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의미 —1부


  • 저자  :  조너선 레이섬(Jonathan Latham)
  • 원문 : “The Meaning of Life (Part I)” (2017.10.24) 
  • 분류 : 내용 정리
  • 정리자 : 민서
  • 설명 : 아래는 레이섬의 논문 “The Meaning of Life (Part I)”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전편에 해당하는 논문 “Genetics Is Giving Way to a New Science of Life”의 정리내용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생명의 의미 —1부

 

많은 사람들은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이 DNA 구조를 발견한 1953년을 DNA 혁명의 날로 정한다. 하지만 레이섬은 이런 사회적 통념을 깨고 DNA 혁명의 주체는 록펠러재단이며 그 혁명은 실제로 1953년보다 30년이나 앞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DNA의 화학적 성분도 1920년대에 록펠러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록펠러재단이 DNA에 예민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재단 임원들이 볼셰비키식의 혁명(1917)이 또 일어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1911년에 스탠더드오일컴퍼니는 극도의 공분(公憤)을 사는 바람에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1913년에 이사였던 저드슨(Harry Pratt Judson)의 말에 따르면 재단은 “국가의 경찰력을 강화하는” 방안들을 찾는 것은 물론이고 분개하고 시기하는 군중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쇠도 획득할 작정이었다.

재단은 별개이지만 보완적인 두 가지 관리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① 사회구조의 수준에서 인간행동을 통제하는 것, 가령 재단이 ‘정신생물학’(psychobiology) 같은 이름들로 언급했던 가족•노동•감정을 통제하는 것 ② 분자 수준에서 인간행동을 통제하는 것.

 

1. 이른바 “인간과학”

사회적 수준에서 인간행동을 통제하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재단은 1900년대 초에 사회과학 분야를 사실상 창립했다.

1929년에 재단 이사로 선출된 메이슨(Max Mason)은 재단의 두 가지 전략인 이 이중 초점을 “인간과학”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인간과학]은 인간행동의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며 이해를 통한 통제를 목표로 한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들은 사회통제의 합리화에 관여할 것이다. 의학과 자연과학은 개인에 대한 이해와 개인에 대한 통제의 기초가 되는, 밀접하게 연계된 과학 연구를 제안한다. (릴리 케이Lily Kay의 『생명에 대한 분자의 비전』The Molecular Vision of Life, 1993에서 재인용)

사회과학 부문과 관련해서 재단은 공동체 특유의 특정한 기계론적인 정신의 습관 및 에토스를 사회과학 연구 공동체 내부에 주입하려고 애썼다. 재단의 사회과학 부문 책임자인 데이(Edmund E. Day)는 “사회과학의 발견물의 타당성에 대한 입증”은 “사회통제의 효과”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재단 이사인 위버(Warren Weaver)에 따르면 이런 사회통제는 “인간본성과 행위에 대한 기존의 지배적인 생각”을 시간엄수 및 복종과 같은 성품에 대한 산업의 “경영상의 요구”에 맞추어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했다.

재단의 전기 작가인 릴케이가 설명한 것처럼 “산업 자본주의와 일치하는 인간관계의 재구조화”는 1930년대에 매우 널리 이해되었으나 별로 승인되지 않았던 과제였다. 동시대의 한 비판가는 재단이 하는 이런 일을 일컬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사회질서의 자본주의적인 조작”이라고 했다(Kay, 1993).

 

2. 록펠러 집단이 유전자를 고안하다

‘인간과학’ 전략의 두 번째 부문—의학과 자연과학—은 전적으로 과학적인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록펠러재단 이사들에게 합리성은 우생학을 의미했다. 레이섬에 따르면 우생학 이론은 인간이 예의바름•지능•복종과 같은 특성을 결정하는 숨은 인자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재단 이사들은 과학의 논리성을 위해서라도 과학이 그런 결정 인자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의 시선으로 충분히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과학은 행위의 ‘원인이 아래로부터 작용’하는 이 메커니즘과 분자들을 발견할 것이다. 애초에 단백질인 것으로 추정되었던 그런 통제하는 요소들도 그 존재가 확인되면 이해되고 이용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발견을 하기 위해서는 ‘분자생물학’(([정리자] 분자생물학은 록펠러재단이 만들어 낸 용어로 (유전자의 성격을 발견하는 데 중점을 두는) 환원주의적인 “매우 작은 것의 과학”을 지칭한다.))이라는 새로운 과학과 새로운 개념이 필요했다. 재단은 이 분자생물학을 고안하기까지 다른—심지어 비환원주의적인—접근법들도 시도했다. 재단이 수리생물학자 라세프스키(Nicolas Rashevsky)를 지원했다가 최종적으로는 중단했는데(Abraham, 2004) 이를 두고 레이섬은 기술(記述)과학으로서 수리생물학이 결정론적인 힘들을 발견하고자 하는 재단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재단은 분명한 접근법들, 개인들 그리고 기관들을 시험해보고 걸러내는 시행착오를 거친 후 생물학을 재발명하는 전략을 마침내 개발했으며 1933년 무렵에는 분자생물학이 온전한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재단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시카고 대학 같은 비교적 소수의 엘리트 기관들에 소속된 과학자 집단들에게 집중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자금을 지원받은 이 집단들이, 아래로부터 원인으로서 작용하는 분자들을 찾는 일, 즉 유기체의 형태와 기능을 결정했던 특수한 분자들과 특수한 메커니즘을 찾는 일을 하는 수백 명의 과학자들을 훈련시켰다. 이 과학자들이 앞으로 록펠러 집단의 우생학적인 명제를 입증하게 될 것이다.

레이섬은 이 노력들—자금 지원하기와 과학자들 훈련시키기—이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1) 생리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이자 록펠러재단의 관계자인 비들(George Beadle)에 따르면 ‘모태분자들’에 대한 탐구가 DNA로 좁혀지고 나서 1953년 이후 유전 과학에 대해 수여된 18개 노벨상 중에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과거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수여되었다(Kay, 1993). 대부분은 록펠러재단의 도움에 힘입어 1989년 비들이 사망할 무렵에는 분자생물학이 전반적인 생물학—의학, 발생 생물학, 신경생물학 그리고 농업 등—의 지배적인 접근법이 되었다.

생물학이 유전학과 환원주의를 압도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이것을 논리적이고 불가피한 과학적인 강조라고 여기는 것은 오늘날 거의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하지만 록펠러재단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전체 유기체 생물학을 사실상 말소하고 다양한 다른 접근법들—라세프스키의 접근법, 영양 생물학의 접근법 및 환경 결정론의 접근법등—을 주변으로 밀어낸 것이 면밀하게 계획된 쿠데타였다는 점이다. 레이섬이 보기에 재단은 이 쿠데타를 통해 생물학의 인과관계에 관하여 경합을 벌이는 생각들을 유전자 결정론으로 대체할 작정으로 과학계를 장악한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은 유전자가 생물학에서 원인으로서 특권적 수준과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는 생각이다. 이 논문과 짝을 이루는 논문인 「유전학은 새로운 생명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레이섬은 이 글에서도 유전자 결정론적인 생각은 명백하게 틀렸다고 분명히 말한다. 생물학에서 인과관계는 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고 유전학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악덕자본가들은 유전자 결정론적인 패러다임을 사회에 부과하기 위해 생물학을 돈으로 샀던 것이다.

(2) 록펠러재단의 노력이 낳은 또 하나의 귀결은 그 노력들이 생명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장악하여 빈곤하게 만든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왓슨과 크릭이 1953년에 DNA구조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이들 두 사람에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록펠러재단은 개가를 올렸다.

 

3. 유전자 결정론의 기원: 헉슬리와 빅토리아조 사람들

록펠러재단의 지도자들만 통제되지 않는 군중들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50년 전, 찰스 다윈의 책을 비판한 빅토리아조 사람들 또한 소란스런 시대에 살았다. 그들의 세계는 기차·전화 같은 새로운 기술의 출현, 도시의 성장 그리고 (귀족층을 밀어내려고 위협했던) 상인 계층의 부상으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 비판자들은 이런 사회적 소요에 다윈주의를 보탤 경우 “사회를 바로 그 토대까지 흔들”지 않을까 두려워했다(Desmond, 1998). 이 중기 빅토리아인들의 두려움은 다윈주의와 진화론에서 연원한다.

① 다윈주의는 중기 빅토리아인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두 개의 반석인 신과 교회를 크게 약화시켰던 일단의 강력한 생각들을 제공했다.

② 진화론에는 특히 물려받은 부와 물려받은 우수함이라는 오래되고 신성한 개념을 파괴할 수 있는 위협적인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었다. 빅토리아인들에게 부와 우수함은 질서와 위계가 가져다주는 혜택들과 사실상 동의어였다.

③ 진화론은 심지어 사회적 격변—노예들이 풀려나고 노동자들이 해방되며 여성 인구가 해방되는 일—이 곧장 일어날 듯한 위협적인 가능성도 함축했다.

다윈주의를 주도적으로 옹호한 헉슬리도 진화론이 함축하는 바의 해방을 약속해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확대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열정적인 빅토리아조 노동자들에게 종의 향상으로 사회가 확실히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헉슬리는 부유한 동료들과는 다르게 과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이상으로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윈의 실질적인 대변인(([정리자] 그는 찰스 다윈의 진화이론을 옹호하는 다윈의 불독(Darwin’s Bulldog)으로 불리기도 했다.))으로서 다윈주의에 대한 인식과 해석을 구체화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 헉슬리는 배제된 사람들 앞에서는 과학의 혁명적인 특성을 강조했지만 새로운 산업가들에게는 과학을 새로운 산업시대의 견인차로 제시했다. 그리고 둔감한 영국 지배층에게는 “자연의 오래된 살리카법(salique law)—남자 혈통을 통해서만 상속을 보장하는 고대 프랑크 족의 법—은 폐지되지 않을 것이며 왕조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레이섬은 헉슬리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을 정치적인 술책에 능숙한 자들로 평가한다. 유전학에만 국한하더라도 그들은 살리카법과 같이 지배층에게 익숙한 이론들—예를 들어 상속에 대한 근대과학 이전의 이론들—을 수용하여 그것들을 다윈주의와 혼합할 정도로 술수가 남달랐다. 지배층이 높이 평가하는 성격적 특성들—지적 능력 내지 사회적 세련됨—이 생물학적으로 유전될 수 있다는 증거를 그 누구도 획득할 수 없었고 설사 그 특성들이 유전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남자 혈통을 통해서만 유전되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낮았다. 하지만 헉슬리와 그의 과학자 동료들은 진화가 기성의 믿음과 가치를 교란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러한 모순들을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이를 위해서 유전 형질은 본질적으로 결정론적이어야 했다. 헉슬리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의 해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훌륭한 성격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갖고 태어나는 것이 된다.

레이섬이 보기에 이와 같은 유전자 결정론적인 해석들은, 과학이 번창했지만 실은 하층 계급이 누릴 더 큰 자유에 대하여 헉슬리가 한 이전의 약속을 약화시켜가면서 그것을 이루어 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듯 과학자들은 빅토리아 시대 과학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회 권력 투쟁에서 과학을 왜곡했고 고의로 지배층의 편을 들기 위하여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이용했던 것이다.(Desmond, 1998).

레이섬은 이 해석들이 생물학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본다. 유전자 결정론적인 요소들은 헉슬리가 ‘원형질’(protoplasm)이라 부른 것을 기반으로 했다. 원형질은 인간 행위의 제어기였으며 많은 역사가들은 이제 원형질을 우생학 이론의 지적인 아버지로 받아들인다. 차후 록펠러재단이 사회적 통제력을 가진 분자들을 찾는 것을 지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원형질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론은 과학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구축된 것으로서 문제점을 안게 되었다.

 

4. 거대 담배기업의 등장

록펠러재단이 전체 유기체의 연구에서 멀어지도록 생물학을 몰아간 것(여기에 카네기재단도 합류했다)은 비교적 쉬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런 지식을 사회적 통제로 바꿔 놓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다음 단계에서는 새로운 자극과 심지어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록펠러재단처럼 담배산업은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미국과 영국 의료기관에 속한 대략 천명의 과학자들에게 3억 7천만 달러를 분배했다. 록펠러재단이 인간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유전자 결정론적인 분자생물학을 고안해냈다면 담배산업의 장기적인 계획은 새로운 분자과학, 즉 인간의 유전적 변이를 다루는 분자과학을 만드는 것이었다(Wallace, 2009). 흡연에 관련된 질병들을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 담배산업의 당장의 목표였다. 담배 회사 경영진은 제한된 증거라 할지라도 담배와 관련된 질병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유전자 결함’을 찾음으로써 그들이 생산한 제품에 전적으로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레이섬은 담배산업의 이러한 생각이 적중했다고 본다. 유전자 결정론은 대중, 전문인들, 심지어는 법조인들의 부정적인 견해를 무력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Gundle et al., 2010).

담배 기금을 들였다고 해서 암이나 중독을 일으키는 어떤 강력한 유전적인 결정 인자들을 밝혀낸 것은 아니지만, 담배산업의 그 전략은 사실상 여론을 전환시켰다. 산업체와 정부가 유전자 연구자들에게 다른 신체 질병들(예를 들어 당뇨병)에도 그들의 방법을 적용하라고 권고를 했던 것이다. 물론 담배산업의 경우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Vrecko, 2008).

1920년대와 1930년대쯤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같은 우생학 실천자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혐오스러워했다. 하지만 ‘게놈 시퀀싱’(genome sequencing)의 편승효과가 DNA가 모태분자이고, 심지어 사람의 일상 활동과 결정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결국 대중들에게 납득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레이섬은 유전자와 게놈 연구가 비공식적으로 우생학의 전제를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 대중들은 단지 폐암뿐만 아니라 수많은 질병과 질환들이 자신들의 유전자의 ‘결함’ 탓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전적 특질은 대부분 인간 변이의 ‘추정 제1 원인’(presumptive primary cause)으로 자리를 잡았고 만성 질환은 유전 질환으로 이해되어 통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한 노벨상 수상자는 DNA를 “분자들의 왕”에 앉혔다(Mullis, 1997).

 

5. 끊임없이 확대되는 과학 분야

토머스 헉슬리는 1865년 한 사설에서 과학은 “[교회에 대한] 절대적인 승리와 지성의 영역 전체에 대한 완전한 지배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만족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찰스 다윈은 처음에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의 지적인 함의가 받아들여지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자제했던 반면에 그의 제자들은 좀처럼 그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헉슬리와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를 시작으로 윌슨(E. O. Wilson),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에 이르기까지, DNA의 추정된 속성들이 커다란 함의(含意) 체계의 토대를 형성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1975)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1976) 및『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1982)은 생물학을 기존에 받아들인 신체의 영역 훨씬 너머로 확장하여 인간의 욕망, 인간의 ‘부정행위’, 인간의 윤리 및 인간의 사회적 구조를 망라했다. DNA 유전자 표지자들과 인간 형질 사이의 희박한 통계적인 연관성에 의존해서 유전학자들은 수백 개의 인간 속성들—성적•종교적 성향, 투표 성향, 몽유병, 기업가 행동, 성차별주의, 폭력과 그밖에 것들이 포함된다—이 최소한 중요한 부분에서 유전적으로 설명된다고 주장했다(가령 몽유병에 대해서는 Kales et al., 1980). 이 주장들은 유전자가 행동을 결정하는 강력한 역할을 한다는 명제에 흥미진진한 기사 표제를 제공해왔다.

 

6. 생명을 설명하지 못하는 ‘모태분자들’

2016년에 개리 그린버그(Gary Greenberg, 캔자스 주 위치토주립대학의 명예교수)는「관(棺)을 봉인하는 데 몇 개의 못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서평을 썼다.(([정리자] 여기서 ‘관’이란 행동유전학을 가리킨다.)) 그린버그는 ‘관’을 봉인하는 작업을 같이 하는 동료 두 사람을 인용하는데, 그들은 “행동과 발생에서 유전자 역할의 반(反)사실적인 개념화”를 언급하는 터프츠대학교의 리차드 러너(Richard Lerner)(Lerner, 2007)와 평범한 인간 행동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찾느라고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다”고 한 더글러스 월스턴(Douglas Wahlsten)(2012)이다.

레이섬에 따르면 그린버그, 러너 등에 의해 확인된 기본적인 쟁점은, 수천억 달러짜리 탐구가 (다운증후군 같은 희귀한 형질을 제외하고) 유전자의 영향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그 경우 유일하게 합리적인 결론은 이런 형질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은 없거나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유전학이라는 좀비는 풍족한 자금지원을 받는다는 바로 그 단순한 이유로 계속 존재하고 있다.

레이섬은 유전적인 증거가 부족한 곳이 비단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 분야뿐만 아니라 인간 질병에 대한 연구 분야도 매한가지라고 설명한다. 2013년도에 인간 유전학 연구에서 가장 저명한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MIT의 <브로드 연구소>의 소장(([정리자] 「유전학은 새로운 생명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에서 언급된 에릭 랜더(Eric Lander)이다.))도 인간 질병에 대한 유전자의 영향을 ‘유령’(phantom)이라고 언급했다(Zuk et al., 2013). 이런 180도 방향 전환은 다음의 4가지에 중점을 둔 일련의 설득력 있는 비판들 이후에 이루어졌다. ① 인간의 추정적인 유전적 소인의 복제가능성이 없음(Ioannidis, 2007) ② 건강에 미치는 폭넓은 영향들에 대한 증거가 없음(Manolio et al., 2009Dermitzakis and Clark, 2009) ③ 그야말로 몇 안 되는 개별적인 유전적 소인을 제외하고는 모두에 대해 효과 크기가 없음(Ioannidis and Panagiotou, 2011) ④ 유전적 방법과 가설에 실험적 엄밀함이 대체로 없음(Buchanan et al. 2006Wallace, 2006Charney and English, 2012).

매체들(과학 매체 포함)은 이런 비판들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지만 레이섬은 그 비판들이 인간유전학 분야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평가한다. 유전자 결정론이 모든 생물학의 중심 패러다임이 된 이래 정말로 큰 문제는 그 심층에 있는 모태분자라는 아이디어와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이러한 모태분자 개념의 기본적인 결함을 UC 버클리의 리처드 C. 스트로먼(Richard C Strohman)은 1997년에 발표한 논문인「생물학에 도래하는 쿤의 혁명」(“The coming Kuhnian revolution in biology”)에서 “[우리는] 유전자에 대한 성공적이고 매우 유용한 이론과 패러다임을 취해서 그것을 부당하게 생명의 패러다임으로 확장했”는데, 이 광범해진 패러다임은 “힘이 거의 없고 결국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라고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릴리 케이가 쓴 1993년 록펠러재단의 전기에서도 이와 동일한 논리적인 결함이 확인되었다. 케이는 결론에서 그 환원주의적 방법에 내재하는 한계를 이렇게 언급했다. “새로운 생물학은 인식 영역을 좁힘으로써 중요한 살아 있는 현상들을 생명에 관한 담론에서 배제해버렸다.”

레이섬은 이 실패는 현재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유전학은 새로운 생명과학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에서 설명된 것들과 같은 새로 나온 연구 결과들 덕분에,(([정리자] 대안적인 생명 패러다임으로의 간단한 안내(A short guide to alternative paradigms of life) 부분에 언급된 내용들 참조.)) 유전자 환원주의가 “중요한 살아 있는 현상들”—성장•자기조직화•진화•의식•학습•건강•질병 등—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게 이제는 쉽지 않다.

레이섬에 따르면 유전자 결정론을 새롭게 대체할 것은 엄청나게 다른 생명 패러다임 즉 생명체계들을 독재가 아니라 협력으로 생각하는 패러다임이다. 그가 여기서 확실히 해두는 것은 DNA에 관한 몇몇 사실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는 것과 DNA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레이섬은 유전자의 돌연변이나 추가가 유기체의 속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것이 DNA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으며 유기체의 대부분의 다른 구성요소들—RNA나 단백질, 심지어 물도 포함해서—의 제거나 추가도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이 아래로부터 작용하는 분명한 예들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GMO 농작물의 사용조차도 새로운 패러다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는 도입된 이식 유전자들이 고립된 모듈로서 (즉 유기체들이 유전자 활동과 생화학적인 기능을 운영하고 통합하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체계 수준의 통제와는 별개로 작용하는 형질로서) 역할을 하도록 신중하게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섬은 궁극적으로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DNA가 유기체에 활기를 부여할 개념적 필연성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레이섬에 따르면, 분자생물학자들이 DNA에게만 있다고 통상적으로 제안하는 ‘발현’, ‘통제’ 및 세포의 지배라는 속성들은 모태분자 패러다임에는 필요한 속성들이지만 정작 그런 속성을 주장하는 것으로는 유전자 결정론을 구해내지 못하며 그 주장은 단지 근대과학 이전의 생기론(prescientific vitalism)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생명체계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생명은 자기 힘으로 ‘원시 수프’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DNA가 주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7. 유전자 결정론의 사회적 귀결들

다윈의 진화론 소식이 1860년대 독일에 전해졌을 때 독일의 천재 생물학자인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창조의 정점에 (과학적인 이유 없이) 인간이 있는 최초의 생명의 나무를 고안했다. 헉슬리만큼이나 헤켈 또한 다윈의 진화론의 함축적인 의미를 유전자 결정론적인 투쟁으로 확대했다. “민족들을 꼼짝없이 전진하게” 했던 유전자 결정론적인 투쟁으로 그 의미를 확장했던 그는 다윈의 진화론이 게르만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예언한다고 말했다.

찰스 다윈이 사망했던 해(1882)에 다윈의 생각(이는 대부분 헉슬리가 해석한 것이었다)은 “법과 역사에 관한 저작들에서 그리고 정치 연설과 종교적인 글에서 수 백 가지로 위장된 형태로” 존재했으며 “만약 우리 자신을 그의 생각과 떼어놓고 생각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시대와 완전히 떼어놓고 생각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고 한다.(John Morley, 1882, Desmond 1998에서 재인용)

이렇듯 체내의 모태분자가 인간을 통제한다는 믿음 체계는 무수히 많은 사회사상의 영역들에 도입되었다. 레이섬은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관념이 두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인종주의, 식민주의, 우생학, 불평등 등을 더 강하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아예 애초에 발생시킨 것으로 본다. 유전자 결정론이 생물 유기체와 생물 그룹의 ‘고등’•‘하등’한 속성 및 ‘정상적’•‘비정상적’인 속성—이것들은 이전에는 의심스러운 편견들과 수상쩍은 공상들이었다—을 본질적이고 변경할 수 없는 과학적인 속성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유전자 결정론은 그야말로 20세기를 정의하는 관념이었으며 유전자 결정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없었다.

레이섬의 관점에서 유전자 결정론은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과제를 과학에 부과하는 외부 기관들의 경제적 능력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놀라운 것은, 뛰어난 개인들, 기술적인 혁신 및 집단적인 지성의 엄밀성이 과학을 추동한다는 우리의 고정된 통상적인 관념과 전적으로 모순되기 때문이다. DNA와 관련하여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는 것은 돈을 쫓는 것만큼 단순했던 것이다.

과학을 위시한 모든 사회는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매우 협소한 DNA 중심적인 생명 해석을 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초기 조건들이 설정된 후에는 생물학적 연구가 유전자 결정론적인 사회사상을 양성했고 이 사상이 다시 유전자 결정론적인 과학을 한층 타당하고 바람직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렇게 해서 자립적인 피드백 고리가 창출되었다.

1975년에 저명한 유전학자들이 <뉴욕 리뷰 오브 북스>(NY Review of Books)에 보낸, E.O. 윌슨의『사회생물학 : 새로운 종합』(Sociobiology: a New Synthesis)에 대한 무비판적인 서평(([정리자] C.H. Wadington이 쓴 1975년 8월 7일자 서평 Mindless Societies를 말한다.))에 응답하는 한 편지에서 이 피드백 고리의 한 사례를 볼 수 있다.(([정리자] 유전학자들만이 아니라 교사들, 학생들도 이 편지를 준비하는 데 참여했다.)) 이 편지를 작성한 이들은 정치계가 사회생물학과 유전체학에 자금을 대는 이유가 행동규범과 사회규범을 창출하는 이론을 제공하는 데 있음을 짚어내고 있다. 담배산업의 전략이 드러나기도 한참 이전이었던 그 당시에, 편지의 필자들은 ‘전쟁’ 같은 한 사회의 일탈이나 ‘폭력’ 같은 한 개인의 잘못된 행동이 유전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모든 과학적인 주장이 오히려 전쟁이나 폭력을 자연스럽거나 정상적인 것처럼 만든다는 것을 지적했던 것이다. 따라서 식품산업 같은 기관들—비만을 야기하지만 자신들에 가해지는 변화의 압력에 저항하고 싶어 하는 기관들—이 높이 평가하는 추론들은 비만에 걸리기 쉬운 유전적 소인에 대한 단순하고 비정치적인 과학적 ‘발견’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생산된다.

레이섬은『사회생물학』출판 이후에 사회과학과 의학 두 분야에서 유전학 연구에 대한 지원금이 급등했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 유전자 연구가 질병 치료제와 질병 치료법을 찾는데 별 소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Chaufan and Joseph, 2013) 이 붐이 일어났던 것이다. 비만에 걸리는 유전적인 소인(素因)이 존재할 수 있더라도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운동하고 과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물학적인 설명은 과학의 영역을 사회•경제•정치•종교, 심지어 철학과 윤리의 장(場)으로 엄청나게 확장했다. 사회생물학은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게재된 편지 속 예측을 입증하면서, 인간 활동에 대한 전통적으로 학술적인 이론들—삶을 권력에게 불편한 것으로 만든 맑스주의나 해체주의 등—을 사실상 몰아냈다.

도로시 넬킨(Dorothy Nelkin)과 쑤전 린디(Susan Lindee)는 학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대학들은 한때 인류의 문화와 인류의 과거에 관하여 많은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서구 문명과 관련한 대규모 개론 강좌들을 개설하는 것을 중지했다. 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이론 및 기타 학술 연구의 경향들이, ‘서구 문명’이라는 관념에 통합되었던 거대 서사의 합법성을 의심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와 같은 강좌를 결코 수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생물학입문을 수강할 것이다 ··· 생물학입문이 과거 서구문명 교과과정에 해당하는 교양 교과과정이 된 것이다. 즉 인류의 문화와 인류의 과거를 설명하는 생물학적 지식은 사회적 관심사, 경제적 발전, 국제 관계 및 윤리적인 논쟁과 깊이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생물학입문은 종교적•정치적 또는 철학적 책무에 물들지 않은, 진실을 추구하는 타당한 노력으로서 제시된다. 생물학입문은 민족이나 인종 집단들 사이의, 그리고 정체성과 신체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을 의미 있는 세계에 배치하는 것이다(Preface to the second edition, The DNA Mystique: The gene as a cultural icon, 2004).

레이섬은 록펠러재단과 담배산업의 전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회생물학을 ‘타당하고’ ‘물들지 않은’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레이섬이 보기에 유전적인 설명은 명백하게 그 설명의 정치적 입장을 잘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공적 담론이 무력화된 것을 기회로 삼아 이익을 얻는 (정부가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자금 제공자들에게서 후원을 받는 과학자들이 학계에서, 정책집단 안에서,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 유전학적인 설명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 것이다.

레이섬은 헉슬리가 제안했던 생물학의 지적인 팽창의 최종 결과가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상사에 밝지 못하고 입증되지 않거나 확증할 수 없는 유전학적인 설명에 세뇌된 학생들이 잘못 교육을 받고 순응적인 사회의 지적인 핵심이 되었다. 유일하게 명확한 인과 관계의 증거가 환경적인 경우에도 질병을 ‘유전적’이라고 로봇처럼 되뇜으로써 자기기만의 창출에 스스로 참여하는 그러한 지적인 핵심이 된 것이다. 레이섬의 정의에 따르면 유전학적으로 결정론적인 사회는 무책임한 기업 활동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사회가 직접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는 기본적으로 오염 유발자들, 정크 푸드 판매자들, 공동체의 파괴 및 기타 인간의 도덕성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비하여 마련해둔 방책이 없다.

좀 더 넓은 정치적 틀에서, 20세기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유전자 결정론적인 사회가 파시스트, 인종 차별주의자 및 전쟁 도발자들에게도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 역시 한 세기 반에 걸친 생명과학의 조작의 산물이다.

레이섬은 자신의 이런 주장은 강한 주장이 아니라며 2차 세계대전 동안 죽음의 수용소로 유대인을 이송한 책임자 가운데 하나인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과 관련된 사례 연구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세계는 대부분 아이히만을 개인적으로 비난했고 이스라엘은 그를 처형했다. 반면에 잘 알려진 것처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범죄를 불가사의한 “악의 평범함”(banality of evil)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레이섬은 그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아돌프 아이히만과 그의 상관들은 과학과 유전학의 명령을 그들이 이해한대로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인종적 순수라는 유전적인 문제였고 유전적인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멸절과 생식방지였다(특히『유대인들에 대한 전쟁: 1933-1945』참조). 이런 전제들을 감안하면 최종 해결책은 완전히 논리적이었다.

레이섬에게 완전히 논리적인 질문(그리고『생명의 의미 II부』의 주제)은 이와 전혀 다르다. 왜 거의 아무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유전학을 비판하거나 유전학에 도전하는 것이 왜 그토록 힘든가가 그에게는 논리적인 질문이다. 그는 유전학의 지배는 과학에서 비롯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우리가 생물학에서 전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은 원인 작용의 특권화된 수준을 유전자들에게 할당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에게 사회에서 특권화된 담론 수준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레이섬은 시리즈 논문의 마지막이자 세 번째 논문(『생명의 의미 II부)에서 우리 사회가 유전자 결정주의와 모태분자들에게 매료된 것을 설명하는 참신한 이론으로 이 현상을 더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힌다. DNA가 만물의 대표자로서 가지는 형이상학적인 역할에 기초하여 DNA의 상징적 지위와 과학적인 매력을 설명할 이론이다. DNA는 만물의 다른 대표자인 유대-기독교의 신처럼 리더십과 권위라는 속성을 무질서한 자연에 부여한다. 이와 같이 생명의 진정한 의미로 설정된 DNA가 과학이 다루는 세계에 존재하는 권위를 정당화한다. 따라서 역사적 당사자들—이를 테면 DNA의 이런 역할을 창출하는 것을 도왔던 록펠러재단—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힘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이섬은 이 이론에 담겨 있는 중요한 함의들을 짧게 소개한다. 이 이론이 시사하는 것은 유전자 결정론이 대중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이래로 서구 사회들은 권위주의적인 정치와 유전자 결정론적인 생각이 이뤄낸 하향 나선형 운동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이 나선형 운동이 이미 민주주의의 기능을 위태롭게 하고 있어서 이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면 민주적인 가치들을 완전히 소멸시킬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유기체는 독재가 아니라 체계라는 것을 지적해내면 되므로, 낙관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 이론이 나선형 운동을 역전시키는 개념상으로 간단한 방식을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사회의 존속 자체를 위하여 유전자 결정론적인 생각이라고 하는, 무엇보다 현실/실재에 기반을 두지 않는 이런 습관들에 맞서는 것이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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