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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네상에서 민주적인 거버넌스 구축하기

 



슈나이더(Nathan Schneider)는 인터넷 플랫폼상에서 거버넌스의 기본 형태는 ‘함축된 봉건제’라고 자신의 신작 『거버넌스 가능한 공간들』(Governable Spaces: Democratic Design for Online Life)에서 도발적으로 선언한다. 그는 함축된 봉건제는 “공동체를 봉건적 영지로서 구축하려는 문화적이고도 기술적인 편향”인데 여기서 창립자들은 “평생 자애로운 독재자”가 된다고 주장한다.

불행히도 권위주의적인 거버넌스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일한 경향들이 “현실 세계“로도 번지고 있는데 이는 온라인과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가 요즈음에 상당히 모호해졌다는 오직 그 점 때문이기는 하다. 놀랄 것 없이, 우리가 전제 군주 같은 IT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에 순응하다보면 독재적인 정치인들도 더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다. 민주주의의 실천을 담금질하는 장이 선진 자본주의하에서 위축된 것이다.

슈나이더는 ”온라인 공간이 창조적이고 급진적이며 민주적인 르네상스의 현장일 수 있다“는 대담한 생각을 해볼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인터넷을 반응하고 발명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가진 더 민주적인 매체로 만들기 위해 과거의 거버넌스 유산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돌풍과도 같은 참신한 선언에 흥미를 느낀 나는 팟캐스트 <커머닝의 프론티어> (에피소드 49)에 슈나이더를 초대했다. 우리의 대화는 온라인 문화의 몇몇 불쾌한 구역을 둘러보는 사뭇 진지한 여행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는 이상하리만치 고무적이기도 했다. 부상하는 새로운 플랫폼 기술들은 진실로 흥미진진한 몇몇 가능성들을 제공한다. 진보적인 행동주의가 상상력을 발견하여 그 가능성들의 현실화에 기여하기로 결심한다면 말이다.

슈나이더는 콜로라도 볼더(Colorado Boulder) 대학에 재직하는 미디어학 교수이다. 대학에서 그는 크립토 경제와 디지털 자율 조직들(digital autonomous organizations, DAOs)에서부터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커머닝과 그 너머까지 인터넷 문화를 연구하는 학술센터인 <미디어 경제 디자인 랩>(Media Economies Design Lab)을 이끌고 있다. 슈나이더의 연구를 아주 흥미롭게 만드는 점은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와 탈식민 역사, 사회운동 전략들, 페미니즘 경제, 문화이론 그리고 초기 인터넷 역사의 유토피아적 비전들에 깊은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슈나이더는 이렇게 질문한다. “사회운동들이 인터넷의 레일 위를 그토록 자주 달리고 있는 시대에 어떻게 우리는 튼실한 힘을 창출하는가? 우리는 사회운동이 자신이 약속하고 널리 퍼뜨린 것들을 실행할 수 있게 하는 비판적인 관계들을 어떻게 창출하는가? 내 생각에는 디지털 공간에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능력이이 가장 핵심적일 듯하다. 그러나 사회 운동은 튼실한 힘을 구축하도록 설계되지는 않은 네트워크들에 의존하고 있다. 이 네트워크들은 광고를 하고 사람들을 흥분시킬 목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슈나이더는 소셜 미디어는 수동성과 기업들에의 의존을 조장하며 사용자가 주권을 갖고 통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새로운 온라인 공간을 작동시키거나 디스코드(Discord)에서 또는 여러분이 사용중인 어떤 플랫폼에서든 채팅을 하는 경우 그것은 바로 그 하향식 구조 안으로 여러분을 유인한다. 공간을 창출하는 사람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그 공간에 대해 절대적인 힘을 갖는다. 갈등을 처리하는 여러분의 유일한 도구는 검열과 추방이다. 이것이 함축된 봉건제의 논리이고 나는 그것이 한층 민주적인 온라인 공간들을 구축하는 데 유리하지 않은 교육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스토돈(Mastadon)―사용자들이 협력적으로 서버를 운영하는 오픈소스 트위터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 사이트―을 언급하며 이와 같은 많은 대안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유형의 민주적 거버넌스 온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슈나이더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일련의 ‘거버넌스 스택들’—서로 다른 기술 수준에서 작동하는 일련의 상호운영성이 있는 프로토콜을 가리키는 소프트웨어 용어—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크립토—블록체인 같은 분산된 원장(元帳) 기술—가 설계 가능성의 파열을 제공한다고 믿고 있다.

분산된, P2P 소통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크립토는 기업들이 일반적으로 통제하는 중앙 집중식 서버에 의존하는 웹사이트들의 구조보다 참여자들의 힘이 더 평등한 구조의 가능성을 연다. 적어도 실제적인 상상계로서 크립토는 “다른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참조점들이 있는 다른 세상과 다른 정치에 이르게 하는 매체이자 통로”라고 슈나이더는 쓰고 있다.

사실 주목할 만한 거버넌스 혁신들이 크립토 공간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고 슈나이더는 말한다. 이 혁신들에는 다음의 것들이 포함된다. 선호하는 것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평가하는 의사결정 과정들, 알고리즘을 통한 분쟁 해결, 널리 공유되고 있는 책임(성)과 이익 분배, 쉬운 탈퇴 및 시스템 분기 능력, 스스로 시행하는 보안과 검열 저항성, 외부로부터 통제나 규제를 받지 않는 주권, 온체인 활동의 투명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버넌스 활동을 위한 참신한 인터페이스들.

이 실험들 모두가 장기간에 걸쳐 일반적 목적들을 위해 그 가치를 입증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립토 세계의 많은 부분이 사기, 도박 그리고 투기적인 통화 거품으로 넘쳐나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디지털 자율 조직들은 네트워크화된 조직화를 훨씬 더 쉽게 만들지만 조직화가 곧 민주적 거버넌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큰 ‘사용자 통제’는 상대적으로 더 직접적이며 마찰이 없는 시장들, 이를 테면 주식 교환 또는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 파트너십 및 투자 시장들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민주적인 돌파구가 전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슈나이더가 역사 및 탈식민을 다룬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들을 활용한 것이 매우 도움이 되는 것으로 판명된다. 듀보이스(W.E.B. Du Bois)와 앤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 같은 사상가들은 억압적인 제도들을—노예제도든, 짐크로 법이든 감옥이든—폐지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슈나이더는 말한다.

시민권, 소속감 및 참여를 실제로 산출하는 대안적인 민주적 구조들을 구축해야 한다. 듀보이스에게 이 일의 큰 부분은 협동조합이었다. 그는 흑인 해방의 한 가지 본질적인 실천으로서 일상의 민주주의를 깊이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평균적인 진보적 단체의 웹사이트에 가면 참여하는 버튼이 없”고 기부하는 버튼만 있다고 슈나이더는 불평한다. 웹사이트는 보통 상향식 회원 자격을 구축하거나 집단행동을 동원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설계되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봉사활동에서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참여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는 온라인 도구들을 우리가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트들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냥 의견만 교환하기보다는 힘을 발전시키도록 육성하고 북돋을 필요가 있다.”

슈나이더와 한 인터뷰에는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 많다. 그 내용을 여기서 들을 수 있다. 슈나이더의 책 『거버넌스 가능한 공간들』은 오픈 액세스 포맷으로 여기서 구할 수 있다. 또한 2020년 10월 슈나이더와 한 인터뷰를 이 팟캐스트 에피소드 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에피소드는 이 블로그 게시글 http://commonstrans.net/?p=2258 번역되어 있다. 본문의 ‘에피소드 8’은 원문에 잘못 표기된 것을 옮긴 것이며, 실제로는 에피소드 7이다. —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