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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커먼즈와 집단적 소유권

 



 

경찰의 잔인함에 격분하여 미 전역의 도시들에서 최근 발생한 소요의 근저에는 노예 제도의 종식 이래 흑인의 삶을 제한해 온 부·토지·권력에서의 근본적 불평등이 놓여 있다.

일찍이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이 약속받은 “40에이커와 노새”는 결코 주어진 바 없었다. 토지의 재분배도, 강탈된 노동으로 강탈된 토지에서 추출한 부에 대한 보상도 없었다.

흑인들은 이전의 노예들이 그들의 자유를 고지받게 된, 노예해방선언 2년 후인 1865년 6월 19일을 준틴스(Juneteenth)로 기념한다.(([옮긴이] 1865년 6월 19일 고든 그랜저(Gordon Granger)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텍사스주 갤버스톤에 상륙하여 남북전쟁과 노예제의 종식을 고지했다.))흑인에 대한 경찰의 계속되는 살인에 항의하던 시기에 찾아온 올 6월 19일은 흑인이 토지소유권과 이러한 소유권이 가져다주는 경제력을 어떻게 박탈당했는지 되돌아볼 기회를 준다. 토지뿐만 아니라 경제적·문화적·디지털 공유자원에도 기반하고 있는 확대된 “흑인 커먼즈”(black commons) 개념은 보상수단의 하나로 기능할 수 있다. 도시계획조경건축 분야의 교수인 우리의 연구가 제안하는 바는 흑인 커먼즈 개념이 경제발전을 장려하고 공동의 부를 창출함으로써 노예제도의 인종주의적 유산을 제거하는 작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토지수탈

흑인 소유의 미국 토지 비율은 실제로 지난 100여 년간 감소해왔다.

정점이었던 1910년 미국 전체 농부의 약 14%였던 흑인농부1600만 에이커에서 1900만 에이커의 땅을 소유했다. 2012년쯤 농업 공동체의 1.6%에 불과한 흑인은 360만 에이커의 땅을 소유했다. 또 다른 연구는 1920년과 1997년 사이 흑인농부가 98%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백인농부 소유 에이커가 증가한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농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USDA)의 1998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감소는 법·직위·대부 자원으로부터 흑인농부를 배제시킨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뉴딜과 농무부의 차별적 관행에서 비롯된 긴 차별의 역사 ―“기록이 잘 되어 있는” 역사― 때문이었다.

차별적 관행은 토지 유만이 아닌 자산소유에도 영향을 미쳤다. 흑인의 41.8%가 주택을 소유했던 반면 백인의 79.1%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던 2017년 인종별 주택소유 격차는 50년 사이 최고로 높았다. 이 격차는 자산구매를 위한 모기지, 주택개량을 위한 대출을 흑인 거주자에게 허용하지 않은, 금융차별(([옮긴이] 금융차별(redlining)은 빈민에게 대부·모기지·보험 등을 거부하거나 높은 이자율을 매기는 관행을 말한다.))같은 인종차별적 주택공급 관행이 합법적이었을 때의 격차보다 훨씬 더 큰 것이다.

소유권의 결핍은 흑인 중산층을 빈털터리로 만들었고 흑인을 계속해서 괴롭혀온 불구적인 경제적 격차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부를 늘리고 그것을 후세대에 물려주는 것을 더 어렵게 했으니 말이다.

2017년 보고서에 따르면 보스턴 도시권(([옮긴이] 보스턴 도시권(Greater Boston)은 매사추세츠주의 수도인 보스턴과 그 주변 지역을 포괄하는 메트로폴리스 지역을 의미한다.))의 비이민 흑인가구 순자산의 중앙값은 8달러에 불과했지만 백인가구는 247,500달러였다. 이는 “제약을 포함하는 계약, 금융차별 및 기타 대출관행으로 인한 포괄적인 주택공급·대출차별” 때문이었다.

1983년부터 2013년 사이 전국적으로 흑인 부의 중앙값은 1,700달러로 75% 감소했으나 백인은 116,800달러로 14% 증가했다.

 

자유농장

오늘날의 토지소유권과는 매우 다르게 보일지 모르는 집단적 소유권이라는 이념은 미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다. 노예제 시절에도 노예주는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의 생계 농업을 위해 한 뙈기 땅을 내주었다. 자메이카의 사회이론가 씰비아 윈터(Sylvia Wynter)는 이 땅을 “플롯”(the plot)이라 불렀다.

윈터는 어떻게 이 땅 부지가 노예들이 그들만의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전통적인 아프리카 민속과 식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 공동의 지역으로 변모했는지를 설명해왔다. 참마·카사바·고구마를 키우면서 말이다. 플롯은 종종 “참마밭”으로 불렸으며 이 주식(主食)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식량, 토지, 권력, 문화적 생존의 연결은 본질적으로 전복적이었다. 노예제의 잔혹한 제약 속에서 집단적으로 성장하는 실천들을 지원하는 물리적 공간을 전유함으로써 흑인들이 또한 보여줬던 것은 그들의 생존과 저항을 가능하게 할 공통적인 정신적 공유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역사가 샤를라 M. 펫(Sharla M. Fett)에 따르면, 본초학(本草學)과 의학, 조산학(助産學) 그리고 흑인의 기타 치료관행은 “종교 및 공동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저항행위로 여겨졌다.

노예제의 종식과 함께 이 플롯들은 사라졌다.

집단적 토지소유권의 원칙은 노예제 이후의 흑인 사회에서 발전했다. 이는 남부에서 가장 가난한 흑인 농부들의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고안된 협력모델인, 시민권 조직가 패니 루 해머(Fannie Lou Hamer)의 자유농장의 핵심이었다.

패니 루 해머(1964년)

해머가 보기에 억압에 직면하여 정의를 실현하려는 싸움이 필요로 했던 것은 공동체를 위한 토지소유와 자원제공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일정정도의 자립이었다.

흑인 커먼즈를 경제적 역량강화의 수단으로 보는 이 생각이 W.E.B. 두보이스(W.E.B. DuBois)의 1907년 “흑인 사이의 경제적 협력“의 주안점을 형성했다. 두보이스가 믿었던 것은 짐 크로(([옮긴이] 짐 크로(Jim Crow)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흑인으로 분장하여 흑인 가곡 등을 부르는 쇼를 통해서 대중화된 가상의 흑인이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 시행된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은 미국 남부주에서의 인종적 분리를 강화한 지역법이었다. )) 시대의 극단적 분리가 흑인 간의 문화적 유대 속에서 경제적 역량강화를 확립할 필요를 낳았으며 이는 협력적 소유권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신용조합 및 협동조합

부의 축적만이 흑인 커먼즈의 소망된 결과였던 것은 아니었다.

1967년 사회평론가 해럴드 크루즈(Harold Cruse)는 “정치·경제·문화의 새로운 역동적 종합”을 창출할 “신제도주의”를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경제 벤처사업들은 흑인 공동체의 더 큰 열망에 정치적·문화적·경제적으로 기반을 둘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흑인 커먼즈를 통해 달성될 수 있었다.

정치경제학자 제시카 고든 넴바드(Jessica Gordon Nembhard)는 흑인 신용조합과 상호부조펀드에 대해 언급하면서 “다른 유색인종 및 저소득층과 마찬가지로 흑인들은 미국 역사 전반에 걸쳐 협력적 소유권과 민주적 경제참여로 큰 혜택을 보아왔다”고 말했다.

비영리단체인 슈마허 신경제센터(Schumacher Center for a New Economics)는 흑인 커먼즈 아이디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 성명에서 센터는 “여태까지는 토지에 접근하지 못했던 흑인들이 저비용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서, 흑인 커먼즈에서 매입·기증된 토지를 한데 모으기 위한 국가적 수단으로 기능하는” 공동체 토지신탁제도를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공유지분주택제도와 공동체토지신탁은 계속 증가하여 흑인가족이 재산을 소유하고 인종적·경제적 정의를 진전시키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이주를 경감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디지털 커먼즈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이 미친 불균등한 영향과 경찰의 잔혹성이 낳은 소요가 부각시켜온 것은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구조적 인종차별주의였다.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삶을 위한 운동>(Movement for Black Lives)과 같은 단체들은 집단행동을 중심으로 갱신된 활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에 이 집단행동이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흑인들은 또한 매우 인기 있는 온라인 댄스파티인 디제이 디 나이스(D-Nice)의 클럽 쿼런틴(Club Quarantine)과 같은 행사를 통해 문화 커먼즈를 형성하고 있다. 이 행사의 성공은 공동체 구성을 촉진하기 위하여 미래의 경제적 협력을 가리키는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반패치>(Urban Patch)와 같은 단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 비영리 단체는 크라우드소싱한 기금을 사용하여 인디애나폴리스의 도심지역에 공동체 공간을 만들고 과거의 흑인 커먼즈를 반영하는 집단적 경제개발을 장려한다.

미국의 오랜 인종차별주의 역사는 수 세대에 걸쳐 흑인을 억압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 유산을 탐구해보는 것은 집단적 흑인행동, 흑인소유권 사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비할 바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활용하여 그저 부를 위한 토지소유권을 넘어서는, 공동체와 경제를 창조할 기회 말이다.

 




푸코에 대한 맑스주의적 경험 (A Marxist experience of Foucault)

 


  • 저자  : Antonio Negri
  • 원문  : “A Marxist Experience of Foucault”,  http://www.euronomade.info/?p=4146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성철
  • 설명 : 이 글은 안토니오 네그리가 2014년 12월 18일-19일, 프랑스 낭테르(Nanterre)에서 개최된 콜로키움 Colloque Marx-Foucault에서 발표한 글이다. 원래의 발표문은 이탈리어로 쓰여 불어와 영어로 번역되었고 위의 원문 링크에서 세 가지 버전의 글 모두를 구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 글의 다른 영어 버전은 맑스와 푸꼬에 관한 네그리의 에세이를 모은 책인 Marx and Foucualt (Polity Press, 2017)에 실려있다.(Ch.16 ‘Marx after Foucault: The Subject Refound’)

1.

여기서 네그리는 “푸꼬와 함께 그리고 푸꼬 이후”(con e dopo Foucault)에 맑스를 읽은 경험을 제시한다. 이는 물론 “푸꼬와 함께 그리고 푸꼬 이후”에 맑스를 읽는 것은 푸꼬 이전에 맑스를 읽는 것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핵심을 말하자면 계급투쟁을 ‘역사적 주체화’의 과정으로서 존재론적 차원에서 읽음으로써 새롭게 활성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어떻게 읽었나? [* 이 대목은 네그리의 것이 아니고 추정·보완해 넣은 것] 노동자계급을 고정적인 것(객관적인 것, 가변자본)으로 보고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자본(불변자본/고정자본)과 객관적인 자본의 논리에 따라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본다. 이런 경우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일정한 한도(임금투쟁)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한도 내에서만 움직인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새로운 존재의 창출과는 무관한 것이 되고 삶형태의 변형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 이익의 분배를 놓고 다투는 문제가 된다.)

  A) 역사적 주체화

푸꼬의 직관과 결론의 토대 위에서 맑스의 정치경제 비판의 고도로 역사화된 어조와 문체가 유물론적 접근법과 깔끔하게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맑스의 역사적 저작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읽는 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더 깊이 들어가서 그의 개념들을 현재에 열어놓음으로써 그 개념들에 대한 그의 분석을 계보학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푸꼬의 접근법은 계급투쟁의 주체화가 역사적 과정의 동인이라는 사실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강조하게 해주었다. 이 주체화의 분석은 항상 갱신되고 역사적 과정에서 개념들에 영향을 미치는 변형의 규정들과 대면할 필요가 있다. 변증법이나 목적론에서 벗어나서 푸꼬가 제안하는 틀을 택하면, 역사적 주체화는 인과론적이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지만 규정력을 가진 장치로 간주된다. 마끼아벨리의 경우처럼 우리를 위한 역사적 유물론이다.

그러나 맑스 내부에도 이런 고정성을 허물고 계급의 주체화를 드러내는 대목들이 있다.

① 절대적 잉여가치의 추출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출로의 이행.

『자본』에서 맑스는 절대적 잉여 가치의 추출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출로의 이행을 노동일 축소를 향한 노동계급 투쟁과 관련짓는다. 이처럼 맑스에게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적 차원, 계급의 특수한 주체화는, 노동자의 주체성의 변형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가치생산 구조의 존재론적 변형에 있어서 본질적이다. 요컨대, 투쟁이 존재론적 변형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②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

맑스가 노동의 자본에의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에 대해 분석할 때 이것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역사적 전개에 관한 가설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맑스는 이 이행의 서술로부터 잉여가치를 추출하는 가능한 다양한 형태를 뽑아낸다. 그리고 이렇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역사적 변형 속에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그는 착취의 범주들의 항상적인 재편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 틀에서 우리는 가령 노동계급의 개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다. ‘매뉴팩처’에서 ‘대규모 산업’으로 이행하고 이제 산업 자본주의와 다소 사회화된 포디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노동계급이 다양하게 변형되고 공고화되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다중’ 개념이 ‘산 노동’의 현재의 규정을 ‘인지적’ 의미에서, 즉 특이하고 다수적이며 협동적인 것으로서 적실하게 서술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노동계급의 개념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B) 계급투쟁

푸꼬의 관점에서 읽으면 맑스의 자본 개념은 푸꼬가 ‘힘들의 관계’(un rapporto di forza, a relation of forces)의 산물(prodotto)로, 타인의 행동에 대한 작용으로,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계급투쟁의 효과로 정의한 ‘potere’(power) 개념과 연결된다. 프롤레타리아 주체화의 새로운 특징들―생산적이고 특이화된 인지적 힘들로서 저항적이며/이거나 능동적임―이 계급투쟁을 다시 자본주의적 발전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의 중심에 놓게 만든다. 자본주의의 궁극적 종식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에 대해 역사적 목적론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자. 오직 이 비유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Begriff des Politischen)으로서 계급투쟁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C) 노동력의 기술적 구성

‘자기의 테크놀로지’(tecnologie di sé)라는 푸꼬의 관점에서 보면, 산 노동은 고정자본(capitale fisso)의 일정 몫을 전유할 때 그 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단지 종속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지 자본의 수준에서 스스로를 주체화하며 그리하여 산 노동의 새로운 형상들을 구성하면서 대응한다. 이 형상들은 고정자본의 일부를 전유하여 더 우월한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인지노동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초과’(eccedenza, excess)가 이 수준에서 파악될 수 있다.

여기서 들뢰즈와 가따리의 신체성과 주체성의 기계적(macchinica, machinic) 변형이라는 통찰이 중요하다. 때로 들뢰즈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주체화의 적대의 요소이다. 그러나 이는 푸꼬의 직관적 통찰들을 강조함으로서 회복될 수 있다. 이 점점 더 핵심적이 되는 기계적 요소는 적대하는 노동력의 기술적 구성에 속한다. 맑스적 담론의 이러한 발전은 푸꼬 이후에 가능하다. 푸꼬 이후에는 존재론적 차원이 계급관계의 배경이 아니라 생산적 기계이다. 공통적인 것의 생산적 헤게모니는 노동이 인지기계로 전환된 데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인간학적 변형에서, 새로운 기술적 활력에서 나온다. 푸꼬의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비록 고전 고대 시기와 연관되어 있지만, 새로운 인간학에 접근하고 있다. 자연주의나 정체성의 흔적이 없고 ‘인간의 죽음’ 이후의 인간(l’uomo dopo la “morte dell’uomo)을 그려보는 인간학이다. 푸꼬의 작업은 자본의 시초 축적과 함께 시작된 ‘인간들의 축적’(accumulazione degli uomini)을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제 노동의 기술적 구성에서는 생산적 신체들과 삶의 양태들(modi di vita)의 변형에 대해 생각하고 이 양태들이 생산수단이 된다는 점을 확연히 긍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D) 코뮤니즘

푸꼬의 주체화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코뮤니즘은 공통적인 것의 생산과 민주적 주체화를 합치시키는 과정(il processo che compone la produzione del comune e la soggettivazione democratica)에 다름 아니다. 즉 다중의 특이화이다. 이런 식으로 생산적 존재론은 공통적인 것의 개념을 회복한다.

 

2.

한 걸음 물러나 덜 주체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으로 되돌아가보자. 우선 둘 사이의 차이를 보자. 이 차이는 나중에 공통의 관점 속에 재배치될 것이다.

① 맑스의 경우 명령의 통일성이 주권적 권력의 형상에 담겨 있고, 통치(il goverbo)는 자본의 의지 안에 통일되어 있다. 반면에 푸꼬에게 권력의 통일성은 희석되어 있다. ‘통치성’(governamentalità)은 서로 다르고 분산된 권력들(potere)의 생산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과정이다.

② 맑스에게 사회적인 것의 (국가화는 아닐지라도) 자본화가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푸꼬에게 삶권력(il biopotere)은 탈중심화되어 있으며 그 확산이 다양한 발아에 의해 일어나고 권력의 구체적 형태들은 특이화된다. 여기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의 사회화’이다.

③ 맑스에게 코뮤니즘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 조직된다. 이것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계급사회로의 이행을 수행할 수 있다. 푸꼬에게서는 해방의 정치적 체제가 주체화에서 조직되고 자유로서 특이화된다. 그리고 생산에서 공통의 행복을 구축할 제한 없는 가능성을 본다.

그러나 이 차이를 덜 중요하게 만드는 점들이 있다.

① 맑스에게서 보이는 국가와 명령에 대한 유기적 관점은 정치적 수준에서는 사회계급들의 역사적 분석에 의해 희석된다. 특히 정치경제 비판의 수준에서 이 유기적 관점은 생산과 재생산의 분석에서 상품의 사회적 유통의 분석으로 나아가면서 극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맑스는 (재)생산과정을 가치창출과정으로 재연결시킨 후 다시 임금의 분석으로 내려가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계급들과 그 삶의 양태들의 서술로 내려간다. 그에 따라 권력 메커니즘의 다양화와 확산이 광범한 공간을 설계하며 (이때 사회는 공장이 된다) 권력의 과정들이 증식하고 다양한 차이로 갈라지며 이 차이들 위에서 그 과정들은 말 그대로 맥동하기 시작한다.

② 맑스는 시초 축적(accumulazione originaria)을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통치화’ 혹은 ‘국가의 사회화’로서도 제시한다.[↔ 자본화, 사회의 국가화] 로베르토 니그로(Roberto Nigro)는 포섭에 관해 맑스와 푸꼬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혹은 삐에르 마슈레(Pierre Macherey)는 이러한 사회의 변형[즉 형식적 포섭에서 실질적 포섭으로의 변형]에 대한 분석 속에서 항상 ‘생산된 주체’의 ‘생산하는 주체’로의 변형을 파악하려고 했는데, 이 변화는 푸코에게서 주체화라는 문제틀의 핵심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③ 맑스의 프롤레타리아독재와 푸꼬의 주체화이론에서의 존재론적 전복 사이의 차이와 관련해서는 『그룬트리세』의 코뮤니즘, 일반지성 및 사회적 개인에 대한 대목들을 가지고 양자의 유사성을 그려볼 수 있다. 이 유사성은 1978년 이후의 푸꼬의 강의들에서 더 분명해지며 필시 주위 사람들과의 토론의 결과요 E. P. 톰슨 같은 역사가들을 인정한 덕분일 것이다.

이 유사성들은 두 저자를 근대의 몇몇 주된 문제들(국가, 사회, 주체)을 중심으로 한데 모으지만, 또한 둘을 새로운 존재론의 발전이라는 노선보다는 근대의 황혼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두 저자의 차이와 유사성을 강조할 때 1977-78년과 1978-79년 강의의 삶정치적(biopolitical) 전회에 도달하기까지의 푸꼬의 작업이 준거로 되고 있다는 점이다.[캡처한 그림참조] 여기서 맑스와 푸꼬 사이의 유사성은 혼란스러운 채로 남아있고 개념들은 모호하게 취급된다. 맑스에게는 첫째와 둘째 사례에서 모든 담론적 강조가 특이화의 관점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추상’의 관점에서 주어지는 반면 푸꼬는 그 반대라는 점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3.

1977-78년 이후의 그의 강의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1984년 이후에 가능해졌듯이 그의 저작들과 강의들을 철학자의 것으로만이 아니라 투사의 것으로도 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통치성, 삶정치, 주체에 대한 맑스와 푸꼬의 사상 사이의 피상적 합류를 넘어설 수 있다. 우리는 둘 모두 현재의 존재론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푸꼬는 정치학과 윤리학의 절합에 있어서 진전을 보이는데 이것은 ‘자기와의 관계’를 정의하는 작업을 통해서였다. 이 작업은 개인화 및 데까르트식 주체로의 회귀에 반대하며 주체의 집단적 구성 및 이것의 역사적 과정에의 함입에 관한 것이다. 이는 ‘우리’(Noi, We)의 발굴(scavo, excavation)―나/우리 관계의 발굴―로서 제시되는, 생성으로서만이 아니라 다양성(multiplicity)의 실천으로서 제시되는, 주체의 ‘폐위’(destituzione, dethroning)로서 드러난다. ‘우리’는 다중이며 ‘나’(Io)는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 ‘자기 돌봄’(la cura di sé, ‘care of the self’)은 개인적인 실천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주디트 레벨의 말을 빌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인의 형상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 권력에 대한 개인적 반응은 더더욱 아니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의 ‘자기’(self)는 데까르트의 ‘나’가 아니다. 그렇기에 푸꼬가 그 탄생을 1978년에[『생명관리 정치의 탄생』에서] 서술한 경제적·정치적 자유주의에 의해 창출된 개인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들뢰즈가 정의한 특이성이다.

윤리학은 존재와 함(fare, doing)의 교차로에 위치한다. 주체화 과정 내에서의 탈중심화는 이로부터 나온다. 여기서 견유주의가 승리하고 파레시아가 단순히 (진실을 말할) 의지로서가 아니라 진실의 지형(terreno di verita)으로서 상세히 개진된다. 그러나 이를 긍정하기 위해서는 권력-저항이라는 짝(양자 사이는 비대칭적이다)만이 아니라 양자의 차이의 존재론적 성격을 무엇보다 강조해야 한다. 이는 자유의 자동사적 성격(intransitività della libertà, the intransitivity of freedom)에 의해 드러난다. 이 요소는 권력관계에 종속될 때조차도 무조건적이다. 산 노동이 자본과의 관계 내에서 자동사적인 활력이듯이 말이다.((정리자주—‘자동사적 성격’이라고 번역한 ‘intransitività(이)/intransitivity(영)’에 대해 사실 푸꼬 자신이 사용한 표현은 영어로 intransigence 즉 ‘비타협적 성격’이다. 이는 그가 영어로 쓴 글인 ‘The Subject and Power’에 등장한다. 여기서 푸꼬는 권력(관계)과 지배의 상태를 구별하면서 관계로서의 권력이란 타인의 행위에, 그 자신의 의지대로 그리고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영향을 가하려는 행위인 한에서 권력의 행사는 원리상 자유로운 주체에 대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즉 권력의 행사는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려 하는 주체에 대해서만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자유는 권력의 행사의 전제 조건인바 자유는 존재론적으로 권력에 앞선다. 푸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권력 관계의 핵심에는 […] 의지의 반항(the recalcitrance of the will)과 자유의 비타협성(the intransigence of freedom)이 있다.” 한편 이 글이 후에 그의 글 모음집인 Dits et Ecrits 에 불어로 번역되어 실리면서 intransigence가 intransitivité로 옮겨졌고 종종 푸코의 자유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되게 된 듯하다.))

진리는 새로운 존재를 산출하는 시적/창조적(poietic) 지형에서 구성된다. 가령 해방투쟁은 자유의 자동사적 실천을 펼쳐낸다. 진리를 창조하는 자유이다. 촘스키와의 토론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진리에의 욕망이라는 물음이 던져지자 푸꼬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당신에게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지배계급에 맞선 싸움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싸움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적 힘을 장악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지배계급에 맞선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배계급의 권력의 전복을 원하기 때문에 그 싸움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체화과정의 발전은 권력의 문법(그리고 실천)의 계속적인 재정식화를 낳는다. 고고학이 어제와 오늘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고 계보학이 내일과 현재 사이의 가능한 차이를 실험한다면, 이것이 가능한 것은 오직 현재에 대한 정확한 분석―‘우리 자신의 비판적 존재론’(un’ontologia critica di noi stessi)―을 통해서이다. 바로 이 ‘우리 자신의 비판적 존재론’을 통해서 우리는 근대의 범주들을 위기에 부칠 가능성을, 더 정확히는 그 필요성을 갖게 된다. 예를 많이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것들은 ‘산 노동’의 새로운 질과 그 생산적 능력의 새로운 차원들을 둘러싼 문제들이다. 그 다음으로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차원들의 소진과 <나>와 <우리>의 관계, 즉 <우리>의 노동/활동 속에서의 <나>의 산출에 의해 결정되는 바의 ‘공통적인’ 지형의 출현이다.

역사, 윤리 그리고 정치적 행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열린 존재론의 장치(dispositif), 존재를 생산하는 장치이다. 싸르트르의 실존주의의 마지막 결과들이 혁명적 좌파 내에서조차 영향을 미치고 있던 때 푸꼬가 발전시킨 입장을 [지금] 상기하는 것은 이상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하다. 싸르트르와 대조적으로 푸꼬에게는 주체의 자유와 사실의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존재론적 맥락의 필연적 결정과 그 열림, 즉 윤리적인 존재 및 함의 자유(freedom of ethical being and doing)가 존재한다.

 

4.

하이데거 이후로, 즉 탈근대에 존재론은 더 이상 주체의 토대(fondamento)를 이루는 장소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적·실천적·협동적 배치(agencement), 프락시스의 직물이다. 요컨대, 칸트 이래 확립된 초월적(transcendentale) 철학의 연속성을 가로막은 현재적 존재의 존재론이다. 이 존재론은 말 그대로 근대의 존재론과 그 데까르트적 뿌리(주체의 중심성)로부터 떨어져 나왔으며 ‘삶의 양태’라는 새로운 물질성 위에 자리를 잡는다. 현실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왔던 인식론적 막(schermo, screen)은 여기서 분쇄된다. 하이데거의 작업은 이러한 지형에서 이루어졌지만, 그는 또한 오늘날 세계를 구성하는 테크놀로지적 노동이 그것의 생산물[즉 삶의 양태 혹은 인간]과 충돌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역설적으로 이 지형에서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인간에의 위협은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기계들 및 테크놀로지 장치들에서 비로소 오는 것이 아니다. 본래적인 위협은 이미 인간을 그 본질에서 갉아먹고 있다. 몰아세움/닦달(Gestell)의 지배는 인간이 어떤 더 근원적인 탈은폐에로 귀의하여 더 원초적 진리의 부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위협해오고 있다.”[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물음’] 하이데거에게서 존재는 생산적이지 않으며 테크놀로지는 생산을 비인간적 운명 속에 익사시키고 새로운 존재론의 발생에 왜곡의 징표를 남긴다. 테크놀로지는 우리에게 황무지를 되돌려준다. 바로 여기서 주체의 유령들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에서 잘 나타나는 그 유령들이 다시 등장한다. 니체와 푸꼬는 이와 다른 길을 간다. 그들은 세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취하며 그것이 무엇이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발굴한다. 과거의 파편들, 현재의 밀도, 장차 올 것의 모험을 그 물질적 실재와 열린 시간성 속에서 다룬다. 그들은 존재론을 역사로 채우고 언어적 관계들과 수행적 장치, 계보적 재구축과 진실에의 의지들을 수립한다. 이것들이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존재를 창출하도록 말이다. 그들은 모든 관계를 세계를 구성하는 기계로 향하게 한다. 초월적 인식론은 옆으로 제쳐놓는다. 이 인식론은 더 이상 현재의 존재론을 위한 지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하이데거의 경우와는 달리 이 새로운 존재론에서는 삶의 공통적 맥동에 열려있는 결정적 분기가 발생한다. 존재의 산출은 심오함이나 초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현실성 속에서, 삶의 돌봄(cura della vita) 속에서 조직된다. 나는 ‘맥동’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 생기론은 들어있지 않다. 우리는 생물학화된 혹은 자연주의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삶을 산다.

푸꼬에게 이러한 ‘현재의 존재론에 몰입되어 존재하기’(essere immersi in una nuova ontologia del presente)가 가장 높은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공통적으로 존재하기’(un essere comune)로서 특이성들의 상호적이고 다변적인 의존이 우리가 앎의 문제를 제기하고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지형을 구성한다. 마슈레가 상기시켜주듯이, 푸꼬의 저작 출간의 맥락은 “전쟁 직후 시기의 사고방식과 글쓰기 방식의 완전한 갱신을 나타낸 거대한 논쟁의 계절이 시작된 때”이며 “이때 문학의 리얼리즘, 주체철학, 변증법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연속적인 역사적 진보라는 개념이 동시에 문제 삼아졌다.” 이 문화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는 것은 주권적 주체, 의식개념, 그리고 역사적 목적론을 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존재론을 집단적 실천의 직물이자 산물로서 파악함을 의미했다. 1970년대 중반, 푸꼬가 그 시점까지 쓴 것을 읽을 때, 나는 막다른 골목의 느낌을 받았으며, 이것이 (객체에 대한 구조주의적 열광과 주체에 대한 정신주의적 매료를 넘어서) 주체화를 향한 충동, 장차 올 것의 존재론적 구축(costruzione ontologica de l’a-venire)을 향한 충동에 의해 극복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자문했다. 이러한 극복은 1970년대가 끝난 이후부터 일어나게 된다.

맑스에게서 우리는 동일한 형태의 존재론적 뿌리내리기와 대면한다. 역사적 현재에의/현재의 뿌리내리기(un radicamento nella/della presenza storica)이며 그 항상적인 재구성이다. 주체의 형이상학 같은 것은 없다. 그 존재론적 직물은 내가 지금까지 ‘새로운 존재론’이라고 부른 것과 같다. 이러한 존재론적 직접성을 전제하는 것은 역사적 시기들의 차이를, 따라서 ‘삶형태들’(forme di vita)의 차이―예를 들어 맑스와 푸꼬에게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성찰이 존재한다―를 고려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들[역사적 차이들, 여러 삶형태들의 차이]을 동질적 토대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관건은 이 글의 서두에서 정의된 다음 네 가지 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즉 ① 정치경제학 비판의 발본적 역사화 ②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으로서의 계급투쟁의 인식 ③ 노동력, 즉 산 노동의 투쟁에서의 주체화 그리고 생산하는 신체들의 생산관계들의 변이와의 연동 ④ 공통적인 것에 열려있는 주체화를 정의하는 것.

 

5.

프랑스 맥락에서는 종종, 위에서 말한 것과 반대 방향에서, 존재론적 담론의 탈주체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이 지형에서 전진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알뛰세르의 사유는 바로 이러한 시도에서 매개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실 그는 매우 급진적으로 이 노선을 제안했다. 이제 알뛰세르가 이 지형에서 그의 비판을 심화시켰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인은 <주체>(Sujet)의 명령에 자유롭게 따르기 위해서, 즉 자신의 종속을 (자유롭게) 받아들이기 위해서, 즉 자신의 종속의 몸짓들과 행동들을 ‘스스로 달성하기’ 위해서 (자유로운) 주체로서 호명된다. 자신들의 종속에 의한 그리고 그 종속을 위한 주체 말고는 주체란 없다.” 우리는 이것을 매우 잘 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주체성을 그토록 해체시킴으로써, 그 어떤 가능한 정신주의의 나무도 베어넘김으로써, 알뛰세르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앉아있는 나뭇가지를 잘라버리기에 이르렀다. 발리바르는 다음과 같이 알뛰세르를 교정한다. “‘주체의 구성’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주체 없는 과정에서뿐이다.” 주체에 대한 맑스주의 비판은 반(反)휴머니즘의 무규정적이고 불확정적인 형상으로 옮겨놓아질 수 없다. 이 비판이 표현하는 역사성, 활력이 회복되어야 한다. ‘인간의 죽음’[즉 주체의 해체] 이후에 요구된 [새로운] 휴머니즘이 소생하는 것은 아마도 이 현재의 존재론 안에서일 것이다.




제국, 20년 후

 



20년 전 『제국』이 나왔을 때에 지구화가 중앙무대를 차지했다. 2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한 번 지구화가 중심적 이슈이지만, 지금은 여러 입장에 걸쳐있는 제도권 논평가들이 그 검시(檢屍)를 수행하고 있다. 우세해진 새로운 반동세력은 자국주권의 귀환을 요구하면서 무역조약을 깨고 무역전쟁의 분위기를 뿜어내며 초국적 기관들과 전지구적 엘리트들(소수 지배세력)을 규탄하는 한편 인종주의의 불을, 이주자들에 대한 폭력의 불을 지핀다. 좌파에서도 혹자들은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 및 전지구적 엘리트들의 강탈행위에 대항하는 무기로서 자국주권의 부활을 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화는 죽었거나 쇠퇴한 것이 아니라 단지 덜 명료할 뿐이다. 전지구적 질서가 어디서나 위기에 처해 있지만, 오늘날의 여러 위기들이 전지구적 구조들의 계속적인 지배를 막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세계질서는 자본처럼 위기를 통해 기능한다. 말하자면, 위기를 먹고 산다. 이 질서는 여러 면에서 고장남으로써( by breaking down) 작동한다.[원주1: 들뢰즈와 가따리에게 자본주의적 기계의 분열적 성격의 일부는 그것이 ‘고장남으로써 작동한다’는 사실에 의해 드러난다. Anti-Oedipus, trans. Robert Hurley, Mark Seem and Helen Lane, Minneapolis 1983, p. 31 참조] 오늘날 전지구적 구조들이 덜 가시적이기에 지난 20년 동안의 트렌드들을 전지구적 거버넌스의 구성이라는 면과 자본주의적 생산 및 재생산의 전지구적 구조들이라는 면에서 연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지배와 착취의 주된 구조들을 전지구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반란과 해방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촉진하는 데서 핵심적이다. 제국이 아래로부터의 다중의 반란에 대한 대응으로 형성되었듯이, 다중이 자신들의 힘을 효율적인 대안적 힘으로 구성하고 대안적 사회의 조직을 향한 경로를 그릴 수 있는 한에서 제국은 다중 앞에서 몰락할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적·정치적 운동들은 여러 면에서 이미 이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1. 서로 어긋나 있는 권역들

제국의 지속적인 위기가 하나가 다른 것을 둘러싸고 있는 두 개의 권역들(spheres)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자.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의 지구 규모의 네트워크들이 그 첫째 권역이며, 전지구적 거버넌스의 구성이 그 둘째 권역이다. 이 두 권역은 점점 더 서로 어긋나고 있다. 첫째 권역은 ① 점점 더 복잡해지고 연결성이 높아지는 상호연결된 소통 네트워크들, ② 물질적·비물질적 기반시설들, ③ 육·해·공 수송로들, ④ 대양을 횡단하는 케이블들 및 위성 시스템들, ⑤사회적·금융적 네트워크들, ⑥ 생태계들, 인간들 및 기타 종들 사이의 다양하게 중첩되는 상호작용들로 구성된다. 지역화된 경제적 생산이 이 영역 내에 존속하지만 이는 점점 더 이 대륙을 가로지는 회로들에 흡수되어 역동적으로 되며 또한 많은 경우 이 회로들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 노동도 시장, 기반시설, 법, 국경체제[국민국가의 경계들로 지리적 구획이 지어진 체제]의 전지구적 웹에 흡수되고 제한을 받는다. 가치화 및 착취 과정들도 다양하지만 통합된 전지구적 어셈블리라인에 의해 지배된다. 사회적 재생산의 기관들과 생태 신진대사의 회로들은 여전히 지역적일 수 있지만, 이들 역시 큰 역동적 시스템들에 점점 더 의존하고 종종 그것들에게 위협을 받는다.

이 지구 규모의 시스템들은 상이한 공간들과 시간들을 가로질러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의 다양한 활동들을 실질적인 동시에 형식적으로 포섭한다. 이 권역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성 있는 총체이다. 단일하고 밀도 있는 지구 규모의 집합체이다. 이 상호연결성은 취약성을 공유한다는 점을 놓고 볼 때 가장 분명해진다. 가령 핵에 의한 파멸이나 기후위기에 직면하면 살아있는 생물들과 테크놀로지들의 웹 전체가 위협을 받으며 그 가운데 무사할 것은 없다.

첫째 권역을 둘러싸고 있는 둘째 권역은 상이한 여러 수준들에서 상호교직된 정치적·법적 체계들―일국 정부들, 국제적인 법적 협약들, 초국적 기관들, 기업 네트워크들, 경제특구들 등―로 구성된다. 이는 전지구적 국가(a global state)는 아니다. 일국 주권의 주장이 퇴색하면서 출현한 것은 이행적 거버넌스 체제들이다. 이 중첩되는 구조들이 혼합된 정치구성(a mixed constitution)을 이룬다. 이 권역의 표면을 가로질러 지배의 고비를 쥐고 있는 자들은 아래 세계의 소유자들―기업의 장들, 금융 거물들, 정치적 엘리트들, 미디어 거물들―이다.

신자유주의의 반혁명이 진전되면서 이 두 권역들은 점점 더 어긋하게 되었다. 이 두 권역들은 별도의 분리된 축 위에서 돌면서 때로 서로 충돌한다. 20세기의 개혁 기획이 두 권역들 간의 관계를 안정화하고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하며 전지구적 체제의 모든 수준들에서 위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embedded liberalism'[‘내장된 자유주의, ‘묻어들어 있는 자유주의’ 등 여러 번역어가 있다]를 추구했다면 신자유주의의 반혁명은 사회적 생산 및 재생산의 영역과 안정된 구조적 관계를 맺지 않는 거버넌스 권역을 창출했다.

신자유주의의 제국적 거버넌스는 그 어떤 매개도 없이 안쪽 권역으로부터 가치를 포획하고자 한다. 안쪽 권역의 생산 및 재생산 회로들이 점점 더 자율적으로 된다고 해서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 영역이 그 명령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화폐 메커니즘들을 통해서 생산된 가치들을 측정할 수 있으며 금융 및 부채의 도구들을 통해서 자산소득(rent, 지대)의 형태로 가능한 많은 가치를 추출할 수 있다. 위기들이 번성하지만, 이 위기들은 임박한 붕괴의 표시들이 아니라 지배의 메커니즘들이다.

미국 헤게모니의 운수(運數)

두 권역들이 서로 어긋나 있다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는 각 영역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지난 20년 동안 전지구적 질서의 구조들이 어떻게 변했나를 살펴보는 데서 시작한다. 다중의 저항과 도전을 위한 잠재적 가능성이 오늘날 어떻게 열렸는지에 시선을 두면서 말이다.

소련이 붕괴한 1990년대 초,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질서가 동터옴을 선언했다. 그 당시 비판자들이든 지지자들이든 모두, 미국이 유일한 초강국으로서 당연히 그 유례없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행사할 것이며, 전지구적 사태에 대한 일방적 통제만큼이나 책임도 점점 더 많이 지게 되리라고 보았다. 10년 후 미국 군대가 바그다드로 진군할 때에는 아버지 부시가 고지한 새로운 세계 질서가 아들 부시에 의해 구현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점령은 중동을 다시 만들 듯이 보였으며, 그곳에 순수한 신자유주의적 경제들을 창출할 듯이 보였다. 네오콘들이 슬슬 몸을 풀 때 비판자들은 새로운 미국 제국주의를 규탄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일방주의적 힘은 이미 제한되어 있었으며 워싱턴의 제국주의적 야망은 헛된 것이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다른 게 아니라 단지 그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힘의 불충분성으로 인해서 무너졌다.

미국은 탈레반(Taliban)과 바티스트(Baathist) 정권들을 전복시킬 수는 있었지만, 진정한 제국주의 국가에게 요구되는 안정적인 헤게모니를 획득할 수는 없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수십 년 동안의 실패 이후인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전지구적 체제가 혜택을 가져오리라고 믿거나 안정적 질서를 창출할 힘을 미국이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잔존 여부에 대해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지만, 사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세계지배는 트럼프가 무대에 돌연히 등장하기 오래 전에 이미 지난 일이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그 어떤 국가도 전지구적 질서를 일방적으로 조직하고 통제할 수 없다. 아리기처럼 중국과 같은 다른 국가가 미국이 했던 헤게모니적 역할을 계승하리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의 쇠퇴가 과장되었다고 보는 자유주의적인 제도권 논평가들에게는 여전히 미국이 전지구적 패권국에 유일하게 걸맞은 국가이다. 이런 주장들에도 일리는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나 중국의 역할이 일극적 패권국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제국의 혼합된 정치구성(mixed constitution)에서 벌어지는 국민국가들 사이의 격렬한 경합의 일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어떤 국가도 헤게모니적 위치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은 카오스와 무질서가 존재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주권의 출현을 나타낸다.

 

  1. 제국의 혼합된 정치구성

헤로도토스나 플라톤 같은 예전의 사상가들은 세 개의 기본적 통치 형태―군주제(1자의 지배), 귀족제(소수의 지배), 민주제(다수의 지배)―가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각 정치구성의 상대적 장점을 분석했으며, 정치사를 하나의 정치구성에서 다른 하나의 정치구성으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다. 폴리비오스(Polybius)에 따르면 로마의 새로움은 그 혼합된 정치구성에 있었다. 통치형태들이 서로 교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했다.

20년 전 우리는 오늘날 출현하는 질서를 (이 전지구적 통치의 혼합된 정치구성을 가리키기 위해서) ‘제국’이라고 명명했다. 제국은 전지구적 국가도 아니고 통일되고 중앙집중화된 지배구조를 창출하지도 않는다. 오늘날의 지구화는 단순한 동질화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동질화인 동시에 마찬가지 정도로 이질화인 과정이다. 모든 지리적 규모에서 경계들 및 위계들이 번성한다.

이 글에서 우리는 지난 20년 간 제국적 정치구성에서 일어난 가장 극적인 이행들의 일부를 개략적으로만 살펴보겠다. ① 군주제의 수준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태전개는 중심의 공동(空洞)화였다. 1990년대에 미국은 쇠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핵심 도메인들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폭탄(워싱턴), 달러(월가), 네트워크(헐리우드/실리콘밸리)는 군주적 힘을 행사할 수 있었으며 이 도메인들에서 ‘일자의 지배’와 같은 것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영역에서 미국의 우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지만, 그 토대는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그 범위는 더 좁아진다.

㉠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보다 두드러지게 우월하다. 그러나 월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서의 미군의 패배는 미국의 군주로서의 능력이 오늘날 미약해졌음을 분명히 한다. ㉡ 20년 전에는 견고하게 보였던 미국의 금융적·화폐적 헤게모니도 점점 더 약화되었다. 금융 헤게모니는 이미 불안했는데, 이는 1971년에 있었던, 달러화의 금표준으로부터의 분리로 소급한다. 가이트너(Timothy Geithner)에 따르면 1990년대에 미국의 금융 및 화폐체제는 ‘중력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태로운 토대는 2008년의 금융위기에 의해 확인되었고 이는 다시 미국이 군주 역할을 하는 능력을 문제시 하게 되었다. ㉢ 마지막으로 미국의 군주로서의 지위는 문화산업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영역에서도 축소되었다.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미국 기업들은 미국의 전지구적 헤게모니 발휘를 위한 소프트파워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업들은 점점 더 지구 규모로 작동하며 모호하게만 미국의 전지구적 이미지에 기여한다. 이렇듯 세 도메인 모두에서 미국의 군주적 힘은 균열을 보이고 있다. 다른 후보자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적 진공이 군주제의 수준에서 커지고 있다.

② 제국의 귀족제 수준에서는 흥하고 쇠하는 열강들의 열띤 경합이 일어나고 있다. 전지구적 체제에 대한 ‘소수의 지배’는 주요 기업들, 선진국들, 초국적 기관들을 가로질러 행사되고 있다. 기업 대 국민국가, 국민국가 대 초국적 기관 등의 격렬한 경쟁이 그 특징이다. 지난 20년 동안 전지구적 위계 내에서의 상대적 위치에 변화가 생겼다. 중국이 상승한 반면, BRICS의 다른 국가들은 적어도 일시적으로 멈칫했다. 애플과 알리바바가 제너럴모터스와 제너럴일렉트릭의 자리를 차지했다. 이들의 갈등에서 생기는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귀족세력은 실제로는 같은 악보를 연주하고 있다. 은유를 바꾸자면, 그들은 서로 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기사도(騎士道) 및 그에 상응하는 사회질서에 복무하는 기사들과 같다.

귀족제 수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일반적 윤곽이 겉보기와 다르게 상당히 변화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많이들 말하는 국민국가의 귀환은 전지구적 체제의 균열이 아니라 귀족 열강들 사이의 경합에서 구사되는 전술적 작전들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America first!, Prima l’Italia! Brexit!는 전지구적 체제에서의 위치에서 밀려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국가들의 애처로운 외침들이다. 사라진 나뽈레옹의 영광에 대한 기억에 의해 동원되는 것으로 맑스가 그린 바 있는 프랑스의 보수적 농민들처럼, 오늘날의 반동적 민족주의자들도 전지구적 질서로부터의 분리를 노리기보다는 전지구적 위계에서의 재상승을 노린다. 선진국들과 초국적 기관들 사이의 갈등―가령 2018년 유엔총회에서의 트럼프의 ‘글로벌리즘’ 비판―도 전지구적 체제에 대한 공격이라기보다는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계책이다. 선진국들과 초국적 기관들을 주도하는 엘리트층 모두가 자본주의적인 전지구적 질서의 구축과 유지에 바쳐진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지시에 의해 추동된다.

③ 마지막으로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불명료한 혼합된 정치구성(‘다수의 지배’)은 방대한 세력들로 구성된다. 국민국가들 및 자본주의적 기업들, 방송과 미디어, 국가와 기업들을 지원하고 종종 이들이 손상시킨 바를 수리하는 NGO들, 종교단체들, 국가에 맞서거나 스스로 국가를 수립했다고 주장하는 사병(私兵)들. 이들은 가장 저급한 의미에서만 ‘민주적’이라고 불릴 수 있다. 반체제적 운동이나 세력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방대한 세력은 군주제적·귀족제적 힘들에 저항하고 도전할 때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제국적 정치구성 전체를 지탱하는 데 복무한다. 푸꼬가 겉으로 보기에는 저항적인 형상들이 어떻게 궁극적으로는 지배적 힘을 강화하는지를 인식하는 데 탁월했다. 물론 모든 저항 노력이 헛된 것이며 불가피하게 제국에 의해 포섭되어 대안을 위한 희망이란 것은 없다는 말은 아니다(푸꼬도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곧 이 점을 다룰 것이다.

 

  1. 새로운 국제주의들

지구화를 위로부터 보면 왜곡을 낳는다. 지구화는 그 핵심에 있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지구화 세력에 대한 대응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국제주의가 근대 전체에 걸쳐서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형태들과 과정들의 주된 추동자였다. 모든 근대 혁명은 깊은 의미에서 국제주의적이다. 아리기와 제임슨 같은 저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읽기 덕분에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전개가 실제로는 1960년대의 반란, 해방투쟁, 혁명운동의 합류나 축적에 대한 대응이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권력 구조들을 ‘대응’으로서 인식하는 것은 분석적 기능만이 아니라 정치적 기능도 가진다. 제국의 지배를 넘어서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필연적으로 더 나아간 국제주의의 형태를 띨 것이다. 그런 만큼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날 출현하는 새로운 국제주의들을 포착하고 양성하려는 노력이다.

행동하는 국제주의를 인식하는 한 방법은 투쟁의 국제적 순환의 전개를 추적하는 것이다. 각 투쟁이 지역에 집중될지라도, 투쟁의 불꽃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면 운동이 전지구적 의의를 가지게 된다. 2010년 11월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일어난 봉기가 그러한 순환을 개시했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나라들에서 일어나서 다음에는 스페인, 그리스, 미국으로, 그 다음에는 터키, 브라질, 홍콩으로 옮겨갔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성폭력과 가부장제에 맞서 싸우는, 아르헨티나의 페미니즘 투쟁인 NiUnaMenos[영어로는 ‘Not one (woman) less’라고 옮겨지며 여성이 한 명이라도(una, one) 더 희생되지(menos, less) 말아야 한다(nie, not)는 의미이다]는 여성들의 재생산권을 둘러싼 폴란드의 투쟁과 공명하여 혁신적인 방식으로 남북 아메리카 전역으로 옮겨갔으며 대서양을 가로질러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옮겨갔다. 정치적 파업의 새로운 형태들에 기반을 두고 새로운 페미니스트 인터내셔널이 형성되고 있다.

훨씬 더 방대한 규모이지만 훨씬 덜 명료한 것으로, 이주(migration)가 국제주의의 주된 힘을 구성한다. 이주는 국민국가들의 국경체제들과 전지구적 체제의 공간적 위계들에 대한 지속적인 반란이 된다. 2015년 여름, 걸어서 혹은 모든 가능한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유럽을 향하고 또 유럽을 가로질렀으며 이제는 지중해를 건너기에 이른 대대적인 행렬이 유럽의 국경체제들을 위협했다. 이와 유사하게 2018년 가을 멕시코를 지나 미국 국경을 향해 움직인 중앙아메리카의 어린이들과 가족들의 행렬은 미국의 국경체제의 지속적인 위기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미디어가 매우 자주 다룬 이 사건들은 남에서 북으로만이 아니라 모든 방향으로―나이지리아에서 남아프리카로, 볼리비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미얀마에서 방글라데시로, 중국의 농촌에서 도시지역으로―다양하게 펼쳐지는 전지구적 이주의 정점들일 뿐이다. 이는 정치적인 것으로 거의 인정되지 않지만, 이례적인 종류의 국제주의적 반란이다. 이주자들의 압도적 다수는 자신들의 탈주의 정치적 성격을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행동을 국제주의적 투쟁의 일부로서 이해하지는 더욱 못한다. 실로 그들의 여정은 극히 개인화된 것이다. 마차행렬과 같은 명시적으로 조직적인 구조도 드물다. 중앙위원회도 없고 강령도 없으며 원칙의 진술도 없다. 그러면서도 이주자들의 탈주선들은 국제주의적 힘을 구성한다.

이주자들은 전쟁이나 박해로부터 도망치는 경우든 단순히 모험을 추구하는 경우든 이동성의 자유를 긍정한다. 이것이 모든 다른 자유들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전지구적 이주가 지속적인 반란으로서 가진 정치적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걸음 물러나서 보아야 한다. 이주자들의 반란의 힘은 이주자들의 통제에 발휘되는 잔인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역반란 전략에 의해 확인된다. 리비아의 강제수용소에서 미국 국경의 야만적 경찰들까지. 이주자들의 반란은 전지구적 체계를 분절하는 장벽들을 그저 가로질러 감으로써 그 장벽들에 균열을 내고 그 장벽들을 무너뜨린다.

 

  1. 전지구적 자본과 공통적인 것

앞에서 말한 두 권역은 서로 어긋나 있긴 하지만 서로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 일국의 자본이 그 이익을 위해 국민국가를 필요로 하듯이, 전지구적 자본도 복잡한 전지구적 거버넌스 구조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적 관계들의 권역을 구성하는 것은, 서로 경쟁하는 개별 자본가 기업들, 종종 서로 갈등하는 국가 자본들, 다양한 형태의 임금∙비임금∙불안정 노동, 항상 자본주의 사회의 일부였던 비자본주의적 요소들이다. 이러한 이질성에 가려 전반적 구도를 인식하지 못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출현한 학술적·전투적 비판들 일부를 따라가봄으로써 자본의 발전에서 보이는 일부 핵심 방향들을 개략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정치경제 비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재생산의 회로들에서 저항과 자유의 씨앗들을 찾는 것과 관련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훈육체제에 맞서는 운동들이 자본주의적 발전을 추동하는 동력으로서 기능해온 방식에 먼저 초점을 맞추겠다. 이는 (자본에 의한) 포섭과 포획의 이야기인 동시에 반란의 활력의 지표이다. 자본을 전진시킬 힘이 있는 곳에 자본을 전복할 잠재력 또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자본이 자본에 맞서 사용될 수 있는 무기들을 창출하는 방식을 검토할 것이다.[원주 21 내용의 일부: 맑스는 반란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들은 자본주의적 발전 자체에 의해 제공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혁명은 과거의 사회적 형태들로의 회귀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기의 성과―즉 협동, 그리고 토지와 (노동 자체에 의해 생산된) 생산수단의 공동 점유―를 토대로 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맑스는 썼다. Capital, Volume I, trans. Ben Fowkes, London 1976, p. 929.] [이때 수립되는 소유를 맑스는 ‘개인적 소유’(das individuelle Eigentum, individual property)라고 불렀다.]

오늘날 공통적인 것은 여러 모습―자연자원, 문화생산물, 생체측정 데이터, 사회적 협력―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행한다. 공통적인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및 재생산에 점점 더 중심적이 되지만(자본이 축적하는 가치가 점점 더 공통적인 것 안에 있게 되지만), 또한 공통적인 것은 자본으로부터의 사회적 자율의 잠재력, 반란의 잠재력을 가리키기도 한다. 공통적인 것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세 핵심 지형들―① 추출의 측면 ② 삶정치적 측면 ③ 생태계―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종류의 분석들 즉 자본주의적 생산 및 재생산에 대한 최근의 광범한 분석들은 넓은 의미의 추출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 가치가 땅으로부터 직접 끌어내어지는 전통적인 추출주의적 관행의 확대만이 아니라 공적 부와 기반시설의 사유화에 의해 획득되는 축적방식들 및 인간적·사회적 가치들이 전유되고 축적되는 새로운 형태의 추출이 이루어진다.

데이터 마이닝의 비유가 전통적인 추출작업들이 사회적 도메인으로 옮겨온 방식을 보는 데 유용한 렌즈를 제공한다. 가령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을 수단으로 한 축적은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프로세싱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지식 및 사회적 관계들을 자본화하는 알고리즘적 수단을 창출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들은 ‘공유’를 (공동의 사용을 위해 재화를 제공하는 데서) 가치를 추출하는 수단으로 전환시켰다. 금융 또한 그 추출방식을 통해 기능한다. 물론 금융도구들의 일부는 투기의 수단이며 ‘허구적’ 가치들만을 창출한다. 그러나 금융과 채무관계는 그 주된 측면에서는 금융자본의 직접적 관리 외부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가치들을 추출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축적 구도에서의 이러한 사태전개를 이윤에서 자산소득(지대)으로의 이행으로 파악한다. 산업자본이 대체로 생산과정을 관리하고 협력의 형태들을 운영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반면에 금융은 자신의 관리 외부에 있는 생산적 협력의 형태들을 통해 생산된 부에서 자산소득을 추출한다.

추출에 대한 이러한 분석들은 하비가 말한 ‘강탈에 의한 축적’에 크게 상응한다. 그 과정은 주로 커먼즈의 새로운 종획을 통해, 그리고 땅과 공적 기반시설에 들어있는 부의 추출을 통해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모든 추출형태는 그 직접적 관리영역 외부에서 생산되는 가치들을 끌어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추출주의는 다양한 형태의 공통적인 것―생태적, 사회적, 삶정치적 형태―을 포식한다. 이러한 포식과정은 공통적인 것 안에 있는 잠재력을 가리킨다.

둘째 종류의 분석은 삶정치적 관계들―인지적 생산형태들, 정동과 돌봄의 생성―에서 공통적인 것이 하는 역할을 부각시킨다. ㉠ 인지자본주의 연구는 일반적으로 지식, 지성, 과학의 역할을 분석하며 축적된 지식이 직접적으로 가치를 생산하게 된 것을 강조한다. ㉡ 다른 분석들은 사용자들의 주목이 생성하는 가치에 의존하는, 디지털 네트워크들과 플랫폼들을 통한 가치생산에 초점을 둔다. ㉢ 지성 및 주목과 아울러 자본주의에서 정동이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정동의 생산과 관련된 직업들―간호사들, 방문돌봄 서비스 노동자들, 관리-지원 직원들, 임금을 받는 가사노동자들, 교사들, 음식서빙 노동자들―은 보수가 낮고 극히 불안정하며 따라서 압도적으로 여성들로 채워진다. 정동의 생산은 또한 젠더 분업으로 정의되고 있는 가사노동을 포함하는 비보수 영역에서 중심적이다.

이 분석들에서 우리는 삶정치적 통제의 새로운 형태들과 인간 실존의 더 많은 영역들의 식민화 및 상품화와 함께, 착취와 지배의 새로운 심화된 형태들을 인식한다. 오늘날 삶정치적 생산력들이 사적 소유의 관계 내에 종획되어 있어서 노동자들은 임금을 위해 노동하거나 종속되어 있고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상태에 있으며 그런 가운데에도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가치는 여전히 착취·축적되고 있다. 여기서도 우리는 공통적인 것의 사회적 성격을 인식한다. 지성, 지식, 주목, 정동과 돌봄은 모두, 집단적 행동과 상호의존에 의해 규정되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능력들이기 때문이다. 공통적인 것의 거대한 삶정치적 저장고들은 자본주의적 통제로부터 자율적이 될 잠재력을 가진다.

셋째 종류의 분석은 자본의 발전이 지구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방식들과 관련된다. 특히 기후변화 분석은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가 화석연료의 추출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저자들이 인간이 기후변화를 야기함을 지적하면서 우리가 ‘인류세’(Anthropocene)에 진입했다고 말하는데, 이 인류세 담론은 인간 전부가 아니라 일부에 해당하는 자본가들이 기후변화의 책임자들임을 가린다. 지구의 장기적 건강을 보존하는 모든 기획에 필요한 선결조건은 자본주의의 지배의 우위에 도전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에 걸려있는 것은 공통적인 것이다. 빈자들이 가장 많이 고통을 받겠지만, 결국은 모두가 기후변화에 굴복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우리가 잃은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구축할 대안들에도 핵심적이다. 토착민들의 투쟁은 인간이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할 필요를 제기한다.

이 모든 분석들에서 모든 형태의 공통적인 것의 힘이 드러난다. 자본은 점점 더 공통적인 것을 포식하는 포획장치가 되지만, 공통적인 것의 영역들이 기동되어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는다면 자율의 잠재력 즉 자본주의의의 지배 너머의 사회적 관계들을 창출할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1. 계급다중계급

다양체(성)(multiplicity)이 점점 더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의 전적인 지평이 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장 감동적인 운동들―코차밤바에서 스탠딩락(Standing Rock)까지, 퍼거슨(Ferguson)에서 케이프타운(Cape Town)까지, 카이로에서 마드리드까지―은 다중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투쟁들에 특히 미디어가 종종 지도자부재라는 딱지를 붙인다. 이 운동들이 전통적인 중앙집중화된 지도를 거부하는 것은 맞지만, 지도자부재라고 하기보다는 다중의 투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그 부분적인 이유는 그러한 이해가 투쟁들의 미덕과 그들이 직면하는 도전을 공히 파악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 이 운동들은 중요한 성과를 얻었고 종종 더 나은 대안적 세상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단명했고 때로 쟁취한 것이 잔혹하게 역전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무언가 더 필요했고 정치적 조직화에 대한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사고가 요구되었다. 우리는 그 다양체성을 버리고 (선거로 뽑는 정당이든 ‘국민’이든) 통일된 정치적 주체를 구축할 필요를 설파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전통적인 조직형태들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지속적이거나 효율적인 운동을 낳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일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은 어떻게 다양체가 정치적으로 행동하면서 실질적인 사회변형을 낳을 힘을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오늘날의 운동이 가진 잠재력을 탐색하기 위해서 두 가지의 역사적·이론적 이행 즉 계급에서 다중으로의 이행과 다중에서 계급으로의 이행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는 얼핏 보기에는 왕복운동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론적·정치적 진전을 표시하려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다. 출발점의 계급과 도착점의 계급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다중을 통과하는 과정이 계급의 의미를 변형시킨다. 그래서 우리가 제시하는 조직화의 일반적 공식은 <계급―다중―계급′>(C―M―C′, class―multitude―class prime)이다. 맑스의 공식[『자본론』1권 4장에 나오는 자본의 일반적 공식(M-C-M′)을 말한다. 물론 자본의 공식에서는 M이 Money(화폐)이고 C는 Commodity(상품)이다]에서처럼 과정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변형이 중요하다. 계급은 다중적 계급, 교차적 계급이어야 한다.

계급에서 다중으로

계급에서 다중으로의 이행은 노동계급이 이제 다양체(성)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일반적 인정을 나타낸다. 이 이행은 전통적인 당들과 노동조합적 기관들이 노동계급을 대표한다는 주장이 가진 힘이 소진된 것에 상응한다. 노동계급이 경험적 형성체로서 없었던 적은 없지만, 이제 그 내적 구성이 변했기에 계급구성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협동과 공통적인 것의 힘들을 탐구해야 한다. 이에 더해, 노동하는 인구들 사이의 차이가 점점 더 획일화된 대의를 거부한다. 노동의 여러 부문들 사이―가령 임금을 받는 노동과 임금을 받지 않은 노동 사이, 안정 노동과 불안정 노동 사이, 합법적 노동과 비합법적 노동 사이―의 차이와 젠더, 인종, 민족 등의 차이들이 모두 표현을 요구한다. 이런 시점에서의 계급구성 연구는 교차적 분석(intersectional analysis) 안에 함입되어야 한다. 이는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다는 의미의 계급이 아니라 다중, 환원될 수 없는 다양체이다.

이와 함께, 계급에서 다중으로의 이행은 노동계급의 투쟁 및 반자본주의 투쟁 일반이 다른 지배의 축에 대한 투쟁들―페미니즘 투쟁, 반인종주의 투쟁, 탈식민 투쟁, 퀴어 투쟁 등―과 서로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중 개념은 (미국 흑인 페미니즘의 이론적 실천에서 출현한) 교차적 분석 및 실천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은 다양체성을 정치적으로 이론화한 것이다. 이는 인종, 계급, 성, 젠더, 국민 위계들이 서로 맞물려있는 특성을 인식함으로써 전통적인 단일축 분석틀들에 대항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이 첫째로 의미하는 것은, 지배의 그 어떤 구조도 다른 것보다 우선적이거나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고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며 서로가 서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배구조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성들도 다양체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정체성의 거부를 함축하는 것은 아니다. 주체성을 다양체성으로 조바꿈을 하여 (즉 다양체성의 관점에서) 다시 사고할 필요를 말한다.[원주32: 정치적 논의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술영역에서 교차성이 핵심 개념이 되면서 엄청난 양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바탕을 마련한 글들로 Kimberle Crenshaw, “Mapping the Margins”, Stanford Law Review, vol. 43, no. 6, 1991, and “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University of Chicago Legal Forum, no. 140, 1989 참조.  현재 진행되는 논의에 대해서는 Jennifer Nash의 통찰력 있는 책인 Black Feminism Reimagined: After Intersectionality, Durham nc 2019 참조.] 교차적 다중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더 많이 포함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반(反)복종 기획’(‘an antisubordination project’)이다. 즉 여러 전선들에서 동시에 전투 및 혁명을 전개하는 전략이다.

이 지점에서 계급에서 다중으로의 이행을 불안정성 개념의 두 가지 의미를 통해 고찰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첫째 의미는 임금 및 노동관계의 관점에서 파악된다. 이런 의미의 불안정성은 포디즘 경제의 규제적 이상(regulative ideal)이었던 안정된 고용계약―이는 제한된 수의 선진국 산업노동자들(주로 남성)에게만 현실로서 존재했던 규제적 이상이다―과 대조된다. 보장된 노동계약과 법은 점점 부식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비공식적 단기노동계약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러한 노동배치는 물론 항상 인종화, 젠더화되어 있지만, 노동력의 모든 부문들이 이 경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의미의 노동 불안정화는 신자유주의의 강력한 무기이다.

둘째 의미의 불안정성은 첫째에 대한 유용한 보완을 제공하며 훨씬 더 광범한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석(과 도전)의 일부로서 기능한다. 주디스 버틀러: 불안정성은 인구의 일정 부분이 사회적·경제적 지원네트워크들의 부실로 다른 이들보다 더 고통을 받으며 피해, 폭력, 죽음에 더 차별적으로 노출되는, 정치적으로 야기된 상태를 가리킨다. 노동 불안정성은 분명 전체의 일부이지만, 불안정한 삶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법·경제·통치상의 변화들이 이미 종속된 인구들의 광범한 부분―여성들, 트랜스젠더들, 동성애자들, 유색인들, 이주자들, 장애자들 등―의 불안정성을 증가시켰는지를 파악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언어를 말하는 불안정성이 있고 교차적 비전을 증진하는 또 하나의 불안정성이 있다. 이것을 합치면 다중을 이론화하는 좋은 토대를 갖추게 된다.

우리는 계급에서 다중, 혹은 민중에서 다중으로의 이동을 정치적으로 필수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이것은 이미 지난 20년 동안 달성된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계급에서 다중으로의 역사적 이행을 쇠퇴와 상실로 간주한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것은 아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과정에서 획득된 것 또한 인식해야 한다. 상호구성하는 지배구조들의 다양체는 사회현실을 파악하는 데 더 나은 렌즈를 제공한다. 여기에는 자본의 지배에 대한 연구를 인종, 젠더, 성 위계의 제도적 구조들에 대한 동등한 분석으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실천의 수준에서 가장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오늘날 성공적이고 지속적인 계급정치 기획이라면 반드시 페미니즘적·반인종적·퀴어적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급을 다시 사고하기

다양체를 이론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치적으로 힘을 발하려면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처음 제기한 물음―다양체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에 답하는 데 조직이 필요하다는 대답만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중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를 더 온전하게 탐구하기 위해서는 전과는 다르게 파악되는 바의 계급 개념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다중에서 계급으로 나아간다면 이전 단계에서 획득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의제기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의도는 노동계급하고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다양체인 계급, 다중의 성과를 이어나가는 정치적 형성체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선 계급개념을 노동계급과의 관련을 넘어 인종, 젠더를 포괄하여 사용하는 이론가들을 주목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음벰베(Achille Mbembe) 같은 이는 유럽으로 이주하는 아프리카인들에 가해지는 현재의 통제방식들을 ‘인종적 계급’(racial class)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그가 보기에 유럽은 그 국경들을 군사화하기로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더 멀리 가져다 놓았다. 오늘날 유럽의 국경들을 구성하는 것은 모든 개별 아프리카인들, 인종적 계급으로서의 모든 아프리카인들이다. 이는 피부색에 기반을 둔 인종주의의 신체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인간 신체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와 ‘우리’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그리는, 학대해도 처벌받지 않는 경계적 신체(border-body)이다.

새로운 이동성의 체제에서 아프리카인들은 ‘낙인찍힌 인종적 계급’으로 변형된다고 음벰베는 주장한다. 그에게 계급개념은 사회경제적 범주가 아니거나 그런 범주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피부색에만 기반을 두지 않는 집단적 인종적 차이를 사고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이 인종적 계급은 유럽의 인종주의적 구조들과 제도들에서 탄생한다.

음벰베와 유사한 것이 델피(Christine Delphy) 같은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성 계급’(sex class)이다. ‘성 계급’이라는 어구의 사용에 문제를 제기한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 델피는, 계급개념이 사회적 주체들이 지배관계들에 의해 창출되는 방식을 다른 어느 것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답한다. 이런 관점에서 델피는 이렇게 쓴다. “집단들은 ··· 관계 속에 넣어지기 전에는 구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관계가 바로 그들을 그들로 구성하는 것이다.” 델피에게는 지배관계가 사회적 주체들 이전에 존재하며 이 주체들을 구성한다. 또한 델피의 어법에서 계급은 전적으로 경제적 위치를 가리키지도 않으며 그 어떤 지배의 축에도 배치될 수 있는 분석의 절차와 관련된다.

음벰베와 델피를 거론한 것은 ① 첫째, 계급개념이 자본만이 아니라 모든 지배관계에 의해 창출된 종속의 효과들을 파악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② 둘째 계급개념은 서술적으로만이 아니라 종속된 사람들을 계급으로서 투쟁으로 불러내는 정치적 요청으로서 이용될 수 있다. ③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점인데), 병렬적으로 지배받고 투쟁하는 다수의 계급들을 인식하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다중적 계급’(multitudinous class)’ 혹은 ‘교차적 계급’(intersectional class)은 더 나아간 단계를 필요로 한다. 즉 그 다양한 차이나는 주체성들의 투쟁에서의 내적 마디결합(internal articulation)이 필요하다. 교차적 분석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마디결합을 연합과 연대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이는 종종 추가의 논리에 기반을 둔 전략을 반복한다. 달리 말하자면, 교차적 분석이 정체성과 관련된 추가적 사고방식[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가령 동일한 계급의식을 가진 집단으로 합류하는 것]을 거부할 때조차도 여전히 추가의 논리가 활동가들의 상상계를 지배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접근법의 한 약점은 유대의 관계가 외적이라는 점이다. 필요한 것은 내적 유대이다.

내적 유대의 세 이론적 사례들.

①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905년 봉기의 실패 후 독일 노동자들이 러시아의 동지들에 대한 공감과 지원을 표현했을 때 로자는 그 유대가 단지 외적인 관계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독일 혁명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러시아의 사건들이 바로 자신들의 사건이며 자신들의 투쟁에 내적인 사건들이라는 점, “그들 자신의 사회정치사의 한 장”임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② 아이리스 영(Iris Young)
로자처럼 영도 페미니즘 투쟁과 연대하지만 그 투쟁을 자신들의 투쟁과는 분리된 것으로 보는 남성동지들을 비판했으며 그런 유대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녀는 남성사회주의자들에게 가부장제에 맞선 페미니즘 투쟁을 그들 자신의 사회정치사의 한 장으로서 인식하기를 권고한다. 자본을 물리치는 것은 가부장제를 물리치는 것과 함께 이루어질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페미니즘적이기도 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③ 키앙가-야마타 테일러(Keeanga-Yamahtta Taylor)
그녀는 계급지배에는 초점을 두지 않는 미국의 반인종주의 활동가들에게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한다. 그녀는 반자본주의 투쟁이 백인의 과제로 간주되고 반인종주의적 투쟁은 유색인들의 과제로 간주되는 분리현상을 지적한다. 그녀는 이렇게 쓴다. “··· 노동계급은 백인이고 남성이며 따라서 인종, 계급, 젠더 이슈들을 취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 사실 미국의 노동계급은 여성이고 이주자이며 흑인이고 백인이며 라틴계이고 기타 등등이다. 이주자 이슈, 젠더 이슈 그리고 반인종주의는 곧 노동계급 이슈들이다.” 이는 우군의 참여를 받아들이거나 연대를 표하는 문제가 아니다. 백인우월주의에 맞서는 투쟁과 자본에 맞서는 투쟁은 서로 내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의제기가 이 시점에서 가능하다: 모두가 (앞에서 말한 두 가지 의미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같이 투쟁할 필요가 있는 것은 맞지만, 불안정성 및 지배의 양태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동일성의 투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체라는 생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적 지배는 젠더나 인종 지배와 같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다른 것 아래 포섭되지 않는다. 동일성으로의 환원 대신에 투쟁하는 주체성들 사이의 마디결합이 필요하다. 바로 그렇기에 연합보다는 계급―다중적 계급(a multitudinous class)―이 적절한 개념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다양체로 구성되고 사회적 협동과 공통적인 것의 형태들에 기반을 둘 뿐만 아니라 투쟁들 사이의 내적 유대와 교차에 의해 마디결합되고 각자가 다른 것들이 ‘자신들의 사회경제사의 한 장’임을 인식하는 그러한 계급 개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변형된 개념을 ‘계급’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는 과정 전체는 <계급―다중―계급>이 아니라 <계급―다중―계급′, C―M―C’>이다. 이것이 ‘다양체가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적어도 초기 단계의 이론적 응답이 될 수 있다. 그렇다. 자본, 가부장제, 백인 우월주의 및 기타 지배에 동등하게 맞선 투쟁을 지향하는 내적으로 마디결합된 다양체로서의 계급′이 정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형식적이고 개념적인 응답이긴 하지만, 예의 정치적 기획을 사고하고 추구하기 위한 틀을 제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1. 대안지구화를 찬양하며

1994년 멕시코의 치아파스에서 일어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반란, 1999년 11월의 시애틀에서의 WTO회의 봉쇄투쟁,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 맞서 2001년 브라질의 뽀르뚜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세계사회포럼>, 2001년 제노아에서의 G8 정상회담 반대투쟁. 이렇게 이어져 온 대안지구화 투쟁들의 국제적 순환은 여러 패배를 겪었다. 그 유목적 성격과 정상회담을 쫓아다니는 실천은 여러 경우 지역에서의 지속적 조직화에의 참여를 희석시켰다. 이 투쟁들은 종종 비판을 받았는데, 운동 내의 활동가들 자신들에 의해서 가장 크게 비판을 받았다. 그 이유는 교차적 특징들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직적 취약성 때문에 투쟁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또한 9∙11 때문에 설치된 혹독한 보안체제들에 의해 봉쇄되었으며, 활동가들은 그 초점을 대안지구화에서 반전운동으로 전환해야 했다.

이 투쟁들의 이례적 미덕은 그 이론적 실천이다. 이 투쟁들은 전지구적인 비판적 비전을 구축했으며 전지구적 경제기구들이라는 상대적으로 불명료한 영역이 가진 정치적 의미를 명료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투쟁들은 운동이라기보다는 출현하는 전지구적 질서의 성격에 대한 방대한 집단적 공동연구로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활동가들은 현재의 지배 구조들이 바로 전지구적 수준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직감하고 있었다. 각 투쟁은 새로이 출현하는 전지구적 권력구조 네트워크의 마디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게 했다. WTO, World Bank, IMF, G8, 무역협정들 등등. 이렇듯 대안지구화 운동의 순환은 대대적인 교육프로젝트였다.

국민국가 주권의 이데올로그들이 나팔을 불어댐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 질서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세력은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덜 명료하게 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지배적인 전지구적 질서의 구조를 연구할 지성을 가진 투쟁의 국제적 순환을 필요로 한다. 때로 사회운동에서 이루어진 이론적 작업이 도서관에서 쓴 이론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전지구적 질서의 구조의 비가시성을 역전시키는 것이 제국의 구조들에 도전하고 궁극적으로 전복할 수 있는 데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COVID-19와 자본의 회로

 


  • 저자  :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 원문 :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 2020년 5월호에 실린 글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5월호라고 하지만 3월 27일에 업로드되었다. (편집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본 블로그에 직전에 올린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와 싸샤 릴리(Sasha Liley)의 인터뷰에서 라인보는 이 글을 자신에게 생산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든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의 저자들은 모두 네 명이다. 롭 왈리스(Rob Wallace)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의 자문역을 한 바 있는 진화전염병학자(evolutionary epidemiologist)이다. 리브먼(Alex Liebman)은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의 인문지리학 박사과정 학생이다. 차베스(Luis Fernando Chaves)는 질병생태학자이며, 코스타리카의 트레스리오스(Tres Rios)에 있는 <코스타리카 영양 및 건강에 관한 연구교육원>(Costa Rican Institute for Research and Education on Nutrition and Health)에서 상임연구원을 한 바 있다. 로드릭 왈리스(Rodrick Wallace)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뉴욕주립 정신의학연구소>(New York State Psychiatric Institute)의 전염병학과의 연구과학자이다. * 정리자의 논평이나 설명은 대괄호 안에 삽입하기로 한다. 

COVID-19와 자본의 회로

 

계산

2002년 이후 가장 독한 호흡기증상 바이러스인 COVID-19는 이제 공식적으로 팬데믹이 되었다. 3월말 현재 도시들이 봉쇄되었고 환자들의 폭증으로 병원들은 응급실과밀화를 겪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상황 생략]

임페리얼 컬리지(Imperial College)의 전염병학 팀은 최선의 완화(발견된 환자의 격리와 연장자들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누적환자수의 상승하는 그래프 곡선을 꺾어서 수평에 가깝게 만드는 것)를 이루는 캠페인을 하더라도 미국은 110만 명이 사망할 것이고 환자의 수는 미국에서 가능한 전체 중환자병상 수의 8배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질병을 진압하려면 환자격리와 (기관들의 업무정지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거리두기 쪽으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을 이런 조치의 대표로 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의 사망자는 약 20만 명이 될 것이다.[5월 2일 현재 미국의 사망자는 65,711명이다.]

임페리얼 컬리지 팀은 성공적인 캠페인을 적어도 18개월 동안 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그 동안 경제가 수축되고 공동체 서비스들이 쇠퇴할 것이다. 이 팀은 가용한 중환자병상의 수에 따라 공동체 격리의 시행을 탄력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질병통제와 경제 사이의 균형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탈렙(Nassim Taleb)이 이끄는 팀은 임페리얼 컬리지의 모델이 접촉자 추적과 호별 모니터링을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모델은, 많은 정부들이 그런 식의 지역봉쇄를 기꺼이 행할 태도이지만 COVID-19는 그러한 태도를 가진 정부들을 제치고 발발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염병의 확산 기세가 쇠퇴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많은 나라들이 그런 조치들을 적절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는 너무 과격하다. 미국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대응할 수 있는 더 온건한 바이러스가 필요하다.”

탈렙 팀은 임페리얼 팀이 어떤 조건에서 바이러스가 절멸(extinction)에 이르는지를 연구하기를 거부하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절멸이란 환자수 0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환자들이 새로운 감염의 연쇄를 산출하지 않도록 충분한 고립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에서 감염자와 접촉한 감염 가능자들 가운데 5%만이 나중에 감염되었다. 탈렙 팀은 장기적으로 질병통제와 노동력공급의 보장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마라톤에 들어가지 않고 전면적으로 신속하게 질병을 절멸하는 중국의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이 글의 공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월러스(Rodrick Wallace)는 모델링 전체를 뒤집어엎는다. 비상상태의 모델링은 그것이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어디서 언제 시작할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원인들도 마찬가지로 비상상태의 일부이다. 이 구조적 원인들을 포함해야 경제를 단지 재가동하는 것을 넘어서 나아가는 최선의 대응책을 생각해낼 수 있다고 한다.

전염병 발발에 대비하고 대응하는 데 있어서의 실패는 12월 우한에서 COVID-19가 유출되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가령 미국에서 실패는 트럼프가 팬데믹 준비팀을 해체하거나 CDC의 7백 개의 자리들을 채우지 않고 두었을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연방정부가 2017년의 팬데믹 씨뮬레이션의 결과에 기반을 두고 행동하는 데 실패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미국이 바이러스 발발 몇 개월 전에 중국에 있는 CDC 전문가의 수를 삭감했을 때 시작된 것도 아니다. (물론 중국 현장에 있는 미국 전문가와의 직접적 접촉을 상실한 것이 미국의 대응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미 사용 가능한, WHO가 제공하는 진단키트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물론 초기 정보의 지체와 검사의 총체적 결여로 인해 많은 사람들, 필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을 것이다.)[42일 현재 미국 내의 사망자는 65,776명이다.]

실패는 수십 년 전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가 소홀히되고 화폐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즉 신자유주의의 시작과 함께] 실제로 프로그램되었다. 병상과 정상적 의료활동을 위한 장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때그때 발생하는 사례에 대응하는 개별화된 전염병학적 치료법에 의해 포획된 나라는 정의상 중국식 통제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들을 집결시킬 수가 없다.

이 글의 공저자 가운데 또 한 사람인 차베스(Luis Fernando Chaves)는 ‘숫자가 말하게 하기’는 이미 안에 함축된 모든 전제들을 가릴 뿐이라고 한다. 임페리얼 팀의 것과 같은 모델들은 분석의 범위를 지배적인 사회질서의 틀 안에서 협소하게 재단된 문제들에 명시적으로 국한된다는 것이다. 이 모델들은 그 의도상 전염병의 발발과 정치적 결정들을 추동하는 더 광범한 시장 세력들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 결과로 나오는 기획들―여기에는 질병 통제와 경제를 위한 통제해제가 교대로 일어나는 동안 죽음을 당할 감염에 취약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포함된다―은 모두의 건강의 확보를 부차적인 것으로 제쳐놓는다. 푸꼬가 말한, 국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인구에 작용을 가하는 것은 영국의 토리 정부와 네덜란드가 제안한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라는 맬서스적인 정책―인구 전체에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의 (비록 더 자애롭지만) 갱신판일 뿐이다. 집단면역이 전염병의 발생의 중지를 보장하리라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희망일 뿐, 그 증거는 거의 없다. 바이러스는 인구의 면역장막(immune blanket) 아래로부터 쉽게 진화해 나올 수 있다.

 

개입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나?

종합병원을 국립화한다. 검사의 양을 늘리고 소요시간을 줄인다. 약을 사회화한다. 의료종사자들의 보호를 극대화한다. 인공호흡기 등을 수리할 권리를 확보한다. 렘데시비르와 클로로콰인의 대량생산을 시작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한다. 인공호흡기와 보건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개인보호장비를 생산하도록 회사들을 강제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할당한다.

연구에서 돌봄까지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대적인 팬데믹 인력을 바이러스로 인한 수요의 수준에 근접하도록 확충한다. 증가된 환자의 수에 병상과 의료진, 그리고 필요한 장비의 수를 맞춘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COVID-19의 계속적인 공격에서 그저 살아남았다가 나중에 접촉자 추적과 환자격리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충분한 인력을 동원해서 가가호호 COVID-19를 포착해내고 마스크와 같은 필요한 보호장구를 갖추게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탈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를 정지시킬 필요가 있다. 질병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이 실행될 수 있기까지 대다수의 인구가 대체로 방치될 것이다. 정부들로 하여금 하기 싫어도 하도록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야 하므로 여건이 되는 사람들은 매일 새로 출현하는 상호부조단체들과 동네단체들에 참여해야 한다. 자원자들이 봉사활동을 하다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이 없도록 여력이 되는 전문적인 공공보건요원들이 이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바이러스의 구조적 기원을 비상상태 시의 계획과 연계시키는 것은 모든 발걸음이 이윤에 앞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 된다.

많은 위험 가운데 하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어리석은 생각을 규범화하는 데 있다. 우리는 또 하나의 사스(SARS) 바이러스가 야생의 은신처로부터 나와서 8주 만에 인간이 사는 곳에 전역에 퍼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받은 충격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바이러스는 특이식품(exotic food)의 지역 공급라인의 한 쪽 끝에서 출현했으며 다른 쪽 끝인 중국 우한에서 인간에서 인간으로의 감염연쇄를 성공적으로 개시했다. 거기서부터 전염병은 지역으로 확산되기도 하고 비행기나 기차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여행에 의해 구조화된 연결망을 통해 그리고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내려오면서 지구 전체에 퍼졌던 것이다.

야생식품시장을 전형적 오리엔탈리즘의 관점에서 보지 말라. ‘특이식품이 어떻게 더 전통적인 가축과 함께 우한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 팔릴 수 있게 되는가?’라는 명백한 질문을 생각해보자. 동물들은 트럭에서 혹은 골목에서 팔리는 것이 아니다. 관련되는 허가증과 대금지불(그리고 그 규제의 완화)을 생각해보라. 전 세계의 야생식품에 투여되는 자본과 산업생산에 투여되는 자본은 동일한 원천에서 나온다. 비록 산출량의 크기는 어디에서도 비슷하지 않지만, 그 구분은 지금 더욱 불투명하다.

중첩되는 경제적 지리는 우한 시장에서부터 특이식품들과 전통적인 식품들이 재배되는 후배지들로 뻗어있다. 산업생산이 가장자리의 숲을 침범할 때, 야생식품업은 더 깊이 들어가거나 가장자리 지역을 공략해야 한다. 그 결과 가장 특이한 병원체들이, 가령 이번 경우에는 박쥐를 숙주로 삼는 SARS-2가, 식용동물들을 통해 혹은 그것을 다루는 노동자들을 통해 트럭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침투

어떤 병원체들은 바로 생산의 중심지들에서 발생한다. 살모넬라(Salmonella)와 캄필로박터균(Campylobacter)처럼 식품을 통해 감염되는 박테리아가 그렇다. 그러나 COVID-19를 비롯한 다수의 병원체들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프런티어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인간 병원체의 적어도 60%가 야생동물에서 해당 지역의 인간 공동체들로의 유출(spillover)에 의해 발생한다. 그 다음에 세계의 다른 곳으로 전파된다.

콜게이트-팜올리브(Colgate-Palmolive)와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이들은 기업식 농업이 주도하는 삼림파괴의 유혈 낭자한 가장자리를 밀어붙이는 회사들이다―으로부터 일부 재정을 지원받는 이들을 포함한 에코헬스(ecohealth)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이전의 전염병 발발에 기반을 두어 새로운 병원체들이 출현할 법한 곳이 앞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세계지도를 만들어냈다. 색깔이 붉은 색에 가까울수록 새로운 병원체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이 지도에서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및 아프리카의 일부가 붉다. 그런데 이 지도는 절대적 지리(absolute geographies)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중대한 점을 놓쳤다. 발발 지역에 초점을 두는 것은 전염병학을 형성하는 전지구적인 경제적 요인들이 공유하는 관계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들에서 개발과 생산에 의해 토지사용과 질병출현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후원하는 자본가 세력은 발발의 책임을 토착민들과 그들의 ‘더럽다’고 추정되는 문화적 관행들에 지우는 노력에 보상을 해준다. 야생동물고기를 먹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집에서의 시신의 매장이 새로운 병원체의 출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두 가지 관행이다. 이와 달리 관계적 지리(relational geographies)의 관점에서 보면 갑자기 전지구적 자본의 핵심 원천인 뉴욕, 런던, 홍콩이 세계의 최악의 핫스팟 가운데 세 곳이 된다.

발발지역들은 심지어 전통적인 정치체들에 의해 조직되어 있지도 않다. 불평등한 생태교환이 (이는 산업화된 농업으로부터 온 최악의 피해를 글로벌 사우스에 돌린다) 이제는 국가가 주도하는 제국주의에 의한 지역 자원 약탈의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규모와 상품이 관련되는 새로운 복합체의 형태로 일어난다. 기업식 농업은 그 추출주의적 작업을 상이한 규모의 영토들을 가로지르는 공간적으로 불연속적인 네트워크들로 전환시켰다. 가령 일련의 다국적기업 기반의 ‘콩 공화국들’(Soybean Republics)은 현재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걸쳐있다. 이 새로운 지리는 회사관리구조, 자본조달, 하청, 공급체인대체, 임대 그리고 초국적 토지공동이용(land pooling)에서의 변화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 ‘상품 공화국들’은 여러 국경 사이에서 여러 생태들과 정치적 경계들을 가로지르면서 새로운 전염병학적 현상들을 산출하고 있다.

전염병의 발발과 관련하여 도시와 시골을 나누는 이분법은 시골이 도시 주변의 ‘desakotas’(city villages, 도시 마을들)나 ‘zwischenstadt’(in-between cities, 사이 도시들)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그 결과 병원체의 원초적 원천인 숲질병 동학은 이제 후배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와 연관된 전염병학적 현상들도 관계적이 되었으며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스(SARS) 같은 것이 박쥐 동굴에서 나온 지 며칠 만에 대도시의 인간들에게로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야생’ 바이러스들이 열대림의 복잡성들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통제되었던 생태계들은 자본이 주도하는 삼림파괴와 공공보건 및 환경위생의 결핍에 의해 철저하게 간소화되고 있다. 많은 야생 조수(鳥獸)에서 발생하는 병원체들은 숙주와 함께 죽지만, 숲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퍼졌던 일부 병원체들이 이제는 감염에 취약한 인간집단(이들의 취약성은 종종 도시들에서 긴축정책과 부패에 의해 부실해진 규제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을 가로질러 증식하고 있다. 효과가 있는 백신이 있어도 발발한 전염병은 이전보다 더 큰 범위, 더 긴 지속기간, 더 큰 동력을 가진다. 한때 지역에 국한된 유출(spillover)이 지금은 전 지구를 가로지르는 유행병이 된 것이다.

이렇게 환경이 변한 것만으로 에볼라(Ebola), 지카(Zika), 말라리아(malaria), 황열병(yellow fever) 같은 예전의 전형적 병들이 (이는 비교적 진화를 적게 한다) 위협적이 되었다. 이 병들은 먼 마을들로 유출되고 다시 큰 도시들로 퍼져 수천 명을 감염시켰다. 오랜 동안 질병의 저장소였던 야생동물들도 블로우백(blowback)을 겪고 있다. 적어도 100년 동안 노출되어온 야생유형의 황열병에 걸리기 쉬운 토착 신세계원숭이들(New World monkeys)은 삼림파괴에 의해 뿔뿔이 흩어져서 그들의 집단면역 능력을 잃고 있으며 수십만 마리씩 죽어가고 있다.

 

확산

기업화된 농업은 여러 기원을 가진 병원체들을 가장 멀리 있는 저장소로부터 가장 국제적인 인구 중심지들까지 이동하게 하는 동력이자 그러한 이동의 연결망으로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병원체들이 농업 공동체들로 침투한다. 연관된 공급체인이 길수록, 그리고 연관된 삼림파괴의 범위가 클수록 푸드체인에 진입하는 동물원성 병원체들이 더 다양해진다. 최근에 (재)발생한 식품에 의해 전달되며 인간의 활동에 의해 유발되는 범주에 속하는 병원체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속한다. African swine fever, Campylobacter, Cryptosporidium, Cyclospora, Ebola Reston, E. coli O157:H7, foot-and-mouth disease, hepatitis E, Listeria, Nipah virus, Q fever, Salmonella, Vibrio, Yersinia ( 그리고 H1N1 (2009), H1N2v, H3N2v, H5N1, H5N2, H5Nx, H6N1, H7N1, H7N3, H7N7, H7N9, H9N2를 포함하는 다양한 신종들).

아무리 의도치 않았다고 해도 생산의 전체가 병원체의 유독성의 진화와 전염을 가속화하는 관행들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있다. 점증하는 유전자 단작(monoculture)―거의 동일한 게놈을 가진 식품용 동물과 식물―이 전염속도를 늦추는 방역 방화벽을 제거한다. 지금 병원체들은 평상적인 숙주 면역형질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인구밀집이라는 조건이 면역반응을 억제한다. 농장의 동물 개체수의 크기와 밀집도가 더 신속한 전염과 반복적인 감염을 촉진한다. 산업생산의 특징인 큰 처리량은 취약개체들의 공급을 계속 갱신하여 병원체의 치명성의 상한선을 제거한다. 동물들을 한 건물에 몰아넣는 것은 가장 잘 퍼질 수 있는 변종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도살 시기―닭의 경우에는 6주―는 병원체들이 더 튼실한 면역체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데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산 동물의 교역의 범위가 넓어짐으로써 게놈의 다양성이 증가되고 연관된 병원체들이 교환되어 그 진화 가능성의 탐색 속도가 빨라진다.

병원체의 진화가 이런 식으로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개입은 심지어는 산업 자체가 요구하는 경우일지라도 (전염병이 발발한 비상상태에서 한 분기의 재정수익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것 말고는)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다. 전체적인 경향은 농장들과 가공공장들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점점 더 줄어들고 정부의 감시와 활동가의 폭로에 반대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며 치명적인 전염병 발발의 세부에 관해 미디어를 통해 보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농약과 식용돼지의 오염에 맞선 법정 싸움에서 최근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기업의 생산은 여전히 전적으로 이윤에 초점을 맞춘다. 전염병의 발발로 야기된 피해는 가축, 농작물, 야생, 노동자들, 지역 및 일국 정부들, 공공보건 시스템들에 외화되며, 자국의 우선성이라는 태도로 인해 해외의 대체 농업시스템들(agrosystems)로 외화된다. 미국에서 CDC는 식품에 의해 전달되는 전염병 발발이 여러 주들과 감염된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자본이 초래하는 소외는 병원체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공공 이익은 농장 및 식품공장의 문에서 걸러내어지는 한편, 병원체들은 산업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바이오안전을 지나쳐 퍼지고 공중에게로 되돌아간다. 매일 이루어지는 생산은 우리의 공유된 건강 커먼즈(health commons)를 갉아먹는 수지맞는 도덕적 해이를 내장하고 있다.

 

해방

바이러스의 발생지에서 지구의 반만큼 떨어져 있는 뉴욕, COVID-19 때문에 이동제한이 걸려있는 뉴욕에 아이러니가 있다. 3년 전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제이피모건(JPMorgan), 아메리카은행(Bank of America), 시티그룹(Citigroup), 웰스파고(Wells Fargo & Co). 그리고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는 연방정부의 비상대출금의 63%를 취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의 거대한 기업식 농업의 일부를 차지하는 Shuanghui Investment and Development의 주식 60%를 취했다. Shuanghui Investment and Development는 미국에 본사를 둔 Smithfield Foods―세계에서 가장 큰 식용 돼지고기 생산회사―를 샀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3억 달러로 푸젠성과 후난성―우한의 바로 아래 지역이며 도시의 야생식품 조달권 내에 있다―에 있는 10개의 가금농장의 소유권을 얻어냈다. 또한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와 함께 같은 지역의 식용 돼지사육에 3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렇듯 COVID-19의 발발의 원인들의 고리의 일부는 애초에 뉴욕에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의 농업의 크기에 비해 골드만삭스의 투자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말이다.

트럼프가 인종주의적으로 ‘중국 바이러스’ 운운하는 것과 같은 민족주의적인 손가락질은 국가와 자본이 서로 전지구적으로 엮여있는 상황을 가린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발생하며 국가가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팬데믹은 체제의 관리자들과 수혜자들이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2월 중순에 5명의 미국 상원의원들과 20명의 하원의원들은 팬데믹이 오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산업분야들에서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수백만 달러의 주식을 싼 값에 팔았다. 정치꾼들은 팬데믹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공적인 메시지가 계속적으로 나오는 가운데 대중에게는 발표되지 않은 정보를 기반으로 내부자거래를 했다. 미국의 부패는 이런 이기적인 탈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걸친 것으로서 자본이 빠져나갈 때 미국의 자본축적 사이클이 종말을 맞음을 알리는 표시이다.

생태학(그리고 그와 연관된 전염병학)의 현실보다 금융을 더 우위의 놓는 사물화된 태도를 중심으로 자본의 물줄기가 계속 분출되도록 하려는 노력은 무언가 좀 시대착오적이다. 이런 노력의 관점에서 보면 팬데믹은 가령 골드만삭스에게도 성장의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계속되는 살육에 섬뜩해진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와 다른 결론들을 낸다. 병원체들이 방사성 꼬리표(radioactive tags)[‘방사성 꼬리표달기’는 어떤 원소의 정상적인 동위원소를 방사성 동위원소로 대치하여 그 원소를 추적하는 것을 가리킨다]처럼 차례차례 표시하는 자본과 생산의 회로들은 터무니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우리 그룹은 치명적인 질병의 출현을 낳은 삼림파괴를 항상 토착민들과 지역 소자작농들 탓으로 돌리는―에코헬스(ecohealth)[Ecohealth Alliance를 말하는 듯하다]와 <원 헬스>(One Health)에서 발견되는―근대의 식민 의료를 넘어서는 모델을 도출하는 중이다. [주석으로 달린 “The dawn of Structural One Health: a new science tracking disease emergence along circuits of capital”의 저자들―일부 저자들이 이 글의 저자들과 겹치는 것으로 보아서 두 글의 입장은 동일한 듯하다―은 ‘One Health’가 가축유행병 유출의 사회적 규정요인들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이 결핍을 메운 자신들의 모델을 ‘구조적 원 헬스Structural One Health’라고 부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인 질병 출현에 대한 우리의 일반이론은 아래와 같다.

자본의 전지구적 회로가 근본적인 문제다. 더 구체적으로는 유독한 병원체들의 개체수의 성장을 억제하는 환경복합성을 파괴하는 식의 자본 배치가 문제다. 그 결과로 병원체가 유출되는, 즉 원래의 야생동물 숙주에서 나와 인간 공동체로 진입하는 사건들의 속도와 분류학상의 폭이 증가한다. 도시 주위의 확장된 상품회로들이 이 유출된 병원체들을 가축과 노동력을 매개로 후미진 지역에서 해당 지역의 도시들로 옮긴다. 증가하는 전지구적 여행(및 가축 교역) 네트워크가 병원체들을 이 도시들에서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재빠르게 배달한다. 이 네트워크들이 전염과정에서의 마찰을 낮추어 가축과 인간 모두에서 더 치명도가 높은 병원체의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가축의 생식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즉석에서 (그리고 거의 무상으로) 질병으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인 자연선택이 제거된다.

심층에 있는 전제는, COVID-19와 그와 같은 기타 병원체들의 원인은 어떤 한 감염원이나 그 임상과정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 및 기타 구조적 원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고정시켜 놓은 생태계 관계들의 장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탈소외(disalienation)가 다음의 거대한 인간의 이행방향이다. 정착자 이데올로기를 버리는 것, 인류를 재생성의 순환으로 되돌리는 것,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 다중들 속에서 개인화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원인을 경제에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머리가 여럿인 히드라로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전유하고 내화하고 질서짓는다. 자본주의는 인종, 계급, 젠더가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는 지형을 가로질러 작동한다.

우리는 탈소외를 통해 이 다양한 억압의 위계들과 이 위계들이 지역마다 특수하게 축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들을 해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의 확대되는 재전유의 반경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일종의 전체주의로 귀결되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 심지어는 지속 가능성 자체도 상품화된다. 그리고 이는 공장과 농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어디서나 온갖 방식으로 시장에 종속되어 있다.

자본 및 자본의 지역 대표자들과의 전지구적 규모의 충돌이라는 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업식 농업은 공공보건과 전쟁을 하고 있으며, 공공보건이 지고 있다. 이 싸움에서 이긴다면, 우리의 생태를 경제와 다시 연결하는 전지구적 물질대사로 되돌아갈 수 있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문제 이상의 것이다. 우리는 직접적인 해결책들에 집중한다. 병원체의 성장을 억제하는 숲의 복잡성을 보호한다. 가축 및 농작물의 다양성을 다시 도입하며, 병원체의 유독성의 증가와 범위 확대를 막는 범위의 동물사육 및 농작물 재배를 재도입한다. 동물들의 현장에서의 자연생식을 허용하여 병원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게 하는 자연선택을 재개한다. 크게 보면,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으로 가득한 자연과 공동체를 시장에 의해서 제압되어야 할 또 하나의 경쟁자로 취급하기를 그친다.

하나의 세계를 탄생시키는 것―바로 이것이 우리의 출구이다. 지구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또한 현재의 절박한 문제들의 다수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뉴욕에서 베이징까지 이동제한이 걸려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그런 발발을 다시 겪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전염병은 그간의 역사 대부분을 볼 때 때이른 죽음의 가장 큰 원천이었기에 언제나 위협이 된다. 우리는 1918년부터 지금까지의 100년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 내에 또 하나의 치명적인 팬데믹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자연을 전유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조정하여 이 전염병과의 더 나은 휴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 저자  : Peter Linebaugh, Sasha Liley
  • 원문 :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 (https://kpfa.org/episode/against-the-grain-april-8-2020/)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Pacifica radio>의 프로그램 ‘Against the Grain’에서 2020년 4월 8일에 있었던 싸샤 릴리(Sasha Liley)와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의 인터뷰 내용을 (약속한 대로^^) 정리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상황에서 라인보가 30년 전인 1989년에 쓴 팸플릿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인터뷰 당사자들에 의해 읽기 좋게 편집된 텍스트는 정리자가 알기에 현재로서 없으며, 정리자가 직접 팟캐스트를 듣고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했다. 내용 정리이지만, 잘 읽힐 수 있도록 인터뷰의 형식과 어투는 유지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내용을 이미 정리해서 옮겼으니 서로 교차해서 참조할 수 있다.

라인보가 말하는 팬데믹의 긴 역사

싸샤 릴리(Sasha Liley)
인간의 역사 전체에 걸쳐서 바이러스들과 기생체들이 인간을 괴롭혀왔습니다. 계급사회의 출현 이래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고통에서 이익을 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기생체들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역사가 피터 라인보(Perter Linebaugh)는 HIV 에이즈라는 유행병이 도는 와중에 이 역사를 추적한 바 있습니다. 라인보는 『마그나카르타 선언』(The Magna Carta Manifesto), 『메이데이의 완결되지 않은, 진실하고 진정하며 놀라운 역사』(The Incomplete, True, Authentic, and Wonderful History of May Day) 등의 저자입니다. 가장 최근의 저서로는 『뜨겁게 불타는 붉고 둥근 지구』(Red Round Globe Hot Burning)가 있습니다. 라인보, 당신은 1989년에 <ACT UP>(the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민중의 힘을 촉발하기 위한 에이즈연합)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는데요,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라고 이름을 정한 팸플릿을 쓰게 된 맥락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
저는 보스턴에서 <ACT UP>이 한창 투쟁을 하는 가운데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저는 역병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에 대한 우리의 기억 자체가 우리의 힘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전의 세계사에 일어났던 10개의 역병들을 간단히 알아보는 일이, [COVID-19 팬데믹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해온 싸움의 와중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수 있으며, 그로써 이 질병을 인종주의적 방식으로, 동성애혐오증적 방식으로 그리고 타자에 대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데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조성되는 공포가 불안정과 공포의 조건에서 번성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연결고리입니다.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역병이 도는 때는 민중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때이지만 동시에 사회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고대 그리스, 이집트로 가서 이 점에 대해 고찰합니다. 역사가의 눈으로 이러한 사회 질서의 전복 가능성에 대해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민중이 겪는 공포, 혼란 그리고 가난의 심화라는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요.

라인보
우선적으로 말해야 할 핵심은 전염병, 역병, 팬데믹이 치명적이라는 점, 즉 인간 개인들, 가족들, 공동체들을 파괴하며 때로는 인간의 생존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역병들은 사회적 삶의 재생산이라는 기획 일체와 필수적인 연관을 가집니다. 그래서 전염병들은 적어도 과거에는 역사적인 힘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전염병들에 대한 여러 대응들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가령 대략 2000년 전인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인간의 질병 유전자풀이 지중해 지역에서 형성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최초로 혼합된 것이지요. 아마도 이는 대륙간 통상의 한 측면일 겁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강력한 종교들이 (일신론적 종교들입니다) 형성되었습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기축시대’(axial age)를 말할 때 그는 이 종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Achsenzeit(Axial Age)’라는 말은 1949년 출간된 야스퍼스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Vom Ursprung und Ziel der Geschichte, The Origin and Goal of History)에 처음 등장하며, 기원전 800년에서 300년 사이에 페르시아, 인도, 중국,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철학에서 병렬적으로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등장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당시에는 도시국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도 형성되고 있었지요. 이때에는 사람들이 전염병들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신들이 이 질병들을 발생시킨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박테리아도 알지 못했고 바이러스도 알지 못했으며 세포생물학도 없었습니다. 수천 년을 지나 바로 우리 시대에 들어와서야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이지요.

도시 전체가 지워져버릴 수도 있는 그러한 위기에서 그에 대한 여러 계급적 반응이 있었습니다. 저를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로 이끈 허스턴(Zola Neale Hurston)은 파라오와 맞선, 지팡이를 든 모세를 이야기합니다. 허스턴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역병·기근·기아를 마음대로 부리는 파라오를 물리치는 모세의 힘, 그의 대항마법(counter-magic)입니다. 이 대항마법은, 흑인 민속지식에 대한 허스턴의 지식에 따르면, 모세가 파라오의 마구간지기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이 마구간지기는 이 마법을 말들 사이에서 일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을 모세에게 공짜로 준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멘투(Mentu)가 해주는 ‘도마뱀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에게 전염병들을 아래로부터 보기를 권하기 위해, 파라오나 벼락을 던져대는 야훼를 제시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역사로서 보기를 권하기 위해 ‘lizard talk’라는 어구를 사용했습니다. [‘lizard talk’는 허스턴의 소설에서 다음 세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①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크게는 세상의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역사, 작게는 인간의 여러 행동들에 대한 논평). ② 멘투가 도마뱀이 해주듯이 해주는 이야기(이야기의 내용은 ①과 같다). ③ 멘투가 해준, 도마뱀(및 기타 동물들)도 이러저러한 말을 한다는 이야기. 나중에 (멘투는 이미 죽고 없는 때이다) 모세는 ‘기억들의 보관자’(keeper of memories)인 ‘수염난 도마뱀’을 찾아간다. (이때 모세는 예전의 멘투처럼 도마뱀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모세는 우연히 만난 늙은 도마뱀에게 ‘수염난 도마뱀’이 시나이 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시나이 산을 찾아가는데 아마도 거기서 그가 ‘수염난 도마맴’에게 들을 ‘liard-talk’는 기독교의 정사에 나오는 야훼에게서 받은 십계명과 대조될 터이다. 전자는 아래로부터의(from below) 지식을 나타내고 후자는 위로부터의(from above) 지식을 나타낸다.]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 마구간지기의 이름인 ‘멘투’를 다시 언급하게 되니 반갑군요. 제 의도는 지상의 힘, 우리 인간의 힘, 우리의 공통적인 힘이 지배자들의 손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종종 우리도 잘 모르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작동하지만 말입니다. 이는 팬데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물론 팬데믹에 대한 지식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여러 모습의 멘투들에게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서도, 경험에서도 오지요. 어떻든 저의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을 겪는 다중과 지배계급을 대조시키는 것, 힘의 두 형태를 대조시키는 것. 그것이 역사적인 역병들의 경우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파라오를 다룬 다음, 투키디데스와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의 역병들을 다루고, 로마 시대의 역병들을 다루며 물론 중세의 중앙 유럽을 강타한 큰 역병들을 다룹니다. 이런 식으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가 계속됩니다.[라인보=도마뱀=멘투]

제가 <ACT UP>에 그런 메시지를 전한 것은 <ACT UP>이 우리에게 새로운 모델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ACT UP>의 현장 활동가들은 발견·조사를 하도록 촉구할 수 있었으며, 그 자신들이 깊이 고통을 겪은 사람들로서 치료를 낳을 수 있는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이 질병을 겪는 사람들에게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이 ‘공공보건의 커먼즈’(the commons of public health)의 주된 원리입니다.

릴리
우리가 사회적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집단적으로 함께 모여야 하는데, 무심코 행한 사회적 상호작용조차도 바이러스를 퍼지게 할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팬데믹의 시기에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모순입니다.

라인보
네, 정말 큰 모순입니다. 에이즈위기에서 우리가 배운 것, 그리고 이전의 전염병들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조금 전에 말했듯이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치료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도시봉쇄(lock-down)는 아니지만―집에 있으면서 외출을 자제해야 하고 공동체적 관계들이 정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간호, 배고픈 사람들을 돌보기, 죽은 사람들을 묻기와 같은 일들은 아무리 끔찍한 인간의 위기상황에서도 남아있습니다. 자애를 베푸는 인간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 죽은 사람들과 관련하여 일하는 것은 대중모임의 금지나 기타 형태의 공동체적 활동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인간애의 엄청난 재천명인 것입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상업활동은 종종 가장 최소로, 혹은 가장 나중에 정지되지요.

릴리
정말 그렇습니다. 또한 팬데믹의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당신이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고대 역사를 되돌아보며 말했듯이 상이한 이념들과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점입니다. 당신이 말했던 아래로부터의 지식과 같은 것도 있고 반대로 우리를 일종의 숙명론이나 현실수용적 태도로 몰고 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제가 뜻하는 것은 가령 당신이 언급한, 옛날의 종교들이 팬데믹 시기에 한 복합적인 역할들 같은 것입니다.

라인보
네, 그러죠. 계급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문제를 두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억압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에도 적용되고 전염병들에도 적용됩니다. 제 생각에는 거의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위로부터 사고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뉴스에서 들은 것,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지는 멘투를 다시 도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팸플릿은 종교의 사회학이 아니며 분명 포괄적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ACT UP>의 활동에 고취되고 역병의 역사를 다룬 맥닐(William McNeill)의 책[Plagues and Peoples, 1976]에 촉발되어 이 팸플릿을 썼습니다.

아시겠지만, 최근 『네이션』(The Nation)지에서 『뉴요커』(The New Yorker)지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우리가 읽을 책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각자 집에 있는 동안 책을 읽으라는 거지요. 학자인 저도 책을 읽습니다만, 생각해보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도시를 도망칠 여유가 있던 부유한 층을 위해서 그리고 그 부유한 층에 대해서 쓴 작품입니다. 『데카메론』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든 각본작가들의 책꽂이의 사전 옆 자리에 놓여있습니다. 100개의 플롯들을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위해 다시 다듬기 위해서죠. 이 이야기들은 선페트스(bubonic plague)가 돌고 있던 1340년대에 동포 인간들을 놔두고 피렌체를 도망친 사람들이 스스로를 즐겁게 할 수단으로서 한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오락으로 의도된 형태의 작품이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 것이에요. 물론 이 이야기들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당연히 대단한 이야기들이죠.

릴리
당신은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유행병의 문학은 도피의 문학이라고 썼습니다. 문학창작가들이 지배계급으로부터 보수를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지배계급의 대응은 그것이 존재할 경우에는 언제나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바로 이런 동학을 거론했습니다. 바로 지금 사람들이 생산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상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현상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라인보
물론이죠, 저도 넷플릭스(Netflix) 앞에 딱 붙어 있습니다만, 이는 저에게 특별히 생산적이지 않습니다. 공공보건 전문가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생산적입니다. 저는 가령 핫스팟이 되고 있는 여기 미시건주의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계속 알려줄 수 있는 공공보건 간호사에게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알싸이드 박사(Dr. Abdullah Al Said)가 COVID-19와 연관된 더 심층적인 하부구조 차원의 광범한 유행병에 대해서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물 공급의 거부, 삶에서의 안전의 거부, 주택의 거부가 바로 이 하부구조 차원의 유행병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담수저장소(fresh water reserve)가 있는 미시건 주인데 디트로이트에서는 물공급이 끊겼고 플린트에서는 물에 납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디트로이트 시 당국은 2014년부터 수도료를 내지 못하는 가구들에 수돗물의 공급을 끊었고 시민들은 이에 맞서 투쟁을 조직해왔다. 한 미시건 지역 뉴스잡지의 2020년 3월 26일자 기사에 따르면 2019년에만 23,000 가구에 수돗물 공급이 차단되었다. 시당국은 COVID-19 국면에서도 처음에는 이 물공급차단(water shutoffs) 정책을 유지하려 했는데, 손을 씻는 것이 COVID-19의 확산을 막는데 필수적이라는 여러 전문가들의 확정된 견해로 인해서 정책을 바꾸어 3월 9일에 수돗물 서비스를 재개했다. 월 25달러를 내면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데, 수도료 지불은 팬데믹 국면 이후로 연기된다. 디트로이트 시장은 팬데믹이 끝나면 다시 공급중지가 재개된다고 말했다. 한편 2014년 플린트 시는 수원을 디트로이트의 물(휴런Huron호)에서 플린트강물로 바꾸었는데, 물에 부식방지제를 넣지 못하여 오래된 관의 납이 침출되어 공급되는 물로 섞여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높은 수준의 중금속 신경독을 발생시켰고 10만 명 이상이 주민들이 납에 노출되었다. 이와 관련된 본 블로그의 글로 http://commonstrans.net/?p=859 참조.]

이는 그저 악행이거나 사고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물에 대한 요구를 짓밟은 의도적 범죄입니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 신선한 식품을 먹지 못하는 것, 지붕으로 비바람을 막지 못하는 것―이것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킨 COVID-19의 가속적인 확산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알싸이드 박사는 (그는 디트로이트보건국의 국장을 지낸 바 있으며 존경받는 전염병학자입니다) 바로 이 점을 분명히 하며, 저도 과거의 역병들을 훑어보면서 각 역병이 그 당시에 인간이 창출한 사회·경제적 구조들과 특수한 연관을 가진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도시의 거주지이든 상업자본주의든 심지어는 미국과 같은 거대한 부르주아 공화국이든 말이죠.

아시다시피 미국은 인종주의 및 강도질[무엇보다 백인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땅을 강탈한 것을 가리킨다]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 곳입니다. 인종주의와 강도질은 흑인들이 당시 수도인 필라델피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했던 1793년 황열병이 돌던 때에 생겨나서 매우 빠르게 퍼졌습니다. 이때 흑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고 아픈 사람들을 간호했으며 시체들을 매장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면역력을 얻거나 황열병에서 살아남아서 목숨을 걸고 이런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이런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로 악마화되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온 사람들’은 1950년대에 오면 매카시즘의 ‘빨갱이’로 대체된다.] 이때 아이티에서는 세계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들 가운데 하나가 한창이었죠.

릴리
막 언급하신 시기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18세기 말에 그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황열병의 발발이 그 때의 정치를 아래로부터 그리고 위로부터 어떻게 형성했나요?

라인보
먼저 위로부터 일어난 일을 보면.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도시에서 도망쳤고요, 해밀턴(Alexander Hamilton)도 도망갔습니다. 대부분이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수도를 떠났어요. 이런 식으로 그들은 군사 공화국을 보존하여 오하이오강 계곡(the Ohio river valley)을 포위하고 애팔래치아산맥을 넘고 포타와토미족(Potawatomi)[미시시피강 상부와 오대호 서부에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쇼니족(Shawnee)[오하이오 계곡 지역에 살았던 북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및 기타 그곳에 사는 많은 부족들로부터 땅을 훔치는 데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황열병은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흑인들을 악마화했던 것입니다.

이때는 세계사에서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두 일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그 하나는 황열병이 강타하기 몇 달 전인 1793년 2월, 도망노예법(fugitive slave act)[특정 주에서 다른 주 또는 영토로 도망간 노예의 반환을 규정한 법]이 조지 워싱턴의 서명으로 통과된 일입니다. 이로써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 미국 전체의 노예들에 대한 백인의 지배가 확대되었습니다. 둘째는, 1793년 봄에 일어난 일인데요, 조면기(the cotton gin)의 발명입니다.[발명가 휘트니Eli Whitney가 발명했으며 1794년에 특허를 획득했다.] 이 기술이 면화체제의 남부로의 확대, 인도의 면화생산의 파괴, 이집트와 오토만 제국의 면화생산의 파괴를 가능하게 하고 영국에서의 공장체제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제 아래로부터 일어난 일을 봅시다. 우리 모두 1793년 황열병 발발 시 멘투가 누군지 알 것입니다. 한때 노예였던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와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입니다. 앨런은 아프리카감리교감독교회(AME Church,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를 만들었고 이 교회는 그 이후 일종의 공동체가 유지되는 한 형태로서 존속했습니다. [존스와 앨런은 감리교에서 설교를 하도록 승인받은 흑인 목사 가운데 속했다. 존스와 앨런은 Free African Society (FAS)를 창립했으나, 1794년 이후 일의 방향이 달라서 각기 다른 길을 갔다. 둘은 평생 친구로서, 협력자로서 남아있었다.] 이는 백인우월주의가 가진 인종주의의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교회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배격당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분명 황열병의 결과로 아래로부터 일어난 다른 움직임들도 있을 것입니다.

릴리
남·북아메리카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은 유럽인들이 남·북아메리카에 가져온 전염병이 끼친 엄청난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점에 대해 말해주시겠습니까? 이른바 신세계의 발견과 남·북아메리카를 재형성하는 데서 질병과 정복이 교차하는 모습에 대해서요?

라인보
14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유행병이 멕시코를 유린했고 17개가 페루를 강타했습니다. 대부분 천연두였습니다. 정복된 지 10년 만에 멕시코의 인구는 25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200만 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천연두 및 다른 두 전염병이 저지른 집단학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배운 것은,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광산에 가두고 과도하게 노동을 시킨 것이 이러한 거대한 말살을 거들었다는 점, 그래서 천연두의 확산과 착취의 형태들은 쉽게 분리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매더(Cotton Mather)는 뉴잉글랜드에서 1616-1617년에 돈 전염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했습니다. 집단학살에 전염병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죠. 이런 일은 한 세기 후인 1760년대에 앰허스트(Amherst) 장군에 의해서도 벌어졌는데, 그는 지금은 펜실베이니아인 곳의 원주민들을 해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로 잔뜩 감염시킨 자선 담요들을 원주민들 사이에 배포했습니다.

이렇듯 이제 전염병은 전쟁의 도구, 지배계급의 도구, 집단학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이런 부분을 보면 끔찍하고 극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계급파괴에 다시 한 번 굴복하지 않으려면 이것을 꼭 붙잡아 기억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제가 ‘계급파괴’라고 할 때 이는, 온갖 형태의 지배계급이 그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받는 피억압자의 일부를 파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일이 이른바 유럽과 아메리카의 최초의 조우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릴리
그것은 또한, 당신이 말한, 황열병에 의한 죽음과 노예상태와 광산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한 죽음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켜줍니다. 사회가 일종의 환경결정론[전염병은 자연적 환경에 의한 것이지 인재가 아니라는 생각]의 관점에서 전염병들을 받아들이도록 형성되어온 것으로 고대부터의 역사를 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적 결정들)의 역할을, 사태의 사회적 맥락을 잊을 수 있고, 이른바 자연적 재해의 결과를 이해하는 데서 사회·정치적 맥락이 결정적임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라인보
물론입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의 요점은 거시기생체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시기생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사회·경제적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릴리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서 당신이 상기시켜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유행병들이 지배층의 정치와 지배층의 대응들을 형성해온 역사를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것. 즉 당신이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라고 부른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나요?

라인보
그것은 우리의 공통적 삶을 지속하고 유지하는 인간의 생존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보건커먼즈에의 접근, 공기·물·주택의 커먼즈(공통재)에의 접근을 유지하는 능력이지요. 이는 지배계급이 준 선물이 아닙니다. 지구에서의 우리의 삶을 위해 모두가 향유해온 커먼즈입니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지배체제 아래에서, 최근에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수 세기 동안, 더 최근에는 우리의 생애 동안 강탈된 것입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해하는 데 전적으로 필수적입니다. 자본주의가 물, 주택, 신선한 공기를 뺏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긴 공급사슬로부터 생기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이 공급사슬에서는 동력사슬톱에 굴복하고 자본주의적 농업에 굴복하는 숲으로부터 새로운 식품이 요구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생태지대들이 파괴되면서 가장 복잡한 생명체들의 일부가 파괴됩니다. 이와 함께 예전의 숙주를 잃은 미시기생체들이 생기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듯합니다. 저는 지금 최근에 『먼슬리리뷰』(Monthly Review)에 글을 실은 네 명의 과학자들을 원용하고 있습니다. [“COVID-19 and Circuits of Capital” by Rob Wallace, Alex Liebman, Luis Fernando Chaves and Rodrick Wallace, https://monthlyreview.org/2020/04/01/covid-19-and-circuits-of-capital/ ] 이들은 “공공보건의 공유된 커먼즈”에 대해 말합니다. 이들은 또한 우리, 즉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질병 방어능력이 수십 년 동안의 신자유주의로 인해서 심각하게 약화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공립학교들, 공립병원들, 공공주택, 물에 대한 권리, 공기에 대한 권리가 갑자기, 혹은 단계적으로, 혹은 부채라는 교활한 형태로 강탈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미시기생체들에 취약해진 것입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난주만 해도 공기가 좀 신선해진 틈을 타서 트럼프가 자동차에 대한, 내연기관에 대한 오염통제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공기가, 우리의 폐가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틈타서 몰래 해치운 것이죠. 이는 정말로 사악하고 파괴적인 행동입니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파괴를 심화시킬 뿐입니다. 폐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요, 이 네 명의 저자들, 이 전염병학자들 썼듯이 삼림과 그 생태의 파괴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출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의 폐만큼이나 삼림이라는 지구의 폐도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아마존의 파괴와 볼쏘나로(Bolsonaro)[브라질의 현 대통령]의 무지한 권력은 서로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릴리
이 팬데믹이 전지구적 위기가 되면서 일시적으로든 어떻든 다른 전지구적 위기, 즉 기후위기를 우리의 관심에서 좀 멀어지게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나 재택근무 등의 조치들이 자동차의 사용을 크게 막고 탄소방출 수준을 낮추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당신은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불리는 것의 시작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오신 것으로 압니다만.

라인보
현 국면은 아이러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뉴욕에서는 정치가들이 많은 수의 홈리스들에 눈물을 흘리는 반면 많은 호텔들이 손님이 없어서 연방정부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공기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고 폐와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으며 탄소방출과 관련해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 현 국면은 기회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집으로부터 쫓아내는 일의 중지를 원하며 부채의 탕감을 원합니다. 우리는 단일건강보험자체제(single payer health system)를 원합니다. 우리는 이주자들을 억류 상태에서 풀어주기를 원합니다. 이미 일부 수감자들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학자금 대출금의 탕감을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이 전반적으로 속도를 늦추는 맥락에서의 일입니다. 바삐 서두르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하늘에 비행기가 없고 거리에 차가 없다고 썼습니다. 물론 이는 비상조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다지 많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상태가 새로운 세계의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선한 공기의 세계, 더 차분한 세계, 바삐 서두르는 조급함이 없는 세계, 모든 시간이 사업의 시간이 되는 일이 없는 세계,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세계, 수감이 없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합니다. 이런 가능성들을 우리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가능성들은 바로 우리의 창문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릴리
팬데믹을 겪으면서야 이런 상태에 도달한 것이 좀 놀랍습니다. 세상의 종말,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란 쉽다고 종종 (필시 너무 많이) 말해졌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의 종말이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자본주의는 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상상력의 위기를 느끼면서) 우리는 공포와 불안의 와중에서 (이 측면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우리의 삶이 일상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고 어떤 일이 중요하고 어떤 일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어떤 일이 사용가치들을 창출하는지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돌봄노동, 쓰레기처리, 식량을 재배하고 공급하기―이런 일들은 중요한 반면 다른 일들은 불필요했습니다. 상위 10%로의 부의 대대적인 집중이 지금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매력적인 가능성의 순간입니다. 몇 달 만에, 불안과 불평등의 상황에서 이런 순간이 온 것이죠.

라인보
물론입니다. 완전히 동의합니다. 아시다시피, 메이데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달 말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저는 1886년 시카고에서 전염병이 했던 역할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는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의 때였지요. 참, 이제는 옛날 일이네요. 요즘 누가 8시간 이상 노동을 하나요. 그런데 이제 우리는 갑자기 0시간 노동을 강제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0시간 노동을 하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앞에서 저는 독서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우리는 정말로 속도를 늦추고 더 생각하기 시작할 수, 더 잘 생각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나 연방정부를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우리 자신과 우리의 이웃들을 돌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이 돌보는 일을 하려고 하며 저도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이것을 요구하기 위해서 노동을 중단하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개인을 보호하는 도구로서 무기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총기판매점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바보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항상적인 공포 속에서 사는 자들의 삶의 한 편린일 뿐입니다. 다른 가능성들이 있음을 보는 것이 이토록 쉬운 때에 공포 속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릴리
물론 지금과 같은 순간에 우리가 맞서 투쟁해야 할 것들 가운데 하나는 전염병을 인종화하는 경향, 질병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입니다. 트럼프가 이런 경향에 부채질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라인보
18세기 말에 개발된 이데올로기적 억압의 체제인 백인우월주의의 중심 개념인 인종 개념의 큰 부분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상이한 기생체들, 질병들과 연결되면 이것이 더 나아가 인종 개념을 구성할 요소들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나니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데, 저의 저작이나 다른 이들의 저작이 보여준 바지만, 이런 과정들 가운데 ‘타자의 악마화’를 포함한 다수가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집단에 대하여 일어났습니다. 프롤레타리아는 항상 냄새와 연관되고 때(dirt)와 연관되고 불결함과 연관되었습니다. 이렇듯 지배계급의 차별적 순결 코드가 모든 지배받는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바로 이로부터 인종과 백인우월주의라는 변종이 생겨나는 것이죠. 이제 이것이 그 추한 고개를 다시 쳐들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제가 알기로···[‘없는 듯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다 생략한 것으로 추정됨]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는 매우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지식을 얻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디트로이트에서 멘투들과 민중에 의해서 아래로부터 일어난, 신선한 물을 요구하는 엄청난 투쟁을 보세요. 디트로이트는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올리언스도 큰 흑인도시입니다. 뉴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도시들은 흑인 문명의 수도들이며, 이로부터 모두가 혜택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간접적인 것 말고는 지배계급[백인들]의 반발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흑인 친구들과 동지들은 매우 옳게도 다소 걱정하고 조심하며 지냅니다.

릴리
당신이 언급한, 그리고 책에서 많이 다룬 메이데이에 대한 물음으로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몇 주 후면 메이데이가 오는데요, 우리가 억압받지 않는 세상, 지배자들이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전과 관련하여 메이데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요?

라인보
메이데이는 위대한 재생산의 순간, 지구의 재생산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위의 생명체들에서, 식물들이나 동물들에서 봅니다. 메이데이는 5월이고 봄이요 삶의 부활입니다. 또한 근대 세계의 역사에서, 끝없는 노동과 고역에 맞서 투쟁해야 했던 사람들의 역사에서 놀이와 투쟁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의 메이데이는 1886년 5월 시카고에서 시작되어 빠르게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군사주의나 전체주의의 행사로서 퍼진 것이 아니라 집단성의 행사로서 퍼졌습니다. 올해의 메이데이는 우리에게 특별한 도전이 될 듯합니다. 확신컨대, 이 도전으로부터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메이데이를 축하하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할 것입니다. 되풀이하건대, 메이데이는 지구상의 기쁨의 순간이요 재생산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는 출산이 고통을 동반하듯이 투쟁과 함께 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거시기생체들에 맞서는 것입니다.((메이데이에 대한 라인보의 상세한 설명을 보려면 도서출판 갈무리의 신간 『메이데이』(2020)를 참조하기 바란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4/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9-10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윤영광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9-10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기
 5. The Columbian Exchange 보기
 6. “The Death Carts Did More…” 보기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보기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보기

 9.“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나에게는 작은 새가 한 마리 있었는데…” ― 볼셰비즘과 스페인 인플루엔자(“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빠르고 파괴적이었던 팬데믹은 스페인 인플루엔자였다. 그 세 번의 유행 가운데 최초의 것은 1918년 3월 캔자스에서 시작되어 가을과 겨울에 한층 더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형태로 재발하였다. 이 전염병은 그 규모나 파괴성뿐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도 다른 유행병들과 구분되는데, 그것은 이후 세대들에서 발견되는 역사적 기억상실이다. 스페인 인플루엔자를 연구한 역사가는 이렇게 요약한다. “다른 무엇도 ― 어떤 감염도, 어떤 전쟁도, 어떤 기근도 ― 그토록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공포의 대상이 된 적이 없다.”

한 해 만에 2,200만에서 3,000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미국에서 50만 명이 죽었으며, 떠다니는 바이러스 시험관과 같은 조건에 젊은이들을 처박아놓고 제1차 세계대전의 서부전선으로 실어날랐던 미군함들이 인플루엔자를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로 옮겼다. 그 후 바이러스는 유럽 제국주의의 해로(海路)를 따라 라틴 아메리카, 서아프리카, 인도(여기서 1,200만 명이 죽었다), 중국, 일본 그리고 태평양의 섬들로 퍼져갔다. 남북전쟁이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보다 스페인 인플루엔자로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스페인 인플루엔자의 연령별 사망률 곡선은 ‘U’가 아니라 ‘W’ 모양에 가까웠는데, 이는 어리거나 나이 든 사람들보다 젊은이들이 이 병에 더 취약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은 공식적인 거시기생체 기관들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는 이들이 생산, 재생산, 전쟁에 있어서 바로 이 젊은이들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생명이 아니라 생산과 재생산이 걱정거리였다. 헨리 캐벗 로지(Henry Cabot Lodge)[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공화당 상원의원]는 군수품 공장들의 생산성을 걱정했다. 1918년 3월 포드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가운데 1,000명이 병에 걸렸다. 필라델피아 조선소들의 공정률은 군수업자들 놀라게 할만한 속도로 하락했다. 미해군의 40%가 감염되었다. 37개의 생명보험사들이 그해 주식배당을 생략하거나 축소했다. 거시기생체들과 미시기생체들이 건강한 젊은이들의 신체를 두고 치명적인 경쟁을 벌였던 것이다.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Wobblies)에 대한 검열과 정치적 억압은 전염병에 대한 지식의 발달과 치료법들의 전파를 방해했다. 미국의 공공보건정책은 야만적인 법집행을 통해 모든 형태의 소통을 규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매사추세츠주 브록턴(Brockton)의 소녀들은 다음과 같은 노래에 맞춰 줄넘기를 함으로써 격리조치에 대응했다.

나에게는 작은 새가 한 마리 있었는데,
이름은 엔자(Enza)였어요
창문을 열자
엔자가 날아 들어왔지요(in-flew-Enza).

(소녀들의 노래는 나름의 방식으로 일종의 ‘도마뱀 이야기’였다. 1970년대에 오면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가 새들의 이주에 초점을 맞추게 되니 말이다.)

대규모 모임은 금지되었다. 공중전화부스에 자물쇠가 걸렸다. 공용 식수대(食水臺)는 폐쇄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은행 창구 직원들은 손 씻는 물을 가져다 놓았다. 애리조나주 프레스콧(Prescott)의 지방자치조례는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어떤 신문에서 한 제안을 받아들여 악수를 범죄화했다. 미군 공중위생국장은 “지상(地上)에서 문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보고했다.

‘W’의 중간 부분이 높아졌고[즉 청년 사망자가 더욱 증가했고] 그 결과 저 유명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에 속하는 절망한 미국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캐서린 앤 포터(Katherine Anne Porter)를 제외하면 누구도 스페인 독감에 대해 작품을 쓰지 않았다. 이것은 대대적인 사회적 거부인가? 남성우월주의인가? 스페인 독감이 동반한 “심각한 체계적 우울”의 여파인가? 중요하지만 대답된 적이 없는 질문들이다.

캐서린 앤 포터는 시대와 ‘새로운 남자’의 탄생과 ‘새로운 여자’를 종합했다. 남자들은 휴대용 술병을 들고 다녔고 ‘새로운 여자’는 담배를 집어 들었다. 알코올과 니코틴, 이것은 1790년대 이래로 전염병에 대한 전통적인 대응이었다. 전쟁채권으로 돈을 모으려는 정부의 움직임만이 집회 허용의 유일한 이유가 되었으며, 그러한 집회는 “아플 때까지 주라(Give ‘till it Hurts)”는 슬로건 아래 개최되었다. 군인과 ’새로운‘ 여자 모두에게 주어진 표어는 ‘희생’이었다. 돈을 주라, 너의 시간을 주라, 너의 노동을 주라, 너의 삶과 생명을 주라.

1918년 인플루엔자에 대한 항체를 찾으려는 미국의 노력이 거둔 한 가지 성과는, 보스턴 하버 디어(Deer)섬의 죄수들을 상대로 행해진 실험의 재앙적 결과들을 통해 인간은 실험용 동물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바이러스 학자들은 다른 것도 발견했다. 역사적 기억은 우리의 정신, 연구, 지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역사적 기억은 우리의 피 안에 존재한다. 스페인 독감을 비롯한 모든 인플루엔자 전염병은 “우리의 면역혈청에 발자국을” 남긴다.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스페인 인플루엔자가 한창인 상황에서 여성투표권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인플루엔자에 대한 보상으로 투표권을 주는 거래를 제안하는 것처럼 보였다. 식민지배를 받은 민족들의 자결권을 포함한 저 유명한 ‘14개 항’은 스페인 독감의 초기에 발표되었다. 전염병이 끝나갈 무렵 그는 파리에서 제국주의적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었는데, 인플루엔자에 걸리자 쉬엄쉬엄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거부하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볼셰비즘과 경쟁하고 있단 말이요.”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Pale Horse, Pale Rider)에서 캐서린 앤 포터는 이렇게 썼다. “더 이상 전쟁도 전염병도 없고, 육중한 포화들이 멈춘 후의 멍한 적막만이 감돈다. 그늘이 드리운 소리 없는 집들, 텅 빈 거리들, 죽음처럼 차가운 내일의 빛. 이제 모든 것을 위한 시간이 올 것이다.” 그렇다. 제정(帝政)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시간이, 아랍혁명을 위한 시간이, 남아프리카에서의 반란을 위한 시간이, 봄베이[현(現)뭄바이] 직물 노동자들의 기동(起動)을 위한 시간이, 아이티 반란을 위한 시간이, 멕시코 혁명을 위한 시간이, 베를린 스파르타쿠스단의 봉기를 위한 시간이, 포틀랜드 총파업과 피츠버그 금속노동자들의 파업을 위한 시간이, 가비(Marcus Garvey)의 범아프리카주의를 위한 시간이. 건강이란 이러한 파업, 반란, 봉기, 혁명 들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조립라인, 남아프리카의 금광, 봄베이의 스웻숍(sweatshop), 아이티의 플랜테이션, 벨파스트의 조선소, 크론슈타트의 야금공장, 세계 곳곳의 슬럼들과 같은 매개체를 통해 거시기생체의 흡혈의 대상이 되었던 전세계의 숙주들이 ‘항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국제적인 혁명들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도마뱀 이야기’가 실천되었던 것이다.

이에 맞서 거시기생체는 야만적인 억압으로 반격해왔다. 러시아의 침략행위들, 인도 펀잡(Punjab)주 암리차르(Amritsar)에서의 학살, 아이티와 털사(Tulsa)에서 이루어진 지상-공중 합동 공격, 시카고에서의 인종폭동, 백악관의 KKK, 이탈리아의 파시즘, 독일의 나치가 그 사례들이다.

 

  1. 나의 투쟁과 터스키기(Mein Kampf & Tuskegee)

나치는 미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미국의 인종정책을 칭찬하고 독일에 도입하고 싶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1920년대 히틀러와 나치는 매독에 대한 집착을 미국 의학계와 공유했다.

19세기에 미국에서 발전한 인종주의적 의학은 질병에 대한 면역성, 취약성, 상대적 심각성 등에서 인종들 간에 차이가 있음을 보이고자 했다. 인종주의적 의학은 흑인들이 신체적으로 열등하며 성적으로 문란함을 입증하려고 애썼다. 인구조사 결과 19세기 후반에 흑인들의 출생률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자, 일부 의사들은 이것을 노예해방이 흑인종의 소멸을 낳는다는 인종주의적 믿음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매독은 “전형적인 흑인의 질병”으로 여겨졌다. 어떤 의사는 흑인이 “악명높게도 매독에 흠뻑 젖어 있는 인종”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백인 전문가들이 백인들에게 안전한 섹스를 교육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19세기말-20세기초의 “사회적 위생”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막대한 인력이 필요했던 미국은 공중보건국 내에 성병전담부서를 만들고 지역사회에 성병 클리닉들을 설치했다. 그러나 건강한 노동력의 사회적 재생산에 있어서의 이러한 구조적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적 의학의 치명적 가정들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나치 역시 매독을 피억압 소수자들, 즉 유대인들과 연결했다. 히틀러는 매독을 “유대인의 질병”이라고 불렀다. 그가 보기에 매독은 민중을 오염시키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며 아리아인의 피를 더럽혔다. 히틀러는 도시의 성적 자극물들(영화, 광고판, 쇼윈도우 등)을 비난했으며, 이를 매독, 그리고 자신이 “유대화(Jewification)”라 부르는 과정과 연결지었다. 그 이름과 기원이 유럽의 정복활동, 대규모 이주, 노예제, 여성혐오적 가족정책과 분리될 수 없는 질병인 매독은, 이번에는 ‘청결’의 이름으로 매독환자의 ‘안락사’, 강제이주, 노예노동, 집단수용소 등을 제도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미국에서도 과학의 이름으로 인종주의적 집단학살이 자행되었다. 나치가 독일 의회에서 다수당이 된 해인 1932년에 미국 공중보건국은 “터스키기 흑인 남성 비치료 매독 관찰 실험(Tuskegee Study of Untreated Syphilis in the Negro Male)”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공식적이고 사전에 계획된 집단학살 정책” ― 1972년 실험의 진실이 폭로되었을 때 한 비평가가 한 말 ― 을 실행했다. 앨라배마주 메이컨(Macon) 카운티에 거주하던 600여 명의 흑인 남성이 기만당해 실험 대상이 되었다. 이들은 이따금 더운 음식을 제공받고 뷰익(Buick, 자동차 브랜드)을 타고, 장례 보험을 보장받는 등의 ‘혜택’을 받고 실험에 참여했는데, 이 실험은 흑인 남성 매독 환자의 사망률이 백인 매독 환자의 사망률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피실험자들은 자신들이 매독에 걸렸다는 것을 듣지 못했으며 치료도 받지 못했다. 그들의 부인과 아이들도 매독에 감염되었다. 실험은 목표, 수단, 테크닉 모두에서 인종주의적이었다. “정부 소속 의사들”은 매독 3기 단계에 있는 흑인 남성들의 사망률이 통상 신경계 합병증으로 사망한다고 믿어졌던 백인 남성 환자들의 경우보다 더 높은 심혈관계 발병률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피실험자들은 가축처럼 취급받았다.

메이컨 카운티는 아우슈비츠와 같은 나치 집단수용소와 유사해졌으며, 나치의 실험들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듯이 저 실험들 역시 ‘남부 예외주의’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터스키기의 피실험자들이 북부로 이주하면 클리블랜드, 뉴욕, 디트로이트의 공중보건국 관리들 역시 치료를 시행하지 않음으로써 ‘협조’를 제공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리고 환자에게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 일을 금지하는 공중보건법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터스키기 실험은 40년 동안 계속됐다. 나치 의사들에 대한 재판과 그 결과로 도출된, 인간 대상 실험에 관한 뉘른베르크 강령(The Nuremberg Code)에도 불구하고 전쟁 후에도 공중보건국 관리들은 멈추지 않았다.(40년대 후반 미국 정부는 나치 의사들을 지원하고 보호하기까지 했다!) 마찬가지로 인간 대상 실험 규제에 관한 1964년 헬싱키 선언도 터스키기 프로젝트를 멈추지 못했다. 이 ‘연구’를 멈춘 것은, 나치를 피해 도망친 부모를 둔 내부고발자의 노력과 마틴 루터 킹과 로자 파크스의 변호사였던 프레드 그레이(Fred Gray)의 법률적 노력의 결합이었다. 물론 1972년의 그들 뒤에는 흑인들의 민권운동과 혁명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오늘날까지도 이 실험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다.[1997년에 이르러서야 클린턴 대통령이 소수의 생존자와 다수 사망자에게 애도를 표하며 사과했다.]

심지어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1988년 2월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의 책임자 앤써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는 에이즈 백신을 테스트하기 위한 대규모 인체 실험을 아프리카인들을 대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자이르(Zaire)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에이즈 연구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로버트 라이더(Robert W. Ryder) 박사는 같은 달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 ― 이것은 미국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요 ― 은 수천 명의 에이즈 감염자들을 추적 연구하는 것입니다. 임금이 낮기 때문이죠.”

그러한 연구는 특정한 경제적·인구학적 맥락에서 수행되었다. 아프리카의 경우 그것은 대체로 <세계은행>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세계은행>은 아프리카에서 인구억제정책을 장려했으며, “낡은 방식들”에, 즉 자신들의 토지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거시기생체적 농업산업에 방해가 되는 아프리카인들의 수를 줄이고자 했다. 에이즈에 대한 두려움은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유용하다. 국제의료기구들은 아프리카에 에이즈가 만연하다는 인상을 서구인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에이즈, 아프리카, 인종주의』(Aids, Africa and Racism)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구 의사들은 아프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모아놓고 다른 모든 의학적 가능성은 배제한 채 그들이 에이즈를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의사들은 자국에서 적용되는 윤리적 제약들 없이 소규모의, 신뢰할 수 없는 혈청역학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들은 이 연구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믿었다. 이들은 어째서 혈청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질병의 증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설명하기는커녕 의문을 품지조차 않았다. 이 의사들은 에이즈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사파리 여행에서 수집해서 냉장고 바닥에 두었던 오래된 혈액 샘플들을 꺼내서 신뢰할 수 없는 테스트에 사용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또 다른 스토리를 애타게 찾고 있는 서구 대중들에게 뉴스거리를 제공했다.

이것은 메이컨 카운티의 소작인들, 필라델피아의 자유로운 흑인들, 아이티의 황열병, 히스파니올라섬(Hispaniola)의 양치기 ‘매독’, 심지어는 투키디데스와 모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이것은 인종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흑인은 더럽고, 병이 들끓으며, 성적으로 문란하고, 어떤 식으로든 금방 죽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생기면, 집단학살을 제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나치의 “최종적 해결책”이 계획되고 터스키기 실험이 한창이던 1939년에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1918년 이후 세계를 휩쓸었던 범아프리카주의에 몰두하여 모세 이야기를 멘투와 그의 “멋진 도마뱀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다시 썼다. 그때에 비하면 아프리카는 비할 수 없을 만큼 튼튼해졌다. 아프리카는 스스로를 돌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이 도움은 악어의 눈물을 동반하는 도움일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건강을 구실로 우리의 질병을 관리하는 얼간이들에 맞서 우리 자신의 ‘도마뱀 이야기’로부터 나오는 도움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 더 섞이고 교류할수록, 함께 음식을 먹고 잠을 잘수록 우리가 더 강해진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파괴하는 미시기생체들이 거시기생체의 눈에는 ― 그것들이 혹은 우리들이 통제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 신이 보낸 선물처럼 보인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 거시기생체들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도 우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이 우리가 ‘도마뱀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다. 이제 거시기생체들은 우리가 정의를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과 생명을 위해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사회적 무질서’를 대가로 치르지 않고는 저 집단학살을 위한 미시기생체들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3/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7-8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성철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7-8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기
 5. The Columbian Exchange 보기
 6. “The Death Carts Did More…” 보기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황열병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인종주의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갓 성체가 된, 피를 빤 적 없는 모기들이 세심히 준비된 흡혈 케이지 속에서 10분 동안 지원자들의 팔뚝에 방사된” “이집트-숲모기 연구”((이집트-숲모기는 황열병의 매개체가 되는 모기로, 학명은 Aedes aegypti이다.)) 캘리포니아 교정국, 「조사와 연구」(1971)

1790년대가 “혁명”의 십년이었던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 이 시기에 백인 자산가 계급(the White Men of Means)이 미국 헌법의 5, 6조를 제정하기 위해 자신의 점포의 셔터를 내리고 스스로를 가둔 “필라델피아의 기적”이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기적”은 1787년 5월 25일에서 9월 17일까지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필라델피아 대회의’를 가리킨다. 애초 이 회의는 연합규약의 개정만을 예정했었지만, 제임스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의 의도는 처음부터 현존하는 정부를 ‘수정’하는 게 아닌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이었고, 그 결과 이 회의에서 미국 헌법이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이 회의는 ‘필라델피아 제헌 회의’라고도 불린다.)) 또 프랑스 전역에 빨강, 하양, 파랑의 삼색으로 된 깃발들이 휘날렸으며 , ‘라 마르세예즈’가 울려퍼졌고,  바스티유 감옥 습격 등이 있었다.((삼색기는 프랑스 국기를 가리킨다. 현재와 같은 삼색의 프랑스 국기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은 1794년이다. ‘라 마르세예즈’는 프랑스 국가로, 원래 1792년 스트라스부르의 클로드 조제프 루제 드 릴이라는 군인이자 아마추어 음악가가 출정을 앞두고 작사, 작곡하였고 프랑스 혁명을 진압하러 쳐들어오는 외국군에 대항하여 자원병들이 파리에 집합할 때 마르세유에서 막 도착한 자원병들이 파리 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눈 밝은 이가 이 십년의 일로 기억할 것은 서인도제도의 거대한 전쟁, 세 유럽 제국들을 격퇴하고 플랜테이션을 폐지했으며 콜럼버스의 첫 기항지에 독립국 아이티를 세운 노예들일 것이다.

18세기 카리브해 지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럽인들의 뒤섞임은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의 대륙 간 유전자 혼합에 비견될만하다. 다만 지중해 지역에서는 수백 년이 걸려 일어난 일이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단 몇 년 만에 일어나서 1790년대에 인구학적·혁명적 정점에 도달했다. 따라서 정치 뿐 아니라 전염병학의 관점에서 아이티는 고대 그리스 및 로마와 유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주된 것은 아프리카인들의 경험의 중심성이었다. 18세기 후반의 팬데믹들에서는 노예 경험이 최전선에 놓이게 된 것이다. 고대의 유행병과 마찬가지로 이 팬데믹들 또한 유럽인들에겐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고대와 달리 이번의 유럽인들의 해석은 그 뿌리부터 인종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이와 대립하여 범아프리카주의가, 해방 전쟁의 경험이 그리고 흑인성(négritude)의 철학이 발전되었다.

차이는 더 있다. 1790년대는 자신의 투키디데스를 갖지 못했다. ((투키디데스와 고대 그리스의 전염병에 대한 설명은 이 글의 2절을 참조)) 대신에 성직자 토마스 맬서스 (Thomas Malthus)가 있었는데, 그는 그의 정원의 질서 정연한 관점에서 신앙심 깊은, 온통 수학적 집단학살로 가득한 글을 썼다. [『인구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맬서스는 주로 자신의 정원에서 집필을 했다고 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인구론』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인구의 재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이 그의 “추론”의 전제란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죽어야만 한다. 증명 끝. [저자가 앞에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수학적 집단학살로 가득한 글”이라고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전쟁, 역병, 기근은 “자연 법칙”이었고, 그는 이것들을 매질하는 농장주의 필요에 맞춰 그리고 1일 18시간 노동을 주장하는 공장주에 맞춰 평가했다.

그의 관점은 ① 전세계적이었고 ② 야훼를 대자연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이다. 친절하게 죽이니 말이다. 이는 여전히 공식적인 언론을 지배하는 관점이다. 그리하여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에이즈 팬데믹을 다루면서 단 한 번의 신문 칼럼에서 “자연”이란 말을 13번이나 언급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미국의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처럼 사회적 지배층이 자연의 ‘법칙’을 사회 전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선언하는 것은 자연이 사회 아래에 포섭된 영역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소처럼 먹으세요.” 쟝 윌리엄 팝(Jean William Pape) 박사는 포르토프랭스[아이티 공화국의 수도]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팝 박사는 아이티의 공중보건 연구소인 GHESKIO의 창립자이자 소장이다. 특히 그는 HIV 바이러스와 관련된 활동으로 공중보건 전문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소모성 질환[체력을 소모시켜 몸을 전체적으로 쇠약하게 만드는 질병]을 앓는 환자들이 에이즈 치료실을 떠날 때마다 이 말을 반복했다. 이 처방을 이해하는 데 혹은 그러한 치료법에 함축된 정치적 암시를 이해하는 데 현대 과학의 그 눈부신 발전이 필요하진 않다.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새로운 수도였고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 헌법의 제정에서 1787년 ‘필라델피아 대회의’가 결정적인 계기였고 그 후 1790년부터 10년 간 필라델피아는 미 연방의 수도였다.] 그것이 아무리 “민주주의”를 외치며 민주주의의 노예적 기반을 가면으로 가리려 해도 그것은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1793년 7월 서인도제도의 노예 반란에서 피난 한 백인, 흑인, 물라토 난민들을 실은 상퀼로트호가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나라”의 건국의 아버지들이 도망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상퀼로트(Sans-Culottes)는 프랑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민중 계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명칭은 민중들이 귀족처럼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culotte)가 아니라 작업복인 긴 바지(pantalon)를 입은 것에서 유래했다.))

그들은 겁을 먹었는데 그 배는 또한 새로운 모기 즉 황열병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를 날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황열병은 “볼람 열병(the fever of Bollam)”, “바베이도스 열병(the fever of Barbadoe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아프리카의 혹은 카리브해의 혁명의 결과인 것처럼 보였다. 1793년 여름과 가을 내내 필라델피아 인구의 많은 수가 죽었다. 시계는 멈췄고 가난과 기아가 횡행했다. 아이들은 유기되었다. 연방정부의 신사들은 도망쳤다. ((1793년 필라델피아의 황열병 유행은 소설과 영화로 그려질 만큼 미국 역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해 8월에서 11월 사이의 공식적인 사망자 집계는 4044명이나 이는 무덤 숫자를 센 것에 기초하므로 실제 사망자수는 이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필라델피아의 인구수가 약 5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숫자이다. 또 유행병이 시작되고 11월까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약 2만 명이 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이 유행병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은 병의 원인을 공기로 돌렸다. 공기 중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화약을 폭발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예방책으로 추천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필라델피아의 부르주아지들은 카리브해의 풀려난 노예들을 탓했고 이 유행병의 종식을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서 필라델피아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에 대한 인종 공격을 방치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의 노동계급은 복수의 기회를 잡았다. 절반의 하인들이 자신의 주인을 버렸다. 수감자들은 석방되었다. 간호사들은 강도로 고발당했다. 다른 이들은 일당 3달러로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우리가 자주 보았듯이 이 유행병 속에서도 그것으로 가장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시기생체를 처리할 기회로 삼았다. 그것은 가능성의 시기였다.

지도자들은 바로 이 고통받는 기층의 흑인들에서 출현했다.  노예로 태어난 리처드 앨런(Richard Allen)은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자유 아프리카 협회(the Free African Society)를 세웠고 후에 흑인들을 위한 첫 번째 감리교 교회를 열었다. 마찬가지로 노예인 압살롬 존스(Absalom Jones)는 미 본토에 처음으로 흑인들을 위한 성공회 교회를 세웠다. 그들은 함께 이 유행병에 대처하여 치료와 위로를 위한 활동을 조직했다. 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 곁에 앉았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그들은 열병을 앓는 사람들의 이마를 닦았다. 그들은 영구차를 구했다. 그들은 관을 제작했다. 그들은 땅을 팠다. 부유한 이들이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서 도망치는 가운데 그들은 아무 보상 없이 인류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그 유행병은 집단적인 자기인식(self-recognition)과 집단적인 역사적 정체성의 구축을 위한 사건이 되었다. ((저자가 다음을 염두에 두고 쓴 표현인지 확실친 않지만, 생화학 용어로서 ‘자기 인식’은 개체의 면역 계통이 자기의 화학 물질·세포·조직과 외계로부터의 침입물을 식별하게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1. 산업화의 고딕식 가장가면들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콜레라나 장티푸스의 대해 우리는 대조군(백신을 맞지 않은 인구)의 25% 혹은 30%에서 질병을 낳을 생물체들을 사용할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 리처드 호닉(Richard Hornick) 박사. 메릴랜드 교정국, 「콜레라 및 장피푸스 연구」 (1971)

유행병 문학은 도피의 문학인데 왜냐하면 문필가들은 지배계급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 지배계급의 유행병에 대한 반응이란 언제라도 가능할 경우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그 예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애드가 앨런 포(1809~1849)는 미국의 작가·시인·편집자·문학평론가이다. 특히 단편소설의 선구자이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들은 음산하고 괴이한 분위기로 인해 소위 고딕물(Gothic fiction)로 분류된다. 라인보가 이 장의 제목을 ‘산업화의 고딕식 가장가면들’이라고 하면서 포에 대해 다루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1842년에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썼다.((한국어본이 『붉은 죽음의 가면』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다.)) 이 해는 중요한 해로서 우리는 조금 후에 이 문제로 돌아올 것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이렇다. 프로스페로(Prospero) 왕자는 고딕풍 수도원의 높다란 담벼락 안으로 천 명의 신하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치명적인 전염병(“붉은 죽음”)의 감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바깥 세계의 일은 자연히 처리될 것이었다. 그 사이에 비통해하거나 고심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야기는 고딕풍의 분위기를 내는 것들로 가득하다. 관능적인 쾌락의 도구들이 기이하고 퇴폐적인 미의 길고 밀폐된 삶을 위해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진 일곱 개의 방에 준비되어 있었다. 오로지 매 시간 울리는 흑단같이 까만 시계의 알림소리만이 연주자들과 무용수들을 멈추게 했다. 그것은 환영의 집합체와 같았다. 이 섬뜩한, 자극적인 장면은 ‘붉은 죽음’이라는 무언극 배우에 의해 중단되는데, 그는 프로스페로의 방에 들어와서 그를 죽인다. “그는 밤에 도둑같이 왔다”고 포는 「요한의 묵시록」을 인용하여 말한다. ((이 구절은 그의 소설의 마지막 문단에 등장한다. 한편 비록 「요한의 묵시록」에 ‘도둑같이 온다’는 표현이 두 번 등장하긴 하지만 (3장 3절, 16장 15절) 정확히 이와 상응하는 구절을 찾을 순 없다. 오히려 성경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구절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5장 2절에서 발견된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포는 전염병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인가? 그것이 맞다면, 그가 또한 당시의 노동계급 혁명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 전염병은 붉은 전염병일까? 그리고 그는 왜 그 전염병을 유럽의 천년왕국설의 고전적 진술과 결부 지을까?[위에서 봤듯이 라인보는 포가 문제의 소설 구절을 「요한의 묵시록」에서 인용했다고 생각하는데 천년왕국설이 자신의 성경적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다름 아닌 이 「요한의 묵시록」이다.]

여기서 실제 역사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찰스 로젠버그(Charles Rosenberg) [미국의 의학사가]는 『콜레라의 해들』(The Cholera Years, 1962)에서 황열병과 천연두가 17-18세기의 고전적 유행병이었듯이 “콜레라는 19세기의 고전적 유행병이었다”고 말한다. 포의 세대에 충격을 주었던 팬데믹은 1831년과 1832년 사이에 동양에서 유럽을 거쳐 미국의 도시들로 퍼졌던 콜레라였다.

콜레라의 기원은 벵골(Bengal)지방으로 여기서 콜레라의 전파는 영국의 상업적·군사적 이동에 힘입었다. ((벵골지방은 원래 인도 북동부의 한 주였으나, 현재 일부는 방글라데시의 영토로 되었다.)) 실제로 인도 주민들의 도마뱀 이야기에 따르면 이 유행병이 암시하는 우주적 불균형은 영국 제국주의의 소란에 신들(시탈라, 마리암마, 올라 비비)이 진노한 결과였다.((이 신들은 인도 지역에서 숭배되는 여신들로, 시탈라(Sitala/Shitala)는 천연두의 여신, 마리암마(Mariyamma) 혹은 마리암만(Mariamman)은 비의 여신, 그리고 올라 비비(Ola Bibi) 혹은 올라데비(Oladevi)는 콜레라의 여신이다.)) 이 여신들의 변덕스런 화를 달래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마을간 의례적(ritual) 식량교환은 영국인의 눈에는 이해하기 힘든 소통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피억압자들은 ‘건강’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규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소통망은 제 1차 인도 독립 전쟁 즉 1857년 대반란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이 독립 전쟁 혹은 대반란은 세포이(인도인 용병)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까닭에 우리에게는 주로 세포이 항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인도의 ‘미신이 대개 콜레라라는 수인성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었을지 몰라도 바로 그 ‘민중-구전이 영국 거시기생체에 맞선 투쟁의 기반시설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포는 1831년 웨스트 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나서 볼티모어에서 극빈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콜레라에 대한 소문과 공포에 민감했을 텐데 이 소문과 공포는 근대 역사에서 매 번 그랬듯이 당시에도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인종주의를 부추기며 계급관계의 병리학(노동자는 병적이고 지배자는 건강하다)을 설립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언론은 콜레라가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의 결과라고 보았다. 신문들은 1,400명의 “파리의 외설적인 여성”들 가운데 1,300명이 콜레라로 죽었다고 보도했다. 그것은 일부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만족의 감정을 느끼는 또 다른 일부의 사람들에게 “가난한 이의 역병”으로 여겨졌다. 콜레라의 용도는 “인간 사회를 오염시키고 더럽히는 쓰레기와 오물을 배출하는 것”이었다. 볼티모어에서는 콜레라 희생자들의 대다수가 “가장 쓸모없는” 부류라고 보도되었다. 콜레라를 앓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일랜드인들과 흑인들은 운명으로 정해진 콜레라의 희생자처럼 보였”고 많은 도시에서 콜레라 발병률은 흑인들의 경우에는 두 배로 증가했다. 의사들은 남부의 노예와 북부의 슬럼 거주자들을 상대로 실험을 진행했다. 인종 의학(racial medicine)이 이 세기의 전반부에 탄생했다. 콜레라를 앓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속한 공동체는 단지 수동적인 희생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밤에 도둑이 되는 등 정의와 사회적 치료책에 대한 자신들의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뉴욕은 무단침입(Breaking and Entering)이라는 유행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의사들과 공무원들은 공격당하고 난폭하게 구타당했다.”

1832년 7월 23일자 「뉴욕 이브닝 포스트」지는 맨해튼의 악명 높은 파이브 포인츠(Five Points) 지역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았다. “파이브 포인츠에는 온갖 피부색, 연령, 성별, 민족의 사람들이,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일한 처지에 있으며 거의 모두 폭력적인 야만성을 지닌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한 집단이 이 도시의 가장 밀집되고 중심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언제쯤에나 우리가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될 수 있을까. 제 아무리 천국으로부터 순수한 공기가 내려온다 한들 그들의 숨은 그것을 오염시키고 병으로 감염시킬 수 있을 것이다.”((파이브 포인츠 지역은 뉴욕의 로어 맨해튼(Lower Manhattan)에 있던 지역으로, 그 이름은 네 개의 거리(앤써니가(오늘날 워쓰가), 크로스가(오늘날 모스코가), 오렌지가(오늘날 백스터가), 리틀 워터가 (오늘날엔 존재하지 않는다)가 합류하는 지점인 데서 유래한다. 특히 이 지역의 이름을 딴 갱 집단(파이브 포인츠 갱)이 유명할 정도로 소위 도시의 ‘우범지역’이었다.)) 노동계급의 숨마저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노동계급은 젠더, 인종 혹은 연령에 의해 분할된 정도가 가장 낮은 경우에 가장 위험했다. 게다가 특히 파이프 포인츠의 노동계급은 허드슨 강 부두와 선창의 노동력을 공급했기에 국제 무역에서 전략적으로 핵심적이었다. 가치의 국제적 순환이 가장 민감하고 응축된 농도에 도달한 것은 바로 이 곳에서였다. 이런 이유에서 선택적인 집단학살이 “자연법칙”의 가면 아래에서 고려되고 실행되었다.

이것의 목적을 노동계급이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노만 롱메이트(Norman Longmate)가 썼듯이 1831년 콜레라 유행병의 시기에 “부자들이 맬서스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인구를 줄이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그 질병을 퍼트리고 있다는 믿음이 전 유럽에 퍼졌다.” (『콜레라 왕 : 한 질병의 전기』(King Cholera: The Biography of a Disease (1996), p.4))

183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은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의 기계화였다. 이는 남성, 여성 그리고 아동들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필요로 했다. 막대한 수의 인구가 그토록 더럽고 그토록 악취가 진동하는 밀집 지역에 욱여넣어졌는데 이것이 맨체스터, 리버풀, 뉴욕, 보스턴의 ‘도시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노동조합들과 대중 정당이 형성되는 것에 더해 또 다른 사회적 동학이 자리 잡았다. 즉 한편으로 도시 공동체들의 격리와 그들의 계획된 고립(‘슬럼’)이 일어났고 다른 한편으로 음주, 절도 그리고 자포자기의 위험한 문화가 생겨났다.

찰스 마크스(Charles Marks)[‘Karl Marx’를 영어식으로 쓴 것이며 이어지는 인용은『1844년 경제철학 수고』의 한 대목이다]라는 젊은 혁명가는 1844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협잡꾼, 도둑, 사기꾼, 거지, 그리고 무직자. 굶어죽고 비참하며 범죄를 저지르는 노동자. 이들은 정치경제학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른 눈들, 의사, 법관, 무덤 파는 사람 그리고 집달관 등의 눈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그러한 인물들은 정치경제학의 영역 밖에서는 유령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에게 노동자들의 필요란 단지 하나 뿐이다. 노동자라는 종족이 멸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한에서 노동자가 노동하는 동안 자신을 유지할 필요 말이다.” 새로운 종류의 노동자, 즉 “정신적·육체적으로 탈인간화된 존재로서”의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포가 영국에서 「붉은 죽음의 가면극」을 출판한 해에 구빈법 위원회 위원(the Poor Law Commissioner)인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은 ‘공중 보건’ 운동의 청사진인 「대영제국의 노동인구의 위생 상태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했다. 그것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절하고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플랜테이션 노예와 마찬가지로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는 세심하게 재생산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도시 수도 공급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도시의 계급 관계의 ‘수리학’(hydraulics)을 제시했고 벤섬(Bentham)에 의해 시작된, 아프고 병든 사람들의 강제수용운동을 추진했다. 미셸 푸코라면 “임상적 시선(the clinical gaze)”의 확립이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임상적 시선은 근대 의학의 전개에 핵심적인 요소로 푸코가 그의 책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제시하는 개념이다. 질병의 치료의 시선이 ‘임상적 시선’으로 전환됨과 더불어 1) 질병 치료에서 더 이상 환자의 시선이 아니라 의사의 시선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며 2) 이 시선 하에서 환자는 더 이상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질병으로 간주되고 3) 그에 따라 질병은 환자의 신체 전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특정 부분에 국한된 장애로 이해된다.))

산업도시들의 구조에 대해 보자면, 1830년대와 1840년대의 발전은, 가장 유명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홈즈-왓슨 스타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방식을 도입했다. 연역추리를 특기로 하는 뛰어난 탐정인 셜록 홈즈와 전통적인 신앙심을 가진 현실안주적인 의사인 닥터 왓슨은 19세기 도시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선 쌍둥이 조직―치안과 위생―을 요약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십 년 동안 ‘공중보건 운동’을 통한 노동계급의 수리학적  통제뿐 아니라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배치된 새로운 경찰 부대의 무장순찰경찰(the armed-cop-on-the-beat) 제도의 확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힘을 합쳐 동종용법(homeopathic) 의학(이것의 기반은 가족농family farm이었다)을 파괴했고 질병을 통제하기 위한 도시 ‘개혁’을 채택했는데, 이에 따라 질병은 더 이상 엔데믹한 즉 한 지방 특유의(endemic) 것이 아니라 에반 스타크(Evan Stark)가 ‘엔도폴릭(endopolic)이라고 부른 것 즉 도시 특유의 것이 된다.((‘엔도폴릭’이라는 개념은 에반 스타크가 1977년 그의 논문 「사회적 사건으로서 유행병」(‘Epidemic as a Social Event’)에서 제시한 것으로 그는 이 개념을 통해 질병이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특정한 정치·경제적 결정과 과정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19세기가 끝날 때쯤 자본은 이민·사회·교육·도시 정책을 통해 도시 대중의 생애 주기를 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가운데 자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한 승리가 자신의 거시기생체적 권력을 제한함을 알아차렸다. 히틀러는 “나에게 거대한 도시는 인종적 신성모독의 체현물로 보였다”고 썼다.((히틀러의 이 말은 그의 책 『나의 투쟁』에 나온다. 자본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이제 도시의 리듬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구성되는바, 자본의 전제조건은 노동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이기에 자본은 전염병의 정복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미 보았듯이 대도시의 노동력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도시에서 다양한 인종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히틀러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대도시가 “인종적 신성모독의 체현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은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가장 유용하고 치명적인 질병의 대다수는 다양한 미생물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들[의사들]은 이 미생물의 수고를 무해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 결과 황열병, 흑사병, 콜레라, 디프테리아를 비롯해 우리가 앓았던 거의 모든 귀중한 병들이 고작 한가한 시간의 오락거리가 되었고 정부에게 복통보다도 못한 것이 되었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2/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4-6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4,5절), 민서(6절)
  • 설명: 지난번에 이어서 4-6절의 내용정리를 올린다.  이번에도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을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보기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보기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보기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1.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의 100개의 사랑 이야기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보카치오는 『데카메론』(The Decameron)을 1347-1349년의 흑사병(the Black Death) 얼마 후에 썼는데,[1353년에 완료되었다] 이 병으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사망했다. 보카치오는 피렌체 은행가의 아들이었는데, 경영 공부에도 손을 대보고 교회법에도 손을 대보았으나 잘 안 되어서 외교관이 되어 역병에서 살아남았다.

100개의 이야기에는 교회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많은 풍자적 비판들이 담겨있다. 보카치오는 죽어가는 농민들로부터 이야기들을 훔쳐왔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데카메론』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빌려온 것들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라틴 이야기들이 주로 참고되었지만, 어떤 것들은 인도, 중동, 스페인 등에 기원을 둔다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그 지역에서 구전되던 것들이리라고 추정한다. 상세한 설명이 없어서 확정하기 어렵지만 라인보는 이 후자의 것에 강조를 두는 듯하다.] 보카치오와 농민들의 관계는 해리스(Joel Chandler Harris)와 흑인들의 관계에 비견될 수 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해리스는 흑인의 구비전통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을 Uncle Remus: His Songs and His Sayings(1880)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둘 모두 원래의 이야기들의 농도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상류층을 즐겁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간간이 쾌활하게 풍자되곤 하지만 말이다.

농민들은 “도와줄 의사도 하인들도 없었으며 길가에, 들판에, 집에 밤낮 없이 하루 종일 쓰러져서 인간이라기보다 동물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보카치오는 이 재미있는 책을 위안과 연민에 대한 짧은 논변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는 아픈 사람을 간호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기라는 주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가 의미하는 위안이란 도시를 버리고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과 흐느낌”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생판 남인 양 자신의 자식들을 돌보고 돕기를 거부했다.”

『데카메론』의 일곱 숙녀들과 세 신사들이 도시를 피한 것은 “대부분의 집들이 공동재산이 되었”기 때문이고 “신과 인간의 법에 대한 모든 존중이 우리의 도시에서 실질적으로 무너졌고 소멸되었”기 때문이며 가족을 잃는 것이 “웃어대고 재담을 하는 등 모두 즐거워하게” 하는 신호가 되었기 때문이다. 숙녀들은 예배에서 만나서 이야기하며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범죄자들이 추방되지 않고 “법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면서” 거리를 싸돌아다니는 상황이며, 숙녀들은 “우리의 피 냄새를 맡고 자신들을 교회의 머슴이라 부르며 온갖 곳을 시끄럽게 활보하며 음탕한 노래를 불러 우리의 상처에 모욕을 추가하는 도시의 불량배들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숙녀들은 도시를 피하고 동양의 향료를 친 연회음식들의 소화를 돕기 위해 여러 재담과 이야기들을 한다. 그런데 이 향료들은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pasteurella pestis)’를 가져온 바로 그 배에 실렸던 것이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가 바로, 벼룩이 매개체이며 ‘검은 쥐’(ship rat, 곰쥐=black rat)가 숙주인 미시기생체의 이름이다. [최초로 페스트균을 분리해낸 예르신Yersin 이 처음에 그 균의 학명을 파스퇴르 연구소를 기념하여 이렇게 지었다. 이는 나중에 ‘이에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학명으로 바뀐다.] 이 쥐는 두 거시기생체들의 합작으로 유럽에 왔다. ① ‘약탈자 칭기즈 칸’(Ghengis Khanis plunderitis)이 낳은, 중앙아시아에서의 생명체들의 급속한 순환 ② 유럽 상품교역의 중심동맥인 ‘탐욕스런 베네치아’(Venetia avaricious)라는 바이러스. [라인보는 칭기즈칸과 베네치아를 라틴어 두 단어로 된 페스트균의 학명처럼 표기하고 있다.] 이 거시기생체들은 자기면역의 기술들을 아직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유럽 도시지역에서 질병의 만연을 다루는 ‘행정 루틴들’(환자선별분류, 격리)이 없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는 잔치를 벌일 만큼 풍부한 인간집단을 발견했다. 숙주의 방어력이 영양실조와 전쟁으로 심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농민들은 이 재앙에 맞서는 나름의 방어패턴들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교회, 주(Lord), 군주라는 기생체들에 맞서는 천년왕국운동과 농민반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사례들 가운데 영국의 롤라드운동(The Lollard movement)과 이탈리아의 소형제회운동(Fraticelli movement)이 있다. [롤라드운동은 14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개신교 이전의 기독교 종교운동이며, 소형제회는(이탈리아어로 ‘Fraticelli’, 영어로는 ‘Little Brethren’) 성자 프란치스코(Saint Francis of Assisi)의 회칙, 그 중에서도 특히 청빈에 관한 회칙을 극단적으로 옹호한 프란치스코회 내부 급진소수파다.] 지배계급의 관점을 가진 논평자들이 흑사병을 환영한 것은 이 병이 모든 다른 형태의 일탈만이 아니라 이 두 운동에도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이다. 질병에 대한 지배계급의 이론은, 병이 천체들에서의 변화(점성술)에 영향을 받은 것이거나 아니면 간악한 삶을 사는 자들에게 신이 내린 천벌이라는 것이었다. 영국의 연대기편자 나이턴(Henry Knighton)은 흑사병이 가령 여자가 남장을 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막고 처벌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치료제’라고 보았다. 더 나아가 흑사병이 진행되는 동안 악랄한 유대인학살이 행해졌다.

한편 교회는 돈을 받고 구원을 제공했다. 교황은 기독교인들을 로마로 초청했다. 120만 명이 부름에 따랐으며 순례를 마치면서 헌금을 바쳤다. 그리고 10%만이 살아서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나머지 90%는 그들의 시신 또한 바쳤다. 교황은 교인들을 피해 더 풍토가 좋은 곳인 아비뇽으로 몰래 도망갔으며 거기서 주사위공장들을 묵주제조공장으로 전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편 독일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두들겨 패기 시작한 듯하다. 바로 중앙유럽에서 채찍질운동(Flagellant movement) 혹은 십자가의 형제들(the Brothers of the Cross) 운동이 흑사병에 대한 대응으로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자들이 (여자들도 몇 명 끼어서) 황폐해진 시골지역을 200-300명씩 무리를 지어 돌아다녔다. 이들은 도시(town)에 도착하면 큰 원 모양으로 모여서 자신의 몸에 채찍질을 하며 광적인 상태가 되어 울고 노래하고 소리쳤다. 처음에 당국은 이들을 미심쩍어 하면서도 그냥 놔두었다. 그러나 채찍질운동이 교회에 이익을 줄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다. 이 운동이 위계를 조롱하고 수도원이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것들을 약탈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경건한 가학피학증은 혁명적 천년왕국운동으로 전환되었다.

흑사병이 낳은 대규모의 대량학살은 거시기생체들에 보복을 가했다. ‘파스테우렐라 페스티스’는 봉기의 원천을 멸절하지도 않았고 노동계급을 훈육하여 고역을 감당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남자가 여장을 하는 것을 막지도 않았다. 유럽에서 임금은 두 배로 올랐으며 삶은 실제로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더 나아가 로저스(Thorold Rogers)의 말을 빌자면, “흑사병은 토지의 점유에서 완전한 혁명을 일으켰다.” 이는 영국에서 정점에 달했는데, 이곳에서 1381년에 일어난 농민봉기는 봉건제의 역사적 위기를 낳았다. 농민들과 도시의 장인(匠人)들이 수도원들을 공격하고 감옥을 해방시키며 토지를 차지하고 법률가들·성직자들을 공격하면서,

아담이 땅을 파고 이브가 실을 자을 때
그때 누가 신사였는가?

라는 강한 슬로건 아래 뭉쳤다.

의미는 이중적이다. ‘파다(delve)’와 ‘잣다(spin)’ 같은 단어들은 농업의 비옥함을 가리킬 수도 있고(쟁기질과 추수) 인간의 생식을 가리킬 수도 있기(성교와 출산) 때문이다.

 

  1. 콜럼버스의 교환 (The Columbian Exchange)

1492년에 봉건제가 끝나고 자본주의가 시작되었다. 상인들, 은행가들, 초기 자본가들이 유럽의 군주들과 손을 잡고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여 농장주들, 농민들, 도시 장인들에 맞섰으며, 농장주들, 농민들, 도시 장인들은 넓은 세상의 공통적인 것(the wide world’s common)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들은 바로 유럽 제국들의 육군과 해군에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대대적인 임금노동 경험을 했다. 미시기생체들의 대륙 간 전송의 관점에서 볼 때 콜럼버스의 교환은 간단하게 천연두와 매독의 교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매독을 최초의 ‘역사적’ 질병이라 부르는 이유는 전염병학의 관점에서 볼 때 질병이 생물학적 사건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사건이 되었다는 데 있다.

유럽인들은 효율적인 보균자들이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은[라인보는 그냥 ‘아메리카인들’(the Americans)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방어능력이 없었다. 1520년과 1600년 사이에 14개의 전염병이 멕시코를 유린했으며 17개의 전염병이 페루를 강타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천연두였다. 멕시코는 정복당한 지 10년 이내에 인구가 2500만 명에서 1680만 명으로 감소했으며 1620년쯤에는 180만 명으로 떨어졌다. 이와 유사한 학살이 페루에서도 일어났다. 질병에의 저항력이 노예상태에서의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서 크게 약해져 있었다.

유럽인들은 세균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1616-1617년 뉴잉글랜드의 유행병이 “저 해로운 자들을” 숲에서 몰아냈다고 코튼 매더(Cotton Mather)는 쓰고 있는데, 매더는 매사추세츠를 “새로 발견한 골고다”로 보았다.[‘해골’을 의미하는 ‘Golgotha’는 ‘Calvary’라고도 불리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처형장이다.] 필그림스(Pilgrims)[1620년 미국으로 건너가 플리머스 식민지에 초기에 정착한 영국의 분리주의자들]가 ‘언덕 위의 도시’라고 부른 곳은 이렇듯 로마의 처형장에 비견되었다. [마태오의 복음 5장 14절에 나오는 “city on the hill”은 한국어본 성경들에서는 ‘산 위에 있는 마을’, 또는 ‘산 위에 있는 동네’라고 옮겨져 있다.] 역사가 드레이크(Francis Samuel Drake)는 버지니아 주(州) 로어노크(Roanoke)의 “미개한 족속”에 대해 쓴 바 있는데, 드레이크를 돕는 한 원주민에 따르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을 그토록 빨리 죽게 만든 것은 영국의 신”이라는 말이 돌았다.

다른 한편, 콜럼버스의 배가 돌아가고 나서 가장 ‘역사적인’ 질병이라는 매독이 유럽에서 악성 전염병의 형태로 등장했다. 그 이후 “문명과 매독 감염은 함께 전진했다.”

매독은 즉시 자본주의의 고전적인 질병이 되었다. 첫째, 눈 깜빡할 새(1500년 경)에 매독은 유럽 제국들에 의해 아프리카, 인도, 중국 등 전 세계로 퍼졌다. 둘째, 이는 쾌락을 규제하는 핑계가 되어 공중목욕탕이 폐쇄되었고 키스는 수상한 행동이 되었으며 술잔을 여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풍습이 사라졌다. 셋째, 매독은 민족주의의 질병이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병이라고 불렀고 프랑스인들은 이탈리아병이라고 불렀으며 독일인들은 폴란드병, 폴란드인들은 러시아병, 중국인들은 유럽병, 일본인들은 중국병이라고 불렀다.

이런 민족주의적인 낄낄댐 아래에는 인종주의적 도살의 히스테리적인 웃음이 깔려있다. 1530년쯤 이 병은 이탈리아의 시인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가 지은 「씨필리스」(“Syphilis”)라는 시에 의해 이름을 부여받았다. 이 시는 신에게 복종하지 않은 벌로 이 병을 얻은 아이티의 한 양치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 점으로 보아 이 이름 자체가 그 기원에 잠재한 인종주의와 제국주의를 암시했다.

넷째, 매독은 완전히 부르주아 여성혐오증의 질병이었다. 이는 여러 방면으로 작용했다. 매독의 두려움은 유럽에서 르네쌍스 여성들의 대량학살―이는 ‘마녀광기(witch craze)’[=마녀사냥witch-hunt]라고 불렸다―에 필수적인 구성요소였다. 매독은 악마의 표식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1826년에 교황은 콘돔의 사용을 금지했다. 죄를 저지른 인체의 부위에 벌을 내리는 것이 신의 섭리인데, 콘돔은 이 섭리를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황 바오로 2세가 1987년 9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 캐스트로(the Castro)[샌프란시스코 유레카밸리 근교에 있는 동성애자들의 마을]의 사람들은 ‘교황은 동성애자가 되라(Popo Go Homo)’고 요구했다. [당시 2000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는데, 동성애자활동가들, 페미니스트들, 유대인들이 들고 있던 피켓의 여러 문구 가운데 하나가 다른 문구들 가운데 하나인 ‘Pope Go home’을 변형한 ‘Popo go homo’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같은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지도자들은 대량학살의 의도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내가 만일 판사라면 나는 저런 유독한 매독에 걸린 탕녀들을 거열(車裂)형에 처하고 살가죽을 벗겨 죽일 것이다. 저런 더러운 탕녀들이 젊은이들에게 끼칠 해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오면 부르주아지는 매독을 귀족층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귀족들에게는 매독이 용감성의 표식이었다!) 성애에 대한 자신들의 사정없는 억압을 보상해주는 것으로 보았다.

 

  1. 시체들을 실은 마차가 더 많이 기여했다···” (“The Death Carts Did More···”)

“역병을 아는 데에는 역병이 필요하다”는 말은 예방접종의 원칙에 대해서도 할 수 있고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 서술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이 말은 대니얼 디포의 책 『역병 일지』(The Journal of the Plaugue Year, 1722)[한국어본이 『전염병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에는 확실하게 적용된다. 이 책은 겉으로는 1665년의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과 관련이 있지만 실제로는 선페스트(bubonic plague)와 천연두가 유럽과 대서양 서쪽 지역에 재등장한 1721년의 역병을 다루는 데 공헌했다.

1721년에 선페스트가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를 종교적인 경건함과 억압적인 검역(격리)으로 맞이했다. 네덜란드 항구에서는 뱃짐들이 불태워졌고 선원들은 옷을 다 벗고 해변으로 헤엄쳐 가도록 강요받았다. 런던에서는 남해버블(South Sea Bubble)이라는 금융스캔들 때문에 수익이 떨어져 휘청거리는 상인들이 이와 유사한 격리조치에 동의하기를 꺼렸다. 위험은 ① 최근 수탈된 몇몇 왕의 삼림들에서 일어난 게릴라 형태의 운동 ② 런던의 산업화된 직공(織工)들에 의한 심각한 파업 ③ 도시 범죄의 급증 그리고 ④ 왕조에 저항해서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이라는 네 가지 흐름이 교차하는 종합국면에서 발생했다.

이 불안정한 현상들은 노동계급의 무절제한 행동과 구빈원 설립의 필요성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 한가운데서 발생했다. 그래서 정부는 런던 주교에게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주교는 디포를 고용해서 전염병의 관리를 특징짓는 정신적 공황 형성에 기여하는 글을 쓰게 했다.

한편, 같은 해에 대서양 건너편 마블헤드(Marblehead)와 보스턴에서 예방접종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면역학의 역사에서 질병통제를 통한 계급전쟁의 고전적인 사례를 제공한다. 이야기는 유명한 여류 문학자 메리 워틀리 몬태규(Lady Mary Wortley Montagu)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남편이 대사로 재직했던 콘스탄티노플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파도바의 가장 앞서가는 의과대학교에서 예방접종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낳는 효과를 공부했던 두 명의 그리스 의사에게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왔다. 그 의사들은 테살리아에 사는 그리스 여성농민들에서 접종법을 배웠다. 이렇듯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또는 약초를 사용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민간요법이 ‘서양 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던 것이다.

‘서양 의학’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뉴잉글랜드의 예방접종 논쟁에서 포착할 수 있다. 천연두는 상인들과 청교도들이 아메리카원주민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유용한 우군이었다. 세균전은 수탈과 집단학살의 선제조건이었다. 1763년 제프리 앰허스트(Lord Jeffery Amherst)는 천연두에 감염된 담요를 적의 부족들 사이에 배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720년대에 이 질병은 실질적인 위험으로서 지배층 엘리트에게 더 절실하게 다가올 우려가 있었다.

영국에서 예방접종을 재빨리 수용한 것은 천연두가 귀족들 사이에 직접적으로 왕조의 위기를 초래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앤 여왕의 아들이 천연두로 죽어서 하노버 왕가로 왕위가 넘어갔으며 합스부르크가 사람 하나가 천연두로 사망함으로써 스페인왕위계승 전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보일스톤 박사(Dr. Zabdiel Boylston)가 보스턴에 예방접종을 소개하자 코튼 매더가 선뜻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는데, (우리가 보았듯이) 이때에는 지배계급이 ‘과학을 위한 희생’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더는 오랜 사용으로 효과가 입증된 모세의 게임(Mosaic game)을 하며 “질병은 사실 인간의 죄에 신이 내리는 채찍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채찍질’이 막상 그의 등을 위협했을 때 그 또한 ‘멘투’에게 의지했는데 그는 보수도 주지 않고 고용한 오네시모스(Onesimus)라는 이름의 아프리카인으로부터 접종을 알게 되었다. [‘Onesimus’는 기독교의 신약성서인 빌레몬서에 나오는 빌레몬의 노예이며 바울을 만난 후 개종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접종은 두 가지 근거로 격렬하게 반대에 부딪혔다. 하나는 그것이 비싸고 따라서 부자만이 접종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면역력을 생성할지라도 감염을 예방하지는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코튼 매더의 집 창문으로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마블헤드에서는 어부들, 해상 노동자들 및 접종에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 폭동(“이교도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이들은 접종을 장려하는 자들의 집을 무너뜨렸다.

이렇듯 1721년은 자본주의적인 전염병학의 역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지배계급은 ‘우연한’ 죽음을 맞이할 위험이 있었고, 노동계급의 지식이 강탈되었으며, 전염병의 파괴성의 관리에 계급성이 부여되었고, 공황(panic)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의미심장하게도 미시기생체의 역사가 거시기생(macroparasitism)이라는 계급 프로젝트에 가담하게 되었다. 지배계급은 병원과 의약품 교역의 제도적 기반시설과 함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 내과 의사들 및 외과 의사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역병 일지』에서 사용된 방법은 투키디데스의 정치가 같은 분석도 아니었고, 모세의 마법을 부리는 귀신도 아니었으며, 보카치오의 태평한 즐거움도 아니었고, 집단학살을 촉구하는 청교도 지도자들의 열변도 아니었다. 디포는 ‘상식’에 호소하는, 상점 주인들이 갖고 있는 형태의 지식을 제시한다. 즉 ‘구술 역사’의 맥락에서 이야기된 사례들을 경험적으로 결합시켜 놓은 것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머리 가로젓기, 악어의 눈물, 동네 수다, 노동자들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말들이 많이 들어있다. 이런 방식은 믿을 수 있고 그럴듯한 논픽션, ‘인쇄하기 적합한 소식’인 양 가장한다. 왜일까?

전체 기획은 표면적으로는 화려했고 핵심에서는 반혁명적이었다. 거시기생체는 그 숙주들을 들들 갈아서 가난, 영양실조에 빠뜨리고 골수를 파괴함으로써 공격한다. 면역체계는 과도한 노동, 점점 더 많은 잉여가치의 추출로 인해 무너진다. 영국의 거시기생체는 한편으로 전통적인 겉모습을 하고 있었고(의회가 있는 입헌 군주제, 지주와 상인으로 구성된 지배계급), 다른 한편으로 이 관습적인 모습에 새로운 요소 두 가지를 더함으로써 1660년대에 어떤 강력한 변이를 이루었다.

그 첫 번째 요소는 국제적인 움직임이다. 아일랜드, 아프리카, 벵골, 카리브해 그리고 아메리카에서 먹이로 삼을 숙주들을 찾았다. 그 DNA는 귀족적이어서 뉴턴과 로크가 했던 것처럼 다양한 숙주들에 맞추어 특수하게 패턴화된 공격을 발전시켰다. 이 거시기생체는 파라오의 마법사들에 비유될 수 있으며, 아테네의 투키디데스와 피렌체의 보카치오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1665년 역병이 도는 동안 뉴턴은 거시기생체들에게 매개체들, 순환, 유동에 관하여 정보를 주는 미분법을 개발했다.

추가된 두 번째 요소는 나폴레옹이 ‘상회 주인’(shopkeeper)이라 불렀던 층, 역사가들이 ‘중간 부류’라 부르는 층, 맬서스(Thomas Malthus)가 ‘근면한’ 자들이나 ‘훌륭한’ 자들이라 불렀던 층, 수가 많고 점잖다는 층이었다. 이들은 숙주인 영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힘을 빨아먹었다. 이들은 막대기와 돈주머니로 묘사되어야 하는데, 그 활동이란 것이 세는 것과 강압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궁전이 아니라 집에서 살았다. 융통성이 없고 입술이 얇은 이들은 1640-1660년의 영국혁명에 의해 심하게 위협을 당했었다. 디포는 바로 이들을 위해 글을 썼다.

중세시대에 가난은 축복이었고 노동은 저주였다. 1660년 이후 거시기생체들은 이것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1665년의 역병 이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고 노동을 신성하게 보는 사고방식이 훌쩍 대세가 되었다.

디포는 거지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놀이, 게임, 발라드 부르기를 금지하며 축제모임을 금지하는 도시 당국의 명령을 기록하고, 오후 9시에 선술집·맥주집·커피하우스를 닫으라는 법령을 기록한다. 일하며 살기, 재미있게 보내기, 음식을 아주 많이 즐기기 또는 늦게 술마시기는 이렇듯 단성생식 신드롬(parthenogenetic syndrome)[모임의 금지로 인해서 개인들이 서로 격리되어 원자화된 현상]의 일부가 되었다.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질병의 매개체로 간주되었다. 교구의 조사관들, 야경꾼들 그리고 수색관들로 이루어진 경찰의 감시체제가 수립되었다. 장례식은 폐지되었고 죽은 자를 위한 어떤 모임도, 심지어는 예배시간의 위령기도조차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매장은 밤에만 허용되었다.

디포는 가난한 자들이 “모험적 행동”을 함으로써 역병을 자초한다고 믿었다. 그들이 “언제나처럼 앞날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분별없고 무절제하게”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공장에서의 근면한 노동습관(시간엄수, 규칙성, 절약 그리고 복종)이 면역력을 준다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아픈 자들을 돌보며 감염된 사람들을 격리시설로 옮기고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보이는 그들의 ‘무자비한 용기’는 가난한 자들이 왜 천연두에 걸리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특히 “어마어마한 수가 간병 일로 분주했”던 여성들이 “가장 무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필사적”이었다.

디포는 감염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공동체들을 공격한다. 더 나아가—이것이 섬뜩한 부분인데—그는 계급 규율 유지에 역병이 유용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전에 말했듯이 시장과 재판관들의 훌륭한 관리가 분노와 절망에 찬 사람들로 하여금 갑자기 폭도가 되어 날뛰지 못하게, 즉 빈자들이 부자들을 약탈하지 못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분명히 말하는데, 시체들을 실은 마차가 더 많이 기여했다.” 이것이 유행병이 사회적 사건만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물이 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첫 번째 것이다.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1/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1-3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커먼즈의 역사가라 불리는 라인보(Peter Linebaugh)가 Against the Grain과 가진 인터뷰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2020. 04. 08)의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정리하려다가 이 인터뷰의 원자료가 되는 팸플릿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1989. 02. 26)의 내용을 먼저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팸플릿은 에이즈 종식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적 풀뿌리정치단체인 <액트 업>(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1988년 창립)의 돌을 맞아 라인보가 일종의 생일선물로 작성한 것으로서 모세의 시대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닥친 역병들에 대한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제목의 ‘lizard talk’(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는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인 민중의 지식을 가리킨다. 이는 근대 이후로는 (특히 역병의 경우에) 과학적 지식에 의해 보완될 것이지만, 인류의 역사 내내 저류에서 존재했던 지식이다. (물론 망각되기가 십상이기도 하지만.) 라인보는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이 1939년에 출애굽기 이야기를 흑인의 관점에서 다시 쓴 소설 Moses, Man of the Mountain((http://onlinereadfreenovel.com/zora-neale-hurston/p/18/33960-moses_man_of_the_mountain.html))에 나오는 마구간지기 멘투(Mentu)를 이 지식을 전하는 사람의 원형으로 본다. 멘투는 모세에게 “만물의 시작에 대한 모든 것”을, 즉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를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이 팸플릿 자체가 하나의 ‘lizard talk’이고, 라인보가 멘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라인보 자신이 밝히듯이, 라인보가 이 팸플릿을 통해 전하려는 요점 가운데 하나는 아래로부터 역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위로부터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현대의 주류 미디어는 거의 대부분 우리를 위로부터 보는 관점으로 세뇌한다.) ‘lizard talk’에 바로 이 아래로부터의 지식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요점은 미시기생체(microparasite, 즉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때마다 거시기생체(macroparasite, 즉 각종 형태의 지배계급)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지배를 더 강화하려 하지만, 반대로 아래로부터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 기반을 두어 사회를 전복시킬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결코 먼저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라인보의 ‘lizard talk’는 여기서 좀더 나아간다. 팸플릿의 맨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우리가 더 섞이고 교류할수록 ··· 우리는 더 강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병/병원체들과의 관계 역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인류의 활력의 역사의 일부인 것이다.

    이 팸플릿의 내용이 조금 많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도 있고 해서 네 번에 나누어서 올리려고 한다. 먼저 ① 서두와 1·2·3절을 묶어 올리고(정리자 정백수), 그 다음에 ② 4·5·6절을(정리자 정백수), 이어서 ③ 7·8 절(정리자 성철), 마지막으로 ④ 9·10절을 묶어 올릴 것(정리 영광)이며, 그 뒤에 앞에서 말한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릴 것(정리자 정백수)이다.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은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서두]

에이즈도 그 이전의 전염병들처럼 분할(젠더들 사이의 분할, 인종들 사이의 분할, 민족들 사이의 분할, 대륙들 사이의 분할)의 원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분할은 역풍을 맞았다. 이에 맞선 투쟁은 우리를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투쟁들이 에이즈에 맞선 투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답하는 선물로 10개의 역병의 역사를 드리겠다.

HlV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실질적으로 출현했다. 동시에 시카고에서는 한 경제이론이 퍼졌는데, 이 이론은 세계 전역의 가난, 기근, 질병 등을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조직했다. 지배계급의 막장 부패는 레이건이 상징했다. 시카고는 또한 법 해석에 자유시장경제 모델들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는데(포스너Stephen Possner), 이는 정의로움에 신경 쓰기를 그치고 삶과 죽음의 비용편익을 수량화했다. 이런 법학자들이 정치적 우세함을 얻었다. 오래지 않아 인문학 분야의 개[犬]들도 베넷(William Bennett)의 멍멍거리는 명령 아래 ‘서양 문명’의 찬양에 동참했다. 시카고 역사가 맥닐(William McNeill)은 에이즈 팬데믹이 등장하기 조금 전인 1976년에 『역병들과 민족들』(Plagues and Peoples)를 냈다.

그는 우리의 생존이 ① 우리 몸에 사는 미시(微視)기생체들(microparasites,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맞선 싸움과 ② 거시(巨視)기생체들(macroparasites, 여러 형태의 지배계급들)에 맞선 싸움에서 살아남는 데 달려있다고 본다. 기생체는 어떤 종류든 숙주에 의존한다. HIV든 지배계급이든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숙주를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는 것이 기생체에 이익이다. 숙주는 기생체를 위한 잉여를 생산하는 정도까지만 살도록 허용된다.

맥닐은 『나의 투쟁』의 히틀러처럼 떠벌이지는 않지만, 질병을 은유적으로 다루는 문제점을 보이기는 한다. 그는 질병에 대해 일반인이 가진 지식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배계급에 대해서는 시카고 사람이 가진 정도의 지식을 가가지고 있다. 역병과 역사에 대한 계급 관점에서의 분석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the lost history of our own communism)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도마뱀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다.

 

  1. 고대 이집트의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 in Ancient Egypt)

고대 이집트의 역병들은 루터교, 깔뱅교, 바티칸, 시온주의에서 ‘검디검은 아프리카’를 ‘영광의 그리스’로부터 구분하는 기초원리였다. 즉 관개의 제국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이집트)을 도시국가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그리스)로부터 구분한 것이었고, 고대의 제3세계를 고대의 제1세계로부터 구분한 것이었다.

구약의 역병들은 기원전 14세기에 일었다. 이는 출애굽기에 서술된 전염병들이다. 출애굽기는 적어도 300년 뒤인 솔로몬의 재위 시에 지어졌다. 출애굽기는 예배에서의 암송, 노래, 연대기를 요약한다. 고대 국가의 공식적 신화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에 맞추어 취급되어야 한다.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출애굽기의 역병들을 범아프리카적 이야기로 본다. 그 전염병들은 힘을 가진 지팡이―이는 노예들을 자유로 이끄는 뱀신(a serpent god)이다―를 지니고 있는 모세의 마법이 발휘된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의 억압자들 및 이집트의 신들과 싸워야했다. 파라오에게 이긴 것은 우월한 마법으로 인한 승리였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지팡이가 뱀이 된다. 그가 지팡이를 나일강의 물에 담그면 강물이 핏물이 된다. 그가 흐르는 강물 위로 지팡이를 뻗으면 개구리들이 땅을 덮는다. 그가 땅의 먼지를 치면, 구더기들이 올라와 인간과 짐승을 덮는다. 파리들, 우박들, 메뚜기들, 일식들, 전염병들―이 모든 것들을 모세의 지팡이가 불러오며 파라오의 마법사들은 항상 쩔쩔 맨다. 이런 식으로 야훼는 개구리신, 태양신, 가축신들을 물리친다.

허스턴이 발견한 바로는 이런 뱀-지팡이 힘은 아이티(Haiti)와 다호메이(Dahomey)[약 1600년부터 1904년 사이 오늘날 베냉 지역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왕국]에서 살아있는 힘이다. 노예들과 무법자들(‘Hebrew’라는 단어가 가진 이집트어 의미들이다)의 지도자인 모세는 어떻게 그의 마법을 얻었을까? 그는 그것을 파라오의 마구간지기인 멘투(Mentu)[‘mentor’를 연상시키도록 고안된 이름이다]로부터 얻었다. 멘투가 모세에게 전해준 것이 바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이다. 지식을 전수받는 대가로 모세는 멘투에게 파라오의 부엌에서 남은 음식들을 가져다준다. 예전에는 삶은 돼지머릿고기를 먹었는데 이제는 모세가 가져다주는 더 좋은 부위를 먹게 된다.

마법-지식의 계급적 특성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부엌과 마구간에서 만들어지며 대가를 받고 교환되며 그 다음에야 반란, 학살, 새로운 왕국이라는 익숙하고도 모호한 이야기가 오게 된다. “‘모래를 나르고 회반죽을 갤 일은 이제 없어! 파라오를 위해 돌을 가져오고 건물들을 지을 일은 더 이상 없어! 채찍을 맞아 등이 피가 낭자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아직 어두운 아침부터 어두워진 저녁까지(from can’t see in the morning to can’t see at night) 노예로 일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자유! 자유! 멍청해질 정도로(till I’m foolish) 자유야.’ 그들은 수 세기의 세월을 눈에 담고 그저 앉아서 울었다.”[이 대목은 Moses, Man of the Mountain에서 모세로부터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후 모세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보여준다. 모세는 환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예상은 틀렸다.]

분명 이는 기독교, 유대교, 부두교(Voodoo)에 다 걸쳐있는 역사적 존재인 흑인의 해방 이후에만 가능한 버전이다. 여기서 이집트의 전염병들에 대한 독해는 자본주의의 신들이며 실로 ‘노동하라, 아니면 교수형이다’라는 복음을 전하는 루터와 깔뱅의 정반대이다.

 

  1.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고대 그리스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귀족 가문 출신인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영광의 그리스’에 속한다. 그는 아테네 제국의 국경에 있는 금광의 관리자였다. 그는 실패한 장군으로서 20년 동안 유배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The Peloponnesian War)을 지었다. 이 책을 ‘서양 문명’의 일부로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해상 제국주의를 찬양했으며, 지중해의 패권을 쥐려는 아테네의 노력을 이야기했다. 그는 상품생산으로의, 화폐형태로의 이행기에 살았다. 이는 곧 해적질에서 상업으로의 이행이었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의 책은 모세의 마법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설명한 소피스트 질병이론―증상의 관찰, 진행과정의 기록, 위기의 포착, 원인의 분석―이 이 책에 영향을 주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둘째 해인 기원전 430년에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침입하여 은광산을 공격했다. 동시에 전염병이 아테네를 덮쳐 맨 먼저 항구도시 페이라이에우스(Peiraieús)를 공격했다. 소문에 따르면 이 병은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너머 에티오피아에서 애초에 발생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이는 ‘타자’의 질병으로 간주되었다. ‘검디검은 아프리카’가 서양문명을 괴롭힌다는, 그리고 ‘서양문명’은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테네에서 이 병은 병사들을 죽이고 도시 인구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스파르타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자 이 병은 맹렬한 속도로 퍼졌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염병의 증상을 염증, 갈증, 불면증, 설사라고 서술한다. 투키디데스로서는 이 병을 자연적 위기의 일부로서 보는 수밖에 없다. 새나 짐승도 감염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했다.

외교관들과 은행가들의 역사가이며 모든 정치가를 위한 핸드북을 쓰는 투키디데스는 이 유행병에 ‘자연적’ 측면을 조금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이름 모를 질병이 유발한 ‘극단적 무법’을 서술했다. “번영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고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이 그들의 번영을 이어받는, 급속한 변화를 보고 ··· 사람들은 이제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했다.” 질병의 사회적 동학은 해방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걱정이 되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든 인간의 법이든 그들을 제한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전염병은 또한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를 낳았다. 페리클레스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 자신도 전염병에 굴복했다. 이것이 군사적 전환점이 되어서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떠났다. 이 병은 모든 곳에서 계급투쟁을 격화시켰다. 코르큐라 섬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익숙한 가난을 제거하기를 바라고 이웃의 재화를 열렬히 탐낸 자들의 간악한 의지”와 “공정한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 실로 지배자들의 오만한 대접만을 받은 피지배자들이 가하는 보복”이 투키디데스를 걱정시켰다. 그러나 노예들, 가난한 사람들, 피해를 입은 사람들 쪽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 바로 치료과정이 되었다.

 

  1. 기독교와 대탕녀 바빌론’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로마 시대의 거시기생체들은 공납, 세금, 십일조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 세계의 민족들을 먹이로 삼았다. 팔레스타인에서 포르투갈에 걸쳐 있는 가난한 서민들은 이방인들의 공격으로부터의 면역성을 시저와 네로의 문명화된 군대들에 돈을 지불하고 샀다. 이 ‘보호자들’은 그들의 ‘건강’을 아프리카, 인도, 북부 유럽까지 확대하여 네 개의 인간 질병 유전자풀(유전자급원遺傳子給源)이 지중해 세계로 합류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유행병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홍역, 천연두,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이질, 볼거리, 말라리아가 정기적으로 찾아오면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이는 상업과 정복이 이 ‘알려진 세계’를 확대하면서 기원 후 543년 유스티니아누스의 역병[나중에 ‘흑사병’이라 불리게 된 ‘페스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지중해 질병 유전자풀의 형성은 힌두교, 불교, 기독교가 공고화되던 바로 그 세기들에 일어났다. 질병과 종교는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각 종교의 초월적 숙명론이 중국, 인도, 로마의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제도화된 기독교인들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았으며, 죽음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정의는 저승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카이싸레아의 에우쎄비우스(Eusebius of Caesarea)는 흐뭇하게 자신의 교회를 신뢰했으며, 카르타고의 주교는 죽음을 ‘유익한 떠남’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로마 제국의 미생물학은 초기 교회 건립자들의 신학장사에 묻히게 되었다.

그런데 ‘대탕녀 바빌론’인 로마의 거시기생체는 파토모스의 요한에게 규탄을 받았는데, 요한은 「요한의 묵시록」에서 증거의 천막(the Tent of Testimony)에서 일곱 재난(Seven Plagues)과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일곱 대접(Seven Bowls of the Wrath of God)을 갖고 나온 일곱 천사에게서 구원을 본다.

첫째 대접은 독한 종기를 쏟아냈다. 둘째 대접은 바닷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셋째 대접은 강물과 샘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넷째 대접은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 다섯째 대접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게 했다. 여섯째 대접을 유프라테스 강에 쏟자 강물이 말라버렸다. 일곱째 대접을 쏟자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이런 대목들은 중세(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에서 17세기(아비저 콥Abiezer Coppe)를 거쳐 20세기(피터 토시Peter Tosh, 밥 말리Bob Marley)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년 동안 천년왕국설 신봉자들과 혁명가들에게 예언적 희망의 원천이 되어왔다.[피오레의 요아킴은 이탈리아에서 <피오레의 싼 조반니> 수도회를 창설한 사람이고 아비저 콥은 영국의 종교운동가이며 이탈리아의 피터 토시는 밥 말리와 함께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가이다.]

「요한의 묵시록」전체에 담긴 계급적 분노가 이 묵시록을 대중을 위한 아편이라기보다는 전위를 위한 크랙[강력한 코카인의 일종]으로 만든다. 바빌론과 간통을 한 지상의 왕들과 바빌론의 부풀어진 부에 기반을 두어 부자가 된 세상의 상인들은 울며 슬퍼할 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상품을 사고 팔 수가 없었다. “그 상품에는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모시, 자주 옷감, 비단, 진홍색 옷감, 각종 향나무, 상아 기구, 값진 나무나 구리나 쇠나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밀가루, 밀, 소, 양, 말, 수레 그리고 노예와 사람의 목숨 따위”가 있었다.[「요한의 묵시록」18장 12-13절]




코로나와 커먼즈

 



코로나와 커먼즈

코로나가 발생하기 이전에 현재의 ‘혼란한 이행기’와 ‘다음에 올 것’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목적으로 라모스(Jose Ramos)—앞으로 나올 세계-지역적 생산(cosmo-local production)에 관한 책의 책임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역사의 리듬 및 순환에 관한 문헌을 검토해오고 있었다.

요컨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다.

1) 사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단계에서 혼란한 이행들을 거쳐서 나아가며 이것은 인간의식과 사회경제적 구조 둘 다의 측면에서의 실질적인 변이들이다.

2) 이 변화는 비선형이며 내부적이거나 외부적인 충격을 거쳐서 진행된다.

분명히 코로나는 외인성(外因性)―즉 예측할 수 없는 외적요인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엄청나게 파괴적인 우리의 생태적 관행들이 팬데믹 발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코로나는 내인성이기도 한 충격이다. 이것은 인간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수요와 공급 모두에 의해 추동되는 경제체제에 이중 충격을 일으키는 이중의 불운이다. (경제위기가 수요와 공급 어느 하나에서 통상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코로나가 본격적인 이행을 하는데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커다란 가속기’는 될 것이며, 코로나는 이미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바꾸었다. 녹색/P2P/커먼즈 이행을 가속화하는 긍정적이기만 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거나 네이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옮긴이] 네이오미 클라인(Naomi Klein)이 동명의 저서 『쇼크 독트린』(The Shock Doctrine)에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글 http://commonstrans.net/?p=1397 참조.))과 같은 부정적이기만 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급진적인 변화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보고자 한다면 로마(제국)의 멸망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몇 가지 예비적 결론들은 다음과 같다.

1) 시장은 그런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해법을 찾는데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며 대기업과 소기업의 90%는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파산할 것이다. (바로 지금 대형 은행들이 미국의 필수 의약품들의 값을 부당하게 올리도록 대형 제약회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자신들의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어떻게든 이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많은 중소기업들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적인’ 다국적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적정 비용으로 진단을 받지 못하거나 의약품이 부족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 때문에 인구 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이다.

2) 국가들은 약하고 지도자들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국가라는 제도는 사회적 장이 단편화된 데서 오는 혼란한 반응들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모든 사람이 훨씬 더 심각한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시장을 단속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드러났다.

3) 현행의 다자주의 체제(([옮긴이] 다자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글 http://commonstrans.net/?p=1544참조.))는 유용했지만 (가령 WHO) 또한 상당히 약하고 비효율적이며 적어도 임무를 수행하는데 불충분했다. 국가 및 다자 기구들의 결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것들이 없었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보아 국가 및 다자 기구들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초기 대응 지연과 초기 실수 이후로 대부분이 비교적 지각 있는 정책을 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맥락에서 국가 형태를 폐지하는 것이 심각한 재앙과는 다른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

4) 우리는 이례적인 시민정신과 시민사회의 협력적인 기동(機動)을 보았는데 이것은 위기에 적응하는데 그리고 시장과 국가 실패를 완화시키는데 필수적이었다. 수많은 지역적 및 초지역적 집단들(local and trans-local groups)이 의료장비들—시장은 의료장비들을 비축하지 않았고 국가는 제때에 주문하지 못했다—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과학적인 커먼즈를 창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인공호흡기가 없다면 환자는 죽는다. 마스크가 없다면 의료인이 감염되고 시민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서로를 감염시킬 것이다. 대규모로 검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완화에서 억제로 나아갈 수 없는데 이 모든 노력에서 시민사회 집단들이 앞장을 섰다.

5) P2P/커먼즈/오픈소스의 노력을 통해 드러난 것은 초지역적, 초국가적 대응을 위한 새로운 기구들의 씨앗들이다. 이 씨앗들은 현시점에서 국가적/다자주의적 체제를 (비록 이 체제가 불충분할지라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이 체제를 크게 강화할 수는 있다. (우리는 앞으로 국제 및 다자기구들이 아니라 훨씬 더 강한 초국적 기구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초국적 기구들의 경우에는 생태적•사회적 정의가 서로에게 강하게 의존적이기 때문에 인간경제가 지구의 경계 내에서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형평성 한도 내에서 작동하는 것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지배적이고 필요한 현 체제는 시장참여자들(market players)을 살리면서도 강압하는/동원하는 새 입법을 통해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을 이리저리 부릴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현 체제는 그 자체로 효율적일 필요가 강하게 있는 초지역적•초국적 전문지식을 갖춘 집단지성과 함께 일하며 이 집단지성을 기동하는 것을 도울 필요가 있다. ‘파트너 국가(partner state)’(([옮긴이] 파트너 국가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의 글 http://commonstrans.net/?p=468참조.)) 실행과 공적 커먼즈 프로토콜을 향한 이 과정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현 위기의 부정적인 결과들 중 하나일 수 있는 강압적•권위적인 국가 중심 모델의 대안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커먼즈 운동의 역할은 무엇인가?

1) 하나는, 상호부조적 자기조직화뿐만 아니라 시장과 국가의 실패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오픈소스 활동들을 통해서 이미 해왔던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입증하는 것이다.

2) 구조적으로 적응하고 개혁을 이루고자 노력하기 위해 이 교육적인 위기의 기회를 활용하자. 다시 말해 우리는 지역적일 수만은 없으며 초지역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즉 기존의 제도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커먼즈 중심의 개혁과 변형 정책들을 제안하기 위해 제도적인 삶의 모든 수준에서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는 심각한 위기이지만 기후는 훨씬 더 심각한 위기이다. 역설적인 방식으로, 코로나에 대응하는 세계적 움직임은 그 취약성과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기관들이 일단 우리의 생명과 그들의 합법성이 위험에 처하기만 하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빨리 선택을 조정하고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기후변화에의 적응과 생태학적 변형에도 좋은 징조이다. 그러나 실수를 하지 말자. 이것은 우리에게 유용한 가르침을 주는 위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 새로운 삶으로의 분기를 위한 심층적인 변형은 우리가 유럽에서 11세기와 16세기에 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의식의 변이’를 필요로 한다. 이번에는 그 변이가 전지구적이고 상당히 동시적일 필요가 있을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변이의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강한 선행조건들을 명확하게 눈앞에서 보고 있으며 현재의 위기가 바로 이 선행조건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자연의 한계들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다른 모든 생명형태들과의 상호의존성을 깨닫는 새로운 안정적인 시스템으로의 필요한 변형을 가져올 교육적인 재난들 가운데 첫 번째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태학적 위기를 초래하는 추출적인 체제들과 인간사회가 항상 강구해온 재생성적인 대응들 사이에서 진동해온 순환의 역사를 피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우리는 수 세기와 수천 년을 지속할 수 있는 견실한 경제와 사회체제로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