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전지구적 봉기



저자는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무언가가, 누군가가 계속 문을 두드린다. 이미 추운 바깥은 더욱더 추워지고 있다. 그러나 안에 있는 사람들은 TV를 켜놓고 무릎 위에 담요를 올려놓고 소파 위에 아늑하게 앉아있다. 또 두드린다. 앞문을 두드린 다음 옆문을 두드리고 다시 뒷문을 두드린다. 바람이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창문도 두드리고 지붕도 두드리며 벽도 두드린다. 이것들이 이토록 얇다는 것을 누가 알았던가. ··· 어떻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문을 두들길 수 있는가?

집은 바로 신자유주의체제(혹은 이 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바로 전지구적으로 벌어지는 항의운동들이다. 지난 9월부터 지구의 거의 전역에서 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알제리, 볼리비아,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이집트, 프랑스, 독일, 기니, 아이티, 온두라스,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이란, 이라크, 레바논, 네덜란드, 스페인, 수단, 영국, 그리고 짐바브웨 등. 이 투쟁들은 서로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명분이나 구성의 면에서 서로 이질적이어서 그런지 저자는 이것들을 통합된 현상으로서 보려는 진지한 시도는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개인 돈지갑 문제“pocketbook issues”를 원인으로 본 『뉴욕타임스』의 해석은 제외해 버린다.)

표면상으로는 이 운동들을 연결시키는 것이 없는 듯하다. 이란에서는 50% 유가 인상이 원인이었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에서는 농민들이 환경규제에 항의하여 고속도로를 봉쇄했다. 홍콩에서는 범죄자를 중국 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 불을 붙였다. 칠레에서는 교통비 인상이 불을 붙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억압적 범죄 법안이, 레바논에서는 모든 품목에 부과하는 새 조세 공지가 촉발제였다.

항의운동의 조직화는 일부는 조합과 정당에 의한 것이지만 다수는 지도자가 없는 수평적 종류의 것이다. 전체를 포괄하는 혁명적 이데올로기는 없으며 전위당이 전면에 나선 것도 아니다. 지난 세기의 대부분 동안 세계를 가르고 있던 ‘좌우’라는 축은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이상 아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곳의 민주적 열망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우익들과 미국 정부도 홍콩, 이란, 볼리비아의 시위들이 보인 민주적 열망에는 응원을 보냈다. (볼리비아의 경우는 어쨌든 모랄레스를 전복시킨 쿠데타 이전에는 그랬다.) 좌파 가운데 더 교조적인 사람들은 홍콩과 이란 항의운동 뒤에 제국주의적 개입이 있다고 보면서도 지구상의 모든 다른 민중운동의 유산을 긍정했다.

바리케이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를 보면 공통성들이 부각되기 시작한다.

칠레에서는 지하철요금 3% 인상―이로 인해 교통요금이 최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월급의 21%가 되었다―에 대한 분노로 인해 민중이 개인돈지갑 문제에 발끈한 데 불과한 것이 아니라, 긴축으로 진이 빠져있고 저임금, 긴 노동시간, 부채에 의해 쥐어짜이고 부유층의 탐욕과 맹목성에 신물이 나 있어서 모든 것을 태워버릴 태세가 되어있다. 

이집트에서는 9월에 수천 명의 시위자들을 체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재무부장관이 “이집트 경제개혁의 과실이 보통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라고 탄식했다. 국제통화기금에서 부과한 조치로 인해 실제로 인플레가 3년에 걸쳐 60% 상승했으며 수백만 명을 가난에 빠뜨렸다. 

엘리트 집단의 인식과 대중의 경험 사이의 분리는 근본적인 만큼이나 광범위하다. 최근에 민중봉기가 일고 있는 나라들 모두와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모두 단 하나의 경제모델에 의해서 수십 년 동안 지배되어왔다. 이 모델에서 성장은 다수에게는 궁핍화를 의미했고 자본은 하수(下水)가 아래로 흘러가는 것만큼 확실하게 미국과 유럽으로 흘러들어갔다.

칠레가 악명 높은 최초의 실험실이었다. 피노체트 암살단이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과 팀을 이루어 운좋은 자, 신중하지 못한 자, 눈이 먼 자들이나 좋다고 할 ‘경제적 기적’을 창출하는 일을 했다. 볼리비아에서 민중이 11월 10일의 쿠데타를 좌절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이와 유사한 신의 행동(즉 기적의 창출)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압도적 불균형을 보존하는, 전지구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가 의미하는 바이다. 이는 미시적으로는 도시 수준에서 작동하고(가령 공공교통체계의 쇠퇴), 거시적으로는 전지구적 규모로 작동한다(각국 엘리트 집단이 다국적기업 및 국제금융기관들과의 공모하여 노동력을 저렴하게 유지하고 부를 기성의 세력에게 한정시키는 것).

2000년대 초에는 중국 자본과 석유·광물·농산물 같은 상품의 높은 가격으로 인해서 가난한 나라들에게도 선택지들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과 연결된 ‘개혁’의 덫들―공공 부문의 삭감으로 이루어지는 긴축 정책, 국가 소유 자원의 사유화, 노동보호를 위한 제도들을 ‘자유화’라는 이름으로 철폐하기―을 잠시라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좌파 정부들이 승리했고 가난과 불평등이 감소되었다. 그러나 상품 붐은 꺼졌고 중국 경제는 멈추었으며 국제통화기금이 똑같은 해결책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각국의 엘리트 집단은 화폐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국의 국민을 난도질하는 방식으로 행복하게 지내왔다. 3월에 에콰도르의 대통령 모레노(Lenín Moreno)는 42억 달러의 대부를 받기로 국제통화기금과 계약했으며 10월에는 그 요건으로서 공공부문 임금과 연료보조금을 삭감했고 그 결과 경유 가격이 두 배로 올랐다. 이것에 촉발되어 주로 에콰도르 토착민들로 이루어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모레노는 곧 자본을 도피시키고 긴축재정안을 폐지하는 데 동의했다. 레바논에서는 수상 알하리리(Saad al-Hariri)가 110억의 대부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외국 대부자들이 요구하는 적자감축 종합대책의 일부로서 (연료, 담배, 인터넷 메시징 서비스를 통해 전화하기에 매기는) 새로운 소비세들을 공지했다. 레바논 인구의 무려 4분의 1이 참가한 12일 동안의 항의 투쟁 이후에 하리리는 사임했다. 그러나 투쟁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와 동일한 모델이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된 곳에서도 적용된다. 이란은 40년 동안 미국의 제재에 의해 타격을 입어서 긴축 조치를 시행하는 데로 돌아섰다. 그들은 그들이 약속했던 경제적 만병통치약을 제공하는데 실패했으나, 적어도 엘리트 집단을 보호하고 소모품으로 간주되는 계층에 고통을 전가할 수는 있었다. 저항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항의자들의 요구는 원래 촉발제가 되었던 것을 훨씬 넘어서 거의 모든 방면으로 확대되었다. 홍콩에서 시위자들은 범죄자 송환법의 철회로는 ‘충분’ 근처에도 못 온다고 보았으며 보편적 참정권(universal suffrage) 또한 원했다. (시의회 의석의 반수는 은행가들, 제조업자들, 개발업자들로 이루어진 ‘직능 선거구의 유권자들’functional constituencies에 의해 직접 선출된다. 불평등과 주택비용은 세계 어느 곳보다 높다.) 칠레에서 항의자들의 요구는 교통요금 인상을 철회하는 데서 피노체트 시기의 헌법을 폐지하는 데로 확대되었다. (두 요구 다 이룰 듯하다. 피녜라는 요금인상을 철회했으며 새로운 헌법을 위한 국민투표에 동의했다.)

레바논에서 항의자들은 그들의 운동을 혁명으로 간주할지 말지를 가지고 토론하고 있다. (베이루트, 홍콩, 칠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하게 사유화된 곳에 속한다.) 수단에서 오마르 알-바시르(Omar al-Bashir) 정부가 “국제 대부(貸付) 기관들의 제안으로”(『뉴욕타임스』) 밀 및 연료 보조를 삭감했을 때 시작된 봉기가 30년 동안 지속되어온 정권을 뒤엎는 결과를 낳았으며 아직도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이티에서도 항의운동은 1년도 더 전에 모이즈(Jovenel Moïse)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연료 가격을 인상했을 때 시작되었는데, 항의자들은 곧 미국이 후원하는 모이즈의 사임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줄곧 이 요구를 해오고 있다.

아이티에서만이 아니라 에콰도르에서 짐바브웨에 이르는 적어도 12개 나라에서 항의운동은 휘발유 가격의 인상에 의해 점화되었다.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화석연료 사용을 즉시 중지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지만, 이 나라들에서의 연료 가격 인상이 이산화탄소 방출의 삭감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통화기금은 종종 대부를 에너지보조금 삭감과 연동시키며, 연료세는 공공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채택하는 역행적이지만 쉬운 방법이다. 이 두 가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뜯어서 가진 자들을 구제하는 전술들이다.

한편 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항의운동이 기후정책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영국의 경우처럼 정부가 하는 것이 너무 적기 때문이거나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경우처럼 취하는 정책들이 고통이 고르게 분담되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우 농민들은 살충제와 질소 방출에 대한 제한 조치에 수천 대의 트랙터로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프랑스의 경우 환경에 대한 고려로 제정된 연료세가 부자들을 위한 세금감면과 결합되어 1년 이상의 거리투쟁이 일게 되었다.

어느 쪽을 보든 교훈은 매우 분명하다. 첫째, 기후위기를 다루려는 시도일지라도 주민들의 압도적 다수의 기본적 욕구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면 실패하게 되어있다. 둘째, 이 기본적 욕구에는 음식, 건강관리, 주택만이 아니라 존엄과 유대도 포함된다. 현 체제는 존엄과 유대를 파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체제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일어나는 많은 봉기들은 TV 뉴스에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달 초에 소설가 에데(Dominique Eddé)는 레바논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들에 대해, “마치 수십만의 외로운 사람들이 끝이 없는 듯한 겨울잠을 자고 난 후 깨어서 자신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동시에 발견한 것”과 같다고 썼다. 보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이같이 민중이 깨어 주위를 둘러보고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 지구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