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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자의 실패가 주는 교훈

* 아래는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2016년 4월 6일 게시글 “Lessons from SYRIZA’s Failure: Build a New Economy & Polity”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글들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시리자의 실패가 주는 교훈 ― 새로운 경제와 정치체의 구축

 

지난 해 그리스 정부를 이끌어 채권자들 및 유럽의 거대 세력과 맞서는 일에 선출된 좌파연합당 시리자(SYRIZA)는 신자유주의와의 큰 대결에서 패배했다. 그리스는 사기를 저하시키는 더 깊고 위험한 사회적·경제적 위기에 빠졌으며 이는 시리아 난민들의 유입으로 더 악화되었다.

 

그렇다면 시리자의 경험이 경제적·사회적 변형을 가져올 민주적 정치의 잠재력에 관하여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시리자의 당원이었으며 그 중앙위원회와 정무비서실에 속했던 안드레아스 카리치스(Andreas Karitzis)는 OpenDemocracy.net에 올린 글 「‘시리자의 경험’―교훈과 응용」(“‘The SYRIZA experience’: lessons and adaptations”)에서 풍부하고 예리한 분석을 제공한다. 이 글은 왜 시리자가 실패했는지를 설명하는 명민하고 힘들게 얻은 정치적 통찰들과 사회변형에 필요한 미래의 전략들을 활기 있게 제시하고 있다.

 

시리자는 기존의 정치구조들과 절차들 내에서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적을 중지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카리치스는 주장한다. 시리자의 생각과 달리 단장(斷腸)의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국가 주권이 국제적 금융 세력에 의해 압도당하면 기존의 정치는 무용하다는 점이었다. 시리자가 결국 트로이카[각주:1]와의 협상을 받아들인 것은 “금융독재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민중계층의 희망과 열망을 드러냈다는 주장도 가능하지만”[각주:2] 이제 카리치스는 좌파에게 새로운 ‘운영 체제’ 혹은 몇몇 사람들이 ‘플랜 C’라고 부른 것을 개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여러 민주적 제도들에 한때 깃들어있던 민중의 힘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엘리트들로 하여금 결정적 의사결정들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용인하게 만들 충분한 힘이 없다. 똑같은 일을 계속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전투의 지형이 이동하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전략이 붕괴했다면 위태위태한 전투지형에서 더 능력을 갖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지형을 다시 형성해야 한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적 관심을 대의정치에서 경제적·사회적 힘을 생산하는 자율적 네트워크의 수립으로 이동함으로써 해결공간(solution space)을 확대해야 한다.

 

이 새로운 해결공간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카리치스는 우리가 “‘커먼즈’와 같은 개념들을 평가하고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회적 경제와 협동적 생산활동의 역동적이고 탄력적인 네트워크들, 대안적 금융 도구들, 지방자치 중심지들, 민주적으로 기능하는 디지털 공동체들, 기반시설·에너지체계·분배네트워크들과 같은 기능들에 대한 공동체의 통제를 위한 강한 중추의 형성”을 그린다. “이것이 엘리트들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 기능들을 통제하는 데 맞서기 위해 필요한 정도의 자율을 획득하는 방법이다.”

 

카리치스의 분석은, 명목적으로만 민주적인 제도들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엘리트들이 자유롭게 법의 지배(법치)를 농락하고 (파나마 문건을 보라[각주:3]) 관료들이 약탈적이거나 무능한, 세계의 다른 모든 곳에 대해서도 명백한 연관을 함축한다.

 

이제 그리스의 (그리고 다른 곳의) ‘좌파’는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치의 실행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대가로 도덕적 신망을 잃고 있기 때문에, 극우가 기꺼이 채우고자 하는 빈 공간이 열린다. “민족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이 민중의 분노와 원망의 유일한 ‘자연 숙주’(natural hosts)로서 남았다”라고 카리치스는 쓴다. 서구 민주주의를 가로질러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은, 민주적 거버넌스를 억압하면서 사회적 비참을 유발하는 데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적 과두세력으로부터 온다.

 

카리치스에 따르면, 이것이 사실상 민중의 절망의 핵심 원인이며, 좌파가 철저하게 새로운 전략적 접근법을 채택해야 하는 이유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한때는 민족국가에게 속했던 것처럼 보이는 일련의 중요한 정책들과 힘을 민중의 힘이 미치는 범위 바깥으로 옮겨놓았다······선출된 정부는 더 이상 정치권력의 주된 담지자가 아니다. 그리스의 경우 민주적으로 선출하여 어떤 정부를 구성한다는 것은 금융 대부자들이 대(大)파트너들인 더 큰 규모의 정부에서 소(小)파트너들을 선출하는 것과 같다.”

 

시리자는 “엘리트들이 촉발한 싸움의 확대를 고려할 수 있는 우리의 힘을 다시 결집하고―미래에 신자유주의의 지배에 도전할 수 있는 자원을 구축할 더 효과적이며 탄력적인 ‘민중전선’을 형성”하려고 시도하기 위해서 ‘전술적 후퇴’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고 카리치스는 주장한다. 아쉽게도 시리자는 트로이카와의 협상을 시도하였고 실패했다.[각주:4] 이것이 주는 명확한 교훈은 “금융 독재와 민주주의 및 존엄 사이에는 그 어떤 절충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카리치스는 결론짓는다.

 

선거정치를 무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하여 선거정치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때문에 전진하기 위한 전략적으로 가장 뛰어난 방법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안적인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서 나올 것이다. 커먼즈 운동, 사회연대경제, 피어 생산 운동, 이행 운동, 탈성장 운동 및 기타 탈자본주의 운동들의 공동의 기획을 통해서.

 

카리치스의 글은 현재 진행되는 그리스의 트라우마에 대한 우울한 분석이다. 그러나 명민하고 분별력 있으며 전략적인 글이다. 좌파에게는 미래의 엄한 선택이 남겨지는 듯하다. “21세기의 불길한 전장으로 진입하면서, 좌파는 인간 사회를 방어하는 데 적절하거고 유용하게 되거나 아니면 노후하게 될 것이다.” ♣

 

  • the European Commission, the European Central Bank (ECB) and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
  • 볼리어가 이 대목을 부각시키고 그 직후의 대목을 생략한 것이 다소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시리자가 “민중계층의 희망과 열망을 드러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한 것은 일종의 양보절이다. 카리치스가 진정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다음에 한 말로서―볼리어는 이것을 생략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시리자가 권좌에 남아있음으로써 자신들이 행한 반란을 ‘정상화’하였으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곧 시리자의 패배인데, 이로써 시리자는 민중으로부터 대의정치라는 도구를 박탈했고 (볼리어도 나중에 언급한) ‘전술적 후퇴’의 가능성을 박탈했다는 것이 카리치스의 생각이다.
  • 파나마 문건(영어: Panama Papers 파나마 페이퍼스)이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폭로한 파나마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의 돈세탁 관련 자료이다. (위키피디아)
  • 신자유주의를 실행하는 좌파 정당이 된 것이 바로 실패의 핵심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