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액세스의 개척자 PLOS



 

오픈 액세스의 개척자: 과학 공공 도서관(The Public Library of Science)

 

1990년대에 노벨상을 수상한 유전학자 해럴드 바머스(Harold Varmus)와 캘리포니아 과학센터의 과학자 패트릭 브라운(Patrick Brown), 마이클 아이센(Michael Eisen)은 과학연구를 공유하는 데 가해지는 많은 제약으로 인해 점점 더 좌절을 겪었다. 학술 연구자들이 (상당수가 납세자들에 의해 재정지원을 받는) 돈이 많이 드는 어려운 과학연구를 하고 같은 전공자로서 연구물에 대해 리뷰를 하는 사람들임에도 상업적인 학술지 출판사들은 보통 출판된 결과물의 저작권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출판사들은 도서관들로서는 종종 감당할 수 없는 구독료를 부과하고 연구논문들에 접근·복사·공유하는 사람들의 권한에 법적 제한을 가할 수 있었다. 구독료는 10년 넘게 인플레이션율 이상으로 오르고 있으며 미국 대학들은 이제 학술지들에 연간 100억 달러 이상을 쓴다. 심지어 하버드대 같은 가장 부유한 기관들조차 이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http://isites.harvard.edu/icb/icb.do?keyword=k77982&tabgroupid=icb.tabgroup143448))

이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바머스와 그의 동료들은 세계 전역의 과학자들에게 그들 논문의 전문을 모두가 무조건적으로 즉각 혹은 몇 달 간의 타당한 지연이 있은 다음에 이용하는 것을 막는 학술지들에는 더 이상 논문을 내지 않겠다고 서약하기를 청하는 온라인 청원서를 내놓았다. 또한 그들은 더 이상 그러한 학술지들을 구독하거나 그러한 학술지들을 위해 리뷰를 쓰지 말 것을 과학자들에게 촉구했다.((http://www.plos.org/about/plos/history))

그에 대한 응답은 신속했고 놀라웠다. 180개국 34,00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그 공개 청원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서명자들이 청원서의 목표를 실질적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곧 분명해졌는데, 그 이유는 논문들을 실제로 제공하거나 논문들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출판물들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 간극을 메우고자 바머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과학 공공 도서관’(www.plos.org)으로 알려진 새로운 출판벤처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논문들을 모두가 영구적으로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액세스” 출판 매체를 제공함으로써 과학자들과 연구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연구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도록 하는 것이었다. 원저자는 저작권을 가지며 자유로운 재사용·공유·배포가 가능하도록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어트리뷰션 라이센스(Creative Commons Attribution license) 하에 논문을 공개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에 관한 에세이를 보라.) 이 프로젝트는 런던에 기반을 둔 기업가 바이텍 트라츠(Vitek Tracz)와 1990년대 후반의 다른 혁신적 출판업자가 유사한 목적으로 주도했던 출판벤처인 바이오메드 센트럴(Biomed Central)의 개발을 참조하여 이루어졌다.

2003년 설립된 이래 플로스(PLOS)는 공동체의 저항에서 시작하여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직접적으로 접근가능하며 공개적으로 인준된 학문적 내용을 담은 세계 최대의 출판사로 성장했다. 최초의 플로스 학술지인 『플로스 생물학』(PLOS Biology)은 2003년 말에 첫 논문들을 출판했으며 순식간에 양질의 논문들로 명성을 얻었다. 그 다음 수년 간 그 프로젝트는 『플로스 의학』(PLOS Medicine)과 계산생물학, 유전학, 병원균, 도외시된 열대성 질환 분야의 연구에 각각 초점을 둔 네 학술지를 내놨다.

이 여섯 개의 학술지가 성장하면서 설립자들은 학적 소통에서의 변화를 촉진한다는 본래의 더 야심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목표로 나아가는 그 다음의 중요한 단계는 과학 전체를 포괄하기 위해 그리고 과학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개척하기 위해 2006년에 새로운 과학지 『플로스 원』(PLOS ONE)(www.plosone.org)을 만든 것이었다. 처음으로 출판되는 논문 수에 가해지는 어떠한 인위적 제한도 없게 되었다. 투고된 논문들은 예견되는 파급력이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과 기술적 질을 기반으로 검토되었다. 관행적으로 연구자들은 가장 까다로운 학술지에 게재함으로써 갖게 되는 명망을 추구해왔는데, 이것이 이제 학술지의 명망이 논문의 질보다 더 중요하게 되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논문 저자와 편집자 양자로 하여금 주의 깊은 증거를 제공하기보다는 가장 선정적인 주장을 하거나 그런 주장을 뽑는 비뚤어진 동기를 낳을 수 있다. 『플로스 원』은 적절하게 수행된 과학이라는 규준을 충족시키는 모든 투고논문을 출판하는데, 이것이 『플로스 원』을 2010년에 세계 최대의 학술지로 만든 출판전략이다. 모든 주요 출판사들이 곧바로 『플로스 원』의 “거대 학술지”(megajournal) 모델을 모방하여 논문 수를 인위적 제한하지 않는 광범위한 학술지들을 출판했다.

대규모 독자층과 투고논문의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플로스 원』은 같은 전공자의 엄격한 출판 전 리뷰의 타당성에서도 선구자가 되었다. 통계적 타당성, 윤리적 리뷰, 보고 지침과 관련한 몇 개의 검증사항은 모든 학술지 가운데 가장 엄격하다.

플로스는 처음에는 자선기금에 의하여 그리고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the Gordon and Betty Moore Foundation),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the Bill and Melinda Gates Foundation)―두 재단은 각각 인텔사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립자와 연결되어 있다―과 같은 박애주의적 기금으로부터 온 수입에 의하여 재정을 조달했다. 플로스는 2010년에 처음으로 손익분기점에 도달했으며 비영리사업인데도 그때 이래 매년 흑자를 냈다. 플로스는 재정정보에 투명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왔으며 그리하여 비영리단체에 대해서 정부가 요구하는 정보공개에 준하는, 세부 수입액·지출액 공개의 선구자였다. 2012년에 플로스 출판벤처는 총 3천 8백만 달러를 거둬들이고 거기서 7백만 달러의 흑자를 냈다.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일단 확립되자 학적 소통에서의 새로운 혁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하나의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개별 논문들의 파급력과 쓰임새를 아주 세부적으로 측정하는 데 쓰이는 공개 데이터를 제공하는 도구인 논문수준표(Article Level Metrics)였다.((http://article-level-metrics.plos.org)) 이러한 혁신 이전에는 연구논문에 대한 평가가 전통적으로 그것 자체의 개별적 가치보다는 그것이 게재된 학술지의 평판에 따라서 이루어졌다.

이 기획은 또 다른 영향을 미친 바 있으니, 10만 명 이상의 연구자와 400개 이상의 기관이 서명한, 연구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the 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 DORA)이 바로 그것이다.((https://en.wikipedia.org/wiki/San_Francisco_Declaration_on_Research_Assessment)) 2012년의 이 성명은 자금을 댄 사람, 기관, 기타 출판사들이 학술지의 ‘피인용지수’(논문의 평균 인용 횟수)를 개별 과학자의 기여의 질과 혼동하지 않고 연구논문들을 그 자체의 장점을 기반으로 판단하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연구 평가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고용·승진·해고를 결정하는 방식에 느리기는 해도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최근에 플로스는 윤리적인 혹은 기타의 고려에 따라서 그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게재논문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데이터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플로스는 연구의 정확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논문들을 출판 이후 짜임새있게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도구들 또한 개발했다.

과학 분야의 출판을 커먼즈의 한 유형으로 다시 생각함으로써 플로스는 학적 출판에서 이루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선봉에 있어왔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플로스가 이제 수천의 오픈 액세스 학술지들을 포함하고 50만 편 이상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구논문들을 포함하는 과학 분야의 출판을 중차대하게 대변하고 선도적으로 혁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