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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냐 민주주의냐

*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2016년 4월 1일 게시글 “Mary Mellor’s “Debt or Democracy”: Why Not Quantitative Easing for People?”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글들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금융 용어는 전문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다르게 옮겨졌을 수 있다. 밑줄과 글자 배경색은 옮긴이의 것이다.

 

메리 멜러의 “부채냐 민주주의냐”―왜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는 없는가?

 

“화폐를 찍어내는” 정부들이 모든 새로운 화폐의 원천이라고 널리 생각되고 있지만 사실은 이른바 민영부문이 유통되는 대부분의 새로운 화폐의 원천이다. 우리 시대에 커먼즈를 종획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는, 상업적 금융기관들이 자신들의 재량으로 행하는 대출을 통해서 대부분의 새로운 화폐를 창출하는 힘을 장악한 것이다. 이 힘은 매우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일반화되어서 거의 아무도 상업적 대출이 창출되는 ‘새로운 화폐’의 95% 이상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공적 이익을 위해서 화폐를 창출하는 권한을 발휘하는 엄청난 힘을 사실상 포기해버린 것이다.

 

아마도 현재의 화폐체제를 개혁하는 데 주도적인 주창자는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Northumbria University)의 명예 교수이며 최근에 출판된, 우리의 눈을 열어주는 책 『부채냐 민주주의냐―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정의를 위한 공적 화폐』(Debt or Democracy: Public Money for Sustainability and Social Justice, Pluto Press, 2015)의 저자인 메리 멜러(Mary Mellor)일 것이다.

 

멜러는 최근에 영국 신문인『더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의 특집면에 글을 기고하여 그녀의 책의 핵심 테마들 가운데 일부를 요약했다. 그녀의 글은 “핸드백 경제의 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신화는 정부 예산이 가구의 예산에 비견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이 생각이 화폐공급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왜곡시키며 불가피하게 정부들로 하여금 재정긴축정책을 채택하도록 한다고 멜러는 말한다.

 

지난 해 9월 열린 한 정책워크숍에서 멜러는, 사람들이 잘 묻지 않는 중요한 정치적 물음은 ‘누가 화폐의 창출과 유통을 통제하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정부가 주권자로서 새로운 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권한은 ‘화폐주조세’(seigniorage)라고 알려진 오래된 권한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부들은 이 권한을 상업적 은행업 부문에 양도해버렸으며 이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대출이 부채로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화폐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은행들은 새로운 대여를 행함으로써 허공에서 화폐를 창출한다. 은행들은 대여하는 특정 액수의 화폐를 수중에, 금고실에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단지 ‘준비제도’(reserve banking)[각주:1] 기준이 요구하는 대로 대여되는 돈의 총 액수의 일부만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은행대출은 엄밀하게 사적이고 상업적인 기준―즉 대출받는 사람의 부채 상환능력에 대한 은행의 평가―에 기반을 두어 경제에 새로운 화폐를 말 그대로 공급한다.

 

멜러는 공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공적 통화의 힘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적 통화’라는 말로 그녀가 의미하는 것은 “중앙은행과 정부지출에서 기원하는 공적 화폐 회로를 통해 창출되는,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승인된 공적 통화”이다. 사적으로 창출된 통화는 공적 통화라고 불리지만 은행 부문을 통해 대여의 형태로 발행되는 화폐이다. 은행가들이 대출을 할 때 공적 통화를 창출하며, 이로 인해서 국가는 은행들이 위기에 빠질 때 그 화폐의 유효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멜러는 화폐에 대한 이러한 단순하고 이기적인 이해를 ‘핸드백 경제’라고 부르는데, 이는 영국의 신자유주의자 수상인 마가렛 대처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유명한 핸드백을 빗댄 것이다. “핸드백 경제에 따르면 공적 화폐란 것은 없으며, 공적 화폐란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은 사립은행들을 통해서 말고는 창출될 수 없다”고 멜러는 말한다.

 

화폐를 창출하는 정부들의 어리석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은행가들은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화폐를 찍어냈던” 때 그 결과로 일어난 파멸적 인플레이션을 반사적으로 거론한다. 정부들은 정당하게 화폐를 발행하거나 부를 창출할 수 없으며 이는 은행 신용 혹은 대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등등이 이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애초에 조세를 통해서 화폐를 모으지 않고 일어나는 공적 지출은 모두 무모한 ‘적자 지출’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멜러는 사실 정부들은 항상 세수(稅收)에 앞서 미리 지출을 한다고 말한다. 국가들은 먼저 지출하고 나중에 세금을 거둔다는 것이다. 만일 국가들이 먼저 세금을 거둔다면, 적자는 결코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은행과 화폐에 대하여 시중에 퍼져 있는 일반적인 이야기 또한, 민영은행들이 계속 움직일 수 있도록 정부들이 으레 민영은행들에 ‘기본 화폐’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무시한다고 멜러는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시기에 매우 극적인 형태로 목격했다. 미국 정부는 수천 억 달러의 돈을 허공에서―‘공적 화폐’로서―창출하여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여 은행들이 (그리고 전지구적 경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민영은행 시스템의 배후에 있는 것은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공적 통화를 창출하는 공적 능력이다. 이는 부채 거품이 터지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경제를 멸망시킬 위험을 보일 때마다 계속해서 입증되고 있다. 국가가 항상 최후 수단의 제공자로서 개입하게 된다. “모든 형식적 화폐체제들은 본질적으로 공적이며 공적 신뢰와 공적권한에 의존한다”고 멜러는 말한다.

 

이것이 멜러에게 흥미로운 점을 불러일으킨다. 왜 상업적 은행 부문이 공적 부문에 기생하도록 허용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시민으로서 그리고 납세자로서 민영금융체제로 하여금 공적 부문을 통제하도록 허용하는가? 멜러는 민영은행들에 납세자들의 돈으로 구제금융과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명백한 응답은 “화폐를 창출하는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고” 그것을 공적 목적에 부응하도록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이단적인 생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목을 컥컥대고 커피를 쏟으며 말도 안 된다고 외칠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의 멜러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라.) 그러나 멜러는 위에서 언급한 워크숍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화폐를 창출하는 힘은 주권자들에게서 상업 부문으로, 지배계급에서 상인계급으로 이동했다. 필요한 것은 이 힘을 공공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화폐창출이라는 주권적 특권을 국민의 이익을 위해 공적 자원으로서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화폐가 민주화되어야 한다. 특히 만일 우리가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한 자원조달체계(socially just and ecologically sustainable provisioning systems)―‘경제’보다 훨씬 더 나은 개념이다―를 창출하기를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

 

민주화된 화폐’라는 이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화폐를 창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바꾸어야 한다. 이는 현재 이해되고 있는 바처럼 ‘적자 지출’―즉 은행들에 상환되어야 하는 화폐―로 구성되지 않는다. 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화폐 창출은 공적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주권자의 특권이다. 중앙은행들이 문제가 많은 상업적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양적 완화’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명목상으로는 공적 목적을 위한다는 의도를 가진 공적 통화의 발행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민영사업에 제공하는 보조금이었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그런 경우에는 정부가 “화폐를 찍어낼” 위험에 대하여 많은 은행가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만일 상업적 민영금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공적 화폐를 창출하는 것(‘양적 완화’)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 ‘민중을 위한 양적 완화’ (그리고 환경, 기반 시설 등등을 위한 양적 완화) 또한 가능하고 책임 있는 정책의 하나로서 선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정부가 부채를 지지 않는 공적 통화가 모든 종류의 공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창출될 수는 없는가?

 

멜러는 문제가 주로 이데올로기적 프레임 씌우기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핸드백 경제’의 옹호자들은 우리가 화폐를 순전히 상업적 자산으로서 간주하고 공적 자산으로서 간주하지는 말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화폐창출이 주로 민영은행들의 사적인 이윤생성(대여)을 통해 이루어지고 공적 목적에 복무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통해 이루어지지는 말 것을 요구한다.

 

멜러는 “좌우를 막론하고 논평자들은 대체로 화폐의 민주적 잠재력을 무시한다”고 탄식한다. “그들은 ‘실물 경제’에 초점을 두는데, 이것이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으로 생산적인 부문으로 간주된다. 화폐는 능동적이고 정치적으로 건설적인 동인으로서 간주되어야 하는데도 이차적 측면으로 간주된다. 모든 화폐는 그 보유자에게 권리를 나타내는 신용이다. 그러나 모든 화폐가 부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의 국민경제에서 화폐의 95% 이상은 은행계좌에 들어있고 소량만이 현금(동전, 지폐)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민영 부문의 부채 기반 화폐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규범인 듯이 인식된다. 그러나 멜러는 화폐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다시 개념화하는 것이 전적으로 필요하다고 한다. 화폐를 정부가 은행으로부터 빌려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보지 말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출을 우선시하는, 조세수입이 선행되지 않는, 부채로부터 자유로운 통화의 공급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적자’가 날 필요가 없다. 화폐는 단순히 새로운 화폐의 공적 원천을 재현할 뿐이다. 이는 민영은행들이 이미 수행하는 기능이다. 차이는, 공적 통화들은 이자가 없고―민영 대출자들의 상업적 우선권이 아니라―민주적으로 결정되는 욕구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멜러는 현재의 화폐 체제와는 다른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공적 화폐 회로’(public money circuit)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요구했다. 상업적인 금융 회로―여기서는 화폐가 상환되어야 할부채로서 창출된다―에 의하여 창출되는 화폐와는 달리, 공적 화폐 회로는 부채가 없는 화폐를 창출할 수 있다. 상환에의 유인(誘因])은 없다. 요구되는 것은, 그 화폐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과세를 통해서,[각주:2] 정부 서비스에 경비를 지불하게 함으로써, 혹은 대중에게 투자기회를 제공함으로써―공적 회로로 충분하게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적절한 정책들을 수립하는 것은 공적 토론의 문제가 되리라는 데 멜러는 동의한다. 그녀는 “인플레이션의 압박을 피하면서도 모든 상업적이고 공적인 지불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하기에 충분한 양을 남기기 위해” 회수되어야 하는 화폐의 전반적인 양을 평가하는 권한을 가진 독립적인 기관을 상상한다.

 

멜러의 생각은 오늘날 거대한 호소력을 가지지만, 우선 널리 이해되어야 하며 충분한 견인력을 가지는 정치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 생각이 가진 큰 미덕 가운데 하나는,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적 금융이 고이윤·고부채 기준에 우선적으로 맞을 때에만 황송하게도 새로운 화폐를 창출해주시는 이런 시대에, ‘민주적 화폐’가 모든 종류의 공적 욕구를―특히 생태적·사회적 욕구를―충족시키는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블로그의 글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매우 긴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메리 멜러의 매력적인 책 『부채냐 민주주의냐』를 독자들이 추적하기를 추천하는 것이다. [이 글의 일부 내용은 워크숍 보고서인 「민주적 화폐와 커먼즈를 위한 자본」(“Democratic Money and Capital for the Commons”)에서 따왔다.] ♣

 

  • 부분지급 준비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 
  • 멜러는 자신의 저서 『부채냐 민주주의냐』 3장에서 이 경우 세금이란 상업적 화폐 회로에서와 같은 금융도구(개인, 가구, 회사로부터 공공부문이 지출할 돈을 세금으로 거두는 것)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화폐를 유통에서 회수하는 도구라고 한다. 납세자에게도 상황이 달라지는데, 이제는 어렵게 일하는 가구들이 어렵게 번 돈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 아니라, 공적 혜택(의료비, 교량 건설, 환경사업 등)을 창출하는 일을 마친 화폐가 귀환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