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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살 된 삼림헌장



 

2년 전 마그나카르타 800주년(([옮긴이] 마그나카르타는 1215년에 작성되었다.))에 왕의 권력에 제한을 가하고 법치를 확립하는 쪽으로의 전진을 나타내는 이정표로서 마그나카르타를 요란스럽게 찬양해대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이 대헌장과 짝을 이루는 삼림헌장(the Charter of the Forest)에는 주의가 훨씬 덜 기울여졌다. 삼림헌장은 커머너들의 생계에 매우 중요한 삼림에 접근할 수 있는 관습적 권리를 커머너들에게 보장하는 문서였다.(([옮긴이] 봉건 시대의 맥락에서 ‘삼림’(forest)은 ‘숲’(woods)의 단순한 유사어가 아니라 보통 왕의 관할 아래 둔 사냥터로서의 숲이라는 법적 의미를 가진다.))

이 권리는 왕과의 오랜 내전 끝에 확보되었다. 왕은 그 이전에는 삼림에 대한 배타적 통제력에 대한 주장을 무자비하게 확대하여 삼림 침범자들에게 벌금이나 투옥으로, 때로는 사형으로 처벌했다. 그래서 우리는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800년 전인 1217년 11월 6일에 헨리 3세가 삼림헌장을 작성하여 커머너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것에 접근할 수 있는 관습적 권리를 문서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커머너들은 거의 모든 것을 삼림에 의존했다. 삼림은 불을 때고 집을 지을 나무를 공급했으며 양을 비롯한 가축을 키울 방목지를 제공했고 식량으로 삼을 사냥감을 제공했다. 삼림에는 버섯, 개암, 딸기류, 민들레 잎, 기타 수많은 초본이 있었다. 또한 삼림은 돼지를 먹이기 위한 도토리와 너도밤나무의 열매의 공급원이었고 빗자루를 만드는 나무를 공급했으며 온갖 종류의 병에 약초를 제공했다.

영국의 박물학자 리처드 메이비(Richard Mabey)는 “그 어떤 다른 종류의 풍경보다도 [13세기 영국 삼림]이 공동체적 장소인데, 그 구조에 여러 세대에 걸쳐 공유된 자연 및 인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고 썼다.

어떻게 이 삼림헌장이 거의 잊혀질 지경이 되었는가? 역사가 피터 라인보(Peter Linebaugh)는 그의 놀라운 책 『마그나카르타 선언』(The Magna Carta Manifesto)에서 이 두 자유의 헌장이 종종 공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마그나카르타’라는 이름 자체가 1215년의 ‘대헌장’(Great Charter)을 2년 뒤에 선포된 ‘소’헌장인 삼림헌장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1297년이 되어서야 에드워드 1세가 두 헌장을 나라의 단일한 법으로 취급할 것을 명령했다. 1369년에 에드워드 3세는 둘을 하나의 성문법으로 통합하는 법을 발포했으며 여기서 삼림헌장은 마그나카르타의 7장이 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삼림헌장은 대헌장의 사소한 부분 집합으로 간주되었으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대영도서관이 관리하는 중세문서원본 블로그(Medieval manuscripts blog)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어떻게 우리를 과거에 연결해주는가」(“how our ancient trees connect us to the past”)라는 훌륭한 글이 올라있는데, 이 글은 삼림헌장을 언급하면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헌장의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을 나에게 알려준 후안 카를로스 데 마르틴Juan Carlos de Martin과 우고 마테이Ugo Mattei에게 감사한다.) 이 글에 따르면 영국삼림트러스트(British Woodland Trust)의 <고령高齡 수목 목록>(Ancient Tree Inventory)에는 12만 그루 이상의 나무들이 올라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1000살 이상이 되었는데, 이는 이 헌장이 발포될 때에 있었던 나무들이다.

이 글은 또한 어떻게 삼림헌장이 “삼림 영역을 땅이 불법으로 취해졌음을 입증할 수 있는 곳에서는 1152년 헨리 2세의 통치가 시작될 때의 경계로 되돌렸”는지를 말하고 있다. (“헨리 2세는 삼림의 경계를 압제를 발생시킬 정도까지 맹렬하게 확대했”던 왕이다.) 이는 커먼즈(공유지) 되찾기의 이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커머너들에게 이 헌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2년 전에 마그나카르타 8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나는 베를린에 있는 <하인리히 뵐 재단>에서 「누가 왕의 삼림을 사용할 수 있는가 우리 시대에 마그나카르타가 가지는 의미커먼즈 그리고 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나의 초점은 민중의 일상적 생존 욕구를 충족시키고 인간의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서 마그나카르타(즉 삼림헌장)가 법으로서 중요하게 기능하는 점에 두어졌다.

이 헌장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물려받은 공통의 부에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누가 왕의 삼림을 사용할 수 있는가?’ 1200년대 초의 커머너들은 이 물음에 대한 즉답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왕의 삼림’이라니. 그건 우리 것이야. 수세기 동안 우리 것이었어!”

커머너들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권리—삼림을 사용할 권리, 나름의 통치 규칙을 자기조직화할 권리, 왕의 자의적인 권력남용을 막아줄 시민 자유권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이것이 마그나카르타의 잊혀진 유산이다. 이 모든 것들이 문서로 쓰인 법이라는 생각보다 앞섰다. 그 권리들은 근본적인 욕구와 오랫동안의 전통에 기반을 둔 인간의 권리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 권리들이 근대 국민국가 및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계속 삭감되었고 많은 경우에 제거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들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광범하게 시행될 수 있는 권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이탈리아의 법학자 스떼파노 로도따(Stefano Rodota)는 이 원칙을 되살리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말이다.

근대에 커먼즈를 위한 법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커머너들이 무자비한 시장/국가로부터 지구의 생태계의 파수꾼들로서 행동할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다. 삼림헌장에 축배를 들고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를 기억하자. 우리는 앞으로 그것을 위한 영감과 학습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업데이트 : 펠리시티 로런스(Felicity Lawrence)는 『가디언』지에 삼림헌장에 관한 글 「부의 공정한 공유를 위해서는 13세기로 돌아가자」(“For a fairer share of wealth, turn to the 13th century”)라는 글을 막 게재했다.((로런스의 글은 이 글보다 하루 늦은 2017년 11월 8일에 게재되었다.)) 또한 웹진 openDemocracyUK에 실린 <영국사회과학원>(UK Academy of Social Sciences)의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의 훌륭한 글도 이곳에 가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