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 (1/4)
- 저자 : Peter Linebaugh
- 원문 :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1989. 2. 26) 1-3절.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정백수
- 설명 :
커먼즈의 역사가라 불리는 라인보(Peter Linebaugh)가 Against the Grain과 가진 인터뷰 “Peter Linebaugh on the Long History of Pandemics”(2020. 04. 08)의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정리하려다가 이 인터뷰의 원자료가 되는 팸플릿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1989. 02. 26)의 내용을 먼저 정리해서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팸플릿은 에이즈 종식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적 풀뿌리정치단체인 <액트 업>(ACT UP, AIDS Coalition to Unleash Power, 1988년 창립)의 돌을 맞아 라인보가 일종의 생일선물로 작성한 것으로서 모세의 시대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닥친 역병들에 대한 “기억”을 전해주고 있다. 제목의 ‘lizard talk’(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는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인 민중의 지식을 가리킨다. 이는 근대 이후로는 (특히 역병의 경우에) 과학적 지식에 의해 보완될 것이지만, 인류의 역사 내내 저류에서 존재했던 지식이다. (물론 망각되기가 십상이기도 하지만.) 라인보는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이 1939년에 출애굽기 이야기를 흑인의 관점에서 다시 쓴 소설 Moses, Man of the Mountain((http://onlinereadfreenovel.com/zora-neale-hurston/p/18/33960-moses_man_of_the_mountain.html))에 나오는 마구간지기 멘투(Mentu)를 이 지식을 전하는 사람의 원형으로 본다. 멘투는 모세에게 “만물의 시작에 대한 모든 것”을, 즉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를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이 팸플릿 자체가 하나의 ‘lizard talk’이고, 라인보가 멘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인터뷰에서 라인보 자신이 밝히듯이, 라인보가 이 팸플릿을 통해 전하려는 요점 가운데 하나는 아래로부터 역병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위로부터 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현대의 주류 미디어는 거의 대부분 우리를 위로부터 보는 관점으로 세뇌한다.) ‘lizard talk’에 바로 이 아래로부터의 지식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요점은 미시기생체(microparasite, 즉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할 때마다 거시기생체(macroparasite, 즉 각종 형태의 지배계급)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지배를 더 강화하려 하지만, 반대로 아래로부터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에 기반을 두어 사회를 전복시킬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결코 먼저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라인보의 ‘lizard talk’는 여기서 좀더 나아간다. 팸플릿의 맨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우리가 더 섞이고 교류할수록 ··· 우리는 더 강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병/병원체들과의 관계 역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인류의 활력의 역사의 일부인 것이다.
이 팸플릿의 내용이 조금 많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도 있고 해서 네 번에 나누어서 올리려고 한다. 먼저 ① 서두와 1·2·3절을 묶어 올리고(정리자 정백수), 그 다음에 ② 4·5·6절을(정리자 정백수), 이어서 ③ 7·8 절(정리자 성철), 마지막으로 ④ 9·10절을 묶어 올릴 것(정리 영광)이며, 그 뒤에 앞에서 말한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해서 올릴 것(정리자 정백수)이다. (*정리자가 논평·보완·추가하는 내용은 대괄호 안에 넣기로 한다.)
Lizard Talk;
Or,
Ten Plagues and Another
An Historical Reprise
in
Celebration of the Anniversary of
Boston ACT UP
February 26, 1989
1. Lizard Talk in Ancient Egypt
2.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3.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4. One Hundred Tales of Love in the Transition from Feudalism to Capitalism
5. The Columbian Exchange
6. “The Death Carts Did More…”
7. Yellow Fever & Racism of the Founding Fathers
8. Gothic Disguises of Industrialization
9. “I had a little bird…” Bolshevism and the ‘Flu
10. Mein Kampf & Tuskegee
[서두]
에이즈도 그 이전의 전염병들처럼 분할(젠더들 사이의 분할, 인종들 사이의 분할, 민족들 사이의 분할, 대륙들 사이의 분할)의 원리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분할은 역풍을 맞았다. 이에 맞선 투쟁은 우리를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 모든 투쟁들이 에이즈에 맞선 투쟁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답하는 선물로 10개의 역병의 역사를 드리겠다.
HlV는 197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실질적으로 출현했다. 동시에 시카고에서는 한 경제이론이 퍼졌는데, 이 이론은 세계 전역의 가난, 기근, 질병 등을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조직했다. 지배계급의 막장 부패는 레이건이 상징했다. 시카고는 또한 법 해석에 자유시장경제 모델들을 적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는데(포스너Stephen Possner), 이는 정의로움에 신경 쓰기를 그치고 삶과 죽음의 비용편익을 수량화했다. 이런 법학자들이 정치적 우세함을 얻었다. 오래지 않아 인문학 분야의 개[犬]들도 베넷(William Bennett)의 멍멍거리는 명령 아래 ‘서양 문명’의 찬양에 동참했다. 시카고 역사가 맥닐(William McNeill)은 에이즈 팬데믹이 등장하기 조금 전인 1976년에 『역병들과 민족들』(Plagues and Peoples)를 냈다.
그는 우리의 생존이 ① 우리 몸에 사는 미시(微視)기생체들(microparasites, 박테리아, 바이러스)에 맞선 싸움과 ② 거시(巨視)기생체들(macroparasites, 여러 형태의 지배계급들)에 맞선 싸움에서 살아남는 데 달려있다고 본다. 기생체는 어떤 종류든 숙주에 의존한다. HIV든 지배계급이든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숙주를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는 것이 기생체에 이익이다. 숙주는 기생체를 위한 잉여를 생산하는 정도까지만 살도록 허용된다.
맥닐은 『나의 투쟁』의 히틀러처럼 떠벌이지는 않지만, 질병을 은유적으로 다루는 문제점을 보이기는 한다. 그는 질병에 대해 일반인이 가진 지식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지배계급에 대해서는 시카고 사람이 가진 정도의 지식을 가가지고 있다. 역병과 역사에 대한 계급 관점에서의 분석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의 코뮤니즘의 상실된 역사(the lost history of our own communism)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도마뱀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다.
- 고대 이집트의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 in Ancient Egypt)
고대 이집트의 역병들은 루터교, 깔뱅교, 바티칸, 시온주의에서 ‘검디검은 아프리카’를 ‘영광의 그리스’로부터 구분하는 기초원리였다. 즉 관개의 제국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이집트)을 도시국가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노예적 생산양식(고대 그리스)로부터 구분한 것이었고, 고대의 제3세계를 고대의 제1세계로부터 구분한 것이었다.
구약의 역병들은 기원전 14세기에 일었다. 이는 출애굽기에 서술된 전염병들이다. 출애굽기는 적어도 300년 뒤인 솔로몬의 재위 시에 지어졌다. 출애굽기는 예배에서의 암송, 노래, 연대기를 요약한다. 고대 국가의 공식적 신화들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그에 맞추어 취급되어야 한다.
허스턴(Zora Neale Hurston)은 출애굽기의 역병들을 범아프리카적 이야기로 본다. 그 전염병들은 힘을 가진 지팡이―이는 노예들을 자유로 이끄는 뱀신(a serpent god)이다―를 지니고 있는 모세의 마법이 발휘된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의 억압자들 및 이집트의 신들과 싸워야했다. 파라오에게 이긴 것은 우월한 마법으로 인한 승리였다.
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면 지팡이가 뱀이 된다. 그가 지팡이를 나일강의 물에 담그면 강물이 핏물이 된다. 그가 흐르는 강물 위로 지팡이를 뻗으면 개구리들이 땅을 덮는다. 그가 땅의 먼지를 치면, 구더기들이 올라와 인간과 짐승을 덮는다. 파리들, 우박들, 메뚜기들, 일식들, 전염병들―이 모든 것들을 모세의 지팡이가 불러오며 파라오의 마법사들은 항상 쩔쩔 맨다. 이런 식으로 야훼는 개구리신, 태양신, 가축신들을 물리친다.
허스턴이 발견한 바로는 이런 뱀-지팡이 힘은 아이티(Haiti)와 다호메이(Dahomey)[약 1600년부터 1904년 사이 오늘날 베냉 지역에 있었던 아프리카의 왕국]에서 살아있는 힘이다. 노예들과 무법자들(‘Hebrew’라는 단어가 가진 이집트어 의미들이다)의 지도자인 모세는 어떻게 그의 마법을 얻었을까? 그는 그것을 파라오의 마구간지기인 멘투(Mentu)[‘mentor’를 연상시키도록 고안된 이름이다]로부터 얻었다. 멘투가 모세에게 전해준 것이 바로 ‘도마뱀이 해주는 이야기(lizard talk)’이다. 지식을 전수받는 대가로 모세는 멘투에게 파라오의 부엌에서 남은 음식들을 가져다준다. 예전에는 삶은 돼지머릿고기를 먹었는데 이제는 모세가 가져다주는 더 좋은 부위를 먹게 된다.
마법-지식의 계급적 특성이 분명해진다. 그것은 부엌과 마구간에서 만들어지며 대가를 받고 교환되며 그 다음에야 반란, 학살, 새로운 왕국이라는 익숙하고도 모호한 이야기가 오게 된다. “‘모래를 나르고 회반죽을 갤 일은 이제 없어! 파라오를 위해 돌을 가져오고 건물들을 지을 일은 더 이상 없어! 채찍을 맞아 등이 피가 낭자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아직 어두운 아침부터 어두워진 저녁까지(from can’t see in the morning to can’t see at night) 노예로 일할 일도 더 이상 없어! 자유! 자유! 멍청해질 정도로(till I’m foolish) 자유야.’ 그들은 수 세기의 세월을 눈에 담고 그저 앉아서 울었다.”[이 대목은 Moses, Man of the Mountain에서 모세로부터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후 모세의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보여준다. 모세는 환호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예상은 틀렸다.]
분명 이는 기독교, 유대교, 부두교(Voodoo)에 다 걸쳐있는 역사적 존재인 흑인의 해방 이후에만 가능한 버전이다. 여기서 이집트의 전염병들에 대한 독해는 자본주의의 신들이며 실로 ‘노동하라, 아니면 교수형이다’라는 복음을 전하는 루터와 깔뱅의 정반대이다.
-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고대 그리스 (“What they had formerly done in a corner…” Ancient Greece)
귀족 가문 출신인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영광의 그리스’에 속한다. 그는 아테네 제국의 국경에 있는 금광의 관리자였다. 그는 실패한 장군으로서 20년 동안 유배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The Peloponnesian War)을 지었다. 이 책을 ‘서양 문명’의 일부로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해상 제국주의를 찬양했으며, 지중해의 패권을 쥐려는 아테네의 노력을 이야기했다. 그는 상품생산으로의, 화폐형태로의 이행기에 살았다. 이는 곧 해적질에서 상업으로의 이행이었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그의 책은 모세의 마법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히포크라테스가 설명한 소피스트 질병이론―증상의 관찰, 진행과정의 기록, 위기의 포착, 원인의 분석―이 이 책에 영향을 주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둘째 해인 기원전 430년에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침입하여 은광산을 공격했다. 동시에 전염병이 아테네를 덮쳐 맨 먼저 항구도시 페이라이에우스(Peiraieús)를 공격했다. 소문에 따르면 이 병은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너머 에티오피아에서 애초에 발생했다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이는 ‘타자’의 질병으로 간주되었다. ‘검디검은 아프리카’가 서양문명을 괴롭힌다는, 그리고 ‘서양문명’은 희생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우리에게는 오래된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아테네에서 이 병은 병사들을 죽이고 도시 인구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스파르타의 침입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대거 도시로 이주하자 이 병은 맹렬한 속도로 퍼졌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염병의 증상을 염증, 갈증, 불면증, 설사라고 서술한다. 투키디데스로서는 이 병을 자연적 위기의 일부로서 보는 수밖에 없다. 새나 짐승도 감염된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피했다.
외교관들과 은행가들의 역사가이며 모든 정치가를 위한 핸드북을 쓰는 투키디데스는 이 유행병에 ‘자연적’ 측면을 조금도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이름 모를 질병이 유발한 ‘극단적 무법’을 서술했다. “번영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죽고 아무 것도 없던 사람들이 그들의 번영을 이어받는, 급속한 변화를 보고 ··· 사람들은 이제 이전에는 구석에서 했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했다.” 질병의 사회적 동학은 해방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투키디데스는 걱정이 되었다. “신에 대한 두려움이든 인간의 법이든 그들을 제한할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전염병은 또한 정치적 리더십의 위기를 낳았다. 페리클레스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 자신도 전염병에 굴복했다. 이것이 군사적 전환점이 되어서 스파르타인들이 아티카를 떠났다. 이 병은 모든 곳에서 계급투쟁을 격화시켰다. 코르큐라 섬에서는 혁명이 일어났다.
“익숙한 가난을 제거하기를 바라고 이웃의 재화를 열렬히 탐낸 자들의 간악한 의지”와 “공정한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 실로 지배자들의 오만한 대접만을 받은 피지배자들이 가하는 보복”이 투키디데스를 걱정시켰다. 그러나 노예들, 가난한 사람들, 피해를 입은 사람들 쪽에서는 정의를 위한 투쟁이 바로 치료과정이 되었다.
- 기독교와 ‘대탕녀 바빌론’ (Christianity and the Whore of Babylon)
로마 시대의 거시기생체들은 공납, 세금, 십일조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 세계의 민족들을 먹이로 삼았다. 팔레스타인에서 포르투갈에 걸쳐 있는 가난한 서민들은 이방인들의 공격으로부터의 면역성을 시저와 네로의 문명화된 군대들에 돈을 지불하고 샀다. 이 ‘보호자들’은 그들의 ‘건강’을 아프리카, 인도, 북부 유럽까지 확대하여 네 개의 인간 질병 유전자풀(유전자급원遺傳子給源)이 지중해 세계로 합류하도록 만들었고 그 결과 유행병이 반복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홍역, 천연두,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이질, 볼거리, 말라리아가 정기적으로 찾아오면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이는 상업과 정복이 이 ‘알려진 세계’를 확대하면서 기원 후 543년 유스티니아누스의 역병[나중에 ‘흑사병’이라 불리게 된 ‘페스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지중해 질병 유전자풀의 형성은 힌두교, 불교, 기독교가 공고화되던 바로 그 세기들에 일어났다. 질병과 종교는 상호연관되어 있으며, 각 종교의 초월적 숙명론이 중국, 인도, 로마의 지배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의 위험을 감소시켰다.
제도화된 기독교인들이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았으며, 죽음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정의는 저승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하여 카이싸레아의 에우쎄비우스(Eusebius of Caesarea)는 흐뭇하게 자신의 교회를 신뢰했으며, 카르타고의 주교는 죽음을 ‘유익한 떠남’으로 보았다. 이리하여 로마 제국의 미생물학은 초기 교회 건립자들의 신학장사에 묻히게 되었다.
그런데 ‘대탕녀 바빌론’인 로마의 거시기생체는 파토모스의 요한에게 규탄을 받았는데, 요한은 「요한의 묵시록」에서 증거의 천막(the Tent of Testimony)에서 일곱 재난(Seven Plagues)과 하느님의 분노가 가득 담긴 일곱 대접(Seven Bowls of the Wrath of God)을 갖고 나온 일곱 천사에게서 구원을 본다.
첫째 대접은 독한 종기를 쏟아냈다. 둘째 대접은 바닷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셋째 대접은 강물과 샘물을 핏물로 바꾸었다. 넷째 대접은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 다섯째 대접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자기들의 혀를 깨물게 했다. 여섯째 대접을 유프라테스 강에 쏟자 강물이 말라버렸다. 일곱째 대접을 쏟자 무게가 오십 근이나 되는 엄청난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이런 대목들은 중세(피오레의 요아킴Joachim of Fiore)에서 17세기(아비저 콥Abiezer Coppe)를 거쳐 20세기(피터 토시Peter Tosh, 밥 말리Bob Marley)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년 동안 천년왕국설 신봉자들과 혁명가들에게 예언적 희망의 원천이 되어왔다.[피오레의 요아킴은 이탈리아에서 <피오레의 싼 조반니> 수도회를 창설한 사람이고 아비저 콥은 영국의 종교운동가이며 이탈리아의 피터 토시는 밥 말리와 함께 자메이카의 레게 음악가이다.]
「요한의 묵시록」전체에 담긴 계급적 분노가 이 묵시록을 대중을 위한 아편이라기보다는 전위를 위한 크랙[강력한 코카인의 일종]으로 만든다. 바빌론과 간통을 한 지상의 왕들과 바빌론의 부풀어진 부에 기반을 두어 부자가 된 세상의 상인들은 울며 슬퍼할 뿐이었다. 그들은 이제 상품을 사고 팔 수가 없었다. “그 상품에는 금, 은, 보석, 진주, 고운 모시, 자주 옷감, 비단, 진홍색 옷감, 각종 향나무, 상아 기구, 값진 나무나 구리나 쇠나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그릇, 계피, 향료, 향, 몰약, 유향, 포도주, 올리브기름, 밀가루, 밀, 소, 양, 말, 수레 그리고 노예와 사람의 목숨 따위”가 있었다.[「요한의 묵시록」18장 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