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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두세력의 붕괴


  • 저자  :  쌜리 고어너(Sally Goerner)
  • 원문 : Trump, Sanders, and the Collapse of the American Oligarchy (2016.11.19) 
  • 분류 : 상세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Postgrowth의 홈페이지(Postgrowth.org)에 실린 쌜리 고어너(Sally Goerner) 의 2016년 11월 19일자 글 “Trump, Sanders, and the Collapse of the American Oligarchy”의 내용을 상세하게 정리한 것이다. 고어너는 <자본 연구소>(Capital Institute)의 과학고문이며 <재생경제학을 위한 연구연대>(Research Alliance for Regenerative Economics, “RARE”)의 대표이다. ‘재생경제학’은 ‘자본자산’(capital assets)을 재생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제체제이다. 여기서 ‘자본자산’이란―‘자본’이라는 말에 속지 말자!―우리의 행복(well being)에 필요하거나 기여하는 재화와/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자산을 말한다. 표준적인 경제이론에서는 자본 자산이 ‘재생되거나’ 아니면 실용적인 재화와/나 서비스의 흐름을 산출할 수 없을 정도로 소비(소진)된다. 재생경제학을 표준적인 경제학과 구분하는 것은, 재생경제학은 제1의 혹은 본래적인 자본자산인 지구와 태양을 고려하고 거기에 확연한 경제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이다.(이상 재생경제학에 대한 설명은 영어위키피디아를 참조했음)

 

미디어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무너지는 기반시설, 하청 형태의 일자리들, 정체된 임금, 증발하는 중산층과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나 샌더스 같은 반(反)기성체제적(anti-establishment) 대통령 후보들의 부상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가내업으로 삼았다. 또한 논평자들은 무력한 미국의 정치 엘리트의 반응에 대하여 서로 딴죽을 걸어대며 날마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엘리트들은 당황스러워하거나 아니면 이 후보들을 현상유지의 순조로운 항해를 잠시 방해한 사소한 딸꾹질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문가들은 모두 요점을 놓치고 있다. 트럼프-샌더스 현상은 미국의 과두세력이 시대를 가르는 붕괴 직전에 놓여있음을 알리는 신호라는 점을 말이다.

텔레비전에서 무엇을 보든,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무엇을 읽든, 이 붕괴가 완전히 예측 가능했다는 것이 비극이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과두세력은 언제나 붕괴한다. 이들은 애초에 되어먹은 본새가 사회의 낮은 층으로부터 부를 추출하여 상층부에 쌓고 또한 과두적 권력 또한 집중시킴으로써 상황의 변화에의 적응을 봉쇄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걸릴지는 몰라도, 자원추출로 인해 결국 사회의 생산력 수준은 거덜나며 체제는 점점 더 허약해진다. 상층부 말고는 어디서나 좌절과 절망이 증식함에 따라 내적 압력과 배반감이 커지며, 체제는 완전히 변질된 듯 효과적 개혁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최종 단계에서는 갑자기 부상하는 지도자들이 우수수 등장하는데, 일부는 정직하고 일부는 파시즘적이며, 모두가 출구를 찾지 못하는 대중의 좌절감을 자신들이 선택한 목표로 돌리려고 한다. 우리가 운이 나쁘다면, 기성 체제가 “무기력하게 반응하기”를 계속하여 마침내 우리 경제가 붕괴하게 되거나, 파시스트가 권력을 잡아 생각하기에도 너무 끔찍한 상태를 창출할 것이다.

낯익게 들리는가? 미국은 이와 유사한 과두세력 부패의 주기를 1760년대, 1859년대, 1920년대, 2000년대에 목격한 바 있다.(([원주] 이 주기는 미국 역사와 대부분의 세계사에서 80-90년마다 일어났다. 이는 스트로스와 하우(Strauss and Howe)의 The Fourth Turning 그리고 톰 하트만(Thom Hartmann)의 The Crash of 2016 같은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Strauss, W. & Howe, N., (1996). The Fourth Turning: What the cycles of history tell us about America’s next rendevouz with destiny 참조.))

·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이 주요한 기관들에 침투하여 정치적·경제적 제도를 엘리트들에 유리하게 변질시킨다.

1760년대: 영국파 총독들은 농민들을 악랄하게 짓밟았다. 부유한 귀족들이 주로 투자자들인 동인도회사는 식민지에서의 독점무역권을 얻어낸다. (<차 법안>Tea Act은 기본적으로 이를 위한 기업감세였다.) 2000년대: 부통령 딕 체니(Dick Cheney)의 회사인 핼리버튼(Halliburton)이 이라크에서의 군사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따낸다. 미국 납세자들의 돈으로 실패한 은행들을 구제한다. 억만장자 워런 버핏(Warren Buffet)은 자신의 비서보다 세금을 덜 낸다. 미국의 의료체제는 이윤을 극대화하고 건강을 극소화하는 보험회사들에 의해 지배된다.

· 변질된 체제가 사회 전체의 건강을 좀먹고 위기의 징후들이 번성한다.

영국 고고학자인 콜린 렌프루 경(Sir Colin Renfrew)이 로마 제국의 몰락에서 소련의 몰락에 이르기까지 26개의 서로 다른 사회들에서 보인 ‘몰락하는 시대의 징후들’을 다음과 같이 다듬어냈다.(([원주] Renfrew, Colin. 1979. “Systems collapse as social transformation: Catastrophe and anastrophe in early state societies.” In Renfrew C. and Cooke, K.L. (eds.), Transformations: Mathematical approaches to culture change. New York: Academic Press, 481-506.))

1. 엘리트의 권력과 복지가 증가하며, 이는 부의 과시에서 발현된다.

2. 엘리트들이 사회 내에서 권력에 대한 독점을 유지하는 데 크게 집중한다. 법은 엘리트들에게 더 유리하게 되고 일반 대중에 대한 처벌은 점점 더 가혹해진다.

3. 중간층이 증발한다.

4. ‘고통 지수’가 올라가고 타살·자살·질병·무주택·약물/알콜중독의 높아지는 비율이 이를 입증한다.

5. 단기적 시야가 자원에 대한 탐욕스러운 착취를 밀어붙임에 따라 생태적 재난이 증가한다.

6. 한때 황금빛이었던 이론들이 쇠퇴에 맞서기 위해 다시 사용됨에 따라 보수주의와 근본주의 종교가 부활하지만, 이는 보통 몰락을 가속하는 부패된 형태로 일어난다.

· 위기는 한계점에 도달하며, 표면상으로 작은 사건들이 민중의 좌절감을 변혁의 방향으로 바꾸는 데 방아쇠가 될 수 있다. 만일 사회가 효과적인 개혁들을 실행한다면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개혁을 실행하는 데 실패한다면 위기는 후퇴를 낳으며 심지어 붕괴를 낳는 것도 가능하다.

1776년: 렉싱턴과 콩코드의 “세계 전역에 들린 총성.”(([정리자 주]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Battles of Lexington and Concord)는 1775년 4월 19일에 일어난, ‘미국 독립 전쟁’의 포문을 연 영미 간의 전투이다.)) 미국 독립선언. 미국은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를 목적으로 하는 통합된 국가가 된다. 1933: 대중의 거대한 압박 아래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평범한 뉴욕 정치가에서 사회경제적 개혁의 옹호자가 된다. 정부 노동프로그램이 나라의 기반시설을 소생시키고 <글래스-스티걸 법안>(Glass-Steagall Act)(([정리자 주] 1933년에 제정된, 투자은행(금융기업)과 상업은행(일반은행)의 분리를 정한 법이다.))과 같은 개혁은 은행가들이 체제를 악용할 능력을 감소시킨다. 루즈벨트 이후 미국은 역사에서 가장 오랜 번영의 시기와 중간층의 가장 큰 증가를 맞이한다.

· 시간이 지나면서, 변형된 사회는 개혁을 실행한 이유를 망각한다.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이 다시 기어들어오고 새로운 순환주기가 시작된다.

1980-2000년대: 레이건은 <공정보도 원칙>(Fairness Doctrine)을 폐지하며 반(反)트러스트 법들의 시행을 중지시킨다. 경제 엘리트들은 <글래스-스티걸 법>을 폐지함으로써 금융을 선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유층에 대한 세율은 수직으로 떨어지고 기반시설은 무너진다. 대법원은 <시민연합>(([정리자 주] 미국의 보수적 단체이다. 2008년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비판하는 영화의 광고를 TV에 방송하는 것이, 선거 직전에 기업이나 노조가 후보 관련 미디어에 돈을 지출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인 ‘Bipartisan Campaign Reform Act’에 저촉되자, 이에 도전하여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소송을 걸었는데, 대법원에서 5-4로 승소판결을 받았다.))을 지지하고 <선거권법>을 무효화한다. 게리맨더링이 증가한다.

우리는 1760년대, 1850년대, 1920년대의 교훈을 망각했다. 우리는 경제적 보수주의자들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공중 납치하여 우리의 경제를 그들의 화폐제조기계로 전환하도록 방치했다. 이제 중간층은 증발하고 있고 기반시설은 무너지고 있으며 압박은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반(反)기성체제적 대통령 후보들이 부상하고 있으며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첫째는 우리 시대에도 긍정적 가능성이즉 1776, 1865, 그리고 1945년 이후에 있었던 것과 유사한 변혁의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농업을 거쳐 에너지와 금융에 이르기까지 정직한 변혁가들이 이미 자신들의 분야를 재발명하고 있다. 재생적이고 탄력 있는 ‘새로운 경제’ 실험들이 어디서나 솟아오르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소통은 인터넷 덕분에 이전의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빠르고 더 효과적이다.

둘째는 오늘날의 경제체제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방대한 다수가 부패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오늘날의 지배적인 신념체계가 선한 것, 옳은 것, 필요한 것, 혹은 불가피한 것의 조합이라고 믿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경제적 엘리트들 대부분―공화당원이든 민주당원이든, 좌든 우든―은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이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고 진짜로 믿는다. 경쟁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가 종국에는 엘리트에게 이익을 줌과 동시에 지구 전체에도 이익을 가져오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악한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자들이 ‘실재의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이라고 부르는 것과 관계한다. 인간들은 일정한 시간에 걸쳐서 널리 공유되는 일단의 신념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일상적 제도와 실천을 구축한다. 이는 모든 사람을 사회의 지배적인 신념들과 일치하도록 유지하는 보상 및 처벌의 매트릭스―예를 들어 경쟁에의 인센티브, 이윤 극대화를 자극하는 보상―를 창출함으로서 이루어진다. 불행하게도 이 매트릭스는 체제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할 때조차도 효력을 발한다. 우리가 현재 눈앞에 보고 있는 것은 ① 여전히 믿는 사람들과 ② 의심하는 사람들의 조합인데, 후자는 다시 ㉠ 의심에 따라 행동하려면 생계를 희생해야 하는 사람들 ㉡ 기꺼이 체제를 떠나고자 하지만 그 다음에 무엇이 올지를 꼭 알지는 못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오늘날의 큰 과제는 이중적이다. 첫째, 많은 서로 분리된 개혁의 노력들을 통합하여 일관되고 효력 있는 재발명(이것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으로 전환시킬 방법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이 통합작업에는 견고한 과학, 설득력 있는 이야기, 긍정적인 꿈이 필요하다. 둘째, 일정 사이즈 이상의 집단에는 위계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내부의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체제 전체의 건강과 번영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건강한 위계구조를 창출하는 방법을 이번에 생각해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목표는 새로운 형태의 과두제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과두제 자체를 어떻게 영원히 종식시킬지를 생각해내는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주제를 나는 다음 번 글에서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우리가 이겼을 경우 이룰 성취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말아야 한다. 1995년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구 역사에서 수백 년마다 격한 변형이 일어난다. 수십 년 내에 사회가―그 세계관, 기본적 가치들, 사회적·정치적 구조, 핵심 제도들이―재배열된다······ 50년 후에 새 세계가 마련되고 그때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살았던 세계를 상상조차하지 못한다······ 우리는 현재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원주] Peter Drucker, Managing in a Time of Great Change(2009)에서 재인용.))

우리의 과제는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훨씬 더 가혹한 조건에서도 성공했다는 사실로부터 희망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