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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구적 전쟁체제와 새로운 국제주의

 


  • 저자  :  Michael Hardt•Sandro Mezzadra
  • 원문 : “A Global War Regim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NLR의 블로그인 Sidecar에 실린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산드로 메차드라(Sandro Mezzadra)의 2024년 5월 9일자 글 “A Global War Regime”의 내용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2000년대 초에는 ‘불량 국가’와 ‘파탄 국가’가 전쟁의 발발을 설명하는 주된 이데올로기적 개념들이었으며, 이는 정의상 주변부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때는 주도적인 국민국가들과 전지구적 기관들이 이끄는 안정되고 효율적인 국제적 통치 체제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 이후 전지구적 전쟁의 수사(修辭)와 실제가 모두 극적으로 변했다. 오늘날에는 그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질서를 유지할 능력이 없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가장 강력한 행위자들 일부를 국제적 무대에 끌어들이고 핵 위기 고조라는 유령을 소환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은 그런 파열을 패권의 전환으로 본다. 이에 따르면 20세기의 세계대전들은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전지구적 패권의 이동을 표시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맥락에서는 그런 파열이 패권의 이동을 나타내지 않는다. 미국 패권의 쇠퇴는 위기가 규범이 된 시기를 개시할 뿐이다.

이 시기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전쟁체제’(war regime)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이 체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경제적 삶이 군사화되고 ‘국가안보’ 요구에 점점 더 종속된다. 더 많은 공공지출이 군비에 배당될 뿐 아니라 경제 발전 전체가 점점 더 군사 및 안보 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인공지능 분야의 이례적인 진전은 대부분 군사적 이해관계와 전쟁에 적용될 테크놀로지에 의해 추동된다. 물류 회로와 인프라도 군사 분쟁과 군사 작전에 맞추어진다. 경제와 군사 사이의 경계가 계속 흐려지고 있으며, 어떤 경제 부문들에서는 양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둘째, 사회적 장이 군사화된다. 이는 때때로 국론통일을 주장하고 다른 견해를 억압하는 형태를 띠지만 일반적으로는 다양한 사회적 수준에서 권위에의 복종을 강요하는 시도로 발현된다. 볼소나로, 푸틴, 두테르테 같은 극우 인사들의 군사주의적 사고방식은 사회적 위계에 대한 그들의 지지와 명확히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외적으로 명시되지 않더라도, 군사주의와 여타 사회적 억압이 결합된 정치적 레퍼토리가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종적•성적 위계가 강화되고, 이주민들이 공격받고 배제되며, 낙태가 금지되거나 제한되고, 성적 소수자들의 권리가 붕괴되는데, 이 모든 것이 종종 임박한 내전의 위협이 거론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셋째, 이 전쟁체제에는 패권국이 수행한 최근의 전쟁들이 계속 실패했다는 역설이 있다. 미군은 적어도 반세기 동안 아낌없는 자금 지원을 받고 선진적 테크놀로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아프간 및 이라크에 이르는 전쟁들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강력한 전쟁기계가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더 이상 제국주의적 패권국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런 실패의 동학이 드러내는 또 한 가지 점은 그런 전쟁이 유지하는 전지구적 권력 구조이다.

푸코는 목표를 영원히 성취하지 못하는 감옥을 분석하면서 이러한 감옥의 실패가 무엇에 복무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전쟁기계의 연속적인 실패가 무엇에 복무하는지를, 그 표면적 목적 뒤에 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이렇게 물을 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군사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무리가 문 뒤에서 음모를 꾸미는 모습이 아니라, 푸코라면 ‘통치 기획’이라고 부를 법한 것이다. 이는 부단히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뒷받침하는 군사화된 통치 구조로서, 이 구조는 장소마다 다른 형태를 취하며, 때로 서로 연합하고 때로 서로 갈등하는 여러 수준의 세력들(강대국들, 초국적 기관들 및 경합하는 자본 부문들)에 의해 이끌어진다.

전쟁과 자본의 회로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현대 물류학은 식민지 활동과 대서양 노예무역에 뿌리를 둔 군사적 계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전지구적 종합국면의 특징은, 가치화와 축적의 공간들이 늘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가운데 지정학적 측면과 지경학적 측면이 점점 더 중첩되고 이와 함께 정치권력이 경합을 통해서 지구 전체에 배분된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물류 문제를 일으킨 이후로 군사적 이유로 인한 교란들이 이어졌다. 세계 무역이 경색되었으며, 기업들은 과거의 루트를 다시 확보하고 새 루트를 개시하는 등 위기에 대처하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류 차질이 뒤를 이었다. 러시아와 독일 사이의 석유 및 가스 교역이 전쟁의 주요 희생양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은 또한 밀, 옥수수, 유지油脂 작물의 흐름을 차단했다. 유럽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주요 식량이 부족해졌으며,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출 제한이 해제된 뒤 폴란드·체코·우크라이나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독일 경제는 현재 정체 상태에 있으며, 다른 여러 EU 회원국들은 북아프리카 국가들과의 협정을 통해 에너지 공급 체계를 재편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주로 중국과 인도로 돌렸다. 물류 공간의 이러한 재편은 분명히 이번 전쟁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이다.

가자지구에서도 물류와 인프라의 문제가 결정적인데, 이 점이 참혹한 학살의 광경에 의해 종종 가려진다. 미국은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을 통해 지역 경제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 맞서기를 기대했다. 이러한 기대는 아랍-이스라엘 관계의 정상화라는 전제에 의존했는데, 이 전제는 현재 진행 중인 전쟁으로 인해 치명적으로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홍해에서 벌어진 후티 반군의 공격은 주요 해운 기업들로 하여금 수에즈 운하를 피하고 더 길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항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미군은 현재 가자 해안에 항구를 건설 중인데, 미국은 이것이 원조 물자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 단체들은 그 궁극적인 목적이 민족 말살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이처럼 자본 공간의 전 세계적 재편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쟁체제하에서 주요 순환 거점들이 국민국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 이는 정치적 논리와 경제적 논리가 뒤섞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남중국해의 긴장 고조와 오커스(AUKUS)와 같은 군사동맹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같은 경제 네트워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과도기에는 각각의 전쟁이나 공급망 차질이 특정 국가나 자본주의적 행위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스템 전체는 증가하는 공간적 분열과 예측 불가능한 지정학적 변화의 등장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전지구적 전쟁체제에 대항하면서 휴전과 무기 금수 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필수적이지만, 현재의 상황은 일관된 국제주의 정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현상 유지로부터 근본적으로 탈피할 수 있는 연계된 이탈(desertion)의 실천들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그러한 프로젝트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전지구적 운동에서 가장 명확하게 예고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 국제주의는 종종 일국적 프로젝트들 간의 연대로 개념화되었다. 이는 2023년 12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스라엘을 제소한 사례처럼 오늘날에도 때때로 유효하다. 그러나 과거 반식민 투쟁의 기초가 되었던 민족해방 개념은 점점 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 팔레스타인 자결권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두 국가가 관여된 해결책과 주권적 팔레스타인 국가의 전망은 점점 더 비현실적이 되고 있다. 국가 주권을 목표로 가정하지 않고 구성할 수 있는 해방 프로젝트는 현재의 자본의 전지구적 순환에 맞설 수 있는, 국민국가를 단위로 하지 않는 형태의 국제주의이다.

국제주의는 세계시민주의가 아니다. 추상적인 보편주의가 아니라 특수하고 국지적인 물질적 토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민국가를 제외하자는 것도 아니다. 더 넓은 맥락에 놓고 보자는 것이다. 2020년대에 맞는 저항운동은 국지적인 시 단위의 조직들, 일국적 구조들 그리고 일정 지역의 국가들에 걸쳐 있는 행위자들을 포함한 광범한 세력을 포함할 것이다. 예를 들어, 쿠르드 해방투쟁은 일국의 경계를 넘어서 터키, 시리아, 이란 및 이라크의 사회적 경계들에 걸쳐 이루어진다. 안데스의 토착민 운동 또한 그런 구분을 가로질러 이루어지며, 라틴아메리카와 그 외 지역의 페미니즘 동맹은 국가 단위가 아닌 국제주의의 강력한 모델이다.

광범한 탈주 행동들을 지칭하는 ‘이탈’(desertion)은 줄곧 전쟁에 저항하는 데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전술이었다. 이는 다양한 도피 행위를 가리키는데, 단순히 군인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전쟁 프로젝트에서 자신을 빼내는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 러시아군, 미군의 전투원에게 이탈은 실제로는 극도로 어려울 수 있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정치적 행위이다. 처지는 매우 다르지만,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사실상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현재의 전쟁체제에서의 이탈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게 사고되어야 한다.

이 체제는 이미 언급했듯이 국가 경계와 일국적 통치 구조를 넘어선다. EU에서는 자국 정부의 국수주의적 입장에 반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무역 블록 자체의 초국가적 구조와 맞서야 하며, 유럽 전체조차도 이 전쟁들에서 주권적 행위자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도 군사적 의사결정 구조와 전투력은 국경을 넘어 확장되며, 국가 행위자뿐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까지 포함하는 광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구조에서 어떻게 이탈할 수 있을까? 개별적·지역적 몸짓만으로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효과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국제적 회로 속에서 조직된 집단적 거부가 필요하다. 2003년 2월 15일, 세계 여러 도시에서 동시에 벌어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 대규모 시위는 전쟁 기계의 초국가적 형성을 정확히 짚어내며 새로운 국제주의적 반전 행동 주체의 가능성을 알렸다. 비록 공격을 막지는 못했지만 미래의 실천을 위한 선례를 만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도시 거리와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자 학살 반대 시위는 ‘글로벌 팔레스타인’의 형성을 예고하고 있다.

국제주의적 해방 정치에 장애물이 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진영주의’이다. 이는 정치적 지형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환원하는 사고방식이며 ‘우리의 적의 적은 우리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세력(이란이나 이란의 동맹국)이면 찬양하거나 적어도 비판하기를 꺼린다. 이는 가자의 대중이 아사 직전이고 끔찍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현재의 종합국면에서는 이해할 만한 충동이기는 하지만, 진영주의의 이원론적 논리는 궁극적으로 해방을 잠식하는 억압적 세력과의 동일시를 낳는다. 이란이나 그 동맹국을 (실제로든 수사적으로든) 지지하기보다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을 이슬람 공화국에 도전하는 ‘여성, 생명, 자유’ 운동 같은 투쟁들과 연결시켜야 한다. 요컨대 전쟁체제에 맞서는 투쟁은 현재의 전쟁들을 저지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광범한 사회적 변형을 이루어 내려고 해야 한다.

국제주의는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해방 기획들이 서로 함께 나란히 투쟁할 수단을 찾으면서 아래로부터 출현해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과정도 포함된다. 다양한 맥락에서 인식되고 성찰되고 다듬어질 수 있는, 해방의 언어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질적인 맥락들과 주체성들을 한데 모을 연속적인 번역 기계를 창출해야 한다. 새로운 국제주의는 전지구적 동질성을 추구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다른 국지적·지역적 경험 및 구조들을 결합하려고 해야 한다. 전지구적 체제의 분열, 자본 축적의 전략적 공간들의 파열, 지정학과 지경학의 상호교직을 감안할 때 (이것들 모두 통치의 특권적 형태인 전쟁체제 출현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탈의 기획은 세상을 다시 만드는 국제주의적 전략을 필요로 한다.

※ 글의 맨 뒤에 저자들은 브렛 닐슨(Brett Neilson)이 이 글의 공저자인 메차드라와 공동으로 집필한 『나머지 세계와 서구 ─ 다극적 세계에서의 자본과 권력 』(The Rest and the West: Capital and Power in a Multipolar Worl), 2024)에 몇몇 통찰을 빚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COVID-19와 자본의 회로

 


  • 저자  :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 원문 :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5월호라고 하지만 3월 27일에 업로드되었다.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본 블로그에 직전에 올린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와 싸샤 릴리(Sasha Liley)의 인터뷰에서 라인보는 이 글을 자신에게 생산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든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의 저자들은 모두 네 명이다. 롭 왈리스(Rob Wallace)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의 자문역을 한 바 있는 진화전염병학자(evolutionary epidemiologist)이다. 리브먼(Alex Liebman)은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인문지리학 박사과정 학생이다. 차베스(Luis Fernando Chaves)는 질병생태학자이며, 코스타리카의 트레스리오스(Tres Rios)에 있는 <코스타리카 영양 및 건강에 관한 연구교육원>(Costa Rican Institute for Research and Education on Nutrition and Health)에서 상임연구원을 한 바 있다. 로드릭 왈리스(Rodrick Wallace)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New York State Psychiatric Institute)의 전염병학과의 연구과학자이다. * 정리자의 논평이나 설명은 대괄호 안에 삽입하기로 한다. 

COVID-19와 자본의 회로

 

계산

2002년 이후 가장 독한 호흡기증상 바이러스인 COVID-19는 이제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되었다. 3월말 현재 도시들이 봉쇄되었고 환자들의 폭증으로 병원들은 응급실과밀화를 겪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상황 생략]

임페리얼 컬리지(Imperial College)의 전염병학 팀은 최선의 완화(발견된 환자의 격리와 연장자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누적환자수의 상승하는 그래프 곡선을 꺾어서 수평에 가깝게 만드는 것)를 이루는 캠페인을 하더라도 미국은 110만 명이 사망할 것이고 환자의 수는 미국에서 가능한 전체 중환자병상 수의 8배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질병을 진압하려면 환자격리와 (기관들의 업무정지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거리두기 쪽으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을 이런 조치의 대표로 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의 사망자는 약 20만 명이 될 것이다.[5월 2일 현재 미국의 사망자는 65,711명이다.]

임페리얼 컬리지 팀은 성공적인 캠페인을 적어도 18개월 동안 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 동안 경제가 수축되고 공동체 서비스들이 쇠퇴할 것이다. 이 팀은 가용한 중환자병상의 수에 따라 공동체 격리의 시행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질병통제와 경제 사이의 균형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탈렙(Nassim Taleb)이 이끄는 팀은 임페리얼 컬리지의 모델이 접촉자 추적과 호별 모니터링을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모델은, 많은 정부들이 그런 식의 지역봉쇄를 기꺼이 행할 태도이지만 COVID-19는 그러한 태도를 가진 정부들을 제치고 발발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의 확산 기세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많은 나라들이 그런 조치들을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너무 과격하다. 미국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대응할 수 있는 더 온건한 바이러스가 필요하다.”

탈렙 팀은 임페리얼 팀이 어떤 조건에서 바이러스가 절멸(extinction)에 이르는지를 연구하기를 거부하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절멸이란 환자수 0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환자들이 새로운 감염의 연쇄를 산출하지 않도록 충분한 고립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감염자와 접촉한 감염 가능자들 가운데 5%만이 나중에 감염되었다. 탈렙 팀은 장기적으로 질병통제와 노동력공급의 보장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마라톤에 들어가지 않고 전면적으로 신속하게 질병을 절멸하는 중국의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이 글의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월러스(Rodrick Wallace)는 모델링 전체를 뒤집어엎는다. 비상상태의 모델링은 그것이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어디서 언제 시작할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원인들도 마찬가지로 비상상태의 일부이다. 이 구조적 원인들을 포함해야 경제를 단지 재가동하는 것을 넘어서 나아가는 최선의 대응책을 생각해낼 수 있다고 한다.

전염병 발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서의 실패는 12월 우한에서 COVID-19가 유출되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가령 미국에서 실패는 트럼프가 팬데믹 준비팀을 해체하거나 CDC의 7백 개의 자리들을 채우지 않고 두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연방정부가 2017년의 팬데믹 씨뮬레이션의 결과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는 데 실패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미국이 바이러스 발발 몇 개월 전에 중국에 있는 CDC 전문가의 수를 삭감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 현장에 있는 미국 전문가와의 직접적 접촉을 상실한 것이 미국의 대응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미 사용 가능한, WHO가 제공하는 진단키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물론 초기 정보의 지체와 검사의 총체적 결여로 인해 많은 사람들, 필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다.)[42일 현재 미국 내의 사망자는 65,776명이다.]

실패는 수십 년 전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가 소홀히되고 화폐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즉 신자유주의의 시작과 함께] 실제로 프로그램되었다. 병상과 정상적 의료활동을 위한 장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사례에 대응하는 개별화된 전염병학적 치료법에 의해 포획된 나라는 정의상 중국식 통제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집결시킬 수가 없다.

이 글의 공저자 가운데 또 한 사람인 차베스(Luis Fernando Chaves)는 ‘숫자가 말하게 하기’는 이미 안에 함축된 모든 전제들을 가릴 뿐이라고 한다. 임페리얼 팀의 것과 같은 모델들은 분석의 범위를 지배적인 사회질서의 틀 안에서 협소하게 재단된 문제들에 명시적으로 국한된다는 것이다. 이 모델들은 그 의도상 전염병의 발발과 정치적 결정들을 추동하는 더 광범한 시장 세력들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 결과로 나오는 기획들―여기에는 질병 통제와 경제를 위한 통제해제가 교대로 일어나는 동안 죽음을 당할 감염에 취약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포함된다―은 모두의 건강의 확보를 부차적인 것으로 제쳐놓는다. 푸꼬가 말한,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구에 작용을 가하는 것은 영국의 토리 정부와 네덜란드가 제안한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라는 맬서스적인 정책―인구 전체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의 (비록 더 자애롭지만) 갱신판일 뿐이다. 집단면역이 전염병의 발생의 중지를 보장하리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희망일 뿐, 그 증거는 거의 없다. 바이러스는 인구의 면역장막(immune blanket) 아래로부터 쉽게 진화해 나올 수 있다.

 

개입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나?

종합병원을 국립화한다. 검사의 양을 늘리고 소요시간을 줄인다. 약을 사회화한다. 의료종사자들의 보호를 극대화한다. 인공호흡기 등을 수리할 권리를 확보한다. 렘데시비르와 클로로콰인의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인공호흡기와 보건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개인보호장비를 생산하도록 회사들을 강제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할당한다.

연구에서 돌봄까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대적인 팬데믹 인력을 바이러스로 인한 수요의 수준에 근접하도록 확충한다. 증가된 환자의 수에 병상과 의료진, 그리고 필요한 장비의 수를 맞춘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COVID-19의 계속적인 공격에서 그저 살아남았다가 나중에 접촉자 추적과 환자격리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충분한 인력을 동원해서 가가호호 COVID-19를 포착해내고 마스크와 같은 필요한 보호장구를 갖추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탈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 질병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이 실행될 수 있기까지 대다수의 인구가 대체로 방치될 것이다. 정부들로 하여금 하기 싫어도 하도록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야 하므로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매일 새로 출현하는 상호부조단체들과 동네단체들에 참여해야 한다. 자원자들이 봉사활동을 하다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이 없도록 여력이 되는 전문적인 공공보건요원들이 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바이러스의 구조적 기원을 비상상태 시의 계획과 연계시키는 것은 모든 발걸음이 이윤에 앞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 된다.

많은 위험 가운데 하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을 규범화하는 데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사스(SARS) 바이러스가 야생의 은신처로부터 나와서 8주 만에 인간이 사는 곳에 전역에 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받은 충격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는 특이식품(exotic food)의 지역 공급라인의 한 쪽 끝에서 출현했으며 다른 쪽 끝인 중국 우한에서 인간에서 인간으로의 감염연쇄를 성공적으로 개시했다. 거기서부터 전염병은 지역으로 확산되기도 하고 비행기나 기차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여행에 의해 구조화된 연결망을 통해 그리고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내려오면서 지구 전체에 퍼졌던 것이다.

야생식품시장을 전형적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보지 말라. ‘특이식품이 어떻게 더 전통적인 가축과 함께 우한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팔릴 수 있게 되는가?’라는 명백한 질문을 생각해보자. 동물들은 트럭에서 혹은 골목에서 팔리는 것이 아니다. 관련되는 허가증과 대금지불(그리고 그 규제의 완화)을 생각해보라. 전 세계의 야생식품에 투여되는 자본과 산업생산에 투여되는 자본은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다. 비록 산출량의 크기는 어디에서도 비슷하지 않지만, 그 구분은 지금 더욱 불투명하다.

중첩되는 경제적 지리는 우한 시장에서부터 특이식품들과 전통적인 식품들이 재배되는 후배지들로 뻗어있다. 산업생산이 가장자리의 숲을 침범할 때, 야생식품업은 더 깊이 들어가거나 가장자리 지역을 공략해야 한다. 그 결과 가장 특이한 병원체들이, 가령 이번 경우에는 박쥐를 숙주로 삼는 SARS-2가, 식용동물들을 통해 혹은 그것을 다루는 노동자들을 통해 트럭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침투

어떤 병원체들은 바로 생산의 중심지들에서 발생한다. 살모넬라(Salmonella)와 캄필로박터균(Campylobacter)처럼 식품을 통해 감염되는 박테리아가 그렇다. 그러나 COVID-19를 비롯한 다수의 병원체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프런티어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인간 병원체의 적어도 60%가 야생동물에서 해당 지역의 인간 공동체들로의 유출(spillover)에 의해 발생한다. 그 다음에 세계의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와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이들은 기업식 농업이 주도하는 삼림파괴의 유혈 낭자한 가장자리를 밀어붙이는 회사들이다―으로부터 일부 재정을 지원받는 이들을 포함한 에코헬스(ecohealth)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이전의 전염병 발발에 기반을 두어 새로운 병원체들이 출현할 법한 곳이 앞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세계지도를 만들어냈다. 색깔이 붉은 색에 가까울수록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이 지도에서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의 일부가 붉다. 그런데 이 지도는 절대적 지리(absolute geographies)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중대한 점을 놓쳤다. 발발 지역에 초점을 두는 것은 전염병학을 형성하는 전지구적인 경제적 요인들이 공유하는 관계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들에서 개발과 생산에 의해 토지사용과 질병출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후원하는 자본가 세력은 발발의 책임을 토착민들과 그들의 ‘더럽다’고 추정되는 문화적 관행들에 지우는 노력에 보상을 해준다. 야생동물고기를 먹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집에서의 시신의 매장이 새로운 병원체의 출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두 가지 관행이다. 이와 달리 관계적 지리(relational geographies)의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전지구적 자본의 핵심 원천인 뉴욕, 런던, 홍콩이 세계의 최악의 핫스팟 가운데 세 곳이 된다.

발발지역들은 심지어 전통적인 정치체들에 의해 조직되어 있지도 않다. 불평등한 생태교환이 (이는 산업화된 농업으로부터 온 최악의 피해를 글로벌 사우스에 돌린다) 이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제국주의에 의한 지역 자원 약탈의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규모와 상품이 관련되는 새로운 복합체의 형태로 일어난다. 기업식 농업은 그 추출주의적 작업을 상이한 규모의 영토들을 가로지르는 공간적으로 불연속적인 네트워크들로 전환시켰다. 가령 일련의 다국적기업 기반의 ‘콩 공화국들’(Soybean Republics)은 현재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걸쳐있다. 이 새로운 지리는 회사관리구조, 자본조달, 하청, 공급체인대체, 임대 그리고 초국적 토지공동이용(land pooling)에서의 변화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 ‘상품 공화국들’은 여러 국경 사이에서 여러 생태들과 정치적 경계들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전염병학적 현상들을 산출하고 있다.

전염병의 발발과 관련하여 도시와 시골을 나누는 이분법은 시골이 도시 주변의 ‘desakotas’(city villages, 도시 마을들)나 ‘zwischenstadt’(in-between cities, 사이 도시들)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그 결과 병원체의 원초적 원천인 숲질병 동학은 이제 후배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와 연관된 전염병학적 현상들도 관계적이 되었으며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스(SARS) 같은 것이 박쥐 동굴에서 나온 지 며칠 만에 대도시의 인간들에게로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야생’ 바이러스들이 열대림의 복잡성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통제되었던 생태계들은 자본이 주도하는 삼림파괴와 공공보건 및 환경위생의 결핍에 의해 철저하게 간소화되고 있다. 많은 야생 조수(鳥獸)에서 발생하는 병원체들은 숙주와 함께 죽지만, 숲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퍼졌던 일부 병원체들이 이제는 감염에 취약한 인간집단(이들의 취약성은 종종 도시들에서 긴축정책과 부패에 의해 부실해진 규제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을 가로질러 증식하고 있다. 효과가 있는 백신이 있어도 발발한 전염병은 이전보다 더 큰 범위, 더 긴 지속기간, 더 큰 동력을 가진다. 한때 지역에 국한된 유출(spillover)이 지금은 전 지구를 가로지르는 유행병이 된 것이다.

이렇게 환경이 변한 것만으로 에볼라(Ebola), 지카(Zika), 말라리아(malaria), 황열병(yellow fever) 같은 예전의 전형적 병들이 (이는 비교적 진화를 적게 한다) 위협적이 되었다. 이 병들은 먼 마을들로 유출되고 다시 큰 도시들로 퍼져 수천 명을 감염시켰다. 오랜 동안 질병의 저장소였던 야생동물들도 블로우백(blowback)을 겪고 있다. 적어도 100년 동안 노출되어온 야생유형의 황열병에 걸리기 쉬운 토착 신세계원숭이들(New World monkeys)은 삼림파괴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서 그들의 집단면역 능력을 잃고 있으며 수십만 마리씩 죽어가고 있다.

 

확산

기업화된 농업은 여러 기원을 가진 병원체들을 가장 멀리 있는 저장소로부터 가장 국제적인 인구 중심지들까지 이동하게 하는 동력이자 그러한 이동의 연결망으로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병원체들이 농업 공동체들로 침투한다. 연관된 공급체인이 길수록, 그리고 연관된 삼림파괴의 범위가 클수록 푸드체인에 진입하는 동물원성 병원체들이 더 다양해진다. 최근에 (재)발생한 식품에 의해 전달되며 인간의 활동에 의해 유발되는 범주에 속하는 병원체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속한다. African swine fever, Campylobacter, Cryptosporidium, Cyclospora, Ebola Reston, E. coli O157:H7, foot-and-mouth disease, hepatitis E, Listeria, Nipah virus, Q fever, Salmonella, Vibrio, Yersinia ( 그리고 H1N1 (2009), H1N2v, H3N2v, H5N1, H5N2, H5Nx, H6N1, H7N1, H7N3, H7N7, H7N9, H9N2를 포함하는 다양한 신종들).

아무리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생산의 전체가 병원체의 유독성의 진화와 전염을 가속화하는 관행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다. 점증하는 유전자 단작(monoculture)―거의 동일한 게놈을 가진 식품용 동물과 식물―이 전염속도를 늦추는 방역 방화벽을 제거한다. 지금 병원체들은 평상적인 숙주 면역형질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인구밀집이라는 조건이 면역반응을 억제한다. 농장의 동물 개체수의 크기와 밀집도가 더 신속한 전염과 반복적인 감염을 촉진한다. 산업생산의 특징인 큰 처리량은 취약개체들의 공급을 계속 갱신하여 병원체의 치명성의 상한선을 제거한다. 동물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는 것은 가장 잘 퍼질 수 있는 변종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도살 시기―닭의 경우에는 6주―는 병원체들이 더 튼실한 면역체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데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산 동물의 교역의 범위가 넓어짐으로써 게놈의 다양성이 증가되고 연관된 병원체들이 교환되어 그 진화 가능성의 탐색 속도가 빨라진다.

병원체의 진화가 이런 식으로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개입은 심지어는 산업 자체가 요구하는 경우일지라도 (전염병이 발발한 비상상태에서 한 분기의 재정수익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것 말고는)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다. 전체적인 경향은 농장들과 가공공장들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점점 더 줄어들고 정부의 감시와 활동가의 폭로에 반대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며 치명적인 전염병 발발의 세부에 관해 미디어를 통해 보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농약과 식용돼지의 오염에 맞선 법정 싸움에서 최근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생산은 여전히 전적으로 이윤에 초점을 맞춘다. 전염병의 발발로 야기된 피해는 가축, 농작물, 야생, 노동자들, 지역 및 일국 정부들, 공공보건 시스템들에 외화되며, 자국의 우선성이라는 태도로 인해 해외의 대체 농업시스템들(agrosystems)로 외화된다. 미국에서 CDC는 식품에 의해 전달되는 전염병 발발이 여러 주들과 감염된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자본이 초래하는 소외는 병원체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공공 이익은 농장 및 식품공장의 문에서 걸러내어지는 한편, 병원체들은 산업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바이오안전을 지나쳐 퍼지고 공중에게로 되돌아간다. 매일 이루어지는 생산은 우리의 공유된 건강 커먼즈(health commons)를 갉아먹는 수지맞는 도덕적 해이를 내장하고 있다.

 

해방

바이러스의 발생지에서 지구의 반만큼 떨어져 있는 뉴욕, COVID-19 때문에 이동제한이 걸려있는 뉴욕에 아이러니가 있다. 3년 전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제이피모건(JPMorgan), 아메리카은행(Bank of America), 시티그룹(Citigroup), 웰스파고(Wells Fargo & Co). 그리고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연방정부의 비상대출금의 63%를 취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거대한 기업식 농업의 일부를 차지하는 Shuanghui Investment and Development의 주식 60%를 취했다. Shuanghui Investment and Development는 미국에 본사를 둔 Smithfield Foods―세계에서 가장 큰 식용 돼지고기 생산회사―를 샀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3억 달러로 푸젠성과 후난성―우한의 바로 아래 지역이며 도시의 야생식품 조달권 내에 있다―에 있는 10개의 가금농장의 소유권을 얻어냈다. 또한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와 함께 같은 지역의 식용 돼지사육에 3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렇듯 COVID-19의 발발의 원인들의 고리의 일부는 애초에 뉴욕에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의 농업의 크기에 비해 골드만삭스의 투자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말이다.

트럼프가 인종주의적으로 ‘중국 바이러스’ 운운하는 것과 같은 민족주의적인 손가락질은 국가와 자본이 서로 전지구적으로 엮여있는 상황을 가린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발생하며 국가가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팬데믹은 체제의 관리자들과 수혜자들이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2월 중순에 5명의 미국 상원의원들과 20명의 하원의원들은 팬데믹이 오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산업분야들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수백만 달러의 주식을 싼 값에 팔았다. 정치꾼들은 팬데믹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공적인 메시지가 계속적으로 나오는 가운데 대중에게는 발표되지 않은 정보를 기반으로 내부자거래를 했다. 미국의 부패는 이런 이기적인 탈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걸친 것으로서 자본이 빠져나갈 때 미국의 자본축적 사이클이 종말을 맞음을 알리는 표시이다.

생태학(그리고 그와 연관된 전염병학)의 현실보다 금융을 더 우위의 놓는 사물화된 태도를 중심으로 자본의 물줄기가 계속 분출되도록 하려는 노력은 무언가 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노력의 관점에서 보면 팬데믹은 가령 골드만삭스에게도 성장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살육에 섬뜩해진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와 다른 결론들을 낸다. 병원체들이 방사성 꼬리표(radioactive tags)[‘방사성 꼬리표달기’는 어떤 원소의 정상적인 동위원소를 방사성 동위원소로 대치하여 그 원소를 추적하는 것을 가리킨다]처럼 차례차례 표시하는 자본과 생산의 회로들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 그룹은 치명적인 질병의 출현을 낳은 삼림파괴를 항상 토착민들과 지역 소자작농들 탓으로 돌리는―에코헬스(ecohealth)[Ecohealth Alliance를 말하는 듯하다]와 <원 헬스>(One Health)에서 발견되는―근대의 식민 의료를 넘어서는 모델을 도출하는 중이다. [주석으로 달린 “The dawn of Structural One Health: a new science tracking disease emergence along circuits of capital”의 저자들―일부 저자들이 이 글의 저자들과 겹치는 것으로 보아서 두 글의 입장은 동일한 듯하다―은 ‘One Health’가 가축유행병 유출의 사회적 규정요인들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이 결핍을 메운 자신들의 모델을 ‘구조적 원 헬스Structural One Health’라고 부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질병 출현에 대한 우리의 일반이론은 아래와 같다.

자본의 전지구적 회로가 근본적인 문제다. 더 구체적으로는 유독한 병원체들의 개체수의 성장을 억제하는 환경복합성을 파괴하는 식의 자본 배치가 문제다. 그 결과로 병원체가 유출되는, 즉 원래의 야생동물 숙주에서 나와 인간 공동체로 진입하는 사건들의 속도와 분류학상의 폭이 증가한다. 도시 주위의 확장된 상품회로들이 이 유출된 병원체들을 가축과 노동력을 매개로 후미진 지역에서 해당 지역의 도시들로 옮긴다. 증가하는 전지구적 여행(및 가축 교역) 네트워크가 병원체들을 이 도시들에서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재빠르게 배달한다. 이 네트워크들이 전염과정에서의 마찰을 낮추어 가축과 인간 모두에서 더 치명도가 높은 병원체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가축의 생식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즉석에서 (그리고 거의 무상으로) 질병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인 자연선택이 제거된다.

심층에 있는 전제는, COVID-19와 그와 같은 기타 병원체들의 원인은 어떤 한 감염원이나 그 임상과정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 및 기타 구조적 원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고정시켜 놓은 생태계 관계들의 장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탈소외(disalienation)가 다음의 거대한 인간의 이행방향이다. 정착자 이데올로기를 버리는 것, 인류를 재생성의 순환으로 되돌리는 것,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 다중들 속에서 개인화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경제에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머리가 여럿인 히드라로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전유하고 내화하고 질서짓는다. 자본주의는 인종, 계급, 젠더가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지형을 가로질러 작동한다.

우리는 탈소외를 통해 이 다양한 억압의 위계들과 이 위계들이 지역마다 특수하게 축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들을 해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의 확대되는 재전유의 반경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전체주의로 귀결되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 심지어는 지속 가능성 자체도 상품화된다. 그리고 이는 공장과 농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온갖 방식으로 시장에 종속되어 있다.

자본 및 자본의 지역 대표자들과의 전지구적 규모의 충돌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업식 농업은 공공보건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공공보건이 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생태를 경제와 다시 연결하는 전지구적 물질대사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다. 우리는 직접적인 해결책들에 집중한다. 병원체의 성장을 억제하는 숲의 복잡성을 보호한다. 가축 및 농작물의 다양성을 다시 도입하며, 병원체의 유독성의 증가와 범위 확대를 막는 범위의 동물사육 및 농작물 재배를 재도입한다. 동물들의 현장에서의 자연생식을 허용하여 병원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게 하는 자연선택을 재개한다. 크게 보면,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으로 가득한 자연과 공동체를 시장에 의해서 제압되어야 할 또 하나의 경쟁자로 취급하기를 그친다.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키는 것―바로 이것이 우리의 출구이다. 지구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또한 현재의 절박한 문제들의 다수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뉴욕에서 베이징까지 이동제한이 걸려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런 발발을 다시 겪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염병은 그간의 역사 대부분을 볼 때 때이른 죽음의 가장 큰 원천이었기에 언제나 위협이 된다. 우리는 1918년부터 지금까지의 100년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또 하나의 치명적인 팬데믹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자연을 전유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조정하여 이 전염병과의 더 나은 휴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