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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꼬쎄쏠라와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 커머닝하기

 



베네수엘라 소재 협동조합들의 연합인 <쎄꼬쎄쏠라>(Cecosesola, Central Cooperativa de Servicios Sociales de Lara)는 내가 접해 본 가장 특이한 성취를 이룬 커먼즈 중 하나이다. 이 주목할 만한 연합은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데도 많은 기획들을 커먼즈로 솜씨 있게 운영한다.

베네수엘라 라라주에서 1967년에 설립된 <쎄꼬쎄쏠라>는 가장 가난한 지역에 사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협동조합을 만들 돈을 매달 적립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를 조직했을 떄 시작되었다.

거의 60년이 흐른 후 이제 <쎄꼬쎄쏠라>는 대단히 다양한 기획들을 조직한다. <쎄꼬쎄쏠라>는 일주일마다 만 명의 사람들에게 재화를 제공하는 대도시 상품시장들에 800톤의 채소들을 제공하기 위해 농부들과 함께 일한다. <쎄꼬쎄쏠라>의 보건의료서비스는 많은 전문 분야와 외과를 포함해서 연간 25만 명의 환자를 치료한다. <쎄꼬쎄쏠라>의 저축 대부 협동조합, 장례사업체 그리고 수십 개의 다른 조직들이 기존의 시장들보다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저소득층 가정에 편의를 제공한다.

협동조합들의 시장성과가 인상적일지라도 가장 의미 있는 성취는 내부 업무 문화와 아래로부터의 지원이다. <쎄꼬쎄쏠라>는 천오백 명의 조합원들의 신뢰와 참여를 기반으로 비위계적인 평등한 문화를 주도한다. <쎄꼬쎄쏠라>의 성공은 사회적 신뢰 구축하기, 책임감 및 개인적인 자기 개선에 충실히 전념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50년 넘게 <쎄꼬쎄쏠라>의 조합원인 구스타보 쌀라스(Gustavo Sala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멋진 사업들을 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 방식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일을 합니다. 우리는 윤리적 가치를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하는 교육과정에 집중합니다.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우리가 노동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사업상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필요 없습니다.”

2022년에 <쎄꼬쎄쏠라>는 그동안 쌓은 업적들을 인정받아 <올바른 생계수단 상>를 수상했다. 사회변화를 선도하는 리더십을 예우하는 그 상은 ‘이윤 추구 경제에 대한 탄탄한 대안으로서 공정하고 협력적인 경제모델을 확립’하는 데서 모범적인 일을 한 <쎄꼬쎄쏠라>를 수상단체로 선정했다.(2022년 블로그 글을 참조하라.)

자본주의 시장 맥락 내부에서 어떻게 커머닝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해 최근에 나는 <커머닝의 프론티어>(에피소드 64)에서 쌀라스와 인터뷰를 했다.

작고한 동료인 질케 헬프리히(Silke Helfrich)와 나는 2019년 출판된 책 『자유롭고 공정하며 살아있는─커먼즈의 전복적 힘』(Free, Fair and Alive: The Insurgent Power of the Commons)—에서 시장 시스템 내부에서 커머닝을 하면서 ‘시장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쎄꼬쎄쏠라>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우리는 협력과 윤리적 참여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이 어떻게 강력하게 효과적인 대규모 노동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매료되었다.

<쎄꼬쎄쏠라>는 가격과 아래로부터의 지원이라는 측면에서는 시장에 참여하는 기존의 사업체들보다 더 뛰어난 실행력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조합원들에게 인간미 있고 공평하며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제공한다. 이 단체의 (스페인어로 된) 슬로건 ‘Construyendo confianza en la diversidad’은 ‘다양성을 통해 신뢰 구축하기’로 옮겨진다.

쌀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경제적 목표나 계획을 가지고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육과정에 집중하며 성장합니다···. 신뢰는 창발적인 현상입니다.” <쎄꼬쎄쏠라>는 경쟁을 협력으로, 효율을 회복탄력성으로, 단기적인 생각을 지속가능성으로 그리고 이익 중심의 접근법들을 욕구 중심의 전망으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쎄꼬쎄쏠라>에서 이루어지는 권한의 철저한 탈중심화는 사회적 결속으로 균형을 잡는다. 그 결과로 매우 창조적이고 유연한 대규모 팀이 생겼다. 조합원들은 생산 현실, 경제적 압박 및 고객들에 관한 최고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교육을 받는데, 그 정보의 도움으로 협동조합들이 재빨리 그리고 전략적으로 반응한다. 조합원들은 때때로 연합 내부에서 다른 자리로 이동하여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전체 사업에 대한 더 넓은 인식을 갖춘다.

이 문화 덕분에 <쎄꼬쎄쏠라>는 지난 몇십 년에 걸쳐서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몇몇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혼란을 타개할 수 있었다.

외부 공급 업체들 사이에서만 아니라 <쎄꼬쎄쏠라>의 공급자들과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물론 화폐교환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것을 시장에서처럼 경험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거래하는 사고방식이나 경쟁적인 태도가 없다. 최우선 사항은 모든 사람의 개인적 성장, 책임 있는 판단, 윤리적 관계 및 집단에의 헌신을 장려하는 것이다.

어떻게 <쎄꼬쎄쏠라>는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그토록 양심적으로 커머닝을 추구하는가? 두 가지 설명이 주어졌다. “우리는 재산을 폐지하지 않고 재산을 지양한다.”[주석1] 이것은 사유재산권이 다른 모든 권리를 능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업상의 우선순위를 내세우지 않는 사업체이다.”[주석2] 이것은 전인적인 욕구와 인간성에 주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쎄꼬쎄쏠라>의 경험을 접한 질케와 나는 보다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커머닝의 중요한 패턴, 즉 ‘상업과 커머닝을 구별하기’라는 패턴을 포착하는 데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쎄꼬쎄쏠라> 조합원들은 농부들 및 다른 공급자들과 가격을 놓고 흥정하지 않는다. <쎄꼬쎄쏠라>는 그들에게 실제 비용과 그들이 살아가는 데 어느 정도가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적 관심사와 비용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핵심은 아니다. 핵심은 장기간에 걸친 관계의 맥락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공정한지에 관해 논의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채소들은 모든 생산물에 대해서 개별 가격이 아니라 킬로그램 당 평균 가격으로 팔린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기존 대형마트의 대략 절반 가격에 채소를 구입할 수 있다.

<쎄꼬쎄쏠라>는 외부 도매업자들, 유통업자들, 중간관리자들, 마케팅 등과 같은 데 들어가는 간접적인 비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재정과 업무방식에서 상당히 더 자유롭다. <쎄꼬쎄쏠라>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노동자들보다 조합원들에게 두 배의 보수를 지급할 수 있으면서도, 대부분의 사업체들보다 실질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가격을 설정할 수 있다. <쎄꼬쎄쏠라>의 조합원들은 <쎄꼬쎄쏠라>의 노동 문화를 심화하기 위해 나흘이 아닌 사흘만 일하기로 최근에 결정을 내려서 나머지 하루를 내부 회의에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쎄꼬쎄쏠라>에 관하여 구스타보 쌀라스와 나눈 인터뷰 내용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쎄꼬쎄쏠라>에 관한 추가 정보는 다음의 유튜브 동영상들—구스타보 쌀라스와의 인터뷰2022년 <쎄꼬쎼솔라에> 주어진 <올바른 생계수단 상> 수상식—을 참조하라. 또한 글로서는 커머닝의 패턴들(Patterns of Commoning)에서 <쎄꼬쎄쏠라> 회원들과 한 인터뷰 및 <쎄꼬쎄쏠라>의 철학과 실천들에 관하여 쓴 <쎄꼬쎄쏠라>의 2010년 에세이집단적 정신을 향하여 ? 형식적 회의에서 조우의 공간’으(“Toward a Collective Mind? Transforming Meetings into Get-Togethers”)도 흥미롭다.

주석1: [옮긴이] 이 문장은 핼프리히가 <쎄꼬쎄쏠라>의 몇몇 조합원들과 나눈 인터뷰에 나온 것이다. 이 인터뷰는 https://www.boell.de/en/2016/01/21/venezuela-we-are-one-big-conversation에서 볼 수 있다.

주석2: [옮긴이] 이 문장은 볼리어가 인용부호 안에 넣었지만, 어디서 인용한 것인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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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설명: 볼리어의 글의 맨 마지막에 언급된 에세이 “Toward a Collective Mind? Transforming Meetings into Get-Togethers”의 한 절인 ‘From meetings to get-togethers’를 우리말로 옮겨서 부록으로 추가한다. 원래 볼리어가 링크를 단 영어 텍스트를 저본으로 해서 초벌 옮김을 했는데 군데군데 애매한 대목들이 있어서 고민하다가, 쎄꼬쎄쏠라 홈페이지에 독어본도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어본을 참조하여 여러 애매한 대목들을 수정했다. 부록은 정백수가 옮겼다. ] [추가 설명: 이미 게시한 후에 아마도 번역본이 아니라 원본일 것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어본을 발견했으며 이를 참조하여 ‘함께하는 자리’를 ‘조우의 공간'(espacios de encuentro)으로 고치는 등 몇 군데 수정을 했다.]

 

‘형식적 회의’에서 ‘조우의 공간’으로

 

요약하자면, 지난 40년 동안 <쎄꼬쎄쏠라>의 회의의 목적과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처음에 우리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보이는 기성의 패턴을 따라갔다. 해마다 열리는 총회가 있고 연합 소속 조합들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중앙운영위원회가 있었으며 노동자의 참여는 없었다. 진행자가 회의를 이끌었으며 이미 결정된 의제를 다루었다. 의사결정이 회의의 주된 존재 이유였으며 대부분의 합의에는 이미 정해진 정족수에 따른 다수결 절차가 필요했다. 참석하지 못한 사람이나 합의사항에 반대하는 사람은 다음 회의에 참여하여 투표할 권리가 없으면 수정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회의는 내적 권력투쟁의 무대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전적으로 논리적이고 정상적인 듯 보였던 방식의 회의였다. 우리의 문화적 풍토를 구성하는 불신, 소외, 위계적 구조에 맞추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쎄꼬쎄쏠라>에의 참여를 개선하기 위한 첫 시도들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내용보다는 형태의 변화에 더 집중되었다. 우리는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연합에 참여하는 각 협동조합에 회의와 간부진을 도입하고 노동자 대표들의 참여를 허용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위계적 구조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장례 사업에는 계속해서 조합장을 두었다. 간부진이 각 조직의 수뇌부를 이루었다. 총회가 언제나 최고의 힘을 가진 회의였으며 전통적인 격식 아래에서 기능했고 내부 권력투쟁의 무대 역할을 했다. 회의의 일차적 이유는 늘 다수결에 의한 결정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참여의 공간들이 전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미리 정해져 있었다.

지금 되돌이켜 보면, 버스협동조합의 경험이 우리의 과정에서 전환점을 이루었다.[주석3] 이 경험은 우리 조직의 변형을 가속화했으며 우리 회의의 심대한 변화의 출발점을 이루었다.

열린 직접적 참여를 제한하는 격식들이 점차 제거되었다. 동시에 우리의 회의들은 새로운 특징과 내용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들은 처음 단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제한으로 가득했던 우리의 처음의 회의들은 참여에 열려 있는 ‘조우하는 공간’이 되었다. 정해진 구조가 없고 미리 짜놓은 계획이 없는 공간이었다. 모두가 함께 모이는 순간 내용과 형식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회의들을 각기 다른 구체적인 측면을 내용으로 다루지만, 모든 회의 뒤에는 유대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서로 존중하려는 노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의사결정이 모이는 주된 이유가 더 이상 아니다. 정보교환과 공동의 성찰에 중점이 두어진다. 중요한 것은, 유대와 신뢰의 구축, 전체를 보는 비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그리고 개인과 조직의 변형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우는 경계가 없는 ‘우리’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기회가 된다.여기서 ‘우리’란 또한 공유된 기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듦을 의미한다. 이 기준은 우리의 현실이 변하고 우리가 성찰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변형함에 따라 우리의 합의에 의해 변경되는 유연한 기준이다. 이 공동의 기준으로 인해 모두가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것이 쉬워진다.

이제는 결정을 내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간부회의, 조합장 혹은 감독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희의체들이 또 하나의 지도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발전이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가 모일 때 의사결정을 하겠지만, 그때그때의 일상적으로 내려지게 마련인 결정에 대해 모든 개인이나 그룹이 공동 기준을 토대로 하여 책임을 질 것이다.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이 똑같이 책임을 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사항이 발생시키는 재정적 손실을 감당하는 것도 이 책임에 포함된다.

우리는 모두가 참여하고, 회의에서 합의에 의해 생기는 집단적 기준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모든 개인 혹은 회의체는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고 또 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결과를 감당함으로써 전체를 보는 윤리적 인간이 되며, 그렇게 해서 개인과 조직을 변형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게는 합의가 만장일치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만장일치가 이루어지려면 어떤 그룹이나 조직의 구성원들 전부가 출석해야 한다. 만장일치란 모두가 찬성하는 표결이다.

우리의 경우, 결정은 ‘우리’가 어떤 시점에서 공유하는 기준을 따를 때 합의된 결정이 된다. 결정을 개인이 내리느냐, 비공식적 그룹이 내리느냐, 공식 회의체가 내리느냐는 상관없다. 따라서 미처 개선할 시간이 없는 경우말고는 확정된 의결이란 없다. 항상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존재한다. 만일 누군가가 동의하지 않거나 결정이 이루어질 때 개인주의적인 기준이 우세했다는 견해를 낸다면, 모든 것이 언제라도 새롭게 다루어질 수 있다.

이런 의사결정 방식은 분명 무질서와 실수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때로 중대한 경제적 손실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능력과 창조적 잠재력의 발전을 제한하는 문화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발생하는 모든 유연성과 역동성에 의해서 모든 경제적 손실은 몇 배로 보상된다.

오늘날 우리는 애처롭게도 쓸데없이 내부 권력투쟁을 벌이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체를 보는 윤리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은 위계적 관계에 갇히지 않고, 사람들의 이른바 참여를 규정한다는 미로 같은 의회적 규칙들에 갇히지 않는다. 이 규칙들은 불신에 기반을 두며, 결국 실질적인 참여를 방해할 뿐이다.

시간이 가면서 대의(代議)와 대표 모델은 책임 있고 직접적이며 일상적인 참여로 대체되었다. 회의는 참여하고 싶어 하는 누구에게나 제한이 없이 열려 있는 공간이 되었다. 논의의 주제들에 대한 제한도 없다. 표결로 결정하는 과정도 없다. 모든 구성원이나 회의체는 공동의 기준에 기반을 두고 내린 결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의결 정족수는 효력을 잃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미친 짓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안다. 우리가 존중과 유대에 기반을 둔 공존을 심화시킬 때,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제공하는 저 경직된 조직형태의 미로에 갇힌 에너지를 해방시킬 때 전체가 잘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우리 버스들이 압수되었던 기간 동안 우리가 충분히 경험했던 그 유대의 힘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 힘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그런 힘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대면하게 되는 모든 난관, 장애, 좌절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그 힘을 체험하기 때문이다.[주석4]

주석3: [옮긴이]  <쎄꼬쎄쏠라>는 1976년에 공동체 전체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버스운행 사업을 시작하면서 조합원들의 이익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로 열린 협동조합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쎄꼬쎄쏠라>는 버스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서 지방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하는 집회들을 열게 되는데, 지방정부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1980년 3월에 <쎄꼬쎄쏠라>의 버스협동조합의 버스들을 압수한다. 조합원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등의 어려움 속에서 남은 조합원들이 이에 맞서 싸우면서 <쎄꼬쎄쏠라>는 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바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게 된다.

주석4:[옮긴이]  이 글의 다른 곳에서는 이 힘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만일 우리가 그것을 가부장적인 권력 축적 논리에 가둔다면 사라지는 그러한 힘이다. 우리가 은행에 모아놓은 돈처럼 필요할 때 쓰려고 유대를 축적하려 한다면, 이는 유대의 본질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지평선이 우리가 보고 즐길 때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붙잡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커먼즈 이행과 P2P (6) (完)


  • 저자  :  미셸 바우엔스(Michel Bauwens), 바실리스 코스타키스(Vasilis Kostakis), 스따꼬 뜨론꼬소(Stacco Troncoso), 안 마리에 우뜨라뗄(Ann Marie Utratel)
  • 원문 : “Commons Transition and P2P : a Primer” (2017.5.9)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옮긴이 : 정백수
  • 다음은 이 글의 4장의 일부와 5장의 거의 전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시리즈는 이로써 완결된다. 

 

전략 : 열린 협동조합주의 생성 경제를 양성하는 여섯 가지 전략

우리가 우버와 에어비앤비의 대여경제를 명실상부한 공유경제로 변형할 수 있는가?

페이스북. 구글, 우버, 그리고 에어비앤비와 같은 플랫폼들에서 보이는, 중앙집중화된 네트워크 데이터를 장악하는 디지털 봉건주의가 불안정성의 편재성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노동운동이 쟁취한 것을 탈규제화하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해결책들이 있다.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매개하는 정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디지털 플랫폼들의 소유와 거버넌스를 민주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열린 협동조합주의는 커먼즈 기반 피어생산과 협동조합 운동 사이의 상승작용을 탐구하여, 커먼즈를 활발하게 공동창출하면서 커머너들에게 생계를 제공하는 경쾌하고 복원력 있는 경제 조직들을 창출하고자 한다.

1. 풍요를 인정하기

폐쇄된 사업모델들은 인위적 희소성에 기반을 둔다. 열린 협동조합들은 디지털 형태로 공유 가능한 지식이 보여주는 자연적 풍요를 인정하고 그것을 초국적으로 공유한다.

2. 기여의 다양성

열린 협동조합들은 분업이나 전문화를 강제하지 않고 역동적이고 유연한 참여를 위한 도구들을 제공한다. 열린 협동조합들은 공개 가치 회계(open value accounting)(([옮긴이] 이 시리즈의 앞글에서는 그냥 ‘공개 회계’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공개’는 ‘open’을 옮긴 것으로서, 회계의 내용을 사회에 공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계의 내용 자체가 ‘모든 유형의 가치에 열려 있다’는 의미이다. ‘열린 협동조합’의 ‘열린’도 마찬가지의 의미로서 모든 참여에 열려있다는 의미이다.))를 사용하여 경제적 가치사슬에서 모든 유형의 기여에 권리를 부여한다.

3. 공정하고 상호적인 분배

카피레프트 라이선스는 초국적 기업들로 하여금 커먼즈의 콘텐츠를 상업화하는 것을 허용하며 협동조합들과 사회연대기업들을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는다. 카피페어 라이선스는 완전한 공유를 유지하고 영리 기업들로부터 상호성에 입각한 응답을 요구하는 동시에 커머너들에게 콘텐츠를 자본화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커머너들의 경제적 복원력을 강화한다.

4. 지속 가능성을 위한 오픈 디자인

영리 기업들의 폐쇄된 디자인들과 광포한 상업화 및 계획된 노후화 욕구와는 반대로 커먼즈에서의 제조는 모듈성(modularity),(([옮긴이] 모듈성이란 어떤 체계의 구성요소들이 해체되고 재조립될 수 있는 정도를 가리킨다. 모듈성이 높으면 문제가 생긴 부품을 교체해가면서 전체 체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즉 복원력이 강화된다. 모듈성이 낮으면 특정 부품의 문제만으로 전체 체계를 폐기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구성, 맞춤성(customization)에 맞추어져 있다.

5. 폐기물의 감소

자본주의의 ‘초록’ 사업체의 불투명성과는 반대로 열린 협동조합들은 그 생산과 관련하여 완전히 투명하다. 이 투명성은 열린 협동조합들로 하여금 실제 조건에의 최대의 적응성을 위해 생산을 서로 조정할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자본의 요구에 맞추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적 욕구에 맞추어진 네트워크화된 생산이 이루어진다.

6. 물리적 기반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비영리 공동작업이나 승차공유가 유휴 자원을 연결시키고 공유하는 여러 방식들 가운데 속한다. 공동소유와 공동 거버넌스는 공유된 데이터나 제조 시설들과 같은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진정한 공유경제의 창출을 촉진할 수 있다.

 

전략 : A에서 B까지단계별 커먼즈 이행 전략

이 커먼즈 지향적 네트워크들과 그들의 지역 회의소들―정치적 성격의 것이든 경제적 성격의 것이든―은 디지털 네트워크들의 광범한 보급 덕분에 전지구적 수준에서 서로 알아보고 더 높은 복잡성의 수준에서 조직하기 시작할 수 있다. 목표는 모든 수준에서의 지속적인 연결작업을 통해서 ‘대항 헤게모니적’인 힘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힘이 체제 차원의 변화를 낳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의 파괴적인 힘과 자본에 의한 지구 및 지구민 약탈에 맞설 수 있는 수준에서 변화를 가져올 힘이다.

다음의 (경제적, 정치적) 전략들은 순차적인 것이 아니다. 커머너들은 정치적 힘을 모으면서 동시에 경제적 힘을 구축해야 한다.

목표 1/ 경제적 전략

이윤극대화를 노리는 기업들의 추출 활동에 맞서고 부를 커먼즈 및 커먼즈와 연합한 경제적 조직들에게 재분배하기.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통하여 달성된다.

· 디지털 자원(지식 커먼즈,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을, 더 나아가 물리적 자원(공유된 제조용 기계들)을 공동으로 사용하기. 우리는 가능한 모든 곳에서 모으기(pooling)를 해야 한다.

· 생산 공동체들의 생계를 창출하기 위해서 커머너들에 의한 그리고 커머너들을 위한 경제 조직들을 만들기. 우리는 열린 협동조합들을 필요로 한다.

· 이 경제 조직들은 자본주의적 기업들에 의한 가치 포획을 막기 위해서 커먼즈 기반 상호성 라이선스제도를 사용한다. 우리는 카피페어를 필요로 한다.

· 열린 협동조합들은 공동체들을 위한 소득을 창출하는, 참여가 열려있는 사업 생태계들에서 조직된다. 우리는 커먼즈 지향적 기업가 연합들을 필요로 한다.

목표 2/ 정치적 전략

도시, 지역(regional), 전지구적 수준에서 대항권력을 구축하기. 이는 다음에 의해 달성된다.

· 커먼즈를 구축하고 커머너들을 위한 생계를 창출하는 커먼즈 지향적 기업들에 발언권을 부여하는 지역(local) 제도들을 창출하기. 우리는 커먼즈 회의소를 필요로 한다.

· 지역의 혹은 친연성에 기반을 둔 시민 및 커머너 연합조직들을 창출하기,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공통재에 기여하거나 그것을 유지하거나 그것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한데 모으기. 우리는 커먼즈 의회를 필요로 한다.

· 이미 존재하는 커먼즈 지향적 기업들을 연결하는 전지구적 연합을 창출하여 서로 배울 수 있고 집단적 목소리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하기. 우리는 커먼즈 지향적 기업가 연합을 필요로 한다.

· 커먼즈라는 결속 요소를 중심으로 정당들―해적당들, 녹색당들, 신좌파―사이의 전지구적· 지역적 연합조직을 창출하기. 우리는 공통의 (커먼즈) 토론 어젠다를 필요로 한다.

목표는 분명하고 요소들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언제 이 커먼즈 이행이 일어날까’라는 문제는 남아있다. 남은 절은 이 문제를 다룬다.

5. 커먼즈 이행은 언제 시작되나?

우리가 보았듯이 복지국가의 공동화(空洞化)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정당 및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을 증가시켰다. 한쪽 극단에서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분석들과 ‘타자’―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하고 가장 적은 권리를 가진 사람들, 주로 난민들과 주변화된 집단들―의 악마화를 제공함으로써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극우 내러티브들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다른 한편, 제대로 소생하지 못하고 있는 좌파는 그 잠재적 해결책들 가운데 다수가 (관료주의의 과잉 때문이든 제도적 봉쇄 때문이든 아니면 단지 민중의 지지의 결여 때문이든) 작동될 수 없는 것임이 판명되는 것을 보았다. 그러는 동안 우리 시대의 제도적 위기들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의 세계체제는 또한 심대하게 반(反)생산적인 논리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유한한 자원의 한계 내에서의 무한한 성장에 기반을 두는 이 체제는 제한된 물질세계에서의 풍요로움이라는 잘못된 개념에 의해 가능하게 되었다. 두 번째 잘못된 개념인, 무한한 비물질 세계에서의 희소성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혁신에 가해지는 법적·사회적 제한―저작권, 특허 등의 사용―을 낳았다. 이 잘못된 원칙들을 전복시키는 것이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우리는 자연 자원들의 양이 정말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우리의 물리적 경제를 이러한 인식에 입각시켜서 지속 가능한 정상상태(定常狀態) 경제를 달성하는 동시에 저작권 등 제한을 가하는 제도들을 개혁함으로써 자유롭고 창조적인 협력을 촉진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 대략 20억 명의 사람들의 생계가 일정 형태의 커먼즈에 의존하고 있는데, 아직 이 커먼즈들 가운데 다수가 보호되지 못하고 취약한 상태로, 사유화와 판매의 위험에 처한 상태로 남아있다. 다른 한편 공유된 자원을 온라인으로 공동창출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도 이와 비슷한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잠재적으로 광범한 친연 네트워크들은 공동의 정체성 표식이나 통일적인 비전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커머닝 논리를 전체를 관통하는 요소로서 인식하고 있다. 어떻게 상호인식의 감각을 창출할 것인가?

우리는 사회 전체에 열려있는 참여를 촉진하고 정치적 결정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환경이 필요로 하는 것을 시장이나 관료제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우선시하는 과정을 지칭하기 위해서 ‘커먼즈 이행’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새로운 커먼즈의 창출과 함께 기존의 커먼즈들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 쐐기돌 역할을 한다. 커먼즈 이행은 또한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 내에 예시적이고 커먼즈 중심적인 경제를 창출하여 커머너들이 타륜을 잡고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커먼즈를 지지하고, 생성적이고 윤리적인 시장을 지지하며, 가치의 사회적 생산인 ‘커머닝’을 가능하게 하고 강화시키는 국가의 발전을 지지하는 세력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새로운 경제를 창조하는 예시적 세력 사이의 상승작용을 발견하고 이 세력의 정치적 표현방법들을 발견하며 이 세력으로 하여금 다른 해방적인 사회·정치 세력과 함께 정치적 수준에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 세기들의 고전적인 좌파 내러티브들과는 다른 광범한 사회적 이행은 커먼즈 이행의 통합적 전략을 통해 가능하다. 이 전략이 왜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

역사는 정치 혁명들이 힘의 심층적인 재편에 선행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보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운동들 혹은 계급들 및 그들의 실천이 그들의 힘과 양태들을 지배적으로 만드는 사회혁명에 선행하는 것이다. 이는 커먼즈 이행이라는 생각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현재의 이행국면의 최전선에서 역사적 주체의 기층을 이룰 수 있는 점증하는 수의 커머너들이 보여주는 예시적 실존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데이터가 있다. 이는 매우 강력한 출발점이다.

밀레니엄 세대 및 포스트밀레니엄 세대의 문화적 기대가 변하고 있으며 의미 있는 참여 및 일에 대한 이들의 요구가 현재의 체제에 의해서는 거의 충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요인이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의 노동의 불안정화가 대안들의 추구를 추동하며, P2P 자기조직화 및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태도가 가진 문화적 힘이 커먼즈 지향적 네트워크들과 공동체들의 성장에 연료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커먼즈 기반 피어생산은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의 맥락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이다. 지적 재산에 의해 추동되는 현재의 사유화체제에서 지속 가능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속 가능한 생산에 필요한 열역학적 효율성은 커먼즈 중심 경제에 내재한 원칙들의 체계적 적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표어는 ‘자유롭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이다. 이 세 상호연관된 요소들은 더 합리적인 경제와 정치체로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문화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것은, 이제 신자유주의 자체의 위기를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하는 좌파 자체의 위기는 인간 해방과 지속 가능한 삶의 세계를 목표로 하는 세력의 전략적 사고를 갱신할 강력한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이상의 모든 것이 다양한 양태의 커먼즈 중심적 이행을 위한 전략을 구성하며,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긍정적 방법과 커먼즈에 영향을 받는 세대들의 새로운 요구에 응할 방법을 제공한다. 커먼즈가 그리고 새로운 가치 체제의 예시적 형태들이 이미 존재한다. 커머너들이 이미 이곳에 존재하며 이미 커머닝을 행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커먼즈 이행이 시작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