원한 독재자들’처럼 행동하는 함정을 피하는 한편 자치를 위한 더 공정하고, 더욱 계몽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 그 취지이다.

 




재앙을 부르는 한국의 성장제일주의?



한국은 기술 및 상업 성장에 초점을 맞춘 경제전략을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늘어나는 경제적 격차와 닥쳐오는 기후위기에 지구보존을 목표로 하는 포용적 정책들로 맞설 것인가?

이것이 <2019년 한국포럼>에서 한국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많은 외교전문가들, 정당지도자들, 학계인사들, 정부 고위 관리들 및 (노벨상 수상자 한 명을 포함한) 다른 참석자들이 당면하고 있는 핵심 질문이었다. [노벨상 수상자는 뉴욕대 교수 토마스 사전트(Thomas Sargent)로 201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옮긴이]

4월 25일에 열린 행사는《코리아타임즈》(The Korea Times)와 그 자매신문이며 한국 최대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한국일보》(Hankook Ilbo)가 공동주최하는 연례행사 중 가장 최근 것이었으며 이 신문사의 65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는 또한 한국경제의 현황, 그 과제들 그리고 그 지도자들이 나라를 위해 가지고 있는 포부들에 관한 매우 계몽적인 특강이기도 했다.

둔화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어떻게 증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핵심주제였다. 일부 강연자들은 성장의 성과들을 보다 잘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한국이 사회적ㆍ환경적 지표에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 것을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의제로 상정되지 않았다. 기후변화도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이런 성장 수사(修辭)는 선진국들 사이에서 자주 보이지만 한국전쟁동안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을 때 이미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에서 이 수사가 줄기차게 주목을 받고 있는 근원을 재검토 해보는 것도 가치는 있다. 한국은 잿더미에서 빠르게 일어서서 ‘아시아의 호랑이’(Asian Tiger)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선진경제국들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는 종종 한강의 기적(한강은 서울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으로 불린다. 이것이 경제성장을 고무적인 국가신화와 결부시킨다.

한국의 미래 비전을 놓고 씨름하기

환영사에서 한국일보 회장 승명호(Seung Myung-ho)는 한국이 경제성장이 둔화된 10년 동안 경쟁력을 잃고 있는 점에 관하여 우려를 표명함으로써 이 분위기를 조성했다. 30년간 연속적으로 일구어 낸, 한국의 믿기 힘든 경제성장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둔화되기 시작했다. 승명호는 성장을 촉진하고, 유례없는 파열을 약속하는 인공지능·자율주행자동차·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을 포함한 강력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물결인 4차산업혁명(4IR)에 적응하기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회의장인 문희상(Moon Hee-sang)은 반론 같은 것을 제시했으나 성장 내러티브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며 성장경제의 성과를 더 잘 공유할 대통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성장주의가 포럼에서 내러티브를 장악하긴 했지만, 일부 연사들은 성장이 치를 비용이 다뤄져야 한다고 미온적으로나마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한국은 OECD 행복지수(OECD’s Better Life Index, BLI)와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의 달성에서 거의 하위를 차지한다.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인 윤종원(Yun Jong-won)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이 늘어나면서 실질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떨어진다고 언급했고 성장이 공유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새로운 가능한 패러다임을 간략하게 제시했다.

게이오 대학교 교수인 이사오 야나기마치(Isao Yanagimachi)는 둘로 나뉜 한국의 노동시장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즉 한편으로 점차 쇠퇴하는 중심부에서는 한국의 대규모 다국적기업들(재벌들이라 불린다)에 소속된 노조가입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옹호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커지고 있는 주변부에서는 전례 없는 프리랜서들, 소규모 자영업자들, 그리고 플랫폼노동자들이 빈약한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형편없는 사회보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익숙하게 들리는가?). 한국 노동시장의 한 가지 특이사항은 노동조합이 산업별이 아니라 기업별로 조직된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서로 다른 기업에서 일하는 동종의 노동자들 사이에 임금격차가 생긴다.

마지막 3부를 시작하는 두 개의 발제중 하나를 내가 했는데 그 발제에서 나는 한국인들 모두가 격변의 시대를 뚫고 나갈 준비가 되도록, 보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나라를 구축할 비전과 능력을 갖도록,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생계를 더 잘 창출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투자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차량공유(ridesharing)를 허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서 나는 또한 한 가지 충고로서 미국에서의 차량공유의 부정적인 영향―주행거리의 증가, 정체의 심화, 더 많은 교통사고 등등―을 이야기했다.

차량공유는 국가 미래를 알아보는 리트머스시험지일 수 있다

차량공유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에서보다 더 높을 수는 없다. 택시기사들이 내가 전 세계에서 본 가장 격렬한 반대를 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비극적이게도 최소 세 명의 기사가 항의의 표시로 분신하는 일도 일어났다. 나는 또한 몇 가지 가능성 있는 방향들을 제시했는데 이를테면 노동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플랫폼 협동조합을, 4차 산업혁명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디지털 권리를 위한 도시 연합을 그리고 보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공유이웃들과 공유도시들을 각각 제시했다. 나는 한국이 한국전쟁으로 폐허된 상태를 극복하는 데 쏟은 바로 그 집중력을 기후변화 같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문제들과 씨름하는데 쏟을 것을 제안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카풀•택시 태스크포스 위원장인 전현희(Jeon Hyun-hee)는 나중에 택시회사와 차량공유 세력의 사이의 첨예한 갈등에 대해 내부자로서 설명을 했다. 택시운전사들이 그녀의 발언을 방해했고 물을 뿌렸다고 한다. 그녀는 택시운전사들이 자신들의 입장이 약화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말했다.

나 다음의 발제자는 서울대학교 교수인 이재열(Lee Jae-yeol)이었으며 그의 발제는 내 발제와 대조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열정적인 테크놀로지 전도사인 그는 테크놀로지가 사회전반에 걸쳐서 과도하게 포화된 상태를 특징으로 하는 피할 수 없는 미래상을 그렸으며 한국이 이 움직임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한국포럼>에서 프로그램을 확인해 보니 3부의 두 번째 발제자는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인 최재붕이었고 이재열은 3부의 사회를 맡았다.―옮긴이] 

이어지는 패널토론에서 이 주제가 강화되었다. 내가 그런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이 한국사회에서 권위적인 요소들을 강화할 수 있음을 경고하자 서로 치고 받는 논의가 활발해졌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인 토론자 최성진(Choi Sung-jin)은 테크놀로지스타트업 문화는 자유행위자들에 의한 문제해결이 핵심이라고 능숙하게 반박했다.

컨퍼런스가 끝날 때 가지게 된 느낌은, 한국의 경제적 과제들이 대체로 다른 선진국들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사성은 한국의 성공의 표시이기는커녕 아주 위험하다는 인상을 내게 안겨주었다. 우리시대 특유의 과제들을 인정하지 않는 경제성장 가도에 한 나라가 강하게 집중하는 것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전 세계적으로 닥쳐오는 생태계 붕괴를 고려할 때 자멸을 초래할 것처럼 보인다.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 역사에서 ‘세 번째 운동’인가?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 역사에서 ‘세 번째 운동’인가?

 

4년 전 처음 게리 워스키(Gary Werskey)의 ‘세 운동’(three movements)을 다룬 2007년 논문을 읽었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다. 게리는 1930-40년대와 1970-80년대에 과학을 둘러싸고 일어난 두 개의 영국 급진주의자들의 운동을 다루었고 환경적인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세 번째 운동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나는 그것이 다른 두 운동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적 운동일 가능성에 대해 별로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8년인 지금 나는 진정 P2P 커먼즈 운동이 실로 세 번째 운동의 자리에 서있다고 본다. 적어도 그러리라고 전제하고 나아가는 건 가치 있을 것이다. 활동가들에게는 부차적이더라도 과학기술연구(STS)((STS :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분야에선 중대한 함의를 가지니 말이다. 나는 P2P 커먼즈가 내 활동가 삶에서 봐온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리고 지식과 기술의 정치를 지향하는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자로서 내가 지난 50년 간 공들여온 걸 가동시키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루시 가오(Lucy Gao)와 나는 막 STS 학문연구분야의 연차 모임인 <4S 시드니 2018>((4S : Society for Social Studies of Science))에서 이루어질 발표를 연구하고 짜는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학회세션의 주제 ‘일련의 실패한 정치적 실험으로서의 STS 안에서의 삶’은 게리가 했던 언급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었고 루시와 나는 그가 말하는 ‘세 운동’을 두 ‘STS 안에서의 삶’ -그녀의 10년의 삶과 나의 45년의 삶- 에서 이루어진 실험과 실패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를 진술하기 위한 틀로 삼았다. 학회발표는 유튜브에 게시되고 (훅튜브(hooktube)에는 사본이 게시된다) 급진과학 및 급진적 전문직주의(professionalism)와 관련된 일단의 자료가 이제 웹사이트 ‘STS 안에서의 삶’(Lives in STS)의 ‘4 역사’(4 History) 범주에 게시되어있다. 이 자료에는 두 가지 이야기에 관한 한 쪽짜리 요강과 몇 시간짜리 인터뷰 녹취가 포함되어 있다. 길이를 맞추기 위해 그 발표의 일부가 생략돼야 했다. 생략된 건 포디즘/포스트포디즘이라는 분석틀, 차세대 생산양식으로서의 P2P, STS 학계와 급진과학 액티비즘, 전문관리계층(PMC)((PMC : Professional-Managerial Class)) 안에 있는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유기적 지식인’ 액티비즘이었다. 나는 학회 이후에 ‘감독판’을 만드는 걸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 블로그 게시물을 부재하는 긴 영상의 개요로 생각해 달라.

내게는 세 가지가 이 ‘STS 안에서의 삶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그리고 내가 루시와 함께 그 작업을 하면서 도달한 장소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루시는 중국 과학원의 STS 부교수이다. 그녀는 나보다 40년 후에 태어났고 1980년대 후반 중국문화계에서 만개한 학문분야에서 일하는데, 거기에는 분명히 정치적인 (두 운동의) 역사가 서구주의, 관리주의, 전문직화의 번쩍번쩍한 표면 아래 묻혀 부글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것은 내 생각엔 1970년대의 ‘급진과학’에서는 본질적으로 과학이 핵심이 아니었으며 내가 급진과학으로 도달한 것도 본질적으로 ‘과학’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급진적 전문연구가들의 넓고 깊은 여러 세대에 걸친 운동 속에서 여러 문화적 형성물을 보았으며 지금도 본다.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때 (40년 전에!) ‘후기 자본주의’라 불린 틀 안에서 PMC의 역사로 이론화되었다. 지난 세대에 심오하고 역사적으로 새로운 정치가, 지식을 거대하며 전지구적으로 분산된 규모로 생산하고 동원하는 체제가 출현했는데, 나는 이를 자본과 자본에 대항하는 힘이 포스트포디즘적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의 한 측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1950년대에는 ‘거대과학’이, ‘군산복합체’를 뒷받침하는 일이 핵심 이슈였다. 1960년대에는 ‘과학정책’ 및 연구생산물의 공적 성격 혹은 사유화 가능성에 관한 논의들이 우세했다. 컴퓨터화가 진행된 1980년대에는 ‘지식경제’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에는 ‘지식집약사업서비스’, ‘혁신서비스’ 가 ’국가혁신시스템‘ 안에서의 연구주제였다. 1990년대에는 STS 연구자인 나도 그 일부였다. (적절한 시기에 더 많은 게시글을 올리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러는 내내 저류를 이루었던 건 ‘유기적 지식인’적 생산(1920년대와 1930년대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그람시의 용어이다), 그리고 지식생산을 대규모로, 계급규모로 조직할 수 있는 점점 더 분명한 가능성과 그래야할 필요였는데, 이는 매우 상이한 생산양식, 삶형태 그리고 전문연구가들과 일반인들 사이의 관계를 촉진하기 위함이었다. ‘유기적 지식인’적 실천에 관한 이러한 지속되는 이야기는 여기 FopRop의 ‘4 역사’ 범주의 관심사이다. 그것은 또한 ‘2 커머닝’(2 Commoning) 범주의 패턴언어를 위한 분석틀이 왜 ‘앎의 춤’의 안무를 핵심으로 하는지 또 왜 역사적으로 변화된 노동력의 생산에 관한 문제를 핵심으로 하는지를 말해준다. FopRop에서 나는 이를 P2P 커먼즈 생산양식과 일상적 삶의 역사적 진화에 관한 그리고 그 생산양식과 삶의 계속적인 활동가적 생산에 관한 문화유물론적 ‘접근법’을 구성할 수 있는 리터러시(literacy)의 세 영역 중 하나로서 제안하고 있다. (여기를 보라)

내가 주목하는 두 번째 것문화유물론 안에서 나 자신이 40년간 탐구를 해왔다고 내가 생각함에도 다른 어떤 종류의 공인된 맑스주의보다 더 커먼즈 운동이 의미심장하게도 ‘문화적’이며 심오하게 ‘유물론적’이라는 점인데, 이는 내가 FoP RoP에서 특히 ‘2 커머닝’ 범주에서 또렷이 말하려 하는 종류의 (탈맑스적인 아닌) 신맑스적인, 세심하게 혼종화된 틀에 의해 촉진될 수 있고 명확히 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러하다. P2P 커먼즈 운동의 유물론적 성격은 명백하게도 앱의 개방형 구조, 프리코드의 P2P 생산, 분산된 웹 인프라, 공개 데이터, 링크드 데이터/데이터 소유권/문서 소유권, 라이선싱 그리고 분산된 행위의 장을 조정하는 인프라 기술들에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에 존재하는데, 이 분산된 행위의 장에는 암호화폐, 신용회계 메커니즘, 해시체인, 공개가치 공급체인 회계시스템, 공개원장 알고리즘과 구조가 포함된다. 

문화적 역사적 지향성은 조금 덜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지향성은 예컨대 미셸 바우엔스로 하여금 커먼즈의 역사-진화적, 탈/반(反)자본주의적 중요성을 알아보게끔 하고 P2P 재단을 발족시키는 데로 이끈 인간학적 관점 안에 명백히 존재한다. 또한 그 지향성은 바우엔스 및 그의 파트너들(데이빗 볼리어, 질케 헬프리히)로 구성된 커먼즈전략그룹의, 과거와 현재의 커머닝에 대한 문화적·역사적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한 학술적·활동가적 연구와 개발 활동의 저변을 이루는데, 이 이야기들은 그들의 에세이 모음집 『커먼즈의 부』와 『커머닝의 패턴들』에 제시되어 있고, 현재 진행 중인 『커머닝의 패턴언어』에서 분석되고 있다. 이 분석과 여기 FoPRoP에서의 나의 패턴언어 작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주석은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인식한 세 번째 것은 내 생각에 P2P 커먼즈 운동이 1970년대의 ‘두 번째 급진과학 운동’ 안에서 분명해지기 시작한 ‘유기적 지식인’적 동력을 추진시키고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이 둘째 운동의 주체는 베이비부머들이었다. 이들이 여전히 현장에 있기는 해도 지금은 다른 세대가 ‘유기적 지식인’적 양태를 다르게 발견하고 실행하고 있다. 나는 기껏해야 18개월 전에 그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유기적 지식인’적, ‘자유의지론적 사회주의’적 액티비즘의 지속적 실천을 이론화하면서 나는 베이비부머와 20대 활동가들이 (그리고 그 중간의 사람들이) 세대를 가로지르는 ‘유산’에 관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을 어떤 종류의 ‘대학’을 창조한다는 생각을 다듬어오고 있었다. 나는 『겸손한 기원들 3 – 활동가들과 집으로 가는 행진』(Humble Origins 3– Activists and the long march home)에서 그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대학’을 위한 공간을 구성하는) 일종의 온라인 플랫폼을 요구하는 기획을 하기로 결심했고 이를 신중히 검토하기 위해 루미오 플랫폼(www.loomio.org)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내 귀가 쫑긋했던 건 여기서 루미오가 나라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폭넓고 확장적인 자발적 부문을 활용하는 잘 짜인 소프트웨어였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내가 그 설계의 기저에 놓인 그룹 프로세스의 촉진(facilitation)이 강조된다는 점을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1970년대에 내 세대가 가진 공동체지향적인 액티비즘이 발견한 것들과 그 헌신성으로 거슬러가는 분명한 역사적 선이 존재했다. (4 역사’ 범주의 ‘급진적 문화적 연구개발’과 『로케이션』(Location)의 서언과 서문을 보라.)

플랫폼 앱 루미오로부터 개발자들로 이루어진 노동자협동조합 루미오를 거쳐 나는 오큐파이 운동 이후 활동가이자 해커인 개발자들과 협동조합 기업가들의 연합(가족?)인 엔스피럴(Enspiral)에 도달했는데, 이 개발자들과 기업가들에게는 촉진은 활동가 문화의 당연한 측면이었다. 그 이후 나는 쎈소리카(Sensorica)(([옮긴이] 쎈소리카는 IT 장비들 및 특수한 거버넌스를 사용하여 그들의 작업들을 함께 조정하고 운영하는 프리랜서들의 개방형 네트워크이다.))에 그리고 팽창하는 아나키즘적-해커적 정치 세계에, 스커틀벗(Scuttlebutt)(([옮긴이] 탈중심화된 소셜 플랫폼인 스커틀벗은 유저들이 그들의 데이터들을 통제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이다.)) 인프라에, 코드 페디버스(fediverse)(([옮긴이] 페디버스는 소셜 네트워킹, 블로깅, 웹사이트 같은 웹 출판 및 파일 호스팅에 사용되는 서버들의 집합이다.))에 (그리고 P2P 방식으로 코드와 프로토콜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들에) 도달했다. 또 나는 오큐파이 이후의 반(反)과두적·직접민주주의적 연구와 개발, ‘오픈 밸류’ 가치연쇄 회계, ‘신속한’ 포스트포디즘적 문화형태들로 이루어진 더 폭넓은 형성체에 도달했다. 이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유연생산시스템이라는 포스트포디즘적 발견을 도둑질하는 것이 자본주의 공급체인 개혁에서 내 동료들의 양식이었던) 1990년대의 나의 경영대학원 경험과 그 모든 종류의 기묘하고 모순적인 공명을 이루었다. 분명 역사들은 너무도 뒤섞이고 혼합되고 파문을 일으키고 파두(波頭)들이 서로 간섭하고 있었다. 분명 기업가 정신과 공동체 사이, 연대와 효율 사이, 액티비즘과 테크놀로지 사이, 정치와 돌봄 사이에 동일한 종류의 선을 긋지 않은 소수의 젊은 급진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는 더 기업적이기도 하고 전문성이 더 뚜렷이 구획되어 있기도 하며 경력을 중시하고 해결책을 ‘해킹’하기보다는 ‘설계’하는 데 더 경도돼 있는 환경에서 자란 이전 세대에게는 문제적이었을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처음 할 때 제대로’라는 기업적·경쟁적인 문화가 우세했고, 지금은 ‘일찍 실패하고 계속 고치고 계속 갈라지고 모인다’라는 문화가 우세하다.

P2P 커먼즈는 ‘급진과학’보다 훨씬 더 크다. (포스트포디즘이 급진과학보다 훨씬 더 나아가 있다.) 가장 직접적으로 P2P 커먼즈는 에너지 독립형의 아나키즘적인 도시-장인의 삶에 전념하는 대안에너지 공동체로부터 ‘인간중심적’·참여적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기업적·산업적 환경에서의 디자인운동까지 이르는 저 모든 운동의 급진적 테크놀로지 무기의 계승자이다. 다른 것들―‘4 역사’ 범주의 ‘급진과학’사, ‘3 플랫포밍’(3 Platforming) 범주의 ‘플랫폼 협동주의적’ 액티비즘 세계에서의 조직화―에 관한 작업이 내가 ‘2 커머닝’ 범주에서 커머닝의 패턴언어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1970년대 『급진과학저널』(Radical Science Journal)에서의 신맑스적 노동과정 이론화가 1970년대 급진적 전문직주의와 밀접히 연관됐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론화하는 모험이 (동일한 문화유물론적 기초 위에서) 오늘날의 P2P 커먼즈 운동과 밀접히 관련된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제는 활동의 장이 더 크고 걸려있는 것이 더 커졌으며 다양한 문화적 도전이 더 분명하고 결정적으로 드러나 있다. 1970년대 말에 베이비부머들이 대면했던 ‘단편들을 넘어서’라는 과제가 많은 새로운 형태들을 출현시켰다. 상황은 변하고 있다. ‘세 번째 운동’이 중국에서 어떨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국에서 나의 STS 동료인 루시 가오는 40년 후에야 ‘두 번째 운동’ 없이 체제화된 무익한 첫째 운동만이 존재하며 1980년대 후반의 ‘위대한 계몽’의 여파로 모든 포디즘의 파도들이 역사와 경제의 쓰나미로 붕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를 맞이하고 있다.

여하튼 그렇다, 게리. 맑스주의를 계승하는 세 번째 급진과학 운동이 있다! 그건 더 나은 것일 수밖에 없다.




플랫폼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점검해야 할 다섯 가지 일들



공유경제 기업들이 착취적인 노동 관행들, 데이터 프라이버시 문제들 등으로 빈축을 사면서 이 플랫폼들의 몇몇 부정적인 영향에 대항하기 위해 준비되고 있는 또 하나의 운동이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platform cooperatives)이라고 불리는 이 디지털 기업들은 전통적인 협동조합들이 사용한 토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긱노동에 새로운 경로를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 협동조합의 예로는 <그린 택시>(Green Taxi), <스톡시유나이티드>(Stocksy United)[셰어러블의 후원자] 및 <Up&Go>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플랫폼 협동조합들이 빠질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플랫폼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노력과 자원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다섯 가지 중요한 고려 사항들이 아래에 있다.

  1. 시장

플랫폼들은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성공한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플랫폼은 더 잘 기능한다. 대안적 플랫폼으로 전환하도록 모든 사람을 설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깨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서로 물리적으로 밀접한 지역 사업들인 경우에 이 일은 약간 더 쉬운 과제이다. 플랫폼 협동조합을 창출하기 전에 제공할 서비스가 지역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플랫폼 협동조합이 국경을 가로질러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더 큰 시장과 연결되는 데는 시간, 노력 및 자원이 더 많이 든다.

 

  1. 테크놀로지

플랫폼 협동조합에는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1. 자체 테크놀로지를 개발하기

 

  1. 필요한 지원과 테크놀로지를 제공하는 협동조합에 가입하기

 

  1. 해당 산업에 있는 기존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기

 

어떤 방식을 당신의 플랫폼 협동조합이 선택하느냐는 당신이 그 방식에 할당할 수 있는 자원과 전문적 기술에 달려 있다. 다양한 플랫폼 협동조합들이 서로 기술 투자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중요한 것은 플랫폼 협동조합에서 사용하는 테크놀로지도 그 혜택을 최대화하기 위해 협동조합 원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는 지역의 자전거 배달 부문에 세 개의 ‘메타’ 플랫폼 협동조합들—<쿱사이클>(CoopCycle), <아피꼴리스>(Applicolis), <블록푸드>(Blockfood)—이 있으며, 이 협동조합들은 정보통신기술•마케팅•판매를 촉진한다. 배달원으로 이루어진 노동자 협동조합을 모든 도시에 만들고, 모든 노동자 협동조합들이 다 같이 메타 협동조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다. 이것이 그들의 안전과 미래의 연속성을 보장할 것이다. 연합함으로써 그들은 더 많은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공동 구매를 활용할 수 있다.

 

  1. 정부

지역 및 중앙 정부는 보다 민주적인 활동의 장을 제공하기 위하여 새로운 플랫폼 협동조합을 대상으로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부들은 ‘좋은 기업 인증서’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거나 그런 플랫폼에 세금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이것 말고도 정부는 거대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 창출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역법 및 국가법과 정책들을 주시하라.

 

  1. 지원

플랫폼의 힘은 플랫폼 사용자의 호의에 달려있다. 수요 집단이나 공급 집단이 연합할 경우 당장에 힘을 발할 수 있다. 기존 연합들, 부문 조직들 내지 노동조합들이 플랫폼 협동조합을 지원하거나 설립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은 그런 조직들과 파트너가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원을 찾으라. 그리고 또한 당신의 기업이 그 보답으로 그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찾으라. 그 조직들은 금융, 로비활동 및 다른 지원과 관련하여 도움이 될 수 있다.

 

  1. 품질

지역 노동자 집단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운영할 때 앱, 서비스의 품질과 편리성을 낮추거나 심지어는 가격 수준에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 플랫폼 협동조합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플랫폼 협동조합이 더 큰 벤처자본의 후원을 받는 플랫폼들에 대한 솔직한 대안을 실제로 제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깊이 숙고해서 판단하라.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 많은 기회가 있더라도 그 모형을 실현하는 것이 처음에 제시된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더 까다롭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협동조합과 커먼즈



 

[게시자 설명]

P2P재단은 오큐파이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에서 시작해서 2014년 에콰도르에서 진행한 우리의 FLOK 프로젝트(일국의 국가기관의 초청으로 착수한 최초의 커먼즈 이행 프로젝트)에 그가 방문한 것에 이르기까지 네이선 슈나이더의 작업을 여러 해 동안 뒤쫓았다. [FLOK은 “Free/Libre Open Knowledge”의 약자이다― 정리자] 그 다음 네이선은 트레버 숄츠(Trebor Scholz)와 함께 플랫폼 협동조합 운동을 시작하고 컨퍼런스들을 여는 데서 주된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 콜로라도의 보울더(Boulder)에서 교사를 하고 있으며 또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그의 보고를 계속 진행하고 있고 종교 분야에서 진보적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최근 책 『모든 것이 모두를 위해서』(Everything for Everyone)의 한 장은 에콰도르에서의 경험을 서술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아래는 협동조합 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와 이 운동이 커먼즈의 부활과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다룬 이 흥미로운 책에 관한 인터뷰이다.

 

미셸 바우엔스

이게 당신의 첫 책은 아닙니다. 당신이 책을 써온 행로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간단하게 개괄해주실 수 있나요? 책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협동조합 전통의 미래에 대한 새 책을 낳게 된 통찰과 동기에는 어떻게 도달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네이선 슈나이더

좀 뜻밖의 행로였던 것 같습니다. 먼저, 신에 대한 주장들에 관한 책을 썼고, 그 다음에는 ‘월 가를 점령하라’에 대해 상세하게 썼으며, 지금은 협동조합에 대한 책이군요.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는 어떻든 말이 됩니다. 저에게 최우선의 과제는 항상 사람들이 그 최고의 포부를 현실화하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험적 상상력과 함께 그것을 실천하는 대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립니다.

이번 책은 ‘오큐파이’를 다룬 책인 『고마워, 아나키』(Thank You, Anarchy)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었습니다. 2012년과 2013년에 투쟁이 잦아든 이후 제가 관심을 가진 활동가들 가운데 일부가 협동조합 일에 관여하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월 가를 점령하라’ 싸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게 된 첫 사업은 노동자 협동조합인쇄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허리케인 샌디가 강타한 뉴욕 지역들에서 협동조합을 창출하는 것을 돕고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을 한다는 생각은 행복감을 주었습니다. 민주적 가치들을 보유하면서 생계를 버는 한 방식인 것이었죠. 저도 이 행복감을 좀 경험했는데, 이는 제가 이 협동조합의 전통이 얼마가 길고 깊은지를 깨달으면서 더 진지한 매료로 전환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플랫폼 협동조합에 관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해주시겠어요?

 

슈나이더

이런 활동을 하던 꽤 초기에, 저는 테크놀로지 영역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할 기회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프리소프트웨어와 오픈소스에 좀 관여해왔습니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를 일종의 커먼즈로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실리콘밸리의 이른바 ‘공유경제’― 그 당시 주류였죠―가 실제로는 공유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던 2014년경에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파리에 있는 위셰어(OuiShare) 네트워크, 셰어러블(Shareable)의 고렌플로(Neal Gorenflo), 그리고 물론 P2P재단의 인도 아래 저는 몇몇 기업가이자 활동가인 사람들이 진정한 공유경제, 공유가 회사 자체에 내장된 경제를 그려보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놓치고 있던 해킹이었습니다. 오픈소스 사람들은 지적 재산권 관련법을 해킹했지만 투자자에 의해 통제되는 추출적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제 자본주의적 회사의 논리를 다시 생각할 때이며, 오랜 협동조합 전통이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적절한 장소 같았습니다.

2014년 말에 저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숄츠와 팀을 이루었고 그 다음 해에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에서 최초의 플랫폼 협동조합 컨퍼런스를 조직했습니다. 반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운동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지요.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려는 새 스타트업들이 저에게 접근하면 할수록 저는 증거 같은 것에 입각하여 조언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역사에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배우고 가져올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바우엔스

협동조합주의와 커먼즈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보시나요? 양자가 융합될 수 있을까요?

 

슈나이더

저는 협동조합을 일종의 커먼즈로산업 시기의 국가와 시장에게 명료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커머닝의 한 방식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커먼즈 활동가들의 비전과 비교해 볼 때 협동조합 전통은 꽤 보수적입니다. 나는 이 보수주의를 좋아합니다. 그것이, 마찬가지로 재발명의 필요가 있는 ‘바퀴 개수 줄이기’에 기여합니다. 이야기꾼으로서 저는 더 첨단의 커머너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짊어질 과제가 너무 어렵고 새로워서 이념이 투철하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붙어있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은 사람들을 커먼즈의 급진적인 비전에 입문시키는 한 방식입니다. 여기에는 비자, AP통신 그리고 동네에 있는 신용조합 같은 귀에 익은 것들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저는 협동조합들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렵니다. 협동조합은 더 다양하고 광범한 커머닝으로 나아가는 출발점, 관문이지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모두 구식 재산 및 소유권과 연관됩니다. 저는 ‘재산은 절도다’와 같은 식의 아나키즘에 마음이 갑니다만, 또한 커머너들이 영주들이 소유권을 포기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공유경제의 정신에 따라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은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봉건제입니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리눅스 코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으며 현재 그것이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기업감시도구인 안드로이드 OS를 가능하게 합니다. 삐께띠가 보여주듯이 자본 소유권이 (임금소득보다 더) 경제적 불평등의 추동력입니다. 협동조합 전통은 소유권을 더 균등하게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재산이 덜 중요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에 더 좋은 위치에 놓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커먼즈를 통해서 우리의 욕구를 더 많이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커머너들은 강한 힘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책의 한 장에서 당신은 당신과 대담을 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의 경험과 에콰도르의 ‘FLOK 사회’ 프로젝트를 평하고 있습니다. 그 경험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떤지요?

 

슈나이더

한 나라 규모의 커먼즈 이행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었던 FLOK의 경험은 저에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것은 커머닝이 단순히 일련의 고립된 실천들로서 제시되기보다 포괄적인 사회적 비전으로서 제시되는 것을 볼 기회였습니다. 협동조합들은 당연히 그 모든 일에서 중대한 요소였습니다. 물론 에콰도르 정부의 후속조치는 매우 제한되었습니다만 그 과정은 커먼즈 이행을 위한 자원을 산출했고 이것이 그 모든 일의 핵심을 포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 더없이 소중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굉장한 교육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런 경험을, 세계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짜는 데 참여하는 경험을 때때로 가져야 합니다.

 

바우엔스

당신의 활동은 당신의 신앙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이 시대에 진보적 기독교인이 될 수 있나요? 당신은 기독교 전통의 특정 요소들과 연결되어 있나요?

 

슈나이더

협동적 전통을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종교적 전통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더욱더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특히 저의 가톨릭 전통에서 봅니다. 이 전통은 북미 협동조합은행들과 몬드라곤 노동자 협동조합들과 같은 사례를 산출했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다른 많은 신앙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협동이 종교로 환원된다거나 종교에 의존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 세계의 다른 많은 주된 세력들의 경우처럼 종교도 삶에 활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작업을 통해 몇몇 새로운 성인들을 후원자들로서 발견하게 되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중세 프란치스코회의 공동 설립자인 아시시의 클라라(Clare of Assisi)는 수녀들이 자치할 권리를 가져야한다는 것을 강조했으며 모든 목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라이언(John A. Ryan)은 협동조합 일을 통해 이루어지는 덕성 교육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신부인 맥나이트(Albert J. McKnight)는 범아프리카주의적 비전을 남부협동조합연맹(Federation of Southern Cooperatives)의 발전에 적용했습니다. 영어에 갇혀있는 우리에게는 몬드라곤 협동조합들을 창시한 신부인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따(José María Arizmendiarrieta)의 저작을 더 많이 번역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이 분들은 신이 우리에게 우리의 공동체를 같이 다스릴 수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는 존엄을 부여했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서 협동적 경제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바우엔스

새로운 세계로의 ‘상전이’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으로 보시나요? 인류가 이 과정을 완수하리라고 어느 정도 낙관하시나요?

 

슈나이더

제 책의 부제[‘다음 경제를 형성하는 급진적 전통’―정리자]가 암시하는 바와 달리 전 예측을 잘 못해요.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만일 우리가 현재보다 더 풍요로운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면 이것이 분명해집니다. 언제가 미래에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방대한 불평등과 독재적 기업들, 때때로 이루어지는 투표 등으로 구성되는 현재의 현실을 떠올리며 웃는 일이 분명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리가 더 탁월한 민주주의 형태들을 선택해 나갈 가능성만큼이나 민주주의를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