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데이빗 볼리어(David Bollier)
- 원문 : “Reclaiming Public Control of Money-Creation” (2017.8.25)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옮긴이 : 민서
화폐창출의 공적 통제력 되찾기
대부분 사람들은 화폐가 어떻게 창출되는지 그리고 어떤 정치적 선택들이 그 과정에 함입되어 있는지를 실제로 알지 못한다. 그 결과 화폐창출의 사유화는 일반 대중의 눈에 보이지 않고, 사적으로 창출되고 부채에 기반을 둔 화폐의 반사회적이고 반생태학적인 결과도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고 있다.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Northumbria University)의 명예교수인 메리 멜러(Mary Mellor)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는데, <위대한 이행 기획>(Great Transition Initiative, GTI)의 웹싸이트에 게재한 그녀의 최근 글「민중을 위한 화폐」(“Money for the People”)에서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부채냐 민주주의냐』(Debt or Democracy)의 저자이자 대안적 경제 개발의 전문가인 멜러는 은행의 돈벌이로 간주되는 부채 중심의 대출 유형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생태학적으로 필요한 활동 쪽으로 화폐를 유도하기 위해서 화폐창출을 위한 새로운 공적 회로들(public circuits)을 구축해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부채를 창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민간 채권자들의 통제를 받는 화폐창출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은 은행이 너무 강력하며 자주 약탈을 일삼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국가가 새로운 화폐를 창출하는 힘(“통화발행권” seigniorage1)을 은행에게 대부분 양도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은행은 돈을 빌려줄 때 허공에서 새로운 화폐를 창출한다. 이 화폐는 은행 보관실에 보관하는 귀중품 같은 것이 아니다. 이 화폐는 말 그대로 대출이 승인될 때 창출된다. 이것이 은행이 수익을 내는 방법이다.
새로운 화폐를 창출하는 힘은 정부가 모두의 이익을 위하여 편리하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정부들은 통화발행권을 민영은행 시스템과 그 투자자들에게 양도해 버렸다.
이런 양도는 부정적인 충격을 광범위하게 준다. 왜냐하면 멜러가 설명하고 있듯이 “부채와 성장의 악순환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것은 바로 민간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는 체계이다. 화폐가 시장의 산물이기를 멈추고 사회적•공적 가치재현으로 개혁되어야만 화폐는 사회적•생태학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장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멜러의 글을 자신 있게 추천한다. 왜냐하면 이 글은 현대 은행업과 화폐창조의 기본적이고 명백한 몇 가지 전제들을 해체하면서 진보적인 행동을 위한 새 지평을 열기 때문이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과 그들의 지지자들조차 민중이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으로 유용한 화폐를 창출하는 그 힘을 확실히 되찾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완전히 소화해내지 못했다. 사실 이 힘을 되찾으려면 공적인 목적을 위해 화폐를 창출하고 정치적 포획과 인플레이션이라는 함정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유형의 공공기관과 절차들의 창출이 필요할 것이다.
멜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화폐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에 많은 영향을 준 신자유주의는 공적부문은 화폐를 창출해서는(‘찍어내서는’) 안 되며 또한 공적지출은 시장이 ‘제공할’ 수 있는 것에 제한되어야 한다고 단호히 주장한다. 시장이 보장하는 한정된 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이런 의견 속에 화폐가 존재한다. 그러면 공적자금은 헛된 꿈인가? 아니다. 왜냐면 금융위기와 그 위기에 대한 반응이 이런 신자유주의의 원칙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금융부문이 화폐의 원천으로서 그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가 금융부문을 구제하기 위해 개입해서 무제한적으로 통화지원을 해야 했다. 당국이 허공에서 화폐를 창출한 것이 화폐의 본래적으로 정치적인 본질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왜 화폐를 창출하는 힘은 애초에, 그것도 거의 공적 책임감이 없는 민간부문에 양도되었는가? 그리고 만약 화폐가 은행에 복무하도록 창출될 수 있다면 왜 사람들과 환경에 유익하도록 창출될 수는 없는가?
다른 글들에서 멜러는 미국 정부가 은행들을 긴급구제하기 위해 실행한 “양적 완화”는 공공부채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주목할 만한 사실을 지적했다. 양적 완화가 비밀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은행만이 아니라) 정부도 스스로 허공에서 화폐를 창출할 수 있고 공적 부채로 여겨지지 않는 화폐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조 달러가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창출됐고 결국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화폐를 창출하는 주권국가의 한 사례가 되었다. (은행은 저 수조 달러를 갚지 않을 것이다.)
멜러는 이렇게 주장한다.
국가는 ‘화폐를 찍어낼’ 수 있고 실제로 ‘화폐를 찍어내고’ 있다. 첫째, 현금을 제공하고 금융부문의 현금창출 활동을 지원하는 중앙은행들에 의해 무(無)에서 화폐가 생산된다. 둘째,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돈을 창출하는 같은 방식으로 정부가 지출할 때 화폐가 창출되고 유통된다. 국가들은 돈을 지출하고 나서 그 지출액을 세수(稅收)와 거두어들인 다른 수입으로 메운다.
멜러는 “현대의 모든 현금 통화는 무에서 창출한 “명목화폐”(fiat money)이며 그 가치는 공적 신뢰와 국가권한에 의해 유지된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국가와 시민들은 부채 족쇄를 차고 있는가? 왜 시민들은 필요로 하는 화폐를 부채 없이 창출할 수 없는가? 왜 그 화폐는 비영리 민영부문이나 공공부문에서 유통될 수 없는가?”
그녀는 “만약 공공부문이 애초에 화폐를 창출하고 유통한다면 세수를 통해 화폐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 세수는 공적 지출에 선행하기보다 뒤따를 것이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화폐를 유통과정으로부터 공개적으로 회수할 것이다. 공공부문이 민영부문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면 세금은 상당히 많아져야 할지도 모른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새로운 화폐의 이런 “지출들”은 은행의 이윤추구 기준을 충족시켜야 할 의무를 지기보다 사회적•환경적 욕구에 복무하게 될 것이다.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 멜러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거나 특별이익 집단의 화폐 창출력 남용을 초래하지 않고—지금 당장 이런 일이 은행을 통해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을 짐짓 모른 체하며!—화폐의 새로운 공적 회로가 새로운 공공기관에 의해 책임감 있게 관리될 수 있는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녀는 “이윤에서 자급(provisioning)로의 이동은 그것이 속하는 경제의 주요한 초점을 지속가능한 욕구 충족에 맞출 것이다”라고 예상한다. “그 목표는 기본소득(즉 각 개인의 권리로서 그 개인에게 주는 통화 배당액)과 공동지출 예산—공공 서비스와 기반 시설에 대한 공동지출 예산—의 결합을 통해 충족될 것이다.”
건강한 민주적인 과정은 그것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형태의 참여 예산안 짜기(participatory budgeting)를 보장하고 화폐와 관련된 의사결정 및 시행에 대한 강력한 감독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스템의 경우 화폐창출은 지구의 한정된 자원으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개발”에 자금을 공급하지 않게 될 것이며, 모두를 위한 경제적 안정과 지속가능한 생계의 제공을 촉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커머너들이 화폐창출의 정치에 관하여 새로운 논쟁을 시작할 때이다. 블록체인 원장(元帳) 소프트웨어(비트코인을 가동시키는 엔진)의 출현이 이미 이 일을 하고 있다. 디지털 통화는 어떻게 자발적인 공동체들이 고유의 기능적인 통화를 창출할 수 있으며, 그 통화를 통해서 공동체들이 창출하는 가치를 (은행에 의한 포획에 맡기지 않고) 자체적으로 포획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정치력의 잠재적으로 거대한 전환을 나타낸다. 메리 멜러의 매력적인 글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이제 명목통화(통상적인 의미의 화폐)의 정치를 이런 논의로 끌어들일 때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