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너들, 이탈리아의 키에리에서 축제를 벌이다
* 아래는 2015년 7월 14일자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 게시글 “Commoners Descend on Chieri, Italy, for Major Festival”를 옮긴 것이다. 데이빗 볼리어의 블로그의 글들은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커머너들, 이탈리아의 키에리에서 축제를 벌이다
옮긴이 : 정백수
다시 한 번 이탈리아인들이 키에리(Chieri)에서 열린 3일 동안의 축제를 주최함으로써 커먼즈 패러다임을 전진시키는 데서 전위를 맡았다. 키에리는 이탈리아 토리노의 외곽에 위치한, 인구 6만 명의 소도시이다. 이 <커먼즈 국제 축제>(the International Festival of the Commons)에서는 영화들, 음악공연들, 비디오 상영물들, 강연들, 패널 토론들, 음식과 음료, 그리고 많은 즐거운 대화들이 그 특색을 이루었다.
내 생각에 축제란, 정치와 교육이 약간 가미된 재미있는 시간을 찾아서 온 일반 시민들과 매우 헌신적인 커머너들을 한데 모으는 환상적인 방법인 듯하다. 이 축제는 수백 명의 시민들을 끌어모았으며, 이들은 콘서트 공간으로 변한 주차장들을 거닐면서 커먼즈에 관한 공개강연과 토론을 열중해서 들었다.
축제일 가운데 어느 날 저녁에는, ‘공통적 자산’(누구나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한 인간의 권리라는 생각을 선구적으로 내놓은 저명한 이탈리아의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스테파노 로도타(Stefano Rodota)가 빽빽이 모인 청중에게 “유대와 우애 사이의 커먼즈”에 대하여 강연했다.
다른 날 저녁에는 종자보호 운동가(seed activist)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가―시바는 밀란의 식품전시회에서 벌어진 유전자재조합식품에 반대하는 일련의 시위에 막 참여하고 왔다―상품화되거나 판매되어서는 안 되는 살아있는 체계로서의 커먼즈에 대하여 강연했다. 그녀는 이탈리아가 즙이 많고 맛있는 토마토를 여전히 생산하는 몇 안 되는 곳들 가운데 하나임을 언급하여 약 600명의 청중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토마토들은 기업식 농업(agribusiness)에 의해 전지구적 상업에 적합하도록 조작되어서 생물학적 마분지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시바는, 커먼즈가 학술적인 추상이 아님을, 커먼즈는 일상생활의 매우 많은 측면들이 어떻게 퇴행되고 있으며 종획이 어떻게 우리의 것들을 박탈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언어임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진 일련의 공개강연과 토론에 (아쉽게도, 영어로의 번역은 없었다) 커먼즈에 관한 이탈리아의 주도적인 이론가들 가운에 몇 명이 참여했다. 이미 언급한 로도타, 문화이론가인 안또니오 네그리(Antonio Negri)1, 법학자인 우고 맛떼이(Ugo Mattei), 법률가인 구스따보 자그레벨스끼(Gustavo Zagrebelsky) 등이다. 프랑스 철학자이며 프랑스어로 된 주요 이론서의 저자인 삐에르 다르도(Pierre Dardot)도 참여했다. 특별한 저녁 여흥을 위해서 브라질 음악가들인 길베르투 길(Gilberto Gil)과 까에타노 벨로소(Caetano Veloso)가 약 2,500명의 청중을 놓고 공연을 했다. 길은 예술가 재야인사로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크리에이티브커먼즈 라이선스의 초기 지지자이고 룰라 정권에서 문화상을 맡은 바 있다.
나도 시간을 얻어 디지털 미래에 관한 토론 자리에서 블록체인 원장과 ‘디지털 자율조직들’의 미래에 관해서 발제했다. 나는 또한 커먼즈의 정치적 함축에 관심이 있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나의 『커머너처럼 생각하라』(Think Like a Commoner)의 이탈리아어본―스탐파알테르나티바(Stampa Alternativa)2에서 출간한 La Rinascita dei Commons3―을 소개했다. 또한 나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커먼즈 활동가인 프레데릭 술탄(Frédéric Sultan)이 주도한, 무성하게 늘어나는 도시 커먼즈 헌장들에 관한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이 헌장들은 시민들에게 자치권을 더 많이 부여하고 시의 관료제를 비켜가려는 시도들이다.
나는 이탈리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축제의 많은 요소들을 놓치긴 했지만, 축제의 많은 부분이 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어느 저녁에는 ‘100개의 첼로들 가운데 10%’라고 불리는 첼로 연주자단이 본회의장에서 연주를 했다. 공연자들은 로마의 테아트로발레(Teatro Valle)에서 2001년부터 2014년에 이르는 긴 점거 기간 동안 잊지 못할 공연을 했던 100명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더 큰 집단의 일부였다. 청중은 그들의 열정적 헌신을 사랑했다. 음악에 대한 헌신, 종획에 맞선 사회적 유대에 대한 헌신. 이런 축제들은 그러한 역사를 기념하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여는 측면을 가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