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관한 10개의 테제
- 저자 : 미셸 바우엔스(Michel Bauwens)
- 원문 : “Ten Theses on Trump” (2017.3.20)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
- 분류 : 상세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이 글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인 노트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여기 제시된 개념들도 일부는 아직 미완성이다.
트럼프의 승리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기의 종말을 나타낸다. 이 시기에 서양의 노동계급 및 중산층은 신자유주의 전략의 불가피한 결과인 탈산업화로 인해서 침체와 쇠퇴를 겪었다. 물론 비극은 이에 대한 대응이 과거를 바라보며 다른 소수자들을 희생시키는 일국 보호주의로의 귀환이라는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사회정의 및 생태의 지속 가능성과 양립할 수 있는 생산을 조직하는 새로운 형태들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초국적 협동의 형태들을 유지·확대할 수는 없을까? 그러한 방향 재설정과 이행을 상상하는 것이 실로 가능하며 여기서 커먼즈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대답이다. 트럼프 국면이 인간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전략들을 어떻게 다시 활성화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1. 자본주의의 심층적 동학
트럼프의 승리와 그에 대한 계속 이어지는 지지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그 심층에 있는 자본주의 동학의 위기를 반영한다. 이 동학은 자원 생산 정점과 기후 변화와 같은 환경적 요인들만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들―무엇보다 서양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빈곤화와 이것이 예를 들어 이주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포함한다. 자원이 생산 정점에 이르렀다는 계산이 현재의 석유 공급과다와 모순되기는커녕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일부라는 점을 알아두기 바란다. (Nafeez Ahmed, Failing States, Collapsing Systems : Biophysical Triggers of Political Violence 참조)
2. 제국 대 국민국가
따라서 다음의 투쟁이 출현한다. 친(親)신자유주의 세력은 자국 인구와 일국적 성격이 강한 산업을 희생시키고 제국의 이익을 유지하려고 한다. 트럼프를 미는 세력은 자신들이 더 이상 제국을 지배하지 못함을 받아들이며 국민국가로서의 미국을 구하기 위해 제국을 위험스럽게 할 태세를 갖춘다. 월가와 화석연료 산업은 트럼프와 연합하여 사회복지와 환경에 드는 비용을 줄임으로써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다른 우익 포퓰리즘 세력도 자국의 현실에 대해 대체로 유사한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국적 성격이 더 강한 재계 지도자들과 기후변화 비용과 규제를 꺼리는 에너지 부문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국민국가로 후퇴하는 것이며, 자국 자본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 교역만을 받아들이고 ‘제국적인’ 초국적 기업들을 통해 해외에 은닉된 수조 달러를 다시 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은 트럼프에 반대하는 것이다.
3. 계급 타협
신자유주의의 계급 타협은 점차로 작동 불가능하게 되어왔다. 이 타협은 1968년 봉기에 의해 표현된 문화적 측면들 및 욕망들을 (따라서 문화, 젠더 및 기타 소수자들의 권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며, 이 봉기를 지지하는 (그러나 다른 한편 적극적인 탈산업화로 서양의 산업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탈근대적인 포스트노동 좌파(the postmodern, post labor left)와의 상대적 연합을 포함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 성향’이 ‘자유주의화된 문화 성향’과 연합했다고 말해도 좋다. 노동 좌파의 제도들이 뉴딜/복지국가 모델에 포섭되었듯이 정체성 정치가 대표하는 권리 지향적 좌파의 상당 부분이 여기에 포섭되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이것을 연구한 Boltanski/Chiapello의 책 The New Spirit of Capitalism 참조). 이와 달리 트럼프 세력은 백인 노동계급 및 특정의 노동주의적 혹은 생산주의적 가치들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표방하며 나머지를 타자화(otherization)한다. 이것이 적들을 합류하게 만들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재계 엘리트와 문화 엘리트의 결속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친신자유주의 정치와 문화 좌파의 연대는 미국에서 클린턴-오바마 연합이 나타냈던 바이며 다른 곳의 사회민주주의자들 또한 산업 노동자들로부터 더 특권을 가진 ‘창조적’ 노동자들로 이동하여 복지의 신자유주의적 축소를 행하고 산업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저버려 우익 포퓰리즘의 조작대상으로 익어가도록 방치했다.
4. 문화와 타자화
문화적 권리에 초점을 두는 문화 좌파는 트럼프 연합이 행하는 타자화와 공공연한 인종차별/젠더차별에 반대한다. 문화 좌파는 문화적 권리와 개혁을 허용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에 일정 정도의 지지를 보내야 한다는 부채감을 느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타협이 붕괴함에 따라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산업 노동자들과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제단에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이익을 더는 제물로 바치지 않는 대연합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 일에서 커먼즈가 바로 새로운 아교풀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5. 보호주의적 국민국가로의 귀환
진보적 노동자들과 문화 좌파 사이의 시너지를 재창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새로운 연합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는 좌파 부문들을 더 현실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샌더스 세력이다. 샌더스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과의 유대를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온건한 언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뉴딜 원칙을 복원하는 데로 향하는 방향의 유지와 케인즈 정치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며, 결정적으로 트럼프처럼 재산업화와 국민국가의 복원을 향함을 의미한다. 우익 포퓰리즘이나 좌익 포퓰리즘이나 그 크고 의미심장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강한 국민국가에 대한 향수를 공유하며 그것을 ‘넘어’가는 비전을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성은 또한 여려 국민국가들의 노동자들을 서로 충돌하게 만든다. 제안되고 있는 보호주의적 국민국가로의 귀환과 재산업화는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들과 이 문제들을 다루는 데 필요한 초국적 협동의 욕구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다. 국민국가 보호주의로의 귀환은 세계 전역의 커머너들(commoners) 사이의 초국적 유대의 욕구를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다.
6. 모순에 찬 연합
각 연합에는 고유한 모순들이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노동자들과 노동조합들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만, 또한 과세에 반대하는 공화당원들의 지지로 필요로 한다. 이는 그가 예산을 깎아야 하는 동시에 기반시설 투자에 들일 수조 달러를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그는 제국으로부터 후퇴할 필요가 있지만, 또한 기존의 방위 세력을 달랠 필요도 있다. 그는 많은 석유를 필요로 하지만 이는 환경을 파열시킨다. 그는 수익성을 증가시키고 싶지만 이는 사회와 환경의 파열을 대가로 치르며 결국은 자신을 지지하는 산업계를 달래기 위해서 자신의 노동자 기반을 소외시킬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급진 우파가 ‘노동’을 운위할지 모르겠으나 여전히 그들의 주요 기반은 생산비용을 감소시키는 데 열심인 몰락하는 화난 중산층이다.
7. ‘정상’의 해체
오바마 연합과 샌더스 연합도 각자 모순을 가지고 있다. 해체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한 국민국가의 현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8. 세계-지역화(cosmo-localization)와 전체 노동자
새로 출현하는 P2P/커먼즈 접근법이 샌더스 연합을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접근법은 옛 생산모델로 돌아가지 않고 세계–지역적(cosmo-local) 생산모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재산업화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제공한다. 세계-지역적 생산모델에서는 ‘모든 가벼운 것은 전지구적이며, 모든 무거운 것은 지역적이다.’ 물질적 생산의 이러한 보완원칙을 옹호하는 것, 심도 있는 전지구적 협동을 기반시설의 심도 있는 상호화(mutualization, 공동 이용)와 결합하는 것이 대대적인 고용 기회와 생계를 재창출할, 생태론을 발판으로 하는 전지구적 재산업화의 유일한 처방이다.
이 모델은 미국과 유럽 노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세계 전역의 인구에게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서는 커머너들 자신이 지식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인구 전체에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도시들과 그 바이오지역적(bioregional) 맥락들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생계의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이루질 수 있다. 현재 출현하고 있는 전지구적 생산 공동체들, 전지구적 윤리적 기업연합들, 그것을 지원할 공적 서비스의 공통화(commonification)를 바탕으로, 기업의 신(新)지구화[오바마-클린턴]와 신(新)국가주의[트럼프] 양자가 낳을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초국적 제도들이 창출될 필요 또한 있다.
9. ‘파트너 국가’ 접근법
커먼즈 운동에서 큰 문제는 이 잠재적 해결책들 가운데 다수가 아직 실현되기에 때가 이르다는 점이다. 그래서 커먼즈는 원리상 자립적이면서도 진보적 국민국가 복원자들과의 연합에 의존하게 된다. 거대한 이행은 국가제도의 지원 없이는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을 ‘파트너 국가’ 접근법이라 부른다.) 따라서 전략 가운데 우선되어야 할 것이 노동 좌파(샌더스나 코빈 같은 사람), 문화적 권리 운동들, 그리고 커먼즈 운동 사이의 대화이다. 잠재적인 엘리트 세력으로서 유일하게 연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태적 이행을 완전히 지지하고 노동과 커먼즈의 과실을 놓고 대다수 인구와 ‘페어딜 정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한편, 시장경제에서처럼 가치추출에 의존하지 않고 가치의 상호발생에 기반을 두는 다수의 풀뿌리 세력도 커먼즈의 한 부문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10. 예시적(prefigurative) 커먼즈 경제
그러는 사이에 아서 브락(Arthur Brock) 등이 시사한 대로 우리는 지식의 공유(자유로운 오고 감), 사회적 잉여의 정당한 분배(연대경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생태적으로 건강한 생산(정치적 생태론)을 존중하는 예시적 커먼즈 경제의 구축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것이 커먼즈의 미시-연합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현재 펼쳐지고 있는 더 광범한 사회적·정치적 기동(機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