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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도시 커먼즈를 위한 아틀라스

 



 

왜 커먼즈가 도시 디자인과 건축에 관하여 생각하는 데 유용한 관점인가?

카네기 멜런 대학의 건축 및 어바니즘 전공 교수인 스테판 그루버(Stefan Gruber)는 도시들을 자본주의와 커먼즈 간의 주된 싸움 장소로, 동시에 일국의 정책 혹은 국제 정책이 시행되는 대부분의 곳들 보다 더 접근가능성이 있는 장소로 보고 있다.

그루버는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그리고 마누엘 카스뗄스(Manuel Castells) 같은 사상가들을 인용하며 “도시화의 역사는 산업화 및 자본주의와 복잡하게 얽혀있”으며 “도시들은 고도로 집중된 노동과 생산, 사회적 인프라, 교역, 금융 및 소비시장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시들이 자본주의 성장에 기여했을지라도 “줄곧 도시들은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예를 들어 불공평•자연환경•계급투쟁이 가장 눈에 띄게 발생하는 무대들이었다.” 따라서 그루버의 작업 대부분은, 어떻게 커먼즈가 때로는 공공부문과의 협력을 통하여 확대될 수 있는지를 배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자본주의와 커먼즈 간의 싸움이 발생하고 있는 도시 지역들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루버는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 ‘도시에서의 커머닝’에서 이 주제들을 탐구했는데 여기서 그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공정하고 재생성적이며 자기 결정력을 갖춘 공동체를 향하는 이행들이 어떻게 시장과 국가라는 패러다임 너머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살펴본다.

또한 그는 여섯 명의 공동 큐레이터들과 함께 주목할 만한 도시 커먼즈 기획들을 소개하는 <커머닝의 아틀라스: 집단적 생산의 공간들>(An Atlas of Commoning: Spaces of Collective Production)이라 불리는 순회 전시회[주석1]를 시작하는 것을 도왔다. 10년 간 전 세계를 순회하는 중인 <아틀라스>는 도시에서의 삶을 재발명하기 위해 참여행동, 커뮤니티 디자인 및 창조적인 커먼즈와 공공부문 사이의 협력을 활용하는 기획들의 시각자료를 모아놓는, 현재 진행형의 아카이브의 일부분이다. <아틀라스>는 독일의 문화단체 ifa(Institut für Auslandsbeziehungen, 대외관계 연구소)와의, 그리고 건축 및 어바니즘을 다루는 독일 잡지 ARCH+와의 협업이다.

며칠 후에 이 전시회는 그루지야의 트빌리시(Tbilisi)에서 큰 규모로 열릴 예정인데, 이 티빌리시는 “커먼즈라는 생각이 소비에트 집단주의의 역사적 유산들 및 전통적인 공동체적 실천들과 뒤얽혀 있고”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에는 급속한 도시화와 공적 공간들의 사유화가 일어난 장소이다. 따라서 요즘의 풀뿌리 기획들은 공동 공간들, 문화적 유산, 사회적 실천들 및 자연환경에 대한 (국가가 아닌) 모두가 가진 파수권을 되찾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아틀라스>의 야심찬 목표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우리’라는 열린 해방 공간을 되찾고 재정의하는 것이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존재로서 우리는 개인이면서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들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상호연결은 일정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로지 공동체적 삶에 복무하는 장소들을, 우리가 공통의 책임감을 의식하면서 함께 만드는 장소들을, 우리가 공동체를 현실로서 몸으로 겪는 장소들을 필요로 한다.

서문을 쓴 엘케 아우스 뎀 모레(Elke aus dem Moore)는 1990년대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이루어진 ‘파크 픽션’(Park Fiction)이라는 프로젝트를 언급한다. 이 프로젝트는 시민들에게 사진이나 단어로 미래 공원에 대한 자신들의 소망을 표현하도록 권고했다. 이 기획이 참여적 예술프로젝트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거주자들의 욕구와 욕망을 주장하기 위한, 마지막에는 특권을 가진 상업적 세력들의 계획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 되었다.

<커머닝의 프론티어>(에피소드 55)에서 나는 <아틀라스>에 관하여, 전 세계 도시들에서 커먼즈를 파수하는 특수한 과제들 및 그 주제에 대한 스테판 그루버의 철학적인 접근법에 관하여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루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건물들을 만들고 건물들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는 이 생각에 오랫동안 흥미를 가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집들, 동네들, 도시들이 우리의 경제적인 가치를 표현하는 것들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공간들 자체는 우리의 행복, 사회적 관계 그리고 또한 분명하게 지구의 행복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이 상호간의 관계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누구인가’가 실질적인 물음이 됩니다. 우리의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토지 소유자들, 개발자들 및 특권계층인가요? 혹은 건축이 기존 권력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관계를 재조정하는 데 있어서도 또 하나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우리가 계획세우기와 디자인을 민주화하기 시작할까요? 작고한 커먼즈 학자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이 종종 말했듯이, 현장의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가장 잘 해결하는 시민들을 어떻게 참여시킬까요?”

그루버는 사회운동들과 공동으로 개발된 공공주택의 새로운 형태들을 살펴보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루버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순수 예술 아카데미>(Academy of Fine Arts)에서 교수로 지낼 때, 1차 대전 후 대규모 사람들이 도시의 외곽으로 이주하여 땅을 점유해서 식량을 재배하고 그들 자신의 비공식 주택을 지었던, 이 도시의 역사에서 ‘붉은 빈’(Red Vienna)[주석2]이라 불리는 시기를 그는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그 시기의 경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생산한 건축자재들과 스웨트 이쿼티 노동(sweat-equity labor)[주석3]에 기초한 자기조직화된 대안 경제였다.

자신의 권위에 대한 정치적 위협을 알아차린 “비엔나 시정부는 대안으로서 자체적으로 시립 주택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정부는 자신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더 적정한 가격대의 효율적인 주택을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국가 권력의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자율적인 커머닝이 정치가들에게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자기조직화된 이주자 주택의 존재가 빈 시로 하여금 대단히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몰아붙였던 것이다.

1923년부터 1934년까지 사회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빈 시는 400개 주거단지에 6만 4천개의 새로운 주택 단위를 건설했다. 인구의 10분의 1가량 즉 20만 명이 대단히 저렴한 ‘사회적 주택’에 살았다. 오늘날 빈 시 전체 주택공급량의 무려 35퍼센트가 양질의 공공주택이다. (2023년에 빈 시의 주택을 다룬 <뉴욕 타임즈>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여졌다. “임차인의 유토피아를 상상해보라. 그것은 빈의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커머닝의 아틀라스』에 간단히 설명되어 있는, 커먼즈에서 영감을 받은 또 하나의 인상적인 주택 기획은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 있는 협동조합 주택인데, 이것은 정부지원과 (거주자들이 노동을 제공하는) 스웨트 이쿼티 방식의 건설공사를 결합시켰다.

주정부의 생각은 대량의 근대주의적 공공주택 사업들과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비공식 정착지 사이에서 실행 가능한 타협안을 찾는 것이었다. 주정부는 협동조합에 토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도 제공하여 사람들은 주택 협동조합에서 주택을 구입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주당 21시간 동안 건설 노동을 하는 것으로 계약금을 대신할 수 있었다. “이것 때문에 몬테비데오는 지난 30년 동안 수천 개의 협동조합 주택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소유권과 애착의 느낌을 더 크게 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공공주택이 아니라 사회적 주택이다.

사회 초년생일 때 그루버는 뉴욕 시의 서쪽에 있는 높은 지대에 위치하는 보행자 전용 공원인 하이 라인(The High Line)—이 공원은 지금 인기 있는 관광명소이다—을 디자인하는 일을 한 바 있다.[주석4] 그루버에 따르면, 하이 라인은 공공장소로서 엄청나게 성공을 했지만 “첼시 인근의 젠트리피케이션을 촉진시켰다.”

“이것이 나에게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문제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퇴거를 피하기 위해 그리고 소유권에 대한 훨씬 더 강력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도시가 전략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조치들을 취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문제들 또한 제기했습니다.”

그 경험은 그루버가 유명한 건축사무소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도시에서의 “건축의 역할에 관해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학계로 옮기는 데 기여했다. 커먼즈는 계속해서 진행 중인 이 연구와 성찰에서 분명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루버의 대학 강의 중 일부는 「좋은 디자인은 불가피하게 젠트리피케이션에 이르는가?」라는 제목이 붙은 ‘하이 라인’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지역 참여와 커먼즈와 공공부문의 협력을 실험하면서 그루버는 커먼즈에 큰 잠재성이 있음을 명확하게 본다. 이 비전을 진행시키기 위한 한 가지 전략은 많은 더 작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실험들—이것들은 너무 작고 주변적이어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도외시되고 있다—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커머닝의 아틀라스>는 전 세계의 이 많은 기획들을 서로 연결해서 미래의 이 대안 도시의 가능성의 윤곽을 잡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스테판 그루버와의 인터뷰 내용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2018년에 종이책으로 출간된 『커머닝의 아틀라스』는 품절되었지만 온라인 책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주석(모두 옮긴이 주석임)

1. 이 이름은 전시회 이름인 동시에 Arch Plus(ARCH+)가 2018년 7월 발행한 책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2. ‘붉은 빈’은 1918년에서 1934년 사이에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노동당(SDAP)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집권하고 있었던 시기를 일컫는 말이다.
3. 스웨트 이쿼티 노동(sweat-equity labor)이란 ‘땀’(sweat) 즉 노동이 전유의 지분(equity)이 되는 경우의 노동을 가리킨다.
4. 하이 라인(The High Line)은 뉴욕 시에 있는 길이 1마일(1.6 km)의 선형공원이다.




커먼즈로서의 도시

*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에 2015년 11월 14일자로 게시된 글 “The City as Commons: The Conferenc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글들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커먼즈로서의 도시

옮긴이 : 정백수

 

지난 주 이탈리아의 볼로냐에 매력적인 200여 명의 커머너들이 모인 걸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커먼즈 옹호의 새로운 주된 전선이 도시라는 집중점에 모였다고 선언해도 무방하다. 개최된 행사는 “커먼즈로서의 도시: 도시 공간, 공통재, 시 거버넌스를 다시 생각하기”(The City as a Commons: Reconceiving Urban Space, Common Goods and City Governance)라는 제목의 컨퍼런스(학술대회)였으며, 이 컨퍼런스는 랩겁(LabGov, LABoratory for the GOVernance of the Commons), 국제커먼즈연구협회(IASC, 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the Study of the Commons, ), 포드햄로스쿨 도시법 센터(Fordham Law School’s Urban Law Center), LUISS 로마법학교1에 의해 개최되었다.

 

여러 해에 걸쳐 여러 주목할 만한 도시커먼즈(urban commons) 기획들이 있었지만, 이 행사는 창조적 에너지, 사람들과 생각들의 다양성, 열정과 목적의식이 돋보였다.

 

볼로냐 시는 이 행사의 완벽한 주최자였다. 이 시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개척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역할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도시커먼즈를 위한 협동에 관한 조례>(Regulation on Collaboration for the Urban Commons)인데, 이 조례는 동네들과 시민들로 하여금 도시 공간들―텃밭(정원), 공원, 유치원, 낙서 청소―을 위한 자신들의 기획을 제안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 컨퍼런스를 매우 생동감 있는 것으로 만든 것은 세계 전역에서 온 커먼즈 혁신가들의 다양성 그 자체이다. 도시 퍼머컬처 농업가, 오래된 공항들을 메트로폴리스 커먼스로 전환시키는 것을 연구해온 연구자, 도시 개발의 모델인 ‘작은 가정 생태 마을’(tiny home eco-villages) 전문가, 한국의 협동적 도시 서울에서 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활동가들, 시리아의 이주자들이 피난처가 될 가정들을 이탈리아에서 찾는 것을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여 돕는 ‘유목적 커먼즈’를 서술하는 전문가 등등.

 

우리는 바르셀로나의 한 시 공무원으로부터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에 대한 발제를 들었다. 이는 시 정부가 움직이는 방식을 다시 만들려고 시도하는 시민 플랫폼으로서 사회 정의와 시민 참여에 강조를 두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 정부는 도시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비전의 일부로서, 에어비앤비(Airbnb)가 임대료를 올리고 튼실한 동네들을 공동(空洞)화시켜 밤을 새우는 관광객들을 위한 죽은 지대로 만든 이후에 에어비앤비를 금지시켰다.

 

브룩클린에 터를 둔 기획인 ‘596 에이커즈’(596 Acres)는 비어 있는 공공지의 거대한 목록을 만들어서 동네들이 일정한 땅을 공동체 텃밭, 오락, 학습을 위해 기능하는 커먼즈로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유비쿼터스 커먼즈’ 기획은 사람들이 수많은 장치들로부터 자신들이 생성하는 개인 데이터들이 특히 도시 맥락에서 사용되는 방식을 통제하는 것을 돕도록 고안된 본보기적인 법적/기술적 툴킷이다.

 

이 컨퍼런스가 국제커먼즈연구협회가 도시커먼즈를 다룬 제1회 주제 컨퍼런스였기 때문에, 꽤 많은 학자들, 특히 젊은 학자들이 참석했다. 따라서 자원으로서의 커먼즈와 관련된 전통적인 원칙을 적용하는 많은 학술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커먼즈 활동가 헬프리히(Silke Helfrich)와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략가인 에지오 만지니(Ezio Manzini)가 주목할 만한 기조발제를 했다. 헬프리히는 자신의 「2040년의 도시(골) 커먼즈를 상상하기」(“Imagining the (R)Urban Commons in 2040”)에서 커먼즈로서의 도시가 2040년에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자신의 전망을 피력했다.

 

대학 기반의 디자인 랩들의 네트워크인 ‘지속 가능성을 위한 사회적 혁신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 for Sustainability, DESIS)의 창립자 만지니는 또 하나의 생각 깊은 기조발제에서 도시들이 관계들의 세계로 간주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도시커먼즈는 “유동적인 형태들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커먼즈들을 실제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고정된 디자인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법, 이론, 도시 거버넌스에 대해 진지한 독서를 일정하게 하고 싶은 사람은 『예일 법 및 정책 평론』(Yale Law and Policy Review)에 곧 실릴 포스터(Sheila Foster)와 이아이오네(Christian Iaione) 공저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글은 커먼즈로서의 도시라는 생각을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개괄하고 있으며, 도시들을 위한 일련의 협동적·다중심적 거버넌스 전략들을 제안하고 있다.

 

바우엔스(Michel Bauwens)와 나는 ‘개방적 협동조합주의’와 특히 우버(Uber), 에어비엔비와 같은, 사회 공동체들을 착취만 하지 거기에 재투자하거나 혜택을 공유하지는 않는 ‘죽음의 별’ 플랫폼들2에 대항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모델들을 고안하려는 새로운 노력에 대해 단상에서 대담을 했다.

 

이 컨퍼런스가 아주 많은 에너지를 뿜어냈기에, 나는 미래에 도시커먼즈에 대해서 더 많은 기획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도시를 커먼즈로서 관리하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새롭고 더 집중된 대화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본다. 다행히도, 도시커먼즈를 다루는 국제커먼즈연구협회의 제2회 주제 컨퍼런스가 2017년으로 이미 계획되어 있다.

 

  1. http://www.luiss.edu/university [본문으로]
  2. ‘죽음의 별’(Death Star)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조그만 행성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이동 구조물이다. ‘Structure3C’(http://www.structure3c.com/phone/index.html)의 빌 존스턴(Bill Johnston)이 우버, 에어비앤비 등을 이 ‘죽음의 별’에 빗대었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