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디자인에서 공동주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 저자 : David Bollier
- 원문 : Taking Co-Living Seriously in Architecture & Design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루케아
- 설명 : 아래 글은 데이빗 볼리어의 홈페이지(https://www.bollier.org)의 2026년 8월 1일 게시글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블로그의 글들에는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다른 어떤 요인들보다도 급등하는 부동산 시장이 미국 주택을 인구의 상당 부분,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미국 주택의 상당수는 전통적인 핵가족을 위해 그리고 호화로운 편의시설을 찾는 고소득층 구매자들을 위해 디자인된다. 저소득층 및 중간 소득층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적정가격의 주택을 찾는 것 자체가 상당히 힘들다. 매력적인 공공 편의시설, 공유된 공간들을 갖추고 있는 그리고 이웃 간의 정과 소속감이 있는 주택을 원하는 것은 거의 유토피아적인 것처럼 보인다.
다행히도 많은 비주류 건축가들, 건축자들 및 도시계획 수립자들이 공유된 생활 방식에서 커다란 잠재성을 확인하고 있다. 협동조합과 계획적 공동체에서부터 공동주택과 코뮌(commune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유된 생활의 양태들이 있다. 공통의 목표는 주거생활을 더 유쾌하게 만들고 경제적으로 더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혁신적인 건축적, 사회적 디자인을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최근 팟캐스트<커머닝의 프론티어>(에피소드 78)에서 함께 살기의 사회적, 경제적 동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주목할 만한 두 건축가 니라지 바티아(Neeraj Bhatia)와 안체 슈타인뮐러(Antje Steinmüller)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의 작업은 건축•주택개발•도시정책을 연구하는, 비교적 도외시된 분야에 집중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설명하듯이, 커머닝은 이 간과된 주택부문을 확장하는 데 강력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니라지 바티아는 캘리포니아 예술 대학에서 샌프란시스코 건축가이자 도시 디자이너로서 여러 해를 보냈다. 그의 연구—그 대부분이 <더 오픈 워커숍> 연구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수행되었다—는 커머닝, 인프라, 주택 및 도시주의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는 최근에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계획•보존대학원에 합류했으며 2026-2027년도 건축 분야에서 권위 있는 ‘로마상(Rome Prize)’[주석1]을 수상했다.
바티아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오래된 에드워드 양식의 저택 안에 있는 도시 생활공동체인 ‘더 엠버시’(The Embassy)를 방문했을 때 공동생활의 가능성을 처음 발견했다. 그곳의 공개 강연에 참석했을 때 몇몇 주민들이 그에게 견학을 시켜 주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들이 하고 있는 유형의 일을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방식의 급진성, 노동 실천에서의 실험, 그들이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서적인 지원, 그들이 샌프란시스코 같은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도시에서 달성할 수 있는 정말로 높은 수준의 이러한 삶의 질들이 말입니다.” 그는 참고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필요에 따른 적정가격의 주택 20만 호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바티아는 건축가인 슈타인뭘러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슈타인뭘러는 지금은 미시간 대학교 타웁만 건축 및 도시계획 대학원(University of Michigan’s Taubman College of Architecture and Urban Planning)의 교수이자 건축학과 학과장이다. 그녀는 또한 공공/도시 공간들, 공공 미술 그리고 건축에 초점을 맞춘 협업 그룹인 <아이디얼 엑스>(ideal X)[주석2]의 공동 설립자이자 <스튜디오 우르비스>(Studio Urbis)[주석3]의 전(前) 소장이다.
슈타인뮐러와 바티아는 공동생활의 사회적 동학을 탐구하기 위하여, 거주자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하여 그리고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그러한 환경에서 그러한 식으로 살기로 결정하는지 이해하기 위하여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기존 선택지들의 범위를 살펴보기 위해 공동생활 선택지들에 대한, 시스템 측면에 더 집중한 연구에 착수했다. 슈타인뮐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아시아의 모델들. 그리고 일본과 한국의 셰어하우스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된 구조들의 폭을 넓히기 위하여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바우그루펜(Baugruppen)을 그리고 스위스의 협동조합을 살펴보았습니다.” [바우그루펜은 공동주택과 집합건물 입주자회의를 혼합한 것으로, 여기서는 앞으로 건물에서 살 거주자들이 주택을 계획하고 짓기 위해서 모이며, 그런 다음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종합 건설업자 없이 직접 주택을 개발한다.]
바티아와 슈타인뮐러는 공동주택에 관한 수많은 현대의 연구가 ‘건축물의 미적 측면’에 대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티아 이렇게 말한다. “때때로 현대의 연구는 어떻게 일상적인 삶이 이들 장소에서 작동하는지를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다루는 것이 우리가 우리의 연구에서 하고자 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명 규모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친밀하고 구체적으로 느껴져서 나는 어떻게 정치와 거버넌스가 건축적 형태와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공동주택의 건축 디자인에 대한 ‘거주 후 평가’를 실시하여, 무엇이 실제로 작동하고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어떤 그룹들이 번성할 것 같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떤 디자인이 진열창 장식이 되고 어떤 디자인이 기능적으로 공동체를 향상시키는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어떻게 그룹 생활 방식이 거주자들 사이의 친목을 더 다질 수 있고 생활을 더 유쾌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그리고 어떤 유형의 디자인과 거버넌스를 피해야하는지를 연구했다. 예를 들어 몇몇 상업적 개발자들은 사교를 위한 장소와 집단의 화목을 조직하기 위해 ‘공동체 관리자’를 고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티아는 공동체 관리자라는 바로 그 생각이 모순어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분은 공동체를 관리하지 못합니다. 공동체가 그 스스로를 창출해야 합니다.”
공동으로 이루어진 한 연구 「커머닝 집 공간」(Commoning Domestic Space)은 공동 거주지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세 가지 주요한 요소들을 확인했다. 거주자들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상의 구조를 가리키는 ‘하드웨어’, 거주자들이 주거 공간을 주장하기 위해 채택하는 사회적 패턴인 ‘소프트웨어’, 그리고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적인 틀들과 거버넌스 시스템인 ‘오그웨어(Orgware)’[주석4]가 이 요소들이다.
슈타인뮐러와 바티아는 그들의 많은 학술논문과 에세이 중에서, 2022년 샌프란시스코 기획 위원회에 제출된 백서 「공동생활로부터 배우기: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한 개요」를 발표했다. 그 백서에는 공동생활 사례 연구에서 그들이 발견해낸 것들이 압축되어 있으며, 이 백서는 집단 주거 관련 입법에 변화를 주는 토대가 되었다.
한 건물에 일정량의 공유공간이 적절하게 위치해 있다면, 그 건물은 사람들이 더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건설 기술은 건설 경제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도시 계획 담당 부서는 공동 주거를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서 지원하는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공동 주거를 위해 잘 설계된 거버넌스도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스스로를 창출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고 고된 노력을 해야 한다.
바티아는 값비싼 시세 주택이 걷잡을 수 없이 급증하는 것을 그리고 도시들에서 그에 상응하여 적정가격의 주택이 부족한 것을 오랫동안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그와 슈타인뮐러는 어떻게 사회적/건축적 형태로서 공동주거 모델이 상업화된 부동산과 겨룰 수 있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그들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약 50개의 공동주거 커뮤니티들 중에 한 그룹인 <헤이트 스트리트 커먼즈>(Haight St. Commons)[주석5]에서 몇 가지 유망한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이 그룹은 서로에게서 도보로 10~15분 이내 거리에 거주하는 400명에서 600명 사이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헤이트 스트리트 커먼즈>는 스스로를 “샌프란시스코 중심부에 있는 비영리 협동조합 및 계획적 공동체 네트워크”라고 평한다. “우리는 인간존재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공동체가 현대 삶에 목적과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이 현실을 만드는 것을 돕기 위해 여기 있다.”
주택을 적정가격대로 제공하는 것 이외에 <헤이트 스트리트 커먼즈> 회원들은 서로에게 상호 돌봄과 조직화된 지원을 그리고 주거지의 한 유형으로서 공동주택을 제공한다. 그 회원들은 심부름 같은 이웃 간 돌봄으로, 팬데믹 동안의 돌봄 같은 비공식적인 의료 및 보건 관리로, 그리고 블록 파티[주석6]를 위한 스피커 시스템으로 서로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티아의 말에 따르면, 이 커먼즈 연합이 가진 매우 흥미로운 점은 어떻게 이 연합이 “특정 공동체의 지역에서의 일상적인 주체성을 침식하지 않는 [영향력의] 규모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가”이다. “우리는 이 규모를 ‘키우는’ 한 방식으로서, 그리고 이를테면 시장에 접근하는 한 방식으로서 이 모델을 매우 흥미로워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티아가 주목한 바에 따르면 공동생활은 대체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주류적인 것이 되지 못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번에 샌프란시스코에 올 때 이들 공동체가 있는 헤이트 지구 주변을 산책하면 당신은 ‘이런, 이 생활공동체들이 보이지 않는군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전적으로 사실입니다. 당신이 이 동네 주변을 산책한다면, 빅토리아풍 주택들의 파사드와 창고들 등의 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꼭꼭 숨어있습니다.”
바티아와 슈타인뮐러는 그들의 연구, 디자인, 참여 활동 그리고 정책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미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하고 있다.
니라지 바티아와 안체 슈타인뮐러의 인터뷰 내용은 여기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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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1] [옮긴이] 로마상(Rome Prize)은 로마 소재 미국 아카데미에서 예술과 인문학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에게 수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연구 및 창작 지원 상이다.
[주석2] [옮긴이] <아이디얼 X>는 건축가 슈타인뮬러가 공동 설립한 건축 및 디자인 협업 그룹이다.
[주석3] [옮긴이] 스튜디오 우르비스(Studio Urbis)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기반을 둔 글로벌 건축, 인테리어, 도시 설계 전문 사무소이다.
[주석4] [옮긴이] 오그웨어(Orgware)는 조직(Organization)과 제품을 뜻하는 웨어(Ware)의 합성어로, 컴퓨터 시스템이나 신기술을 도입할 때 이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적 규정, 관리 체계, 인적 네트워크 및 제도적 환경을 뜻하는 용어이다. 하드웨어(Hardware)와 소프트웨어(Software)가 기술적인 요소를 의미한다면, 오그웨어는 그 기술이 실제 조직 내에서 겉돌지 않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조직적 기반과 운영 규칙을 의미한다.
[주석5] [옮긴이] 헤이트 스트리트 커먼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심부를 기반으로 형성된 비영리 계획적 공동체들(Intentional Communities) 및 주거 협동조합들의 풀뿌리 네트워크이다.
[주석6] [옮긴이] 블록 파티(Block Party)는 도시의 한 구역(블록)이나 특정 거리의 차량 통행을 막아놓고, 그 지역 주민들이 모두 모여 교류하고 즐기는 ‘거리•동네 축제’를 뜻한다.
[추가 설명: 정백수]
팟캐스트 인터뷰 내용 중 거론되지 않았거나, 아니면 상세히 설명되지 않은 것들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1. 현대의 공동생활(collective living)의 여러 유형들(스펙트럼)
이 대담에서 ‘commune’(코뮌)은 주로 미국의 1960, 70년대 생활공동체들을 가리킨다. 이 공동체들의 특징은 ‘규칙 깨기’이다. 이와 달리 현대의 공동생활의 여러 형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규칙이 필요하다. 즉 거버넌스(물론 자기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대담에서 슈타인뮐러는 현대의 공동생활 형태 가운데 넷을 설명한다. (‘공동생활’은 함께 모여 사는 삶을 본 설명자가 넓게 포괄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① intentional communities
이는 옮긴이가 ‘계획적 공동체’라고 옮겼다. 사람들이 모여서 목적의식적으로 같이 살 사람을 찾는다. 거주할 건물을 사기도 하지만 주로 임대한다. 같이 사는 이유는 라이프스타일의 공유, 관심의 공유, 자기거버넌스, 환경과 관련한 행위 주체성이라고 한다. 슈타인뮐러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의 계획적 공동체들의 사례를 연구한 바 있다.
② co-living
이는 옮긴이가 ‘공동주거’라고 옮겼다. (제목에 들어있는 ‘공동주거’co-living는 이 의미가 아니라 넓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슈타인뮐러의 설명에 따르면 스타트업이나 해커(한국에서는 언론의 악영향으로 인해서인지 이를 블랙해커와 동일시하는데, 해커는 사실 컴퓨터 시스템이나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를 깊이 연구하고,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며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기술 전문가를 가리킨다) 문화에 속한다고 한다. 지점이 많은 회사들이 편의상 공동 주거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반드시 같이 살 사람들을 선택하지는 않으며 본질적으로 임대료를 내고 들어와서 시설─ 공동업무, 네트워킹 등─을 공유한다.
③ cooperative
‘협동조합’이다. 이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잘 알려진 형태이다. 큰 부동산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형태이다.
④ co-housing
이는 옮긴이가 ‘공동주택’이라고 옮겼다. 단일 가족으로 이루어진 가정 모델에 더 가까운데, 다만 일정 시설을 공유하며 종종 위원회 기반으로 공동으로 시설을 유지하고 활동을 구축한다.
- 주택공급 문제
볼리어가 말했듯이, 바티아는 건축가이지만 건축물의 미적 측면에만 신경을 쓰고 일상적인 삶과 노동을 살펴보지 않는 연구 풍조를 비판한다. 미적 측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건축가가 그렇게 생각할 리는 없다)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많이 공급하라’는 주류 담론을 비판한다. (이는 미국 이야기이고 한국에 적용하기는 힘들 듯하다. 한국은 ‘더 많이 돈을 빌려라’가 주류 담론이 아닐까?) 집짓기는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그것을 마법 지팡이가 없는 한 시장 ─빠르고 휘발적이며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곳─에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공급측면 경제학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역은 외곽 도시들, 저밀집 지역들 같은 주변부이며 도시에서는 실패했다고 본다. 바티아는 ‘그냥 더 많이 짓자’는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실제로 적정가격의 주택을 창출하지 않고 있으며 토지를 적정가격으로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방식들을 찾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직면하기를 회피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더 많이 짓는 것이 도움은 되겠지만, 우리에게는 예의 마법 지팡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와 슈타인뮐러)의 연구의 대부분은 고쳐서 다시 쓰는 사례 연구이다. (짓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더 많이 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가장 지속 가능한 방식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 주택을 투기 시장으로부터 분리하기
공동생활을 위한 구조를 가진 적정가격의 집을 지으려 해도 토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주택을 투기 시장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손이 미치지 않는 토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사례로서 대담자들은 독일의 미츠호이저 신디카트(Mietshäuser Syndikat)를 소개한다. 미츠호이저 신디카트는 독일의 공동체 중심 주택 소유 및 지속 가능한 주거 공간 확보를 위한 독창적인 사회적 기업이자 비상업적 연대 네트워크이다. 1992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스쿼트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부동산 시장의 투기를 방지하고 주거공간을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한다. 이 모델은 개별 주택 공동체가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건물이 사유화되어 다시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것을 법적으로 원천 차단하는 지능적인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① 주민들이 주택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되 ② 미래에 누군가가 이익을 챙기기 위해 건물을 민간 시장에 되파는 일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택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안정된 자율적·공동적 삶을 위해서만 쓰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주목할 것은 ‘pay it forward fund’라고 부르는 연대기금 적립제도로서, 월세 수입에서 대출금을 갚고 나서 수익이 생기면 그것을 새 프로젝트로 새 건물을 사는데 지원한다. 이렇게 해서 확대된 미츠호이저 신디카트는 현재 170개 이상의 주거 건물들을 가지고 있다. 미츠호이저 신디카트는 부동산 투기에 맞서는 훌륭한 대안 모델로 인정받아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유사한 네트워크(예: 오스트리아의 habiTAT 등)가 출범했다고 한다. (더 자세한 것은 AI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가족의 재정의
집을 삶의 터(몸들의 연결을 통해 형성된 더 큰 몸의 자리)로 보지 않고 상품으로 보는 사고방식, 그리하여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는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사적 소유 의식이 존재하고(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소유는 점유와 다르다), 이 의식은 주택의 경우 핵가족 사상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핵가족’은 혈연에 기반을 두는 동시에 사적 소유에 기반을 둔다. (가령 한 가족의 부모가 아이들을 여럿 낳아서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각각 새 가족을 이루면 상속되는 재산은 새로 형성된 핵가족들을 따라 그만큼의 사유재산들로 나뉘게 된다.) 이에 대해 바티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론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재산 소유의 가치를 지지합니다. 단일 가족 가정은 내내 이 핵가족 사상과 연관되어 왔으며 핵가족 사상은 다시 인구에 여러 방식으로 주입되어 왔습니다.” 바티아와 슈타인뮐러가 샌프란시스코 도시계획국에 낸 백서에서 건의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가족의 재정의’인데 이는 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바티아와 슈타인뮐러가 가족이 재정의되기를 바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가령 혈연관계를 넘어서 확대된 가족(일반적인 가족이 그렇듯이 재정과 노동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구성하는 경우 법적 뒷받침을 받기도 어렵고 자본에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야 한다는 데 있다. 주택을 공급하는 시장이 주로 핵가족에 맞추어 왔지만, 만일 현실에서 실제 가족의 구성이 바뀐다면 (1인 가족의 증가로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 새로운 구성의 가족에 맞추어진 주택 생산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슈타인뮐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핵가족 모델을 닮지는 않은 관계들 속에서 살며, 이 관계들은 오래 지속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주택 생산을 느리게나마 전환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