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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경제란 무엇인가?


  • 저자  :  브라이언(Dick Bryan), 비르타넨(Akseli Virtanen)
  • 원문 : ” What is a crypto economy? (2018.05.15)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비르타넨은 핀란드 태생의 금융이론가이며 사회적으로 네트워킹된 세대를 위한 새로운 종류의 금융도구들을 구축하는 <로빈 훗 서비스>(Robin Hood Services)의 CEO이다. 브라이언은 시드니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이며 파생적 가치형태의 핵심 이론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저서로 Risking Together와 래퍼티(Mike Rafferty)와 같이 집필한 Capitalism with Derivatives가 있다.

 

크립토경제(crypto economy)는 그저 또 하나의 기술 부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전과는 다르게 경제를 행하는 방식(“a different way of doing the economy”)이다.

 

왜 크립토경제의 때가 지금인가?

크립토경제의 출현은 기술적으로 비트코인 관련 혁신, 분산된 원장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고 이는 공개키 암호기술을 필두로 하는 선행 및 연관 프로그래밍과 전산 혁신을 포함하지만, 크립토경제를 경제 및 금융의 역사와의 관계에서 보는 것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여러 전통적 지식과 관행이 붕괴하였고 이것이 지금 크립토경제의 출현의 실제적 조건이다.

 

전통적인 경제적 관행의 붕괴란 무엇인가?

1. 부채와 자본(equity)[자산(asset)-부채=자본(equity) — 정리자]의 구분의 붕괴. 토큰발행이 자금을 제공하는데 이는 부채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다.

2. 화폐의 파생상품과 고빈도거래(high frequency trading)의 발생이 창출하는 유동성(전환성)이 화폐와 기타 자산(asset)의 구분을 붕괴시킴.

3. 예전에는 하나의 자산에서 다른 자산으로 옮겨갈 때 법정불환화폐(fiat money)를 거쳐야 했는데, 이제 토큰들은 법적불환화폐를 ‘우회’할 수 있게 함.

4. 무형자산이 우세하게 된 상황은 쉽게 가치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회계에 문제를 발생시킴.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들도 이 점에서 무형자산과 다르지 않음.

5. 네트워크가 기업조직화의 방식이 되면서 하나의 기업을 다른 기업과 구분하는 전통적인 수단이 붕괴. 이는 기업의 존재근거를 추동해온 ‘경쟁’원리가 도전을 받음. 탈중심화된 앱들에서 이 문제들이 두드러짐.

6.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기업의 결정을 감독하고 완화시키는 (그러나 기업의 목표인 이윤추구의 우선성을 건들지는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됨. 사회적 기준을 생산에 부과된 제한이 아니라 생산의 근거로 만드는 방식으로 생산이 조직되는 것이 가능해짐.

7. 노동의 성격변화(불안전화, 임시고용, 하청, 긱 경제)로 노동자들이 리스크를 더 떠안게 되며 노동과 생활수준을 고용과 연동시키던 관행이 붕괴. 노동을 조직하는 대안적 방식들에 대한 관심이 증가.

8. 전통적인 금융도구들에 대한 신뢰가 붕괴. 2007-2008년의 금융위기는 전통적 은행업에 대한 불신을 창출. 더 나아가 양적 완화는 (재무부 발행) 장기채권의 가치의 안정성에 대한 항상적인 불확실성을 남김. 이제 새로운 방식의 금융이 더 매력적으로 보임.

 

출현하는 크립토경제의 핵심 특징들은 무엇인가?

 

1.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거버넌스 방식을 개발할 필요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변형될 잠재성이 존재한다. 블록체인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프로토콜에 의해 운영되는 경제를 말하지만 이는 지나친 단순화이다. 블록체인과 코인 발행이 많은 국가가 가능하게 하는 많은 요소들—거래와 재산소유의 시행, 거시경제의 관리등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폐와 국가의 상호연관이라는 생각, 국가만이 화폐체계를 감독할 수 있다는 생각이 큰 도전을 받는 것은 분명하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국가가 사회적 신뢰를 감독한다는 생각도 도전을 받는다. 기록관리와 청산소(clearing houses)에도 국가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크립토경제는 국가가 직접 매개하지 않는 경제적 관계들을 제공하여 국가와 무관하게 경제를 조직화할 가능성을 연다. 국가가 두드러지지 않는 만큼 크립토경제는 자신의 고유한 거버넌스 방식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크립토경제가 본질적으로 조화롭고 균형잡혀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2. 화폐의 성격의 변화

암호통화(Cryptocurrencies)는 국가만이 화폐라는 상징 토큰들에 대한 신뢰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역사적 명제에 도전했다. 비트코인은 그 대안적 토대를 제공했다. 화폐의 변화는 이 이외의 의미도 가진다. 암호토큰(cryptotokens)에 대한 논의들은 화폐의 교환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집중된다. 비판자들은 가치가 휘발성을 가짐을 지적한다. 또한 비트코인이 교환수단으로서 널리 사용되지 않음을 지적한다. 심지어 비트코인을 운이 다한 통화라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화폐는 교환수단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가치의 저장소, 회계의 단위라는 다른 중대한 기능들이 있다.

암호토큰은 그 휘발성 때문에, 그리고 다른 가치저장 방식들과의 연결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치저장 기능이 강하지 않다.

그러나 암호통화가 회계단위로서 작동할, 즉 법정불환화폐에 고유한 방식과는 다르게 경제적 활동을 측정하는 방식으로서의 작동할 한 실질적 잠재성이 존재한다. 법정불환화폐는 이윤과 손실, 수입과 지출, 시장중심적 계산이라는 전통적인 틀에 묶여 있다. 비(非)법정불환화폐는 경제적 활동을 계산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발전시킬 잠재력을 가진다. 상이한 사회적·경제적 가치들을 재현하고 이윤 이외의 기준으로 수행을 측정하는 방식들이다. 이제 각 토큰이 뒷받침하는 활동을 측정하고 기록하는, 코인별로 특수한 방식들을 크립토경제가 발전시키는 일이 중요해진다. 이렇게 되면 토큰은 그저 투기적 가치저장소로 남는 것이 아니라 크립토경제의 물적 토대 위에 놓이게 된다.

 

3. 경제적 연합의 패턴들(Patterns of economic association)

1) 교환

암호기술에 의해 가능하게 된 분산된 정보체계들이 P2P 교역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개인의 자유에 기반을 둔 경제의 추종자들에게는 상호 이익을 위해 개인들이 자유롭게 연합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블록체인은 분명 이러한 정치적 비전에 부합한다. 그러나 교환은 종종 불균등한 힘을 가진 당사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며, 이런 경우에는 상호이득이 전제될 수 없다. 크립토경제의 중요한 이슈는 블록체인이 교역에서 힘의 비대칭성이 작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우리는 블록체인이 마찰 없는 시장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마찰 없는 자본, 즉 분산된 자본을 촉진하는 것으로 본다.

2) 네트워크들

네트워크들이 전통적인 조직관들과 소유개념들(가령 지적 재산권) 그리고 ‘고용’관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도전이 이미 알려진 조직형태 즉 개별 거래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종합적 병합의 조직형태로 되돌아가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네트워킹은 새로운 협동의 가능성 그리고 함께 위험을 안고 모험할 가능성을 열고 있다.

3) 생산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부터 생산을 다시 생각할 가능성이 나온다. 생산하는 사회적 단위는 무엇인가? 생산이 어떻게 사회적 기여로서 측정되는가? 생산된 것들이 어떻게 분배되고/접근되고/소유되는가? 생산을 다시 정의하고 다시 측정하는 것이 크립토경제의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 암호토큰에 대안적 경제논리에 부합하는 통화로서의 장기적 미래를 부여하는 토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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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경제를 말하는 것은 전통적인 경제와 공존하는 대안적이고 탈자본주의적인 조직 및 계산 방식을 상상하고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큰 포부의 표현으로서, 범위나 조직방식에서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들을 예고한다. 1840년대에는 주식회사의 발생이 자본주의를 변형했다. 생산, 가치의 포획 및 분배의 새로운 방식이 탄생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와 유사한 의의를 가지는 전환점에 서있다.

새로운 네트워크 테크놀로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를 산출할 것이다. 가치가 어떻게 창출·포획·분배되는가, 화폐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생산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이런 것들이 제1세대 인터넷이 우리가 정보수준에서 서로 소통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변화시켰던 만큼이나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블록체인 테크놀로지와 이동성공유


  • 저자  :  보이드 코헨(Boyd Cohen)
  • 원문 : “How to power shared mobility startups with blockchain technology (2018.04.21)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번역
  • 옮긴이 : 민서
  • 설명 : 이글에 ‘mobility’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우리말로 쉽게 말하자면 교통 혹은 교통수단을 가리킨다. 그러나 ‘IoM’이라는 프로토콜의 존재를 감안하여 주로 ‘이동성’이라고 옮기고 맥락에 따라 간혹 ‘이동수단’ 등으로 다소 변경하여 옮겼다. ‘이동성’이라고 옮기는 것이 한국인들에게는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영어에서는 ‘mobility’ 같은 추상명사가 언제라도 구체명사로 쓰일 수 있어서 간혹 이렇게 옮기는 것이 불가피하거나 간편할 수 있다.

 

보이드 코헨(Boyd Cohen)이 쓴 이 사설은, 어떻게 이동성을 위한 새로운 블록체인의 레이어가 이동수단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들로 하여금 신속히 서비스에 착수해서 네트워크 효과에 즉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하는지를 탐구한다. 코헨은 이동성을 탈중심화하기 위해 오픈소스와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를 결합하는 <아이오몹>(IoMob)의 공동설립자이며 바르셀로나의 EADA 경영대학원의 연구부원장이다. [P2P블로그 편집자]

 

 

<셰어러블> 독자들은 번성하는 공유경제와 어번 커먼즈 및 공유도시들을 지원할 필요 사이에 이해관계가 서로 중첩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우리 도시 거주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공유경제 프로젝트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하여 적어도 몇몇 경우에는 우리가 자원 소비를 줄이고 순환적이며 공유된 접근모델로 전환하는 것을 돕고 있다. 어쩌면 도시 풍경을 이루는 부분들 가운데 공유경제 기업가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부분이 이동성일 것이다. 그리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 도시는 차 한대에 한 명이 타고 통근하는 차량들이 70%에 달하여 너무 혼잡하고 오염되었다. 우리는 도시의 물리적 기반시설과 투자자산을 개인용 이동수단들의 이동, 주차, 주유(대부분 화석 연료)에 쓰느라고 그 귀중한 자산을 더 나은 다른 쓰임에 할당하지는 못했다.

이동성공유와 관련된 공간은 아주 광범위하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매우 다양한 유형의 이동성공유 사업모델들을 목격했는데, 예를 들어 (시 범위 혹은 P2P 형태의) 자전거공유, 자동차공유, 자동차 함께 타기, 주차공간공유, 전기자동차 충전소에의 공유된 접근 및 기타 여러 가지가 있다. 실제로 <Sharemrkt>에 따르면 바르셀로나에만 그와 같은 이동성공유를 시 규모로 운영하는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

하지만 <IoMob>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은, 어떻게 점차 더 많아지는 이동수단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들이, <우버>나 <캐비파이>(Cabify) 같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대규모 다국적 이동성 기업들 및 <집카>(Zipcar)와 같은 훨씬 더 친절하며 한층 규모가 큰 상대와 경쟁하거나 시 범위에서 자전거공유 계획들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현재 이동성공유 시장은, 브랜드와 사용자 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이미 얼마 안 되는 자산을 지출하고 있는 각 스타트업기업들에게 지불방식, 사용자 등록, 평판관리 등등을 처리하는 스타트업기업 자체의 기본적인 기술 또한 개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힘든 싸움이다.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스타트업기업들을 위한 일련의 오픈소스 과학기술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연결시킴으로써 위의 시나리오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공한다. 대기업과 대중교통 운영자들—아니, 사실상 이동성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운영자들— 이 일단 지역법을 따르는 것으로 확증되면 그들은 프로토콜에 연결되는 앱을 사용하고 있는 모든 사용자에게 접근 가능하게 된다. <이동성 인터넷>(Internet of Mobility, IoM)은 각 이동성제공자(사업자)에게 그들의 자체 앱을 출시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기반시설과 사용자 베이스에의 접근을 공유하는 운영자들의 열린 생태계를 가능하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대규모 기업이 자신들의 사용자들을 스타트업기업과 기꺼이 공유하려고 하겠는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고객 요구의 충족이 보장되기 때문에 고객유지에 도움을 준다.

2. 공급자들 간에 이전에 설정해 놓은 계약—혹은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에 따라 자신의 사용자에게 다른 공급자의 접근을 허용하는 공급자는 그 계약 내용을 기반으로 일정한 몫을 받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공유된 각 고객에 대해 얼마의 커미션을 내야 하는지가 확정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이동성 제공자들이 개방적이고 투명한 생태계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초기에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공공 이동성 서비스와 사설 이동성 서비스가 한 도시에서 사용자들을 공유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을 향한 한 걸음은 이미 내디뎌졌고 ‘서비스로서의 이동성’(Mobility as a Service, MaaS)이라고 부른다. MaaS 모델은 정해진 한 달 동안 일정 양의 혹은 무제한의 서비스에 따른 월 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는 거주자들을 위하여 일련의 공공 혹은 사설 이동성 서비스를 일괄적으로 통합한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우리는 IoM 프로토콜에 쉽게 연결될 수 있는 MaaS 모델을 기존 모델에 비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블록체인과 IoM은 한층 더 나은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이동성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과 기존의 이동성 제공자들은 오픈프로토콜과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임으로써 비독점적인 방식으로 사용자들과 기반기술에의 접근을 공유할 수 있다. 사유(私有)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동성 서비스와 제휴하는 사설 기업들이 MaaS 모델을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동성 혁신을 이루거나 스타트업기업들이 지역의 이동성 시장에 접근할 여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MaaS와 오픈 IoM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즉 법적으로 허가를 받은 모든 이동성 운영자가 각 사용자의 개인 통행패턴을 근거로 해서 월 가격 패키지를 개발하는 오픈 허브 제공 웹싸이트와 함께 작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신규 사용자가 관련 웹싸이트로 가서 자신의 통행패턴을 설명하거나 시스템이 일정기간 동안 자신을 추적하도록 하면, 그런 다음에는 크건 작건 간에 모든 이동성 서비스를 찾을 수 있다. 드롭다운 메뉴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든 고르고 월별 패키지에 그 서비스를 포함시키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가 될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것을 ‘개인맞춤 이동성 서비스’(Personalized Mobility as a Service, PMaaS)라고 하자.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우리 경제를 탈중심화하고 민주화할 잠재력을 산출한다. <이동성의 인터넷>은 이동성을 공유하는 스타트업기업들이 보다 빠르게 혁신적인 서비스를 시작하고 도시의 사용자들에게 민주화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사용자들의 경험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대담 : 정치의 새로운 중심으로서의 도시



발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유럽 전역의 도시들에서 시민들이 (플랫폼들, 운동들, 국제적 네트워크들을 통해) 정치에 직접 참여하여 영향을 미치는 경로들을 창출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자치도시 플랫폼인 바르셀로나 엔 꼬무(Barcelona en Comú)의 창립자인 쑤비라츠(Joan Subirats)는 도시들이 어떻게 불확실성을 다루고 새로운 유형의 보호를 제공하며 첨단 거대기업들이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소유하는 추세를 역전시키고 심지어는 난민 같은 문제에 대하여 국민국가들에 도전할 수 있는지를 논의한다.

이 글은 ‘어번 커먼즈’에 대한 일련의 글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린유러피안저널』(Green European Journal) 16호 「장안의 화제 : 유럽 도시 탐구」(“Talk of the Town: Exploring the City in Europe”)가 그 출처이다. 이 글에서 DIEM25의 마르씰리(Lorenzo Marsili)가 바르셀로나 자율대학의 통치 및 공공정책 연구원의 창립자이자 원장인 쑤비라츠를 인터뷰한다.

— 트론코소(Stacco Troncoso)

마르씰리: 유령이 유럽에 출몰하는 것 같습니다. 도시라는 유령이지요. 당신은 당신이 바르셀로나에서 하는 일이 왜 그토록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쑤비라츠: 분명 다양한 요인들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하나의 요인은 플랫폼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독점적인 디지털 자본주의로의 변형인데요, 국가는 여기에 대응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빅 플레이어들(big players)이 투자펀드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부채와 긴축정책의 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동시에 인구는 점증하는 어려움에 처하며, 불확실성, 공포를 느끼는데, 이는 미래에 무슨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온 감정입니다. 나의 생활수준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러 해 전에 철학자 폴라니(Karl Polanyi)는 상품화를 향한 운동과 그에 맞서는 보호의 운동에 대해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보호를 받으려면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요?

마르씰리: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 호소합니다.

쑤비라츠: 네, 국가가 보호를 요청할 고전적인 장소입니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며 외국인혐오적인 논리를 따르는 국가가 여전히 보호를 요청할 공간이며, 국가는 많은 경우 국경을 폐쇄하고 사회를 폐쇄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본래 다릅니다. 도시는 개방될 목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속담에도 있듯이, ‘우리는 도시의 공기에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원주] ‘도시의 공기가 당신을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는 ‘일 년 하고도 하루’ 이상 도시 주거지에서 산 정착자들에게 자유와 땅을 제공한다는 법의 원리를 설명하는 독일 중세 속담이다.)) 도시는 기회와 가능성들이 모이는 공간이죠. 도시 당국이 국민국가보다 정책권한과 권력을 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도시 당국과 정치적 당사자들 사이의 근접성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훨씬 더 밀착되고 구체적인 종류의 보호가 제공됩니다. 몇몇 일들—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이 달라지고 호전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도시라는 말입니다.

마르씰리: 폴라니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철학 교수 프레이저(Nancy Fraser)는 두 번째 운동인 보호 운동은 주로 여성, 소수자, 지구상의 후진 지역에 반해서 서구의 남성, 백인 생계가장들을 역사적으로 보호했던 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세 번째 운동, 즉 자율과 해방의 운동의 필요성을 도입합니다. 도시의 ‘보호’는 전통적인 국가의 보호와 어느 정도까지 다를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 질문이 아다 꼴라우(Ada Colau) 요인, 바르셀로나 요인, PHA[주택담보 대출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의 플랫폼] 요인 및 반(反)퇴거 운동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PHA와 관련하여 특별한 유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PHA로 가서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주택담보 대출금을 갚을 수 없으며 그래서 쫓겨날 것이라고 말할 때 그들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거예요, 활동가가 되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당신이 PAH의 고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황을 함께 바꿀 수 있기 위하여 당신이 PAH의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리고 이것은 서비스 제공의 과정이 아니라 해방의 과정입니다. PHA는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아웃소싱 논리—“와서 당신의 쟁점을 우리에게 위임하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생각을 옹호해줄 것이다”—를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위임하는 접근법은 PAH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PAH는 사람들을 보다 활동적으로 만듭니다.

마르씰리: 어떻게 이것이 제도화됩니까? 이런 정치화 과정들, 활성화 과정들—이 과정은 공동 소유권 및 공동 관리와 더불어 결국 커먼즈 담론의 바탕을 이루죠—은 어느 정도까지 시의 정책들이 됩니까?

쑤비라츠: 이것[PHA]은 2015년 5월에 시작한 중요한 기획입니다. 선거 당시 <바르셀로나 엔 꼬무> 성명서에는 4가지 기본 사항들이 있었습니다.(([옮긴이] <바르셀로나 엔 꼬무>에 대해서는 <커먼즈로서의 도시>, <괴물 시대의 커먼즈(2)>, <커먼즈 이행과 P2P(5)>, <장벽에 맞선 도시들> 등을 참조할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다른 곳에서 다른 유사한 플랫폼들이 이 사항들을 채택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사회제도의 지배권을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제도는 포획되어서 우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점차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증가 추세이고 기본적인 사회적 보호메커니즘들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보호제공 능력을 회복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대응을 요구하는 사회적 긴급사태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위임하지 않는, 보다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일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식으로 정책의 공동생산, 결정의 공동창조 등등이 논의되기 시작합니다. 네 번째 사항은 우리가 정치부패와 정실인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특권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급여는 삭감될 필요가 있고, 업무는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권한은 제한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정치가 한층 더 윤리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씰리: 그러면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쑤비라츠: 첫째로 가장 중요한 발전은 두 번째 사항과 관련하여 확실히 이루어졌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회적 긴급사태에 응답하기 위한 보다 면밀한 정책들을 만드는 것이죠. 어떤 점에서 이것은 첫 번째 사항—다른 유형의 정치에 필요한 사회제도를 회복하는 것—과 관련한 정당성을 복원해 주었습니다. 둘째로는, ‘혁신의 도시들’ 어느 곳에서도 부패 스캔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어려운 점은 사회제도를 보다 참여적으로 만들고 정책의 공동생산을 발전시키는 일입니다. 이것은 기존 제도들의 전통, 일상 업무, 작업방식들이 우리의 접근법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매우 19세기적이고 20세기적인 접근법이 기존 제도에 존재합니다. 그 제도는 디지털 방식 이전의 것인데, 여기서 집단지성을 포함하는 방법이 관여되는 ‘공동생산’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르씰리: 실리콘 밸리의 거인들이 모든 데이터와 모든 사회적 상호작용을 화폐화하는 시스템 뿐만 아니라 그 너머의 기술 주권을 거론하는 국제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논쟁이 있습니다. 당신은 디지털 커먼즈와 관련하여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쑤비라츠: 우리는 자치도시 의회가 사용하는 사유화된 소프트웨어 기반을 바꾸는 일과 그 의회와 소프트웨어 공급자들 간에 이루어진 계약을 통해 이런 서비스에 사용된 데이터가 기업에 이전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스마트 시티>(Smart Cities)와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obile World Congress)의 중심지인 도시에서 기술혁신이 도시의 접근법을 반드시 바꾸도록 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 포럼에 못 미치는 사고방식을 바꾸면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혁신과 기술주권을 담당하는 위원을 임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기차•버스•지하철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교통카드에 대한 새로운 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카드는 공급자가 제조할 것입니다. 계약서에는 공공 당국이 바르셀로나 전 주민들의 지역 대중교통 데이터를 관리할 것이라고 명시됩니다. 여기서 주권은 국가주권 같은 것이 아니라 에너지•물•식량•디지털 주권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논의해야 할 공적인 우선사항들이자 필요한 것들입니다.

마르씰리: 주권이 너무 자주 국가주권과 동일시되어서 저는 ‘근접성의 주권’(sovereignty of proximity) 내지 ‘주권(체)들’(sovereignties)이라는 개념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헌법처럼 많은 헌법들이 “주권은 국민에게 속한다”라고 공표하고 있습니다. 국민국가가 아니라 말이죠! 그런데 헌법에서도 도시의 역할은 여전히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도시의 실제적 법적 권한은 그 범위가 좁습니다. 새로워진 거버넌스의 중심에 도시를 두고자 하는 시도라면 권한의 배분을 바꾸기 위한, 일국 수준의 정치적 싸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쑤비라츠: 저는 자치도시들의 ‘책임 수준’의 문제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치도시들은 시민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폭넓은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책임 수준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치도시들의 ‘권한의 수준’—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더 낮습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지역 내에서 해결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바로 이 이유로 <바르셀로나 엔 꼬무>가 카탈로니아를 가로지르는 운동을 조직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카탈로니아 엔 꼬무>라고 부르는데 <카탈로니아 엔 꼬무>는 뽀데모스와의 연합이라는 논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카탈로니아 수준—여기서 교육과 의료 정책들이 결정됩니다—에서나 국가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행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역 수준에서는 우리의 권한이 나타내는 것 이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동원력이 우리의 권한보다 한층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대립은 법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카탈로니아에서 주택과 관련하여 권한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이런 권한은 자율적인 카탈로니아 자치주 정부(Generalitat) 내지 국가의 수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정치적 동원을 통해 주택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고 그곳에서 베를린•암스테르담•뉴욕과 함께 <에어비앤비>에 반대하는 동맹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정치적 동학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대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스페인•미국•네덜란드 국가는 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을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법적인 권한이 없다는 생각에 구속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씰리: 도시와 국가의 대립이 흥미롭군요. 아시겠지만 우리는 유럽 전역의 많은 도시들—바르셀로나는 그중 한 도시죠—이 난민들을 맞아들이기를 바라지만 그 도시가 속한 국가들은 종종 이것을 방해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스페인 정부도 예외가 아닙니다. 도시가 단독으로 일정수의 난민을 받아들이는 그런 불복종 행동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당신은 국가정부에 불복종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신은 ‘난민재배치에 관한 유럽 시책’을 따르고 있고 정작 국가정부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쑤비라츠네, 좋은 실례군요. 저도 그 일은 실행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이 난민이라는 큰 문제는 풀지 못하겠지만, 확실히 실질적인 영향력보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도시 수준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람들이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 일이 말 뿐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도 유사한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민간투자기금이 건물을 구입하는 능력에 대해 조치가 취해진 바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시의회는 합법적으로 법을 어길 수 없지만 여러 방식으로 투자 펀드가 이런 거래를 하는 것을 한층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몇몇 경우에 자치시의회는 건물이 투기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자체를 구입함으로써 이러한 매입을 좌절시키기도 했습니다.

마르씰리: 독일 정치가 슈반(Gesine Schwan)은 본질적으로 국민국가를 우회함으로써 유럽수준의 난민 재배치와 자치도시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한 가지 제안을 내 놓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연합을 지배하는 여러 수준의 기관들은 ‘국민국가에서 유럽연합으로’ 구조에 따라서 대부분 조직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이와 달리 ‘자치도시에서 유럽연합으로’라는 구조를 생각하면서 이 기관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네, 저는 이 영역에서 우리의 경험들을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들 사이에서 서로 벤치마킹하고 서로 배우려고 만든 <유로시티>(EuroCities) 같은 조직들이 있습니다. 이동성/유동성, 사회정책 등등을 다루는 워킹그룹들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는 지역수준에서 조직화하는 이런 접근법을 더 추진해야 하며, 국가를 제치고 유럽연합과 직접 대화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국민국가들이 유럽의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했기 때문에 그 일은 전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들이 유럽연합에서 동맹을 맺더라도 그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이루어질 수는 있습니다. 저는 유럽연합이 그런 조치를 취하기를 꺼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하나의 방법은 지역 당국들이 모여서 유럽 포럼을 창출하여 힘을 키우고 이 영역에서 도약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씰리: 당신은 국민국가들에게나 유럽연합에게나 약간은 대항권력으로 작용하는, 혁신 도시들의 유럽 네트워크를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

쑤비라츠: 저는 그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르셀로나 자치도시 당국이 이미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바르셀로나는 사라예보를 11번째 행정지구로 삼았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에서 일하는 자치도시의 기술 담당자들과의 매우 밀접한 관계를 포함해서 바르셀로나와 가자지구 사이에 강한 협동관계도 있습니다. 바르셀로나 자치도시의 국제협력 전통이 자리를 확실히 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새로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는 특성이 있는 같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연히 거주하는 공간들을 지배하는 초국가적인 정치구조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 이론가인 바버(Benjamin Barber)는 시장(市長)들로 구성된 전지구적 의회를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전지구적 수준에서 매우 흥미로운 지적인 제안입니다. 전지구적 정부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유럽에는 적어도 유럽 정부의 시뮬라크럼인 유럽의회가 있습니다. 당신은 도시들이 모여서 유럽의회 같이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쑤비라츠: 그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구성적이고 강력한 힘을 갖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애초에 기존의 기관들, 관료들, 조직들에 의해 형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공간은 오히려 아래에서의 마주침(상호작용)을 기반으로 그리고 (나폴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영향을 끼쳤던 시장들의 합법성을 바탕으로 해서 작동해야 합니다. 그 공간은 위로부터 정치적 자산을 빨리 만들려는 어떠한 욕망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작용하는 과정으로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훨씬 더 복원력이 있을 것이고 결국 강력해질 것입니다.

마르씰리: 유럽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도시들이 할 역할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제가 다니면서 도시행정과 관련한 이런 아이디어의 옹호자 역할을 할 때 종종 제가 깨닫는 것은 자치도시에 보다 정치적이거나 외교적인 이런 사안을 다룰 직원과 사무실이 부족한 경우가 매우 잦다는 것입니다. 도시들이 전지구적으로 그리고 유럽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는다면 도시들은 관련 업무를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구에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쑤비라츠: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메트로폴리스 접근법을 더 강화한다면, 당신이 단점으로 언급한 것들을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자치도시라는 용어가 항상 같은 것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는 넓이가 600제곱킬로미터이고, 바르셀로나는 100제곱킬로입니다. 파리는 파리 시(the City of Paris)와 교외를 포함한 파리(Greater Paris)로 나뉩니다. 우리가 바르셀로나시보다 ‘교외를 포함한 바르셀로나’라는 개념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150만 명의 거주자에서 350만 명의 거주자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메트로폴리스권을 형성하는 25개 타운위원회는 국제적 과정을 육성하는 데 자원을 투자하기로 틀림없이 동의할 것입니다. 파리는 이미 이 일을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파리에는 메트로폴리스적 차원이 있어서 그것을 더 강화할 수 있거든요. 직원과 선례가 부족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도시가 국제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항상 국가를 거쳐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메트로폴리스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씰리: 본격적으로 전지구적인 차원을 거론하며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상위 100대 도시들이 전 세계 GDP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을 생산합니다. 2017년 6월에 바르셀로나는, 국가지도자는 점점 더 다룰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전지구적 과제들을 다룰 공동기획을 수립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들을 한데 모아 전지구적 정상회담인 <대담한 도시들>(Fearless Cities)을 주최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어떤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까요?

쑤비라츠: 제 생각에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인 어젠다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고, 도시들을 아주 쉽게 끌어들여 연결시킬 수 있는 이슈들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재분배 문제, (런던•시애틀•뉴욕에서 논쟁을 촉발시켰던) 최저임금 문제 및 주택•초등교육•에너지•물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은 분명히 경계들을 가로질러 세계 어디에서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이슈들로 시작할 수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 과제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권과 기관들에게 자극을 줄 것이고 우리는 좀 더 빨리 도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정책 분야의 결점들을 보지만, 이것은 정치체의 결점들을 부각시킬 것입니다.

 




‘코드가 법이다’에서 ‘법은 코드다’로


  • 저자  :  싸메르 하싼(Samer Hassan)((Associate Professor, Univ. Complutense de Madrid Faculty Associate, Berkman Klein Center at Harvard University)), 프리마베라 데 필리피(Primavera De Filippi)((Researcher at CERSA/CNRS Faculty Associate at Berkman-Klein Center for Internet & Society))
  • 원문 : “The Expansion of Algorithmic Governance : From Code is Law to Law is Code” (2017.12.31)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아래는 『오픈 에디션』(OpenEdition, journals.openedition.org)에 실린 원문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알고리즘 거버넌스의 확대 : ‘코드가 법이다’에서 ‘법은 코드다’로

 

I.

우리는 플랫폼 안에서의 상호작용에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플랫폼들의 사용자 베이스는 기존의 국민국가들을 왜소하게 만들고 있다. 페이스 북 20억, 유튜브 10억, 인스타그램 7억. 그런데 이 플랫폼들의 거버넌스는 민주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이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의 상호작용과 온라인 소통을 소스코드에 함입된 불명료한 규칙들을 통해 규제하는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들에 의해 통치되며 소수의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디지털 환경은 코드를 통해 작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규제로 가는 문을 열었다. 레씩이 말했듯이 “코드가 법이다”(Lessig, 1999). 코드가 궁극적으로 인터넷의 구조이며 기술공학적 수단을 통해 개인들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다.

상호작용이 점점 더 소프트웨어에 의해 규제됨에 따라 우리는 규칙들을 직접 시행하는 수단으로서의 테크놀로지에 더 의존하게 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규정하는 전통적인 법적 규칙과 달리, 기술적 규칙들은 애초에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규정한다. 이로 인해서 제3자적 위치에 있는 당국이 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 사후에 개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궁극적으로 법보다도 더 자주 소프트웨어가 온라인의 특수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한다.

그 상징적 사례는 디지털권리관리(DRM, digital rights management)이다. 이는 저작권법의 조항을 기술적 보호조치로 전환시켜서 저작권이 걸린 작품들의 사용을 제한한다. 이러한 형태의 규제가 가지는 장점은, 법원이나 경찰이라는 제3자에 의한 사후(ex-post) 단속에 의존하지 않고 규칙들이 사전(ex-ante)에 시행되어서 사람들이 애초에 규칙을 깨는 것이 매우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유연하고 다의적인(모호한) 전통적인 법적 규칙들과 달리, 기술적인 규칙들은 극히 형식화되어 있고 모호성의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기에 사법적 중재의 필요가 없어진다.

코드에 의한 규제는 오늘날 민간 부문만이 아니라 공공 부문에서도 많이 채택된다. 정부들과 공공 기관들도 코드 기반의 규칙들을 정하는 데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들과 기술공학적 도구들에 점점 더 의존하며 이 규칙들은 그 바탕에 깔린 테크놀로지에 의해 자동으로 실행(시행)된다. 예) ① 미국의 No Fly List. 이는 국가안보에의 잠재적 위협을 예측하여 평가하기 위해 데이터마이닝을 활용한다(Citron 2007). ② 사법적 의사결정과 선고형량이나 집행유예를 정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하기(O;’Neill 2016).

사회를 규제하는 수단으로 기술공학적 도구들이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을 활용하는 것은 법을 자동화할 수 있고 규칙과 규제를 사전에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코드에 의한 규제는 법의 기본적 취지 가운데 일부를 파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점도 가지고 있다.

① 코드 기반의 규칙들은 고정되어 있고 형식화된 코드 언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자연 언어가 가지는 유연성과 다의성(ambiguity)이 주는 이익을 얻지 못한다. ② 온라인 플랫폼들의 구조적 실행은 궁극적으로 특정 유형의 행동을 증진하거나 막으려 하는 플랫폼 운영자들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특수한 선택에 의존한다. 다른 기술공학적 인공물처럼 코드도 중립적이지 않고 본래 정치적이다. 특정의 정치적 구조들을 지지하거나 다른 행동들을 누르고 특정의 행동들을 촉진할 수 있다(Winner, 1980).

 

II.

비트코인을 떠받치고 있는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법을 코드로 전환시키는 새로운 많은 기회들과 함께 나온 새로운 테크놀로지이다(De Filippi & Hassan, 2016). ‘스마트 계약’—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에 깔려서 분산된 피어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분산된 방식으로 실행되는 소프트웨어—의 출현과 함께 블록체인 테크놀로지는 사람들이 서로 연계하고 많은 경제적 거래들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관여하는 방식을 혁신할 수 있게 되었다(Tapscott & Tapscott 2016). 법 혹은 계약 조항들을 스마트 계약으로 옮겨놓으면 “실행보장”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일단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이 나올 수 있다. 이 규칙들은 바탕에 깔린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의해 자동으로 실행되므로 당사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계획된 대로 돌아간다.

스마트 계약은 다수의 당사자들(인간이든 기계든)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실행될 수 있다. 이 상호작용들은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에 의해 매개되고 소스 코드에 삽입된 일단의 부동의 규칙들에 의해서만 통제된다. 스마트 계약은 거래와 계약을 미리 정해진 일단의 코드 기반의 규칙들(이는 자기실행적이고 자기시행적이다)로 형식화함으로써 코드에 의한 규제의 응용성을 증가시킨다. 블록체인 기반의 네트워크들과 스마트 계약은 그 어떤 중앙 서버에도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중지될 수 없다. 코드에 딱 그렇게 정해져 있지 않다면 말이다. 이것이 코드 기반 규제의 경직성 및 형식성과 관련된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당사자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코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 혹은 그 코드의 실행에 영향을 주는 것조차도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계학습(ML, Machine learning)은 소프트웨어로 하여금 외부의 정보원(情報源)으로부터 지식을 획득하여 학습하거나 명시적으로 행하도록 프로그램되지 않은 일을 행하도록 해준다. 점점 더 증가하는 양의 데이터(‘빅 데이터’)를 얻을 가능성과 신경 네트워크와 데이터 마이닝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발전으로 인해서 여러 온라인 플랫폼들에서 기계학습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기계학습 덕택에 전통적으로 코드에 의한 규제와 연관된 한계들 가운데 일부를 피해갈 수 있다. 기계학습은 역동적이고 변화에 적응하는 코드 기반 규칙들의 도입을 허용하여 자연 언어가 가진 유연성과 다의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전통적인 법적 규칙들의 특징 가운데 일부를 복제하기 때문이다. 수집하는 데이터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만큼 이 시스템들은 적용되는 특수한 상황들에 더 잘 부합하도록 규칙들을 항상 정련함으로써 진화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학습의 사용에도 규제의 맥락에서 단점은 있다. 데이터에 의해 추동되는 의사결정은 이미 편향을 함축하는 불공정한 것으로 입증되었다(Hardt, 2014). 말로는 ‘중립적’이라고 하는 알고리즘들이 일반화 작업을 하면서 소수자 그룹들을 구조적으로 차별하여 예를 들어 인종주의적인 혹은 성차별주의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결과를 보이는 것이다(Guarino 2016).

더 나아가, 만일 법으로 실행되면 이 규칙들의 역동성이 보편성(즉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과 비(非)차별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입력되는 데 따라 역동적으로 진화하는 코드 기반의 규칙들에 법이 통합되면서, 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적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의 정당성을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문제로 삼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규칙들의 점점 더 많은 수가 개별 사용자들의 프로필에 맞추어질 수 있게 되면 현재의 법적 체계를 특징짓는 보편성과 비차별성이라는 기본 원칙은 영원히 상실될 수도 있다.

 

Bibliography

Citron, D. K. (2007). Technological due process. Wash. UL Rev., 85, 1249.

De Filippi, P., & Hassan, S. (2016). Blockchain technology as a regulatory technology: From code is law to law is code. First Monday, 21(12).

O’Neil, C. (2016). Weapons of math destruction: How big data increases inequality and threatens democracy. Crown Publishing Group (NY).

Tapscott, D., & Tapscott, A. (2016). Blockchain Revolution: How the Technology Behind Bitcoin Is Changing Money, Business, and the World. Penguin

V. Buterin, “Ethereum: A next-generation cryptocurrency and decentralized application platform,” 2014.

Langdon Winner, 1980. “Do artifacts have politics?” Daedalus, volume 109, number 1, pp. 121–136.

Lawrence Lessig, 1999. Code and other laws of cyberspace. New York: Basic Books.

Bill Rosenblatt, William Trippe and Stephen Mooney, 2002. Digital rights management: Business and technology. New York : M&T Books.

Moritz Hardt, How big data is unfair: Understanding unintended sources of unfairness in data driven decision making. Medium. 2014. https://medium.com/@mrtz/how-big-data-is-unfair-9aa544d739de

Ben Guarino. Google faulted for racial bias in image search results for black teenagers. (2016). Washington Post.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morning-mix/wp/2016/06/10/google-faulted-for-racial-bias-in-image-search-results-for-black-teenagers/

 

 




홀로체인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 저자  :  제이미 클링어(Jamie Klinger)
  • 원문 : What is Holochain and why does it matter?
    (2018.2.15)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원문에는 홀로체인이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비디오가 맨 앞에 ‘임베드’되어 있고, 저자인 클링어가 홀로체인을 더 자세하게 소개하는 글이 그 뒤를 잇는다. 아래는 클링어의 설명 부분을 상세히 정리한 것이다. 정리자가 프로그래밍 분야를 잘 알지 못해서 일부 용어들의 경우 적절하지 못한 번역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홀로체인: 블록체인이 한 차원 높아지다

비트코인의 중앙 메커니즘인 블록체인은 컴퓨터 과학에서 기념비적인 성취이다. 이 성취로부터 많은 다른 암호화폐들이 출현하여 이 모델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개선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홀로체인은 탈중심화를 더 진척시키고 효율성을 최대화하며 모든 유형의 인터페이스들과 응용프로그램들[‘응용프로그램’ 혹은 ‘어플리케이션’은 ‘앱’으로 줄인다—정리자]이 그것과 함께 구축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자 한다.

홀로체인은 비트토렌트(BitTorrent)의 평행성(parallelism)을 활용하여 완전히 분산된 앱들을 가동시킨다.

홀로체인은 분산된 앱들을 위한 ‘데이터 무결 엔진’(a data integrity engine)이다

엔진이란 “움직이는 부분들을 가진, 힘을 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기계”이다.(출처 구글)

‘데이터 무결’(Data Integrity)이란 블록체인들과 토렌트들이 해온 일이다. 블록체인들과 토렌트들은 내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가 당신의 컴퓨터에 있는 데이터와 동일하도록 보장한다. 블록체인들과 토렌트들은 데이터의 순서가 정확하게 동일하도록 보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능장애가 일어날 것이다.

분산된 앱들이란 (클라우드가 아니라) 당신의 개인 장치에서 국지적으로 돌아가는 앱들이다.

스냅챗(Snapchat) 같은 중앙집중화된 앱은 당신에게 중앙집중화된 서버들로부터 데이터를 보내는 작은 파일(앱)을 다운받도록 제공한다.

텐엑스(TenX같은 탈중심화된 앱은 탈중심화된 블록체인(Ethereum) 위에서 돌아간다.

분산된 앱은 당신의 개인 장치에서 국지적으로 돌아가며 P2P 연결을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만일 스냅챗이 분산된 앱이라면,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은 모두 분산된 앱을 당신의 폰에 깔 것이며, 사진을 보낼 때에는 그것이 직접 당신의 친구들에게, 오직 당신의 친구들에게만 갈 것이다. 중간에 매개하는 서버들은 없다. 중간에 매개하는 블록체인도 없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분산된 앱이란 분산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여 데이터를 컴파일링하는 스크립트(실행되는 코드)인 셈이다.

홀로체인은 공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앱들을 구축할 수 있게 해준다

홀로체인 위에서 돌아가는 트위터 클론(복제품)을 만들고 싶으면 (사실 핵심 팀이 이미 작업을 시작했으며 ‘클러터’Clutter라고 불린다) 메시지의 크기, 해시태그들, 그리고 당신에게 중요한 모든 매개변수들을 위한 규칙들을 결정하라. 만일 당신의 이 특수한 트위터 앱에서 개인의 색 선호도에 의해 게시물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사람들이 가입할 때 그들이 좋아하는 색을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부분을 앱에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투표하기를 게시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응답하기 시작할 때, 당신은 사람들의 응답을 그들이 좋아하는 색에 의해 자동으로 분류되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색 선호 기능을 가진 트위터를 ‘색-트위터’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것이 가장 유용한 특징은 아니다. 더 유용한 매개변수에 대해 투표하도록 하여 견해를 수렴할 수 있다. 투표하면서 연령을 선택하도록 하고, 앱을 만든 사람에게 색-트위터에 이 매개변수를 추가하도록 요청한다. 그럼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앱을 만든 사람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좋아할 때

앱을 만든 사람이 당신의 업데이트를 통합하고 싶어 한다면 앱에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을 것이다. 그런데 분산된 체계 안에 있기 때문에 플랫폼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최신 버전을 다운받을 필요가 있다.

앱을 처음 만든 사람은 두 버전을 모두 돌릴 것인데 (그리고 새 버전으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두 버전을 모두 돌려야 한다) 이 경우 업그레이드를 한 사용자들은 다음과 같은 마지막 트윗 메시지를 남길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여기에 글을 올리지 않습니다. 이 링크를 따라서 ‘색·연령-트위터’(ColAge-Twitter)의 HonestlyJamieK로 나를 찾으세요.”

일부 사용자들은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계속 색-트위터를 사용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이들은 색·연령-트위터 계정과는 상호작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는 색·연령-트위터의 계정들이 여전히 색-트위터를 돌리는 일련의 사용자들의 옛 체인에 상호작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색·연령-트위터의 매개변수는 모든 사용자들에 의해 충족되지 않지만, 색-트위터의 매개변수들은 모든 사용자들에 의해 충족되기 때문이다.

색-트위터는 그 특수한 앱을 돌리는 사용자들이 있는 동안만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모든 색-트위터 사용자들이 오픈라인으로 나가고/나가거나 색·연령-트위터로 업그레이드한다면 색-트위터가 더 이상 접근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색·연령 트위터를 쓰기로 한 사용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연령을 등록해야 가입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쎕터(Ceptr)—홀로체인과 그와 연관된 테크놀로지를 포괄하는 모(母)프로젝트(parent project)—가 통합되면, 다른 앱이 색-트위터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이미 보유할 때 색-트위터가 자동으로 이 매개변수에의 접근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자동입력 기능처럼 보일 수 있다. 당신의 연령을 일단 입력하며, 다시는 입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운로드받은 특수한 앱으로 그 정보에 접근을 승인하기만 하면 된다.

앱을 만든 사람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을 때

만일 앱을 만든 사람이 제안된 연령 매개변수가 자신의 체계의 비전에 속한다고 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업그레이드를 거부하고 색-트위터에 머물 수 있다.

이제 이전과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다만 색-트위터의 제작자가 뒤에 처지는 사람이 된다. 나는 원래의 앱의 코드를 취해서 가지치기하여(fork) 연령 매개변수를 추가하여 홀로체인에서 나의 독립적인 앱으로 띄운다. 사람들은 원한다면 나의 앱을 사용하여 트윗을 날릴 수 있다.

다른 사례들에서처럼 만일 내 새로운 앱이 색-트위터의 모든 규칙들을 따른다면, 누군가가 색·연령-트위터 앱으로 메시지를 브로드캐스트할 때 (원한다면) 그와 동시에 색-트위터 앱으로도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다. 모든 앱들의 규칙들(색-트위터에는 색, 색·연령-트위터에는 색+연령)이 충족된다면, 당신은 당신이 돌리고 있는 수만큼의 앱들—홀로체인-호환적인 페이스북, 플리커(Flickr), 슬랙(Slack) 등—에서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다.

탈중심화가 아니라 분산

색-트위터에 게시하고 싶으면 네트워크 부하(負荷)를 나눠가질 태세가 되어있어야 한다. 홀로체인 앱들은 당신의 휴대폰에서 돌아가기에 충분하게 가벼우며 언제라도 당신이 요청한 정보만을 취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효율적일 것이다.

만일 탈중심화된 체계라면 색·연령-트위터가 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업그레이드된 노드들(nodes)이 필요하다. 분산된 체계는 전적으로 개별화되어 있으며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따라오는 데 따른다. 그러나 당신의 디앱(dApp)[분산된 체계에서 돌아가는 앱]이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당신이 사용자들에게 체계의 샤드(shard)*를 유지할 것으로 요구하지 않고 접근을 제공한다면 디앱 유지자들에게 노드들/서버들을 돌릴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 모든 앱은 사용자베이스 전체에 분산된 일련의 샤드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샤드들이 서버부하를 나눠 갖는다. 토렌트 기능에 비견된다.

리프트(Lyft) & 우버  대  라주즈(La’Zooz) & 홀로체인

라주즈는 블록체인 기반의 승차공유 앱이었다. 이 앱은 자립적인 체계로서 기능했다. 네트워크는 이 앱을 돌리고 토큰을 버는 모바일 사용자들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이들은 다시 토큰 구입자들에 의해 재정적으로 지탱되었고, 이는 운전자들이 토큰을 받아들이도록 함으로서 작동되었다. 이들은 우버가 하는 중간 매개인을 완전히 제거했다. 이 프로젝트가 중도에서 중단되기는 했지만, 그 아이디어는 블록체인과 연관을 맺어본 누구에게나 완전히 명백한 듯했다. 그리고 사라질 것이 아니었다.

체계를 기업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빼낼 수 있는데, 왜 중간 매개인에게 돈을 지불하는가? 리프트나 우버가 오늘날 존재할 필요가 있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그리고 블록체인이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이유가 실제로 있다. 법적 문제, 안전 문제, 보험요건 등 승차공유를 위한 순전히 P2P적인 체계를 아직은 실행에 조금 못 미치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몇 년 있으면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s)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탈중심화된 혹은 분산된 준거 체계들이 바로 모서리를 돌면 보이는 곳에 있다. 우리는 잠재적인 운전자들을 위해 적절한 보험의 확인(verification), 배경조사 및 기타 모든 요건들을 위한 매개변수들을 창출할 수 있다. 이는 스마트 계약과 유사하게 기능하여 일단 받아들여지면 사용자들로 하여금 확인의 다음 수준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일단 우버-클론이 나와서 돌아가면, 누군가가 그것을 가지치기해서(fork) 전기차를 사용하는 운전자들만을 지원하는 생태친화적인 버전을 만들기로 결정할 수 있다. 에코-우버는 비용이 더 들지도 모르지만,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매개변수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너무 앱이 많다!

에코-우버가 출범한 후에 누군가가 붉은 색 차 용으로 레드-우버를 만들었고 파란색 차 용으로 블루-우버를 만들었다. 만일 운전자가 매스조인드라이버스(Mass-Join-Drivers) 앱에 가입되어 있어서 적절한 운전자 매개변수에 부합한다면 이 운전자는 자동적으로 (허가를 받아서) 모든 최신 앱에서 운전자가 될 수 있다.

사용자들에게 레드-우버, 블루-우버 등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련의 옵션들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는 너무 많은 중요하지 않은 선택항들이 있는 셈이다. 사용자들은 누가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 운전을 하는지는 개의치 않는다. 빨리 가기만 하면 된다. 색-트위터와 색·연령-트위터의 경우처럼, 만일 브로드캐스터로서의 당신이 모든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누구에게나 브로드캐스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다수의 앱들을 동시에 브로드캐스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용자는 모든 적절한 운전 앱들에 승차 요청을 보낸다. 일단 첫 운전자가 요청(call)에 응답하면 그것을 사용자에게로 돌리고 모든 다른 승차 요청은 취소할 것이다.

홀로체인은 모든 인터넷 앱들의 능력 전부에 동시에,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응용 프로그램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필요로 하지 않고 접근하는 것과 같다. 언어들이 전적으로 양립 가능하기 때문이다. 홀로체인은 전 인터넷 아래에 IFTTT[‘If This Then That’의 약자로 인터넷과 컴퓨터에 존재하는 여러 별개의 서비스와 앱들을 임의로 연동시켜주는 서비스] 층을 구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 글에 기술된 일부 심층적인 특징들은 쎕터(연관성이 높지만 현재로서는 분리된 자매 프로젝트) 안에 내장된 자기기술적인(self-describing) 프로토콜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인 대시보드

오늘날 우리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에 어쩔 수 없이 만족해야 한다. 우리의 피드를 조작하는 우리의 능력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홀로체인의 경우, 우리는 앱들이 설정한 매개변수들에만 제한된다. 만일 당신이나 당신의 친구들이 이 매개변수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가지친 앱으로 매개변수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가 앱 위의 층에 존재하고 사유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신의 피드들을 마음에 드는 쪽으로 혼합하고 맞출 수 있다. 나는 모든 상황들에 대해 대시보드들을 만들 수도 있으며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매끄럽게 도약할 수 있다. 나의 모든 앱 채널들에서 적어도 10번 게시물을 올린 사용자들로부터 뽑은 개와 관련된 모든 것이 내 대시보드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의 10킬로 이내에서 살며 높은 등급의 평판을 가진 사용자들의 모든 피자 관련 게시물들이 또 하나의 대시보드가 될 수 있다.

정보는 각 앱 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최종 사용자는 자신이 선택한 매개변수로 자신에게 맞추어진 경험을 창출할 수 있다. 데이터 발굴과 합의 구축의 가능성들은 무한하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데이터 독점이 끝장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홀로체인의 사용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보가 공유되고 커먼즈로 하여금 집단적 성장과 이해를 위해 그 정보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key words: holochain, blockchain, distributed, interoperable, decentralized, dApp, smart contracts, commons




왜 농업에서 오픈액세스 운동이 중요한가



 

오픈액세스(OA)를 중심으로 한 서구 담론은 대체로 학술계에 한정되어 왔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친구와 동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그들이 더 이상 학교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직면했을 때 또는 온라인 논문 검색을 하다가 “정보이용 비용을 지불하려면 여기를 클릭하라”는 최후의, 사용자를 궁지로 몰아넣는 메시지에 도달했을 때 오픈액세스에 대해 처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은 이제 지식을 공유하는 무료 플랫폼을 제공한다. 우리 대다수가 학술적인 연구물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혹은 사회적으로 정당할 수 있는가? 사회는 전 세계 과학•문학•예술의 성과에의 접근을 동력으로 하여 전진하지 않는가? 그 연구가 공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이러한 것들이 오픈액세스 운동을 추진하는 일차적인 관심사이다.

만약 우리가 학술계로부터 이 관심사를 이동시켜 자연•사회•테크놀로지처럼 상아탑을 넘어선 영역에, 궁극적으로는 이 영역들의 교차점인 농업에 적용한다면, 이 관심사는 어떻게 보일 것인가? 자원공유는 어떻게 생물다양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지식교환이 어떻게 공동체 복원력(resilience)을 추진하는가?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해서 가능하게 되는 정보에의 접근이 어떻게 불충분하게 대의된 사람들, 주변화된 사람들 및 억압받는 사람들을 평등하게 해주는 장치가 되는가? 인구가 증가하는 지구를 먹여 살리는 능력은 어떻게 열린 문화에 달려있는가? 과거로 돌아 가보자.

2001년 12월 <열린사회 연구소>(Open Society Institute)는 오픈액세스를 홍보하기 위해 부다페스트에서 그 당시에 프리 온라인 스칼라십(Free Online Scholarship)이라 불렸던 회의를 주최했고, 부다페스트 오픈엑세스 기획(the Budapest Open Access Initiative)에서 그 운동의 잠재력을 명확히 밝혔다. 오픈액세스 운동의 역사는 오픈액세스를 가능하게 만드는 매체인 월드와이드웹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인터넷의 출현과 더불어 자유롭고 제한 없는 정보교환의 유례없는 가능성들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신하면서 디지털 영역에 더 적합한 출판 모델을 만드는 대신에 우리는 인쇄용으로 개발되었던 바로 그 관행들을 적용했다. 한때 출판비용을 충당하는 합리적인 방법이었던 것이 내용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별 비용이 들지 않는 디지털 세계에서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 선두주자인 오픈소스처럼, 오픈액세스는 사용자들이 적절한 출처를 밝히고 자유롭게 내용을 복사•수정 또는 배포할 수 있는 라이선싱을 장려한다. 대부분의 전문분야에서 저자들은 출판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기 때문에 오픈액세스로 출판을 한다고 해도 수익을 잃는 일은 없다. 하지만 오픈액세스 문헌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반면에 자유롭게 생산하거나 유지할 수는 없다. 오픈액세스의 큰 과제는 어떻게 학술적인 연구가 비용이 들지 않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최종 사용자, 즉 독자를 위해 접근 비용과 장벽들을 없앨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훌륭한 많은 모델들이 제안되기는 한다. 그러나 ‘오픈~’ 운동은 오픈리포지터리(open repository)와 오픈저널을 열심히 후원하는 기관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통합적인 경제모델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오픈액세스 운동은 학술연구물에 자유롭게 접근하기 위한 도구로서 그리고 학술연구의 구축과 개선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인터넷을 사용하려는 시도이다. 물론 비용을 분산시키는 경제적 모델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존재한다.

하지만 “오픈/개방”의 에토스는 인터넷보다 심지어 우리 현대 문화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으며 중요하게도 라이선싱이 핵심은 아니다. 모두가 소유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만들어진 농업 유산에 분명한 개방성의 증거가 보인다. 자연수분(受粉)(open pollination)은 식물들이 통제된 절차가 아닌 바람•벌레들•새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번식하는 방법으로 그로 인해 광범위하게 다양한 유전자적 특징을 지닌 식물들이 생겨난다. 자연수분에서 보이는 유전물질의 끝없는 혼합이 식물의 전반적인 활기를 증가시키고 자연의 풍부함을 재생시킨다. 이것이 생태계의 생명 기능이며 적응과 진화의 기본 요소들이다. 그로부터 생기는 ‘잡종강세’(hybrid vigor)는 체계 전체의 복원력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공생 균근 네트워크들(Mycorrhizal networks)(([옮긴이] 균근(mycorrhizal fungi)은 버섯 균사체와 식물 뿌리 사이의 공생 관계를 유지한다. 공생 균근 네트워크는 개별 식물들을 함께 연결하고 물, 탄소, 질소와 다른 영양물과 미네랄을 옮기는 균근이 창출한 지하 균사 네트워크이다.)) 혹은 흔히 우드와이드웹(Wood Wide Web)이라고 불리는 것이 점점 관심을 끌고 있는데, 여기서는 균류(菌類)가 개별 식물들을 서로 연결하고 물•탄소•질소 및 기타 영양물뿐만 아니라 정보를 옮기는 일을 한다. 자연은 우리가 지금껏 상상할 수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열려있으며 그 개방성이 진화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지는 것 같다.

개방성의 긴 역사는 전 세계 수많은 전통 문화에도 있다. 종종 집단적으로 계승되고 구전(口傳)으로 공유되며 행정적•지리적 경계선들 너머로 퍼진 지역 지식은 농부들이 종자를 저장하고 종자를 교환하는 것처럼 전통적인 농업과 생물다양성 보존의 근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수백 년 동안 이루어져 왔다. 소유자가 불분명한 우리 농업 문화유산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저작권•특허권•육종자권(breeders’ rights)이 토착 종자의 확산을 방해하고 지역 지식의 지속적 보호를 저해한다. 환경•농업•사회•문화•테크놀로지는 집단적으로 형성된 자연적•인간적인 체계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가 독창성에 강박되는 것은 미숙한 일인 듯하다.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은 『영향에 대한 불안』(The Anxiety of Influence)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독창적이기 위해서는 우리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것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쓰고 있다. 우리의 농업 유산은 우리 모두를 위해 차려진 잔칫상이며 그것을 성공적으로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두 함께 그 유산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구 사회에서 오픈액세스 운동은, 공적으로 연구비를 받는 학술연구와 학문은 페이월(paywall)(([옮긴이] 유료 동의를 거치도록 해서 인터넷 내용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을 종종 페이월이라 부른다. 학술 논문들은 대체로 페이월의 대상이며 학술 논문들을 구독하는 학술 도서관을 거쳐서 연구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뒤에 갇힌 상태로 있어야 하고 제한적인 라이선싱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사유 생산물(a proprietary product)이라는 전제를 ‘공익’—사회에 이익을 주고 적절한 재사용을 위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전제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부다페스트 선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랜 전통과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합류하여 유례없는 공익이 가능하도록 했다. 연구와 지식을 위해 과학자들과 학자들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학술지에 그들의 연구 결실을 출판하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란 바로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가능하게 만든 공익은, 동료의 평가를 거친 학술지들이 전 세계에 배포되고 모든 과학자들•학자들•교사들•학생들 및 기타 관심 있는 사람들이 완전히 자유롭고 제한 없이 그 학술지들에 접근하는 것을 가리킨다.

개방성의 특성은 공동 창조, 공동체 소유 및 각자의 성공과 실패를 거름삼아 만들어가기이다. 개방성은 개인 소유자에서 공동체—즉 전체 체계의 안녕을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체계—로의 이동을 요구한다. 이는 다른 어디보다도 농업분야에 더 적중하는 말이다. 기원전 10,000년 무렵에 일어난 농업혁명 이후로 농업은 인간 사회와 자연의 교차점이었다. 농업의 역사는 파괴와 약탈로 가득하지만 재생과 치유의 역사로 존재할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농업생태학—사회적•환경적 생태계들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생태론적인 농업 실천을 가리키는 용어—은 본질적으로 상리공생(相利共生)적이다. 사실상 농부들은 결과에 배타적으로 집중하기보다 농업 생태계의 전반적인 안녕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그 일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때 사회적•환경적 복원력이 생긴다.

 

개방성에서 자율성 찾기

개방성의 옹호자들은 우리에게 개방성은 개발 방법론이고, 공유와 협동은 번성하는 상리공생적인 생태계에서 그렇듯이 우리의 경우에도 사회적 유대를 낳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규제되지 않은 정보를 공유할 때 그 정보는 개선되며 한층 신뢰할 수 있게 되어 그 이후에 인류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개발주의적 관점은 대부분 정반대 접근법을 택한다.

국제개발은 대다수가 하향식이다. 자선—오늘날 우세한 가난 해결법—은 공동체들을 자기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참여자들로 생각하기보다 수동적인 수혜자들로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식량 생산에 대한 지배적인 접근법인 산업형 농업은 농부들을 장기간에 걸친 상호 의존성의 체계에 가두고 지구를 먹여 살린다고 허위적인 주장을 하면서 사회적인 계층화를 강화하는 경제모델을 추종한다. 대규모 단일경작 및 사유화된 화학제품과 방법으로 추진되는 산업형 농업은 기후변화에의 최대 기여자로서 현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 정도를 발생시키고 있다. 전 세계에서 번성하는 산업형 농업은 영농인 교육서비스와 국제개발업자들을 통해 가속화된다. 그리고 그것은 농촌의 생계를 파괴하고 있다. 사유(私有)에 기반을 둔 사고방식(하향식의 사고방식)은 가난한 농업 공동체에 기술과 “전문적 지식”을 옮기는 선의의 개발 기관들 사이에서조차 널리 퍼져 있다. 이 “혁신들”이 거의 지속가능하지 않고 농부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혁신들은 대부분 비용이 너무 비싸고 지역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변화하는 자연세계는 농부들이 처한 수시로 변동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상황들과 더불어 영농(營農)을 지식 기반 숙련기술, 지략(智略)과 문제 해결 능력에 뿌리를 둔 다차원적인 전문업으로 만든다. 농부들은 주변 경관들, 가족들, 농지들, 공동체들 및 지역들과 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이 그 전 체계를 관리해야 한다. 더군다나 농업의 방대한 범위는 토양•물•에너지의 보존을 포함하며, 교란을 최소화하고 잠재성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생태적인 관계들을 관리—통제가 아니라—하는 것을 포함한다. 농사는 생계이므로 농부들은 이런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단일 작물, 단일 생산물이나 단일 소득원천에 결코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 작물•토지사용•수입원천을 다양화하는 법을 이해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농부들은 생산도구와 종자 같은 유전자 자원을 보존해야 하고 할 수 있을 때마다 지역 자원들을 활용해야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농업부문에서 노동인구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들은 토지에의 접근을 막는 엄청난 장벽에 부딪히며 농삿일 말고도 자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이러한 광범위함이 농사를 전 세계에서 가장 일이 고되고 지식 집약적인 전문업으로 만든다. 슬프게도 농부들은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중 일부이기 때문에 정보부족이 치명적인 결과들을 낳을 수 있다. 지역 전체가 사유화에 기반을 둔 관행을 채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정보 접근성 부족은 농부들의 자율성을 위험에 빠뜨린다. 개방은 환경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농사는 자원 집약적이지 않고 지식 집약적이다. 건강한 농업생태계의 기본 요소인 지역 지식은 해당 장소와의 깊은 협력작용을 통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된다. 공동체의 복원력에서 시간이 행하는 역할이 최근에 꽤 주목을 받고 있다. 몇 세대에 걸쳐 땅과 관련하여 실험하고 혁신하며 가장 중요하게는 땅을 경험하는 농부보다 자연환경에 더 능숙한 사람은 없다.

만약 농부가 끊임없이 바뀌는 조건이라는 맥락에서 그런 복잡한 체계를 관리해야 한다면 그녀는 친구나 이웃과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과학기술을 장소의 특수성에 맞도록 변경하고 개선하고 지역화하는 그녀의 능력이 필수적이듯이, 농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그리고 종자들—를 전달하는 농부의 능력도 필수적이다.

지역에의 이러한 맞춤들—또는 일을 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이제 이 분야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지역혁신들(local innovations)이라고 부른다. 주류 산업부문의 사유화 관행과는 대조적으로 지역혁신들은 다면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생겨나므로 대체로 한 장소의 범위를 고려한다. 요컨대 지역혁신들은 복원력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역 농업기획들을 지원하는 국제적인 다수이해관계자 네트워크인 <프롤린노바>(PROLINNOVA)(([옮긴이] <프롤린노바>(PROmoting Local INNOVAtion=PROLINNOVA)는 생태학적으로 농업과 자연자원관리를 지향하고 남녀농부들이 농업연구와 지속가능한 생계를 위한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혁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지역혁신은 정해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일을 하는 새롭고 더 나은 방법—보통 각자의 기획에 따라 지역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한다—을 찾거나 개발하는 과정이다.

•지역혁신은 이 과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그 지역에 새로운 농업기술 또는 일을 조직하는 방식들이다.

혁신들이 효과적이고 복원력이 있으며 농업 공동체에서 자랑거리로 판명된 것을 고려해 볼 때 그 혁신들이 현대과학과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하향식 개발모델에서 공동체들•개발업자들•자선가들 사이에서의 참여관계를 우선시하는 모델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전문적인 지식에의 집착을 떨치고, 아니 정말이지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우리의 정의 자체를 바꾸어서 다른 앎의 방법들을 수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 패러다임에서 연구와 개발은 현실세계의 실천들과 분리되지 않는다.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공동체들과 함께 지식과 공동체 안녕을 개선하기 위해 일한다.

다행히 인터넷이 학문의 성격을 바꾸고 있으며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새롭고 포괄적인 작업 방식들을 촉진하고 있다. 일례로 동료평가(peer review)를 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비밀리에 판단을 내렸던 동료평가는 이제 공개적으로 조직될 수 있으며, 그 과정의 기록은 이기심이나 편향된 논점들을 드러냄으로써 학문을 개선할 수 있다. 이 열린 과정이 학력주의(품질 관리의 메커니즘)의 개념 자체를 바꾸고 디지털 지평에서 평등의 횃불이 된다. 앎의 다른 방식들과 공식적인 학문을 통합함으로써 연구의 신뢰성―즉 지식에의 주장들(knowledge claims)을 스스로 바로잡고 테스트하고 승인하는 과학의 능력―을 크게 개선한다는 것이 그 아이디어이다.

 

디지털 시대에 지식은 비경합적이다

인터넷의 탄생은 내용에 접근할 수 있는 비용을 최소화했으며 인터넷은 이제 잠재적인 평등화 메커니즘 역할을 한다. 인터넷은 또한 지식을 비경합적으로 만들었다. 이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지식에 접근해도 다른 사람이 그 지식에 접근하는 능력이 손상되지 않는다.

학술 문헌—이는 예전에는 (한 번에 소수의 사용자들만이 접근했으며 사용에 따라 마모되는) 책•학술지•비디오 같은 물리적인 대상들 안에 저장되었다—은 이제 무한한 디지털 공간의 일부이다. 이 공간에서 지식이 고갈될 위험은 없다. 이것이 디지털 정보를 비경합적으로 만들며 우리에게 유례없는 개방성을 실현할 기회를 준다.

하지만 바로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사용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은 서구의 몇몇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영토들에 재빨리 집중되었다. 한때 모든 사람에 의해 민주적으로 형성되는 위치에 있는 탈중심화된 기반 시설이었던 것이 대다수의 지역들과 인구들을―이 지역들과 인구들이 최대의 이득을 얻도록 되어 있는 경우조차도―주변화해온 것이다. 전 세계 후진국들에서 인터넷 접근을 통제하는 것은 주로 정부들이며 몇몇 정부는 인터넷을 언론의 자유, 항의, 그룹 조직화를 억압하기 위한, 심지어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 내지 기타 소수자들을 엄중히 단속하기 위한 무기로서 사용한다.

개방성은 포괄적인 인터넷 거버넌스 모델—차이와 무관하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모델—의 열쇠가 된다. 다른 장애물로는 과도한 특허등록처럼 개방적인 개발 모델에 크게 방해가 되는 것도 있다.

특허권, 육종자권 및 기타 지적 재산권은 혁신 체계에 심각한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산업농업 모델이 사유화된 테크놀로지—나중에 수수료를 받고 제공될 경쟁력 있는 지식의 집합체—에 뒤이어 생겨났다. 몇몇 농약 제품들은 식물과 동물 유전자로 특허를 얻었다. 바로 이 유전자들은 공개된 유전자 혼합을 통해 발전시키고 개선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제 자연의 살아있는 유기체의 유전자 구조를 소유하고 있으며 냉담할 정도로 잔인하게 이 “재산”의 보호를 수행할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농부들은 그들의 일의 대상인 식물과 동물들을 집단적으로 번식시켰고 보호했으며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주었다. 현재 시행중인 지적재산권은 이 시스템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사실 지적재산권은 대규모 농업 독점체들, 산업 국가의 무역협정들과 배타적인 시장들에 복무함으로써 이 시스템들을 훼손한다. 결과적으로 시골경제가 고통을 겪고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며 농부들은 자율성을 박탈당한다.

농업 분야의 지적재산권은 두려워하고 의존적이며 절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일부 농부들은 영리목적의 회사들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훔쳐 특허권을 얻을까봐 두렵기 때문에 이제 그들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길 꺼린다. 이 두려움이 완전히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많은 토착 농부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식민주의의 긴 역사 속에 뒤엉켜 일어난, 지식의 부정 유용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제인 앤더슨(Jane Anderson)은 이렇게 쓰고 있다.

자유, 공공성, 개방성과 커먼즈의 에토스는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응어리를 적절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 재산에서 ‘공적 [이익]’이라는 개념 자체가 식민지 맥락에서 획득된 토착경험들과 상충되는 포용과 대표성 개념을 전제로 한다.

‘공적인 것’이 종종 차별적이었기에 개방성이 주변화된 사람들 모두에게 긍정적인 힘으로 경험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화된 사람들이 “공개된 나의 지식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지?”라고 의문을 가질 때 우리는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이것은 개방성을 크게 문제 삼는 것이지만, 사안의 복잡성을 재검토할 기회이기도 하다. 사유화에 기반을 둔 개발 모델과 지식 체계를 전복하고 개방된 틀을 택하는 것은 사회적•환경적 정의의 핵심에 해당한다. 이런 갈등 해소가 생물군계(biome)에 대한 수용력과 복원력을 유지하는 지구의 능력을 결정할 것이다.

문화적 가치 체계들의 다양성, 광범위한 불평등 그리고 토착 주민들과 국민국가들 사이의 종종 해결되지 않은 주권 정치를 고려할 때, 우리는 지역 농부들을 혁신과정으로 끌어들여서 이들이 혁신과정을 사회환경적•문화적 현실에 연결시키도록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인류의 성공은 모든 사람의 인간다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진보는 사회정의•환경파수•시민자유 및 지역적·비판적 관점을 도외시하고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농업생태학—퍼머컬처(permaculture)(([옮긴이] 퍼머컬처(permaculture)는 생태농업으로 자원 유지·자족(自足)을 꾀하는 농업 생태계를 추구한다.)), 바이오다이나믹 농업(([옮긴이] 바이오다이나믹 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은 유기농 농업과 매우 비슷한 대안농업의 한 형태이자 원예•식품•식생활에 대한 전체론적•생태학적•윤리적 접근법이다. 바이오다이나믹 농업의 원칙과 실천은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의 실천적 제안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1920년대 초부터 많은 농부들과 연구자들의 협력을 통해 발전되었다.)) 내지 재생성적 농업의 모습을 띠든지 아니면 또 다른 모델의 모습을 띠든지 간에—은 자연 과정을 모방하고 사회적•문화적 상황을 반영하는 농업체계를 공들여 만드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이제 진보는 앞날을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생물체를 연결하는 정보와 자원을 공유하는 저 아래의 균류 네트워크 쪽을 가끔씩 보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토지균등분할론자들과 옹호자들이 인식할 때이다. 이것이 오픈소스 패러다임이고 농업생태학은 그 에토스에 뿌리내리고 있다. ♣

 




아마추어 계급 혹은 웹의 예비군


  • 저자  :  바실리스 코스타키스 (Vasilis Kostakis)
  • 원문 : “The Amateur Class, or, The Reserve Army of the Web” (2009)
  • 분류 : 내용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Rethinking Marxism에 실린 코스타키스(Vasilis Kostakis)의 논문 “The Amateur Class, or, The Reserve Army of the Web”(2009)의 내용을 단락별로 정리한 것이다. (초록抄錄은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다.) 정리이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고문헌을 표시하지 않았다. 참고문헌을 보려면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초록

이 글은 웹의 새로운 버전에 의해 개시된 컴퓨터 산업의 변형을 다룬다. Tim O’Reilly (2006)에 따르면 사회적 웹 혹은 웹 2.0의 출현은 아마추어들이 웹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갖게 되면서 아마추어 계급의 형성과 새로운 착취 방식을 낳는다. 자본주의적 생산 내에서 웹 2.0의 기능은 아마추어들의 자발적 기여를 착취하고 가치화하는 것이다. 이 논문의 바탕에 되는 주장은 웹 2.0이 해방적 측면과 착취적 측면을 모두 보여주며 아마추어들의 역할이 어느 한 쪽의 우위가 결정되는 데 작용한다는 것이다.

Key Words: Web 2.0, Amateur Class, Exploitation, Netarchists, Commons

 

웹 2.0과 집단 지성 및 창조성의 착취는 서로 엮여 있는 개념들이다. 웹 1.0의 내부에서 출현한 웹 2.0은 사회적 창조성, 협동 그리고 사용자들 사이의 정보공유를 촉진한다. 그 참여구조는 사용자들이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가치를 추가할 수 있게 한다. 웹 2.0의 출현은 eBay, Facebook, Flickr, MySpace, del.icio.us와 YouTube 같은 막대한 이윤을 발생시키는 기업을 낳았다. 이 기업들은 집단지성을 착취하기 위해서 웹 2.0에 들어있는 일단의 참여활동과 도구들에 돈을 댄다.

그레엄(Paul Graham)에 따르면 웹의 세계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전문가(professional), 아마추어. 최종 사용자이다.((D. Kleiner and B. Wyrick. 2007. InfoEnclosure 2.0. Mute. http://www.metamute. org/en/InfoEnclosure-2.0 (accessed 21 December 2007).)) 여기에 ‘해커’를 추가할 수 있다. 해커는 전문가의 특징(깊고 전문화된 지식)과 아마추어의 특징(낭만주의)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킹을 제한을 받지 않는 순수한 실험적 활동으로 보는 워크(McKenzie Wark)에 따르면 해커는 사적 소유의 형태 너머에서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는 “전문적 아마추어”이다.((M. Wark, A hacker manifesto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4).)) 아마추어와 해커의 핵심적 차이는, 전자는 플랫폼의 소유자들에 의해 착취되고 전문가들(해커일 수도 있고 전문가일 수도 있다)의 도움이 없으면 자유의 잉여―즉 진정한 커먼즈―를 산출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아마추어가 플랫폼 소유자에게 의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소유자도 아마추어 계급에게 의존한다. 사업에 가치를 추가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해커나 전문가가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 아마추어 계급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아마추어 계급의 계급으로서의 형성이 웹 2.0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웹 1.0에서는 전문가, 해커, 최종 사용자의 역할이 정해진 반면 아마추어가 들어설 구체적인 공간이 없었다. 웹 1.0의 탁하고 복잡한 성격으로 인해 아마추어가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웹 1.0의 미로 속에서도 생산에 참여하고 싶은 잉여 인구가 있었는데, 이 웹 1.0의 예비군은 아직 아마추어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 느슨한 아마추어들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아직 능력이 비물질적 생산에 참여할 정도로 진전되지 못한 아마추어들은 웹 2.0에도 존재하며 웹 2.0 노동인구의 잠재적 부분을 이룬다. 이 잠재적 부분은 아직 온전하게 자본주의적 생산에 통합되지 않고 있다. 아마추어들은 직장―플랫폼들―에 위계의 형태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형태로 배치된다. 다른 한편 플랫폼들은 잉여 인구를 착취하기 위해 손쉬운 형태로 변형된다. 앞으로 새 버전의 웹은 해커나 전문가들처럼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작은 돈을 받더라도 웹 생산에 참여할 큰 열성을 가진 아마추어들을 더 착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아마추어는 금전상의 이득을 주된 목적으로 하지 않고 더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여가 시간에 창조를 하지만 (그리스어로 ‘아마추어’를 의미하는 ‘ερασιτέχνης’는 ‘애호가, lover’를 의미하는 ‘εραστής’와 ‘기예, art’를 의미하는 ‘τέχνη’가 합해진 것이다) 그 지식은 해커나 전문가처럼 전문화되어 있지 않다. 맑스는 인간의 자유에 채워진 족쇄는 종교나 철학이 아니라 화폐라고 주장한다. 아마추어는 통상적인 인식과 단절하며 이를 통해 과거와의 단절이 일어난다. 아마추어는 인간 노동의 소외된 본질인 화폐를 그 자체 목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아마추어 계급의 생산은 화폐의 논리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공유·존중·사회화·인정 같은 가치들에 기반을 둔다. 워크가 말하는 해커처럼 아마추어도 배타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창조한다. 둘 다 집단적 노동, 혁신, 자유의 옹호자들이다. 아비드슨은 아마추어가 참여하는 경제 유형을 ‘윤리적 경제’―인간들이 소통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주체들이 서로 연결되는 질서를 창출하는 경제―라고 부른다.((http://www.p2pfoundation.net/Introduction_to_the_Ethical_Economy)) 이와 달리 근대 기업 자본주의는 윤리적으로 건전한 사회질서와 양립될 수 없다고 한다.

웹 2.0은 아마추어들의 예비군을 착취하는 조건을 창출했다. Flickr, MySpace, Facebook, del.icio.us와 YouTube가 그 대표적인 웹 플랫폼들이다. 이들은 아마추어들의 능력과 창조성에 대한 욕망을 활성화하여 포획한다. 아마추어의 자발적 참여가 플랫폼 관리자들에게서 (잉여) 가치로 변형된다. 아마추어들에게 생산수단이 이용가능해지지만 플랫폼들은 기업이 계속적으로 소유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새로운 표현이다. 산업 생산에서는 노동자들(전문가들)이 보수를 받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판매한다. 창조·자부심·충족감은 느끼지 못한다. 회사는 부유해진다. 더욱이 생산과정이 경쟁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소외된다. 경쟁에 기반을 두지 않는 웹 2,0의 지적 생산에서는 아마추어들이 (때로 소액의 보수를 받고) 창조·소통·사회화·자부심의 즐거움을 향유하며, 기업들은 이로부터 (주로 광고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다.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페이스북의 1.6% 지분에 해당하는 주식을 2억4천6백만 달러에 샀으며, 1년 후에 구글은 유튜브를 16억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보수가 거의 지불되지 않는 아마추어들의 웹 생산에서도 자본은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 자본 축적은 항상 자본의 자기확장에 충분한 수 이상의 노동 인구, 즉 과잉 인구를 발생시킨다고 맑스는 『자본론』에서 말했다. 그런데 아마추어 생산에서는 임금 의존성이 없으며 따라서 추가적으로 아마추어를 착취할 때 한계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래서 넷지배자들(netarchists 혹은 netocrats)―플랫폼들을 소유한 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아마추어들을 착취하려고 한다. 예비군의 수를 최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성취될 수 있는 목표이다. 넷지배자들은 그 투기적 성격 때문에 커먼즈 영역의 강화를 위한 여러 계획들을 위임받기에는 위험하다. 플랫폼을 소유하는 자본가들의 착취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커먼즈 영역의 창출과 강화의 이름으로 폐지하는 것이 아마추어들과 해커들의 손에 달려있다.

들뢰즈와 가따리는 “우리에게 소통이 결핍된 것이 아니다. 사실 소통이 너무 많다. 우리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창조이다. 우리는 현재에 대한 저항을 결여하고 있다”라고 썼다.((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What is philosophy?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108.)) 아마추어들은 창조하고 저항하지만, 그 이상으로 성취될 것이 있다. 플랫폼의 독립과 자율성이 필연코 투쟁의 전술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웹의 생산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사회 계약이 출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사회 계약 2.0’이라고 불린다. 여기에는 생산과 소유의 새로운 의미들 및 방식들(피어 생산peer production과 피어 소유peer property)이 포괄되며, 이것들이 실질적 커먼즈 영역의 창출에 기여한다. 피어 생산에서 의사결정은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참여와 협력에서 이루어진다. 이 생산양식은 등가교환에 기반을 둔 시장 생산이나 위계적 구조에 기반을 둔 계획경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피어 소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나 GPL과 같은 법적 형태 아래에서 자원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공동체적 공유의 형태를 띤다. 피어 소유는 사적 소유나 국가소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통적인 소유형태들이 배제적인(‘나의 것이면 당신의 것이 아니다’) 반면에 피어 소유는 포함적이다(‘나의 것일지라도 당신의 것도 될 수 있다’). 국가는 민중(국민)을 대신해서 공적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반면에, 피어 소유에서는 민중이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관리한다. 즉 커먼즈이다. 따라서 피어 3요소(피어 생산, 피어 소유, 피어 거버넌스)에 기반을 둔 진정한 커먼즈가 넷지배 플랫폼들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이 커먼즈에서는 집단적 지성과 사회적 창조성의 관리가 ‘넷지배적 이데올로기’―이는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라고 불린 바 있다((Barbrook, R., and A. Cameron. 1995. The Californian ideology. Alamut, August. http://www.alamut.com/subj/ideologies/pessimism/califIdeo_I.html (accessed 31 arch 2008).))―에 의해 추동되는 사적인 영리 기업들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넷지배자들은 참여를 포용하는 듯하지만, 자본주의를 인류 미래의 유일한 지평으로 본다.

이 논문에서 행한 넓은 범주화와 일반화가 특수한 사례들에서 해석의 오류를 낳을지도 모른다. 나[코스타키스]는 웹 2.0이 해방적 측면과 착취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아마추어들이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일정하게나마 조명했기를 바란다. 아마추어들이 창조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일정한 권리들을 플랫폼의 소유자들에게 양도해준 듯 보일 수도 있다. 넷지배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아마추어들을 착취하여 거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비물질적 가치의 생산이 임금 의존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회질서를, 더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생산하는 아마추어들이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의 홍수 속에서 커먼즈의 강화를 향하는 플랫폼의 독립과 자율성은 성취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 이상의 것이다. “사회 변화의 핵심적 동인으로서 공유 및 커먼즈 공동체들의 지속적인 강화”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Michel Bauwens, “The social Web and its social contracts: Some notes on social antagonism in netarchical capitalism”, Re-public. http://www.re-public.gr/en/ p261 (accessed 25 July 2008).))♣

 

 




오픈 액세스의 개척자 PLOS



 

오픈 액세스의 개척자: 과학 공공 도서관(The Public Library of Science)

 

1990년대에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 해럴드 바머스(Harold Varmus)와 캘리포니아 과학센터의 과학자 패트릭 브라운(Patrick Brown), 마이클 아이센(Michael Eisen)은 과학연구를 공유하는 데 가해지는 많은 제약으로 인해 점점 더 좌절을 겪었다. 학술 연구자들이 (상당수가 납세자들에 의해 재정지원을 받는) 돈이 많이 드는 어려운 과학연구를 하고 같은 전공자로서 연구물에 대해 리뷰를 하는 사람들임에도 상업적인 학술지 출판사들은 보통 출판된 결과물의 저작권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출판사들은 도서관들로서는 종종 감당할 수 없는 구독료를 부과하고 연구논문들에 접근·복사·공유하는 사람들의 권한에 법적 제한을 가할 수 있었다. 구독료는 10년 넘게 인플레이션율 이상으로 오르고 있으며 미국 대학들은 이제 학술지들에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을 쓴다. 심지어 하버드대 같은 가장 부유한 기관들조차 이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http://isites.harvard.edu/icb/icb.do?keyword=k77982&tabgroupid=icb.tabgroup143448))

이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바머스와 그의 동료들은 세계 전역의 과학자들에게 그들 논문의 전문을 모두가 무조건적으로 즉각 혹은 몇 달 간의 타당한 지연이 있은 다음에 이용하는 것을 막는 학술지들에는 더 이상 논문을 내지 않겠다고 서약하기를 청하는 온라인 청원서를 내놓았다. 또한 그들은 더 이상 그러한 학술지들을 구독하거나 그러한 학술지들을 위해 리뷰를 쓰지 말 것을 과학자들에게 촉구했다.((http://www.plos.org/about/plos/history))

그에 대한 응답은 신속했고 놀라웠다. 180개국 34,0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그 공개 청원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서명자들이 청원서의 목표를 실질적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는데, 그 이유는 논문들을 실제로 제공하거나 논문들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출판물들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 간극을 메우고자 바머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과학 공공 도서관’(www.plos.org)으로 알려진 새로운 출판벤처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논문들을 모두가 영구적으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 출판 매체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자들과 연구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연구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었다. 원저자는 저작권을 가지며 자유로운 재사용·공유·배포가 가능하도록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어트리뷰션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se) 하에 논문을 공개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에 관한 에세이를 보라.) 이 프로젝트는 런던에 기반을 둔 기업가 바이텍 트라츠(Vitek Tracz)와 1990년대 후반의 다른 혁신적 출판업자가 유사한 목적으로 주도했던 출판벤처인 바이오메드 센트럴(Biomed Central)의 개발을 참조하여 이루어졌다.

2003년 설립된 이래 플로스(PLOS)는 공동체의 저항에서 시작하여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직접적으로 접근가능하며 공개적으로 인준된 학문적 내용을 담은 세계 최대의 출판사로 성장했다. 최초의 플로스 학술지인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은 2003년 말에 첫 논문들을 출판했으며 순식간에 양질의 논문들로 명성을 얻었다. 그 다음 수년 간 그 프로젝트는 『플로스 의학』(PLOS Medicine)과 계산생물학, 유전학, 병원균, 도외시된 열대성 질환 분야의 연구에 각각 초점을 둔 네 학술지를 내놨다.

이 여섯 개의 학술지가 성장하면서 설립자들은 학적 소통에서의 변화를 촉진한다는 본래의 더 야심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목표로 나아가는 그 다음의 중요한 단계는 과학 전체를 포괄하기 위해 그리고 과학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척하기 위해 2006년에 새로운 과학지 『플로스 원』(PLOS ONE)(www.plosone.org)을 만든 것이었다. 처음으로 출판되는 논문 수에 가해지는 어떠한 인위적 제한도 없게 되었다. 투고된 논문들은 예견되는 파급력이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과 기술적 질을 기반으로 검토되었다. 관행적으로 연구자들은 가장 까다로운 학술지에 게재함으로써 갖게 되는 명망을 추구해왔는데, 이것이 이제 학술지의 명망이 논문의 질보다 더 중요하게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논문 저자와 편집자 양자로 하여금 주의 깊은 증거를 제공하기보다는 가장 선정적인 주장을 하거나 그런 주장을 뽑는 비뚤어진 동기를 낳을 수 있다. 『플로스 원』은 적절하게 수행된 과학이라는 규준을 충족시키는 모든 투고논문을 출판하는데, 이것이 『플로스 원』을 2010년에 세계 최대의 학술지로 만든 출판전략이다. 모든 주요 출판사들이 곧바로 『플로스 원』의 “거대 학술지”(megajournal) 모델을 모방하여 논문 수를 인위적 제한하지 않는 광범위한 학술지들을 출판했다.

대규모 독자층과 투고논문의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플로스 원』은 같은 전공자의 엄격한 출판 전 리뷰의 타당성에서도 선구자가 되었다. 통계적 타당성, 윤리적 리뷰, 보고 지침과 관련한 몇 개의 검증사항은 모든 학술지 가운데 가장 엄격하다.

플로스는 처음에는 자선기금에 의하여 그리고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the Gordon and Betty Moore Foundation),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the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두 재단은 각각 인텔사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와 연결되어 있다―과 같은 박애주의적 기금으로부터 온 수입에 의하여 재정을 조달했다. 플로스는 2010년에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으며 비영리사업인데도 그때 이래 매년 흑자를 냈다. 플로스는 재정정보에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왔으며 그리하여 비영리단체에 대해서 정부가 요구하는 정보공개에 준하는, 세부 수입액·지출액 공개의 선구자였다. 2012년에 플로스 출판벤처는 총 3천 8백만 달러를 거둬들이고 거기서 7백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일단 확립되자 학적 소통에서의 새로운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나의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개별 논문들의 파급력과 쓰임새를 아주 세부적으로 측정하는 데 쓰이는 공개 데이터를 제공하는 도구인 논문수준표(Article Level Metrics)였다.((http://article-level-metrics.plos.org)) 이러한 혁신 이전에는 연구논문에 대한 평가가 전통적으로 그것 자체의 개별적 가치보다는 그것이 게재된 학술지의 평판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 기획은 또 다른 영향을 미친 바 있으니, 10만 명 이상의 연구자와 400개 이상의 기관이 서명한, 연구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the 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 DORA)이 바로 그것이다.((https://en.wikipedia.org/wiki/San_Francisco_Declaration_on_Research_Assessment)) 2012년의 이 성명은 자금을 댄 사람, 기관, 기타 출판사들이 학술지의 ‘피인용지수’(논문의 평균 인용 횟수)를 개별 과학자의 기여의 질과 혼동하지 않고 연구논문들을 그 자체의 장점을 기반으로 판단하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연구 평가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고용·승진·해고를 결정하는 방식에 느리기는 해도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최근에 플로스는 윤리적인 혹은 기타의 고려에 따라서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게재논문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데이터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플로스는 연구의 정확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논문들을 출판 이후 짜임새있게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들 또한 개발했다.

과학 분야의 출판을 커먼즈의 한 유형으로 다시 생각함으로써 플로스는 학적 출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선봉에 있어왔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플로스가 이제 수천의 오픈 액세스 학술지들을 포함하고 50만 편 이상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구논문들을 포함하는 과학 분야의 출판을 중차대하게 대변하고 선도적으로 혁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




탈자본주의적 기업가활동



[책 설명]

1. 보이드 코헨

제목에서 상상할 수 있듯이 (여러분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최근의 교류로 알고 있지요) 이 책은 자본주의가 전반적인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며, 분산적 테크놀로지에 의해 향상된 더 민주적인 조직화·가치창조·포획의 새로운 (그리고 오래된) 형태들이 공동체적 기업가활동(entrepreneurship)(([옮긴이] entrepreneurship’은 ‘entrepreneur’(기업가)에 접미사 ‘-ship’이 붙은 것이다. ‘-ship’은 일반적으로 추상명사로 만드는 기능을 하지만, 영여에서는 추상명사와 구체명사가 자유롭게 호환되어 사용되기 때문에, ‘-ship’이 붙으면 오히려 상황에 따라 여러 구체명사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entrepreneurship’이 추상명사일 때에는 ‘기업가임’ 혹은 ‘기업가로서의 존재’ 등의 의미인데, 기업가라는 존재는 기업가로서의 정신도 가져야 하고 능력도 가져야 하며 기업가로서 활동도 해야 하는 등 여러 측면들이 있을 것이다. ‘entrepreneurship’이 구체 명사로 쓰이면 이 여러 의미들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맥락을 잘 보아야지 기계적으로 ‘기업가정신’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여기서는 맥락을 보아 주로 ‘기업가활동’으로 옮겼다. 참고: ‘entrepreneurship’은 실제로는 드물지만 잠재적으로는 기업가들 전체를 통칭할 수 있다. ‘leadership’이 ‘지도층’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와 같다. ‘-ship’은 미디어를 통칭하는 단어인 ‘mediascape’의 ‘-scape’와 어원이 같다.))이라는 대안적인 경제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합니다. 이 책의 여러 장들은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커먼즈 기반 피어 생산, 플랫폼 협동조합주의, 대안적 통화(通貨), 분산된 자율적 조직, 탈자본주의 기업가활동에서의 벤처자본의 중요성의 감소.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마지막 장에서는 이 모든 것을 도시 수준에서 총괄하여 탈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기본소득 및 팹시티들(fab cities)(([옮긴이] fab city’란 지역에서 생산하고 전지구적으로 연결된 자기충족적 도시들을 나타내는 새로운 어번 모델이다. fab.city 참조.))과 결합되어 작동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2017년 4월 저자의 전자메일)

2. 출판사의 책 설명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오큐파이 운동은 미국에서 그리고 정도는 다르지만 세계의 여러 민주 국가들에서 가동되는 시장 기반의 자본주의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인식에 대한 반응으로 출현했다. 일반 시민은 체제가 부유한 자들을 더 부유하게 하기 위해 세워졌다는 확신을 점점 더 가지게 되었다. 지니 계수(Gini Index)와 같은 소득 불평등 관련 데이터는 대중의 인식이 정확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우리는 탈자본주의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새로운 경제적 모델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음을 목격해왔다.

탈자본주의 사회의 주창자들은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러시코프(Rushkoff)는 지식 사회가 어떻게 더 큰 소득 분배와 모든 사람의 소득의 증가를 낳기보다 실제로 부가 1%의 수중에 축적되는 악화된 상황을 가져오고 있는지를 탐구했다. 러시코프와 마슨(2016)은 에어비앤비(Airbnb)나 우버(Uber) 같은 메가플랫폼 디지털 P2P 독점체들의 출현을 탄식한다. 이 독점체들은, 야심있고 벤처자본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소유하는 P2P 플랫폼들이 반드시 더 나은 평등을 낳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기어코 전지구적인 지배를 추구하여 결국 나의 동료이지 <셰어러블>(Shareable)의 창립자인 고렌플로(Neal Gorenflo)가 ‘죽음의 별 플랫폼들’(‘platform deathstars’)(([옮긴이] 음의 별’(Death Star)은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조그만 행성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이동 구조물이다.))이라고 부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러시코프는 자본주의에 위기를 가져왔다는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과 투자자들을 실제로 비난하는 것은 거부한다. 그 대신 그는 그들 ‘자신이 다른 모든 디지털 거대 기업들을 제치고 지배하려는 승자독식형 경쟁에 빠져있다. 커지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것이다’(pp.3-4)라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이미 탈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중이라면 이것이 기업가들에게 (실리콘밸리만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책은 전 세계의 기업가활동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대해 탈자본주의 사회가 가지는 함축을 이해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며, 탈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기업가들이 창업을 하는지, 무슨 목적으로 그리고 창업투자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면서 혹은 하지 않으면서 창업을 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는 생각들 가운데 다수를 문제 삼는다. 더 나아가 이 책은, 대안적 통화(지역, 암호화폐, 시간 은행), 블록체인을 도입한 분산된 자율 조직들(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s, DAOs)의 출현과 같은 주제들에 각각 장을 할애하여, 출현하는 실제 이야기들을 탐구하고 탈자본주의적 기업가활동(post-capitalist entrepreneurship, PCE)의 여러 형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강하게 초점을 맞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시장 자본주의와 PCE 사이의 연속성에 착목하는 혼성(混成)적 접근법들을 탐구할 것이다. 공유경제 내에 있는 플랫폼 협동조합들이나 베네핏 기업들(예를 들어 B랩 인증 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각 장의 내용 요약]

1장 커먼즈 기반 기업가활동을 향하여

기업가활동에 대한 고전적 접근법들이 가지고 있는 전제는, 기업가들이 지적 재산을 발전시키고 보호함으로써 경쟁에서의 우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적 재산을 보호하는 것 대신에 그 자리에 가치창조 및 추출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법이 들어선다. 탈자본주의 기업가들은 전문지식을 보호하려고 하기보다 혁신과 가치창조를 열린 과정으로 본다. 즉 그것을 통해 공동체(디지털 형태든 물리적 형태든 양자 모두이든)가 혁신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가 공동으로 개발하는 도구들에 무제한 접근할 수 있는 그러한 과정으로 본다. 소비자들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참여자들이 되어 다른 이들의 작업을 바탕으로 삼아 그 위에 다음 작업을 해나간다. 자원(디지털, 물리적, 자연적)의 공유나 공동생산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협동을 나타내는 커먼즈 개념은 탈자본주의적 활동을 틀짓는 방식으로서 추진력을 얻었다. 자본주의가 자원과 보호되는 지적 재산의 희소성을 장려하는 반면에 PCE는 풍요와 접근을 장려한다. 이 장은 탈자본주의적 기업가활동을 틀짓는 방식으로서의 커먼즈를 탐구하는 데 할애되어 있으며, 커먼즈 기반 PCE를 가능하게 하는 몇몇 새로 출현하는 패러다임들과 도구들 살펴볼 것이다.

2장 신생 베네핏 기업들

나는 전통적인 자본주의 모델을 통해 규모를 키우려고 하는 신생 기업들이 곧 혹은 아마 중기적으로라도 사라지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과 PCE 사이의 어떤 혼성적 모델에 해당하는 일련의 과도적 접근법들을 목격하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도적 접근법들을 탐구하기에 제일 좋은 사례는 미국 등지에서 법적 지위를 점점 더 굳혀가고 있는 신생 베네핏 기업들(for-benefit startups)(([옮긴이] for benefit’은 ‘for-profit’(영리)과 ‘nonprofit’(비영리)이라는 기존의 기업 구분의 어디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기업, 즉 수익을 남기지만 명시적인 사회적 사명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기업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아직 좋은 번역어를 찾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일단 ‘베네핏’으로 음역하기로 한다. ‘for benefit’은 자기 이득만 취하지 않고 사회에 ‘선행’(benefit)을 베푸는 것을 지향한다는 의미이다.))이다. B랩인증 기업들(B Corporations, B Corps)(([옮긴이] B Corporations’는 B랩 인증을 받은 영리기업들을 말한다. B랩 인증은 전지구적 비영리 조직인 B랩(B Lab)이 기업의 사회적 지속가능성 및 환경수행 기준,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준 등을 얼마나 충족시키는지를 평가하여 발행하는 인증이다.))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법적으로 구속하여 사회적·환경적 수행의 높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회사들이다. 이 장은 B랩인증 기업들(현재 전 세계에 약 2000개가 있으며 계속 늘고 있다)의 출현과 B랩인증 기업들의 지위를 확립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것을 탐구하고 법적 구속력을 가진 시장 외적 목표들을 자신들의 전략과 운영에 수용한 몇몇 흥미로운 기업가들의 사례를 부각시키는 데 할애될 것이다.

3장 대안 통화와 장소 기반의 PCE

화폐란 무엇인가? 둘 이상의 거래자들 사이의 가치교환 메커니즘일 뿐이다. 일국의 정부와 지방 정부가 지원하는 지폐 형태의 통화(‘명목화폐’라고 불린다)가 존재하기 이전에 금 및 기타 금속들이 교환을 촉진하는 데 사용되었다. 금 이전에는 가치 있는 물건들을 서로 교환하는 물물교환 같은 제도들이 많이 존재했다. 우리는 세계 전역에서 지역 지폐통화에서 디지털 암호화폐, 시간 은행, 선물 경제에 이르는 광범한 대안적 통화들이 부활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이 장은 대안적 통화들을 활용하거나 창조하거나 지원하는 기업가활동을 탐구하는 데 할애된다.

4장 ‘죽음의 별 플랫폼들’에서 테크놀로지에 의해 구현되는 플랫폼 협동조합주의로

우리는 사람들과 사업체들을 서로 연결하는 플랫폼들의 사용이 급속하기 증가하는 것을 목격해왔다. 여기에 공유경제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했지만, 이 기업들 가운데 다수는 공동체를 개선하기보다 착취 행태와 피해주기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에어비앤비, 우버, 딜리버루(Deliveroo) 등은 규제를 회피하고 ‘독립계약자들’―이들은 실상 최소임금, 각종 혜택, 건강관리를 못 받는 고용인들이다―을 고용했다는 이유로 세계 전역에서 소송을 당했으며 심지어는 금지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공유경제와 거기 속한 기업가들은 악명을 얻었다. 사실 <셰어러블>의 고렌플로와 같은 사람은 이 기업들을 ‘죽음의 별 플랫폼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공유보다는 커먼즈 접근법을 수용하는, 수 천 개의 다른 공유경제 기획들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은 테크놀로지 기반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테크놀로지와 무관하거나 낮은 수준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다.) 이 장에서 나는 내 동료인 파블로 무뇨즈(Pablo Muñoz)와 함께 수십 개의 공유경제 비즈니스모델들을 연구한 후에 개발한 공유경제 모델 나침반(the sharing business model compass)과 공유경제모델 캔버스를 소개할 것이며, 공유경제 기업들의 창출에의 흥미로운 대안적 접근법으로서 플랫폼 협동조합주의의 성장을 소개할 것이다.

5장 분산된 자율적 조직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모델 내에서 작동하는 플랫폼 협동조합 너머에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출현한, 분산된 자율적 조직(a distributed autonomous organization, DAO)이라 불리는 새로운 PCE 모델이 있다. DAO는 기본적으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1장 참조)와 플랫폼 협동조합(4장 참조) 사이의 잡종이다. DAO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기업이 아니며 공동체를 통해 개발되고 개선된 소프트웨어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가령 지식 공유를 위한 오픈소스 도구인 위키피디아와 달리 DAO는 피어들 사이의 교환을 촉진하는 오픈소스 도구이다. 우버가 끼지 않아서 운전자들이 거래가치의 100%를 얻을 수 있는 우버를 생각해보라. 이는 과학소설도 아니다. 애초에 3장에서 살펴본 디지털 통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구상된 블록체인 같은 분산된 원장들에 의해서 주로 가동되는 DAO들이 이렇게 우리가 말하고 쓸 때에도 속속 출현하고 있다. 지역의 생태계와 P2P 상호작용을 뒷받침하는 데 전지구적 분산 테크놀로지를 활용함으로써 DAO들이 지역과 전지구적 수준 모두에서 작동할 수 있을까? 갈등은 어떻게 해소될까? 중개자 없이 P2P 플랫폼들이 돌아가는 것이 정말로 가능할까? DAO 플랫폼을 개발하고 유지하는 협동집단을 위한 새로운 수익모델들이 있을까? 이 장에서 나는 새로 생기는 DAO의 사례들에 대해 일정한 통찰을 제공하면서 이 물음들 가운데 일부에 답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조명해보는 작업은 하려고 한다.

6장 PCE 세계에서 벤처자본은 죽는다

승자독식형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계속 추동세력으로 남겠지만, 99%의 운동과 점점 더 충돌하게 될 것이다. 기업가들이 더 이상 세계를 소유하려 하지 않을 때, 벤처자본모델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PCE 세계에서는 어떻게 신생 기업들이 재정을 조달할 것인가? 이 장에서 나는 신생 기업들에게 재정을 제공하는 일을 하는, 벤처자본과는 다른 새로운 광범한 대안들을 탐구하면서 일련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들에 강하게 초점을 맞추고 심지어는 PCE를 위한 완전히 가벼운(lean)(([옮긴이] 여기서 ‘lean’은 불필요한 것이 다 빠졌다는 의미이다. 몸에 해로운 기름기가 빠졌다는 식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해하기 쉽게 ‘가벼운’으로 옮겼다. 데이빗 플레밍(David Fleming)은 그의 유작 Lean Logic: A Dictionary for the Future and How to Survive It(2016)에서 ‘leanness’(홀쭉함)를 중요한 개념으로 다듬어냈다. ‘leanness’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와는 다른 특징―자기증강보다는 자기창조로서의 인간의 살림, 다양성, 지역특수성, 정신지향성 등―을 통합적으로 가리킨다.)) 창업 방법론을 수용할 것이다. 나는 또한 점증하는 ‘느린 화폐 운동’에 대해 논의하고 강한 사회적·환경적 사명을 따르는 기업들에 투자하려고 하는 점점 더 수가 늘어나는 영향력 있는 투자자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또한 시민 기업가들이 지역 자치정부들이 혁신 프로그램들에 주는 지원금을 타서 그들의 기획에 재정을 대는 방식들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7장 미래로 돌아가다

이 책 전체를 통해 나는 탈자본주의 경제에서 이루어지는 광범한 대안적인 조직화 형태들을 탐구했다. 각 장이 별도의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도록 되어있고 탈자본주의적 기업가들이 거주하는 지리적 장소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별로 없지만, 이 장에서는 특정의 장소(도시들)가 이 책에서 논의된 모든 PCE 형태들을 기본소득이나 팹시티들과 같은 다른 탈자본주의적 논제들과 아울러 수용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시선을 돌려, 미래로 돌아가서 지나간 시대의 개념들을 블록체인이나 3D 인쇄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들과 혼합하여 우리의 경제를 그 바탕에서부터 재구성해볼 것이다. ♣




퍼블렙 랩과 풀뿌리 맵핑

*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David Bollier)와 질케 헬프리히(Silke Helfrich)가 편집한 Patterns of Commoning(2015)에서 트리스턴 코플리-스미스(Tristan Copley-Smith)가 집필한 ‘Public Lab’에 관한 부분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잘 모르는 영역을 소개하는 내용이라서 번역어의 선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미 출판되어 저작권이 부여된 자료들을 제외하면 Creative Commons Attribution-ShareAlike 4.0 International License가 적용된다.

퍼블릭 랩

퍼블릭 랩(Public Lab)은 저렴한 오픈소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만들어내어 시민들이 함께 환경문제들을 문서화하고 조사하는 것을 돕는 단체이다. 퍼블릭 랩은 일군의 느슨하게 연결된 활동가들이 BP의 기름유출 이후에 루이지애나로 떠났던 2005년에 시작되었다. 거기서 활동가들은 연을 사용하는 로우테크(lowtech) 기술을 사용하여 해안 기름 오염을 문서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이 단체는 국제적 공동체로 성장했으며 그 회원들은 자연환경을 더 과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이해하고 환경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퍼블릭 랩은 스스로를 비영리 조직에 의해 지탱되는 공동체로 본다. 그 상점에서 저비용의 오픈소스 감시키트들을 판매하는데, 이는 법적으로 기부로 간주된다. 이것이 퍼블릭 랩으로 하여금 그 감시 제품들의 판매에서 수입을 얻으면서 기본 자금을 확보하게 해준다. 퍼블릭 랩은 오픈소스 하드웨어의 개발자로서 누구라도 집에서 무상으로 도구들을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안내를 제공한다.

퍼블릭 랩의 진정한 가치는 도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도구로 무엇을 하느냐에 있다. 예를 들어 풍선 매핑 키트는 사용자들로 하여금 대단히 낮은 비용으로 (기름 오염이나 해안 부식을 매핑하기 위한) 대단히 높은 해상도의 항공사진들을 찍을 수 있게 해준다. 이미지들은 퍼블릭 랩의 웹사이트에 업로드될 수 있으며, 거기서 사용자들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연결할 수 있고 지도들이 공동체 사람들에 의해서 분석될 수 있다. 그 결과로 나오는 이미지들은 (만일 충분히 좋다면) 심지어 구글에 의해서 수집되어 구글의 매핑 서비스에 추가되기도 한다. (이는 오픈플랫폼 기업들이 커먼즈들에서 산출된 것을 종종 자신의 이윤창출을 목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왜 많은 디지털 커머너들이 지금 커먼즈 기반 상호 라이선스로 선회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한 사례이다.)

퍼블릭 랩은 유용한 오픈소스 도구들을 갖춘 충실한 공동체가 어떻게 디지털 커먼즈를 가치 있는 데이터로 채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다. 그 웹사이트는 마치 거대한 공적 위키와 노트북의 혼종체인 양 편집이 매우 자유롭게 가능해서 모든 사람의 작업이 문서화된다. 공동체는 호기심 혹은 관심사에 의해 동기화되며, 퍼블릭 랩 웹사이트는 조사를 돕는 데 필요한 도구들과 정보에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로 나오는 발견들은 문서화·공유될 수 있고 정치적 변화를 위한 압력행사에 사용될 수 있다.

퍼블릭 랩의 공동창립자들 가운데 하나인 제프 워런(Jeff Warren)은 이것을 “힘의 언어를 말하기”(speaking the language of power)라고 부른다. 전통적인 항의의 수단을 통해 변화를 탄원하는 대신에―이런 탄원은 당국이 존중할 수도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공식적인 조사가 개시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게 하는, 사실에 입각한 강력한 정당성을 퍼블릭 랩 공동체가 산출한 확연한 데이터가 부여해주는 것이다.

퍼블릭 랩은, 오픈 데이터, 오픈 하드웨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가 가진, 정부의 정책입안과 시행에 영향을 미치는 힘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중요한 공동체 행동주의를 자신들이 발전시키고 있음을 깨달은 일군의 활동가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진화해 나온 기획이다. ♣

* 위 글에 이어 http://unterbahn.com/thesis/에 있는 제프리 워런(Jeffery Warren)의 글 “Grassroots Mapping : tools participatory and activist cartography”의 1장을 우리말로 옮겨본다. 잘 모르는 영역을 소개하는 내용이라서 번역어의 선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밑줄은 번역자의 강조를 나타낸다. 제프리 워런(Jeffery Warren)의 이 글에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se가 적용된다.

풀뿌리 매핑―참여 지향의 도구들과 행동주의적 지도제작

1장 서론

1.1 풀뿌리 매핑의 정의 ― 도구들, 실천들, 혹은 공동체?

풀뿌리 매핑(Grassroots Mapping)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그것은 MIT 오픈소스 라이선스에 따라 http://github.com/jywarren/cartagen 에서 구할 수 있는 일단의 코드인가? 페루의 리마 혹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사용된 바 있는, 일단의 매핑 실행들 혹은 도구들인가? 아니면 실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그리고 이들을 묶어주는 웹사이트, 위키, 메일링리스트인가?

근본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지도제작(cartography)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 일반 사용자들이 매핑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주려는 시도이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지도들은 국가와 산업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통제력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간주될 수 있다. 내가 만든 도구들과 기술은, 데이터의 수집에서 디지털본 지도들과 인쇄본 지도들의 편집과 출판에 이르기까지, 지도를 만드는 수단을 단순화함으로써 지도제작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이로써 내가 바라는 것은, 광범한 대중이 적당한 비용으로 지도를 만드는 능력이 아래로부터의 지도제작 행동주의에 힘을 실어주고 기존의 지도제작의 권력구조를 우회했으면 하는 것이다.

풀뿌리 매핑 프로젝트의 핵심은 기술들의 새로운 결합을 특수한 각 공동체들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 기술들은 풍선들과 연들을 사용하는 저비용 항공 이미지생성 기술과 그 결과로 나오는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연결하여 지도로 만드는 새로운 온라인 도구로 구성된다. 이 도구들의 성공은 페루 리마의 공동체들에서 그리고 멕시코만의 기름 유출 위기 시에 이 새롭고 낯선 도구들을 기꺼이 사용하고자 했으며 자신들의 사용 잠재력을 보았던 단체들과 개인들의 노력과 신념에 기인한다. 여기에는 만자니타 ‘A’의 카를라 델 카르피오(Carla del Carpio of Manzanita ‘A’), 약물남용 방지를 위한 정보 및 교육 센터(CEDRO)의 에르네스토 페르난데스(Ernesto Fernandez)(이 둘은 페루의 리마에서 활동했다), 또한 리마의 에스쿠에랩(Escuelab)의 대니얼 미라클(Daniel Miracle)을 비롯한 몇 명이 포함된다. 또한 뉴올리언스에 있는 루이지애나 버킷 브리게이드(Louisiana Bucket Brigade)의 크리스 안신(Kris Ansin), 섀년 도스마건(Shannon Dosemagen), 앤 롤프(Anne Rolfes)가 포함된다. 이 외에도 지치지 않고 연과 풍선을 날리고 날마다 수마일 길이의 끈을 풀고 감았던 수십 명의 참여자들이 포함된다. 아마 가장 중요한 점은, 도구들이 참여자들에 의한 지속적인 사용에 응하여, 그리고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결과 입력과 협동을 통해 발전하고 진화했다는 점일 것이다.

1.1.1 항공 이미지의 사용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환경감시, 토지 보유권, 저널리즘, 상업적 이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지도를 만들었다. 청년들의 워크숍에서 실제로 해보는 학습과 공동체 계획을 강조하며 많은 지도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위기 상황과 갈등 지역에서는 주문에 맞추어 지도를 제작하는 도구들 특유의 능력이 탐구되었다. 이 기술은 낮은 비용 때문에 저소득 혹은 개발도상 지역에서 그리고 지역 수준의 도시계획에서 더 광범하게 사용될 잠재력을 가진다. 자신의 집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은 공동체·환경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사유와 토론을 개시할 수 있다. 지역 공동체들에 관여하면서 그 공동체들로 하여금 그 도구들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침으로써 매핑은 원격감지가 특징인 노력들―사람들을 데이터로 취급하고 지도제작의 인간적 측면을 그럴듯하게 가리는 노력들―보다는 인간관계에 더 적절한 연관성을 띠게 되었다.

1.1.2 교육으로서의 풀뿌리 매핑

이 프로젝트가 널리 사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나와 도구를 소유하고 있는 다양한 참여자들은 다양한 교육자료들― 설명서, 온라인 비디오, 워크숍―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 이 자료들은 페루 리마의 10-15살짜리들에서부터 웨스트버지니아와 켄터키의 환경활동가들에 이르는 광범한 청중을 대상으로 했다. 이러한 문서화 작업은 지난해에 수십 개의 워크숍들에서 내가 참여자들과 협동하고 그들을 가르치면서 발전했으며, 프로젝트 위키도 여기에 포함되는데, 이는 참여자들이 그들의 작업, 비디오들, 메일링리스트들을 모아놓은 블로그로서 여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들과 프로젝트들이 토론되고 비판된다.

조지아주의 쌘트레디아에서 풀뿌리 매핑 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

1.1.3 공동체로서의 풀뿌리 매핑

카타겐 맵 렌더링 틀(the Cartagen map rendering framework)과 항공 이미지를 보정하는 카타겐 니터(the Cartagen Knitter)와 같은 디지털 도구들조차도 결국 광범한 매핑 공동체에서 동료들과 기여자들의 도움과 지원으로 구축되었다. 테크놀로지 프로젝트에서 이것이 규범이 되었다는 것이 이 작업의 많은 부분이 그러한 기여 없이는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강점 가운데 하나는 특수한 욕구를 가진 공동체들과의 협동에서 발전했다는 점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깎아내리지는 못한다.

도구들을 구축하는 것은 더 추상적인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키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용자들과의 지속적인 소통만이 아니라 일련의 타협과 실용적 결정이 디자인 과정을 이끌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풀뿌리 매핑 프로젝트는 특수한 욕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발전했으며, 고립되고 순전히 학술적인 작업으로 검토되기보다는 그것이 염두에 둔 특수한 이용의 맥락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캡처

보정

출판

2-3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수평방킬로를 매핑할 수 있다.

사진들을 분류하는 데 1시간 이상, 최대 하루까지 걸릴 수 있다.

카타겐 니터에서 내보낸 것이 TMS 혹은 인쇄 가능한 GeoTiff를 생성한다. 웹으로 접근하기만 하면 된다.

1.2 도구들, 테크놀로지들 그리고 청중

풀뿌리 매핑 기획의 일부로서 개발된 도구들은 경험과 전문지식이 거의 없어서 단순하고 직접적인 지도제작 도구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강력하고 효율적인 매핑 테크놀로지를 필요로 하는 열렬한 참여자들의 욕구에도 응한다. 따라서 도구들 가운데 일부는 사용하기가 간단하면서도 ‘파워 사용자들’ 혹은 코드를 자유롭게 쓰고 편집하는 사람들에 맞추어져 있다. 카타겐 틀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항공 이미지를 캡처하는 풍선 및 연 플랫폼들과 같은 도구들은 더 광범한 청중에게 맞추어져 있다. 카타겐 틀의 특수한 응용프로그램인 카타겐 니터도 그렇다. 다양한 도구들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풀뿌리 매핑 키트(Grassroots Mapping Kit)는 최초의 항공 이미지를 캡처하여 가공하고 결과를 조합하여 디지털본 및 인쇄본 지도들을 출판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 절은 필요한 도구들과 관련된 틀짜기, 의도, 청중에 초점을 맞추며, 도구들에 대한 전문적 논의는 6장에 들어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도제작자들이 연, 풍선, 헬륨 탱크, 디지털 카메라, 최소 200미터의 끈 및 기타 각종 기자재들을 가지고 지도를 제작하려는 장소를 방문한다. 끈을 묶은 풍선이나 연에 카메라를 부착하여 1-10초의 주기로 사진을 찍도록 카메라를 설정하고 지역의 규정에 따라 고도를 200에서 2000미터 사이로 올려서 이미지를 캡처하도록 한다. 지도제작자들은 묶은 끈을 감아서 카메라를 회수하며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사용하여 가장 좋은 이미지들을 카타겐 니터 웹사이트에 업로드한다. 이 웹사이트에서 새로운 온라인 지도를 만들어내는데, 오픈스트리트맵(OpenStreetMap) 벡터 데이터나 바둑판식 기본 레이어를 준거로 삼아 각 이미지가 보정될 수 있고 최종적으로 지도로 조합될 수 있다. 그 결과는 사용 의도에 따라서 온라인에서 보기 위해서 다른 웹사이트에 끼워넣어질 수 있고, 바둑판식 지도 서비스(a Tiled Map Service, TMS)로 내보내질 수도 있으며 지리TIFF(Geographic TIFF, GeoTIFF) 파일로 인쇄될 수도 있다.

풀뿌리 매핑 키트 및 그와 연관된 기술들은 프로젝트 위키인 http://wiki.grassrootsmapping.org에 완벽하게 문서화되어 있으며 추가적인 지원과 토론은 프로젝트 메일링리스트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세계 전역에서 과거에 진행되었고 현재 진행 중인 매핑 노력들의 광범한 문서화와 함께 http://grassrootsmapping.org에서 볼 수 있다. 인쇄물 문서 역시 각 키트에 딸리도록 고안된 5쪽의 삽화를 넣은 설명서와 몇 가지 체크리스트의 형태로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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