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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반 일리치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 저자  :  David Bollier
  • 원문 :  Why Ivan Illich Still Matters Today
  • 분류 :  번역
  • 정리자 :  루케아
  • 설명 :  아래는 볼리어(David Bollier)의 홈페이지(http://www.bollier.org)의 2021년 12월 1일 게시글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블로그의 글들에는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3.0 License가 적용된다.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내가 되풀이해서 참조하는, 보기 드물고 영향력이 큰 사상가들 중 한 명인데, 이는 그가 다른 경우라면 무시되는 핵심 주제들과 두려움 없이 씨름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근대 제도들이 가진 전체주의화하는 권력, 정신적 삶을 부패시키는 자본주의의 영향 및 더 건전하고 반란적인 문화를 구축하는 토착적인 실천의 힘을 다루었다.

가장 최근 팟캐스트(에피소드 #21)에서 나는 일리치의 사상에 대한 해석이자 권위 있는 종합인 『이반 일리치: 지성 여행』(Ivan Illich: An Intellectual Journey, 2021)을 최근에 출판한 일리치의 절친이자 동료인 데이비드 케일리(David Cayley)를 인터뷰하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케일리는 캐나다 CBC(Canadian Broadcasting Corporation)사의 전직 방송인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문학, 정치 및 생태 관련 주제에 관한 수많은 책을 집필한 작가이다.

일리치는 인습타파주의적인 사회 비평가, 급진적인 기독교인이자 문화 역사가로 서구 근대성, 기독교, 보건의료(헬스케어) 및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돌봄의 전문업화에 대한 혹독한 비판으로 1970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로마 교황청과 자주 충돌한 오스트리아 태생의 가톨릭 사제인 일리치는 마침내 사제직을 그만두고 떠돌이 강연자, 사회 참여 지식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의 생각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다방면에 걸쳐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기본적인 인간성을 부정하도록 고안된 것처럼 보이는 현대세계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 깊고 더 의미 있는 정신적 삶을 추구할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Ivan Illich. Photo by ‘Adrift Animal,’ CC BY-SA 4.0

지금 보기에는 일리치의 몇몇 관점들이 당대에 즉 주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생각은 근대 경제학 및 정치학을 따르지 않는 풍부하고 상세한 관점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현대의 삶과 크게 관련되어 있다. 지난 40년 내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일반 민중의 고통을 가중시켰으므로 그의 작업은 훨씬 더 유의미할 것이다.

일련의 저서들에서 일리치는 정규교육, 헬스케어, 교통기관, 법, 기타 시스템들이 이익보다는 해악을 더 많이 만들어내며 우리에게서 권리를 빼앗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그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Medical Nemesis, 1974)에서 어떻게 전문의료업이 사람을 과잉진료하고 평범한 삶을 병리화하는지를 보여주었다. 『학교 없는 사회』(Deschooling Society, 1970)에서는 어떻게 정규교육이 참된 호기심과 배움을 자극하기보다 자본주의적인 질서를 위해 사람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는 것에 초점을 더 맞추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공생공락을 위한 도구들』(Tools for Conviviality, 1973)에서는 공생을 위한 창조적이고 열려있는 도구를 인간에게 갖춰주는 문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리치의 생각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요소는 ‘누가 우리의 현실 감각을 정의하게 되는가’였다. 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자기조직화하는 “토착적인 영역들”—주류 경제가 무시하는 활동들인 커머닝과 돌보기라는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는 비공식적인 공간들—과 운명을 같이 했다. 일리치는 또한 온갖 종류의 흔치 않은 역사적인 발굴―예를 들어 몸의 아픈 양태를 서술하는 것과 관련된 감각의 역사(([옮긴이] 일리치가 보기에 몸-감각(body-sense)은 문화 속에서 경험된다. 따라서 문화의 역사적 변천은 곧 몸-감각의 역사적 변천을 낳으며, 감각의 변화는 어휘의 변화를 낳는다.)), 커먼즈로서 침묵 그리고 도시 삶의 역사에서 ([]들의 매개체로서) 머리카락의 역할의 발굴―을 과감히 해냈다. (내가 일리치에 관하여 이전에 올린 게시글을 이곳이곳에서 참조하고, 또한 일리치가 현대에 끼친 영향에 관하여 내가 2013년에 한 강연을 참조하라.)

일리치의 저서들과 강연들은 실질적인 사회적 관행과 정신적인 욕구를 통해 아래로부터 세상에 접근함으로써 지난 20년간에 걸쳐 부상한 커머닝 세계를 위한 지적 토대를 세우는 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일리치는 시장/국가 지배권의 범위 밖에 존재하는 사회적이며 정신적인 삶—근대 의식의 세속적이며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공간—을 연구함으로써 현대의 커먼즈를 상상할 풍성한 공간을 긍정하고 분명히 했다. 케일리는 일리치를 “발전 이후 시대의 맑스”라고 불렀다.

케일리는 일리치가 슈마허(E.F. Schumacher)처럼 “규모 문제는 허식 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사상가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핵심적인, 전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일의 규모가 너무 커질 때 그것은 전적으로 그리고 무조건 다루기 힘들어진다. 정의상, 즉 바로 그 특성상 통제될 수 없는 도구들이 있다. 그것들이 결국은 우리를 통제할 것이다.”

그래서 일리치는 인간의 힘과 독창성을 존중하는 공생공락적인 도구들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공생공락적인 도구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 스타일로 폐쇄적이거나 독점적이지 않고 평범한 개인들과 공동체들의 욕구와 관심에 기여하는 열려 있는 유연한 도구들이다.

일리치는 표준적인 경제학 및 ‘발전’이라는 관념을 일찍부터 비판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이런 사고틀에 내장된 전제에 도전했고 무한 성장의 위험들을 강조했다. 그는 표준적인 경제학은 ‘충분함’에 대한 인식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것이 생태적 문제들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혼란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가에 의해 지원을 받는 자본주의적 시장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자본주의적 시장은 상품과 시장거래에의 의존상태로 우리를 몰고 감으로써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를 주변화하고 서로 간의 관계를 분열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근대적 삶은 자급자족과의 500년 전쟁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근대적 삶에서는 우리가 사용가치와 욕구보다는 교환가치와 화폐를 위해 생산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오늘날 세상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구하지 못할 뿐더러 그들의 생계추구를 눈에 안 보이고 위엄이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일리치는 썼다. 그는 “발전”의 근본적인 오류는 “인간의 자연 통제라는 생태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구상”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케일리의 책은 비록 길지만—450페이지가 넘는다—일리치의 삶과 작업을 사적인 회고록, 전기, 지성사 및 문화적 논평이 결합된 형식으로 생생하게 종합한다. 이 책은 현대 독자들이 일리치를 설득력 있는 독창적인 사상가, 창조적인 불굴의 학자이자 매력적인 사람으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일리치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지라도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했다. 그는 교사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적극적인 자극을 통해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한 부류의 신학자였다. 그는 매우 병약한 자신을 이 과제에 완전히 투여했기 때문에 설득력을 얻었다. 케일리는 그를,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머리를 곧추세우는 깨어있는 새에 비유한 적도 있다.

내가 데이비드 케일리와 한 인터뷰는 여기서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