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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전쟁범죄들

 


  • 저자  : Noam Chomsky
  • 원문 : Noam Chomsky – The Crimes of U.S. Presidents https://www.youtube.com/watch?v=5BXtgq0Nhsc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2003년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촘스키가 한 대담에서 2차 대전 후 미국 대통령들의 저지른, 전쟁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죽 열거하는 부분(유튜브 동영상)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질문자가 누군지는 동영상의 정보에 들어있지 않다. 처음에 ‘뉘른베르크 원칙’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데, 뉘른베르크 원칙은 전쟁범죄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결정하는 일단의 가이드라인들이다. 이 원칙들은 2차 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정의궁에서 진행된 나치당원들의 재판의 기저에 깔려있는 법적 원칙들을 법제화하기 위해 유엔의 국제법위원회에 의해 작성되었다. ‘뉘른베르크 원칙’의 제6원칙은 다음과 같다. 

    제6원칙 : 아래의 범죄는 국제법상의 범죄로 처벌된다.

    (a) 평화에 반한 범죄
    (1) 침략전쟁(a war of aggression) 또는 국제조약, 합의 또는 확약에 위반되는 전쟁을 계획, 준비, 개시, 수해하는 행위
    (2) 앞의 (1)에 언급된 행위의 완성을 위하여 공동의 계획 또는 음모에 가담하는 행위
    (b) 전쟁 범죄
    목적을 불문하고 점령지의 민간인에 대한 살인, 학대 또는 노예노동을 위한 강제이주, 전쟁포로의 살인 또는 학대, 공해상에서의 민간인의 살인 또는 학대, 인질의 살해, 공공 재산 또는 사유재산의 약탈, 도시 또는 촌락의 무분별한 파괴 또는 군사적으로 불필요한 초토화 행위를 포함하여 전쟁법과 전쟁 관습을 위반하는 여타 행위
    (c) 인도에 반한 범죄
    평화에 반한 범죄 또는 여타 전쟁범죄의 일환으로 또는 그와 연결되어 민간인에게 저질러진 살인, 절멸, 노예화, 강제이주 및 여타 비인도적 행위 또는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이유에 기인한 박해
    이상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udfks7&logNo=220136045897&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참조.

 


문: 진행자) 
뉘른베르크 원칙에 따르면 2차 대전 후의 대통령들이 범죄자일 수 있다고 말하셨는데요?
답: 촘스키)
십중팔구 맞습니다.

문)
어떤 죄를 지었는지 빨리 살펴볼까요?
답)
아이젠하워는 이란의 보수적인 민족주의 정부를 군사쿠데타로 전복시켰습니다. 그는 과테말라의 처음이자 마지막 민주정부를 군사쿠테타와 침공으로 전복시켰습니다. 이란에서는 그 결과로 25년 동안의 잔인한 독재가 들어섰고 79년에 결국 전복되었습니다. 과테말라에서는 그 결과로 대대적인 악행이 저질러졌으며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알려진 일입니다만, 인도네시아에서 그는 쿠바와 니카라과 때까지 전후 시기의 주요 비밀테러공작을 실행했습니다. 이는 인도네시아를 분열시키고 대부분의 자원이 몰려있는 외곽의 섬들을 탈취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당시에 위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인도네시아가 민주화될 가능성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매우 자유롭고 개방되어 있어서 빈자의 정당이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입지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이젠하워는 외곽의 섬들에서 군사반란을 지원하고 부추겼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소되어야 할 범법들입니다.

문)
케네디는 어떤가요?
답)
케네디는 최악의 대통령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장 먼저 거론할 것은 월남 침공입니다. 그 이전에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1954년에 정치적 화해를 봉쇄하고 라틴아메리카 스타일의 테러 국가를 수립한 바 있는데, 이 테러 국가가 아이젠하워 임기 말에 6만 혹은 7만 명쯤 되는 사람들을 살해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이 일었는데 케네디가 이해하기로 이 반응은 내적으로 통제될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침공했던 것입니다. 1962년에 남부에서 수행된 폭격의 3분의 1이 미공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정리자―공식 역사에서는 미군이 1964년 8월부터 개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월남 휘장을 단 미국 비행기들이고, 미국 조종사들이죠. 케네디는 네이팜탄을 승인했습니다. 그는 농작물을 파괴하는 데 화학무기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강제수용소나 다름없는 곳에 몰아넣는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정당한 이유 없는 침략이죠. 쿠바의 경우 그것은 대대적인 국제테러리즘 작전이었습니다. 이는 세계의 파멸을 가져올 뻔했고, 미사일 위기를 낳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기소되어야 할 범법들입니다.

문) 
존슨은요?
답)
존슨은 인도차이나에서의 전쟁을 확대하여 결국 3백만 혹은 4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침략하여 그곳에서 잠재적인 민주적 혁명으로 보였던 것을 봉쇄했으며 초기 단계에 있던 이스라엘의 중동지역 점령을 지지했습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전 세계를 돌며 사례들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터를 보세요.

문)
닉슨이 다음 순서입니다.
답)
닉슨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네요. 건너뛰어도 되겠어요.

문)
좋습니다. 그러면 포드는요?
답) 
포드는 대통령 자리에 얼마 안 있었지만,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략을 승인할 만큼 오래 머물러 있기는 했습니다. 동티모르는 현대 시기에 그 어떤 것 못지않게 대량학살에 근접한 것이 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동티모르 침략에 반대하는 척하면서도 비밀리에 지원했으며, 사실 그렇게 비밀스럽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침략 직후에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유엔 안보리에서 이 침략을 규탄하는 대열에 끼었지만, 모이니핸(Moynihan) 주 유엔 미국대사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설명해주기로는, 그가 받은 지시는 유엔이 침략에 반대하여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 일을 상당히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으며 그 다음 문장에서는 “그 다음 몇 달 동안 약 6만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다”고 말하고는 그 다음 주제로 넘어갔습니다. 그가 말한 “몇 달”이란 처음 몇 달을 말합니다. 살해당한 사람은 나중에 필시 수십만 명에 이르렀을 겁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무기의 보이콧을 선언했지만 비밀리에 무기공급을 증가시켰으며 여기에는 대(對)반란용 장비가 포함됩니다. 이로써 인도네시아의 침략이 정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으로 재직한 짧은 시기에 이런 일이 있어났으며 이는 사실 중대하게 기소되어야 할 큰 전쟁범죄입니다.

문)
카터는요?
답)
인도네시아의 악행들이 증가하면서(1978년에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카터는 인도네시아로 흘러들어가는 무기의 양을 증가시켰습니다. 의회에서 인권 관련 제한을 부과하여―그 당시 의회에 인권운동이 있었습니다― 고급 무기가 인도네시아로 유입되는 것을 봉쇄했을 때 카터는 부통령 먼데일을 통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미국의 스카이호크를 인도네시아에 보내서 대량학살에 가까운 사건으로 드러난 것(대략 인구의 4분의 1이 살해되었을 겁니다)을 완성하도록 했습니다.

중동에서 카터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최고의 성과는 캠프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greements)[1978년 9월 17일]입니다. 이 협정은 미국의 외교적 승리로서 제시됩니다만 사실 이 협정은 외교적 재난입니다. 캠프데이비드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1971년에 이집트가 한 제안을 마침내 받아들입니다. 이 제안은 1971년 당시에는 미국이 거부했는데 이제 이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포함했기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는 더 나쁜 것이었습니다. 큰 전쟁들, 악행들 등이 벌어진 후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1971년의 이집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카터는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세계 전체에 대한 원조의 50% 이상으로 올렸습니다. 이스라엘은 즉시 그 원조를 정신이 제대로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바로 그 방식으로, 즉 북쪽의 이웃을 공격하고(처음에는 1978년, 그 다음에는 1982년) 점령 지역의 통합성을 증가시키는 데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며, 우리는 계속 열거할 수 있습니다.

문)
레이건은요?
답)
이 사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듯합니다. 레이건은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의해서 무력의 불법적 사용(니카라과와의 전쟁에서 보인 국제테러리즘을 말합니다)으로 규탄을 받은 최초의 대통령입니다. 이것도 시작일 뿐입니다. 유엔 안보리도 두 개의 결의안에서 국제범죄의 규탄을 승인했는데, 둘 다에 대해 미국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문)
부시 1세는요?
답)
파나마 침공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파마나인들에 따르면 파나마 침공으로 약 3천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조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수치가 맞는지 아닌지 누가 알까요.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한 것은 그 최악의 악행들에 걸쳐서까지 미국이 지원해준 바 있는, 말 안 듣는 폭력배 노리에가를 납치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리에가는 플로리다로 데려와져서 대부분 CIA의 돈을 받고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이유 없는 침략에 해당됩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상세하게 말할 수도 있는데, 현실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외교적 타결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 타결을 고려하기를 거부했으며 언론도 단 하나의 예외인 롱 아일랜드의 <뉴스데이>(Newsday) 말고는 보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뉴스데이>는 전체를 속속들이 정확하게 보도했으며 미국에서 그렇게 한 유일한 신문입니다.

그래서 부시 행정부는 공격했으며 이 공격은 전시법 상으로 범죄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었습니다. 그들은 기반시설을 공격했습니다. 가령 누가 뉴욕시를 공격하면서 전력시스템, 하수시스템 등을 파괴한다면, 이는 생물학전이나 다름없습니다. 바로 이런 공격을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경제제재 체제가 옵니다. 이는 대부분 클린턴 때의 일이지만, 부시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적게 잡아도 수십만 명을 살해했습니다. 한편으로 사담 후세인을 강화시키면서 말입니다. 여기서 클린턴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시작이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렇게 죽 열거할 수 있는데, 그 한 사례로 충분합니다. 다른 사례들이 많습니다만.

문)
부시 2세는요?
답)
클린턴 이야기를 더 합시다. 클린턴의 사소한, 아주 사소한 탈선 가운데 하나는 크루즈 미사일 두세 개를 수단에 보내서 의약공장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을 파괴한 일입니다. 첩보상의 실패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접한 유일한 것인, 독일 대사와 수단에서 현장연구를 하는 근동재단(Near East Foundation)의 지역 책임자의 추산에 따르면, 한 방의 미사일 공격으로 수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심각합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그런 일을 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나쁜 짓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열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클린턴은 지난 유엔 결의안들이 (그의 행정부의 말로는) “낡고 시대착오적인” 것임을 선언함으로써 시작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더 이상 국제법은 없는 것이죠. 그런 다음에 평화프로세스라고 불리는 시기가 옵니다만 이 평화프로세스 동안 이스라엘인들의 정착―이는 미국의 납세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미국의 군사적 원조와 외교가 돕는 정착입니다―이 계속 증가했습니다. 극에 달한 때는 클린턴의 임기 마지막 해였습니다. 정착이 1992년 이래 최고 수준에 이르죠. 그러는 동안 점령 지역은 기반시설 프로젝트와 새로운 정착민을 갖춘 작은 지역들로 구획되었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부르는지를 모르겠는데, 여하튼 군사점령 아래 놓여있죠. 만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전쟁범죄라고 부를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싶은데··· [정리자―맨 마지막 말이 거의 들리지 않는데 자막 파일에는 ‘I don’t think we have to discuss.’(논할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부록>

[가장 극적으로 미국 민중의 뒤통수를 오바마가 빠진 것이 아쉬웠던 차에(2003년의 대담이라서 2009년에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빠질 수밖에 없다), 비록 국제범죄의 맥락은 아니고 다른 맥락에서지만 촘스키가 오바마를 거론한 짧은 동영상 Noam Chomsky on Why ‘Obama Sold Out Working People Within Two Years’을 발견했기에 여기 그 내용을 정리해서 부록으로 달아본다.]

===

[촘스키]
시기마다 다릅니다. 많이들 언급하는 60년대를 예로 들어봅시다. 시민권 운동 이후 이슈들은 많지만 당시 큰 이슈는 인도차이나 전쟁이었습니다. 당시에 인도차이나 전쟁에 항의하는 대중운동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60년대 말 2-3년 동안에는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자유주의적 언론이 존재하는, 필시 미국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인 도시일) 보스턴에서는 1966년에도 공개적 시위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도 학생들에 의해서 과격하게 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굉장하죠. 뭐라도 움직임을 일으키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67에 돌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에 엄청 커졌습니다. 불행히도 이 움직임은 70년대 초에 너무 일찍 사그라졌습니다. 물러나자마자 곧 반동이 잔뜩 몰려듭니다.

오바마의 경우에도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좌파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좌파에 속해있다는 것을 잊고는 ‘좋아, 여기 언변이 뛰어나고 놀라운 마케팅 기술을 가진 멋진 친구가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필시 기억하겠지만, 첫 선거에서 그는 ‘베스트 마케팅 캠프’ 상을 받았습니다. 어떻든 좌파는 자신들이 그의 멋진 말에 귀를 기울이고는 ’좋아, 우리는 그를 믿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2년 내에 오바마가 노동자들을 너무나도 완전하게 배반하여 좌파는 오바마를 포기해버렸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 2년 동안에 일이 잘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의회는 오바마 편이었는데, 빠진 것 하나가 좌파의 행동이었습니다. 만일 좌파가 행동했더라면 오바마와 민주당으로 하여금 멋진 말들의 일부라도 실현하도록 압박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압박을 거둬들이는 순간, 끝입니다. 이전의 상태로 바로 돌아갑니다. 이는 결코 해서는 안될 실수입니다.




오바마는 미국 민중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 저자  :  Michael Hudson
  • 원문 : Junk Economics :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 (2018)
  • 분류 : 일부 내용 정리
  • 옮긴이 : 정백수
  • 설명 :아래는 2015년 9월 21일 카운터펀치(CounterPunch) 라디오에서 방송된, 에릭 드레이처(Eric Draitser)와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의 인터뷰 중에서 오바마(Barack Obama)를 다루는 부분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마이클 허드슨의 저서 J is for Junk Economics: A Guide to Reality in an Age of Deception에도 수록되어 있다. 마이클은 ‘맑스주의 경제학자이고 맑스(그리고 맑스가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는 고전경제학)의 자본 이론에 기반을 두면서도―그는 한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정책입안자들에게 맑스의 『자본론』2권과 3권을 읽을 것을 권유하기도 할 정도이다―신자유주의가 미국 경제를 지배하게 되는 과정의 한 가운데를 거쳐 온 경력(체이스맨해튼 은행, 아서앤더슨 회계법인 등)으로 인해서 금융세력(월가)이 지배하는 미국 신자유주의의 실상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금융세력의 지배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의 가장 핵심적인 현실진단은,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의 속도를 능가하는 현재의 상태로는 미국의 경제가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부채탕감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그의 핵심적인 생각들을 기회가 되는 대로 소개할 생각인데, 우선 오바마 부분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그의 실제 정체와는 정반대로, 즉 ‘서민에게 잘 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매개되는 대의민주주의라는 환경에서 이러한 기만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허드슨은 오바마가 자기를 뽑아준 유권자들에게는 부채를 탕감해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실제로는 이 약속을 어기고 자신에게 돈을 대준 월가를 위해 일한 자임을 폭로한다. 허드슨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도 (물론 그 이유 가운데 일부겠지만) 이것과 연관짓는다. 힐러리가 ‘나는 오바마의 셋째 임기를 하겠다, 차악(the lesser evil, 덜 나쁜 후보자)인 나를 뽑아달라’라고 유권자들에게 말했는데, 유권자들은 실제 차악인 트럼프를 뽑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역사”(The History of Neoliberal Economics)라는 제목의 인터뷰의 말미에서 허드슨은 오바마를 이어받겠다는 힐러리가 차악이 아니라 “트럼프가 바로 차악이었음을 기억하세요”(Just remember that Trump was the lesser evil)라고 힘주어 반복한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맞붙은 대선에서 허드슨은 두 정당 모두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힐러리와 대선을 주제로 한 인터뷰에서 허드슨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정치와 선거는 지금 사유화되어 시장경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트럼프가 힐러리보다는 차악이라지만, 두 당이 근본적으로 똑같이 신자유주의에, 금융세력에게 포섭당한 상황에서 미국 민중은 과연 어디서 새로운 정치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상황은 과연 이것과 얼마나 다를까?

오바마가 루비노믹스 패거리를 위해 월가와 한통속으로서 한 선동가 역할

에릭 드레이처

2009년과 제너럴모터스의 붕괴를 돌이켜보면, 붕괴한 것은 제너럴모터스라는 자동차제조업이 아니었습니다. 그 금융 부문인 GMAC이 신용파산스왑(credit default swaps), 부채 담보부 증권(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기타 이와 유사한 금융파생상품들로 빚을 내었다가 붕괴했던 것이죠. 그래서 오바마가 들어와서 자신이 “제너럴모터스를 구했다”고 주장했을 때, 이는 사실과 달랐습니다. 그는 제너럴모터스의 월가 부문을 위했던 것이죠.

마이클 허드슨

맞습니다. 그는 월가를 위한 대통령 후보였고 클린턴의 재무부장관이었던 루빈(Robert Rubin)이 그를 밀어주었습니다. 미국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와 시티그룹(Citigroup)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드레이처

이는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 첫 5일 동안에 입증되었습니다. 그는 골드만삭스와 제이피모건(JP Morgan),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시티(Citi)의 CEO 등속을 초청했습니다. 이 내용은 책들, 『뉴요커』(The New Yorker)지 및 기타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바마는 이들에게 ‘내가 있으니 걱정마시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허드슨

써스킨드(Ron Suskind)가 이 일에 대해 썼습니다. 그는 오바마가 “당신들과 쇠스랑들[일반 국민을 건초 등을 집어올리는 쇠스랑에 비유한 것―정리자] 사이에는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그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라고 말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의 흔적은 백악관 웹싸이트에서 재빨리 지워졌지만, 써스킨드의 책에는 있습니다. 오바마가 세기의 대 선동가 가운데 하나로서 출현한 것입니다.

드레이처

그의 정책과 행동이 많은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행동이 필요했던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이 되었는데, 올바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월가가 원하는 바를 행했습니다. 그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과 구제금융 등을 옹호했습니다. 이는 민주당원들이 그들의 대화에서는 피하고자 하는 어떤 것입니다.

허드슨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이는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이중사고’(doublethink)에 기반을 둔 수사(修辭)입니다. 그는 ‘희망과 변화’의 후보로 출마했는데, 그가 실제로 한 역할을 희망을 부수고 변화를 막는 것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로 부채를 탕감하지 않고 그대로 놔둠으로써 그는 미국 경제의 파탄을 주관했습니다. 경제를 희생한대가로 은행, 증권소유자들이 구제되었습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거대 부동산 세력을 위해 지역 조직가로 일할 때에도 이와 유사한 짓을 해서 가난한 흑인 동네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역할은 그 지역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이루는 것이었고 고소득 흑인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재산가격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리츠커(Pritzker) 가는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래서 페니 프리츠커(Penny Pritzker)가 그를 루빈에게 소개했던 것입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에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미국의 31대 대통령)보다 왼쪽에 있는 민주당원들을 죄다 당에서 몰아내기 위해 루빈에게 자신의 내각을 임명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분명합니다. 오바마의 내각은 첫 수석보좌관은 사악한 반(反)노동론자 이매뉴얼(Rahm Emanuel, 현재 시카고의 시장입니다)이었습니다. 오바마는 민주당을 오른쪽으로 밀어붙였고, 공화당은 오바마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도 여전히 ‘차악’이 될 수 있는 큰 여지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자기는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Kucinich, 민주당에서 버니 쌘더스Bernie Sanders와 함께 가장 진보적으로 알려진 인물)가 찬성하는 것, 즉 단일보험자 건강보험(single payer healthcare program)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바마는 이에 맹렬히 반대했고 제약 및 건강보험 부문의 로비스트들을 밀어주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유권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의 편이라고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사실 그는 그의 선거운동에 돈을 댄 월가의 특정 세력을 옹호하고 있는데 말이죠.

드레이처

맞습니다. 말 그대로 오바마가 행동을 취한 모든 곳에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소위 오바마케어(이는 정말이지 보험업에는 큰 혜택이죠)를 옹호하는 것에서부터 교육의 사유화, 부동산 등에 이르기까지요. 말 그대로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오바마는 금융자본의 하인이지 민중의 하인이 아닙니다. 이것이 유권자들을 월가에 가져다 바치는 민주당의 현재의 실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