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의 역사와 진화



 

커먼즈의 역사와 진화

 

커먼즈를 역사화하는 것, 즉 커먼즈의 진화를 서술하는 것이 가능한가? 아래는 최초의 예비적 시도이다.

우선 커먼즈를 정의해야 한다. 우리는 데이빗 볼리어 등이 부여했으며 엘리너 오스트롬을 비롯한 이 분야의 연구자들에게서 나온 정의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이에 따르면 커먼즈는 공유된 자원을 그 사용자들 그리고/혹은 이해당사자들의 공동체들이 그 규칙 및 규범에 따라 공동으로 소유하고/소유하거나 공동으로 다스리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커먼즈는 ‘사물’, 활동(자원의 유지와 공동생산을 하는 커머닝), 그리고 다스림(거버넌스)의 방식의 결합이다. 이는 사적 형태의 자원관리 및 공적/국가적 형태의 자원관리와 구분된다.

그런데 커머닝을 자원의 결실을 분배하는 네 가지 양식 중 하나로, 즉 하나의 ‘교환양식’(mode of exchange)으로 보는 것도 유용하다. 이는 의무적인 성격이 강한 국가 기반의 재분배 시스템과도 다르고 상품교환에 기반을 둔 시장과도 다르며 특수한 존재자들 사이에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상호성을 특징으로 하는 선물(膳物)경제와도 다른 교환방식이다. 커머닝은 자원을 한데 모으기(pooling)/공동으로 사용하기이며, 이를 통해 개인들은 생태계 전체와 교류한다.

관계를 규정하는 여러 문법들, 특히 피스크(Alan Page Fiske)의 『사회적 삶의 구조』(Structures of Social Life)에 제시된 것이 이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피스크는 권위의 서열화(서열에 따른 분배), 동등하게 응답하기(선물에 선물로 응답할 사회적 의무로서의 선물 경제), 시장에서의 가격매김, 그리고 공동체적 공유라는 네 가지를 구분해낸다.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世界史の構造)는 교환양식의 진화를 역사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훌륭한 시도이다. 초기의 부족적·유목적 형식의 인간 조직에서는 ‘한데 모으기’가 주된 양식이었다. ‘소유하기’는 유목민들에게는 반(反)생산적이었기 때문이다. 선물경제는 더 복잡한 부족적 배치에서 작동하기 시작하고 특히 농경으로의 정착 이후에 가장 강해진다. 선물과 답례의 사회적 의무가 사회를 창출하고 관계를 평화롭게 한다. 계급사회의 등장과 함께 ‘권위의 서열화’ 혹은 재분배가 우세해지며,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에서 시장 체제가 우세해진다.

이제 이것을 문명의 역사, 즉 계급의 역사에 맞춘 가설로 다시 정식화해보자.

자본주의 이전에 출현한 계급사회들에는 상대적으로 강한 커먼즈들이 존재했다.(([옮긴이] ‘commons’는 ‘means’(수단, 방법)처럼 단수로도 쓰이고 복수로도 쓰인다.)) 이것들은 본질적으로 자연자원 커먼즈들로서 오스트롬 학파의 연구대상이 된 것들이다.(([옮긴이] 밑줄 강조는 모두 옮긴이의 것이다.)) 이 커먼즈들은 문화적으로 전승된 더 유기적인 커먼즈(민속 지식 등)와 공존했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사회들은 매우 착취적이었지만 사람들을 생계수단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분리시키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를 들어 유럽 봉건주의에서 농민은 공유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및 시장체제가 처음에는 도시 내의 하부체계로서 출현하고 진화하면서 둘째 형태의 커먼즈, 즉 사회적 커먼즈가 중요해진다. 서양 역사에서는 수공업 노동자들과 상인들의 연대제도인 길드 시스템이 중세의 도시들에서 출현했는데, 여기서 ‘복지’(welfare)시스템이 공동으로 이용되고 자율적으로 관리되었다. 시장 기반의 자본주의가 우세해지면서 생계수단으로부터 분리된 노동자들의 삶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여기서 자연자원 커먼즈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커먼즈가 구축될 필요가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자 소비조합, 공제조합 등을 커먼즈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 있다. 그리고 협동조합은 사회적 커먼즈를 관리하는 법적 형태로서 간주될 수 있다.

복지국가에서는 이 커먼즈들 대부분이 국유화되며 (즉 국가에 의해서 관리되며) 더 이상 커머너들 자신들에 의해서 관리되지 않는다. 사회안전제도들이 민주적 정치체에서 시민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커먼즈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오늘날 복지국가의 위기와 함께 ‘커먼페어’(commonfare)(([옮긴이] ‘welfare’가 ‘잘 살기’를 의미한다면, ‘commonfare’는 ‘공동으로 살기’를 의미한다.))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풀뿌리 유대시스템들이 다시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복지제도의 신자유주의화와 관료화는, 공적인 부문(국가)과 커먼즈의 파트너관계에 기반을 둔 복지제도의 재(再)공통화(re-commonification)에 대한 요구를 야기하는 충분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인터넷의 출현, 특히 웹의 발명 (웹브라우저는 1993년 10월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래 우리는 셋째 유형의 커먼즈인 지식 커먼즈의 탄생과 급속한 진화를 목격하고 있다. 분산된 컴퓨터 네트워크들은 P2P 동학의 보편화를 가능하게 했다. 즉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peers’)이 공유된 지식 자원(지식, 프리 소프트웨어, 공유된 디자인들)의 공동의 창출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열린 기여 체계들을 가능하게 했다. 지식 커먼즈는 인지 자본주의의 국면과 결부되어 있다. 즉 지식이 생산과 경쟁에서의 장점의 일차적 요인이 되는 동시에 ‘사유재산으로서의 지식’에 대한 대안―지식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이 생산요인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나타내는 자본주의 국면과 결부되어 있다.

인지 혹은 네트워크 기반의 자본주의가 특히 지식 노동자들의 경우 봉급 기반의 노동을 무너뜨리고 불안정노동을 보편화하는 바로 그 만큼,(([옮긴이] 원문 “To the degree that cognitive or network-based capitalism undermines salary-based work and generalized precarious work, especially for knowledge workers, these knowledge commons and distributed networks become a vital tool for social autonomy and collective organisation”에서 “generalized”는 ‘generalizes’의 오류로 보고 고쳐서 옮겼다.)) 이 지식 커먼즈와 분산된 네트워크들은 사회적 자율과 집단적 조직화의 강력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지식에의 접근이 그 자체로 자율적이고 더 안정된 생계를 창출할 가능성을 만드는 것은 아니며, 그래서 지식 커먼즈들은 일반적으로 자본과 서로 의존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새로운 층인 ‘넷지배’ 자본(netarchical capital)은 커먼즈와 인간의 협력으로부터 직접 가치를 추출한다.(([옮긴이] 넷지배 자본은 지적 재산의 소유나 미디어 벡터의 통제에 의존하지 않고 참여 플랫폼들의 개발과 통제에 의존하는 자본이다. 이에 대해서는 http://wiki.p2pfoundation.net/Netarchical_Capitalism 참조.))

그러나 우리는 지식이 물질적 실재의 재현이며 따라서 지식 커먼즈의 출현은 생산양식과 분배양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내놓을 가설은,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한 국면, 즉 ‘디지털’(즉 지식)과 물리적인 것(the physical)의 증가된 상호교직이 일어나는 피지털(phygital) 국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교직이 일어나는 최초의 장소는 어번 커먼즈이다. 나는 네 달 동안 벨기에의 헨트 시에서 보낼 기회를 가졌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자급활동이 일어나는 모든 영역(식품, 주거, 수송)에서 거의 500개에 달하는 어번 커먼즈들을 찾아냈다.(([원주] 자급활동에 따라 분류된 커먼즈의 디렉터리로는 네덜란드어로 된 싸이트 http://wiki.commons.gent 참조.))

우리의 큰 발견은 어번 커먼즈들이 ‘커먼즈 기반 피어 생산’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디지털 커먼즈 공동체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 커먼즈들이 다음의 요소들을 결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1) 열린 생산공동체

2) 커먼즈의 기반시설을 유지하면서 이 공동체를 지원하는 기반시설 조직

3) 커머너들의 사회적 재생산(즉 그들의 생계)을 확보하기 위해서 커먼즈와 시장/국가 사이를 매개하는 (최선의 경우에) 생성적인 생계 조직.

적어도 두 개의 연구에 따르면(([원주] 그 중 하나는 네덜란드를 대상으로 하며, 무어(Tine De Moor)가 2013년 8월 30일 <역사적 관점에서의 집단적 행동 연구소>(Institutions for Collective Action in Historical Perspective)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한 「협력인」(“Homo Cooperans”)이라는 제목의 강연 텍스트를 실은 소책자이다. http://www.collective-action.info/sites/default/files/webmaster/_PUB_Homo-cooperans_EN.pdf 다른 하나는 플랑드르를 대상으로 한다. Burgercollectieven in kaart gebracht. Van Fleur Noy & Dirk Holemans. Oikos, 2016: http://www.coopkracht.org/images/phocadownload/burgercollectieven%20in%20kaart%20gebracht%20-%20fleur%20noy%20%20dirk%20holemans.pdf)) 급격한 성장의 국면을 거쳐가고 있는 이 어번 커먼즈들은 (지난 10년 동안 10배 성장했다) 우리가 보기에 커먼즈의 더 나아간 발전을 위한 전제로서 한층 더 심화된 새로운 물질적 실현의 국면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물질적/비물질적, (공동)생산됨/전승됨이라는 두 축을 따라 네 유형의 커먼즈들을 구분해낼 수 있다.

오스트롬이 연구한 커먼즈들은 대부분 물려받은 물질적 커먼즈(자연자원)이다. 문화나 언어 같은 물려받은 비물질적 커먼즈는 보통 인류의 공통 유산이라는 각도에서 고찰된다. 지식 커먼즈들은 공동으로 생산되는 비물질적 커먼즈이다. 마지막으로 생산되는 물질적 커먼즈라는 대체로 그 사례를 찾기 힘든 범주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 전통적으로 ‘자본’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자본을 위한 자본의 축적이 아니라 커먼즈의 축적이라는 맥락에서 말하고 있다.

그 논리를 한번 보자.

토지가 주된 생산요인이었던 전자본주의적 계급형성체에서 자연자원은 커먼즈 생계에 필수적이었으며, 커먼즈가 토지와 연결된 자연자원의 공동 관리라는 형태를 띤 것은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동자들이 토지와 생산수단에의 접근에서 분리된 자본주의에서는 커먼즈가 ‘사회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회적 커먼즈는 노동자들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연대제도이다. 자본의 지배 동안 생산을 상이한 토대 위에서 조직하려는 시도들이기도 하다. 즉 생산과 소비를 위한 협동조합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인지 자본주의의 시기에 지식은 생산과 부 창출의 주된 자원이자 요인이 되며, 지식 커먼즈는 그 논리적 결과이다. 그러나 안정된 봉급을 받던 조건에서 벗어나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지식을 ‘먹을’ 수는 없다. 따라서 커먼즈는 또한 도시 기반시설과 자급 시스템의 형태를 띠며, 궁극적으로는 진정한 물리적·물질적 커먼즈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따라서 커먼즈는 잠재적으로 현재의 종합국면에 적합한 생산양식의 형태이다. 필요한 생태적 이행 및 사회적 평등의 제고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시장과 국가가 실패한 시기에는 커머닝 기반시설이 자원과 서비스에의 접근을 보장하는 데 필요하게 된다. 접근의 불평등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인간의 물질적 생산이 생태계에 남기는 발자국을 줄이는 매우 힘있는 수단으로서도 그렇다.

따라서 현재의 어번 커먼즈 및 생산 커먼즈들은 현 체제의 문제―물질적 생산에서의 사이비 풍요가 지구를 위태롭게 함과 아울러 지식 교환에서의 인위적 희소성이 해결책의 확산을 방해하고 있다―를 풀어줄 새로운 체제의 맹아적 형태들이다.

인지 자본주의의 지식 커먼즈들은 탈자본주의 시기의 생산적 커먼즈로 이행하는 과도적 형태일 뿐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지식 커먼즈에 의해 형성되고 모델화되는 이 새로운 형태의 물질적 커먼즈(따라서 ‘피지털’)에서는 생산수단 자체가 공동의 이용을 위해 한데 모은 자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공유된 전지구적 지식자원(예를 들어 공유된 디자인들 같은 것이 있으며 ‘모든 가벼운 것은 전지구적이고 공유된다’는 규칙을 따른다)과 지역에서 협동적으로 소유되고 관리되는 미시적 공장들(‘모든 무거운 것은 지역적이다’라는 규칙을 따른다)이 결합되는 모습을 예견할 수 있다.

이 코스모-지역적(cosmo-local, DGML: design global, manufacture local) 생산 및 분배양식은 다음의 특징을 가진다.(([옮긴이] ‘DGML’에 대해서는 http://commonstrans.net/?p=797 참조.))

· 프로토콜 협동조합주의 : 바탕이 되는 비물질적이고 알고리즘적인 프로토콜들이 공유되어 오픈소스가 된다. 카피페어(copyfair) 원칙을 따른다(자유롭게 공유되지만 상업화는 상호성에 의해 조건지어진다).

· 열린 협동조합주의 : 커먼즈 기반 협동조합들은 사회 전체를 위해 공통의 재화를 창출하고 확대하는 데 집중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자본주의’와는 구분된다. 플랫폼 협동조합들에서는 플랫폼 자체가 커먼즈이며 요구될 수 있는 교환을 가능하게 하고 관리하는 한편 추출적인 넷지배 플랫폼들에 의해 포획되는 것을 막는다.

· 열린 기여기반 회계 : 모든 기여를 인정하는 공정한 분배 메커니즘들이다.

· 열린 공유된 공급망 : 상호 조정을 가능하게 한다.

· 배타적이지 않은 형태의 소유 : 생산수단이 생태계 내의 모든 참여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공동으로 점유·운영된다.

우리 견해로는 현재 어번 커먼즈들의 급속한 성장의 파도는 앞으로 올 더 거대한 파도, 즉 탈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치의 생산과 분배를 담당할, 규모가 커진 물질적 커먼즈들의 출현의 파도를 예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