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효율성 추구는 좋은 것인가?
- 저자 : 맬컴 해리스(Malcolm Harris)
- 원문 : “The Singular Pursuit of Comrade Bezos—Is Amazon’s plan to increase our efficiency a good thing?“ (2018.2.16)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베조스 동지의 특이한 추구
— 효율성을 증가시키려는 아마존의 계획은 좋은 것인가?
재정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존은 21세기의 성공적인 회사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아마존은 2012년 이후로 자신의 증권을 되사지 않으며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불한 적이 없다. 아마존은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는 달리 현금을 쌓아놓지 않는다. 최근에서야 얼마 안 되는 예측 가능한 이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마존은 재원이 있을 때마다 능력에 투자하고 그것이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가져온다. 자산이 138억 달러가 되었을 때 137억에 식품 체인점 호울푸즈(Whole Foods)를 샀다. 아마존은 시가총액에서 월마트를 따라잡는 데 18년 걸렸지만, 그것을 두 배로 늘리는 데 단 2년 걸렸다. 아마존은 이윤추구 기업이라기보다는 계획경제처럼 행동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자란 미국인들에게 계획경제에 대해서 아는 이야기가 있다면, 보리스 엘친(Boris Yeltsin)이 텍사스의 슈퍼마켓을 방문한 이야기일 것이다. 1989년 막 최고 소비에트 위원으로 당선된 옐친은 미국을 방문했다가 일정에 없이 지역 슈퍼마켓을 들러서 수많은 상품들을 보고 압도되게 된다. 자본주의가 지칠 줄 모르는 자기이익이라는 기계를 사용하여 계산하는 수많은 변수들을 계획경제는 결코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옐친은 소련 체제에 대한 절망으로 가득 찼으며 경제 개혁가가 되었고 세계의 열강으로서의 국가 사회주의의 종식에 앞장섰다. 미국인들은 이 교훈, 즉 계획경제는 효과가 없다는 교훈을 『동물농장』과 아울러 초·중등학교에서 배운다.
거의 30년이 지난 지금 옐친 동지가 오늘날의 가장 선진화된 미국 식품점을 방문한다면 그렇게 기분 나쁘게 느끼지만은 않을 것이다. 호울푸즈(Whole Foods)는 채점표를 사용하여 직원들을 처벌한다. 채점표는 호울푸즈의 OTS(“order-to-shelf”)((저자 해리스는 ‘on-the-shelf’라고 썼으나, 검색해보면 대부분 ‘order-to-shelf’로 쓴다.)) 재고관리에 얼마나 순응하는지를 측정한다. OTS는 이전의 탈중심화된 시스템을 엄밀하게 중심화된 표준으로 대체한 시스템이다. 이 표준에는 식품을 수송트럭에서 바로 선반으로 옮기기, 저장실 비용을 아끼기가 속한다. 그 결과로 진열대에 식품이 부족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http://www.businessinsider.com/whole-foods-employees-reveal-why-stores-are-facing-a-crisis-of-food-shortages-2018-1?op=1에 가면 진열대의 상당 부분이 텅빈 사진들을 볼 수 있다.)) 베조스의 ‘계획’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OTS는 아마존이 호울푸즈를 사기 전에도 작동하고 있었지만, 이것을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베조스의 기풍이나 평판에 부합한다. 아마존은 성장과 큰 규모의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이것이 고통스럽고 고객에게도 설득력이 없다. 조그만 제품을 거대한 아마존 박스에 담긴 채로 받는 일이 생겨도 관계가 없다. 그 주문은, 너무 크고 빨라서 개인으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거대한 효율성 기계의 한 부분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아마존을 그저 또 하나의 시장 기업(market player)으로 보지 않고 계획경제로 본다면 모든 것이 갑자기 말이 되기 시작한다.
사실 아마존을 ‘시장 기업’으로 볼 수가 없다. 아마존은 시장에서 추천되는 소매가격 책정을 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가격을 매긴다. 책의 저자들은 아마존에서 팔리는 책에 대해서는 더 낮은 인세를 받는데 아마존이 출판사로부터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할 힘을 가지고 있고 출판사는 다시 그 차액을 저자들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소비자들에게는 좋다. 책값이 두드러지게 쌀 뿐만 아니라 거대한 양의 재고를 가지고 있어서 당신에게 이틀이면 (프라임 회원에게는 무료로) 배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그만 책방들은 문을 닫았지만 책에의 접근은 쉬워졌다. 이런 변화를 소비자들이 태도를 바꿀 만큼 나쁘게 생각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계획경제는 오로지 성장만 하고 싶어 하겠지만, 건설하는 만큼 파괴하기도 한다. 1930년대에 소련은 부농(kulak)의 집단농장화를 강행했다. 소농들은 큰 집단농장체제에 통합되었다. 탈부농화(집단농장화)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말 그대로 유대인 대학살에 비견할 대량학살이거나 농민들로 이루어진 대륙 규모의 나라를 근대적인 초강대국으로 급속히 변모시킨 사건이거나 혹은 둘 다거나이다. 아마존이 소사업체들(특히 서점들)을 제거하거나 아마존 플랫폼에 통합시킴으로써 그 수를 격감시킨 것은 이와 유사한 종류의 집단화이다. 그 과정은 탈중심화되어 있고 국가보다는 시장에 의해 실행된다. 그러나 혼동하면 안 된다. 베조스가 서점들의 멸절을 원하든 아니든, 하향식 결정들이 특정의 삶의 방식들을 제거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호울푸즈를 구입하면서 아마존은 식품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듯 보인다. 아마존이 두 시간 걸리는 식품배달을 프라임 고객에게 무상으로 하겠다고 한 것은 식품 산업에서 이윤을 몽땅 제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배달은 아마도 아마존이 생각해낸 가장 편리한 것이리라. 왜 소비자들이 크로거[슈퍼마켓과 편의점을 운영하는 회사]의 주주들에게 거대한 배당금을 지불해야 하는가? 만일 베조스가 주주들의 호주머니를 분기마다 채우는 대신에 성장에 집중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그로 하여금 저들의 점심을 먹게 하는 것이 낫다. 아마존은 경쟁을 제거하는 데 기반을 둔 사업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트러스트를 규제하는 당국으로부터 가격을 낮추었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은 적이 없다. 만일 소비자들의 형편이 더 나아진다면, 독점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미국의 반트러스트법은 책을 팔든 식품을 팔든 부농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존이 성공한 주된 이유는 성장에 투자하는 이례적인 경향에 있다. 오늘날 다른 회사들만이 아니라 정부들도 지출하는 일에 더디다. 긴축정치와 사유화는 아마존을 국가 기능을 인수받을 수 있는 위치에 놓았다. 만일 지자체들이 일자리에 투자하지 못하거나 않으려 한다면 베조스는 그들로 하여금 세금을 포기하고 제2본사를 유치하도록 할 수 있다. 정부들이 온디맨드식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공공설비로서 제공하지 말란 법이 없는데, 다만 아마존 웹 서비스(Amazon Web Services, AWS)가 그 사이트의 호스트가 되도록 정부가 돈을 지불하면 된다. 만일 정부가 인구의 건강관리를 이윤을 추구하는 보험사들에게 아웃소싱한다면, 더 지켜보기 바란다. 아마존의 성장에 머지않은 장래에 일어날 자연스런 종말이란 없으며, 내년쯤에는 연간 수입이 베트남의 GDP를 넘어설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아마존이 자신의 도시들을 짓기 시작하지 말란 법이 없다.
미국이, 자본주의가 21세기 테크놀로지와 결합한 소련과 경쟁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했어야 했던 적은 없었다. 시장 경쟁이 알고리즘과 계획보다 더 가격을 잘 책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시대에 뒤쳐진 것이 되었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소련에서 이루어지는) 시장을 왜곡하는 지원금을 조롱하곤 했는데, 지금 우버는 모든 승차에 지원금을 지급한다. 미국 경제로부터 구리 배선을 빼먹음으로써 돈을 버는 자본가들에 비하면, 베조스 계획은 효율적이다. 그래서 소기업 소유주들과 경영자들을 제외하면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세계를 점점 더 많이 아마존에게 맡기고 싶어 하지 말란 법이 없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존은 가령 현재의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짝이 낳은 오바마케어라는 문제덩어리를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운영하는 공적/사적 부문의 사기꾼들과 성장제일주의에 비할 때 베조스가 이끄는 아마존에서의 삶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그에게는 어떤 사람들과는 달리 계획이 있다.
평균적인 소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아마존을 공격하기는 힘들다. 효율성과 성장에의 한결 같은 집중이 효과를 보고 있으며, 배달의 편의는 미국인들이 과거에 미래의 삶에 대해 가졌던 기대를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이 단지 평균적인 소비자로서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제품 배달을 보자. 아마존의 최근의 도발적인 선전문구는 ‘아마존으로 배송을’이다. 이는 미국 우정청(USPS)에의 도전이다.(우정청은 아마존의 제품을 비용 이하의 가격으로 배달한다.) 모든 사람에게 봉사해야 하는 정부기관인 우정청은 농촌지역 고객들에 대한 무료 배달이라든가 언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 매체의 배포를 지원한다든가 하는 비효율성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와 달리 아마존은 하기 싫은 것은 안 해도 되는 민간 회사이다. 평균적인 소비자 집단으로서 미국인들은 즐거워해야 한다. 실제로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나라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로서는 하던 일을 멈추고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의 배달 기반시설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과연 효율성뿐인가를. 비용을 가능한 한 낮추는 것은 그 비용 가운데 일부가 노동이라는 점을 기억할 때까지만 좋은 일이다. 낮추어지는 비용의 일부는 바로 ‘우리’인 것이다.
이 달 초에 아마존은 창고 직원들의 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팔찌 시스템에 대해 두 개의 특허를 냈다. 회사가 직원의 움직임을 최적화한다면, 모든 것이 더 빠르고 값싸게 될 수 있으므로 이는 효율성에서의 전진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그 노동자들에게는 디스토피아적 지옥세계로 내려가는 계단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심지어는 간부 수준에서조차도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악명이 높다. 아마존이 낮은 가격으로 경쟁자들을 모두 몰아내고는 다시 가격을 올리리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존과 기타 단일구매자들(monopsonists)은 자신들의 힘을 이용해서 임금을, 생산에서 노동의 몫을 낮추었다. 베조스의 전략을 죽 따라가면 완전 자동화된 사치스런 공산주의나 심지어 월-E(Wall-E)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완전한 편의와 완전한 착취가 있는 캡슐에 포근하게 들어가 있는 매트릭스가 나온다. 자본주의적 형태의 중앙집중적 계획이 사람들을 가능한 한 낮추어야 할 또 하나의 비용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어떤 계획이 효율적이라고 해서 그것이 좋다는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정청 직원들은 노조를 조직해 가지고 있다. 높은 임금을 받으며 진급도 가능하고 자리는 안정되어 있으며 불만사항 협상 절차, 건강 혜택, 휴가 등도 가진다. 아마존 배달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 그 차이는 우리가 가격으로 측정할 때에나 효율성의 차이로 나타난다. 그리고 내[해리스] 생각에 그 차이는 세상을 효율성의 왕에게 건네주지 말아야 함을 주장하며 제시하기에 아주 좋은 논점이다. 남는 문제는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이 낮추어진 것이 아닌가, 소비자로서 그리고 비용으로서 취급된 이후에도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회를 베조스로부터, 그리고 그를 합리적인 대안처럼 보이게 만든 사람들로부터 떼어내는 데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